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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요 - 선택적 함구증을 가졌던 쌍둥이 자매의 작은 기록들
윤여진.윤여주 지음 / 수오서재 / 2022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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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스스로 가면을 쓴 채 일상을 살아갔던 나. 거기에서 오는 안타까움과 좌절은 그대로 내가 겪는 고통이 되었다. 나다운 내 모습으로 살아가는 일은 어려웠다. 또래 아이들에 비해 말을 하지 않는 만큼 머릿속은 더 많은 생각으로 가득 찼다. (P.18 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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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외로운 얼음 소녀였다. 집만 벗어나면 얼굴을 포함한 온몸이 굳어버리는 기분이었다. (중략) 세상의 모든 것이 불편했다. 나를 쳐다보는 다른 사람의 시선이 싫었고, 말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 겁났다. 예상치 못한 일들이 펼쳐지는 것이 두려웠다. (P.20 여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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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7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집이 아닌 곳에선 침묵하던 쌍둥이 자매가 있었다. 말을 할 수가 없었고, 하고 싶지 않았다고 한다. 정확히는 해야 한다는 사실이 두려웠으리라. 자신이 만든 울타리 안에서 살아가는 선택적 함구증은 알 속에 갇힌 듯, 늘 소외감과 외로움을 느낀다고 한다. 그나마 쌍둥이 어서 버텼던 걸까? 그 길고 긴 시간 동안 낯선 이들의 시선과 관심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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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의 모순. 아무도 모르는 곳에 숨고 싶다가도 모두와 함께 뛰어놀고 싶었다. (P.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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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하지 않은 나의 모습이 나의 잘못 같았고, 날 보는 눈빛들로부터 그저 숨고 싶었다. (P.81)
선택적 함구증은 아니지만, 잘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낯선 것에 대한 두려움, 강한 불안, 다른 이들의 시선과 주목에 힘들어한다는 점 등을 충분히 느끼고 있는 나라서 일까? 내가 경험한 일이 아님에도 충분히 몰입되었고, 서로 주고받는 자매의 편지 속에서 울고 웃고 뭉클해지고 그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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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여 어떠한 이유에서건 마음 안으로, 안으로, 안으로만 들어가는 아이에게 토닥토닥, 위로와 격려를 보내고 싶다. "선한 아이야, 곧 너는 너만의 그 작은 세상을 깨고 나올 수 있어. 그러니 두려워하지 마." (P.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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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우리는 같이, 서로를 치유한다. 나 역시 그렇게 치유되고 있다. (P.145)
두 자매가 겪었을 불안한 어린 시절, 부모님들과의 관계로 느껴왔던 콤플렉스, 학교에서 마주했던 더욱 숨고 싶어지던 순간들, 서로가 기대고 힘이되어준 둘, 우연히 알을 깨던 그 순간, 어른이 된 뒤 자신 내면의 소리를 들어가며 새로이 성장한 둘, 내면의 어린 나를 만나고 치유해간 과정, 나의 침묵을 닮았을까 봐 걱정했던 내 아이,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지만 너무도 사랑했던 할머니와의 추억과 이별, 그리고 아버지의 병과 이별까지... 책을 읽는 내내 숨죽여 자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게 된다. 마치 그들의 눈으로 보고 지난 이야기를 듣는 듯 마음이 깊이 공감하고 끄덕이게 되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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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태로운 날들도 이윽고 지나가고 만다. 잘 버텨온 나를 사랑하자. 난 사랑받을 자격이 있어. (P.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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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로도 잠자리에서 눈을 감고 어린 여진이의 등줄기를 쓰다듬을 때마다, 내 안의 깊은 슬픔은 그렇게 점점 더 사그라들어갔다. (P.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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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반쪽이 저기서 나랑 똑같이 침묵하는 외톨이가 되어 서 있는 것이 안타깝고 슬프면서도, 한 편으로는 위안이 되었던 거야. (P.229)
"나는 혼자 논다"로 시작하는 동화책, <알사탕>의 이야기도 무척 뭉클했다. 동동이가 투명 사탕을 먹고 아이에게 다가가 건넨 "나랑 같이 놀래?". '혼자 논다'로 시작했지만, '같이 놀래'로 끝나는 이 동화가 자매에게 얼마나 크게 와닿았을까? 처음으로 동동이가 "나랑 같이 놀래?"를 꺼내기 위해 얼마나 큰 용기를 내었을지 이 책을 보고 난 뒤 그림책을 펼쳐보니 동동이 얼굴에 자매들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같은 아픔을 가진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이 마법에서 벗어나는 열쇠가 되어 그들에게 용기가 생기길 바란다는 그 마음과 응원이 더욱 진심으로 느껴진다. 변화를 만드는 힘은 이미 아이 각자 안에 있으므로, 알을 깨고 나오는 그 변화의 움직임이 이 책으로부터 시작될 수 있기를, 어린 시절 두 소녀의 마음으로 써 내려간 한 줄 한 줄의 문장이 누군가에겐 용기의 열쇠가 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위 리뷰는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