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오의 시대, 광기의 사랑 - 감정의 연대기 1929~1939
플로리안 일리스 지음, 한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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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오의 시대, 광기의 사랑》의 목차는 그 이전, 1933, 그 이후 이다. 1933년 유럽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바이마르공화국이 히틀러에 의해 무너진 해라고 한다. '그 이전'은 1929년에 미국에서 시작된 세계 경제 대공황을, '그 이후'는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을 이야기하고 있는듯하다. 제1차 세계대전의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유럽에는 경제가 무너지고 결국 대규모 전쟁이 터지고 만다. 저자 플로리안 윌리스는 칠흑 같은 어둠이 내려앉은 상황에서도 꾸준하게 꽃피운 사랑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 사랑 이야기는 유명인들의 사랑을 담는다.


p.78. 다시 파리에 온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여자들은 도시와 같다고 생각한다. 여자나 도시를 사랑하게 되는 이유는 나중에 싫어하게 되는 이유와 똑같다는 것이다.


많은 셀럽들의 사랑 이야기만으로도 흥미와 재미를 충분히 자극하는데, 찾아볼 수 있는 다양한 형태의 사랑 이야기를 거의 다 만나볼 수 있다는 점이 이 책의 나머지 부분을 더욱더 궁금하게 하고 있다. 작은 분량으로 들려주는 이야기가 이렇게 강렬한데 남은 분량의 이야기는 얼마나 강렬할지 무척이나 기대된다.


이야기는 바람둥이를 비롯해서 동성애, 근친애, 지고지순한 사랑 등 다양한 '사랑'이야기를 들려주며 시작한다. 하지만 나치가 등장해서 정권을 장악하는 1933년쯤에는 긴장감이 극에 달하는 '탈출'이야기를 보여준다. 탈출을 애인과 하는 인간들도 보이고, 탈출해서는 다시 애인을 찾는 인간들도 보인다. 물론 모두 유부남들이다. 결혼은 왜 한 걸까요? 그리고 마무리하듯 사랑하는 이들을 갈라놓는 '죽음'이야기로 이어진다.


티저북이라는 분량적인 한계도 잊을 만큼 정말 흥미롭고 재미난 책이었다. 장폴 사르트르 하면 노벨상을 거부한 작가로 인상 깊었는데 그가 사랑을 대하는, 아내를 대하는 모습은 조금 실망스러웠다. 매형의 아내와 불륜을 저지르는 정신 나간 지도자(스탈린)도 보이고, 스콧 피츠제럴드와 젤다 피츠제럴드의 아름다운 사랑도 만날 수 있다. 『남회귀선』의 작가 헨리 밀러가 아내가 보낸 이혼 서류를 받은 날 일기에 적은 '딱 한마디'는 무엇일까? 새로운 애인과 지내는 애인의 생활비를 대주는 사람이 있다면 '이것은 광기일까 사랑일까?'(p.95)


다양한 모습의 사랑으로 시작해서 나치가 만들어놓은 증오로부터 탈출한 이들의 극적인 이야기도 볼 수 있다. 또 죽음이라는 이별 이야기도 만날 수 있다. 무엇보다 이 책이 가진 매력 중에서 가장 큰 매력은 '허구'가 아니라는 점이다. 소설보다 더 극적인 사랑 이야기가, 서스펜스 영화보다 더 스릴 있는 탈출 이야기가 모두 그때 당신 있었던 실제 이야기라는 점이 몰입도를 극에 달하게 하는 책이다.



"문학동네로부터 티저북을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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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 도슨트가 알려주는 전시 스크립트 쓰기 - 진심이 닿는 전시 해설의 노하우
김인아 지음 / 초록비책공방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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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스크립트 쓰기》의 부제는 '진심이 닿는 전시 해설의 노하우'이다. 제목에는 '미술관 도슨트가 알려주는'이라는 문구가 붙어있다. 즉 이 책은 미술관 도슨트인 저자 김인아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전시 해설에 대한 노하우를 전해주는 책이다. 그런데 이쁜? 표지만 보고 미술관에 대한, 미술 작품에 대한 이야기인 줄 알고 경솔하게 선택했다. 하지만 그 경솔한 선택은 많은 무지無知에서 벗어날 수 있는 좋은 시간을 선물해 주었다.


p.107. 스크립트 작성을 관통하는 하나의 원칙은 바로 단문으로 문장을 쓰는 것이다.


'도슨트'에 대한 많은 것들을 알아가는 것은 시작부터 당황스러웠다. 큐레이터 Curator(학예사學藝士, 전시기획자)와 도슨트Docent(전시 해설가)가 다른 거였다니. 또, 대부분의 도슨트들은 직업이 아니라 '자원봉사' 였다니 너무나 놀라웠다. 하지만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자원봉사인데도 선발 절차가 까다롭다는 것이다. 서류 전형에 면접을 보는 경우도 있고 직접 시연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니 말 그대로 도슨트 그거 아무나 하는 것은 아닌듯하다. 하지만 책을 읽는 중간중간에 도슨트에 도전해 볼까 하는 생각이 드는 까닭은 이 책이 가진 매력 때문일 것이다.


큐레이터가 도슨트와 비슷한 직업이라고 생각한 무지가 이 책을 더욱더 재미나고 흥미롭게 만나볼 수 있게 해준듯하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지만 모르는 만큼 더욱더 촘촘하게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실제 진행했던 전시회 스크립트 script(30~50분 내외의 미술 작품 해설을 위한 대본)를 바탕으로 비교하면서 시각적으로 설명해 주고 있어 정말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또, 좀 더 자세한 설명이 필요한 경우에는 별도 박스를 통해서 설명해 주고 있어서 조금 더 편안하게 접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책이 담고 있는 멋진 작품들의 전시 사진은 아름다운 덤이다.


저자의 이야기는 삶을 담은 에세이처럼 부드럽고, 저자의 설명은 단번에 이해시켜주는 명강의처럼 명쾌하다. 도슨트를 꿈꾸는 이들에게는 그 꿈을 이룰 수 있는 에너지를, 도슨트로 활동하고 있는 이들에게는 색다른 노하우를 전해주는 멋진 책이다.


"초록비책공방으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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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공의 즐거움 - 쉰 넘어 대패를 처음 잡아본 문과 출신이 두서없이 풀어놓는 취목의 세계
옥대환 지음 / 21세기북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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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불문과를 졸업하고 신문사에서 퇴직한 저자 옥대환이 들려주는 목공 이야기를 만나본다. 문과 출신의 쉰 넘은 아저씨가 '대패'에 실망하고 절망한 까닭은 무엇일까? 취목(취미 목공인)의 세계에 빠진 저자가 들려주는 지극히 주관적인 이야기《목공의 즐거움》을 통해서 '대패'의 의미를 알아보길 바란다.


이 책은 목공이 무엇인지부터 배워야 하는 정말 '목공'에 대한 애정만 듬뿍 있는 이들에게는 정말 커다란 도움이 될 것 같다. 또 목공의 매력에 빠진지 오래된 이들에게는 초심으로 돌아가게 하는 신선한 자극이 될 것이다.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목공에 대해서 잘못 알고 있었던 것들을 제대로 알게 되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은퇴 후에 전원주택지 차고에서 목공을 해볼 계획이었는데 이 책을 통해서 전원주택 차고가 공방이 될 수 없는 다양한 원인을 알게 되었다. 또, 장비가 너무나 많이 필요한 것 같아서 다시 생각해 봐야 할 듯하다. 엄청난 기계치인 탓에 불안하다.


목공이 가진 다양한 매력을 소개하며 시작한 이야기는 저자가 겪은 시행착오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자신이 겪은 실수를 솔직하게 들려주며 목공의 매력에 빠진 후배들에게 지뢰의 위치를 알려주어 '목공의 즐거움'에 이르는 안전한 길을 안내하고 있다. 재료 선택에서 전동 공구와 기계에 대한 이야기까지 목공을 A에서부터 Z까지 촘촘하게 알려주고 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초보자들에게는 목공에 접어드는, 목공을 준비하는 경전이 될 것 같다. 특히 많은 공구와 기계들을 실제 사진을 통해서 설명하고 또 선택 방법을 알려주고 있어서 좋았다.


이제 점점 더 다가오는 퇴직 후의 삶에 대한 생각으로 머릿속이 복잡하다. 이 책은 목공은 딴생각을 떨쳐버릴 수 있는, 집중력을 키울 수 있는 가장 좋은 취미라고 말하고 있다. 다양한 기계들을 다루는 까닭으로 긴장의 끈을 놓으면 안 되기 때문일 것이다. 기계를 잘 다룰 자신이 있다면 저자가 들려주는 목공의 기초를 만나보길 바란다. 대패를 잘 다룰 자신이 있다면 이 책이 보여주는 목공의 매력에 빠져보길 바란다. 목공을 향해 첫걸음을 내디딜 이들이라면 《목공의 즐거움》을 통해서 목공 속에 담긴 진짜 즐거움을 알아보길 바란다.



"21세기북스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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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의 동물 기록 - 피터 아마이젠하우펜 아카이브
호안 폰쿠베르타.페레 포르미게라 지음 / 이은북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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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재미나고 흥미로운 책《비밀의 동물 기록》을 만나보았다. 저자들이 영국 스코틀랜드 북부지방에서 휴가 중에 우연히 접하게 된 동물에 대한 기록들을 정리한 책이다. 어두운 지하실에서 찾아낸 흥미로운 기록의 주인공은 피터 아마이젠하우펜이다. 아마이젠하우펜은 대학에서 교차, 돌연변이 및 기형의 유전 연구를 하던 중 윤리적으로 금지된 이식 수술이 발각되어 학교에서 퇴출(1932년) 되었다고 한다. 미국으로 이민을 떠난 교수는 소수의 협력자와 과학자들로 구성된 작은 팀과 함께 세계 오대륙을 여행한다. 그리고 그 결과물은 지하실에서 잠자다가 1980년 이 책의 저자들에 의해 발견되었다.



표지에 등장한 세르코피테쿠스 이카로코르누Cercopithecus Icarocornu를 본 첫 느낌은 어떤가? 원숭이처럼 생긴 동물이 날개를 펼치고 있는 것도 이상한데 머리에는 뿔이 달려있다. 이건 이 책이 담고 있는 신비하고 이상한 동물 이야기의 시작에 불과하다. 큰 날개를 가진 암컷 고양이의 뼈를 볼 수 있고, 호흡할 때마다 불과 연소가스를 내뿜는 피로파구스 카탈라나이Pirofagus Catalanae도 접할 수 있다. 그런데 신비한 동물들이라서 그런지 이름도 정말 길다.


p.15. 괴물, 즉 지배적이고 예측 가능한 진화론의 길에서 벗어난 매력적인 존재에 대한 호기심은 기본적으로 자연을 알고자 하는 노력으로 읽어야 한다.


처음 등장하는 동물부터 상상 속에서나 볼듯한 동물들이 연속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100년에 한번 모습을 보인다는 동물도 등장한다. 정말 신비한 동물 이야기는 날개 달린 동물이 하늘을 날아오르는 사진으로 끝을 맺는데 그 사진에는 '의심스러운 사진으로 간주함'이라는 문구가 함께 있다. 솔직히 이 책에 실린 모든 사진들이 의심스러운데. 피터 아마이젠하우펜의 마음을 공감할 수 있을 것 같다.


p.72. 동물의 모습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게 무엇인지, 과연 내가 무엇을 본 것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확실한 점은 내가 그걸 보았다는 것이다.


글보다는 사진과 그림을 많이 담고 있는 책이다. 그러니 직접 눈으로 보고 느끼는 것이 좋을 듯하다. 정말 이렇게 신비하고 이상한 동물들이 있었을까 하는 의구심이 떠나지 않지만 앞선 유전학을 연구하던 과학자가 아주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기록해 두지는 않았을 것 같다. 하지만 이상한 것은 사실이다. 이상하고 신비한 경험을 하고 싶다면 이 책에 등장하는 멋진? 동물들을 만나보길 바란다. 흥미와 재미를 넘어서는 엄청난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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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리스, 폴리스, 포타티스모스! 마르틴 베크 시리즈 6
마이 셰발.페르 발뢰 지음, 김명남 옮김 / 엘릭시르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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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의 작가 커플인 마르 셰발 페르 발뢰의 형사 소설 '미르틴 베크 시리즈'의 여섯 번째 작품《폴리스, 폴리스, 포타티스모스!》를 만나보았다. 북유럽 범죄소설의 선구자라고 불리는 작가들은 이번 작품에서도 스웨덴의 당시 사회상을 고스란히 녹여놓았다. 특히 이번 작품에서는 지난 작품들보다 더 자세하게 당시 스웨덴의 사회상을 들려주고 있다. 그런데 1970년대 스웨덴의 사회상이 여전히 오늘 우리의 사회상과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 너무나 씁쓸했다.


이전 작품들에서도 사회가 만들어 놓은 안타까운 삶을 만나볼 수 있었지만 이번 작품 속에 등장하는 범인의 상황은 너무나 안타까워 책을 덮고도 한참을 작품 속에 머물게 했다. 내가 범인의 상황이었다면 어땠을까? 범인의 상황이 전혀 과장된 상황이 아닌 누구나 맞닥뜨릴 수 있는 상황이라는 점이 더욱 소름 끼쳤다. 너무나 강한 현실감이 한참 동안 주위를 감싸고 있었다.


스웨덴 말을 알지 못하지만 제목이 경찰에 대한 부정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제목의 뜻은 '경찰,경찰,으깬 감자'이다. 즉 아무런 감정이 없는 뜻 없는 것이다. 당시 시위 현장에서 스웨덴 경찰을 조롱하던 문구는 '포타티스그리스potatisgris''돼지 같은 경찰'이라고 한다. 제목부터 사회 부조리를 위트 있게 꼬집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이 문구가 사건을 엄청난 깊이의 수렁으로 빠뜨리게 된다. 작가들의 사회주의 성향이 가장 강하게 표현되고 있는 책이다.


호텔 식당에서 회사 간부들과 식사를 하던 회장이 총을 맞고 사망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영향력 있는 인사의 죽음은 국가범죄수사국 살인 수사과 마르틴 베크 경감을 스톡홀름에서 말뫼로 출장 가게 만든다. 왜냐하면 죽은 인물이 겉으로는 청어 통조림을 수출하고 부동산 사업을 하였지만 아프리카 국가들에 무기를 밀매하는 비밀사업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국제적인 이해관계가 얽혀있으니 경찰 최고 수뇌부가 베크에게 직접 지시를 내린 것이다.


p.239. 더 근본적인 원인은 의지가 약하거나 사회에 잘 적응하지 못한 사람들을 지치게 만들어서 몰지각한 행동으로 내모는 대도시의 무자비한 논리, 사회 시스템 그 자체였다.


베크의 친구들은 여전히 개성 있는 캐릭터로 등장하고 베크도 여전히 무심한 듯 날카로운 수사를 보여준다. 그런데 이 소설은 범죄행위 자체가 아니라 그 원인된 사회 부조리를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다른 어떤 작품들보다 더 마음속에 오래 남을 것 같다. 마지막에 들려주고 있는 베크의 속마음에 너무나 공감할 수밖에 없는 책이다.


"엘릭시르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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