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시민주의 - 이방인들의 세계를 위한 윤리학 우리 시대의 이슈 총서 1
콰메 앤터니 애피아 지음, 실천철학연구회 옮김 / 바이북스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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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알고 있고 영향을 줄 수 있는 개개인이 있다면 우리는 그에게 책임의식을 느껴야 한다. -18쪽

모든 인간은 동일하다.(아우렐리우스)-20쪽

세계시민들은…지구의 모든 사람을 단일한 가계의 자손으로 간주하고 세계를 하나의 국가로 간주한다. 다른 수많은 합리적 존재와 더불어 세계시민들은 한 국가의 시민들로서, 자연의 일반 법칙에 따라 전체의 완전성을 함께 도모하면서도 각자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자신의 복지에 몰두한다.(<토이체 메르쿠어>지에 게재된 ‘독일의 볼테르’라 불리던 크리스토프 빌란트의 1788년 논문에서)-21쪽

전쟁을 없애려면 애국주의를 없애라.(톨스토이)-23쪽

세계시민주의는 다음과 같은 단순한 생각에서 출발한다. 민족 공동체에서처럼, 인류 공동체 차원에서도 공존의 습성을 길러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때 공존의 습성은 함께 살아가기와 연대하기를 위한, 전통적 의미에서의 대화다. -27쪽

친절이라는 개념 그 자체는 가치를 담고 있으며, 따라서 행위 지침이 된다.-76쪽

나는 자신의 믿음과 욕망에 따라 행위하는 개인에서 출발했다. 거기에서 출발했다면, 그런 한 개인으로서 내가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설명해야 한다. 그러나 가치들이 어떻게 작용하는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개인으로서의 우리를 이끄는 것이라고 가치들을 파악할 게 아니라, 자신의 삶을 다른 이들과 공유하려고 하는 사람들을 이끄는 것이라고 가치들을 파악해야 한다. -77쪽

의미란 머릿속에 있는 것이 아니다.(힐러리 퍼트넘)-77쪽

사람들은 흔히 상대주의가 우리를 관용으로 이끌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상대주의를 권고 한다. 그러나 우리가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행하는 것이 옳은지 서로에게서 배울 수 없다면, 우리 사이의 대화는 무의미할 것이다. 그와 같은 상대주의는 대화를 장려하기는커녕, 단지 우리를 침묵하게 할 뿐이다.
-83쪽

실증주의자는 다음과 같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즉 우리가 사실에 관해 의견을 달리할 때 우리는 사물의 존재 방식을 통해 해결할 수 있지만, 가치의 경우에는 우리 주장을 일치시켜 줄 아무런 근거도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이런 생각을 인정한다 해도, 어떤 식으로든 세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세계의 존재 방식에 대해 우리가 합의할 수 있다는 것을 보증해 준다고 생각할 자격을, 우리는 과연 무엇으로 얻을 수 있겠는가? 우리는 최종적인 합의를 상정하지 말고 이웃이 됐든 이방인이 됐든 모든 사람과 대화해야 한다. -102-103쪽

우리는 가치를 평가하는 언어를 공유하지 못할 수 있고, 동일한 언어를 다르게 해석할 수 있으며, 동일한 가치에도 무게중심을 달리 둘 수 있다. -138쪽

주체나 시민으로서 우리들이 정치적으로 공존할 수 있는 이유는 어떤 관행의 정당성에 대해서는 의견을 달리하더라도 적어도 관행 자체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 있기 때문이다.-143쪽

우리는 왜 그것이 옳은지에 관해서는 동의하지 않더라도, 무엇을 해야 할지에 관해서는 동의할 수 있다. -145쪽

우리가 직관적으로 옳다고 생각하는 많은 것들을 옳은 것으로 간주하는 이유는 바로 그것들이 우리에게 익숙하기 때문이다. -147쪽

수학에서는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익숙해질 뿐이다.(폰 노이만)-165쪽

대화는 어떤 것에 대한 합의, 특히 가치에 대한 합의에 도달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서로에게 익숙해지도록 도움을 주는 것으로도 충분하다. -166쪽

신뢰할 수 있는 세계시민주의라면 차이에 대한 존중을 실제의 인간에 대한 존중과 조화시킨다.-207쪽

당신은 내가 당신이 좋아하는 일에 대해 단순히 참견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걱정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만약 당신이 좋아하는 일이 옳다면 나는 당신을 따라 할 것이고, 그르다면 그른 것을 바로잡을 것이다.(크레메스)-207쪽

우리 세계시민주의자들은 모두가 이미 보편적 진리를 갖고 있다고 확신하지 않더라도 보편적 진리를 믿고 있다. 그것은 우리를 안내하는 진리 이념에 대한 회의론이 아니라, 진리를 발견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에 대한 실재론이다. 그러나 우리가 고수하는 하나의 진리는 바로 모든 인간은 다른 모든 인간에 대한 의무를 가진다는 것이다. 모든 사람은 소중하다. 이것이 우리의 핵심 이념이다. 그리고 이것이 관용의 범위를 명확하게 한정한다. -252쪽

도덕은 철학자들의 발명품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 거의 모두의 전망이거나, 전망의 일부다.(버나드 윌리엄스, <윤리학, 그리고 철학의 한계>)-263쪽

사회에서 자신이 속한 작은 집단을 사랑하는 것이야말로 공적 관심을 표현하는 제1원리다.(에드먼드 버크)-265쪽

세계시민주의에 대한 진정한 도전은 다른 사람들이 결코 중요하지 않다는 신념이 아니라, 그들이 특별히 중요한 존재는 아니라는 신념이다. 우리가 이방인들에게 ‘어떤’ 의무를 가진다는 것은 쉽게 합의할 수 있다.-266쪽

3억 명의 인간들이 하루 2달러로 살아가는 반면, 유럽의 소는 하루 평균 2.5달러의 특별세로 살고 있다.(전 세계은행 총재 울펀슨)-292쪽

만약 우리가 세계시민주의의 도전을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우리의 대표자들에게 그런 이방인들을 기억해 달라고 말할 것이다. 이방인들이 겪는 고통에 우리 마음이 움직이기 때문이 아니라, 스미스가 "우리 가슴속에 자리 잡은 이성, 원칙, 양심"이라 부른 것들에 반응하기 때문이다. 가장 부유한 나라의 국민들이 실천을 더 잘할 수 있다. 이것은 단순한 도덕적 요구다. 그러나 만약 우리의 문명을 더욱 세계시민주의적으로 만든다면 더 넓은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그런 도덕적 요구가 될 것이다.-29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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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플러 & 엘륄 : 현대기술의 빛과 그림자 지식인마을 4
손화철 지음 / 김영사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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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적 기술과 현대 기술의 차이 요약
첫째, 전통적인 기술은 다른 상위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서 만들어지고 사용되었다. 이에 반해 현대에는 기술 발전 자체가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둘째, 전통적인 기술 활동에서는 도구보다 장인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 현대에는 좋은 기계를 가지는 것이 좋은 결과와 직결된다.
셋째, 전통적 기술은 그 당시의 문화적, 종교적 환경에 영향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한 지역의 기술이 다른 지역으로 옮겨지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반면에 현대 기술은 문화와 종교를 뛰어넘어 빠른 속도로 퍼진다.
넷째, 전통 사회에서는 특정 기술의 사용이 필수적인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현대 기술은 하나의 거대한 시스템을 이루어 거기에 맞지 않는 자를 배척하는 경향이 있다. -84-85쪽

현대 기술의 특징들
1. 기술 선택의 자동성
2. 자기 확장성
3. 일원주의
4. 개별 기술들의 필연적 결합
5. 보편성
6. 자율성-86쪽

(기술의 자율성은) 기술 발전의 속도와 규모가 너무 커져서 사람의 주체적인 결정이 별로 의미가 없어졌다는 뜻이다. 기술 개발자에게는 시장의 상황과 경쟁의 논리에 휩쓸려 자기가 왜 그 기술을 개발하는지 생각할 여유가 없다. 게다가 최첨단 기술은 수많은 세부 기술의 집합체이기 때문에 개별 공학자가 수행하는 연구나 작업은 전체 프로젝트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그렇게 개발된 기술을 사용하는 소비자 역시 자신에게 그 기술이 필요한지 아닌지를 결정하기도 전에 이미 그 기술을 사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만들어진다. -89쪽

현대 기술이 자율적이라는 주장은 기술이 하나의 거대한 시스템을 이룬다는 주장과 연결되어 있다.-92쪽

그(엘륄)의 주장에 따르면, 기술 시스템은 인간의 자율성에 반하는 방식으로 점점 공고해진다. -93쪽

위험 사회(Risk Society)라고 해도 모두가 똑같이 위험에 노출되는 것은 아니다라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전기에 심하게 의존하는 사회에서 정전이 일어났을 때, 부자들은 상대적으로 대비를 잘할 수 있으나 가난한 사람들은 그렇지 못하다. 따라서 재산의 보유 정도에 따른 불평등뿐 아니라 위험에 노출되는 정도에 따른 불평등도 고려해야 한다. 또 일단 그 위험이 현실로 드러나게 되면, 그것이 초래할 결과의 끝이 어디일지는 아무도 모른다. (울리히 베크의 주장)-99쪽

엘륄은 기술 발전은 과거에 종교들이 가졌던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과거에 종교가 모든 문제에 궁극적인 해결책이 되었던 것처럼 현대에는 기술을 궁극적인 해결책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질병이나 육체적인 고통의 문제가 기술을 통해 해결될 것이라는 믿음은 물론이고 세계 평화와 인류의 공존을 위해서는 기술의 발전이 필수적이라는 믿음이 널리 퍼져 있다. 이러한 믿음은 인류의 진보와 기술의 진보를 동일시하는 데서 비롯된다. 기술의 진보가 필연적인 이유는 그것을 포기하면 더 나은 세상을 이루려는 노력을 포기하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101쪽

"전 지구적으로 생각하고 지역적으로 행하라(Think Globally, Act Locally)!"
(환경주의자인 르네 두보스가 1972년에 개최된 UN 인간환경회의에서 말했다는 설과, 역시 환경주의자인 브로어가 환경 보호 단체 ‘지구의 벗’을 설립하며 내건 슬로건이라는 설이 있고, 이것을 엘륄이 사용하며 널리 알려짐.)-103쪽

근대의 사상가들은 존재자들의 존재를 가능케 하는 신비롭고 초월적인 질서나 인간의 영역을 벗어난 진리가 있음을 부인하고, 이성적인 인간 주체를 절대화했다. 존재자들이 진리를 인간이 밝혀내고, 그 상호연관성과 전체적인 질서까지 인간이 부여한다고 보기 시작한 것이다. 하이데거에 따르면 이렇게 존재의 드러냄을 망각한 것의 최종 결과가 바로 현대 기술이다. (중략) 문제는 이 닦달의 대상이 자연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기술 사회에서는 사람들 역시 부품으로, 에너지의 출처로 전락하고 만다. 기계 부속처럼 인간도 잔뜩 쌓아놓고 필요하면 가져다 사용하고 시간이 지나면 버린다. 근대 이후의 인간은 모든 것을 지배하려 하지만, 그 지배의 대가는 자기 자신의 철저한 대상화다.

닦달 : 하이데거 용어로 현대 기술이 존재하는 것들의 특성과 다양한 측면들을 무시하고 그들 각각의 의미를 기술적 맥락에서만 한정하는 경향 -108-109쪽

후기 산업 사회에서는 기술적 합리성이 인간 삶의 모든 부분에 적용되게 되기 때문이다. 효율성을 극대화시키기 위해서는 모든 요소들이 계산되어야 하고 계산될 수 없는 것들은 없는 것으로 치부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개인의 창조성이나 자율성은 시스템의 효율적인 관리를 위해 희생될 수밖에 없다. 이렇게 창의성이 희생된 개인들을 ‘일차원적 인간’이라고 부르고, 이런 사람들을 양산하는 사회를 ‘일차원적 사회’라 부른다.(마르쿠제의 주장)-112쪽

엘륄이 자율적 기술 개념을 통해 현대 기술의 발전이 인간의 사회, 문화, 경제, 윤리 등에 좌우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했다면, 포스트먼의 테크노폴리 개념은 기술 사회의 현 상황, 즉 기술이 인간의 사회, 문화, 경제 전반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를 서술하고 있다. 포스트먼은 사람들이 현대 기술의 영향력이 어떤 것인지를 깨달으면 현상황을 극복할 수 있다고 보고, 예술과 역사 교육을 통한 ‘인간성의 상승’이 필요함을 강조한다. -114-115쪽

(포스트먼이 말하는) 새로운 기술을 접할 때 던져야 할 질문들
1. 이 기술이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가 무엇인가?
2. 그 문제는 누구의 문제인가?
3. 그 해결책으로 피해를 받는 개인이나 집단이 있다면 그 중 가장 큰 피해를 입는 것은 누구인가?
4. 그 문제를 해결하면 생길 수 있는 또 다른 문제는 무엇인가?
5. 그런 기술적 해결을 통해 부나 권력을 가질 것으로 보이는 개인이나 집단은 누구인가?
6. 새로운 기술 때문에 생기게 되는 언어의 변화는 어떤 것이 있으며, 그 변화를 통해 얻는 것과 잃는 것은 무엇인가?-115쪽

보르크만은 삶의 맥락과 동떨어진 채 효용만을 제공하는 현대 기술을 가지고는 이상적인 공동체나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도 없다고 주장한다. 기술과 그 혜택이 우리의 삶을 둘러싸 결국은 삶의 맥락 자체가 없어지게 되는 셈이고, 따라서 인간 고유의 의미와 가치는 사라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보르크만은 단순 반복적이고 노동 집약적인 작업들은 기계에 의존하되, 창조적인 행위들은 되도록 인간이 직접 할 수 있는 이원적 시스템을 제안한다. 기술은 인간의 창조성과 의미를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만 개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117-118쪽

왜 기술의 민주화가 필요하고 어떻게 정당화되는지 간단히 설명할 수 있다. 즉, 현대 기술은 워낙 돈이 많이 들어서 기업이나 국가가 개입하지 않고서는 개발되기 힘들고, 그 규모도 크기 때문에 만약 문제가 발생하면 수많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힐 가능성이 많다. 따라서 국민은 세금을 내는 사람으로서, 혹은 일정한 위험(risk)에 노출되는 사람들로서 자신들의 의지와 의견을 밝힐 권리가 있는 것이다.-130쪽

기술의 경제학에서는 한 가지 기술을 개발할 때 처음 목표한 단기간의 경제적 가치가 확보되기만 하면 그 기술 때문에 생기는 여러 가지 다른 문제들은 차후에 다른 방식으로 처리하면 된다는 사고방식을 취한다. 전기가 필요하면 일단 발전소를 짓고, 그로 인해 생기는 문제는 문제가 발생한 다음에 해결하면 된다는 것이다. (중략)
밴더버그는 기술의 경제학이 정기적인 안목에서 볼 때 결코 경제적이지 않다고 주장한다. 보다 폭넓은 시각으로 기술을 발전시키고 경제를 성장시킨다면 당장은 발전의 속도가 느려 보이더라도 궁극적으로는 훨씬 더 적은 비용으로 효율적이면서도 인간적인 기술, 쾌적한 사회, 그리고 건강한 생활권을 만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기술 발전에 있어 인간적, 사회적 가치까지를 모두 고려한 예방적 접근을 시도해야 한다고 역설하는데, 이러한 입장을 기술의 경제학과 대비시켜 기술의 생태학이라고 이름 붙인 것이다. -152쪽

지식은 주어지는 정보를 받아들이는 것이지만 반성하는 것은 그 정보를 보다 폭넓은 식각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157쪽

전문가들은 기술 발전의 방향 설정에 있어 남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따라서 개인적으로 이상적인 사회가 어떤 모습일지에 대한 고민이 있어야 하고, 자신들의 일이 자신들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사회의 모습과 어떻게 연관되는지 규명해보아야 한다. 나아가 필요에 따라서는 자신의 생각을 남들에게 설명하고 그들을 설득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가져야 한다. 이 경우 이상적인 사회에 대한 상상은 요순시대나 성경에서 묘사하는 천국의 모습보다는 훨씬 더 구체적이어야 할 것이다. -16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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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09-09-11 18: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고삼때 제삼의 물결 읽고 눈물을 흘리며 새세상을 알았다고 뛰어다녔으나..
그 이후 이 아저씨가 아무리 봐도 사기꾼 같더라는 ㅎㅎ

아프님도 재미없어보이는 책을 잘도 읽는다.
신기해요.

마늘빵 2009-09-11 22:55   좋아요 0 | URL
제삼의 물결은 대학1학년 때 그 두께에 놀라서 한번 들었다 놓고, 몇장을 넘기다 재미없어서 다시 들었다 놓고 결국 안 읽었다지요. ^^ 알게 된지 얼마 안된 엘륄이 토플러보다 훨씬 매력적입니다. 둘은 극단에 있어요. 그래서 저 둘을 비교한 거고요.

나는 재미없어 보이는 - 보기에만 - 이 책이 무지 재밌었다지요. ^^ 엘륄과 마르쿠제를 더 읽어 보고 싶어요.

무해한모리군 2009-09-12 00:54   좋아요 0 | URL
응 나도 마르쿠제를 더 읽고 보고싶어요. 생각보다 재미있나봐요

마늘빵 2009-09-12 17:41   좋아요 0 | URL
재미없을 수도 있어요. :p
 
과학기술과 사회윤리
홍경남 지음 / 철학과현실사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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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은 그 지식으로서의 보편성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나타내고 체계화하는 방법에서 민족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다. 따라서 과학을 체계화하고 교육하는 길은 민족에 따라 서로 다르게 구성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10쪽

한국의 과학 기술은 극도로 전문적이고 폐쇄적이며 비사회적인데, 이는 전통적인 한국 사회에서 과학 기술 담당 계층의 의식 구조를 차지한 ‘중인 의식’의 잔재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한다. 중인은 양반과 상민의 중간 위치에서 어느 편에도 속하지 않고 나름대로의 독자적인 지위를 누리면서 전문적이고 폐쇄적인 집단을 형성하였고, 그래서 스스로 사회와는 유리된 존재라는 의식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한 의식들이 우리 학문 사회에 ‘문과’와 ‘이과’라는 두 가지 문화를 형성하게 하였고, 이 두 가지 문화는 다만 상상 속에 존재하는 허상임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지속적으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저자가 [김영식, ‘한국 과학의 특성과 반성’, <근현대 한국 사회의 과학>, 창작과비평]을 옮기며) -10-11쪽

우리의 언어는 다만 세계를 기술하거나 서술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종류의 가치를 가지고 세계를 평가한다. 이렇게 사실과 가치가 얽혀 있음을 직시할 때야 (사실에 관한 지식은 가치에 관한 지식을 가정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비로소 우리는 좁은 과학적 세계관에서 벗어나 과학적 실천의 모습을 제대로 그리고 합당하게 그려낼 수 있다.-19쪽

도덕 내지 윤리는 인간 사회의 유지를 꾀하는 것이기에,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인 옳음(정의, 공정)의 기준과 좋음(행복, 선)의 기준을 담아낼 수밖에 없다. 또한 그러한 기준 설정은 특정 사회에만 적용되는 관습을 넘어서 누구나 합리적으로 동의할 수 있는 보편적인 성격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인간은 누구나 좋음을 추구하고, 이러한 좋음을 보편적으로 실현하기 위하여 옳음은 필수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윤리학은 바로 이러한 좋음이나 옳음의 보편적 기준에 대한 반성적 학문이다. -50쪽

나는 그들과 수많은 대화를 나누고 그들을 이해한다. 이러한 대화와 이해가 가능한 것은 우리 모두가 자유로운 존재임을 서로 알고 있다는 뜻이다. 자유가 없다면 모든 일은 자동적으로 이루어질 것이요, 우리의 행위에 대한 근거나 이유를 찾아 대화하고 이해하는 일은 아무런 쓸모도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우리의 자유를 기초로 하여 좋고 나쁜 것과 옳고 그른 것을 가리고 판별하게 하는 삶의 지혜를 찾는 것이 바로 윤리학의 기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56-57쪽

도덕다원주의자는 모든 상충하는 도덕적 체계를 평가할 수 있는 하나의 기준이란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도덕다원주의는 여러 다른 도덕적 입장들을 존중하면서도 그것이 모두 똑같은 지위를 갖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중략)
도덕 규범은 그것이 나온 사회 역사적인 맥락에 의거해서만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을 고려하면서도 인간의 가치와 관련하여 어떤 종류의 합리적 평가나 비판도 있을 수 없다는 도덕상대주의의 견해와는 달리 도덕다원주의는 객관적인 가치의 세계가 있음을 받아들인다. -92쪽

도덕상대주의자와 도덕다원주의자는 둘 다 도덕적 다양성과 차이를 인정하면서 좋은 삶을 위한 단일한 포괄적 기준이나 가치 체계나 도덕적 기준이 있을 수는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아무리 극악한 도덕 체계라도 받아들이는 이가 있다면 그것을 배제하지 못하는 도덕상대주의와는 달리, 도덕다원주의자는 공통적인 인간성의 측면에 비추어 그러한 것을 배제할 수 있다. 도덕상대주의는 상충하는 도덕적 주장을 판정할 수 없게 하지만 도덕다원주의에서 그러한 충돌의 정도는 완화될 수 있고 상충하는 도덕적 주장들을 저울질하여 합의에 이르게 할 수 있다. 도덕적 가치들은 우리의 공통적인 인간성의 측면에 비추어 서로 비교할 수 있다. 보편적 가치는 없지만 인간 사회를 존속하게 하는 최소한의 가치는 있다. 그리고 이러한 가치는 인간의 한계 안에 있는 것이다. -92-9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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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하는 테크놀로지 - 과학기술학자들 '기술'을 성찰하다
손화철 외 지음 / 동아시아 / 2009년 3월
절판


기술은 단일한 어떤 것으로 보지 않고, 그 안에 무한한 다양성 그리고 삶의 조건과 결부되는 다양한 조합 가능성이 있음을 인식하는 것이 이 책의 저자들이 공유하는 정신이다. 요약하자면 ‘기술은 어디에나 있으며 무수히 다양한 방식으로 우리 삶과 관계한다’ 정도가 되겠다. -9쪽

하이데거에게 기술이란 인간이 세계를 특정한 방식으로 대하는 태도이다. 세상의 존재들을 인간에게 유용한 자산으로 변형시키기 위해서는 이에 대한 지식이 필요한데, 이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 과학이다. -16-17쪽

기술은 물질적 생산에 관련되어 있으며, 인위적으로 무엇을 만들고, 이를 통해서 인간의 가능성과 목적하는 바를 확장한다. (중략)
우리가 기술을 만들지만, 기술은 우리 경험과 인간관계 및 사회적 권력관계를 바꿈으로써 우리를 새롭게 만든다. 어떤 기술은 인간 사회를 더 민주적으로 만드는 데 기여하지만, 다른 기술은 독재자의 권능을 강화한다.-17쪽

근대 기술은 인간 몸의 연장이라기보다는 자연을 대체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전근대 기술이 인간의 노동을 도와주는 ‘도구’였다면, 근대 기술은 인간의 노동을 종속시키는 ‘기계’의 외양을 지닌다. -20쪽

기술과 사회의 경계가 불분명해지면서 기술의 진보가 사회의 진보로 자동적으로 해석되기도 한다.-21쪽

어떤 노인이 밭일을 하고 있었다. 항아리를 안고 힘들게 물을 떠오고 있었다. 이를 본 젊은이가 왜 편리한 ‘기계’를 쓰지 않는지 물었다. 그러자 대답하기를 "기계는 기계로서의 기능과 효율이 있다. 여기에 마음이 사로잡히면 사람의 본성을 망치게 된다." (<장자>)-34쪽

현대 사회의 문제는 상징 능력과 기술 사이의 균형이 무너진 데에 있다. 말하자면 기술이 너무 빨리 성장하는 바람에 사람들이 그 문화적 의미를 소화해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36-37쪽

기술이란 그 자체로 인간과 세계의 관계이기 때문이다. 기술은 단순히 자연의 모방에서 그치지 않는다. 도구의 제작에서 그치지도 않는다. 인간이 세계에 존재하는 방식을 구현하는 매체로서 기술은 나름대로 세계에 대한 인식을 담고 있다. 그러니 인간의 지각에 영향을 주고, 예술을 보충해줄 수 있다.
-48쪽

현대 기술은 자연에게 에너지와 원자재를 내놓으라고 강요한다. -56쪽

기술은 인간에게 완전히 종속된 것이 아니라 인간에게 새로운 무엇인가를 제시하고, 인간의 목적을 이루면서도 새로운 계기들을 만들어낸다. -51쪽

근대에 인간의 주체성을 강조했던 결과로 자연의 다른 존재자들을 학문과 응용의 대상으로 만들 수 있었는데, 결국 스스로 대상으로 전락했으니 주체는 없어지고 지배하려는 의지만 남은 셈이다. -59쪽

전통 기술은 상위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한 수단으로 인간의 다른 활동들에 비해 열등한 것으로 취급되었는데, 현대에는 기술의 발전이 그 자체로 의미 있는 것이 되었다. 또 기술의 제작에 있어서는 자동화를 통해 인간의 개입을 배제하면서, 사용에 있어서는 사용하지 않을자유를 허용하지 않는다.
-61쪽

기술 사회의 현실은 기술이 인간의 통제를 벗어나 인간의 자유를 억압하는 방식으로 발전하는 것이다.-68쪽

기술은 외부로부터의 어떤 간섭도 용인하지 않으며 어떤 제한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 도덕은 도덕적 문제를 판단하지만, 기술적 문제와 관련해서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다. 오직 기술적인 기준들만 중요하기 때문이다. 기술적 판단은 인간 행위에 중요한 제약이 되는 윤리의 영향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다. … 기술은 스스로를 선과 악의 기준 너머에 놓았기 때문에 더 이상 어떤 제약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오랫동안 기술은 중립적이라고 여겨졌다. 이제 그런 구분조차도 별다른 필요가 없다. 기술의 힘과 자율성은 너무나 공고해져서 이제는 무엇이 도덕적인지를 결정하는 재판관도, 새로운 도덕의 창조자도 기술이다. 그러니까 기술은 새로운 문명의 창조자 역할을 하는 것이다. … 기술의 자율성에 직면했을 때 인간의 자율성은 없다. (자크 엘륄, <기술사회>)-69쪽

인간의 가치나 필요는 효율성의 논리 앞에 무력하다. 사실 효율성을 떨어뜨리는 주범이 사람이다. 모든 제조업에서 자동화를 위한 노력이 계속되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는 기술의 생산뿐 아니라 소비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더 빠른 컴퓨터와 더 얇은 휴대전화가 꼭 필요해서 구입하는 것은 아니다. 필요에 의해 기술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기술이 필요를 창출한다. 누가 지하철에서 텔레비전을 보는 것을 그렇게 간절히 소망했던가?-71쪽

기술시대의 인간은 기술과 맺는 다양한 관계들을 더불어 고려할 때만 제대로 이해될 수 있다. 그럴 경우 비록 인간 본래의 모습이 축소 혹은 왜곡될 가능성이 있지만, 반대로 전통적인 인간의 영역을 뛰어넘을 수 있는 새로운 인간의 가능성도 동시에 나타날 수 있다. 축소에 대한 반성적 자각이 있다면 그런 전제 위에서 인간의 능력을 확장시키는 기술과 공생을 모색해 볼 수 있다는 것이 아이디 기술철학의 중요한 함의가 아닌가 생각한다-83쪽

(라투르의 기술결정론과 사회결정론 모두에 대한 비판적 시각)
사람이 총을 가짐으로써 사람도 바뀌고 총도 바뀐다는 것이다. 총을 가진 사람은 총을 가지지 않은 사람에 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달라지고, 마찬가지로 총도 사람의 손에 쥐어짐으로써 옷장 속에 있는 총과는 다른 존재가 된다. 즉 총과 사람의 합체라는 잡종이 새로운 행위자로 등장하며, 이 잡종 행위자는 이전에 사람이 가졌던 목표와는 다른 목표를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원래는 다른 사람에게 겁만 주려 했는데 총이 손에 쥐어져 있기 때문에 살인을 저지르게 되는 식이다.-89쪽

축음기와 전화기의 경우는 기술의 예기치 못한 용도가 그래도 ‘생산적인’ 다른 용도로 전환된 것에 해당한다. 하지만 기술 연구의 결과가 항상 이렇게 행복한 결말을 갖는 것은 아니다. 플라스틱이 처음 등장했을 때 인류는 플라스틱의 내구성에 찬탄을 보냈다. 이 놀라운 문명의 이기가 가진 ‘썩지 않는’ 장점이 미래 환경문제를 일으키는 결정적 원인이 되리라는 점을 예상한 기술자는 거의 없었다. -105쪽

기술 연구 과정에는 기술 자체에 대한 지식만이 아니라 그 기술을 사용할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그 기술에 반응할 것인지에 대한 사회문화적인 고려와 잠재적인 부작용에 대한 명시적 고려가 필요하다. -106-107쪽

기술 개발이 적극적으로 추진되는 과정에서는 기술이 가진 잠재적 혜택만이 부각되고 불확실한 위험은 축소되거나 무시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신기술이 가져올 위험이 불확실할 때조차 기술 연구자들은 사회적 수준에서 그 위험에 대해 설명하고, 그 위험에도 불구하고 기술 개발을 계속할 것인지 여부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를 확보하려 노력해야 한다. -108쪽

기술결정론이란 기술은 보다 효율적이고 경제적인 기술이 그렇지 못한 기술을 대체하는 내부 논리에 의해 발전하는 데 비해 사회는 그렇게 선택된 기술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여러 변화를 겪게 된다는 생각이다. -167쪽

현재 수준의 유전공학은 이처럼 기대효과 이외의 예기치 못했던 효과에 대해 많은 불확실성을 가지고 있다. 물론 이런 예기치 못했던 효과가 항상 혹은 대부분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의 이미지에 상응할 정도로 끔찍할 것이라는 근거는 없다. …
하지만 긍정적 불확실성과 부정적 불확실성은 확률적으로는 동등할 수 있어도 그것에 대한 우리의 태도나 대응방식이 동등할 수는 없다. … 여기에 생명공학의 위험성을 과대평가하지 않고 냉정하게 판단하더라도 생명공학이 가지고 있는 내재적 불확실성을 심각하게 생각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 그러므로 특정 기술의 사용은 거의 항상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혹은 개인의 수준에서건 사회적 수준에서건 그것이 가져올 유용함과 위험을 저울질하여 선택하는 것과 본질적으로 연계되어 있다. (계속)-270쪽

(이어서)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유전공학이 가져다 줄 수 있는 많은 잠재적 혜택과 그에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많은 경우 미리 짐작조차 할 수 없는) 다양한 위험 사이에서 사회적 공감대에 기초한 적절한 선택을 수행하는 일이다. 생명공학이 우리에게 기술적인 도전만이 아니라 삶의 방식에 대한 선택을 제기하고 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270쪽

기술의 사회적 책임은 이 사회가 설정한 목표를 달성하는 데 필요한 도구 역할을 충실히 해내는 것이다. 그러나 기술이 다루기 쉬운 도구는 아니다. 높은 사회적 이상과 목표가 설정되고 이에 대한 사회 구성원들의 희망적 열정이 있을 때 기술이 훌륭한 조력자가 되는 것이지 사회가 목표도 없이 표류한다거나 저급한 목표를 정해 놓고 그것을 따라 가려 한다면 거대한 기술의 힘에 사회가 오히려 휘둘리고 말 것이다. 기술이 자체의 힘으로 도덕적인 사회를 만든다거나 행복한 사회를 만들어나갈 것이라고 기대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기술을 잘 선택하고 발전시킴으로써 도덕적인 사회, 행복한 사회를 건설하는 수단으로 활용하여야 한다. -310-311쪽

엔지니어는 어려운 기술적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엔지니어는 주어진 문제를 잘 푸는 데만 몰두할 것이 아니라 그 문제가 만들어진 사회적 배경이나 역사를 파악하고 필요하면 직접 문제를 제기하거나 만들어내야 한다. 하는 일이 사회적 안전과 직접 관련된 일이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 사회의 전문인 집단으로서 엔지니어는 자기가 속한 사회의 이상과 목표를 찾는 데 동참하며, 사회적 이상과 목표에 입각하여 자기가 하고 있는 프로젝트를 면밀히 분석하고, 프로젝트의 결과가 이에 어긋나지 않는지 고민해야 한다. … 기업에서 일하는 엔지니어는 기업이 지나치게 이윤만 앞세운 나머지 사회 안전을 해치지 않는지 견제하여야 한다. 엔지니어는 기업이 만들어낸 제품에 대해 일차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제일 먼저, 가장 정확히 그 잘못을 지적할 수 있는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3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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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달인, 호모 로퀜스 - 언어가 춤을 춘다 세상을 다 말하라! 인문학 인생역전 프로젝트 3
윤세진 지음 / 그린비 / 2007년 5월
구판절판


책은 책의 속도와 기능을 가지고 있다. 때문에 책은 다른 매체를 배척하는 게 아니라 다른 매체와 접속하는 능력을 증대시킨다. -15쪽

우리말의 ‘오염’을 개탄하는 지식인들 중에는 그 ‘오염’의 원인을 모두 외국어의 탓으로 돌리는 경우가 있다. 한자가 가져온 오염, 일본말이 가져온 오염, 영어가 가져온 오염…. ‘우리말 오염’을 개탄하는 ‘애국자’들의 비장한 글들을 보며 나의 지저분한 언어 사용을 반성하는 것도 한두 번이지, ‘세계화 시대’가 될수록 우리말의 ‘순수’를 지킨다는 일이 너무나 힘겨워 보인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오염되기 이전의 순수한 우리말을 주장하는 것은 우리 민족이 태초부터 ‘순수한 단일체’였다는 발상만큼이나 근거가 없다. -118쪽

중요한 것은 지배적인 언어를 어지럽게 만드는 것, 즉 지배적인 언어 안에 낯설고 이질적인 언어들을 뒤섞고 그럼으로써 지배적 언어를 변형시키는 것이며, 한 언어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여러 언어를 넘나들면서 그 경계를 모호하게 만드는 것이다. 따라서 ‘한글과 한자 중에 뭘 선택하는가’라는 사실 자체는 그리 중요치 않다. 마찬가지로 지금 우리가 쓰는 표현이 ‘영어식 표현이냐 일본식 표현이냐’ 하는 것도 중요치 않다. 그 표현들이 언어의 의미를 더욱 풍부하게 생성할 수 있다면, 그것은 우리의 언어를 ‘오염’시키는 것이 아니라 보다 ‘빵빵’하게 해줄 것이다. -125쪽

영어 공용화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논릴는 결국, 영어가 보편의 언어이므로 그것을 써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경쟁의 논리다. 전세계에서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수적으로 절대 소수지만, 세계 질서 속에서 권력을 쥔 제국들이 사용하는 언어이기 때문에, 그것은 ‘지배적인 다수어’가 된다. 영어의 보편성이란, 그런 의미에서 권력과 자본의 보편성인 것이다.-130쪽

브루노의 연구에 따르면, 프랑스의 언어 단일화는 절대국가의 형성과 함께 진행되었다고 한다. 즉 그 과정에서 부르주아 계급이 사용하던 언어가 고상하고 학식 있는 언어로 공식화되고, 상대적으로 민중들이 사용하던 여러 지역 방언들은 부정적이고 경멸적인 의미의 ‘사투리’로 격하된 것이다. 그리하여 원래 ‘이해할 수 없는 말’이라는 의미였던 ‘사투리’라는 단어가 1690년에 발행된 퓌르티에르 사전에서는 ‘보통 사람들의 비속하고 천한 말’이라는 의미로 정의되기에 이른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부르주아의 언어가 공식 언어, 즉 표준어로 승격함으로써 부르주아들의 정치적 독점을 보장해주었다는 사실이다. -134쪽

첫째, 굶주린 때에 책을 읽으면 소리가 배에 낭랑하여 그 이치와 취지를 잘 맛보게 되어서 배고픔도 느끼지 못하게 되고, 둘째, 차츰 날씨가 추워질 때 읽게 되면 기운이 소리를 따라 유전하여 체내가 편안하여 추위를 잊을 수가 있게 되며, 셋째, 근심 걱정으로 마음이 괴로울 땐, 눈을 글자에 마음은 이치에 집중시켜 읽으면 천만 가지 생각이 일시에 사라지게 되고, 넷째, 감기를 앓을 때에 책을 읽으면 기운이 통하여 부딪힘이 없게 되어, 기침 소리가 갑자기 그쳐버리게 된다. (이덕무, <이목구심서>)-176-177쪽

무릇 글을 읽을 때에는 높은 소리로 읽는 것이 좋지 않다. 소리가 높으면 기운이 떨어진다. 눈을 딴 데로 돌려도 안 되니, 눈이 딴 데에 있으면 마음이 딴 데로 달아난다. 몸을 흔들어도 안 된다. 몸이 흔들리면 정신이 흩어진다. 무릇 글을 욀 때에는 착란하지 말아야 하고 중복하지 말아야 하며 너무 급하게 하지 말아야 한다. 너무 급하게 하면 조급하고 사나워서 맛이 짧다. (홍대용, <매현에게 주는 글>)-177쪽

소설가 베게트는 여행에 대해 멋진 정의를 내린다. 그에 따르면 인간이 여행을 하는 이유는 꿈이나 영혼 등으로부터 나온 표현할 수 없는 무엇인가를 확인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눈이 파란 사람이 세상에 정말 존재하는지, 꿈에서 본 그 황홀한 하늘빛이 어딘가에 정말로 펼쳐져 있는 것인지를 확인하기 위해 아무런 목적지도 없이 무작정 길을 떠난다는 것, 그게 여행이라는 거다. -179쪽

텍스트란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아직 건설 중인 건물 같은 것이다. 건축가는 자신의 설계도에 따라 건물을 짓지만, 사실 그 건물을 ‘건물’로서 완성시키는 사람은 건축가가 아니다. 건물을 완성하는 건 그 건물 안에서 생활하게 될 거주자의 몫이다. 거주자야말로 건물을 ‘사용’함으로써 건물에 ‘생명’을 부여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중략)
그러므로 하나의 텍스트에 숨어 있는 ‘결정된 의미’ 같은 건 없다. 텍스트의 모든 가능한 의미들은 그 텍스트와 접속하는 독자에게 맡겨져 있다. 텍스트라는 건물이 만들어진 시대의 건축 양식에 주목할 것인지, 그 건물이 사용되어온 역사에 주목할 것인지, 아니면 내 나름의 기준으로 건물을 리모델링할 것인지, 그건 독자의 몫이다.-201-202쪽

텍스트를 읽는 것은 텍스트를 내 신체의 일부로 느끼는 것이며, 거기에 하나의 해석을 가하는 것이다. -225쪽

"하나의 텍스트를 이해한다는 것은 낙타가 사자로 변신해야 하는 것과 같다."(니체)-231쪽

나는 알고 있다. 사람들이 어떻게 공리니 정의니 하는 미명으로, 성인군자란 간판으로, 점잖고 성실한 체하는 가면으로, 유언비어와 여론이란 무기로, 구렁이 담 넘어 가는 식의 글로 사리사욕을 채우면서 칼도 없고 붓도 없는 약자들을 숨도 못 쉬게 하는지를. 나에게 이 붓이 없었다면 수모를 받고도 어디가서 하소연할 길조차 없는 사람들 가운데 하나가 되었을 것이다. 나는 깨어났다. 그러기에 늘 이 붓을 들어 기린의 피부 속에 감춰진 마각(馬脚)을 드러내고 있다.(루쉰, <화개집 속편>)-247쪽

페이지(page)라는 말의 어원인 라틴어 ‘파구스’(pagus)는 농부가 일구는 밭을 의미한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쓰여진 글들이 경작된 밭고랑을 닮은 것도 같다. 좋은 농부의 덕목이 토양과 기후, 경작물에 대한 앎과 성실함, 그리고 뿌린 것 이상을 탐내지 않는 정직함이듯이, 좋은 글을 쓰려는 사람에게 요구되는 덕목은 세상에 대한 앎과 자신에 대한 정직함이다. 물론 이때의 ‘앎’이란 추상적이고 단편적인 지식이 아니라 삶 속에서 터득한 직관적이고 구체적인 지혜를 의미한다. 글을 이루는 것은 어떤 법칙이나 현란한 수사, 잡다한 지식이 아니라, 그 사람의 걸음걸이와 세상에 대한 시각, 그가 사랑하는 것과 미워하는 것 등이다. -247쪽

글은 자신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떠날 수 있을 때 시작된다. -251쪽

글을 쓴다는 건, ‘언어’라는 ‘도구’로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는 단순한 행위가 아니다. 글쓰기는 자신을 뛰어넘는 실험이자, 다른 세계로 진입하는 모험이며, 다른 이들과 공감하기 위한 공명통이다. 자신의 신체가 공명할 수 있는 만큼 글은 풍요로워지고 자유로워지고 다채로워질 것이다. -293쪽

보통 책을 가지고 있으면 아무리 아끼는 것이라도 남에게 빌려주지 않으면 안 된다. 예전에 동춘 송준길 선생은 남에게 책을 빌려 주었는데 그 사람이 되돌려줄 때 종이에 보푸라기가 생기지 않았으면, 반드시 책을 읽지 않았음을 나무라고 다시 빌려주었다. (이덕무, <이목구심서>)-309-3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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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리요 2009-09-14 0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맘에 드는데요. 아프님 소개라는 것만으로도...
저도 보관함에 담아두기 했어요.^^

마늘빵 2009-09-14 09:21   좋아요 0 | URL
내용 전개가 약간 어수선한 감이 있는데, 도입부를 좀 지나면서 점점 빠져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