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영화보기로 한 친구가 이 영화를 보자고 말을 꺼내지 않았다면 나는 아마 이 영화가 막을 내리는 순간까지도 보지 않았을 것이다. 이 영화가 처음 홍보되기 시작했을 때 나는 이미 실패한 '단적비연수'의 재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다른 장르의 영화들은 모두 성공했지만, 유독 액션무협만은 아직까지 성공한 작품이 없었다. 그렇기에 우리나라 액션무협은 아직 수준에 이르지 못했다는 편견을 지니고 있었고, 또한 액션무협은 단순히 볼거리만 제공했지 풍부한 내용을 담고 있지 않기에 '볼만한 영화'가 못된다고 생각한 터였다.
하지만 아라한 장품 대작전을 보고 난 뒤 이런 편견들은 싹 사라졌다. 영화를 제대로 배운 감독도 아닌 류승완 감독에, 그의 양아치 동생 류승범이 주연이라. 짜고치는 고스톱인가? 결론은 아니다. 계획된 짜고치는 고스톱이였다 할지라도 제대로 짰다. 난 완전히 그들에 넘어갔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기직전까지도 이 영화을 보기 위해 내가 낸 돈이 아까웠고, 그래도 오직 믿을 건 안성기 밖에 없다는 생각으로 관람에 임했지만, 안성기는 물론이고 그를 중심으로 한 '칠성파' 출연진과 마루치, 아라치 또한 좋았다.
무협액션이라고는 하나 그 배경은 현대다. 편의점에서 일하는 장풍소녀와, 무허가 침술원장 아빠, 공중부양으로 형광등 달고, 제자가 없어 도장을 운영하기 위해 700 운세풀이 서비스로 돈을 버는 도사들, 하나같이 엽기적이고 한심한 인물들 뿐이다. 하지만 이들의 내면세계는 그들의 겉모습과는 다르다.
노자는 <도덕경>에서 도를 도라 이름부른다면 그것은 이미 도가 아니라고 했던가. 의욕만 앞선 사고뭉치 초짜 순경 상환이 도장에서 장품쏘는 법과 싸우는 법을 가르쳐달라하지만 편의점 알바생 의진은 그를 향해 이곳은 싸우는 법을 가르치는 곳이 아니라 도를 가르치는 곳이라 한다. 도는 따로 설명할 수도 없거니와 설명되지도 않는다. 그저 묵묵히 한 단계 한 단계 수련하다보면 이르게 되는 법.
줄거리의 요약은 선한 도인들과 악당과의 싸움쯤으로 설명되겠지만, 이 영화가 시사하는 바는 그것이 다가 아니다. 의진은 성환을 데리고 시장바닥으로 나와 도란 무엇인가를 눈으로 보여주려 한다. 머리에 짐을 가득 지고서 걸어가는 할머니, 수레에 자기키의 두배쯤은 되어보이는 짐을 가득싣고 끌고가는 아저씨, 머리에 밥과 찬 그릇이 담긴 쟁반을 다섯개씩 쌓아놓고 배달가는 아주머니, 한손에 구두 네 켤레씩 양손에 들고 다니는 아저씨 등 일상에도 도인들은 깔렸다. 그들이 도를 이룬 분야가 다를 뿐이다. 덧붙여 나오는 해설이, 자기분야에서 열심히 일을 하다보면 나도 모르게 도의 경지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과히 이 장면은 영화의 내용을 모두 담고 있다고 해도 무방할 터이다. 볼거리는 액션에 있지만, 내용은 이곳에 있다.
매번 영화가 개봉될때마다 각종 기록들이 깨지고, 신선하고 재밌는 영화들이 등장하지만, 장르에 있어서는 그 나물에 그 밥인 한국영화에 새로운 장을 개척한 이 영화는 매니아와 비평가들 사이에서 화재가 되지 않을까 싶다.
P.S.
영화에 백발의 늙은 소설가 이외수씨가 잠시 등장한다. 무슨 생각으로 영화에 임하게 되었는지는 모르나 이외수씨 또한 그 분야에서는 도의 경지에 이른 분. 아마도 영화가 시사하는 바가 마음에 들어 출연하기로 했나보다. 얼핏 지나가 잘 모르는 사람들은 물론이고 그의 얼굴을 아는 사람들도 찾기 힘들다. 나 또한 그냥 지나쳤다가 나중에 포스터 보고 알았다. 영화를 보면서 그를 한번 찾아보는 것도 묘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