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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다고지 - 30주년 기념판 ㅣ 그린비 크리티컬 컬렉션 15
파울루 프레이리 지음, 남경태 옮김 / 그린비 / 2002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파울로 프레이리의 <페다고지>. 영어원제는 'Pedagogy of the Oppressed'으로 번역하자면 '억압받은 자를 위한 교육학'이다. 이 책은 꽤나 오래된 교육학 고전으로 일컬어진다.
1971년에 브라질에서 프레이리에 의해 씌여진 이 책은 2002년 <페다고지>가 출판된 지 30주년이 되어 미국에서 30주년 기념판을 찍었다. 그렇다고 내용이 크게 달라질리는 없고 단지 '30주년 기념판 발간에 부쳐' 정도가 더 덧붙여진 것은 아닌가 생각된다. 30주년 기념이라는 타이틀을 이용해 좀더 눈길을 끌고 팔아먹으려는 출판사의 상업적인 전략도 들어있다고 할 수 있겠다. 본래 10주년이네 20주년이네 100주년이네 하면서 10단위로 기간을 쪼개어 기념을 하는 것이 다 그런거 아니겠는가.
<페다고지>는 상당히 유명한 책인가보다. 나는 이 책의 제목조차도 이번에 처음 접했지만 뭔가 있어보이는 학문적 냄새를 풍기는 제목이 일단 나의 눈길을 끌었고, 30주년 기념판은 부차적인 부분이었다. 교육학 쪽에서는 상당히 유명한 저서로 생각되는 이 책의 저자 프레이리는 책의 전체적인 내용으로 볼 때 상당한 마르크스 주의자로 추정된다.
나는 철학을 전공했지만 마르크스는 제대로 접하지 못했다. 유독 기독교 학교여서 그런건지 우리네 철학 커리큘럼에는 유물론에 관한한 별로 다루고 있지 않았고, 나 홀로 읽은 책은 <마르크스 평전>쯤이다. 그러니 내가 마르크스에 대해 알아봐야 그의 가족사나 생활부분 말고는 얼마나 알겠는가. 하지만 그는 책에서 마르크스와 레닌을 수시로 언급하며 인용하고 있다. 따라서 그저 그렇게 추정해볼 뿐이다.
또한, 프레이리는 마르크스와 레닌을 제외하고도 실존철학자로 분류되는 장 폴 사르트르와 카를 야스퍼스도 언급하며, 훗설, 베르그송, 헤겔, 에리히 프롬 등의 철학자들도 등장시키고 있다. 더불어 마르크스 만큼이나 자주 나오는 체 게바라와 마오쩌뚱, 피델 카스트로도 빼놓을 수 없는 인물들이다. 이 모든 사람들이 짬뽕되어 프레이리의 머리 속에 들어갔다가 결과적으로 나온 것이 <페다고지>다.
그는 교육에는 중립이란 없으며, 모든 교육은 억압자와 피억압자의 관계로 나타낼 수 있다고 한다. 따라서 그는 억압자가 피억압자를 교육시키는 방법을 말하며, 피억압자가 억압자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어찌해야하는지를 이 책을 통해 풀어내고 있다.
억압받은 자는 자기 자신의 주체성을 확립하는 의식화 과정을 통해서 억압자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현재의 우리네 교육은 모든 것을 알고 행위하고 명령하는 교사와 이를 일방적으로 받아들이는 학생과의 관계로 성립되어 있으며, 이는 양측이 서로 대화하는 것이 아닌, 교사 성명을 발표하고 예탁금을 만들면, 학생은 참을성 있게 그것을 받아 저장하고 암기하고 반복하는 '은행 저금식 교육'을 벗어나지 못한다.
프레이리는 "인간화 교육의 방법은 교사가 학생을 조작할 수 있는 도구로 여기는 게 아니라 학생 자신의 의식을 스스로 표현하는데 있"으며, "지식은 창조와 재창조를 통해서만 생겨나며, 인간은 끊임없고 지속적인 탐구 정신을 통해 세계 속에서, 세계와 더불어, 또 타인과 더불어 살아나갈 있"다고 말한다.
그는 양자가 대화하며 함께 행함으로써 서로에게 자극을 주며, 세계에 관한 개념과 견해를 형성함으로써 이 구조를 타파할 수 있다고 본다. 그 방안이 바로 문제제기식 교육이며, 이 교육의 골자는 '대화'이다.
30주년 기념판 <페다고지>의 해제를 쓴 부산교육대학교 심성보 교수의 글은 프레이리의 대화에 대한 생각을 잘 표현해주고 있다.
"대화는 객체를 주체로 변화시키고, 억눌린 자를 해방시키는 의식화 수단이다. 대화적 의식화는 억압사회를 해방시킨다. 대화를 한다는 것은 인간을 사회적, 정치적 존재로 동일시하는 존재, 사회의식을 가진 존재로 발전시킨다. 진정한 대화는 세계와 인간을 이분하지 않고, 양자가 분리될 수 없는 어떤 결합을 이루고 있음을 발견하도록 한다. 그리하여 대화는 의사소통, 협동, 일치, 투쟁을 동시에 필요로 한다. 대화를 하기 위해서는 사랑의 마음이 요구된다. 대화 자체가 사랑이다. 대화는 사랑하고, 겸손하고, 소망을 가지고, 신뢰하고, 그리고 비판적이어야 한다."
이 책은 생소한 마르크스식의 단어 사용으로 소설 읽듯 쉽게 넘어가지는 않는다. 하지만 끈기있게 읽어나간다면 프레이리가 주장하는 바가 뚜렷하게 눈에 들어올 것이며, 그 구조만 익힌다면 나머지는 부차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나로 하여금 오늘날의 교육을 다시 바라볼 수 있게 만들어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