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렌지와 빵칼
청예 지음 / 허블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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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학문학상 장편대상 수상 작가 청예의 SF 미스터리 《오렌지와 빵칼》을 가제본으로 만나보았다. 청예라는 작가의 작품을 처음 접하는 터라 무척이나 기대하며 읽었다. 그리고 그 기대감은 작가의 작품을 찾아보게 하는 설렘으로 이어졌다. 작품 소개에서 접한 SF 미스터리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읽은 탓일까? 왠지 새로운 형식의 SF 미스터리를 만나고 있는 듯했다. 이렇게 묵직한 주제를 던지는 SF 미스터리를 접했던 적이 있었던가 싶었다.


p.176. 부끄러운 여자는 태어나는 게 아니다. 만들어지는 것이지.


주인공 영아에게는 오래된 친구 은주와 오랜 된 연인 수원이 있다. 오래된 까딱일까? 그들과의 관계가 버겁고 삐걱거리기 시작한다. 거기에 유치원 교사인 영아에게 정말 버거운 상대 은우가 더해지면서 영아의 삶은 읽는 것도 불편할 정도로 피폐해간다.


p.23. 웃음을 상실한 지가 너무 오래됐다.


이 정도면 심리 상담을 받아봐야 할 것 같았다. 그런데 영아는 수원과 은우 엄마의 권유로 새로운 의학적 실험에 참여하게 된다. 전두엽의 일부에 자극을 주어 일시적으로, 4주간 새로운 감정을 느끼게 해준다는 실험에 참여한 것이다. 착한 친구, 착한 애인 거기에 친절한 사람이었던 영아의 변화는 솔직해 속 시원했다. 특히 친구 은주를 향한 영아의 변화는 바람직해 보이기까지 하다. 하지만 주인공 영아도 느끼고 있듯이 너무나 극단적이다. 영아는 4주 후 실험을 통해 얻은 성품을 유지하는 선택을 하게 될까?


p. 162. 의심할 여지 없이 나라는 존재는 곧 사회이고, 곧 전체였다.


인간의 본성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생각에 빠져 이 소설이 미스터리라는 소개를 잊고 있었다. 그때쯤 엄청난 반전들이 연이어 나오며 미스터리가 가진 재미를 제대로 보여준다. 그런데 솔직히 주인공 영아는 주변 정리부터 해야 할 것 같다. 연인을 포함한 주변 인물들이 어쩜 그렇게 못 됐는지. 그럼에도 열심히 자신의 삶을 찾고 있는 주인공 영아를 응원하게 만드는 책이다.


p.54. 은주를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서 나는 더 자주 반성해야 했다.


'착하다'라는 평가는 상대방 즉 사회가 만들어 놓은 덫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그 함정에 빠져 자신의 모습을 잃어버리고 허우적되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을 고스란히 그리고 있는듯해서 읽는 내내 먹먹했다. 가볍게 읽을 수 있는 SF 미스터리는 아닌듯하다. 하지만 삶에 대한 묵직한 울림을 담고 있는, 인간관계에 대한 경종을 울리고 있는 흥미로운 소설인 것은 확실하다. 《오렌지와 빵칼》은 미래를 담기보다는 오늘을 담고 있는 매력적인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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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끔찍한 남자 마르틴 베크 시리즈 7
마이 셰발.페르 발뢰 지음, 김명남 옮김 / 엘릭시르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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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의 작가 커플 마이 셰발페르 발뢰가 1965년 『로재나』를 시작으로 집필한 형사 소설 '마르틴 베크'시리즈의 일곱 번째 작품을 만나보았다. '북유럽 범죄소설의 선구자'라 불리는 작가 커플의 《어느 끔찍한 남자》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드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경찰 내부 부조리는 물론 당시 스웨덴 사회의 시대상까지 흥미로운 읽을거리를 보여준다.


p.61. 범죄 수사의 성패는 우연의 망을 가급적 촘촘히 짜내는 데 달려있다. 번득이는 육감보다는 경험과 성실함이 더 많이 기여한다.


시리즈의 주인공들인 형사들은 오늘도 엄청난 피로에 시달린다. 주인공 마르틴 베크는 새벽에 잠자리 들자마자 전화를 받았고, 에이나르 뢴은 열일곱 시간 넘게 근무 중이었다. 또, 멜란데르는 주말을 반납하고 경찰서에 왔다. 그런 그들이 또 며칠간 잠도 못 자고 살인 사건에 투입된다. 형사라는 직업의 애환을 이번 작품에서도 만날 수 있다. 마르틴 베크 시리즈를 통해서 접할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이 경찰들의 실제 생활인 듯하다. 엄청난 소명감 없이는 해낼 수 없는 극한직업이지 싶다.


이번 작품의 피해자는 전직 경찰 서장이다. 그것도 병원에 입원해있던 피해자를 군용칼로 난자한 너무나 '끔찍한'사건이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을 《어느 끔찍한 남자》로 정했나 싶었다. 하지만 스토리가 진행될수록 '끔찍한 남자'는 범인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게 된다. 경찰을 잔인하게 살해한 범인보다 '끔찍한 남자'는 누구일까? 대담하게 전직 경찰 서장을 살해한 살인범은 누구일까?


이번에도 베크의 수사팀들은 최고의 실력으로 사건의 진실에 다가간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만나게 되는 진실들은 너무나 불편하다. 전직 경찰 서장을 상대로 한 많은 투서들을 읽으면서 만약이라도 투서의 피해자가 된다면 어떨지 생각해 보았다. 끔찍하다. 지금까지 접했던 시리즈의 많은 부조리한 상황은 이번에 만나게 된 비극들에 비하면 가볍게 느껴질 정도다.


정말 당시 스웨덴 사회가 그랬을까 하는 의구심을 품게 된다. 그런데 우리나라 과거 경찰의 모습을 생각해 보면 충분히 공감할 수 있기도 하다. 공권력의 남용은 한 개인의 삶을, 한 가족의 삶을 송두리째 뽑아버린다. 마르틴 베크 시리즈의 다른 작품들도 그렇지만 이번 작품은 우리 경찰들이 꼭 한번 만나보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엘릭시르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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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는 바닥 - 제44회 에도가와 란포상 수상작
이케이도 준 지음, 심정명 옮김 / ㈜소미미디어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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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는 바닥 果つる底なき》은 인기 작가 이케이도 준데뷔작이다. 1988년 제44회 에도가와 란포상 수상작품이다. 20여 년 전 작가의 시작은 어떠했을지 무척이나 기대되는 작품이다. 개인적으로는 이케이도 준 하면 떠오르는 작품은 『한자와 나오키』이다. 은행을 중심으로 약육강식에 세상의 모든 권모술수는 다 등장하는 듯한 이야기가 너무나 흥미롭고 재미있었다. 그 후로도 절대 선도 악도 없는 살아남는 것이 선이 된 조직 생활의 비애와 그 속에서 허우 적되는 인간 정서를 정말 잘 표현한 작품들『샤일록의 아이들』, 『일곱개의 회의』, 『변두리 로켓』 그리고 럭비 이야기가 참신했던 『노사이드 게임』,『하야부사 소방단』등을 정말 재미나게 만나보았다.


p.307. "그렇군, 요즘 세상에 보기 드문 인종이야, 자네는. 솔직히 말해 부러운 듯도 하고 무서운 듯도 해. 분명 앞으로 더욱 경멸할 만한 인간을 만나게 될 걸세, 이 세계에서는. 각오하는 편이 좋아."


《끝없는 바닥》의 주인공 이기 하루카도 작가의 다른 작품 속 주인공들처럼 '보기 드문 인종'이다. 진실을 덮으라는 윗선의 지시를 무시하고 회의석상에서 공론화한 탓에 본사 기획실에서 니토 은행 시부야 지점으로 발령받았다. 역시 이케이도 준이라는 작가의 시그니처는 아무래도 '은행'인듯하다. 또, 조직 사회에 필요한 인재보다는 정의사회에 필요한 사람이 주인공이라는 점도 작가가 가진 특별한 색이다. 데뷔작이라는 선입견을 끼고 지금의 작가와 20년여 년 전의 작가를 비교해 보는 즐거움도 이 책을 통해서 만날 수 있는 행복이다.


남들은 좌천이라고 하지만 정작 주인공 이기는 은행 지점 업무가 편안하다. 그런 편안한 일상은 어느 날 아침 웃으며 인사한 입사 동기 사카모토의 죽음으로 송두리째 사라지고 만다. "너 나한테 빚진 거다?"(p.11)라는 사카모토의 마지막 말에 의구심을 느끼고 있을 때 이번에는 더 이상한 상황이 발생한다. 사카모토의 죽음도 의심스러운데 갑자기 사카모토가 은행 돈을 횡령했다는 것이다. 무언가 의심스럽다. 그렇게 의심이 커지면서 이기의 맹활약과 함께 이야기가 시작된다.


재미나고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반전을 향해 달려가는 동안 만나게 되는 낯선 단어들이 읽는 재미를 더해준다. 지적인 호기심을 자극하기 위한 장치인지 20여 년 전과 오늘의 차이인지는 모르겠지만 읽는 즐거움을 배가 시키고 있다. 암거暗渠, 신산辛酸, 언외言外, 무지근한 등. 물론 찾아보지 않아도 문장의 흐름상, 느낌상 알 수 있는 단어들이지만 찾아보면서 읽는 재미가 더 좋을 듯하다.


살인이라는 미스터리에 직장 내 '정치질'이 더해져서 이야기의 흐름이 혼탁해질 때 주인공의 선명한 '선함'이 이야기를 말끔하게 해준다. 이케이도 준의 대부분의 작품들이 그렇듯이 선善이 악惡을 이기고, 소小가 대大를 이긴다. 진부한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전혀 지루하거나 따분하지 않다. 도리어 가슴속이 후련해지는 상쾌함을 접하게 된다. 이기의 로맨스도 이야기를 풍부하게 해준다. 이기의 전 여자친구가 두 명 등장한다. 그것도 어려운 처지에 처해있다. 어떤 사랑을 다시 시작하게 될지 몰래 보는 재미를 놓치지 말길 바란다.


이케이도 준의 위트 있는 유머러스한 대화는 볼 수 없지만 지금까지 만나본 작품들의 모습을 조금씩 볼 수 있는 것 같아서 좋다. 세련되지 않은 이케이도 준의 거친 시작을 만나보고 싶은 독자들이라면 꼭 만나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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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시간과 만나는 법 - 강인욱의 처음 만나는 고고학이라는 세계
강인욱 지음 / 김영사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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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고대사고고학연구소 소장 강인욱 경희대학교 사학과 교수가 들려주는 '고고학'이야기를 만나보았다. 이 책《사라진 시간과 만나는 법》을 통해 알게 된 것이라면 고고학과 역사를 연구하는 것은 다른 학문이라는 것이고, 이 책을 통해 느낀 것은 고대 유물의 시간과 현대의 시간은 이어진다는 것이다. 보통 우리는 미래를 꿈꾼다. 그런데 고고학자들은 과거를 꿈꾼다. 과거 시간 속에 존재하던 유물을 통해 현재와 미래를 그려볼 수 있는 매력적인 학문이 고고학인듯하다.


저자는 이 책을 쓴 동기를 고고학을 전공하지 않은 이들에게 고고학이라는 학문이 가진 매력과 고고학이 품은 숨은 의미를 보여주고 싶었다 밝히고 있다. 고고학의 본질을 '시간 여행'이라 규정하며 고고학이라는 타임머신으로 우리를 멋진 고고학의 세계로 안내하고 있다. 유물과 유적의 발굴이 변화시킨 역사적 사실들을 설명해 주고 흥미로운 에피소드들을 통해 고고학이 재미난 학문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고고학과 역사 연구를 동일시한 무지로부터 일깨워 주며 시작한 이야기는 디지털 시대의 고고학 이야기로 끝을 맺는다. 역사를 전공한 사람은 '기록'에 있는 글자 하나하나를 정성 들여 해석하며 과거를 판단한다면, 고고학은 발굴한 '유물'을 해석하는 것이 주목적이라고 한다. 즉 유물을 연구하는 첫걸음은 그 유물의 시간과 공간을 밝히는 것이다.


역사 연구와 고고학의 차이를 확실하게 알려주고 고고학이라는 타임머신에 탑승하게 한다. 고고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의 도구 '트라울'에대해 들려주고 천마도에 숨은 비밀도 알려준다. 특히 흥미로웠던 이야기는 방사성탄소연대 측정법의 발견과 관련된 이야기이다. 핵폭탄 개발 과정에서 고고학자를 옭아매고 있던 시간의 제약을 풀 수 있는 방법이 발견된 것이다.


재미나고 흥미로운 다양한 고고학 관련 이야기를 풀어내며 고고학이 가진 진짜 매력이 무엇인지 어필하고 있고 그 어필은 확실히 통할듯하다. 누구나 이 책《사라진 시간과 만나는 법》을 만나게 된다면 고고학이 선물하는 시간 여행이 주는 즐거운 타임슬립을 접하게 될 것 같다.


"김영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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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끝까지 쫓는다 - 대한민국 최장기 인터폴계장의 국제공조 수사 일지
전재홍 지음 / 21세기북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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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 도시 4〉〈모범택시 2〉의 바탕이 된 범죄 사건의 피의자들을 검거한 주역 전재홍이 들려주는 흥미롭고 재미난 이야기를 만나본다. 실감 나는 이야기가 아니라 진짜 실화를 들려주고 있어서 몰입도는 최상이다. 《지구 끝까지 쫓는다》는 표지에 있는 소제목 '대한민국 최장기 인터폴 계장의 국제공조 수사 일지'에서 알 수 있듯이 해외로 도주한 범죄자들을 국내로 소환해 죗값을 치르게 하는 긴장감 넘치는 순간들의 기록을 담고 있다. 그런데 죗값이 너무나 가볍다는 생각이 머리를 복잡하게 한다.

죄를 짓고 해외로 도피한 범죄자들을 잡기 위한 방법으로 '인터폴'이라는 조직을 소설이나 영화 등을 통해서 알고 있었다. 이 책을 통해서 정말 단어만 알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저자인 전재홍은 현역 경찰이다. 하지만 주위에서 자주 접하는 경찰들과는 다른 업무를 주로 하고 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인터폴'인 국제형사경찰기구의 연락 사무소 역할을 하는 국가 중앙사무국에서 근무하고 있다. 그런 저자가 그동안 인상 깊었던 범인 검거 이야기를 정말 실감 나게 들려주고 있다. 현직 경찰이 들려주는 실제 범죄 이야기이니 재미와 흥미는 보장된 책이다.

책은 5개 파트로 구성되어 있다. 그중 Part4. 사상 최초로 했던 일들에서 보여주고 있는 이야기들이 무척 흥미로웠다. 인터폴 적색수배 요건 개정, 한국판 콘에어 작전, 선박 송환 등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일들을 '최초'로 해낸 과정을 촘촘하게 들려준다. 자신의 공보다는 다른 경찰들과 현지 경찰들의 공을 더 높이 들려주며 고마움을 표하는 저자에게서 경찰로서뿐만 아니라 인간으로서도 존경심을 느끼게 된다.


p.100. 무슨 일이든지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경찰관이란 직업을 단순한 생계 수단이 아닌 천직으로 여길 때 사회에 기여를 많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흥미진진한 범죄 이야기가 많이 보이지만 마냥 흥미롭게 볼 수만은 없었다. 사건 피해자들의 모습이 떠올라서 가슴이 먹먹했다. 특히 젊은 프로그래머의 죽음은 너무나 안타까웠다. 조직폭력배들을 비호하는 세력이 있다는 점이 너무나 놀라웠다. 조직폭력배가 그룹 회장이 되는 나라가 정상인지 의구심이 생긴다. 해외로 도망친 범죄자들의 검거도 시급하지만 그들의 도피를 돕는 국내 조직들부터 뿌리를 뽑아야 할 것 같다.

어떤 일이든 '최초'라는 수식어를 갖기 위해서는 남다른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이 책에는 다양한 범죄자들이 많이도 등장한다. 하지만 그들을 검거하기 위해 밤잠을 설치며 동분서주하는 경찰들의 모습이 눈에 더 들어오는 까닭은 무엇일까? 아마도 저자가 경찰들의 실명을 공개하며 고마움을 표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들의 안전을 책임지는 경찰들의 노고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21세기북스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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