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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말 벼리 ㅣ 샘터어린이문고 68
홍종의 지음, 이형진 그림 / 샘터사 / 2022년 8월
평점 :
대학시절, 선배들을 따라 우연히 경마장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구경을 가본 적이 있다. 말 그대로 구경이라 그 안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지는 알 수는 없었지만, 기수와 함께 호흡을 맞추며 한 몸처럼 달려가는 말들이 나는 그저 용감해 보였다. 그리고 그렇게 되기까지 둘 사이에 얼마나 많은 교감과 연습이 이루어졌을까 하는 마음도 들었다.
그러다 문득, 저 말들이 자신의 임무를 마치면 어떻게 될까? 빨리 달릴 수 없게 되면 저 말들은 어디로 가는 걸까? 이런저런 생각들이 들었다. 오랫동안 교감하던 기수와 헤어질 때 말은 어떤 생각을 할까 하며 걱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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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볕이 눈부신 날이었어. 우연히 말 한 마리를 보았어. 나는 내 눈을 자꾸만 비볐어. 믿을 수 없겠지만 글쎄 초록말이었어. 짙은 암갈색 털에 햇살이 스며들어 초록빛이었어. 이제부터 너는 초록말이야. 나의 희망이야.' (P.44)
벼리는 자신을 초록말이라 불러주는 기수 아저씨와 교감했다. 그리고 그들은 경주에서 일등을 했다. 벼리는 대표 말이 되었고, 경주의 처음부터 끝까지 선두를 달리는 선행마로 뛰었다. 그러나 소나기가 지난 어느 날, 한참을 달리던 태풍이가 벼리의 앞을 갑자기 막아서버리며, 모든 것이 멈추고 말았다. 기수 아저씨는 날개를 단 듯 하늘로 붕 떠올랐다. 벼리는 그대로 울보가 되었다.
그렇게 모든 것을 잃고 다시는 달릴 수 없을 것 같은 벼리에겐 친구들이 있었다. 벼리를 달리게 하고자 자신을 일부러 내려놓는 친구도 있었다. 벼리의 가치를 인정해 주고 마음을 알아주는 마필관리사 아저씨도 있었다. 하지만 벼리에겐 기수 아저씨가 없었다. 이대로 벼리는 영원히 달릴 수 없는 것일까? 벼리는 어떤 길을 가게 될까?
벼리를 보며, 그동안 좌절했던 순간들이 겹쳐졌다. 사람들은 누구나 좌절을 하고, 실패를 한다. 그리곤 다시는 나서지 못할 것처럼, 시작하지 못할 것처럼 주저앉아 버리기도 한다. 그러나 나를 격려하고 믿어주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그들이 내밀어 주는 따뜻한 손에, 할 수 있다며 마주치는 눈빛에 우리는 다시 일어나 달릴 수 있다.
가끔은 다시 시작해도 원위치로 돌아오기도 하고, 어쩌면 다시 시작하기 전보다 더욱 안 좋은 상황으로 흐르기도 한다. 하지만, 나를 아껴주는 이들의 응원과 나의 다짐이 함께하면, 최소한 후회 없는 결정과 도전은 해볼 수 있다. 그리고 미련을 떠나보낼 수 있다. 최선을 다했기 때문이다.
벼리의 새 도전에도 벼리를 응원하는 이들의 노력이 함께했다. 미필 관리사 아저씨는 벼리에게 분명 좋은 말이라고 믿어주었고, 친구인 불화살과 수선화는 벼리를 걱정하고 벼리의 마음을 알아주었다. 벼리는 조금씩 얼어버린 자신의 마음을 녹이며, 마음을 열어가기 시작했다.
비록 1등이 아닐지라도,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지라도 그들의 응원으로 벼리는 움직 일 수 있었다. 그때 그 순간으로 돌아갈 수는 없겠지만, 벼리는 조금씩 달라지고, 또 한걸음 앞으로 내디뎌 나아간 것이다.
벼리가 다시 달린 경주에서 1등을 하지 못하자 조교사 아저씨는 1등만이 중요하다고 했다. 그래서 벼리가 필요 없다고 했다. 하지만 그것은 틀렸다. 가장 중요한 것은 벼리의 변화, 그리고 한 걸음이다. 1등이 아니면 가치가 없다는 사람들의 욕심은 벼리를 향한 조교사의 말, 그것과 무척 닮아있었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이 내 인생의 끝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되는 순간! 생각지도 못한 또 다른 기회를 맞이하기도 한다. 벼리도 벼리에게 주어진 기회가 행복으로 이어질 수 있을까? 벼리의 차가워진 마음이 녹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림에서 볼 수 있던 벼리의 역동적인 모습이 벼리의 행복을 향한 또 다른 발걸음이길, 만나야 할 이는 꼭 만난다는 이야기처럼 벼리가 보고 싶던 사람을, 초록별을 꼭 만날 수 있기를 소망한다.
🌿위 리뷰는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