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멸의 신성가족 - 대한민국 사법 패밀리가 사는 법 희망제작소 프로젝트 우리시대 희망찾기 7
김두식 지음 / 창비 / 2009년 5월
구판절판


"타인의 삶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트집을 잡기 위해서는 우선 자기 자신에 대해 정직하게 털어놓아야 한다. 그리고 자기의 체험이나 행동의 범주를 넘어서는 말을 해서는 안된다."(마루야마 겐지, <소설가의 각오>)-10쪽

"수령으로서 참을성이 없는 자는 매양 소장(訴狀)을 접할 때마다 그 사건의 근원부터 캐내어 밝혀내려 하지는 않고 다만 눈앞의 소첩(訴牒)에만 의거해서 판단하니, 더듬어 찾아도 얽히고 설켜 있어서 옳은 듯도 하고 그른 듯도 한데, 급하게 제결(題決)을 놓아 이졸(吏卒)을 꾸짖어 물러가게 하고는 구차하게도 목전의 할 일이 끝났음을 다행으로 여긴다."(정약용, <목민심서>)-40쪽

검사한테 가면 태도가 달라요. 그러니까 뭐 알려고 하지도 않고요. 이미 너는 노동조합활동 하는 애고, 너의 세계관과 나의 세계관은 다르고, 너는 어차피 그렇게 하면, 구속돼서 살 거 각오하고 하는 애 아니냐? 그런 태도죠.(이해영, 11면)-77쪽

85.5퍼센트의 시민들은 인맥으로 칠 법조인이 단 한명도 없는 것입니다. 더 흥미로운 것은 연구진이 핵심 중산층으로 분류한 집단에서는 법조인을 인맥으로 확보한 비율이 21.5퍼센트에 이르지만, 하층으로 분류된 집단은 그 비율이 5퍼센트 내외로 뚝 떨어집니다. 핵심 중산층이나 주변적 중산층에 비해 하층에 속한 사람들은 법조인을 알게 될 가능성이 4분의 1 수준으로 떨어지는 것입니다. 이런 통계는 많은 시민들에게 사법은 타자성의 세계이며, 미지의 세계에 속한 영역일 수밖에 없음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80-81쪽

"약자가 권리를 침해받고 있을 때는 침묵하던 법이, 견디다 못한 약자가 그걸 세상에 알리고 바로잡기 위해 몸을 일으키는 순간, 뒤늦게 개입하여 약자만을 처벌한다."(변교수)-81쪽

"돈을 받고 그릇된 재판을 해서도 안되오. 왜냐하면 뇌물은 지혜로운 사람의 눈을 어둡게 하며 죄 없는 사람을 죄인으로 만들기 때문이오."(구약성경 신명기 16장)-86쪽

돈을 돌려준 경험을 이야기한 전현직 판검사들 중의 누구도, 돈을 준 변호사를 입건하거나 고발하지 않았습니다. 만약 누군가 이런 조치를 취하면 그는 어떤 평판을 얻게 될까요. 일반인들은 혹시 그런 판검사를 청렴하다고 칭송할지 모르지만, 좁은 법조계 바닥에서는 ‘또라이’로 찍힐 개연성이 높습니다. -100-101쪽

"어떤 일을 하려고 하는데 정상적인 절차를 밟아서는 하기 어렵다. 그럴 때 당신은 학연, 지연, 혈연을 찾아 누구에겐가 전화를 건다. 그러면 금방 해결된다. 당신에겐 전혀 죄의식이 없다. 그건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의 기본일 뿐이니까. 그러나 당신처럼 그렇게 전화 한통으로 해결할 수 있는 학연, 지연, 혈연을 갖지 못한 사람이 누구에겐가 돈을 주고 어떤 일을 해결했을 때 당신은 그건 부정부패라고 분노한다. 당신의 그러한 2중 기준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연고에 의한 청탁은 괜찮고 금품을 이용한 청탁은 범죄라면, 그건 정말이지 너무 불공평하지 않은가."(강준만, <서울대의 나라>)-128쪽

신성가족은 자신의 힘으로 창조한 것이며, 사악한 사회에서 자유롭기 위해 스스로 자신을 사회에서 해방시킨 존재입니다. 신성가족의 가장 큰 상징인 ‘거룩’은 처음부터 ‘구별’을 의미하는 단어이기도 했습니다. 맑스는 "불경스러운 대중과 모든 것으로부터 스스로를 해방시키기 위해 어마어마한 투쟁을 겪어온 비판적 비판주의는 마침내 고독하고 신을 닮았으며 자기만족적이고 절대적인 존재로 되는 데 성공했다"고 그들을 묘사합니다. -146쪽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중국, 프랑스, 이딸리아 등과 함께 우리나라를 가족주의가 지배하는 대표적인 ‘저신뢰 사회’로 규정했습니다. 가족주의사회에서는 혈연관계로 엮이지 않은 사람들이 서로를 신뢰할 만한 토대가 없기 때문에 자발적인 결속력이 약할 수밖에 없으며 이는 결국 고비용으로 연결되게 마련입니다. -152쪽

퇴직 후를 생각하는 판검사 입장에서 삼성은 통제해야 할 대상이라기보다는 미래의 직장, 그것도 최고의 직장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삼성 사건에 제대로 된 수사나 판결을 기대하기란 매우 어렵습니다. 삼성을 통제하기는커녕, 삼성에서 연락이 오기를 기다리는 상황이 되고 만 것입니다. 언젠가는 개업을 해야 하는 판검사로서는 삼성 같은 곳에서 많은 월급을 받으며 품위를 유지하며 사는 것이 ‘브로커’를 고용해 어렵게 개인 변호사로 사는 것보다 훨씬 매력적입니다. 이 역시 판검사들이 언젠가는 개업을 하는 우리 법조계 구조에서 당연한 현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기이한 일이지만, 내부에서 보면 너무나 당연한 일이지요. -172쪽

결국 ‘신성가족’에게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제사장이라는 중개인이 필요하다는 사실과 연관지어 이해할 수밖에 없습니다. 신성가족이 품위를 지키며 큰돈을 벌기 위해서는 일반인들과 이들을 중개해줄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이런 씨스템에서 모든 지저분한 업무는 당연히 중개인들의 몫이 됩니다. -197쪽

"불경스러운 대중과 모든 것으로부터 스스로를 해방시키기 위해 어마어마한 투쟁을 겪어온 그들은 마침내 고독하고 신을 닮았으며 자기만족적이고 절대적인 존재로 되는 데 성공했다."(칼 맑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신성가족>)-215쪽

‘거절할 수 없는 관계’란 누군가 ‘거절할 수 있는 용기’를 내는 순간 마치 모래더미처럼 스르르 무너져 내리게 마련입니다. -314쪽

원만함은 우리사회에서 대체로 좋은 가치로 받아들여졌고, 어느 조직에서나 원만한 사람을 선호하는데 이건 별로 이상한 일도 아닙니다. 그런데 이 원만함이 사법 관련자들을 지배하는 이데올로기가 되면 문제가 심각해집니다. 원만함이라는 이데올로기가 지켜내는 것은 언제나 기득권층의 이익과 기존 질서입니다. 갈등상황에서 가만히 있는 것이 원만함으로 이해되는 조직에서, 모두 그러다보면 ‘정의’라는 본질적인 가치는 뒷전으로 밀릴 수밖에 없습니다. -3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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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큐리 2009-06-14 14: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본주의에서 나름의 신성가족이란 불가피하지 않은가도 생각되네요...그것의 내재적 원리나 공유하는 가치들이 구체적으로 나타나서 민중들에게 드러나는 연구들이 많이 나와야 극복할 방법들도 나올텐데요...알면 더 답답하려나? ㅎㅎ

마늘빵 2009-06-14 22:47   좋아요 0 | URL
읽다보니 이게 제도로 보완될 수 있는 부분이 있는가 하면, 개개인이 바뀌지 않는한은 불가능하겠다 싶기도 하네요. 그들은 자연스럽게 아무렇지 않게 행하는 것들이 사건과 직접 관련된 사람들 입장에서보면 이건 완전 썩은 물이거든요.
 
폭력 비타 악티바 : 개념사 6
공진성 지음 / 책세상 / 2009년 1월
품절


이제 우리는 폭력이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아직 무엇이 폭력인지 정확히 알지는 못한다. 왜냐하면 폭력이라는 말에는, 즉 무엇이 폭력인지를 결정하는 ‘사실 판단’에는 언제나 ‘폭력이 나쁜 것’이라는 ‘가치 판단’이 개입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러한 가치 판단 없이 무엇을 폭력이라고 사실적으로 판단하지 않는다. 어떠한 힘의 사용에 대해서 가치 판단을 내릴 필요가 없다면, 설령 그 힘이 객관적으로 폭력일지라도, 굳이 그 힘이 폭력인지 여부를 사실적으로 판단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계속)-25-26쪽

(이어서) 그러므로 ‘폭력’에 관한 질문에는 언제나 가치 판단이 끼어든다. 어떠한 힘의 사용이 정당한지 부당한지를 묻는 것이. 그리고 그 정당성에 관한 질문, 즉 가치 판단에 관한 질문을, 어떠한 힘이 폭력인지 아닌지의 형태로, 마치 그것이 사실 판단의 문제인 것처럼 제기한다. 이것이 우리가 폭력에 관해 질문하고 대답하는 것을 어렵게 만든다. (중략) 그러나 사실 중요한 것은 ‘무엇이 폭력이냐’가 아니라, 무엇이 부당한 힘의 사용이냐, 즉 ‘우리가 무엇을 폭력으로 규정해 배제하기를 원하느냐’일 것이다. 우리는 모든 폭력을 폭력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25-26쪽

다만 그것을 폭력이라고 부르지 못하게 하는 힘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폭력과 비폭력의 구분을 만들어내는 구조적 힘, 곧 정치적 권력이다. 국가 상태에서는 무엇이 폭력이고 무엇이 폭력이 아닌지, 더 정확하게 얘기해서 무엇이 정당한 폭력이고 무엇이 부당한 폭력인지를 구분하는 권한이 각 사람에게 속해 있지 않고 오로지 국가에 속해 있다. 그런데 이 말이 각 사람에게 그것을 판단할 능력이 없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각 사람이 지니고 있는 이 판단의 능력이 국가가 독점하고 있는 정당한 판단의 권한을 다시금 정당화 요구라는 시험대에 오르게 만든다. -40쪽

군대와 경찰은 폭력을 전문적으로 ‘관리’하는 곳이다. 폭력을 단순히 ‘이용’한다고 하지 않고 ‘관리’한다고 표현한 것은, 군대와 경찰에서는 폭력이 독점적으로 이용될 뿐만 아니라, 문명화한 사람들의 비폭력적인 신체와 성향이 그곳에서 다시 폭력적으로 바뀌고, 일정한 시간 동안 이용된 후에 또다시 비폭력적으로, 그러나 결코 완전히 비폭력적이지는 않게 순화되어서 그곳으로부터 배출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문명은 폭력을 극복한 것이 아니라, 즉 폭력의 반대말이 아니라, 다만 폭력을 관리하는 세련된 형태일 뿐이다. -49-50쪽

한국의 남성들은 군대에서의 경험을 크거나 작게 일종의 정신적 외상(트라우마)으로 간직하고 있다. 이들은 군대에서 겪은 폭력과 자발적이거나 비자발적으로 회복한 폭력성 때문에 괴로워한다. 그리고 그것에 대한 보상 심리로서 그 폭력성을 남성성과 동일시하고, 제대 후에도 그 폭력성을 버리지 못해 주로 자신보다 약한 타자에게 분출하곤 한다. 한국 사회 전체가 병영과 같았던 군부 독재 시절에 국민들은 이미 학교에서부터 재폭력화했고 제대후라고 해서 특별히 탈폭력화하지도 않았다. -52쪽

국가의 폭력 독점은 그 폭력의 출처인 개개인이 폭력적인 힘의 자의적인 사용을 포기할 때 가능하며, 그것은 다시 개개인이 스스로 자기 보존을 추구하는 것보다 국가라는 폭력의 독점 기구를 통해서 자기 보존을 꾀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라고 여길 때에 가능하다. 그런데 폭력의 독점 기구인 국가의 자기 보존 노력이 폭력의 출처인 개개인의 자기 보존 노력과 상충하는 상황이 발생할 때 국가의 폭력 독점의 정당성이 의심받게 되는 것이다. -67쪽

부르디외에 따르면 교육 행위 자체가 상징적 폭력이다. 그것이 폭력인 것은 일차적으로 교육을 통해서 학습자에게 자의적인 문화를 주입하기 때문이고, 이차적으로 그 과정에서 특정한 의미 체계를 선택하고 배제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교육 과정은 마치 사회의 집단적․계급적 이해관계와 무관한 것처럼 인식되기 때문에 더 효율적으로 지배적인 문화와 가치를 주입할 수 있으며, 그 결과로서 기존의 권력관계를 재생산하는 데 기여하게 된다. 교육 행위는 철저히 지배 집단이나 지배 계급의 객관적인 이해관계, 곧 그들의 물질적인 이해관계, 상징적인 이해관계, 그리고 교육적 차원의 이해관계에 따라서 작동한다는 것이다. -124쪽

폭력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남의 고통을 나의 고통처럼 느끼고 남이 겪는 폭력을 마치 내가 겪는 폭력처럼 느낄 수 있어야 한다는 도덕적 요청과, 폭력을 종식시키기 위해서라도 상대의 공격이 자신에게 폭력이 되지 않도록 자신의 연약한 부분을 단련하고 폭력에 무뎌지게 해야 한다는 정치적․군사적 요청 사이에 긴장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현실 속에서 우리가 관찰하게 되는 미국과 같은 대외적으로 폭력적인 탈영웅적 사회는 이 딜레마를, 앞에서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군대를 전문화하고 시민들을 탈군사화함으로써 해결하고 있는 듯하다. -14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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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9-06-09 08: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락사스 님의 밑줄긋기, 잘 읽고 있습니다. 매일같이 들여다 보면서 인사를 남기지 않는 것은 예의가 아닌 듯 하여 글을 남깁니다.

마늘빵 2009-06-09 09:06   좋아요 0 | URL
아핫, ^^ 요새는 읽은 책마다 리뷰를 안써서 밑줄긋기라도 충실히. 소설 책의 경우는 밑줄 그을 게 없어서 안 올리는 것도 가끔 있어요. 이 책 폭력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전달해주더라고요. 관련된 몇몇 학자들의 책도 읽어보려고요.

바라 2009-06-10 0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 많은 책들을 어찌 다 읽으시는지 존경스럽스럽니다ㅠ 아프님 읽으시는 책들이 제 관심 분야 책들하고도 많이 겹쳐서.. 저도 감사히 읽겠습니다~

마늘빵 2009-06-10 09:14   좋아요 0 | URL
아쿠, 가벼운 책들만 보고 있어요. 1차 서적들은 크고 두껍고 무거운데다 집중해야하니 지하철, 버스 간에서 보기가 어려워서... 출퇴근 시간에만 책 읽어요. ^^
 
한국 현대정치의 악몽 - 국가폭력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21
조현연 지음 / 책세상 / 2000년 9월
구판절판


"빛도 공기도 들어오지 않는 단단한 방 속에 갇혀서 죽음의 시간을 기다리는 사람에게 벽에 구멍을 뚫어 밝은 빛과 맑은 공기를 넣어주는 것이 옳은 일인가? 방 속의 사람은 감각과 의식이 마비되어 있는 까닭에 그 상태를 고통으로 느끼지 않을 뿐더러 오히려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살아가고 있다. 아니 죽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 사람에게 진실을 보는 시력과 생각할 수 있는 힘을 되살려줄 신선한 공기를 주는 것은 차라리 죄악이 아닐까?"(루쉰)-7-8쪽

"슬픔도 노여움도 없이 살아가는 자는 조국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다."(러시아 시인 네크라소프)-8쪽

"그 진위야 어떻든 상관이 없다. 또 아무리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는 것이라 해도 결코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것을 대신할 만한 새로운 관념을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반복해서 대중의 심리를 파악한다. 그럼녀 ‘네모꼴이 실제로는 원’이라고 논증하는 것도 결코 어렵지 않다. 말이라고 하는 것, 그것은 어떤 관념에 다른 옷을 입혀 전혀 엉뚱한 것으로 변화시키는 것"(괴벨스)-24-25쪽

"진실을, 모든 진실을, 오직 진실만을 말하라. 바보 같은 진실은 바보같이 말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진실은 마음에 들지 않게 말하고, 슬픈 진실은 슬프게 말하라."(<르 몽드>창간자 뵈브 메리)-35쪽

자유주의란 "개인의 자유를 인간 생활의 기본 규범으로 간주하며 문화와 법률, 도덕규범과 경제, 사회질서의 진보를 위해 애쓰고 개인의 해방을 추구하는 세계관"(독일의 백과사전 <브로크하우스>)-38쪽

"유엔에서 우리를 도와 싸우기로 작정하고 이 침략을 물리치기 위해 공중으로 군기 군물을 날라와서 우리를 도우니까 국민은 좀 고생이 되더라도 굳게 참고 있으면 적을 물리칠 수 있다." (이승만)
"서울에서 살아 남은 사람이 국민인지 적과 내통한 자인지 심시하라."(이승만)-60-61쪽

과거란 그저 덮어버린다고 하여 그리고 그저 잊어버린다고 하여 자동적으로 청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미래는 과거와 분리되어 있지 않으며, 현재를 매개로 과거와 깊숙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은 상식이다. 잘못된 과거가 만들어놓은 매듭을 올바로 풀지 않는다면 아무리 우리가 앞을 향해 나아가려고 해도 매듭은 더욱 꼬일 뿐이다. -137쪽

"처음에 나치는 공산주의자를 탄압했다. 그에 대해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잠시 후 나치가 민주주의자들을 잡아갔다. 그때도 모두들 침묵했다. 그리고 나치가 기독교 성직자인 나를 잡아갔다. 그러나 그때는 아무도 말해줄 사람이 남아 있지 않았다."(히틀러에 의해 살해된 본회퍼 목사)-141쪽

각주4) "한국에서 민주주의를 바라는 것은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이 피기를 바라는 것과 같다."(부산정치파동 때 <런던타임스>의 논평)-148쪽

각주35) 주민 희생 사건 연구계획(해원사업계획)과 관련한 1999년 7월 14일의 국방장관 조성태의 발언을 받아적은 메모에 따르면, ① 제주도, 문경, 함평, 영동, 나주 사건 등은 군이 보유한 자료를 섭렵하고 차후 쟁점화될 가능성이 있는 남원, 임실, 고창 순창 사건은 손대서는 안된다(현장 출장은 금지하되 자료는 정리) ② 참전자의 증언을 청취, 사실 여부를 확인하되 주민과 접촉해서는 안 되며 현지 조사는 뇌관을 건드리고 불난 곳에 기름을 붓는 격이니 안 하는 게 좋겠다 ③ 군의 최대 양보선은 양비론이다 ④ 군이 잘못한 점이 있다면 인정하되 그럴 가능성이 있다는 정도로 인정할 것을 지시하고 있다(<문화일보> 2000년 7월 24일). -15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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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노 다케시의 위험한 일본학
기타노 다케시 지음, 김영희 옮김 / 씨네21북스 / 2009년 4월
평점 :
절판



  기타노 다케시의 위험한 일본학. 책을 처음 접했을 때 '위험한 일본학'에 무게가 실렸는데, 펼치고보니 그보다는 '기타노 다케시'쪽으로 확 기운다. 기타노 다케시란 인물에 대해선 잘 몰랐고, 지금도 이 책 한 권 읽은 것 외에는 아는 바가 별로 없다. 저자 소개란에 보면, 기타노 다케시는 47년생으로 페인트공의 4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대학에 들어갔으나 학생운동을 하다 중퇴했고, 온갖 아르바이트를 해봤으며, '투 비트'로 데뷔해 개그맨으로 유명해졌다. 영화 배우로도 활동했고, 내친김에 감독까지 했는데 '개그맨'으로보다 '영화 감독'으로, 또 '독설가'로 지금은 더 많이 알려져 있는 듯 하다.  

  불행의 원흉 '20세기의 100인' 세계편과 일본편으로 나누어 냉소와 풍자, 역설 등을 이용하여 독설을 퍼붓고 있는데, 이 사람이 쓴 글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면 굉장히 위험하다. 그가 개그맨이며, 또 독설가라는 걸 염두에 두고 읽어야 한다. 기타노 다케시에 대해서 아는 바가 별로 없다보니 나도 읽다가 '응?!' 하고 멈추게 될 때가 있다. 러시아와 일본이 영유권을 주장하는 북방 영토에는 온천 밖에 없고, "생선도 일본의 어부가 잡는 것보다 러시아 어부가 잡은 걸 사는 편이 훨씬 싸게 먹힐지 모"르니 북방 영토는 필요없다는 주장은, 러시아에선 박수를 받고, 일본 우익들에겐 욕을 바가지로 먹을 발언이다.

  일본 아이돌을 대만을 비롯한 동남아 등지로 수출해서 문화 침략을 하자는 주장(이건 매우 약하다), 제 역할 제대로 못하고 세금만 잔뜩 먹는 대사관도 민영화하자는 주장, 버스납치를 못하게 17세 청소년은 버스에 태우지 말자는 주장, 일본 해산, 오키나와 독립운동, 자식 판매법 등 현실 비판인지 개그인지 헷갈려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어정쩡한 표정을 짓게 된다. 

 아무래도 '불행의 원흉'에 촛점을 맞춘 탓에 우울하고 슬픈, 때로는 화도 나는 그런 소재들만 다루었다. 이 책을 통해서 우리는, 기타노 다케시의 풍자와 개그 사이에서 오늘날의 일본 현실을 짐작할 수 있다. 한국 사회에서 일어나는 사건의 상당수는 십년 전 일본에서 일어났던 것들이라고 하는데, 지금은 오히려 한국의 불행한 사건들이 일본을 압도하지 않나 싶기도 하다. 많이 같고도 다른 일본을 '까는' 영화인 겸 개그맨 겸 독설가의 입을 통해 일본을, 그리고 다시 한국인의 눈으로 이곳을 들여다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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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킹 베를린 - 천유로 세대의 위험한 선택
소니아 로시 지음, 황현숙 옮김 / 프로네시스(웅진) / 2009년 3월
평점 :
품절



한국에 '88만원 세대'가 있다면, 유럽엔 '천 유로 세대'가 있다. 천 유로. 환율 변동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겠지만, 대충 한국 돈으로 100만원 가량이라고 한다. 한국의 물가와 한달 생활비를 유럽에 고스란히 적용할 수는 없고, 유럽이라고 해서 다 같은 유럽이 아니니 동네(?)마다 체감 '천 유로'는 다르겠다. 그러나 경제적으로 어려움에 처해있는 젊은 이들의 상당수를 지칭하는 용어임에는 틀림없다. 천 유로 세대의 위험한 선택, 퍼킹 베를린. 대학에 가기 위해 이탈리아에서 독일로 온 젊은 여성의 이야기다.

  표지를 넘기고서 제일 처음 눈에 들어온 것은 그녀의 이름. 소니아 로시. 설마 본명은 아니겠지? 본명이면 어떡하지. 이런 생각들이 먼저 스쳤다. 다행히(?) 본명은 아니었다. 그러나 저자 소개를 통해서 그녀의 주변인들은 그녀임을 추측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쓸데없는(?) 불안한 생각도 들었다. 열아홉 살에 이탈리아를 떠나 독일 베를린 대학에서 수학을 공부했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소니아는 생활비와 학비를 벌어야 했다. 시간당 임금이 거기서 거기인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다, 음란 채팅 알바를 했고, 옷을 벗었고, 돈을 더 벌기 위해 마사지방에 들어갔으며, 또 돈을 더 벌고자 몸을 팔았다.  

  독일에선 성매매가 합법이다. 그래서 그녀는 손님을 선택할 수 있었고, 계약 조건에 따라 업소를 옮겨다니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한국에서 볼 수 있는 마이킹(?)이나 포주의 학대 등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적어도 이 책에 서술된 바에 의하면. 독일에서 섹스를 사고 파는 건 마치 마트에 가서 쥬스를 고르고 돈을 지불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구매자는 업소에 와서 여자를 고르고, 합당한 값을 치르고 섹스를 한다. 그저 섹스는 하나의 상품에 불과했다.  

  다시 돌아와서, 소니아는 처음 음란채팅을 하고 옷을 벗을 때까지만 해도 많이 망설이는 모습을 보이다가,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욕심을 부린다. 옷도 벗었는데 마사지까지만 하자, 마사지는 하되 섹스는 하지 않겠다, 마사지에 오랄을 했고, 섹스로 넘어갔다. 기왕 섹스할거라면 정식 성매매 업소로 가자, 그리고 결국 성매매 업소에서 일을 하고 나중에는 벌이가 더 나은 업소를 찾아 멀리 떠나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함께 사는 남자친구를 비롯해 주변 사람들에게 거짓말을 하며 많이 싸우기도 한다.  

  그녀가 꿈꾸는 직장은 성매매 업소가 아니다. 그녀는 대학을 졸업해서 번듯한 직장에 자리를 잡고 싶어했다. 그러나 서빙 알바를 해서는 학비를 충당할 수 없었고, 설상가상 아이까지 낳아버렸다. 딱히 직장이 없는 남자친구는 그녀의 집에 얹혀 살았고, 생활비와 학비를 벌기 위해 성매매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한다. 다른 일을 해서는 도저히 필요한 돈을 벌 수 없었다는 그녀에게 정말 그 길 밖에 없었냐고 묻기는 어렵다. 우리는 소니아를 이해해주는 동시에 다른 '소니아들'에 대해서도 생각해봐야 한다. 어떻게 하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할 수 있을까?  

  그 전에 또 하나 물어야 할 것은, 이게 과연 문제거리가 되는 일인가, 라는 질문이다. '성노동'의 관점에서는 섹스를 사고 파는 일을 가게에서 물건을 사고 파는 일과 동일하게 본다. 사람이 자신의 손과 발을 이용해 일을 해서 돈을 버나, 동일한 몸의 다른 부위인 성기를 이용해 - 성기뿐 아니라 입 등을 이용한 섹스도 포함해서 - 돈을 버나 어차피 같은 '노동'이라는 시각은 나를 당황스럽게 한다. 그게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소니아의 지난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읽어나가야 하는데 - 단지 문제 삼을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베를린의 높은 학비와 생활비 정도 - 한국의 독자인 나뿐 아니라 독일을 비롯한 유럽 전역에서 이건 '충격'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독일의 슈피겔은 "<퍼킹 베를린>이 출간 직후 단박에 베스트셀러 목록에 진입한 사실은, 젊고 도전적인 독일의 수많은 여대생들이 이와 같은 위험한 선택에 직면하고 있다는 경고로 읽힌다." 라고 평했다. 분명 자신의 성기를 이용해 섹스 노동을 하는 것과 팔다리를 이용해 노동을 하는 것을 동일하게 보는 것 같지는 않다. 인간의 신체에 달려있는 부위라고 해서 모두 같은 가치를 가지는 것은 아니며, 별도의 의미를 부여하는 듯 하다.  

  가진 것 없는 자들이 마지막까지 사수해야 할 것은 자신의 건강한 몸이다. 사람들은 살기 위해 실험실 생쥐가 되기도 하고, 장기를 팔기도 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살기 위해 성매매를 하기도 한다. 실험실 생쥐가 되거나, 장기 매매의 대상이 되거나, 성매매의 대상이 되는 것을 동일선상에 놓는 이유는, 나 역시 성매매는 자신의 팔다리를 이용해 일을 하고 돈을 버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람이 지켜내야 할 최후의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에 팔 수 없는 것이 무엇이 있느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자본주의 시대에 우리가 지켜야 할 것도 있다고 말하고 싶다. 무자비한 자본과 권력은 개인의 삶을 벼랑 끝으로 몰아가고 있다. 팔 것이 없는 사람들은 제 몸 밖에는 팔 것이 없다. 살긴 살아야겠고, 팔 것은 없다. 이해한다. 그들을 비난하자는 게 아니다. 그들이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개선하자는 말이다. 그러한 선택들이 아무런 문제가 없다면, 우리가 이들이 그런 선택을 하지 못하도록 상황을 개선시킬 필요도 없다. 내가 가진 지식을 팔거나, 그들이 가진 몸을 팔거나 그건 모두 동일하므로. 하지만, 정말 두 가지가 동일한가, 다시 한번 물어보면 아니라고 말하겠다. 우리가 어떤 회사에 취직할까를 고민하는 것과, 그들이 어떤 실험실을 택할까, 어떤 업소를 택할까를 고민하는 것은 분명 차원이 다르다.    

  남자와 여자가 만나 사귀면 섹스하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사귀지 않더라도 눈이 맞고, 마음이 맞으면 섹스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성에 돈과 권력이 개입하는 것은 '매개 없는 자연스러운 섹스'와는 분명 다르고, 돈과 권력의 개입은 우리가 지양해야 할 바이며, 우리의 몸은 지켜내야 할 부분이라고 말하고 싶다. 성매매에 대한 내 생각이다.  

p.s. 이 책을 읽고서 관점에 따라 높은 학비와 생활비, 그리고 부모의 보호 아래 있다가 사회에 갓 나온 젊은이들에 대한 사회 제도적 방안 등을 논할 수도 있다. 언급한 모든 것이 맞물려 있어 함께 논의하는 것이 마땅하나 여러 이야기를 한꺼번에 하게 되면 정신 사나울 듯 하여 이 글에선 다른 부분은 가급적 축소하고 성매매에 관해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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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SHIN 2009-06-01 1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님, 안녕~
요즘도 바쁘게 지낼 당신, 감기 조심해요.
요즘 감기는 두통이 장난 아닌 듯...-_-

마늘빵 2009-06-01 15:07   좋아요 0 | URL
네. 엘신님 감기 걸리셨구나? 여름 감기 안좋아요. 저는 좀 피곤한거 빼고는 괜찮아요. 운동을 해야 하는데 자꾸만 게을러져서... 언능 나아요.

Pisces 2009-06-02 2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성에 돈과 권력이 개입하는 것은 '매개 없는 자연스러운 섹스'와는 구별되어야 한다는 말에 동감합니다. 잘 읽고 갑니다.

마늘빵 2009-06-02 22:56   좋아요 0 | URL
첨 뵙습니다. 오히려 진보 쪽에서 우리네 지식이나 팔다리를 이용해서 다 파는데(노동), 성이라고 못 팔거 있냐는 시각을 가진 경우를 많이 봅니다. 잘 이해가 되지 않더군요.

릴케 현상 2009-06-04 08: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성에 보수적인 편인지^^ 깊은 교감을 나누지 않은 사귐 상태에서 섹스하는 것조차도 그닥 긍정하진 않아요. '자유로운 섹스'에 열려 있지 않은 편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개없는 자유로운 섹스'라는 건 있는 건지? 잘 모르겠어요.
한편으론 아프님 말처럼 예전에 성매매법 얘기로 시끄러울 때 진보쪽 사람들이 자본주의 어쩌구 할 때 좀 난감했었죠.
여하간 머리나쁜 저로선 케 세라...

마늘빵 2009-06-04 11:05   좋아요 0 | URL
저도 물론 교감 없는 섹스는 별로라고 생각합니다. ^^ 사귀지 않는 상태에서도 교감은 이뤄질 수 있다는 걸 전제한거에요. 그런 점에선 저도 많이 자유롭진 않은 듯... '매개'라는 건 결국 돈과 권력인데, 넓게 보면 모든 남녀 관계를 포함한 인간 관계가 돈과 권력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지만, 이렇게 확장하다보면 '모든 인간은 죄인이다'라는 말처럼 아무 것도 이야기하지 못하는 결과를 얻게 되죠.

진보쪽에서 자본주의 논리에 따라 성매매도 인정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게 저도 희안합니다. 이건 성매매당에서 이야기해야 할 부분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