점거당한 집 - 제4회 박지리문학상 수상작
최수진 지음 / 사계절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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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회 박지리문학상 수상작 최수진 작가의《점거당한 집》을 만나보았다. 『다윈 영의 악의 기원 』을 읽고 정말 멋진 작품을, 정말 뛰어난 작가를 만났다는 설렘에 즐거웠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그런데 얼마 후 안타까운 소식을 접하고 너무나 허망했던 기억은 점점 흐려진다. 흐려지는 기억을 매년 박지리문학상으로 붙잡고 있다. 올해 허망했던 기억을 달래줄 작품은 장편소설이 아니라 연작 형식을 띈 단편소설 세 편이다.


「길 위의 희망」 「점거당한 집 」 「금일의 경주 」


세 작품의 전체적인 느낌은 독특하다, 색다르다는 말이 저절로 나오는 새롭다는 느낌이다. 시간적인 흐름을 따라 진행되는 듯싶지만 현재의 '점거'는 과거의 '사건'과 연결되고 또 미래와 연결된다. 미래에 발생한 원전 사고 전후의 이야기가 세 편의 작품들의 주요 흐름이다. 하지만 그 이야기는 원전 사고가 중심이 아니라 예술가(춤, 미술, 소설)들의 삶이 중심이다. 아마추어 춤꾼부터 작은 전시회를 연 미술가 그리고 박물관의 작은방을 차지한 소설가까지.


故 박지리 작가의 『다윈 영의 악의 기원 』은 지금까지 만나본 소설 중에서 몇 안 되는 강렬한 첫인상을 보여준 작품이다. 이번에 수상한 작품《점거당한 집》에서는 그런 강렬한 느낌을 받을 수는 없었지만 무언가 새롭다는 느낌은 확실했다. 실제 하는 지명(광주, 용인, 경주)가 주는 익숙함이 낯선 예술적인 무언가로 변화하는 과정이 흥미롭다. 개인적인 삶이 '점거'라는 사회적인 행동을 통해서 어떤 모습으로 변해가는지 보여주고 있는듯하다.


편안하고 쉽게 읽을 수 있는 글은 아니다. 스토리보다는 생각의 흐름을 따라 기기 버거운 소설이다. 하지만 짧은 스토리 속에서 이렇게 많은 그리고 이토록 깊은 생각을 만나 볼 수 있다는 것이 이 책을 만나보아야 할 까닭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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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도 동정탑 - 2024년 제170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구단 리에 지음, 김영주 옮김 / 문학동네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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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또는 실수로 어떤 사건에 연루된 안타까운 사연을 가진 이들을 향한 동정과 도움은 인간이 동물과 구별되는 가진 가장 큰 차이점일지도 모른다. 그런 동정심은 사회를 따뜻하게 만들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점점 동정이나 연민의 정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왜 타인을 배려하는 따스함이 사라져 가는 걸까? 2021년 제126회 문학계신인상을 수상하며 데뷔한 일본의 작가 구단 리에는 그런 삭막한 사회를 우려하는 마음을《도쿄도 동정탑東京都同情塔 통해서 흥미롭게 그려내고 있다. 배려는커녕 서로의 말을 알아듣지도 못하는 세상이, 소통이 부재된 세상이 배경인 이 작품으로 작가는 2024년 제170회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했다. 



서로 다른 생각으로 자신만의 주장만 늘어놓는 요즘 세상이 시간이 조금 더 지나면 작가가 그리고 있는 안타까운 세상이 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소통이 부재된 세상에도 사랑은 존재하고  주인공 사라도 연하의 연인이 있다. 그런데 연인 다쿠토의 엄마와 동갑이다. 14살에 아이를 낳은 다쿠토의 엄마는 '도쿄도 동정탑'의 일원이 된다.  정식 명칭 '심퍼시 타워 도쿄'는 건축가인 사라의 작품이다. 그곳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들은 '범죄자'들이나 그들을 관리하는 사람들이다.


도쿄올림픽 주경기장 옆에 들어선다는 설정인데 잠실 주경기장 옆에 있는 롯데타워를 떠올리게 된다. 최고 시설의 교도소 타워. 소설 속에서도 찬반으로 나뉘어 엄청나게 대립한다. 그런데 그 싸움의 불똥이 왜 건축가에게 향한 걸까? 이야기의 시작에 등장하는 건축가 자하 하디드의 이야기도 흥미롭다. 실제로는 도쿄 주경기장은 설계변경을 거쳐 자하 하디드의 설계안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그런데 자하 하디드의 작품이 서울에 있다. DDP(동대문디자인플라자). 자하 하디드의 건축은 예술작품 같다. 그래서 아마도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지도 모르겠다.


《도쿄도 동정탑東京都同情塔이 가진 가장 큰 특별함은 AI와의 대화를 소설에 직접 차용한 것이다. 인공지능과의 대화가 일상이 된 세상은 어떤 모습일지 근미래를 그려보게 한다. 그리고 이 책이 가진 독특함은 말과 건축을 연관 짓는 사라의 행보다. 15살 연하의 연인이 있고 멋진 건축물을 설계하는 마키나 사라와 개인적인 아픔을 품고 견디고 있는 마키나 사라의 모습이 마지막까지 이어진다.


p.44. 설령 형태가 없는 말일지라도 집 내부에서 완전히 쫓아내지 않으면 발판이 불안정해 서 있을 수도 없다. 단 일초도.


등장인물도 단출하고 이야기의 흐름도 단순하다. 또 분량도 많지 않다. 그런데 쉽게 읽히지 않는다. 동정이라는 감정이 워낙 복잡한 감정이라서 그런 것일까? 가볍게 읽으면서 사색의 심연으로 빠져드는 느낌이다. 자꾸 뒤돌아보게 하는 묘한 매력을 가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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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망 1
박완서 지음 / 민음사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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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로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작품을 썼던 박완서 작가의 유일한 역사소설 《미망》을 만나보았다. 3권으로 구성된 작품의 시작인 1권은 개화기 인삼농사와 상업의 중심지였던 개성을 배경으로 그곳에 살았던 사람들의 삶을 그린 장편소설이다. 작가 박완서는 자신의 작품 중 오십 년이나 백 년 후에도 읽힐 게 있다면 《미망未忘 1》일 것이라는 소회를 남겼다고 한다. 미래의 고전이 될 작품을 만나본다.


1권은 이야기의 시작인 만큼 긴 흐름을 함께할 주인공들의 성장과정을 보여준다. 전편을 다 읽지는 못했지만 아마도 태임과 종상이 주인공일듯하다. 그런데 둘의 악연은 조상 때로부터 이어진 것이기에 벌써부터 불안하다. 이 둘의 행보가 어쩐지 로맨스로 발전할 것 같아서 정말 불안하다. 물론 1권까지는 아씨와 종놈의 관계지만. 하지만 종상은 양반인 이 생원의 손자이고 태임은 상인인 전차만의 손녀이다. 그런데 어떻게 둘의 신분이 아씨와 종놈이 되었을까?

이생원의 횡포를 갚아주기 위해 상인이 되고 엄청난 부를 이룬 전차만은 병약했던 장남이 유일하게 남긴 혈육 태임을 정말 심하게 편애한다. 어느 곳을 가든 어린 손녀를 앞장 새울 정도로 태임을 끔찍이 여긴다. 하지만 이야기 속 거부巨富 전차만의 삶은 순탄하지만은 않다. 맏아들은 일찍 죽었고, 눈앞의 이익을 위해 자신의 뜻을 거역한 막내아들과는 의절하였다, 또, 과부였던 맏며느리는 아이를 낳고 집안 우물에 빠져 자살한다. 전차만은 집안의 수장답게 죽기 전에 누군가를 만난다. 홀로 남게 될 태임에게 언젠가는 힘이 되어줄 누군가를. 하지만 여기서 또 다른 불안이 싹튼다. 힘이 아니라 짐이 될 것만 같다는 불안.

1권에서는 태임의 할아버지 전차만이 이야기의 흐름을 주도한다. 자신의 아버지를 애꾸눈으로 만들었던 이생원의 손자 어린 종상을 보고는 이성을 잃고 분노하지만 청년이 된 종상이 커다란 부상을 당하자 한양까지 직접 데리고 가서 많은 돈을 들여 병원 치료를 받게 해주는 자상함을 보이는 전차만.

1권의 끝자락에는 태임이 종상에게 한 가지 부탁을 한다. 비밀스러운 부탁과 함께 태임은 종상에게 신식 공부를 권한다. 어째 불안함이 하나 더 늘어난다. 비록 하대하는 아씨지만 연정을 품었던 종상이 한양에서 신식 공부를 마치고 나면 어떻게 변할지 걱정이다. 많은 불안과 걱정들이 기우이기만을 바라며, 태임의 행복한 삶을 바라며 2권을 빨리 만나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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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나이다 비나이다
신도윤 지음 / 한끼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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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나이다 비나이다》라는 제목부터 색다른 흥미로운 이야기를 만나보았다. 종교 단체를 둘러싼 '미스터리'로 생각하고 주인공 최이준 선생의 첫 발령지로 따라나선다. 학교를 찾기 위해서는 한 사람 마을부터 찾아야 하는 데 주인공의 능력 밖인듯싶다. 한참을 헤맨 후 반가운 시골 슈퍼를 만나고 그곳의 노파로부터 이상한 소리를 듣게 된다. 역시 그 마을에서 무언가 미스터리한 사건이 일어난듯하다.


p.66. 나는 신의 은총을 바라기는커녕 신을 믿지도 않는 사람이다.


이런 마을이 있다면 그곳에서 살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폐쇄적인 시골마을에 부임한 초등학교 선생님은 그들의 삶에 스며들 수 있을까? 얼핏 보기에도 '함께'가 아니면 '왕따'를 당할 것 같은 분위기의 마을에서 선생님은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주인공의 직업을 왜 '선생님'으로 했을까? 아마도 엄청난 유혹에도, 절대적인 권력에도 맞설 수 있을 것 같은 직업군으로 '선생'을 선택한 듯하다.


처음에는 작가의 뜻대로 그리고 우리가 바라는 대로 선생님의 역할을 충실히 그리고 충분히 해낸다. 하지만 마을 이장 겸 목사인 박성호가 보여준 '신'의 능력을 직접 영접하고는 그 누구보다 더 열성적인 '한마을' 사람이 된다. 이쯤에서 이야기는 미스터리 소설을 떠나 '오컬트' 소설로 보이기 시작한다. 과학적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신비한 현상이 '신의 영접'이라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인간의 욕심이 불러낸 신의 능력은 끔찍한 공포를 수반한다.


오컬트 호러 소설 《비나이다 비나이다》에 등장하는 '한 사람 마을'이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폐쇄적일 수 있었던 까닭은 '신의 영접'을 경험한 이들과 옆에서 기적을 지켜본 이들의 헛된 '욕심'이 마을 전체를 외부로부터 차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자신들만이 '신의 영접'을 독점하려고 한 것이다. 물론 이장 겸 목사 박성호 집안의 노력으로 마을 사람들의 욕심은 통제할 수 있었다. 하지만 최이준 선생이 신에게 영접할 수 있는 '제물'의 진실을 알아내면서 이야기는 갑자기 신비스러운 이야기에서 피비린내 진동하는 공포물로 바뀐다.


이 소설에는 권력에 맞서야 할 이장이 신의 권력에 타협하고, 목사는 평화로운 마을을 위해, 종교를 떠나 절대적인 신의 능력을 이용하기 위해 정말 엄청난 일을 저지른다. 그리고 그 사건은 자신의 죄책감을 덮으려는 선생에 의해 재현된다. 도덕도, 명예도 버린 사회 지도층의 부조리한 삶을 보고 있는듯하다. 최이준과 박성호라는 인물의 입체적인 캐릭터가 주는 긴장과 흥미는 이야기의 흐름을 긴박하게 하고 있다.


새로 부임한 최이준 선생의 행보는 특히 안타깝다. 그가 조금씩 마을 사람들보다 더 '영접'에 집착하게 된 까닭은 무엇일까? 가족에 대한 그리움일까? 어린 동생을 구하지 못한 죄책감일까? 자신의 화상 상처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경험을 한 최이준 선생의 '신의 영접'에 대한 간절함은 그릇된 욕망이 되고 그 헛된 욕망은 무서운 결과를 만들고 만다. 인간의 욕심이, 헛된 욕망이 만들어내는 가장 큰 피해는 무엇일까? 아마도 욕망에 허우적 되던 자신의 인격 해체일 것이다. 정신도, 육체도 붕괴되고 만다.


신의 존재를 의심하며 주인공 이준과 함께 교회로 들어선다. 주인공과 함께 신을 영접하고는 놀라움과 신비함에 상상 속 하늘을 난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결말에는 다시 땅으로, 현실로 돌아온다. 신을 영접하는 조건을 알고 싶다면 이 책을 만나보길 바란다. 하지만 그 조건이 주는 충격은 감수해야 할 것이다. 신보다는 옆에 있는 사람에 더 집중해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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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대답하는 너의 수수께끼 - 아케가미 린네는 틀리지 않아
가미시로 교스케 지음, 이연승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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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대답하는 너의 수수께끼》라이트노벨풍의 본격 미스터리다. 하지만 굳이 장르를 따질 필요가 없을 정도로 흥미롭고 재미나다. 부제'아케가미 린네는 틀리지 않아'에서 알 수 있듯이 주인공은 린네와 린네의 완성된 추리를 분석하고 해설해 주는 변호사가 꿈인 이로하이다. 두 고등학생이 펼치는 추리쇼도 흥미롭지만 순진한 두 친구들이 서로에게 천천히 스며드는 썸도 재미나다. 또 둘 사이의 갈등이 되는 꼬마 날라리 코가미네의 존재감이 스토리를 더욱더 풍부하게 해준다.


진실을 단번에, 순식간에 알아차리는 능력이 있다면 경찰이 되면 좋을듯했다. 린네를 접하기 전까지는. 결론은 있는데 합리적인 설명이 부족하다면 답은 있지만 풀이 과정은 없는 50점짜리 답안지가 될 것이다. 린네의 그런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역할을 이로하가 해주고 있다. 그런데 린네는 오늘도 상담실 한구석을 차지하고 무언가에 열중하고 있다. 그렇게 된 까닭은 무엇일까? 또 그곳에서 린네는 하루 종일 무엇을 하며 지낼까?


사건을 듣는 것만으로도 범인을 알아내는, 진실을 알아내는 엄청난 능력을 가진 린네 하지만 린네는 자신의 추리를 '논리적'으로 설명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린네의 추리는 반쪽짜리, 50점짜리 추리일까? 그래서 그 반쪽을 채워주는, 추리를 추리하는 이로하가 등장한 것이다. 그런데 이로하가 의미심장한 생각을 보여준다. 이 책이 다음 편이 있다는 것을, 시리즈가 만들어질 것이라는 것을 내놓고 스포하고 있다. 아니 작가가 보여주는 예고편인가?

p.161.  역시 린네는 그때의 나와 똑같다는걸.
         기이한 능력을 가진 채 태어났고, 그러니 자기 안에 있는 

         진실을 그 누구도 믿어 주지 않아 

         외롭고, 두렵고, 가슴 아팠던 그때의 나와 똑같다.


린네의 능력도 다 이해하지 못한 상황인데 이로하 이 녀석의 능력은 또 무엇일까? 어쩌면 린네의 추리를 풀어내면서 보여주던 녀석의 특별한 '그것'이 이로하의 능력일까? 그런데 이 학교도 참 이상하다. 이로하와 린네가 추리해야 할 문제들이 계속 이어진다. 마치 명탐정 코난이 가는 곳마다 사건이 터지듯이.

학교에서 일어난 미스터리한 사건의 답을 단번에 알아내는 린네와 그런 린네의 추리를 풀어내는 이로하의 논리 대결도 재미나지만 둘 사이에 천천히 피어나는 썸의 향기가 이야기를 더욱 흥미롭게 만들고 있다. 특별한 능력을 가진 린네를 돕는 이로하가 점점 이상해질 때쯤, 볼이 빨개질 때쯤 이야기는 끝을 맺은다.

논리적인 추리가 빛나는 '본격 미스터리'를 보는 재미에 이로하의 빨개지는 얼굴을 보는 재미가 더해져 '순삭'이 무엇인지 보여준 책이다.

"블루홀식스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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