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약력 - 가치 있는 정보를 효율적으로 뽑아내는 힘
우키시마 유미코 외 지음, 황미숙 옮김 / 영진미디어 / 2009년 9월
품절


요약력을 기르는 포인트 1 전체를 이해한다

1. 우선 전체상을 대략적으로 파악한다.
2. 전체를 봄으로써 '전달하고자 하는 목적'을 명확히 한다.
3. 전체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세부 사항도 정확히 보는 것이 중요하다. -75쪽

요약력을 기르는 포인트 2 글의 구조가 어떻게 되어 있는지 생각한다.

1. 자기 나름대로 글을 나누고 단락을 만들어본다.
2. 어떤 내용인지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표제어를 붙인다.
3. 짧은 문장으로 만들고 주어와 서술어를 찾는다.
4. 말끝에 주의해서 사실인지 주관인지를 판단한다. -85쪽

요약력을 기르는 포인트 3 목적을 확인하고 중요한 부분을 선별한다.

1. 항상 전달할 대상이 누구인지 의식한다.
2. 상대방이 필요로 하는 정보가 무엇인지 파악한다.
3. 필요한 정보와 불필요한 정보를 선별한다.
4. 정보를 전달할 때의 우선순위를 매긴다.
5. 키워드가 무엇인지 찾는다. -92쪽

요약력을 기르는 포인트 4 남길 부분을 생각하면서 추상화한다.

1. 짧은 표현으로 전달하기 위해서는 추상화 작업이 필요하다.
2. 추상화된 단어들을 활용한다.
3. 중요한 정보는 생략하지 말고 그대로 반영하는 것도 중요하다. -9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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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의 기쁨과 슬픔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이레 / 2009년 8월
구판절판


물론 배를 관찰하는 사람들이 특별한 상상력으로 열광 대상에 반응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의 관심사는 통계다. 그들은 운행 날짜와 항해 속도에 에너지를 집중하며, 터빈 숫자와 샤프트의 길이를 기록한다. 마치 깊은 사랑에 빠져 여인에게, 내 감정에 따라 행동해도 좋으냐고, 당신의 팔꿈치와 어깨뼈 사이의 거리를 재도 좋겠냐고 묻는 남자 같다. -30쪽

이 거대한 식량 창고는, 적어도 산업화된 세계에서는 우리 인간이 수천 년의 노력 끝에 마침내 다음 끼니를 어디서 찾아먹을까 안달하는 일로부터 벗어난 유일한 동물이 되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그 결과 우리는 황제펭귄과 아라비아의 오릭스라면 지금도 여전히 벗어나지 못한 채 시달리고 있는, 절실하기 짝이 없는 먹이 걱정에서 벗어나, 스웨덴어를 배우거나 미적분을 익히거나 우리 관계의 진정성을 걱정할 수 있는 시간 여유를 얻게 되었다. -50쪽

일이 의미 있게 느껴지는 건 언제일까? 우리가 하는 일이 다른 사람들의 기쁨을 자아내거나 고통을 줄여줄 때가 아닐까? 우리는 스스로 이기적으로 타고났다고 생각하도록 종종 배워왔지만, 일에서 의미를 찾는 방향으로 행동하려는 갈망은 지위나 돈에 대한 욕심만큼이나 완강하게 우리의 한 부분을 이루고 있는 듯하다. 우리는 합리적인 정신 상태에서도 안전한 출세길을 버리고 말라위 시골 마을에 먹을 물을 공급하는 일을 도우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한다. 또 인간 조건을 개선하는 면에서는 아무리 훌륭한 고급 비스킷보다도 섬세하게 통젲되는 제세동기가 낫다는 것을 알기에, 소비재를 생산하는 일을 그만두고 심장 간호사 일을 찾아볼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우리가 그저 물질만 생각하는 동물이 아니라 의미에 초점을 맞추는 동물이기 때문이다. -86쪽

왜 우리 사회에서는 가장 의미 없는 것들을 판매할 때 가장 큰 돈이 생기는 일이 종종 벌어지는 것일까? 산업 혁명의 핵심에 자리 잡았던, 능률과 생산성의 극적 향상이 왜 샴푸나 콘돔, 오븐용 장갑이나 여성 속옷처럼 평범한 물질적 상품을 공급하는 일을 넘어 확대되는 일은 거의 없는 것일까? 나는 르네에게 우리의 로봇이나 엔진은 그것들이 줄 수 있는 혜택 가운데 가장 큰 것을 우리 욕구의 피라미드 가운데 가장 낮은 것에만 가져다준다는 이야기, 우리는 과자를 빠르게 만드는 데는 분명히 전문가이지만 아직도 감정적 안정이나 결혼의 조화를 이루어줄 믿음직한 수단을 찾지 못해 헤매고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94쪽

일을 중심에 둔 것은 어느 사회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일이 형벌이나 속죄 이상의 어떤 것일 수도 있다고 주장한 것은 우리가 사는 사회가 처음이다. 경제적인 필요가 없어도 일은 구해야 한다고 암시하는 것도 우리 사회가 처음이다. 직업 선택이 우리의 정체성을 규정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새로 사귀게 된 사람에게도 어디 출신이냐, 부모가 누구냐 묻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하느냐고 묻는다. 의미 있는 존재가 되는 길로 나아가려면 보수를 받는 일자리라는 관문은 반드시 통과해야 한다는 가정이 깔려 있는 것이다. -116쪽

사실 일은 어떤 거리에서 보느냐에 따라 느낌이 확확 달라지는 것 같다. 일 안에 완전히 묻혀 있으면, 그 의미는커녕, 즐거움이니 괴로움이니 하는 것조차도 아예 사라져버린 상태가 될 것이다. 즐거움이니 괴로움이니 하는 말이 나오려면 어느 정도 거리가 확보되어야 할 것이다. 하물며 기쁨이나 슬픔이라는 말이 나오려면, 일을 완경으로 멀리서 보아야만 할 듯하다. 곧 관찰자의 시점으로 물러난다는 뜻인데, 우리가 일의 관찰자가 되는 것은 자의든 타의든 일에서 떠나 있게 되거나 일을 하는 것도 안 하는 것도 아닌 상태에 머물 때이다. 만일 다수가 타의에 의해 일의 기쁨과 슬픔을 느끼는 자리에 서게 된다면 - 이것이 지금 우리의 문제이기도 하거니와 - 그것은 일의 비극이라고 불러야 하지 않을까. (옮긴이)-37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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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시민주의 - 이방인들의 세계를 위한 윤리학 우리 시대의 이슈 총서 1
콰메 앤터니 애피아 지음, 실천철학연구회 옮김 / 바이북스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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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콰메 앤터니 애피아. 독일, 영국, 프랑스, 미국 태생의 학자들의 이름을 접하다가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이름을 접하니 어색하다. 마치 미국 대통령 후보로 '버럭 오바마'를 처음 알게 됐을 때의 느낌이랄까. 당시에도 언론은 그의 이름을 어떻게 표기해야 할지, 어떻게 불러야 할지 잠시 혼란스러워했었다. 애피아의 이름을 접한 건 이 책이 처음은 아니다. 삼인출판사에서 번역돼 나왔던 <나라를 사랑한다는 것>이라는 책에서 이미 만난 바 있다. 너스봄이 주가 되는 책에서 애피아를 만났듯 애피아가 주인공인 이 책에서는 너스봄을 만날 수 있다.  

  세계시민주의. 많이 들어 본 말이다. 애피아가 말했듯 이 용어를 처음 사용한 이들은 기원전 4세기경의 키니코스 학파이다. "당시 이들은 사회 관습과 전통, 학문, 예술 등을 무시하고 자신의 본성에 따른 자연스러운 삶을 추구하면서 단순하고 간소한 생활을 했다. 시노페의 디오게네스가 대표적인 인물이며, 헬레니즘 세계의 각지를 돌아다니며 세계시민을 자칭하곤 했다."  이것이 스토아 학파로 이어지는데, 당시는 고대 그리스 아테네의 도시국가가 무너진지 오래고, 그리스가 지중해 세계의 지배자로 등장한 로마의 지배 아래 있던 시기였다. 사람들은 스스로 이제 한 도시의 시민이 아니라 세계의 시민이라고 생각했고, 개인보다는 전체를 중히 여겼다. 그러다보니 사람들이 자기 자신의 삶에 결정권이 없다고 생각했고, 운명론에 빠지게 되었다.  

  애피아의 세계시민주의는 "민족 공동체에서처럼, 인류 공동체 차원에서도 공존의 습성을 길러야 할 필요가 있"으며, "이때 공존의 습성은 함께 갈아가기와 연대하기를 위한, 전통적 의미에서의 대화"라는 시각에서 출발한다. 그는 나아가 이때의 "대화는 어떤 것에 대한 합의, 특히 가치에 대한 합의에 도달해야만 하는 것이 아니"며, "사람들이 서로에게 익숙해지도록 도움을 주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말한다.  

  이 책에서 내가 주목한 부분은 후반부에 있다. '얕은 연못'이라는 소제목을 달고 있는 장인데, 여기서 애피아는 철학자 피터 엉거와 피터 싱어를 언급한다. (이름이 비슷한 엉거와 싱어가 형제거나 친척은 아닌 듯 하다.) 그의 비판은 피터 엉거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이 책을 통해 봤을 때) 피터 엉거와 피터 싱어의 주장이 크게 다르지 않음을 감안하면, 그 비판은 피터 싱어에게도 적용이 된다. 또, 엉거와 함께 싱어도 비판의 도마에 올리고 있다.

 최근 산책자에서 나온 피터 싱어의 책 <물에 빠진 아이 구하기>를 읽었다면, 애피아의 비판에서 생각해 볼 만한 구석이 많다. 나는 싱어의 주장에 동의하고, 그것이 실현 가능한 이야기라고 생각하지만, 그건 내 생각이 싱어만큼이나 '이상'에 가깝기 때문일 것이고, 혹자는 싱어가 현실을 모른 채 지극히 이상적인 주장을 하고 있다고 비판할 수도 있다. 애피아의 비판도 여기에 닿아 있다. 세계시민주의에서는 결국 전 인류를 하나의 공동체이기 때문에, 모든 인류의 아픔이 곧 나의 아픔이다. 세계시민주의자인 애피아와 실천윤리학자 싱어가 다른 해결책을 내놓으면서, 같은 지점을 바라보는 건 그 때문이다. 싱어를 세계시민주의자라고 말하지는 않지만, 싱어의 생각은 이미 세계시민주의적이다.  

  싱어는 <물에 빠진 아이 구하기>에서 우리가 고급 취미를 줄임으로써 세계의 절반을 구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해야 한다고 말한다. 나아가 어느 얕은 연못에 한 아이가 빠진 것을 보았다면, 내 옷이 진흙투성이가 된다고 해도 나는 그 아이를 구해야 한다고 말한다. 아이가 죽으면 매우 불행한 일이지만, 내 옷이 더러워지는 것은 그보다 덜 불행한 일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논점을 점차 확대하며 모든 상황에 적용한다. 유니세프로 부터 헌금 봉투가 왔다. 나는 100달러를 보내 아이를 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아이는 굶어죽을테니까.  

  그러나, 애피아는 여기에 반대한다. 그는 아이를 구하는 데에는 찬성하지만, 그 아이를 구하는 방법이 지금 당장 내가 100달러를 내놓는 것인가 하는데 의문을 제기한다. 애피아는 매사에 우리가 이렇게 돈을 내놓고, 희생을 하는 것이 진정 그들을 도울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물에 빠진 아이를 구한다는 것이 우리가 모든 재산을 남에게 준다는 것을 실제로 수반하느냐고 묻는다. 애피아는 세계의 굶주리는 이들과 약자를 돕는데는 찬성하지만, 그 방법이 잘못되었다고 비판한다. 엉거와 싱어는 세상의 나쁜 일 전체를 최소화하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것을 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애피아는 나 자신을 파산시킬 만큼 엄청난 액수를 유니세프에 보내야 한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더 좋은 일에 쓸 수 있는 방법을 알아내는 것이 먼저라는 것이다.  

  애피아는 "우리의 의무는 전체의 짐을 홀로 지는 것이 아니어야 한다. 우리들 각자가 자신의 몫을 공평하게 져야 하지만, 자신의 몫 이상을 지도록 요구받아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이를 통해 싱어가, 물에 빠진 열 명 중 한 명을 구하고서 나의 도리를 다했다고 하지 말고, 남은 어른 아홉 명이 빠진 아이 아홉 명을 구하러 들어가지 않으면, 당신은 다시 또 들어가야 한다고 말하는 지점을 비판한다. 내 몫을 다했어도 더 해야 한다고 말하는 싱어와 그러지 말고 모두가 공평하게 짐을 져야 한다고 말하는 애피아가 충돌하는 지점이다. 이 부분에서는 나도 싱어보다는 애피아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의식 있는 개개인 몇몇이 뛴다고 일이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뛸 수 있는 방법을 찾는 쪽에 촛점이 맞추어져야 한다.  

  그러나, 싱어가 감성에 호소하는 주장을 편 데 비해, 애피아의 비판이 이성에 의거하고 있어 애피아의 비판이 핀트가 살짝 어긋났다고 말할 수는 있다. 싱어는 단지 그만큼 절박하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 절박함에 대해 이성으로 비판을 가하는 것은 가혹하다. 애피아는 또 싱어가 - 책에선 엉거를 언급한다 - 빌게이츠의 기부 행위에 찬사를 보낸 것에 대해서, 그런 빌게이츠의 행위도 그가 그만한 위치에 올랐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니, 모든 사람들에게 매사에 돈을 내라고 말해선 안된다고 한다. 부가 부를 벌기 때문이고, 저축을 꾸준히 해서 나중에 기부를 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나는 애피아의 생각에 반대한다. 빌게이츠가 부자가 되어 기부를 하는 반면, 부자가 되어도 그만한 기부를 하지 않는 대기업 총수들은 그보다 훨씬 더 많다. 기부는 그때그때 하는 것이지, 나중에 몰아서 하겠다는 생각은 오히려 기부 문화를 더 죽이게 될 것이다.  

  애피아와 싱어. 둘다 세계시민주의적 가치관을 가지고 있고, 세계의 빈곤을 없애는 데에도 관심을 갖고 있다. 싱어가 좀더 적극적으로 개인의 실천을 요구한다면, 애피아는 그보다는 시스템 상의 개선에 주목한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애피아는 싱어를 비판했지만, 크게 봤을 때 도달하고자 하는 지점이 같다고 볼 수 있다. "만약 우리가 세계시민주의의 도전을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우리의 대표자들에게 그런 이방인들을 기억해 달라고 말할 것이다. 이방인들이 겪는 고통에 우리 마음이 움직이기 때문이 아니라, (스미스가) "우리 가슴속에 자리 잡은 이성, 원칙, 양심"이라 부른 것들에 반응하기 때문이다. 가장 부유한 나라의 국민들이 실천을 더 잘할 수 있다. 이것은 단순한 도덕적 요구다. 그러나 만약 우리의 문명을 더욱 세계시민주의적으로 만든다면 더 넓은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그런 도덕적 요구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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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큐리 2009-09-16 1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군요.. 기회가 되면 이것도 일독해야 겠어요...ㅎㅎ

마늘빵 2009-09-16 13:47   좋아요 0 | URL
^^ 싱어에 관한 부분은 책에서는 뒷쪽에 적은 분량을 할애했습니다. 그걸 주로 쓰긴 했지만.
 
대한민국 10대를 인터뷰하다
김순천 지음 / 동녘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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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청소년들의 희망과 꿈, 자유와 좌절에 관한 이야기." 한번쯤 이런 기획이 필요했다. 암울한 10대들의 인터뷰를 동녘이 책으로 엮었다. 여기 인터뷰이로 참여한 청소년들은 10대들 중 '암울한 일부'가 아닌, '암울한 모든' 10대들을 대변한다. 우리가 뉴스나 신문으로만 알고 있던, 보도와 기사로 전해져오는 무미건조한 사실들은, 여기엔 없다. 여기에서 함께 살아가는 힘겨워하는 우리 곁의 사람들만 존재한다. 현실이 이 정도일까, 물음을 던져보면서도, 이런 물음을 던지는 것 자체가 현실을 외면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열네 명의 10대가 책에 이름을 올렸다. 2년 전의 인터뷰라고 했던가. 지금 자라서 대학생이 된 아이도 있고, 자신의 꿈을 한번 접고 아르바이트를 하는 아이도 있고, 여전히 괴로워하며 학교에 남아있는 아이도 있다. 2년 전과 달리 그들의 신분이 중학생에서 고등학생, 고등학생에서 대학생, 혹은 여전히 자퇴한 소년소녀일지라도, 그들의 방황은 여전히 진행중이다. 선생님들마다 두발 규정이 달라서 아무리 깎고 또 깎아도 불려가서 맞고 머리카락을 잘리기도 하였고, 심지어는 머리를 기르면 나라 경제가 망한다는 소리까지 들었다.  

  수업 시간에 맞기 싫어서 공상을 하는 건 애교다. 나도 고등학교 3년 동안 공상을 무척이나 많이 했다. 공상을 하다 지겨우면 노트에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창밖을 보거나, 머리를 책상에 박는 행위는 바로 제재 당한다. 나름 모범생'이었다고' 그래도 봐주는 선생님들이 많았다. 원래 모범생이 아니었던 친구들에겐 가차없었다. 어쩌면 나를 자꾸 봐줘서 내가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학교가 감옥인 건 여전한가보다. 아니, 요즘 아이들을 보면 오히려 그때보다 더 나쁜 상황에 놓여있는 것 같기도 하다.

  중학교 3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 나를 불렀다. "OO야, 정석 공부하고 있니?", "네? 정석이 뭐에요?", "아니다... 됐다. 교실로 가봐." 당시 선생님와 나의 짧은 대화다. 지금은 더 심하지만, 당시에도 선행학습이란 게 있었다. 이건 누구의 말마따나 학원이 만들어낸 최고의 상품이다. 선생님은 내게 고등학교 수학 과정을 공부하고 있냐고 묻고 있었고, 나는 거기에 대고 그게 뭐냐고 묻고 있었다. 선생님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내가 이 짧은 대화를 기억하고 있는 건, 그 선생님이 고마웠기 때문이다. 내게 그걸 아직도 공부하지 않고 있으면 어쩌냐고 말했다면, 그 선생님에 대한 나의 기억이 달라졌을 것이다. 

  책 속에서 어느 학부모가 전한 이야기다. '중학교에 들어간 뒤' 친구가 그랬단다. "수학 어디까지 나갔어?", "아무것도 안 나갔는데", "너 그렇게 공부하면 서울에 있는 대학도 못 들어가", "너 왜 이렇게 망가졌냐" 그날 그 아이는 펑펑 울었다. "엄마, 때려서라도 공부를 시키지 그랬어?" 더 이상 읽지 못하고 책장을 덮었다.

  학생에서 선생으로 신분 탈환을 한 지난 3년 간, 나는 학생들에게 어떤 선생이었을까. 그걸 선생이 아닌 지금에서야 생각해보고 있다. 나름 한다고는 했지만, 돌이켜보면 못난 부분이 많았다. 차별을 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 성적이 아닌 다른 것으로 - 차별을 했던 것 같고, 매를 들지 않겠다고 했지만 결국 매를 들었고, 감정을 절제한다고 했지만 감정을 실어서 때리기도 했다. 다 못난 탓이다. 마음만큼 현장은 쉽지 않았다. 아이들 탓으로 돌리고 싶진 않다. 내 탓이었다. 좀 더 인격적으로 훌륭하고, 준비된 선생이었다면 달랐을텐데. 다행히 난 미숙한 그 모습을 뒤로 선생을 하고 있지 않지만, 학교엔 그 당시의 나보다 훨씬 더 경력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훨씬 더 미숙한 선생들이 쎄고 쎘었다.  

  우리네 선생들은 보고 배운 것이라고는 본인의 학창 시절밖에 없어서 다 거기서 거기인가보다, 하고 생각한다. 이 책을 읽어보면 뉴질랜드나 덴마크 등에서 공부하다 온 아이들은 한국의 학교에 적응을 하지 못하고 밖으로 돈다. 자율주의에서 규제주의의 영역으로 넘어온 그들이 적응할 수 없는 건 당연한지도 모른다. 이곳에서 그곳으로 갈 수는 있어도, 그곳에서 이곳으로 오는 건 애초 불가능했는지도. 대안학교와 일반학교를 놓고 어디를 갈까 고민하는 학생도 다르지 않다. 대안학교로 가면 일반학교에 돌아와 적응하기 힘들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이 고민은 한없이 길어지기만 한다.  

  참 다양한 환경에 처해있는 학생들이 나온다. 어떤 아이는 돈을 벌려고 아르바이트를 하고, 어떤 아이는 타워팰리스에 산다. 그러나, 그 아이도, 이 아이도, 고민이 많다. 힘들다. 주어진 환경은 달라도 모두가 힘들다. 강남 아이라고 다르지는 않다. 강남의 한 정신과 의사는 강남 학교에 가서 현장 조사를 해보고 놀랐다고 한다. 혼자서 끙끙 앓고 있던 녀석들이 많았던 것이다. 강남 학부모들의 등쌀에 못이겨 고통스러워 했던 것이다. 통보했더니 알아서 찾아왔단다. 스스로 알고 있는거다. 그러나 아무도 그 아이들을 건드려주지 않았던거다. 한번만 말을 걸어주면 되는데. 

  우울한 청소년과 우울한 사회다. 이 아이들은 힘들어하면서도 대학은 끝끝내 놓치지 않으려고 한다. 왜 대학에 가야 하냐고 물으면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이란다. 이게 초등학생과 중학생이 하는 대답이다. 누가 이렇게 만들었을까. 나 어릴적만해도 친구들은 꿈이 많았다. 변호사, 의사, 판사는 물론이고 소방관, 경찰, 대통령, 간호사, 유치원 선생님, 무용가 등 참 다양한 직업이 나왔다. 그땐 변호사를 하고, 의사를 하려고 해도 그 이유가 '돈을 많이 벌기 위해서'는 아니었다. 그러나 이제, 나오는 직업도 제한되어 있지만 그 직업을 가지려는 이유도 똑같다. 우리들의 잘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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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09-09-15 08: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적극적인 통제 집단의 역할을 하던 학교가 변하고 있습니다. 그 통제에 불안감을 느끼는 집단도 있겠지요. 남자 고등학교인 우리 학교도 여교사 비율이 65%가 넘어서고 있습니다. 예전처럼 억압과 통제 일변도의 학교를 유지하는 일은 불가능합니다. 관리자의 경영 마인드가 정말 필요한 시점인데... 아래로부터의 변혁... 그건 단위학교에서 일어나야 하는데요... 예전같이 교사모임도 없어서...(교사 집단이 20년 전부터 그대로 늙어오고 있거든요.) 앞길이 깜깜합니다.

마늘빵 2009-09-15 09:08   좋아요 0 | URL
네, 단위 학교에서, 학교 내 선생님 개개인이 변화하지 않으면, 10년 후에도 바뀌지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너무 아닌 교사들이 많이 있죠. 교사로서뿐 아니라 인간으로서도 아닌 사람들이.

카스피 2009-09-15 1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스승으로서의 선생님보다 강사로서의 선생님이 더 많은것이 현실이지요.학교도 학부모도 모두 스승보다는 강사를 더 원하고 선생님들도 스스로 강사가 되어가는 것이 어찌보면 정말 안타깝습니다.

마늘빵 2009-09-15 19:28   좋아요 0 | URL
네, 스승보다 강사가 많고, 그나마도 제대로 된 강사 노릇도 못하는 직업 교사들이 많죠. -_- 현실이 또 그래요. 말씀하신대로 서로 원하는 게 같으니. 교사는 학부모가 원하니 애들 인성교육이다, 전인교육이다 신청 안쓰고 '기능'적인 역할을 하고. 상처입는 건 결국 애들이죠. 집에서나 학교에서나. 고민 있으면 선생님 찾아와라, 라는 말은 이제 안 통합니다.

BRINY 2009-09-15 1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학생들도 변하지만, 학부모도 많이 변했다고 느낍니다.

마늘빵 2009-09-15 19:28   좋아요 0 | URL
네. 애들 위해서 힘써봐야 학부모한테 욕만 먹습니다.
 
대한민국 10대를 인터뷰하다
김순천 지음 / 동녘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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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초등학생을 만나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어요. 공부하고 싶니? 하고 물으니 하기 싫대요. 공부 안 하고 뭐 하고 싶어? 하고 다시 물었죠. 그래도 공부는 해야 한 대요. 대학은 가야 하니까. 이게 초등학교 3학년생 입에서 나온 대답이에요. 좋은 대학에 들어가서 뭐 하려고? 그래야 돈을 많이 벌죠.
돈이 전부라는 배금사상을 지적하는 게 아니에요. 공부를 못해서 원하는 대학을 못 가면 인생이 꼬인다는 생각을 어릴 때부터 한다는 게 문제죠. 누구나 어릴 때 꿈이 있잖아요. 교수, 과학자, 영화감독, 가수, 파일럿 …. 이렇게 미래상이 다양해야 정상이잖아요. 뭘 하면서 사느냐가 아니라, 돈을 못 벌면 인생을 망친다는 한 가지 생각만 하는 거예요. (김세호 강남 정신과 의사)-71쪽

강남 애들의 문제는 부모와 밀접한 관련이 있어요. 두 그룹의 부모가 있는데, 한쪽은 너무 많이 개입해서 아이를 괴롭히고, 한쪽은 실제로 어려움이 닥치면 그냥 방치하는 쪽이에요. 부모들이 전문의와의 상담을 부정적으로 보는 까닭은, 애가 마음만 다잡으면 공부를 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에요.
자식이 공부를 못하는 건 마음을 못 잡아서 그런다고 생각해요. 아이가 겪고 있는 어려움을 스스로 해결하도록 떠맡기고 있는 셈이죠. 해결 방안이라고 해봐야 좋은 과외 선생을 붙여주거나 다른 학원을 알아보는 정도죠. 정작 아이가 무엇 때문에 힘들어하는지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아요. -73쪽

다른 사람과 경쟁을 시작하면 교육은 위험해집니다. 교육은 평등과 연대의 원리에 기반한 협력이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이런 평등과 연대에 기반한 핀란드 교육은 최상위권 학생에게만 수혜가 몰리는 한국과는 달리 자원에 골고루 분배되어 학생들 간, 학교 간 수준 차이가 크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자신이 가고 싶은 학교를 아무 곳이나 자유롭게 갈 수 있죠. 특정 학교에 가려고 목을 맬 필요가 없는 겁니다. (성열관 경희대 교수, 교육과정)-126쪽

보고 싶은 책이 있으면 보라고 했어요. 제 나름으로 아이에 대한 자신감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중학교 올라가서 어느 날 아이가 막 울면서 오더군요. 사회 시간에 선생님이 질문을 하는데 자기는 6학년 정도 수준으로 책에서 배운 내용밖에 모르는데, 다른 애들은 중3, 고등학교 수준으로 대답을 하더래요.
또 초등학교 때부터 알고 지낸 남자아이가 내 딸에게 "수학 어디까지 나갔어?"하고 물었대요. "아무것도 안 나갔는데" 그랬더니 어떡하려고 그러냐면서 자기는 <수학정석>을 한 대요. "너 그렇게 공부하면 서울에 있는 대학도 못 들어가."
그래서 딸아이가 다른 친구에게 물었더니 정말 <수학정석>을 배웠다고 해요. 또 어떤 친구는 딸에게 "너 왜 그렇게 망가졌냐" 그랬대요. 집에 온 딸이 울면서 "엄마, 때려서라도 공부를 시키지 그랬어?"라고 하더군요. -162-16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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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9-09-14 19: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절망적이어요. 제 꿈은 언제든지 자유롭게 여행하고, 비오는 날 창가에서 커피 마시는 사람이 되는 거였는데.

마늘빵 2009-09-14 22:17   좋아요 0 | URL
주어진 조건이 다른 여러 아이들이 나오는데, 하나같이 절망적이죠. 특별히 절망적인 아이들을 데려다가 인터뷰했다기보다는 아무나 데려다가 인터뷰를 해도 똑같은 대답이 나올 그런 현실이라는 게... 더.

머큐리 2009-09-14 2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애들 기르는 사람으로 보기도 무섭다는...그래도 한번은 봐야 되겠다는 생각이..에고

마늘빵 2009-09-14 22:29   좋아요 0 | URL
이건, 학부모랑 학생이랑 선생들은 보면 좋겠더라고요. 꼭,은 아니지만 그래도 보면 현실을 인식하게 돼요. 어설프게 기사로 알고 있던 이야기들을 생생한 목소리로 들으니 참, 깜깜하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