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봐도 대단한 영화다. 탐크루즈가 출연했던 또다른 대단한 영화 <미션임파서블>저리가라 할 정도다. 이 영화는 스티븐 스필버그의 수많은 흥행작 중 하나로 치부하기에는 뭔가 부족하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탐크루즈와 스필버그의 만남은 역시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영화 제목이기도 한 '마이너리티 리포트'라는 용어는 2050년 미래 사회에서 검거 된 용의자를 판결하는 평의회에서의 세 명의 평결관들 중 이견을 제시한 한 명의 의견 즉, 소수의 의견을 의미하며 그 판결이 올바른 판단이었을 경우에 그 사건을 지칭한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살인범죄에 대해 범죄예측시스템의 세명의 예언자를 통해 나타난 영상으로 사건현장과 시간을 알고 살인이 일어나기 전에 용의자를 체포해 가둔다는 것이 요점. 하지만 완벽하다고 알려진 시스템에도 결점이 있었다. 국장이 이 시스템의 예언자중 여자아이를 얻기 위해 그녀의 부모를 살해한 것이다. 즉 살인을 막기 위해 살인을 행한 것. 하지만 시스템의 리포트에는 국장의 살인은 지워져있다. 그는 시스템을 잘 알기에 살인청부업자를 시켜 같은 상황을 미리 재현했던 것이다. 따라서 같은 상황에 두번 반복되면 조사부는 예언자의 눈에 비친 영상이 잔영이라 생각하고 지워버리는 것이다. 존 앤더튼 경사는 비지스 국장의 음모에 휘말려 살인용의자가 되어 도망다니다 결국에는 비지스 국장의 음모를 밝혀낸다.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미래사회를 배경으로 한 것으로 날아다니는 자동차, 각막 스캐너, 지상의 해파리와도 같이 생긴 마치 살아있는 듯한 기계 등 굉장한 볼거리를 제공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볼거리 못지 않은 영화의 매력은 '범죄예측시스템'이라는 아이디어다.

먼저 제기할 수 있는 질문은, 누가 감히 범죄를 정확히 예측하고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살인사건의 용의자가 되어 평생을 감옥에서 썩어야하는가? 이다. 살인이 아직 발생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용의자는 너무도 억울하다. 하지도 않은 행위를 마치 자신이 이미 저지른냥 죄인 취급받아야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평생을 유리관 속에 갇혀 살게 된다. 사실상 살아있는 것이 아닌 것이다. '범죄예측시스템'의 정확성이 100%라고 하더라도 아직 발생하지 않은 사건의 죄인으로 취급받는 것은 분명 잘못이다.

둘째, 범죄를 예측한다는 명목하에 시스템의 내부에 갇혀 평생을 살인사건만을 예언하며 지내야하는 사실상 죽어있는 것이나 다름없는 세 명의 예언자들을 어찌 볼 것인가, 하는 문제다. 이들 역시 인간이고,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미래를 볼 수 있다는 것 뿐인데 그런 능력을 지니고 있다고 하여 본인의 의지와 무관한 삶을 살아야하는 것은 너무도 가혹하다. 게다가 이들이 평생해야하는 일은 살인사건을 예측하는 것이다. 아직 나이어린 세 아이가 아름다운 자연풍경을 보지 못하고 살인사건만을 봐야한다는 것은 이들의 삶을 더욱 가혹하게 만든다.

셋째, 세 아이의 예언이 정확히 일치한다고 해서 그것이 실제 살인으로 이어질 확률까지 100%라고 장담할 수는 없다. 예언자는 불려지는 이름일뿐 이들은 인간이다. 인간은 누구나 실수를 한다. 나는 유신론자라고 할 수는 없어 '신은 완전하고 인간은 완전하지 못하다' 라고 말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도 인간은 그 누구도 완전하지 않다. 완전하지 않은 인간에 의한 예측의 정확성이 100%라고 할 수 있겠는가? 정확하지도 않은 예언으로 일어나지 않은 살인을 일어났다고 볼 수 있는가?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풍부한 볼거리 이외에도 이런 물음을 제기하게 만든다. 영화든, 책이든, 학문이든 물음을 제기하도록 만드는 것이야 말로 진정 우리에게 의미있다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우리에게 매우 유의미하다. 따라서 잘 된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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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 안에는 모든 것이 담겨있다. 드라마, 액션, 로맨스, 무협에서부터 거대한 중국의 기운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포괄하지만 결코 산만하지 않은 영화. 압축에 압축을 반복하면서도 불필요한 것들은 잘라내고 잘라내고 알짜배기만 남겨 오로지 달콤한 열매 하나가 만들어졌다.

19세기 중국. 대단한 무공을 소유한 이들의 영웅담과 로맨스. '파란여우'는 본래 리무바이의 스승의 여자였다. 하지만 그녀는 무바이의 스승이 무술을 전수해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무바이의 스승을 살해하고 무당파의 비법전서를 훔쳐내 독학으로 익힌다. 그리고 이를 누군가에게 전수해주는데 그녀가 바로 룡이다. 룡은 만주인으로 아버지는 부잣집 관료 옥대인이다. 하지만 청으로 오기 전 사막에서 로로부터 습격을 당했을 때 호와의 인연으로 둘은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고, 떳떳해진 후에 다시 찾아오겠다는 로를 두고 룡은 청으로 온 것이다. 결국 로는 룡을 찾아왔지만 그녀는 로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다른 남남자가 생겨서가 아니다. 그녀는 아버지가 정해준 정혼자가 있지만 그를 사랑하지는 않으며 오히려 무공으로 강호를 평정하고 싶어하는 욕심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결혼식 다음날 집을 나온 룡은 강호를 돌아다니며 무자비하게 상대를 제압하고 난장판을 벌인다. 하지만 룡에게서 청명검을 찾기 위해서, 또 그녀를 가르치기 위해 나타난 리무바이와 슈리엔. 천박지축인 룡을 무당파 수제자로 키우겠다는 무바이는 그녀를 상대하지만 죽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그녀의 스승이었던 '파란여우'로부터 습격을 받아 일전을 겨루게 된다. 파란여우는 죽었지만 무바이는 이미 독침을 맞은 상태. 무바이의 스승을 죽였던 그 독침이 제자인 무바이에게도 돌아온 셈이다. 룡은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무바이를 위해 처방약을 제조해 가져오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이 영화는 모든 것을 보여준다. 광활한 대지에서 겨루는 룡와 로를 보여주고, 물위에서 겨루는 룡와 무바이 등 화려하고 미학적인 무술씬은 물론이고, 룡과 로를 통해, 그리고 무바이와 슈리엔을 통해 남녀간의 사랑의 아픔을 전달한다. 한편, 무바이와 룡의 관계를 통해서는 득도에 달한 무술달인과 무술은 뛰어나지만 천방지축인 어린여자아이라는 캐릭터를 설정함으로써 가르침을 준다. 파란여우를 통해서는 분노에 휩싸인 무술달인의 최후를...

열번을 보더라도 서로 다른 각도에서, 보는 사람이 처한 상황에 따라 새롭게 해석될 수 있는 영화다. 흥미와 깨달음과 아련함을 함께 전해주는 이 영화는 내가 지금껏 본 영화 중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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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사실 일반적인 로맨스나 드라마가 아니다. 영화로서는 다뤄지지 않은 사랑에 대한 다른 부분들을 건드린다. 똑똑하고 돈 많은 남자에게 시집보내려는 보수적인 가정의 어머니 밑에서 자라온 뉴욕 트리뷴지 기자로 일하고 있는 제시카. 그녀는 30살을 바라보지만 아직 남자가 없다. 데이트는 여러번 해봤지만 가지각색의 이유로 상대 남자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뛰쳐나왔고, 여전히 그녀는 자신만의 이상형이 나타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그러던 어느날 신문에 실린 광고 한 줄.

"새로운 것 없는 관계를 맺는 것은 타성 때문만은 아니다. 새로운 경험에 앞서오는 두려움과 수줍음 때문이다. 모든 걸 감수할 준비가 된 자만이 살아있는 관계를 지속할 수 있다."

이것은 릴케를 인용한 것으로, 알파벳 이니셜만으로 광고를 내 릴케를 알지 못하는 일반인(?)을 따돌리려는 술책이었다. 하지만 지적인 제시카는 이를 알아 챈 것. 하지만 구인광고를 낸 사람이 여자임에도 제시카는 전화를 걸어 그녀를 만난다. 수줍게 나마 만나게 된 그녀와 함께 술을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며 색다른 경험을 하게 된다. 그녀는 양성애자로 여러 섹스파트너를 가지고 있고 지적이다.

이 영화를 보면서 내가 영화에 매료되었던 것은 영화초반에 나오는 배우들의 지적인 대화이다. 각종 시인과 철학자 등의 고전적인 저서에 나오는 글귀를 인용하며 대화를 나누는 이들에게서 나는 매력을 느꼈다. 어떤 이는 그것이 그저 언어유희라고 할지는 모르겠지만 이러한 언어유희는 사유를 풍부하고 깊게 만들어준다는 점에서 그저 놀이는 아니다. 영화 중간 '숙성시키다'라는 말을, '생각이 점차 깊어진다'라는 의미로 사용하는 대목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우리가 배운 언어를 배운 것으로만 사용하지 않고 새롭게 창출해내는 것은 매우 재미있는 작업이다. 아니 로맨스 드라마 감상평에 웬 딴 이야기? 라고 생각지는 말길. 나는 이들의 로맨스에도 빠졌지만 이들의 지적인 대화에 더욱 푹 빠졌기 때문이다. 채널을 돌리지 못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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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한때 미국사회를 강타했고 지금까지도 여전히 그 파장이 잔잔하게나마 지속되고 있는 클린턴 대통령과 르윈스키 섹스스캔들이 일어났던 1998년. 영화의 감독이 왜 시기를 이 때로 했는지는 모르겠다. 게다가 영화내용에서는 그다지 중요하게 작용하지 않는 클린턴과 르윈스키와의 섹스스캔들을 굳이 언급하는지는 아직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다만 짐작으로나마 이 영화가 대학교수라는 저명한 존경받는 사회인사와 어두운 과거를 지닌 매혹적인 대학 청소부와의 섹스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신분의 격차를 뛰어넘은 사랑'이라는 점이 비슷하다 생각해 연결짓지 않았을까 조심스레 생각해볼 뿐이다. 그 어디에서도 감독이 이 두 가지를 연계해 설명하고 있지 않기에 그저 이런 짐작을 해볼 뿐이다.

메사추세스 아테나 대학의 고전문학 교수 콜먼은 강의도중 한 말로 인해 인종차별주의자로 낙인찍혀 대학에서 징계를 받기에 이른다. 게다가 사랑하는 그의 아내가 심장마비로 사망하고 명예와 사랑을 모두 잃어버린 콜먼은 절망의 나락으로 빠져든다. 그러던 어느날 대학 청소부를 하는 여자에게 빠져 서로의 육체를 탐닉하게 되는 콜먼과 퍼니아. 하지만 퍼니아에게는 계부에게 성폭행당하고 남편으로부터 방망이로 얻어맞고, 두 아이는 불에 타 죽어버린 어두운 과거가 있다. 게다가 그 남편은 지금까지도 그녀를 두드려팬다. 당연히 콜먼과 그녀의 관계를 남편이 알게되고 그는 이 둘의 제거하려고 마음먹는데...

영화의 줄거리는 다소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고 영화를 통해 전달하려는 바는 알겠지만 그것이 정확하게 표현이 됐는지의 여부는 사실 판단하기 어렵다. 애초 이 영화는 퓰리처상을 받은 바 있는 필립 로스의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 책은 발간당시 대중과 평론가로부터 극찬을 받는 등 성공을 거두었다고 한다. 베스트셀러를 영화화 시킨 셈인데 소설을 읽어보지 않는 나로서는 소설의 영화화가 성공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영화가 다소 싱거운 결말을 가지고 있음은 확실한 사실이다. 이미 예감된 결말이라는 것이고, 그 결말이 너무나도 싱겁다. 퍼니아의 남편에 의해, 하지만 직접적이지는 않은, 교통사고를 가장한 두 사람의 사망. 이 영화가 대단한 결말을 지니고 있을거라 생각지는 않았고, 영화의 중심내용은 각자의 다른 삶에서 상처받은 두 남녀가 서로를 탐닉한다는 것이지만, 그렇더라도 결론은 너무 미약하다. 하지만 앤소니 홉킨스와 니콜키드먼의 연기는 볼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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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오랫만에 다시 봤다. 극장에서 본 이후로 처음이다. 한번 본 영화를 다시 볼때는 오랜 시간을 두고 봐야한다. 금방 또 보면 처음의 감흥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번 본 영화를 오랜 시간이 지난 후 다시 본다해도 감흥이 그때만 못한 것은 사실이다. 처음 볼 때 제대로 보는 것이 가장 좋다.

<살인의 추억>은 1986년부터 91년까지 경기도 화성에서 있었던 열차례의 강간살인사건을 다룬 영화이다. 13세 여중생부터 71세 노인에 이르기까지 나이대도 다양하고, 불특정다수를 대상으로 한 범행이면서 증거를 전혀 남기지 않았다. 피해자의 소지품을 이용한 엽기적인 살인에, 나중에는 국부에서 9개의 복숭아 조각이 나오고 옷을 잘 개놓기도 하는 등 대담한 범행으로 유명했다.

이런 범죄는 처음이었기에 체계적인 수사방법도 없었고, 주먹구구식으로 발로 뛰며 여기 뭐 없나 하고 찾아다니는 식이었기 때문에 범인을 잡기는 더욱 힘들었다. 결국 지금까지도 이 사건은 미궁 속에 남아있다.

피해자 가족들에게나 마을 주민들에게는 이 영화는 잊고 싶은 기억을 되살려놓은 격이 됐다. 봉준호 감독 역시 인터뷰에서 자기자신도 영화를 만들면서 그런 점이 마음에 걸렸다고 한 적이 있다. 그러나 이 영화는 굉장히 잘 만들어진 영화다. 송강호와 김상경 등의 캐스팅도 아주 적절했고, 짜임새있는 구성과 비오는 밤의 유재하의 우울한 편지를 이용한 사건암시를 이용하는 등 긴장감을 늦추지 않았다.

또 한편으로는 대한민국의 경찰 수사방법에 대한 적나라한 보고서 이기도 했다. 체계성 없는 수사방식, 인권유린이 자행되는 막무가내 피의자 고문,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 참 인간이 할 짓 못되는 형사라는 직업. 박봉에 집에도 못들어가고 그렇다고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욕을 먹으며 맞고 다닌다. 사건은 자꾸 터지지 조사할 인력은 없지... 피의자를 고문하며 인권을 유린하는 형사가 한편으로 불쌍하게 느껴지는 것은 그 조차도 인간답지 못한 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래저래 다양한 생각을 하게 만든 영화였다. 결국 봉준호 감독은 이 영화로 대박났다. 송강호의 연기도 일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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