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중의 아이
츠지 히토나리 지음, 양윤옥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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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쿠니 가오리와 공동 집필한 『냉정과 열정 사이』로 유명한 일본 문단의 중견 작가 츠지 히토나리의 신작 《한밤중의 아이》를 만나보았다. 스바루 문학상, 페미나 문학상, 아쿠타가와상 등을 수상한 츠지 히토나리는 영화감독과 뮤지션으로도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p.150. 나쁜 놈을 쏴 죽이는 것이라고? 나쁜 놈이란 누구일까. 나를 업신여기는 놈들? 가장 먼저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자신의 아빠와 엄마였다.


기동대에서 8년을 근무한 끝에 다시 첫 근무지 나카스 파출소로 돌아온 경찰 히비키는 '잠 못 드는 파출소'에서 뜻밖의 인물을 스치게 된다. 그리고 그를 수소문하며 찾아다닌다. 그렇게 이야기는 히비키의 회상으로 시작한다. 후쿠오카시 도심부에 자리한 배 모양의 작은 섬 나카스의 환락가가 배경인데 주인공 렌지의 나이는 다섯 살이다. 어린아이에서 소년으로 그리고 스무 살 청년이 되는 렌지의 이야기이다. 그리고 그 아이를 지켜주는 지역 '어른'들의 이야기이다. 


안타까운 사연으로 호적이 없어서 초등학교도 다니지 못하는 렌지를 돕기 위해 나선 경찰 히비키는 '국가'를 대변하는 듯하다. 역시 국가나 기관은 절차나 법에 막혀서 어린아이 렌지를 도와주지 못한다. 적극적으로 도울 의지를 보여주지 못한다. 그렇게 호스트와 호스티스 아빠, 엄마를 둔 렌지를 국가라는 커다란 사회는 방치한다. 


그런 방치와 외면을 따뜻하게 감싸준 것은 작은 사회 나스카 환락가 '어른'들이다. 어린아이에게 따뜻한 밥을 주고 정을 준다. 그 중심에는 지역 사회를 하나로 뭉치게 하는 마을 축제가 있다. 관광객에게는 축제이지만 이들에게는 신을 모시는 '제사'인 야마카사 축제는 망가져버려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나스카 환락가의 질서를 잡아준다. 그리고 이 축제는 렌지 삶의 중심이 된다.


'한밤중의 아이'라 불리는 렌지는 어떻게 성장해 나갈까? 책장을 넘기기가 두려울 정도로 아슬아슬한 이야기는 결국 총을 등장시킨다. 그런데 무언가 이상하다. 총의 등장에도 긴장감이 고조되지 않는다. 아마도 나스카를 자신의 국가로 선포한 렌지의 순수함이 긴장감을 해소하고 있는 듯하다. 가뜩이나 위태로웠던 소년 렌지의 삶은 엄마 아카네의 전남편 후미아키의 등장으로 완전히 뒤틀리게 된다. 소년 렌지의 뒤틀린 삶을 지켜준 것은 또 다른 나스카의 아이 히사나이다. 


학교 교육을 받지 않은 렌지가 선택할 수 있는 삶은 어떤 길이 있을까? 열여섯의 렌지는 호스트가 된다. 그런데 렌지의 어린 시절의 모습을 알고 있어서일까. 호스트 렌지가 외설적으로 다가서지는 않는다. 몇 번의 반전이 보이는데 첫 번째 반전이나 두 번째 반전은 예상이 가능했던지라 그렇게 놀랍지도 충격적이지도 않다. 그냥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하지만 스무 살 렌지에게 지역 사회가 그리고 겐타와 히사나가 보여준 세 번째 반전은 너무나 따뜻했다. 이런 따스함이 현실에도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학대받고 방치된 렌지가 오늘도 뉴스에 등장한다. 우리 사회에도 '한밤중의 아이'를 지켜줄 수 있는 '어른'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무거운 반성을 마주하게 하는 의미 있는 책이다.



"소담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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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의 박물학
다이앤 애커먼 지음, 백영미 옮김 / 작가정신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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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학(natural history) : 넓은 의미로는 동물·식물·광물 등 자연물의 종류·성질·분포·생태(生態) 등을 연구하는 학문. 좁은 뜻으로는 동물학·식물학·광물학·지질학의 총칭이다.박물지(博物誌)·자연사(自然史)·자연지(自然誌)라고도 번역된다.


《감각의 박물학》이라는 제목이 낯설어 검색으로 읽기를 시작한 이 책은 2004년 첫 출간된 책이다. 거의 20년 전의 이론이 오늘에 적용될 수 있을까? 물론 가능하기 때문에 작가정신에서 멋진 표지와 함께 출판했을 것이다. 하지만 새로운 이론과 개념들이 하루가 다르게 등장하고 있는 요즘 굳이 '왜?'라는 의구심을 품은 체 다이엔 애커먼을 만나보았다.


책에 조금씩 빠져들면서 품었던 의구심은 해결되었지만 새로운 의구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20여 년 전의 작품이지만 감각이라는 '느낌'을 동·식물의 영역에서 과학, 문학, 철학 그리고 예술까지 정말 많은 분야에 담긴 느낌들을 너무나 잘 버무려서 정말 넓은 감각 이야기로 들려주고 있다. 책을 조금만 읽어도 '왜? 오래전 책을 다시 출판했을까'에 대한 의구심은 사라질 것이다.


후각, 청각, 시각 등의 감각을 다루는 책이라면 조금은 과학이 들어가고 그렇게 되면 조금은 무미건조하게 될 것이다. 실제로 이 책에도 변연계 작동 등을 비롯한 과학 이야기가 담겨있다. 하지만 이 책에서 만난 글과 문장은 마치 시詩처럼 읽힌다. 감각을 설명하고 있어서일까? 무척이나 감각적이고 아름답다. 저자 다이앤 애커먼 '자연의 언어를 문학의 언어로 번역하는'작가라는 찬사를 받는 이유를 알 수 있는 책이다.


p.299. 혀에 감도는 맛은 저 험한 도덕의 땅을 건너게 해주고, 공포를 입맛에 맞는 것으로 만들며, 이성으로는 합리화할 수 없는 모순을 달콤한 유혹의 정글 속으로 녹아들게 한다.


감각이라는 평범한 주제를 전혀 지루하지 않게 풀어낸 저자의 필력은 '후각'에 대한 방대한 이야기를 시작으로 만날 수 있다. 책 속에 담긴 감각 이야기 순서는 후각, 촉각, 미각, 청각, 시각 그리고 공감각 순이다. 각 감각에 담긴 이야기는 대부분 비슷한 모습으로 구성되어 있다. 저자의 경험이 담겨있고, 문학 작품 속 느낌들도 많이 담겨있다. 거기에 철학적 사유가 더해지면서 이야기의 깊이는 깊어지고, 단어의 어원 등 인문학적 접근을 통해서 이야기의 폭은 넓어진다.


인간이 가진 감각 중에 처음으로 선택한 것이 왜 후각일까? 시각을 제일 먼저 선택했어야 하지 않을까? 개인의 작은 감각이 지구를 넘어 우주로 나가는 멋진 이야기를 만나면 많은 의문들은 쉽게 풀리게 될 것이다. 읽는 내내 이 책의 정체성을 의심하게 될지도 모른다. 굳이 과학인지 문학인지 구분하지 않고 접한다면 충분히 의미 있는 시간을 즐겁게 보낼 수 있을 것이다. 



"작가정신으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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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300년 - 영감은 어디서 싹트고 도시에 어떻게 스며들었나
이상현 지음 / 효형출판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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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300년》을 통해서 명지대학교 이상현 교수가 들려주는 재미나고 흥미로운 건축 이야기를 만나본다. 인간에게 안전한 쉼터를 제공해주던 건축물은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저자는 에필로그 '부의 집중, 건축을 뒤흔들다.'에서 들려주듯 건축의 흐름을 부富의 흐름과 연관지어 설명하고 있다. 인과관계를 증명할 수는 없겠지만 어느 정도의 상관관계는 인정할 수 있을 것 같다. 화려한 장식은 어떤 부자들이 좋아했을까? 부의 흐름 속에서 장식의 흐름을 짚어보고 그것을 통해서 건축 양식의 흐름도 볼 수 있어서 좋다.

1700년대 런던의 중심가에 등장한 '낯선 건물'에 대한 이야기로 책의 본문은 시작된다. 존 손이라는 건축가가 설계한 '영란 은행'의 증축 부분은 당시로서는 획기적이었다. 장식은 찾아볼 수 없고 벽면이 단조로워보이는 지금으로서는 전혀 획기적이지 않은 건물을 설계한 존 손을 저자는 '소극적 혁명주의' 건축가라 소개한다. 모더니즘을 시작으로 포스트모더니즘을 거쳐 해체주의로 마무리되는 《건축, 300년》의 건축 여행은 역사와 철학 그리고 다양한 인문학적 이야기들이 함께 하고 있어서 순식간에 에필로그를 만나게 되는 매력적인 책이다.

오스트리아 황제가 '혐오'해 건물 외관의 변경을 지시했고 완공후에는 '빈의 맨홀'이라는 혹평을 들은 '로스 하우스'는 어떤 모습일까? 아돌프 로스는 왜 장식이 죄악이라고 했을까? 산업혁명으로 새로운 세력으로 둥장한 '부르주아'들에게는 자신들만의 미적 가치와 가치관이 필요했다. 그런 사회적 배경이 건축 양식의 흐름에도 영향을 미쳤다. 저자는 그 영향을 많은 사진 자료들과 함께 다양한 건축 양식과 특별한 건축가들을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다. 유명한 다수의 건축가들과 그들의 작품을 만날 수 있어서 좋았지만 특히 해체주의 작품들이 좋았다. 프랭크 게리보다는 자하 하디드의 작품이 더 좋게 느껴지는 까닭은 무엇일까?

건축사에 의미 있는 건축가들을 소개하는 섹션을 따로 보여주고 있어서 이야기를 더욱 풍성하게 해주고 있다. 철학가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과 칼 포퍼의 일화를 흥미롭게 만날 수 있는 건축책이 있을까? 가끔 예술과 연결한 건축책은 만나본 적이 있지만 철학과 연결한 건축책은 처음인듯하다. 전문적은 건축사를 알고 싶다면 이 책은 2%로 부족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인문학적 접근을 통해 건축사를 만나보고 싶다면 바로 이 책을 열어보길 바란다. 


유엔 본부를 설계한 사람이 누군지 궁금하지 않았다. 그만큼 유엔본부 건물은 무미건조한 건축물이다. 하지만 설계한 사람을 알게되고 왜?라는 의문이 생겼다. 다양한 분야에 많은 생각을 끄집어내는 생각하는 책이다.



"효형출판으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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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횡단하는 호모 픽투스의 모험 - 인류의 저주이자 축복, 질병이자 치료제, 숙명이자 구원, 인간의 스토리텔링 본성을 찾아서
조너선 갓셜 지음, 노승영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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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98. "이야기꾼이 세상을 다스린다."


p.254. 무엇보다 과학에 더욱 매진해야 한다. 이야기에 맞서는 것이야말로 과학의 존재 이유기 때문이다.


호모 사피엔스를 비롯해서 우리 인류의 특징을 칭하는 말들은 참 많다. 이번에 만난 《이야기를 횡단하는 호모 픽투스의 모험》의 호모 픽투스(Homo Fictus) '이야기하는 인간'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서사. 얼마 전 이야기 즉 서사의 중요성을 보여준 드라마가 있었다. 물론 허구 세상 속에서 '법은 완벽하지 않습니다.'라는 광고 카피와 동정심 유발하는 광고 영상으로 그룹 총수의 구속 수사를 막고 보석 허가를 맡게 한다는 이야기이다. 공감이 동정심을 자극하고 결국 마음이 움직여서 여론이 형성된 것이다. 물론 픽션이지만 현실 세계에서도 얼마든지 가능할 것 같다. 특히 저자 조너선 갓설의 글은 의심을 확신으로 바꾸고 있다.


얼마 전 읽은 책『군중의 망상』에서는 인간이 왜 서사, 즉 이야기를 좋아하는지, 또 우리는 왜 드라마에 쉽게 빠지게 되는지를 뇌과학의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보여주고 있다. 합리적이라기보다는 합리화에 더 적응한 인간의 뇌는 이성적인 판단보다는 감성에 의한 판단에 더 빨리 반응한다고 한다. 이 책에서도 설득을 하고자 한다면 합리화보다는 극화가 대체로 유리하다고 말하고 있다. 요점을 '이해시키는 것'보다 요점을 '느끼도록'해야 한다고도 이야기하고 있다. 


영화나 소설 속 이야기에 어떤 메시지를 담고 또 그 메시지를 느끼고 그 메시지가 사회에 선한 영향을 미친다면 저자가 이 책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점점 더 좌우 대립은 심화돼가고 대화나 타협은 요원한 것 같아서 무척이나 답답했는데 저자가 바라보는 미국의 대립은 더 심한 것 같아서 더욱 공감하면서 책장을 넘길 수 있었다. 플라톤의 철학을 조금 더 생생한 예시들과 함께 접할 수 있어서 좋았고 끝까지 플라톤 철학과의 접점을 설명하는 저자의 친절함이 좋았다.


이야기에 잘 빠져드는 특성을 가졌다는 인간이 왜 상대방의 이야기에는, 나와 생각이 조금 아주 조금 다른 이들의 이야기에는 귀 기울이지 않을까? 그 원인을 알고 싶다면 아니 느끼고 싶다면 이 책을 만나보기 바란다. 주인공의 투쟁과 도덕적 갈등이라는 보편 문법이 만들어낸 재미난 이야기가 어떻게 역사를 지배하게 되었는지 흥미로운 이야기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위즈덤하우스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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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력하지만 하고 싶은 것은 많습니다 - 지금 멈춰 있다는 것은 곧 나아갈 거라는 말이니까
양경민(글토크) 지음 / 빅피시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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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부터 흥미로운 에세이《무기력하지만 하고 싶은 것은 많습니다》를 만나본다. 유튜브'글토크'채널을 운영하고 있는 양경민 작가의 두 번째 에세이이다. 무기력은 시시때때로 찾아온다. 특히 밥 먹을 시간도 없이 바쁠 때를 피해서 여유와 함께 찾아온다. 그래서일까? 무기력이 찾아왔을 때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을 때가 많았는데 저자는 무기력한데 하고 싶은 것들이 많다고 적고 있다. 아마도 무기력을 벗어나기 위해 또 무기력과 만나지 않기 위해 '하고 싶은 것'이 많기를 바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담백한 글들과 잔잔한 문장의 흐름이 아주 조금씩 지친 마음을 치유해 주는 듯하다. 삶에 지친 이들에게 혼자가 아니라는 우리가 있다는 공감을 보여주고 있는 아주 특별한 책이다. 세상에는 그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있다는 것을 들려주고 있는 고마운 책이다. 거기에 '마음 방어력 높이기'라는 멋진 코너를 별도로 두어 마음의 보호벽을 한 단씩 단단하게 쌓아갈 수 있는 길을 보여주고 있다. 


자존감을 지키고 자신감을 키울 수 있는 '하고 싶은 것 많은 '삶을 응원해 주고 있다. 무기력이 찾아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그와는 친하게 지내지 말기를 권하며 지친 마음에 에너지를 불어 넣어주는 글들을 담고 있다. 시간의 소중함을, 우리 삶의 소중함을 생각하게 해주는 의미 있는 글들이 계속해서 '밑줄 쫙!'을 외치는 조용하지만 큰 울림이 있는 아름다운 책이다.



"빅피시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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