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노보 찬가 - 정글자본주의 대한민국에서 인간으로 살아남기
조국 지음 / 생각의나무 / 2009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작년 지성사에서 나온 <성찰하는 진보> 에 이어 두번째 낸 한국 사회 비평서다. 이전까지 조국 교수의 작업이 순수하게 학문적이거나 소재는 현실의 구체적인 사안을 담고 있더라도 그에 대한 법률적 해석과 지향해야 할 바를 심도있게 살피는 것이었다면, 지난 책과 이 책은 한국 사회 현실에 대한 생생한 목소리를 담고 있다. 내 맘대로 평하자면 그는 이명박 정부가 하는 짓거리에 단단히 화가 났다. 물론 이전에도 간간히 <아웃사이더>에도 글을 쓰고, 신문 칼럼란에도 짧은 글을 쓰곤 했지만, 정식으로 이렇게 현실 비평 책이 나온 적은 없었다.

  수년 전 접한 조국 교수의 책, <양심과 사상의 자유를 위하여>는 이후 내 삶에 큰 변화를 가져왔을 정도로 강했다. '조국'이란 이름으로 도서 검색을 하면 수많은 책들이 쏟아지는데, 그 중 이 책이 단연코 최고라고 말하고 싶다. 그 이후부터 조국 교수에게 관심을 가졌다.  

  진보 진영의 일부 사람들은 조국이 동국대에서 서울대로 옮긴 사실에 대해서 좋지 않게 생각하고, 또 좀더 적극적으로 현장에서 뛰며 부대끼길 바란다. 하지만 그는 충분히 지금 강단과 현장을 오가며 할 만큼 하는 듯 하다. 조국 교수는 자신에 대한 주변 사람들의 이와 같은 시선을 느꼈는지 이 책의 맺음말 '불환과이환불균(不患寡而患不均)'을 통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지역주의의 수혜지역인 경상도 지방에서 남성으로 자라나서, 입시경쟁의 승자가 되어 대학에 들어간 후 '미국 물'까지 먹고 돌아왔으며, 집값 비싼 강남 지역에 거부하면서 '학벌'의 정점이라는 대학에서 교수를 하고 있다. 침팬지 세상의 '승자'가 된 것이다. 마르크스의 유명한 정식,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에 따르면, 나는 지금 '숭미(崇美) 보수우파'로 활약하고 있어야 할게다."

  "그런데 나는 사회적으로 반대성향의 사람으로 분류되고 있으며, 스스로도 자신을 그렇게 생각한다. 나는 우리 사회가 신자유주의 또는 시장만능주의를 버리고 사회민주주의적 사회운영원리를 대폭 받아들여야 한다고 판단하고 행동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벗들은 '생래(生來)적 진보'가 아닌 자가 '의지(意志)적 진보'를 견지, 지향한다고 종종 나를 놀리기도 하는데, 이 글을 빌어 응답을 할까 한다."
  

  그는 그가 말한대로, 그가 처한 모든 조건상 극우 혹은 보수, 우파 진영에 속해 있는 것이 자연스러워 보인다. 하지만, 그는 진보 진영의 든든한 버팀목인 법학자이며,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비롯해 - 여기에는 김두식 교수도 크게 한 몫 했다 - 사상과 양심의 자유와 인권을 위해 기여한 바가 크다. 그가 걸어온 길을 볼 때 그는 철저히 자신의 환경적 계급에 반하는 행동을 하고 있다. 그는 그 이유를 침팬지의 탐욕 유전자가 아닌 보노보의 공감 유전자에서 찾는다. "자신은 안락한 처지에 있다고 하더라도 인간은 자신과 전혀 무관한 타인의 고통에 가슴 아프기 마련"이며, "'측은지심'이라는 인간의 본성이 없다면 인류의 지속은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 책에서 조국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이명박에게 보내는 편지, 하나는, 진보 진영에 보내는 편지, 남은 하나는, 장애인, 병역거부자, 성적 소수자, 아동, 청소년, 여성, 한센병 환자, 에이즈 감염인을 비롯한 소수자 혹은 약자를 위한 부분이다. 제 1장 ''정글자본주의'의 시대, 진보의 길 찾기'와 제 2장 '형벌권의 과잉과 남용은 안 된다'는 진보 진영과 이명박에게 보내는 메세지를 모두 담고 있으며, 제 3장 '이 땅의 소수자를 위하여'는 소수와 약자의 인권과 자유에 관한 메세지이다. 모든 꼭지 하나하나 버릴 게 없지만, 그 중 진보 진영에 보내는 조언은 다시 한번 새겨야 한다.  

  "진보진영은 진보의 문제는 단지 고상한 가치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서민대중에게 밝혀야 한다. 서민들의 ‘욕망’을 폄하할 것이 아니라 그 ‘욕망’을 직시하고 진보적 관점에서 재구성하여 그 충족의 전망과 방법을 제시해야 한다. 민주, 인권, 공정, 평등, 복지, 연대 등의 가치는 바로 ‘밥’에 대한 문제라는 것, 즉 어떠한 방식으로 ‘밥’을 만들고 어떠한 기준과 절차에 따라 ‘밥’을 나눠 먹을 것인가의 문제라는 것을 쉽고도 실감 있게 전달해야 한다." (p.83)

  내 자신을 진보라고 말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망설여지지만, 적어도 상식적 가치 - 대한민국에선 상식을 추구하면 진보다 - 를 추구하고자 노력하긴 한다. 그러나 상식적 가치에 대해서는 목소리를 높였지만 그것을 인간의 욕망과 연계지어 고민한 적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민주, 인권, 공정, 평등, 복지, 연대 모두 우리가 추구해야 할 가치임은 분명하지만, 진보가 말로 그렇게 떠들어대도 사실상 선거판에서 지지율을 높이지 못하는 이유는, 현장에서 죽어라 부대끼고 뛰어다니면서도 그들로부터 외면받는 이유는, 바로 '밥', '욕망'의 문제를 간과했기 때문이다. '민주'와 '인권'과 '공정'과 '평등'과 '복지'와 '연대'라는 단어가 어떻게 밥이 되는지에 대해서, 밥을 만들기 위해서 그것들이 필요하다는 것에 대해서 제대로 말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참 어렵긴 하다.  민주, 인권, 공정, 평등, 복지, 연대가 어떻게 밥이 되는지를 설명하는 건, 선거 때 툭 튀어나와 "뉴타운 만들겠습니다"라고 말하는 것보다 확실히 어렵다. 이미지상 - 순전히 이미지만 - '뉴타운'은 바로 머리 속에 '밥'을 떠올리게 하지만, 민주, 인권, 공정, 평등, 복지, 연대는 밥으로 가기까지 한참을 돌아가야 한다. 진보가 해야 할 일은, 바로 이 경로를 단축하는 프레임을 만드는 것이다. 단지 프레임이어서는 안되고, 이러한 가치들이 바로 밥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그렇다고 무슨 자판기처럼 '인권'을 집어넣었더니 '밥'이 툭 떨어지는 식으로 만들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경로를 단축하는 건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조국에게 기대하는 바가 많고, 바라는 바가 많아 그가 좀더 열심히 목소리를 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사실 지금도 충분하다. 환경적 계급을 배반하고 놀림감이 되면서 진심어린 충고와 조언을 하는 그가 고맙다. 조국은 '들어가는 말'에서 "대한민국이라는 '정글'에는 더 많은 '보노보'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침팬지에 가까운 환경에서 보노보의 '앞잡이'로 살며 더 많은 '보노보'를 위해 목소리 내는 이 보노보가 진심으로 고맙다. 세상에는 이 같은 보노보가 많아져야 한다. 침팬지가 가득한 대한민국에서 더 많은 보노보가 나타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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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09-07-03 16: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대한민국에선 상식을 추구하면 진보다 -
에 동의합니다.
장바구니에 담아갑니다.

마늘빵 2009-07-04 00:28   좋아요 0 | URL
그만큼 대한민국 사회가 전체적으로 보수적이란 말이기도 하고, 그 보수들이 실제로 '보수'라고 볼 수 없다는 말이기도 하고.

머큐리 2009-07-03 2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간없다면서도 항상 책을 손에 놓지 않는 아프님땜시,,,자꾸 게으름을 한탄하게 한답니다..ㅎㅎ 저도 장바구니로...

마늘빵 2009-07-04 00:28   좋아요 0 | URL
책은 손에서 놓지 않는데 집요함과 사유는 예전만 못하네요. ^^
 
무엇이 시민을 불온하게 하는가? - 대한민국을 뒤흔든 이슈와 논쟁에 관한 최강욱 변호사의 뜨거운 변론
최강욱 지음 / 갤리온 / 2009년 6월
품절


‘명확성의 원칙’이란 범죄의 구성 요건과 그 법적 결과인 형벌을 명확하게 규정해야 한다는 형법의 법리를 말한다. ‘명백하고도 현존하는 위험의 원칙’이란 언론, 출판, 집회, 결사, 종교, 양심의 자유 등을 제한하려면, ‘명백하고도 현존하는 위험’이 있어야 하며, 단순히 장래에 그러한 위험을 발생시킬 염려가 있다는 것만으로는 위와 같은 기본권을 제한할 수는 없다는 원칙이다. ‘과잉금지 원칙’은 목적의 정당성, 방법의 적절성, 법익의 균형성, 제한의 최소성 등을 준수할 경우에만 법률로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할 수 있음을 말한다. -19쪽

"헌법은 기본권을 생명권, 자유권, 재산권의 순서로 보장한다. 정치적 기본권이 재산권에 우선한닫는 것은 모든 헌법 교과서에 나오는 상식으로, 재산권 보장을 이유로 자유권에 해당하는 집회와 시위에 집단소송제를 도입하는 것은 어마어마한 돈을 물림으로써 사실상 헌법에 보장된 자유권을 부정하려는 것"(조국 교수)-26쪽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in dubio pro reo)-34쪽

경찰관직무집행법에 따라 경찰은 질문하거나 동행을 요구하기 위해서 경찰 신분을 표시하는 증표를 제시하고 소속과 성명을 밝혀야 하며, 목적과 이유를 설명하고 동행해야 할 경우에는 동행 장소도 밝혀야 한다. 한편 시민은 경찰에게 구체적으로 자신의 어떤 점이 수상하거나 범죄 혐의가 있다고 판단하게 했는지에 대해 알려 줄 것을 요구할 수 있다.
다만 불심검문에 응하지 않으려 할 때에는 반드시 ‘불심 검문에 응답할 의무는 없으니 거부하겠다’라는 것을 명확히 밝혀야 한다. 무조건 뿌리치고 떠날 경우, 자칫 준현행범(누구인지 물었을 때 도망가려하는 자)에 포함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위법한 불심검문에 대항하고 거부하는 것은 공무집행방해에 해당하지 않는다. 그러니 적법하지 않은 동행 요구는 거절하여도 무방하다. 예를 들어 강제로 연행하려고 할 때 이를 피하려고 주변의 사람들이 경찰을 폭행하더라도 공무집행방해죄가 성립하지 않는다. -204쪽

일부일처제의 부부관계란 여러 가지 문화인류학적, 사회적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법적으로는 계약성을 띠는 것이고 그 관계에서의 의무 위반은 그것이 심각한 것이라 하더라도 기본적으로는 계약상 책임에 가까운 것이라 지적한다. 다시 말해 간통 행위가 배우자에 대한 배신일지언정 범죄는 아니라는 것이다. -23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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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을 보는 법 - 법치주의의 겉과 속
김욱 지음 / 개마고원 / 2009년 4월
품절


대의기구인 국회는 오직 국민의 의사와 일치할 경우에만 그 정당성을 갖는다. 대통령이든 국회의원이든 이 정당성을 잃는 순간 대의기관으로서 정당성을 상실하며 쿠데타로 집권하지 않고 합법적으로 집권한 정권이라 할지라도 헌법에서 정해진 임기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118쪽

오늘날 대의제가 정당화되고 있다면 그것은 단순히 체계의 승리가 아니라 대의를 행하는 정치인들이 ‘지역적 이익’이 아닌 ‘국가의 공공선’을 양심적으로 행한다는 버크 식의 전제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120쪽

법정은 국가의 공권력으로 복종을 요구하며 강제로 그 불일치를 종료시키는 세속의 장소일 뿐이다.
법의 이러한 기본적인 속성을 이해한다면 판사는 자신의 판결에 대해 승복을 요구할지언정 결코 신성함을 요구해서는 안 될 것이다. 법원의 판결이 판결문의 형태로 법정을 떠나는 순간, 그 판결문은 이미 법원의 신성한 경전이 아니다.
판결문은 인간 사회의 과거의 모순을 담은 채 현재의 모순을 해결하고 있으며, 새로운 모순을 잉태한 채 미래의 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출발선에 놓여 있는 공공의 유물일 뿐이다. 그 유물을 가능한 한 자랑스러운 역사의 유물로 만드는 것은 판사의 자폐적인 아집도 아니고 일반인들의 맹목적인 승복도 아니다. 그것은 세속적 모순에 세련된 해결책을 제시해보려는 모두의 공개된 고민이다. -144-145쪽

법은 세상에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물질의 힘’을 ‘의식의 힘’으로 변화시키기 위한 총체적 운동과정이다. -215쪽

분쟁이 당사자에 의해 해결된다면
법원은 그 보수를 박탈당하리라. (마르크스)-250쪽

이(헌법에 양심의 자유를 둠으로써 법치주의와 대립하게 만드는 것)는 일종의 내성을 기르는 자본주의 헌법체계의 정교한 자기방어 기제다. 모순을 허용치 않는 헌법체계에서 사회적 모순이 자체적으로 해결되지 못하고 축적되어 폭발한다면 헌법은 회복할 수 없는 위험에 빠질 것이다.
그 절묘한 대비책이 바로 양심의 자유다. 양심의 자유는 바로 ‘법’ 그 자체에 대한 도전이다. 하지만 법은 자신을 부정하는 양심의 도전에 모순적으로 타협(적 처벌)함으로써 자신을 끊임없이 진보시켜 나가려는 것이다. -25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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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큐리 2009-06-30 1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님 하여간 부지런하시네요,,,ㅎㅎ

마늘빵 2009-07-03 13:33   좋아요 0 | URL
아하핫. ^^
 
불멸의 신성가족 - 대한민국 사법 패밀리가 사는 법 희망제작소 프로젝트 우리시대 희망찾기 7
김두식 지음 / 창비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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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두식 교수가 또한번 '사고'를 쳤다. <헌법의 풍경>과 <평화의 얼굴>로 이미 사고를 친 경험이 있기 때문에 (그가 감당해야 할) 충격(?)이 그나마 덜하지 않을까 싶은데, 사안이 사안인만큼 '업계'의 비난과 압력이 은근 들어오지 않을까도 생각한다. <불멸의 신성가족>은 베일에 싸인 법조계의 그렇고 그런 이야기를 뒤집어 깐 책이다. 신영철 대법관의 이메일, 전화 사건에 대해 수많은 판사들이 모여 잘못되었음을 이야기했지만, 법원은 꿈쩍도 않는다. 꼭 누구 같다. 지적하고 잘못되었다고 말하면 얼마든지 마음대로 하세요,하는 태도. 이 정부 들어 자주 목격한다.  

  김두식은 희망제작소 '우리시대 희망찾기' 연구 프로젝트를 통해 기독법률가회 사무국장으로 있는 김종철과 함께 판사, 검사, 변호사, 법원 일반직 공무원, 경찰, 변호사 사무실 직원, 신문기자, 교수, 철학자, 시민단체 간사, 결혼소개업자, 비정규직 노동운동가, 각종 소송 경험자 등 모두 스물세명을 만나 인터뷰하고, 책으로 엮었다. 이 프로젝트는 애초 사법부와 법조계를 까는 것이 아닌, 단지 현실 상황을 알아보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했겠지만, 결과적으로 사법부와 법조계를 까는 책이 되었다. 드러내놓고 알려진 바가 없다해도 이미 한국 땅에 살고 있는 절대 다수의 사람들이 법조계를 불신한다는 것은 여러 차례 통계를 통해서도 드러난 바가 있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결국 문제는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제도로 보완할 수 있는 부분이 분명 있다. 그러나 사람이 바뀌지 않으면 빠져나갈 구멍이 없는 제도를 만들어도 다 빠져나갈 구멍이 생기게 된다. 인터뷰에 응한 사람들이 모두 온전히 사법부와 법조계의 개혁을 주장하진 않는다. 어쩔 수 없죠, 그럴 수밖에 없는 구조에요, 관행이에요, 라고 말하면서 문제 있어 보이는 일부 사안에 대해서는 오히려 옹호하기까지 하는데, 어렵사리 인터뷰에 응한 이들도 이러한데 집단 안에서 똘똘 뭉치는 이들은 오죽 하겠나 싶다. 

  서로 각을 세워야 할 검사와 판사, 변호사는 돈, 상품권, 골프 회원권 등 뇌물을 주고 받으며 "우리는 남이 아니에요", "선배님, 후배님" 하며 재판이 열리지도 않은 사건을 두고 사전에 협의(?)해서 일찌감치 판결문을 내고, 뭣도 모르는 피고와 원고는 그들에게 열심히 돈 갖다 바치며 잘 봐 주십사 손바닥을 비빈다. 하긴 대한민국에 딱 정해진 수수료만 줘서 통하는 데가 어디있나. 심지어 운전면허학원에 가서도 얼마라도 현금을 쥐어주면 말투가 바뀌는데. 그들에게 추가 비용 갖다바치며 잘 봐주십사 하는 시민들보다는 그걸 안주면 재판이 원하는대로 안될 것처럼 구는 변호사, 판사들이 문제다.

   변호사들이 판사에게 돈을 갖다주는 건 일상적인 '관행'이지만, 돈을 받지 않은 판사가 돈을 준 판사를 고발하는 경우는, 불행히도 없다. 왜냐. 돈을 안받는 것만해도 이상한 데, 돈을 주는 변호사를 고발하는 건 또라이 짓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또라이가 되지 않으려면 판사는 돈을 받지 않았어도, 분명 부정의를 멀쩡한 두 눈으로 목격했으면서 해당 변호사를 신고하지 않는다. 판사가 또라이로 낙인 찍히는 순간, 그는 더이상 판사복을 입을 수 없을 뿐더러, 변호사를 하기도 힘들기 때문이다. 변호사 이 바닥도 서로들 끈끈하게 연결되어 있어 따돌림 당하기 십상이다. 판사복 벗은 것도 억울(?)한데, 변호사도 못 해먹으면, 그는 정말 갈 데가 없다. 그냥 삼성 비리 고발해서 새된 김용철 변호사처럼 빵집이나 차려야 한다.  

  변호사와 판사들에게 삼성은 든든한 미래의 직장이다. 삼성을 비판한다는 건 나 빵집 차리겠소 선언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러니 김용철 변호사, 노회찬, 심상정 다 달려든 삼성 사건이 이모냥으로 판결나지 않았겠나. 삼성과 김앤장은 대한민국의 절대 강자요, 판검사들의 미래의 희망 직장이다. 내가 몸담아야 할 곳을 어찌 감히 비판할 수 있겠나. 김앤장은 삼성을 변호하고, 삼성은 판검사에게 떡돌리고, 판검사는 삼성을 감싸주면 누이 좋고 매부 좋고, 만사 오케이다. 이들은 절대로 서로에 대해 각을 세울 필요가 없다. 바로 '신성가족'에서 추방당하는데 그 누가 감히 그럴 수 있겠나.  그러니 아무리 의식 있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나갈 각오를 하지 않으면 내부 비판을 할 수 없다.

  문제는 다시 한번 사람이다. 법조계 사람들의 의식이 바뀌거나 사람이 통째로 바뀌지 않는한 지금의 관행은 절대로 깰 수 없어 보인다. 가장 좋은 방법은 법조계 내부의 누군가가 혹은 어느 집단이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다. 외부에서 아무리 비판하고, 들춰내봐야 소용 없다. 자기들끼리 더 똘똘 뭉치기만 한다. 명박이식 소통(?)은 사람 힘 빠지게 만든다. 더 이상 희망조차 가질 수 없게 만든다. 루쉰은 "희망이 있어서 걷는 것이 아니다. 걸을 수 밖에 없으니 걷는 것이고, 걷다보니 길이 생기는 것이다. 걸을 수 있는 동안에는 걸을 따름이다." 라고 말했지만, 걸을 만한 땅이라도 보여야 걷지, 걸을 땅을 무너뜨려버리면 갈 수조차 없지 않겠나. 다행히 신영철 대법관의 잘못된 언행에 대해 소장 판사들이라도 들고 일어났으니 희망이라도 가져본다.  

  "‘거절할 수 없는 관계’란 누군가 ‘거절할 수 있는 용기’를 내는 순간 마치 모래더미처럼 스르르 무너져 내리게 마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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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26 20: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6-26 20: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100℃ - 뜨거운 기억, 6월민주항쟁
최규석 지음 / 창비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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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7년 6월 민주 항쟁. 내겐 아무런 기억이 없다. 초등학교 1학년, 신문이나 뉴스도 안 보던 시절이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도 이에 대해 내게 아무런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기억엔 없지만 경찰이었던 아버지는 당시 무척 바빴으리라 생각한다. 자라면서 아버지로부터 경찰 생활과 관련된 이야기를 거의 들은 바 없다. 가끔 궁금하기도 했다. 그런 시대를 살아오며 경찰로서 무슨 일을 했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그러나, 내가 원하지 않는 대답이 나올까 두려워 묻지 않는다. 혹시라도 내가 그를 미워하게 될까봐. 다행인지 모르지만 아버지는 현장을 뛰는 쪽에 소속되지는 않았다는 것.  

  8살, 내가 알고 있는 세계는 집에서 학교로 이어지는 십여분 거리의 골목이 전부였다. 8시면 냉큼 일어나 세수하고 밥먹고 전날 시간표대로 싸두었던 책가방을 들고, 다녀오겠습니다, 인사하며 집을 나섰고, 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방과 후엔 친구의 책가방 뒤를 붙잡고 기차놀이하며 집으로 왔다. 방 안에서 숙제를 하고, 레고를 가지고 놀다, 아버지가 빌려온 비디오를 보다 잠드는 게 전부였다. 내게 87년 6월은 그냥 긴팔 옷에서 반팔 옷으로 갈아입는, 조금 더워지는 시점이었다. 그게 전부였다. 이후에도 한참 동안 나는 87년 6월에 관심이 없었다. 그건 그 누구도 내게 그 일에 대해 말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건 너무나 먼 이야기였다.  

  대학에 오고 나서도 87년 6월은 얼핏 들은 것도 같지만, 무관심의 대상이었다. 그게 87년 6월이었는지, 80년 5월이었는지, 60년 4월이었는지 알 수 없는 무참히 피터진 시민, 경찰이 곤봉으로 내려찍고 짓밟는 사진 몇 장을 정말, 얼핏, 본 것이 전부였다. 중고등학교 시절 학교에서 배웠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쩌면 당시 역사 교과서에는 87년 6월을 싣지 않았겠다는 생각도 든다. 만약 그랬다면, 지금의 중고등학생들은 그나마 암기의 대상으로서 87년 6월을 기억하고 있을지 모르지만, 나에게 87년 6월은 대학을 졸업한 뒤에나 알게 된 '숨겨진 진실'이다.

  흔히 대학에서 '교양'이라 하여 선배들이 후배들을 강제로 데려다 앉혀놓고 가르치던 때도 아니었고, 운동권이 서서히 대학에서 사라지고 노는 동아리들이 많아지던 때, 딱 주식 동아리나 재테크 동아리 등이 생기기 바로 전에 학교를 다녔다. 시위나 집회는 당연히 나간 경험이 없고, 오히려 보도에서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노점상을 보고 왜 이렇게 길을 다 막아놓은거야, 불평불만을 하던,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재수없는 녀석이었다. 불과 십년도 안되는 기간 동안 나는 많이 변했다. 더이상 노점상을 걸어다니기 불편하게 만드는, 치워야 할 것으로 생각지 않고, 철거민을 불법 폭력 집단으로 보지도 않으며, 머리에 빨간 띠 두르고 집단적으로 구호를 외치는 집회 참가자들에게 거부감을 갖지도 않는다.      

  87년에 그랬듯이 여전히 국가에게 철거민은 국민이 아닌 불법 폭력 분자이고, 사회 구조로 인해 비관 자살하는 이들은 그냥 우울증에 걸린 좀 안쓰러운 시민일 뿐이다. 퇴근길 촛불 한 자루 들고 시청 광장에 모인 이들은 할일 없는 촛불 좀비들이고, 대규모 상경해 가투를 벌이겠다는 화물 연대 노동자들은 그냥 큰 트럭을 가지고 거리를 막고 나라 경제 파탄내는 주범일 뿐이다. 그들은 모두 국민이 아니다. 국가는 그렇게 국가가 하는 일에 반대하는 이들, 반대의 목소리를 내는 이들, 시위와 집회에 참가하는 이들을 국민과 비국민으로 나누고, 비국민을 싹쓸이의 대상으로 치부한다. 이 모든 것에 화가 난다. 불과 1년 사이 우리 사회의 온도는 끓는 점을 향해 가고 있다. 
 
  한숨에 읽어나갔다. 최규석의 6월 항쟁 본편을 읽으며 몸이 뜨거워졌다. 본편도 본편이지만, 이 만화책이 지금 사람들에게 하고자 하는 말은 본편이 아닌 부록에 있다. "그래서 어쩌자고?" 시민교육센터 강사로 활동 중인 이한 선생님의 '청소년을 위한 민주주의 강의 교육안'을 만화로 그린 이 부록은, 청소년뿐 아니라 지금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모든 시민들이 봐야 한다. 우리가 처한 현실이 어떤지 알고, 이 현실을 바꿔나가기 위해 공부할 것을 권장한다. 이한과 최규석의 말마따나 "이렇게 민주주의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공부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이 민주주의를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최상의 방법이 아닐까." 

  99도씨. 지금 우리의 마음은 99도씨다. 100도씨가 되면 분명히 끓는다. 이 만화 속의 누군가의 말처럼, 그건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조금만, 조그만 더 가열하면 우리 가슴은 100도씨에 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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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09-06-23 08: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당시엔 파출소도 습격하고 했습니다. 그래야 병력이 분산되니까요. 파출소 앞마다 철망을 가득 가렸고, 그래도 툭하면 불타곤 했지요.

마늘빵 2009-06-23 10:31   좋아요 0 | URL
촛불 집회 게릴라전과 비슷하네요. 경찰들 분산시키려고 여기 번쩍, 저기 번쩍.

머큐리 2009-06-23 1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수없는 녀석이 이렇게 멋지게 변할 수도 있군요...명박이한테 감사해야 하나?...ㅎㅎ

마늘빵 2009-06-23 10:30   좋아요 0 | URL
깜짝이야! ^^a

2009-06-23 19: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6-23 20: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09-06-24 1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으로 진지하고 충실한 리뷰에요, 아프락사스님. 추천 하나 더해 화제의 서재글로 보냅니다.

마늘빵 2009-06-24 20:52   좋아요 0 | URL
아 부끄럽게... 리뷰를 띄엄띄엄 써서...

무해한모리군 2009-06-24 1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처럼 올리신 리뷰 잘 읽었습니다.
그렇죠 우리 또래에겐 머리론 알아도 마음으로 느끼기 쉽지 않은 사건이지요.
작가도 그랬기에, 촌스러울 정도로 정공법으로 이 만화를 그리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나저나 99도가 아니라 80도쯤 되는듯해 큰일 입니다 --;;

마늘빵 2009-06-24 20:53   좋아요 0 | URL
네, 마음으로도 잘 느끼지 못하고, 머리로도 잘 알지도 못해요. 최규석은 그래도 이 만화를 그리면서 공부라도 했겠지만, 저는 이제 공부를 해야죠.

rumie0201 2010-06-09 1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어보고 싶어지는 책이네요. 어쩌다 들르게 됐는데 진지한 글 반갑네요.
우리세대는 87년 한복판에 섰던 세대들이고,
살면서 잊지 않으려 애쓰며 열심히 살고자 하는데,
아직도 그렇게 살아?란 동기의 말을 들을때 가슴이 싸해지지만,
그래도 뜨겁게 자기자리에서 열심히 사는 그들이 있기에 세상이 따뜻하게 느껴집니다.
100도라....그 뜨거운 삶의 열정을 다시 지피고 싶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