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한 행복

불안한 행복
김미원 지음 / 특별한서재 / 2021년 2월

P.241. 모두 저마다의 큰 바위를 지고 인생이란 험한 산을 오른다. 그런데 그 바위는 다시 굴러떨어지기에 정상에 올려놓는다 해도 무엇을 성취한 것은 아니다. 내가 지고 올라가고 있는 커다란 바위는 무엇일까 생각하며 산을 올랐다.

​문인들의 발자취를 찾는 여행을 즐기는 수필가 김미원의 행복론을 만나보았다. 행복이 무엇인지 행복한 삶이란 어떤 것인지 해답을 알려주지는 않지만 따뜻한 배려가 삶과 만나 행복에 이르는 길을 보여주고 있는듯하다. 계모임에 엄마대신 참석했던 어린소녀는 어느새 손녀의 재롱에 빠져드는 할머니가 되었다. 그리고 할머니가 들려주는 옛날 이야기같은 사람이야기를 들려주고있다. 부제'삶은 불안을 기억하며 행복해진다'에서 알 수있듯이 이야기는 과거 기억들을, 추억들을 최소한의 표현으로 담백하게 보여주고 있다.

<불안한 행복>이라는 제목이 우리들 삶을 역설적으로 표현하고 있어 흥미로웠는데 작가의 전작들(「즐거운 고통」「달콤한 슬픔」)의 제목도 패러독스하다. 물위에 만들어진 도시 베네치아가 패러독스하다고 하는 작가가 생각하는 진정한 행복은 어떤 것일까? 불안한 행복의 시작은 무엇일까? '행복幸福'후에 다가올 '불운不運'을 생각하니 불안하고,'죽음'을 생각하니 불안하다. 이야기는 엄마로 살아온 날들을 돌아보면서 자신의 뒤를 따라오고 있는 엄마가된 딸에게 들려주듯 따뜻하고 또 여성으로 살아온 날들을 돌아보며 섬세하게 보여주고 있어서 좋다.

따뜻하고 섬세하게 '딸'의 행복을 이야기하던 책은 엄마의 '죽음'을 이야기한다. 우리 인생은 죽음을 향해 20대에는 20㎞,30대에는 30㎞로, 50대에는 50㎞의 속도로 다가가는 것이라고들 한다. 그런 죽음에 대한 생각을 솔직하게 그려내고 있다. 인생은 유한하기에 가치있고 의미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들 삶이 무한하다면 행복할까? 죽음에 대한 생각은 '사랑'으로 이어진다. 작가가 딸과 아들에게 쓴 편지는 주체할 수 없는 사랑이 그대로 보인다. 언젠간 나도 아이에게 그런 편지를 남기고 싶어졌다.

지친 날들을 따뜻하게 감싸줄수있는, 어두운 과거보다는 밝은 미래를 생각하게 해주는 감성적인 책이다. 특히 불우한 삶을 살았지만 불후不朽한 예술가들의 삶을 들려주며 그들의 삶을 통해서 우리들 삶의 의미를 되새기게 해준다. 또 유명 작품 속에 등장하는 삶의 모습을 통해서 우리들에게 삶의 가치를 돌아보게 해준다. 이야기 속에 또 다른 이야기가 담겨있어 마지막 페이지까지 재미나고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특별한서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았습니다.

엔드 오브 타임

엔드 오브 타임 - 브라이언 그린이 말하는 세상의 시작과 진화, 그리고 끝
브라이언 그린 지음, 박병철 옮김 / 와이즈베리 / 2021년 2월

p.411. 우주 만물은 먼지에서 태어나 먼지가 되어 사라진다. 초기의 먼지는 엔트로피 2단계 과정을 거치면서 질서 정연한 천체를 만들 수 있었지만, 마지막 단계의 먼지는 너무 엷게 퍼져 있어서 황량한 공간을 정처 없이 표류할 뿐이다. 물리학자들은 이 시기를 '시간의 끝end of time'에 비유하곤 한다.

컬럼비아대학교 물리학과 및 수학과 교수인 브라이언 그린이 들려주는 우주의 시작과 끝을 만나보았다. 물리학자가 들려주는 세상의 시작과 끝이라니 책장을 넘기기 전부터 긴장했지만 '서문'에 담긴 "가능한 한 일상생활 속의 유사한 사례와 비유를 통해 이야기를 끌어갈 것"이라는 저자의 말에 용기​를 내어 지구 종말을 향하는 우주선에 승선해보았다.

p.42. 이 법칙(열역학 제2법칙)을 일상적인 용어로 풀어쓰면 다음과 같다. "제아무리 기발한 방법을 동원해도 폐기물이 양산되는 것을 막을 방법은 없다."

<엔드 오브 타임>이라는 우주선에는 대행스럽게도 너무나 친절한 선장이 있다. 어린 시절 가스오븐 사고를 분자 확산의 예로 사용할 만큼 솔직하고 재미난 인물이 우주의 탄생부터 천천히 설명해 준다. 물리학 책을 읽고 있는데 자꾸만 다음 페이지를 읽고 싶어지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한다. 아마도 어려운 이론보다는 주변에서 접할 수 있는 이야기를 통해서 설명하고 있는 까닭인듯하다. 담고 있는 내용은 정말 광범위하고 어려운 물리학 이야기이다. 하지만 마치 우주의 일생을 대하드라마를 통해서 만나고 있는 듯해서 쉽고 재미나게 접할 수 있었다.

시작은 빅뱅으로 탄생하게 된 우주 이야기이다. 그러고는 우리 인류의 시작을, 생명체의 탄생에 대해 들려준다. 별에서 생명체를 거쳐 인식, 언어, 이야기, 예술 등의 인문학적 이야기도 가미한다. 물리학자가 들려주는 인문학 이야기는 결국은 입자에 닿아있었고, 수학자가 들려주는 마음 이야기는 방정식에 닿아 있었다. 하지만 입자와 방정식으로 만나보는 언어, 예술 이야기는 정말 특별했다. 전혀 생각해 보지 않았던 방향으로 바라보게 된 세상 은 또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 책에 담긴 다양한 이야기들의 바탕은 엔트로피와 진화이다. 두 가지를 바탕으로 작은 입자가 별을 만들어내고 생명체를 탄생시키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입자물리학, 천체물리학 그리고 우주론이 안내하고 있다. 현재 다수의 물리학자들의 지지를 받고 있는 인플레이션 우주론과 어쩌면 대세가 될지도 모르는 순환 우주론도 만나볼 수 있다. 물론 가볍게 딱 재미있을 정도만 알려준다.

과학과 인문학을, 별과 인간의 마음을 넘나들며 들려주는 이야기는 저자가 왜 뛰어난 과학전도사인지를 알 수 있게 해준다. 어려운 방정식 등을 담은'후주'만 60 페이지에 이르는 두꺼운 책이지만 재미나게 만날 수 있었다. 빅뱅에서 시작한 이야기는 베토벤을 지나 미래로 향한다. 우주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그 속에 살고 있는 생명체의 진화는 어디까지일까? 생각을 느낀다는 표현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 너무나 많은 질문과 답을 통해서 세상의 시작과 끝을 만나볼 수 있는 즐거운 시간을 가져보길 바란다.

"와이즈베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집행관들 (가제본)

집행관들
조완선 지음 / 다산책방 / 2021년 2월

정말 정의와 멀어진 인물들이 법망을 피해 또는 정치적인 협상으로 사회에 복귀하고는 한다. 그럴 때면 가끔씩 그들에게는 법이 아니라 정의라는 또 다른 판결이 필요하다고 상상해보고는 했다. 정의를 구현하는 인물들에 의해 부정과 비리, 부패는 깨끗하게 정리된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다면 어떤 기분일까? 공정한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다면 조금은 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상상을 이야기로 만들고 현실 문제들을 가미시켜 정말 순삭 할 수밖에 없었던 소설 <집행관들>을 만나보았다. 조완선이라는 작가의 작품은 처음 접해보았지만 이제는 계속 만나게 될 것 같다. 이 작품을 읽은 이들이라면 사이다 같은 속 시원한 뚫림을 맛 보기 위해 다시 작가의 작품을 찾게 될 것이다.

이야기의 흐름은 빠르다. 보통의 속도는 무시해도 좋을 정도로 빠르게 전개되는 까닭에 책을 손에서 놓는다는 생각은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정말 순식간에 끝을 본 소설이다. 빠른 전개만큼이나 다양한 성격으로 무장한 등장인물들이 이야기를 입체적으로 만든다. 빠르고 입체적인 흐름은 이야기를 풍부하게 하고 다음 편을 기대하게 한다. 정말 재미있다. 흥미로운 '정의의 재판'을 볼 수 있어서 너무나 시원했다. 마치 나 자신이 집행관이 된듯한 속 시원함은 제발 현실에서도 소설 속 '집행관들'을 만날 수 있기를 바라게 한다. 물론 법에 의한 판결이 아니기에 긴장감은 더욱더 고조된다. '정의의 집행'이 하나, 둘 쌓이면서 기득권의 반격도 시작된다. 정의를 집행하는 자들은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

이야기는 최주호 교수가 기억에서 사라진 고등학교 동창 허동석에게 자신의 칼럼과 관련된 의뢰를 받으면서 시작된다. 허 감독의 의뢰는 누군가의 죽음으로 이어지고 최 교수는 사라진 허 감독의 흔적을 찾아 나선다. 그리고 결국은 자신도 허 감독이 몸담은 이름도 없는 조직에 가담하게 된다. 정재계의 쓰레기 같은 인간들을 처리하는 집행관들의 활약이 놀랍다. 하지만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 인지도 모르겠다. 전직 군인, 경찰, 검사, 기자 그리고 법의학자 등 전문가로 구성되었으니 말이다. '집행관들'은 증거도 하나 남기지 않는다. 네 번의 집행에도 CCTV는 그들의 작은 흔적도 잡아내지 못했다.

하지만 아주 엉뚱한 곳에서 꼬리를 밟혀서 집행관들은 도피 생활을 시작한다. 그리고 여기서부터 이야기의 중심은 '집행관'에서 '심판관'으로 넘어간다. 정의를 실행하는 집행관들에게는  정의 실현의 대상을 정해주는 심판관이 있다. 최 교수는 '다르마'라 불리는 심판관의 정체를 알아내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결국 심판관 다르마의 정체를 알게 된다. 여기서부터는 반전이 시작된다. 그런데 이쯤 되면 속도를 좀 늦출 만도 한데 이 소설은 끝까지 숨 가쁘게 달린다. 그러고는 '집행은 멈추지 않는다'라는 말로 끝을 맺는다. 죄 지은 자들에게는 경고가 될 것이고, 속 시원한 통쾌함을 원하는 이들에게는 약속이 될 것이다. 모두가 꿈꾸지만 누구도 실행할 수는 없었던 꿈을 집행관들을 통해 실현한 정말 멋진 책이다.

"다산책방으로부터 가제본을 제공 받았습니다."

365일 (가제본)

365일 ㅣ 365일 1
블란카 리핀스카 지음, 심연희 옮김 / 다산책방 / 2021년 2월

2020년 전 세계 넷플릭스 시청 순위 1위를 차지했던 폴란드의 로맨스 영화'365일'의 원작 소설<365일>을 만나보았다. 폴란드의 작가 블랑카 리핀스키의 장편소설이다. 영화가 너무나 논란이 심했던 탓에 어느 정도는 선정적일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평범한 로맨스 소설에서도 가끔 디테일한 정사 장면이 묘사되고는 한다. 특히 마피아와 같은 갱들이 등장하는 블록버스터라면 어느 정도는 감안하여야 한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 소설에는 성행위 장면이 많이 또 너무나 자세하게 묘사되고 있다. 이 소설은 19금이 되어야 할 것 같다.

이 소설의 남자 주인공 돈 마시모는 시칠리아 마피아 가문의 가주(카포파미글리아)다. '대부'의 돈 비토 꼴리오네(말론 브란도)를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사고로 사경을 헤맬 때 꿈속에서 본 환상의 여인을 몇 년째 못 잊고 있던 마시모는 우연히 라우라를 마주치게 된다. 자신의 저택의 벽면에 걸어놓은 초상화 속 꿈속 연인을 현실에서 만난 것이다. 그렇게 로맨스는 시작된다. 하지만 아무리 마피아 보스라도 꺼릴법한 방법으로 라우라를 차지하려 한다. 납치. 로맨스 장편소설의 시작이 갑자기 블록버스터로 변하는 순간이다.

납치라는 극단적인 방법으로 '사랑'을 얻으려 한다는 설정도 흥미로운데 1년 즉 365일을 자신과 함께 생활해보고 선택하라는 건 흥미를 넘어 이상하다. 그냥 납치라는 범죄 행위를 미화하려는 수작 같다. 그런데 엉뚱한 수작을 부리는 마시모의 외모가 탁월하다. 거기에 전용기에, 대형 보트까지 있는 상당한 재력가이다. 여기에서 소설은 다시 납치 블록버스터에서 로맨스 소설로 바뀐다.

작가가 많은 분량을 할애한 성적인 장면을 제외하면 지극히 평범한 로맨스 소설이다. 남녀 주인공의 밀땅이 주가 되는. 그런데 이 소설은 밀땅을 성행위 자체를 두고 벌인다. 물론 성행위가 사랑의 표현이니만큼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성행위 장면이 너무 자주 등장하고 디테일하게 묘사되고 있어서 영화만큼이나 논란이 될 것 같다. 스토리 흐름은 단순하고 평면적이다. 그래서인지 결말에 등장한 다음 편 예고가 반가웠다. 전체적인 이야기의 도입부 정도로 생각한다면 될 것 같다. 물론 도입부치고는 너무나 길지만.

다산책방으로부터 가제본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두 번째 엔딩

두 번째 엔딩 (양장)
김려령 외 지음 / 창비 / 2021년 2월

미래의 인류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 과학의 발전으로 삶의 방식은 커다란 변화를 가져올 것 같다. 하지만 삶을 대하는 우리들의 생각은 그리 큰 변화는 없을 것 같다. 현재의 우리가 수백 년 전의 고전을 삶의 지표로 살고 있듯이 미래의 우리도 그럴 것이다. 각기 다른 색깔을 가진 여덟 편의 단편 작품을 만나보았다. 정식 출간 전의 가제본으로 만나보았는데 여덟 편의 베스트셀러의 외전을 모은 <두 번째 엔딩>이다.

외전(外傳) [명사]

1. 본전(本傳)에 빠진 부분을 따로 적은 전기

2. 정사(正史) 이외의 전기

스핀 오프(spin-off)

기존의 영화, 드라마, 게임 따위에서 등장인물이나 설정을 가져와 새로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것. 또는 그런 작품.

외전이 되었든 스핀 오프가 되었든 이 단편집에 실린 작품들은 그 자체로도 훌륭한 이야기이다. 바탕이 된 작품을 읽지 않고 만나도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물론 전작을 읽고 만나는 것과 처음 만나는 것은 느낌이 많이 다를 수 있겠지만 그 느낌이 또 새로운 감동을 만들어 낼 것이다.

<두 번째 엔딩>에 담긴 작품들의 공통점은 우리 아이들의 성장에 관한 이야기라는 것이다. 아마도 그래서 두 번째 엔딩도 가능한지도 모르겠다. 아이들이기에, 넘어지고 또 일어나기를 반복하는 아이들이기에 다음이 있고 미래가 있는 것이다. 물론 어른들도 지쳤다는 핑계로 그 자리에 안주하지 않는다면 두 번째 엔딩을 충분히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베스트셀러였던 작품들의 모음인지라 영화로 만나 본 작품(우아한 거짓말)도 있고, 연극으로 만나 본 작품(아몬드)도 있다. 원작이 주는 감동을 따라올 수는 없었지만 그 나름의 울림을 느낄 수 있었다. 이번에 만나게 된 짧은 작품들도 원작들이 주었던 감동과는 다른 또 다른 울림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니 원작을 꼭 만나보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여덟 편의 단편 작품만이 주는 매력은 충분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차별과 모순 속에서 순수라는 연약한 무기로 오늘을 버티고 있을 아이들의 아픔과 슬픔을 떠올리게 하는 작품들이다. '왕따'라는 사회 문제로 동생을 잃은 언니(언니의 무게)의 아픔도 등장하고 어두운 미래를 사는 소년(초보 조사관 분투기)의 이야기도 만날 수 있다. 탈북을 앞에 둔 소녀(보통의 꿈)의 꿈도, 대학을 시원하게 버려버린 당찬 아이들(나는 농부 김광수다)의 꿈도, 그리고 어른들의 잘못된 폭력으로 꿈을 접어야 했던 소녀(서브)도 만날 수 있었다.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차별에 자신 있게 부딪치는 소년(모니터)도, 익인이라는 차별을 안고 살아야 하는 또 다른 인류(초원조의 아이에게)의 이야기도 접할 수 있었다. 짧은 이야기 속에 그 많은 생각들을 담아낸 작가들의 필력이 놀라울 뿐이다.

'아몬드'라는 단어가 가진 또 다른 의미를 알게 해준 작품「아몬드」의 또 다른 이야기 <상자 속의 남자>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준다. 누군가의 생명을 구하고 자신은 오랜 시간 병원에 누워있는 형을 보며 무관심이라는 상자 안에 스스로 갇힌 남자가 아몬드의 주인공 소년에게 질문을 받는다. 그러고는 자신의 형에게 똑같은 질문을 던진다. 답이 없는 질문을. 남을 위한 선행이 나의 불행이 된다면 누군가를 위한 선행이 가능할까?

p.161. 정말 궁금한 게 있어요. 그날로 다시 돌아간다면 무언가 달라졌을까요.

"창비로부터 가제본을 제공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