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관타나모 다이어리
마비쉬 룩사나 칸 지음, 이원 옮김 / 바오밥 / 2009년 6월
평점 :
품절



  두 번의 재임시기 동안 세계를 지배하고 흔들었던 부시가 물러나고 미국 역사상 최초로 놀랍게도 흑인인 오바마가 대통령에 당선됐다. 오바마는 대선 당시 관타나모 기지를 폐쇄하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주변의 압력 때문인지 관타나모 기지를 폐쇄하지 않았다. 오바마는 이슬람을 향해 화해의 메세지를 보내고, 이슬람은 오바마에게 무언가를 기대하지만, 손짓과 메세지만 있을 뿐, 사실상 현실적으로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나의 관타나모 다이어리>를 지금 읽어야 하는 이유다. 여전히 여기 쓰인 관타나모는 진행 중이다.  

  마이애미 대학 로스쿨 여대생인 마바쉬 록사나 칸은 2006년 1월부터 관타나모에 갇힌 사람들을 인터뷰하며 보고 듣고 느낀 내용을 담담하게 써나갔다. 그녀는 아프가니스탄의 피를 가진 미국인이다. 태어나기 전, 의사인 그녀의 부모님이 잠시 미국에서 공부를 하겠다고 떠난 것이, 영원히 미국에 정착하는 계기가 되었다. 외형은 아프가니스탄인이지만, 몸에 뵌 습관이나 사고 방식, 문화 등 모든 면에서 그녀는 철저히 미국인이다. 그녀는 왜 관타나모로 가게 되었고, 관타나모에서 무엇을 보았던 걸까? 

  록사나는 로스쿨에서 법을 공부하는 정의로운 법학도로서 관타나모 수용소에서 벌어지는 불법적인 일들에 분통을 터뜨렸고, "불평만 하지 말고 직접 뭐라고 해보는 게 어때?"라는 약혼자의 말에 자극받아 통역봉사를 자원했다. 세상은 이렇게 말만 하지 않고 행동하는 자들에 의해 조금씩 변화한다. 언제나 말은 쉽지만 행동은 어려운 법이다. 이렇게 말하는 나 역시 여기서 벗어날 수 없다. 록사나는 그걸 몸으로 실천에 옮겼고, 이 책은 그 행동의 결과물이다.  

  관타나모 수용소에는 누가 갇혀 있을까? 쉽게 상상해볼 수 있듯 테러리스트들도 있겠지만, 그 못지 않게 일반 시민들도 많다는 사실. 따지고보면 누구는 태어날 때부터 테러리스트이고, 누구는 처음부터 일반 시민인 건 아니다. 주어진 상황이 그를 테러리스트로 만들뿐. 실제 폭탄을 들고 뛰어드는 이와 물품을 대는 상인 등 어디까지를 테러리스트라고 볼 건지도 의문이다. 또, 명백히 테러리스트라고 해도 우리가 그들을 마치 짓눌러 죽여야 할 해충인양 취급할 권리도 없다. 누구나 최소한의 인권은 지켜줘야 한다. 다시 한번 묻자. 여기서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아프가니스탄의 염소치기, 소아과 의사,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을 오가는 무역 회사 사장, 관타나모에 수감된 이들이 갇히기 전에 가졌던 직업이다. 미국은 양치기와 의사와 무역 회사 사장을 왜 가두었을까? 서로 관련도 별로 없어보이고, 미국이 딱히 이용할 만한 가치도 없어 보인다. 정치인도 군인도 아닌 이들이 왜 여기에 있을까? 그들은 아무 것도 모르고 일단 조사를 받기 위해 나섰다가 수년 간 이곳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다고 한다. 어떤 경로로, 왜 이곳에 오게 되었을까? 

  9.11 테러 이후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다. 탈레반을 없앤다는 이유로. 미국은 이들을 색출하기 위해 아프가니스탄 전역에 수천 장의 전단을 살포했고, 전단지엔 어느 누구라도 알 카에다와 탈레반 일원들을 신고하면 5,000달러에서 25,000달러를 준다는 내용이 쓰여 있었다. 2006년 아프가니스탄의 일인당 국민소득이 300달러라고 한다. 이건 분명 로또 이상의 거액이었다. 사람들은 돈에 눈이 뒤집힐 수밖에 없었고,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을 알 카에다 조직원 혹은 탈레반이라고 신고하였다. 이후 미국은 자세한 조사를 하지 않고 그들을 모두 관타나모로 데려갔다. 염소치기와 소아과 의사와 무역 회사 사장은 이렇게 순식간에 테러리스트로 둔갑했다.  

  이들은 관타나모에 와서도 왜 갇혀있는지 설명을 들은 바도 없고, 재판조차 받을 수 없었다. 어쩌다 재판이라도 하면, 형식적으로만 재판을 했다뿐, 오히려 재판을 안하니만 못한 결과를 얻었다. 한 번 재판을 하고나면 더 이상 할 수 있는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기회를 박탈 당하고, 영원한 테러리스트로 낙인찍히며 이곳에서 죽어가는 것이 그들에게 남은 운명이다. 부모와 아내와 자식은 그들이 관타나모에 수감되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멀리서 그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린다. 관타나모에 수감되었다는 사실을 안 것만으로도 기뻐한다. 적어도 어디에 있는지, 살아있는지는 알게 되었으니까. 현실이 이렇다.  

  록사나의 인터뷰와 방문 일지가 <워싱턴포스트>에 커버스토리로 게재되면서 미국은 록사나의 출입을 한때 막기도 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라면 그러지 않았겠지만) 의외로 록사나에게 몇몇 주의만을 주고서 여전히 방문을 허가해줬다. 록사나는 규정을 위반하지 않으면서 그곳에서 그들과 나누었던 이야기를 계속 글로 썼다. 미국의 수많은 사람들이 관타나모의 실상을 알게 되었고, 위에서 언급한 일부 수감자들은 집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그러나, 수년간 그들이 그곳에서 당한 강간과 폭력 등 수치스러운 일들에 문제제기하지 않고, 조용히 돌아가게 된 것만으로 감사한다. 다시 부모 형제, 처 자식과 만난 것만으로도 신에게 감사한다. 

  록사나는 보고 듣고 느낀 바를 객관적으로 담담하게 써내려갔다. 화도 났겠지만, 록사나는 그곳에서 경험한 바를 담담히 기술해 수많은 미국인들이 알 수 있도록 했다. 록사나는 그녀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을 했고, 워싱턴포스트는 언론이 해야 할 제 역할을 했다. 그렇기에 우리는 록사나의 책을 이렇게 읽을 수 있고, 관타나모의 현실을 정확히 알 수 있다. 록사나와 워싱턴포스트가 제 할 일을 다 했다면, 이제 남은 것은 많은 이들의 분노와 행동이다.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관타나모의 현실을 알리고, 미국 정부가 외치는 인권과 민주주의, 평화가 아닌, 진정한 의미의 인권과 민주주의, 평화를 위해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한국 땅에도 관타나모만큼이나(관타나모보다) - 관타나모는 적어도 순수 미국인에 대해서는 적용되지 않는다 - 끔찍한 국가보안법이 있지만 돌아가신 노무현 전 대통령 재임 시절에 없애지 못했다. 오바마가 지금 주저하고 있지만, 오바마 시절이 아니라면 관타나모는 폐쇄하기 힘들 것이다. 미국의 관타나모 폐쇄를 위해 당장 이곳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없지만 - 여러 곳에 관타나모의 현실을 알리는 것 외에는 - 오바마를 대통령 자리에 앉힌 미국인들이 관타나모 폐쇄에도 일조하길 희망할 뿐이다. 길 한복판에서 신부가 말 그대로 짓밟히고 사복 경찰이 나타나 아무 말도 없이 순식간에 사람을 연행하는 대한민국 사회보다는 희망을 가져봐도 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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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냐 2009-06-22 2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최근 관타나모를 배경으로 한 스토리를 읽으면서..이 책이 매우 궁금했더랍니다. 꼼꼼한 리뷰에 감사.

마늘빵 2009-06-22 23:42   좋아요 0 | URL
아프가니스탄계 미국 여성의 눈으로 담담하게 서술해나갔습니다. 아무래도 워싱턴포스트지에 연재되는 글이라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어요. 감정적으로 쓰기보다는 침착하게 보고 느낀 바를 옮겨놨기에 더 많은 사람들에게 호소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무해한모리군 2009-06-25 18: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님이 사회문제에 대한 주제로 글을 쓰면 이런 식으로 담담하게 잘 쓰실텐데 ^^
요즘 리뷰 러쉬군요 ㅎㅎ

마늘빵 2009-06-25 20:48   좋아요 0 | URL
리뷰는 한번 쓰면 계속 쓰게 되고, 한번 안쓰면 계속 안쓰게 돼요. 이게 머리가 '리뷰 모드'가 되면 그 다음 리뷰도 그냥 자연스럽게 따라오네요. ^^
 
순례자의 책
김이경 지음 / 뿌리와이파리 / 2009년 6월
구판절판


"그동안 나는 어디서나 평안을 찾았지만, 책이 있는 한쪽 구석을 제외하곤 어디서 찾을 수 없었다."(토마스 아 켐피스, <그리스도를 본받아>)

"천국은 도서관과 같으리라."(가스통 바슐라르)-24쪽

이민족 정복자가 정복지의 책을 불태우는 일은 현대에도 계속되었습니다. 히틀러는 1933년 봄 30개 대학에서 ‘독일정신에 위배되는’ 책들을 분서한 이래 12년 동안 1억 권이 넘는 책과 600만이 넘는 사람들을 화염 속으로 밀어 넣었습니다. 나치는 독일뿐 아니라 피정복국의 도서들도 약탈했는데, 가장 큰 피해를 입은 폴란드의 경우 1,600만 권이 파괴되고 12세기의 희귀 필사본들이 설탕공장의 연료로 사라졌습니다. 히틀러만이 아닙니다. 티베트를 침략한 중국군은 불교사원을 약탈하고 수십만 권의 책을 불태웠으며, 사라예보를 공격한 세르비아군은 국립 도서관을 겨냥해 포탄을 쏟아 부었습니다.
21세기에도 이런 일은 사라지지 않아서, 미국의 이라크 침공 때 문화예술의 산실인 ‘지혜의 전당’이 폭격으로 불타고, 국립 도서관을 비롯한 희귀 고문서 보관소들이 약탈되거나 불타 없어졌지요. -88-89쪽

"책을 불사르는 것은 인간을 불사르는 것과 같다."(하인리히 하이네)-172쪽

재판정에서 빈센테(1830년 에스파냐의 수도원 장서 관리자로 책을 훔치기 위해 살인까지 저지른 인물)는 왜 사람을 죽였냐는 물음에 "사람은 언제나 죽게 마련이지만 좋은 책은 반드시 보전해야 한다"고 태연히 답해 주위를 경악시켰습니다. 변호인은 무죄를 주장하면서, 검찰 측이 살인의 증거로 삼은 유일본에 대해 그 책이 프랑스에도 한 권 있으므로 유일본이 아니라고 밝혔습니다. 그 어떤 말에도 태연하던 빈센테는 변호인의 이 말에 놀라 이성을 잃었습니다. 처형되는 날에도 그는 "그 책이 유일본이 아니라니!"하며 탄식했다고 합니다. -25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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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9-06-22 08: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천국은 도서관과 같을거란 말, 정말 그럴 것 같아요.

마늘빵 2009-06-22 09:05   좋아요 0 | URL
네, 요즘 책값으로 너무 많이 써서... 원하는 책이 모두 다 있는 그런 천국에 갔으면 소원이 없겠어요.

글샘 2009-06-22 08: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엔 도서관도 지옥이던데요... ㅠㅜ
애들 기말셤 공부한다고 바글거리면서 공분 안하고 놀기만... 떠들고...

마늘빵 2009-06-22 09:06   좋아요 0 | URL
한국의 도서관은 -_- 독서실이죠. 책을 읽는 곳이 아니라 시험 공부하고 노는...

비로그인 2009-06-23 07:56   좋아요 0 | URL
제가 가는 도서관은 정말 도서관 같다는 생각이..
도서관 강좌도 지방 치고는 꽤 되었고, 서고에서는 개인 학습을 금지하고 있어 모두가 책을 읽고 있거든요. 그런데 개인 열람실은 아마 정말 독서실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진짜 도서관 풍경'은 그러고 보니 아동실, 유아실이란 생각이.
 
보노보 찬가 - 정글자본주의 대한민국에서 인간으로 살아남기
조국 지음 / 생각의나무 / 2009년 5월
구판절판


"여기가 로두스 섬이다. 여기서 뛰어라. 여기에 장미가 있다. 여기서 춤춰라!"(헤겔, <법철학> 서설)

"좋았던 옛날 것들이 아니라 나쁜 새로운 것들로부터 시작하라."(베르톨트 브레히트)

"시간의 끔찍한 중압이 네 어깨를 짓누르면서 너를 이 지상으로 궤멸시키는 것을 느끼지 않으려거든 끊임없이 취하라."(보들레르)-8쪽

24-25
"역사적 경험에 귀 기울지 않는 의사(疑似) 자유민주주의자들 또는 가짜 자유민주주의자들에게 우리는 이들이 우상화하는 시장근본주의가 민주주의의 문맹의 한 형태임을 주지시켜야 한다. … 오직 시장에만 의존하는 자는 누구든 민주주의를 파괴하며, 결국 이와 함께 시장경제 자체를 파괴해 버리고 말 것이다. 오늘날 자본주의를 심각하게 위협하는 유일한 적은 오직 이윤만을 추구하는 자본주의 자체이다."(울리히 벡)-24-25쪽

33
"입으로만 노동자는 하나라고 외치면 뭐 하냐. 가장 밑바닥에서 소외받고 고통당하는 비정규직을 나 몰라라 해서 어찌 민주노총이라 할 수 있냐. 지금 정규직이라고 천년만년 정규직 할 것 같나. 정규직이 비정규직과 손잡고 싸우지 않으면 얼마 못 가 정규직도 비정규직 신세가 되어 발목에 쇠사슬 차고 노예처럼 일하게 될 거다."(이소선 여사)-33쪽

"빈곤은 자신이 범하지 않는 범죄로 받는 형벌과 같다."(엘리 카마로프)-45쪽

"빈자의 비참함이 자연법칙이 아니라 우리의 제도 때문에 야기된 것이라면, 우리의 죄악이 크다 할 것이다."(찰스 다윈)-46쪽

부자들의 부는 그들 자신의 개인적인 노력 덕이기도 하지만, 그러한 부의 축적 뒤에는 공적․제도적 뒷받침이 있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사회복지에 무관심하고 세금내기를 아까워하는 부자는 부자의 자격도 품격도 없는 샤일록 또는 스크루지일 뿐이다.-47-48쪽

전 세계 민주주의국가의 입법이나 판례를 보면, 언론기관이 직간접적으로 불법도청에 관여하지 않았고, 도청의 내용이 중대한 공공의 이익과 관련이 있으며, 공개를 통해 인격권이 침해되는 인물이 공적 인물이라면 도청내용의 언론보도는 위법성이 조각되어 무죄가 된다. 공적 인물도 프라이버시가 있지만 그의 언동이 공적인 중요성이 있는 사안이라면 프라이버시는 언론의 자유에 양보해야 하기 때문이다. -52쪽

나는 대통령과 집권세력에게 죄회전하라고는 부탁하지도 기대하지도 않겠다. 그러나 적어도 대선시기 표를 구할 때의 마음으로 돌아가 민심에 귀를 기울이며 우회전의 각도와 속도를 조정하라고 부탁하고 싶다. 안정감과 책임감 있는 우회전, 그리고 절제 있고 진중한 우회전을 하라는 말이다. 그렇지 못하고 강경진압과 처벌이라는 ‘5공식’ 해결방식에 의존한다면 꺼진 듯이 보이는 ‘촛불’은 다시 켜질 것이며, 그때 촛불은 ‘들불’이나 ‘횃불’이 될 수도 있다. 평화를 사랑하는 보노보들도 생태계 자체의 위기가 닥치면 자구행위를 하지 않을 수 없다. -61쪽

왕은 배요
백성은 물이라,
물은 배를 띄울 수도 있고
배를 엎을 수도 있다.
(<정관정요> 위징의 충언)-61-62쪽

세상에는 화해할 수 없는 두 개의 법이 존재한다네.
인간을 위한 법과 물(物)을 위한 법이지.
뒤 놈은 도시와 함대를 짓지만,
끝내는 야수가 되어 인간의 자리를 빼앗는다네.
(랠프 에머슨, ‘채닝 송가’)-62쪽

"민주주의가 어렵다면 직접민주주의는 더욱 어렵다."(노베르토 보비오)-65쪽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 싸움 속에서 스스로도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우리가 괴물의 심연을 오랫동안 들여다본다면, 그 심연 또한 우리를 들여다보게 될 것이다."(니체, <선악의 저편>)-76쪽

진보는 불리한 진실도, 불편한 진실도 모두 다 드러내고 인정하는 데서 출발한다. -77쪽

너는 내게로
번져 어느덧 내가 되고
나는 다시 네게로 번진다
번짐,
번져야 살지.
장석남, ‘수묵정원9-번짐’-80쪽

진보진영은 진보의 문제는 단지 고상한 가치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서민대중에게 밝혀야 한다. 서민들의 ‘욕망’을 폄하할 것이 아니라 그 ‘욕망’을 직시하고 진보적 관점에서 재구성하여 그 충족의 전망과 방법을 제시해야 한다. 민주, 인권, 공정, 평등, 복지, 연대 등의 가치는 바로 ‘밥’에 대한 문제라는 것, 즉 어떠한 방식으로 ‘밥’을 만들고 어떠한 기준과 절차에 따라 ‘밥’을 나눠 먹을 것인가의 문제라는 것을 쉽고도 실감 있게 전달해야 한다. -83쪽

한 사회 속에 사는 인간이 고통받고 차별받을 때 ‘운동’은 필연적이다. 약자가 침묵하거나 포기할 때 그의 목소리는 체제에 반영되지 못한다. 고통과 차별 해소의 시작은 이를 사회 전체에게 알리는 데서 시작한다. 아무리 소수라고 하더라도 지속적으로 반복적인 문제제기는 세상을 바꿀 수 있다. 한편 인권은 ‘정치’의 문제이다. ‘정치’란 사회의 한정된 자원을 누구에게 얼마큼을 어떠한 절차로 나눌 것인가에 대한 문제이다. 정글화해가는 한국에서 긴요한 사회․경제적 민주화는 약자에 대한 존중과 약자와의 연대가 사회원리로 자리잡는다는 것이며, 이를 위해선 어떠한 국가와 정부가 필요한가는 피할 수 없는 문제가 된다. -39쪽

"삼가고 또 삼가는 것[欽欽]은 본디 형벌을 다스리는 근본인 것이다." (정약용)-100쪽

집회의 자유는 집권세력에 대한 정치적 반대의사를 공동으로 표명하는 효과적인 수단으로서 현대사회에서 언론매체에 접근할 수 없는 소수집단에게 그들의 권익과 주장을 옹호하기 위한 적절한 수단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소수의견을 국정에 반영하는 창구로서 그 중요성을 더해 가고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집회의 자유는 소수의 보호를 위한 중요한 기본권인 것이다. 소수가 공동체의 정치적 의사형성과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가능성이 보장될 때, 다수결에 의한 공동체의 의사결정은 보다 정당성을 가지며 다수에 의하여 압도당한 소수에 의하여 수용될 수 있는 것이다. 헌법이 집회의 자유를 보장한 것은 관용과 다양한 견해가 공존하는 다원적인 ‘열린 사회’에 대한 헌법적 결단인 것이다. (2003년 헌법재판소)-120쪽

"우리가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마법이 필요하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이미 우리 속에 우리가 필요한 모든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우리는 더 나은 것을 상상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조앤 롤링의 하버드 강연 中)

소설 하나로 세계 최고의 부자반열에 오른 롤링이 ‘좌파’적 이야기까지 하니 아니꼬운 호사를 부린다고 반응하는 이도 있을 것이고, 하버드 졸업생은 결국은 미국과 세계의 ‘지배계급’의 구성원이 될 것인데 그런 훈계가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라고 냉소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사회는 롤링 같은 부자나 진보와 인권을 위해 뛰는 하버드 졸업생 같은 젊은이들이 더 많이 필요하다. 이들을 비꼬기만 하며 아무 일도 하지 않거나 또는 내 이익에나 충실하자며 세상 일에 관심을 끊는 사람보다는 이러한 ‘위선’과 ‘가식’을 실천에 옮기는 사람이 세상을 바꾸는 법이다.(물론 이들에게는 ‘위선’과 ‘가식’없이 삶 자체가 진보의 근거가 되는 사람들과의 소통과 연대는 필수적이다.)-19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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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큐리 2009-06-20 1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올리시는군요...ㅎㅎ 빨리 구해서 읽어봐야 겠어요...

마늘빵 2009-06-25 20:49   좋아요 0 | URL
원래 안사려고 했는데, 지인이 이 책을 사고서 제가 궁금해하는 부분을 말해줘서 읽게 됐어요. 제가 궁금했던 부분은 이 책의 닫는 글에 있는데, 본문도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2009-06-20 13: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100℃ - 뜨거운 기억, 6월민주항쟁
최규석 지음 / 창비 / 2009년 6월
구판절판


작가의 말

6월항쟁 당시 명동성당에 격리된 사람들에게 밥을 해 먹였던 철거민들은 지금까지도 여전히 맞고 쫓겨나고 있고, 노동자들은 제 처지를 알리기 위해 전태일 이후로 수십년째 줄기차게 목숨을 버리고 있지만 전태일만큼 유명해지기는커녕 연예인 성형 기사에조차 묻히는 실정이다. 선생님이 멋있어 보여 선생님을 꿈꾸던 아이들이 지금은 안정된 수입 때문에 선생님을 꿈꾸고 아파트 평수로 친구를 나눈다. -208쪽

이런 것들이 민주화와 무슨 상관이냐고 할지 모르겠지만 이러한 실질적인 삶의 문제들과 관계가 없는 거라면 그럼 민주주의란 도대체 어디에 쓰는 물건이란 말인가. 지배층과 대거리를 할 만큼 똑똑해서 그들의 통치에 훈수나 비판을 던질 수 있는 수준 높은 사람들이 더이상 황당한 이유로 끌려가지 않게 되는 것이 민주화란 말인가. 민주화란 게 겨우 그런 거라면 할 말 좀 참고 좀더 배불리 편하게 먹고 사는 것이 낫다는 사람들의 흐름을 어떻게 탓할 수 있을까. 사회의 문제로 고통받으면서도 제 탓만 하고 사는 사람들 앞에서 20년 전에 이룩한 민주화를 찬양하는 것은 삶의 질과 민주주의가 아무런 연관을 갖지 않는다고 선전하는 것이나 다름없어 보였다. 그것은 민주주의를 행사장 귀빈석에 앉은 분들 가슴에 달린 카네이션 같은 것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208-209쪽

똑같은 얘기라 하더라도 그 대상이 청소년이라면 하나마나한 소리도 꼭해야 하는 소리가 된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이 아무것도 아닌 걸 위해 수많은 사람들 - 역사 교과서에 등장하는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 지금의 우리처럼 터무니없이 약하고 겁 많고 평범한 사람들 -이 피와 땀을 흘렸고 제 삶의 기회를 포기했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었다. 그리고 할 수만 있다면 이 아무것도 아닌 것을 지키는 것이 생각보다 무척 어려운 일이고 우리의 민주주의가 안심할 정도로 튼튼하지도 않으며 끊임없이 강화하고 보완하려는 노력 없이는 어느날 사람 좋아 보이는 도둑놈에 의해 순식간에 사라져버릴 수 있다는 얘기까지 하고 싶었다. -20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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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09-06-18 08: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태그에는 최규'적'이라고 써있어요,아프락사스님.

마늘빵 2009-06-18 09:15   좋아요 0 | URL
아 오타가... ^^ 수정했어요.

머큐리 2009-06-18 1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6월의 그 뜨거움이 지금을 버티는 힘이 되는거 같아요...

마늘빵 2009-06-18 23:19   좋아요 0 | URL
저도 사실 이 만화에 들어간 역사적 현실에 대해서는 단편적으로만 알고 있습니다. 최규석이 자신이 그러함에 대해 부끄러움을 표했는데, 저 역시 벗어날 수 없네요. 그 힘으로, 그 뜨거움을 이어받아, 지금을 이겨내야죠.
 
나의 관타나모 다이어리
마비쉬 룩사나 칸 지음, 이원 옮김 / 바오밥 / 2009년 6월
품절


"괴물이나 도깨비처럼 생긴 사람들만 악행을 저지른다고 여기는 건 순진한 생각입니다. 관타나모는 악 그 자체입니다. 관타나모는 기소도 하지 않고, 어떤 재판절차도 없이 단지 어렴풋한 혐의만으로 사람을 5년 이상이나 가둬두는 곳입니다."-47쪽

내가 만난 많은 수감자들은 자신들이 미국으로 팔려왔다고 주장했다. 9.11 이후 벌어진 전쟁 와중에, 미군은 아프가니스탄 전역에 수천 장의 전단을 살포했다. 누구라도 탈레반이나 알카에다 조직원을 신고하면 5,000달러에서 25,000달러를 준다는 내용이었다. 2006년 아프가니스탄의 일인당 국민소득이 300달러(하루에 82센트)인 점을 감안하면, 그것은 로또 당첨이나 다름없었다. 같은 해 미국의 일인당 국민소득은 26,036달러였다. 만약 그 현상금을 미국인들의 소득 비율로 환산하면 2백만 달러를 상회하는 금액이 된다. 아프가니스탄인이건 미국인이건 83년을 뼈 빠지게 일해야 그만한 액수의 돈을 벌 수 있다는 얘기다. -71-72쪽

아프가니스탄 수감자인 압둘 마틴은 카시오 시계를 차고 있다가 체포된 과학 교사였다. 마틴은 누군가가 자신을 억류하고 있는 사유서를 쓰면서 배꼽이 빠지도록 웃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마틴이 적 전투원 지위 재판을 받을 때 미군 재판관은 그에게 ‘악명 높은 카시오 시계를 소지한’ 이유를 설명하라고 요구했다. -76쪽

금빛 찬란한 에스컬레이터와 유리로 만든 엘리베이터가 있는 <카불시티센터>라는 수백만 달러짜리 거대한 쇼핑몰에 갔을 때, 그런 생각이 더욱 강하게 들었다. 그곳은 부유한 유럽인과 미국인, 그리고 해외에서 온 아프가니스탄인들이 첨단 전자제품, 명품 옷, 보석, 스위스 시계, 골동품을 사느라 분주했다. 유일하게 통용되는 화폐는 달러였다. 연말이 가까운 때라 크리스마스 세일 간판이 곳곳에 붙어있었다. 압도적으로 무슬림이 많은 나라에서 그것들은 꽤나 이상해 보였다. -162쪽

유엔 인권위원회는 1980년대 소련군 침공의 잔재인 약 천만 개의 지뢰가 아프가니스탄 전역에 깔려있다고 추정한다. 이후 대략 80만 명의 아프가니스탄인들이 그 때문에 불구가 되었다. 유엔 아동기금은 지뢰 폭발 때문에 하루에 20~25명이 부상을 당하고 있고, 그 결과로 아프가니스탄 인구의 4%가 불구가 되었다고 추정한다. 아프가니스탄 어디에 가든 목발이나 휠체어에 의지한 사람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163쪽

듀로코빅은 2001년에 있었던 도시에서(그렇지 않은 도시들과 비교하여) 폭격에 노출된 사람들의 우라늄 잔류량을 연구했다. 듀로코빅은 심하게 폭격을 받은 지역에 거주하던 사람들의 소변 속에서 그렇지 않은 지역 사람들의 20~200배나 높은 우라늄 집적량을 일관되게 발견했다. -165쪽

픽티아주에 사는 이사둘라는 자기 아내가 온몸에 멜론 크기의 종양들로 뒤덮인 아이를 출산했다고 말했다. "그 징그러운 붉은 종양으로 뒤덮인 내 아이를 봤을 때, 나는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미국인들은 왜 자기들이 이 나라에서 증오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걸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가? 만약 내가 미국인 아이에게 이런 짓을 했다면, 그 아이의 가족이 내 눈알을 빼낸다 하더라도 나는 할 말이 없을 것이다."-166쪽

미라키는 아프가니스탄 사로비에 살고 있는 한 젊은 여자의 사례를 기록하고 있다. 그녀의 남편이 출타 중이었을 때 미군병사들이 들이닥쳐 집안을 수색하고 ‘심문’을 하겠다며 그녀를 미군기지로 데려갔다. 이웃들이 남편에게 이를 알렸고, 그가 아내를 찾으러 미군기지에 갔을 때 그녀는 그곳에서 집단강간을 당했다고 털어놓았다. 남편은 그녀를 더 이상 자기 아내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고 미라키에게 말했다. 그녀는 친정으로 갔고, 며칠 뒤에 자살했다. 전문가들은 아프가니스탄에서 벌어진 많은 강간사건들이 문화적 금기 때문에 보고되지 않은 채 덮어진다고 추측한다. -235쪽

이상한 건 수감자들을 고문하는 미군이다. 이상한 건 수감자 하나당 5,000~25,000달러를 ‘보상금’으로 주었던 일이다. 더 이상한 건 금전적으로 이득을 얻으려는 현지인들의 고발내용을 먼저 조사하지도 않고 사람들을 잡아온 미군이다. 이상한 건 기소도 하지 않고 사람들을 5년 이상 억류하고 있는 것이다. 이상한 건 자살한 수감자들의 시신을 고향에 보내기 전에 조직을 제거한 미군이다. 이상한 건 팔십 먹은 노인을 ‘적 전투원’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상한 건 미군병사들이 코란을 똥통에 던지는 동안, 행정부가 미국 헌법에 대해 같은 짓을 하고 있는 것이다. -250쪽

"만약 미국인들이 무슬림과 나란히 앉아 서로를 알게 된다면, 우리가 얼마나 닮아있는지 발견하게 될 겁니다. 우리는 가족을 사랑합니다. 우리는 아이들이 잘되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평화를 원합니다. 우리는 전망이 있는 미래를 바랍니다."-257쪽

미국 정부의 문제는 그들의 결정이 꼬여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탐욕에 이끌려 움직인다. 그들은 자신의 위장을 좇고, 석유를 좇고, 돈을 좇는다. 그런데 그들의 손에 고통당하는 것은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이다. 처음 미국인들이 왔을 때 우리는 무척 기뻤다. 러시아의 강점시기부터 우리는 그들을 친구라고 여겼다. 그러나 폭탄이 하늘에서 쏟아지기 시작했다. 우리 가난한 나라에 남아있던 모든 것을 산산히 부쉈고, 혐의도 증거도 없이 우리를 감옥에 가두었다. (중략) 이 테러와의 전쟁에서 악이라고 불러야 할 두 종류의 사람들이 있다. 미국인들과 탈레반이다. -29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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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16 13:1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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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16 14:5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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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16 15:2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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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16 16:4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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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16 17:0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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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16 19:4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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