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정치의 악몽 - 국가폭력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21
조현연 지음 / 책세상 / 2000년 9월
구판절판


"빛도 공기도 들어오지 않는 단단한 방 속에 갇혀서 죽음의 시간을 기다리는 사람에게 벽에 구멍을 뚫어 밝은 빛과 맑은 공기를 넣어주는 것이 옳은 일인가? 방 속의 사람은 감각과 의식이 마비되어 있는 까닭에 그 상태를 고통으로 느끼지 않을 뿐더러 오히려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살아가고 있다. 아니 죽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 사람에게 진실을 보는 시력과 생각할 수 있는 힘을 되살려줄 신선한 공기를 주는 것은 차라리 죄악이 아닐까?"(루쉰)-7-8쪽

"슬픔도 노여움도 없이 살아가는 자는 조국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다."(러시아 시인 네크라소프)-8쪽

"그 진위야 어떻든 상관이 없다. 또 아무리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는 것이라 해도 결코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것을 대신할 만한 새로운 관념을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반복해서 대중의 심리를 파악한다. 그럼녀 ‘네모꼴이 실제로는 원’이라고 논증하는 것도 결코 어렵지 않다. 말이라고 하는 것, 그것은 어떤 관념에 다른 옷을 입혀 전혀 엉뚱한 것으로 변화시키는 것"(괴벨스)-24-25쪽

"진실을, 모든 진실을, 오직 진실만을 말하라. 바보 같은 진실은 바보같이 말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진실은 마음에 들지 않게 말하고, 슬픈 진실은 슬프게 말하라."(<르 몽드>창간자 뵈브 메리)-35쪽

자유주의란 "개인의 자유를 인간 생활의 기본 규범으로 간주하며 문화와 법률, 도덕규범과 경제, 사회질서의 진보를 위해 애쓰고 개인의 해방을 추구하는 세계관"(독일의 백과사전 <브로크하우스>)-38쪽

"유엔에서 우리를 도와 싸우기로 작정하고 이 침략을 물리치기 위해 공중으로 군기 군물을 날라와서 우리를 도우니까 국민은 좀 고생이 되더라도 굳게 참고 있으면 적을 물리칠 수 있다." (이승만)
"서울에서 살아 남은 사람이 국민인지 적과 내통한 자인지 심시하라."(이승만)-60-61쪽

과거란 그저 덮어버린다고 하여 그리고 그저 잊어버린다고 하여 자동적으로 청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미래는 과거와 분리되어 있지 않으며, 현재를 매개로 과거와 깊숙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은 상식이다. 잘못된 과거가 만들어놓은 매듭을 올바로 풀지 않는다면 아무리 우리가 앞을 향해 나아가려고 해도 매듭은 더욱 꼬일 뿐이다. -137쪽

"처음에 나치는 공산주의자를 탄압했다. 그에 대해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잠시 후 나치가 민주주의자들을 잡아갔다. 그때도 모두들 침묵했다. 그리고 나치가 기독교 성직자인 나를 잡아갔다. 그러나 그때는 아무도 말해줄 사람이 남아 있지 않았다."(히틀러에 의해 살해된 본회퍼 목사)-141쪽

각주4) "한국에서 민주주의를 바라는 것은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이 피기를 바라는 것과 같다."(부산정치파동 때 <런던타임스>의 논평)-148쪽

각주35) 주민 희생 사건 연구계획(해원사업계획)과 관련한 1999년 7월 14일의 국방장관 조성태의 발언을 받아적은 메모에 따르면, ① 제주도, 문경, 함평, 영동, 나주 사건 등은 군이 보유한 자료를 섭렵하고 차후 쟁점화될 가능성이 있는 남원, 임실, 고창 순창 사건은 손대서는 안된다(현장 출장은 금지하되 자료는 정리) ② 참전자의 증언을 청취, 사실 여부를 확인하되 주민과 접촉해서는 안 되며 현지 조사는 뇌관을 건드리고 불난 곳에 기름을 붓는 격이니 안 하는 게 좋겠다 ③ 군의 최대 양보선은 양비론이다 ④ 군이 잘못한 점이 있다면 인정하되 그럴 가능성이 있다는 정도로 인정할 것을 지시하고 있다(<문화일보> 2000년 7월 24일). -15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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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노 다케시의 위험한 일본학
기타노 다케시 지음, 김영희 옮김 / 씨네21북스 / 2009년 4월
평점 :
절판



  기타노 다케시의 위험한 일본학. 책을 처음 접했을 때 '위험한 일본학'에 무게가 실렸는데, 펼치고보니 그보다는 '기타노 다케시'쪽으로 확 기운다. 기타노 다케시란 인물에 대해선 잘 몰랐고, 지금도 이 책 한 권 읽은 것 외에는 아는 바가 별로 없다. 저자 소개란에 보면, 기타노 다케시는 47년생으로 페인트공의 4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대학에 들어갔으나 학생운동을 하다 중퇴했고, 온갖 아르바이트를 해봤으며, '투 비트'로 데뷔해 개그맨으로 유명해졌다. 영화 배우로도 활동했고, 내친김에 감독까지 했는데 '개그맨'으로보다 '영화 감독'으로, 또 '독설가'로 지금은 더 많이 알려져 있는 듯 하다.  

  불행의 원흉 '20세기의 100인' 세계편과 일본편으로 나누어 냉소와 풍자, 역설 등을 이용하여 독설을 퍼붓고 있는데, 이 사람이 쓴 글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면 굉장히 위험하다. 그가 개그맨이며, 또 독설가라는 걸 염두에 두고 읽어야 한다. 기타노 다케시에 대해서 아는 바가 별로 없다보니 나도 읽다가 '응?!' 하고 멈추게 될 때가 있다. 러시아와 일본이 영유권을 주장하는 북방 영토에는 온천 밖에 없고, "생선도 일본의 어부가 잡는 것보다 러시아 어부가 잡은 걸 사는 편이 훨씬 싸게 먹힐지 모"르니 북방 영토는 필요없다는 주장은, 러시아에선 박수를 받고, 일본 우익들에겐 욕을 바가지로 먹을 발언이다.

  일본 아이돌을 대만을 비롯한 동남아 등지로 수출해서 문화 침략을 하자는 주장(이건 매우 약하다), 제 역할 제대로 못하고 세금만 잔뜩 먹는 대사관도 민영화하자는 주장, 버스납치를 못하게 17세 청소년은 버스에 태우지 말자는 주장, 일본 해산, 오키나와 독립운동, 자식 판매법 등 현실 비판인지 개그인지 헷갈려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어정쩡한 표정을 짓게 된다. 

 아무래도 '불행의 원흉'에 촛점을 맞춘 탓에 우울하고 슬픈, 때로는 화도 나는 그런 소재들만 다루었다. 이 책을 통해서 우리는, 기타노 다케시의 풍자와 개그 사이에서 오늘날의 일본 현실을 짐작할 수 있다. 한국 사회에서 일어나는 사건의 상당수는 십년 전 일본에서 일어났던 것들이라고 하는데, 지금은 오히려 한국의 불행한 사건들이 일본을 압도하지 않나 싶기도 하다. 많이 같고도 다른 일본을 '까는' 영화인 겸 개그맨 겸 독설가의 입을 통해 일본을, 그리고 다시 한국인의 눈으로 이곳을 들여다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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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킹 베를린 - 천유로 세대의 위험한 선택
소니아 로시 지음, 황현숙 옮김 / 프로네시스(웅진) / 2009년 3월
평점 :
품절



한국에 '88만원 세대'가 있다면, 유럽엔 '천 유로 세대'가 있다. 천 유로. 환율 변동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겠지만, 대충 한국 돈으로 100만원 가량이라고 한다. 한국의 물가와 한달 생활비를 유럽에 고스란히 적용할 수는 없고, 유럽이라고 해서 다 같은 유럽이 아니니 동네(?)마다 체감 '천 유로'는 다르겠다. 그러나 경제적으로 어려움에 처해있는 젊은 이들의 상당수를 지칭하는 용어임에는 틀림없다. 천 유로 세대의 위험한 선택, 퍼킹 베를린. 대학에 가기 위해 이탈리아에서 독일로 온 젊은 여성의 이야기다.

  표지를 넘기고서 제일 처음 눈에 들어온 것은 그녀의 이름. 소니아 로시. 설마 본명은 아니겠지? 본명이면 어떡하지. 이런 생각들이 먼저 스쳤다. 다행히(?) 본명은 아니었다. 그러나 저자 소개를 통해서 그녀의 주변인들은 그녀임을 추측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쓸데없는(?) 불안한 생각도 들었다. 열아홉 살에 이탈리아를 떠나 독일 베를린 대학에서 수학을 공부했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소니아는 생활비와 학비를 벌어야 했다. 시간당 임금이 거기서 거기인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다, 음란 채팅 알바를 했고, 옷을 벗었고, 돈을 더 벌기 위해 마사지방에 들어갔으며, 또 돈을 더 벌고자 몸을 팔았다.  

  독일에선 성매매가 합법이다. 그래서 그녀는 손님을 선택할 수 있었고, 계약 조건에 따라 업소를 옮겨다니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한국에서 볼 수 있는 마이킹(?)이나 포주의 학대 등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적어도 이 책에 서술된 바에 의하면. 독일에서 섹스를 사고 파는 건 마치 마트에 가서 쥬스를 고르고 돈을 지불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구매자는 업소에 와서 여자를 고르고, 합당한 값을 치르고 섹스를 한다. 그저 섹스는 하나의 상품에 불과했다.  

  다시 돌아와서, 소니아는 처음 음란채팅을 하고 옷을 벗을 때까지만 해도 많이 망설이는 모습을 보이다가,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욕심을 부린다. 옷도 벗었는데 마사지까지만 하자, 마사지는 하되 섹스는 하지 않겠다, 마사지에 오랄을 했고, 섹스로 넘어갔다. 기왕 섹스할거라면 정식 성매매 업소로 가자, 그리고 결국 성매매 업소에서 일을 하고 나중에는 벌이가 더 나은 업소를 찾아 멀리 떠나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함께 사는 남자친구를 비롯해 주변 사람들에게 거짓말을 하며 많이 싸우기도 한다.  

  그녀가 꿈꾸는 직장은 성매매 업소가 아니다. 그녀는 대학을 졸업해서 번듯한 직장에 자리를 잡고 싶어했다. 그러나 서빙 알바를 해서는 학비를 충당할 수 없었고, 설상가상 아이까지 낳아버렸다. 딱히 직장이 없는 남자친구는 그녀의 집에 얹혀 살았고, 생활비와 학비를 벌기 위해 성매매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한다. 다른 일을 해서는 도저히 필요한 돈을 벌 수 없었다는 그녀에게 정말 그 길 밖에 없었냐고 묻기는 어렵다. 우리는 소니아를 이해해주는 동시에 다른 '소니아들'에 대해서도 생각해봐야 한다. 어떻게 하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할 수 있을까?  

  그 전에 또 하나 물어야 할 것은, 이게 과연 문제거리가 되는 일인가, 라는 질문이다. '성노동'의 관점에서는 섹스를 사고 파는 일을 가게에서 물건을 사고 파는 일과 동일하게 본다. 사람이 자신의 손과 발을 이용해 일을 해서 돈을 버나, 동일한 몸의 다른 부위인 성기를 이용해 - 성기뿐 아니라 입 등을 이용한 섹스도 포함해서 - 돈을 버나 어차피 같은 '노동'이라는 시각은 나를 당황스럽게 한다. 그게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소니아의 지난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읽어나가야 하는데 - 단지 문제 삼을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베를린의 높은 학비와 생활비 정도 - 한국의 독자인 나뿐 아니라 독일을 비롯한 유럽 전역에서 이건 '충격'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독일의 슈피겔은 "<퍼킹 베를린>이 출간 직후 단박에 베스트셀러 목록에 진입한 사실은, 젊고 도전적인 독일의 수많은 여대생들이 이와 같은 위험한 선택에 직면하고 있다는 경고로 읽힌다." 라고 평했다. 분명 자신의 성기를 이용해 섹스 노동을 하는 것과 팔다리를 이용해 노동을 하는 것을 동일하게 보는 것 같지는 않다. 인간의 신체에 달려있는 부위라고 해서 모두 같은 가치를 가지는 것은 아니며, 별도의 의미를 부여하는 듯 하다.  

  가진 것 없는 자들이 마지막까지 사수해야 할 것은 자신의 건강한 몸이다. 사람들은 살기 위해 실험실 생쥐가 되기도 하고, 장기를 팔기도 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살기 위해 성매매를 하기도 한다. 실험실 생쥐가 되거나, 장기 매매의 대상이 되거나, 성매매의 대상이 되는 것을 동일선상에 놓는 이유는, 나 역시 성매매는 자신의 팔다리를 이용해 일을 하고 돈을 버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람이 지켜내야 할 최후의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에 팔 수 없는 것이 무엇이 있느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자본주의 시대에 우리가 지켜야 할 것도 있다고 말하고 싶다. 무자비한 자본과 권력은 개인의 삶을 벼랑 끝으로 몰아가고 있다. 팔 것이 없는 사람들은 제 몸 밖에는 팔 것이 없다. 살긴 살아야겠고, 팔 것은 없다. 이해한다. 그들을 비난하자는 게 아니다. 그들이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개선하자는 말이다. 그러한 선택들이 아무런 문제가 없다면, 우리가 이들이 그런 선택을 하지 못하도록 상황을 개선시킬 필요도 없다. 내가 가진 지식을 팔거나, 그들이 가진 몸을 팔거나 그건 모두 동일하므로. 하지만, 정말 두 가지가 동일한가, 다시 한번 물어보면 아니라고 말하겠다. 우리가 어떤 회사에 취직할까를 고민하는 것과, 그들이 어떤 실험실을 택할까, 어떤 업소를 택할까를 고민하는 것은 분명 차원이 다르다.    

  남자와 여자가 만나 사귀면 섹스하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사귀지 않더라도 눈이 맞고, 마음이 맞으면 섹스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성에 돈과 권력이 개입하는 것은 '매개 없는 자연스러운 섹스'와는 분명 다르고, 돈과 권력의 개입은 우리가 지양해야 할 바이며, 우리의 몸은 지켜내야 할 부분이라고 말하고 싶다. 성매매에 대한 내 생각이다.  

p.s. 이 책을 읽고서 관점에 따라 높은 학비와 생활비, 그리고 부모의 보호 아래 있다가 사회에 갓 나온 젊은이들에 대한 사회 제도적 방안 등을 논할 수도 있다. 언급한 모든 것이 맞물려 있어 함께 논의하는 것이 마땅하나 여러 이야기를 한꺼번에 하게 되면 정신 사나울 듯 하여 이 글에선 다른 부분은 가급적 축소하고 성매매에 관해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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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SHIN 2009-06-01 1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님, 안녕~
요즘도 바쁘게 지낼 당신, 감기 조심해요.
요즘 감기는 두통이 장난 아닌 듯...-_-

마늘빵 2009-06-01 15:07   좋아요 0 | URL
네. 엘신님 감기 걸리셨구나? 여름 감기 안좋아요. 저는 좀 피곤한거 빼고는 괜찮아요. 운동을 해야 하는데 자꾸만 게을러져서... 언능 나아요.

Pisces 2009-06-02 2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성에 돈과 권력이 개입하는 것은 '매개 없는 자연스러운 섹스'와는 구별되어야 한다는 말에 동감합니다. 잘 읽고 갑니다.

마늘빵 2009-06-02 22:56   좋아요 0 | URL
첨 뵙습니다. 오히려 진보 쪽에서 우리네 지식이나 팔다리를 이용해서 다 파는데(노동), 성이라고 못 팔거 있냐는 시각을 가진 경우를 많이 봅니다. 잘 이해가 되지 않더군요.

릴케 현상 2009-06-04 08: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성에 보수적인 편인지^^ 깊은 교감을 나누지 않은 사귐 상태에서 섹스하는 것조차도 그닥 긍정하진 않아요. '자유로운 섹스'에 열려 있지 않은 편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개없는 자유로운 섹스'라는 건 있는 건지? 잘 모르겠어요.
한편으론 아프님 말처럼 예전에 성매매법 얘기로 시끄러울 때 진보쪽 사람들이 자본주의 어쩌구 할 때 좀 난감했었죠.
여하간 머리나쁜 저로선 케 세라...

마늘빵 2009-06-04 11:05   좋아요 0 | URL
저도 물론 교감 없는 섹스는 별로라고 생각합니다. ^^ 사귀지 않는 상태에서도 교감은 이뤄질 수 있다는 걸 전제한거에요. 그런 점에선 저도 많이 자유롭진 않은 듯... '매개'라는 건 결국 돈과 권력인데, 넓게 보면 모든 남녀 관계를 포함한 인간 관계가 돈과 권력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지만, 이렇게 확장하다보면 '모든 인간은 죄인이다'라는 말처럼 아무 것도 이야기하지 못하는 결과를 얻게 되죠.

진보쪽에서 자본주의 논리에 따라 성매매도 인정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게 저도 희안합니다. 이건 성매매당에서 이야기해야 할 부분인데.
 
아무도 남을 돌보지 마라 - 인문학의 눈으로 본 신자유주의의 맨 얼굴
엄기호 지음 / 낮은산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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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도 남을 돌보지 마라." 참으로 가혹한 말이다. 철저히 자신의 욕구와 욕망에 충실해 사적 이익을 추구하라는 의미다. 굳이 이와 같은 정언 명령 형태로 지침(?)을 내리지 않더라도 이 시대의 사람들은 충분히 제 이익에 충실하고, 자기 이외에 남을 돌보지 않는다. 그러니 이 말은, 현실이 그렇지 않으니 앞으로 그리해라, 라는 의미가 아니라, 있는 현실을 그대로 드러내는 동시에, 정반대의 정언 명령의 의미를 담고 있다고 봐야 한다.

  혹 어떤 사람들은 이 책의 제목을 보고, 이 시대에 개인이 살아가야 할 철학을 제시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자기계발, 처세술의 차원에서 제목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그래, 맞다. 이 책은 '이 시대에 개인이 살아가야 할 철학'에 관해서 이야기 하고 있다. 다만, 남을 돌보지 않고 제 이익을 추구함으로써가 아니라, 남을 돌보며 함께 살아가는 길을 모색한다는 차원에서 그러하다. 단지 '입으로'가 아닌 '행동으로' 그 길을 모색하고자 한다.    

  신자유주의. 최근 몇년간 참 많이 들은 용어다. 정확히 뭘 의미하고, 어디서부터 기원했는지까지는 몰라도, 적어도 사람들은 우리가 신자유주의의 시대에 살아가고 있다는 것에는 누구나 동의할 것이며, 이 책의 주장에 동의하는 사람들이라면 신자유주의가 개인의 삶을 파탄냈고, 앞으로도 그럴 거라는 사실 또한 이미 알고 있다. 이 책 곳곳에는 몸으로 체험한 이들의 사례가 실려있다. 여학생들은 제 몸값이 가장 높은 나이에 성매매에 나서며, 일제고사에서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지 못한 아이는 모든(?) 서민들의 꿈이자 희망인 고층 아파트에서 뛰어내린다. 

  지금은 또 달라졌지만, '교육인적자원부'로 명칭이 바뀌었을 때 알아봤어야 했다. 교육을 받는 아이들은 국가에 경제적 부를 가져다 줄 미래의 인적 '자원'이며, 매달 꼬박꼬박(?) 월급 받으며 한달살이 하는 직장인들은 단지 회사의 부품일 뿐이다. 부품은 고장나거나 낡으면 버리고 다시 갈면 된다. 직장에서 생활하는 시간은 하루의 절반 이상이지만, 그들은 그곳에서 하나의 부품으로서 존재한다. 그나마라도 이들이 노동자로 인정을 받으면 다행이다. 신자유주의의 시대에 이들은 노동자인 동시에 자영업자다.  

  "그전까지 노동자는 언제나 개별 노동자로서만이 아니라 집단으로 존재해 왔다. 노동자는 사용자와 개인적으로 계약을 맺지만, 그 노동 계약은 노동자 개인이 아니라 노동조합을 통하여 전체 노동자 집단이 책임지면서 보호해 왔다. 그런데 신자유주의에서 노동이 자영업화하면서 노동자는 자기 노동의 질과 성과에 대해 혼자서 책임을 지게 된다. 집단으로 존재할 수 없는 노동자는 그저 자기 몸에 대한 자영업자일 뿐이다." 

  회사는 개인이 내는 성과에 주목하며, 성과를 내지 못한 직원은 쫓겨난다. 개인이 자영업자임을 알 수 있는 좋은(?) 사례가 '연봉제'이다. 개인은 제 몸을 자원으로 회사와 몸값을 책정하고 계약을 맺는 작은 경영자이며, 이들은 (나이들어서도) 회사와 계약을 맺기 위해 끊임없이 자기 계발을 해야 한다. 직장에서 하루 절반(혹은 그 이상)의 시간을 보내고, 남은 시간엔 영어 공부를 하든, 컴퓨터 자격증을 따든, 뭐든 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회사는 더이상 이들을 '써주지' 않는다. 지속적으로 '쓰임을 당하기 위해서는' 개인은 제 몸에 대한 '경영'을 체계적으로 잘 해줘야 한다. 일용직 노동자나 계약직 노동자나 정규직이나 마찬가지다.  

  우리는 모두 계약을 할 수 있고, 하지 않을 수 있는 자유를 얻었지만, 우리의 자유는 그들에게 종속되어 있다. 과거 국가가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고 통제한데 비해 지금은 개인의 자유가 널리 보장된다. 하지만, 우리의 자유는 '국가'에서 '기업'으로 주인을 바꾸었을 뿐이다. 국가가 우리를 기업에 팔아넘겼다. 겉으로 보기에 사람들은 억압과 통제로부터 해방됐지만, 국가에 의한 노예 상태에서 '기업을 향한 자발적 노예 상태'로 바뀌었을 뿐이다. 알아서 각자가 삶의 방식을 선택하라. 하지만, 그 책임은 너희들 몫이다. 국가는 그렇게 말한다. 그리고 우리는 단 하나의 선택지를 따르며, 그에 따른 결과를 몸으로 받아내고 있다.

  암울한 시대를 살고 있다. 선택할 자유는 있되, 선택지는 하나인 시대를 살고 있다. 물론 이러한 흐름을 피해 작은 공동체의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그들은 국가와 사회에서 마이너리티로 간주된다. 그 또한 하나의 선택이지만, 장기적으로 나 이외의 대다수 사람들이 함께 더불어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싸워야 한다. 암울한 현실을 깨고 나오기 위한 방법은, 우리가 수없이 들어온 '연대'와 '투쟁'이다. 우석훈이 <88만원 세대>를 쓰고, 제일 많이 들은 질문이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일텐데, 그 대답도 '연대'와 '투쟁'이었다.  

  우리의 현실이 앞이 깜깜하다는 것에 동의하는 사람들은 - 여기까지 오는 것도 힘겹다 - 언제나 구체적인 실천 방안을 원한다. 연대와 투쟁이라니까 그럼 어떻게 하냐고 묻는다. 그건 질문하고 고민하는 자들의 몫이다. 저자는 교육이란 "사람들로 하여금 지속적으로 앎을 추구하게 하고, 진리를 향해 나아가며, 새로운 것을 시작할 수 있도록 북돋우며, 질문하기를 그치지 않게 하는" 것이라고 한다. 저자와 독자는 이 책을 통해 교육에 동참했다.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느냐? 대답은 간단하다. "아무도 남을 돌보지 마라." 정확히 그 반대로만 하면 된다. 그게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힘겨운 시대를 살아가며 방황하는 사람들이 읽어야 할 삶의 지침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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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무도 남을 돌보지 마라; 엄기호 지음; 낮은산
    from Aromatic, Delicious Scalpel 2009-09-15 22:03 
    신자유주의에 대해서는 나름 많은 책을 읽고 느끼고 실제하는 현상들을 보아오기에 독후감이라는 제목아래 또다시 이야기하기가 조금 서먹하긴 하다. 자꾸 되풀이되는 듯한 내용에 가만히 앉아 자판만 두드리며...
 
 
 
아무도 남을 돌보지 마라 - 인문학의 눈으로 본 신자유주의의 맨 얼굴
엄기호 지음 / 낮은산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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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찌감치 학교를 때려치우고 원조 교제 비슷한 성매매를 하는 아이였다. 돈도 꽤 번다는 그녀는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것들은 못생긴 것들이에요."라고 주저 없이 말했다. 학교도 제대로 나오지 못하고 못생긴 것들은 어디 가서 제대로 밥벌이도 할 수 없다는 말이다. 그럴 경우 발이 퉁퉁 붓도록 편의점이나 주유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수밖에 없는데, 그나마 자기는 예뻐서 다행이라고 했다. -68-69쪽

모든 것이 시한부가 되어 버린 시대에 시한부를 넘어서려는 인간의 노력인 사랑은 간단하게 무시된다. 여기에 관계에 대한 존중이 있을 리 없다. 우리 모두는 서로의 정서적 안정에 필요한 일시적인 소모품이 되어 버렸고, 우리 모두는 다 외로워졌으며, 그 외로움을 인간의 운명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것을 극복하려는 노력은 어리석은 짓이다. 신자유주의에서 깨져 버린 것은 바로 이러한 인간의 가장 소박한 꿈, 사랑이다. -76쪽

이렇게 노동을 자영업화하면 모든 책임은 개인에게 부과된다. 그전까지 노동자는 언제나 개별 노동자로서만이 아니라 집단으로 존재해 왔다. 노동자는 사용자와 개인적으로 계약을 맺지만, 그 노동 계약은 노동자 개인이 아니라 노동조합을 통하여 전체 노동자 집단이 책임지면서 보호해 왔다. 그런데 신자유주의에서 노동이 자영업화하면서 노동자는 자기 노동의 질과 성과에 대해 혼자서 책임을 지게 된다. 집단으로 존재할 수 없는 노동자는 그저 자기 몸에 대한 자영업자일 뿐이다. -81쪽

이런 사회에서 노동자 개인이 탈락하지 않기 위해 노동조합을 결성하거나, 사회보장 강화를 주장해 사회를 통해 보호받으려 한다면 어리석은 짓이다. 신자유주의는 줄곧 이야기한다. 노조나 국가로부터 어떤 보호를 받으려는 나약한 생각을 깨뜨려야 한다고. 무엇보다 노동자 개인은 자기 관리, 자기 계발에 신경을 써야 한다고. 노동자 개인의 경쟁 상대는 국가나 기업이 아니라 내 옆의 동료이기 때문이다. 자기 계발을 못하고, 자신의 몸과 시간을 잘 관리하지 못한 사람은 탈락할 테고, 그것은 전적으로 그의 책임이다. -83쪽

대신 이 아이들은 현재 이 순간에 즉각적으로 돈으로 바꿀 수 있는 자신의 자본, 즉 몸에 주목한다. 영계에 대한 신화가 있는 한국 사회에서는 어리면 어릴수록 몸이 더 잘 팔리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어렸을 때 한시라도 빨리 사업에 뛰어들어야 한다. 이 아이들에게 자기 관리란 현재 즉시 돈으로 바꿀 수 있는 자신의 몸을 관리하는 일이다. 아이들은 몸매를 유지하기 위해 단식원에서 몇 달씩 지내기도 한다. 일찍부터 자기몸에 대한 자본가이며 투자자가 된다. -85쪽

이 기만이 가장 끔직한 이유는 "살아가기 위해서는 살아남기 위한 ‘자격’이 필요한 것"처럼 되어 버렸다는 점이다. 즉, 자신이 경제적으로 효용 가치가 있음을 끊임없이 호소하며 살아야 한다. 이 자격을 갖추기 위해서 우리는 어떤 일이든지 감수하면서 다른 좋은 일자리가 나타나기를 기다린다. 볼품없는 일자리를 두고 탈락한 자들끼리 아귀다툼을 벌여야 한다. 그러나 그 아귀다툼 속에서도 좋은 일자리는 결코 나타나지 않는다. 우리는 이미 "이용당할 기회"마저 박탈당했기 때문이다. 포레스테는 이런 상황에서 "노동의 시대"에 집착하지 말고 "노동의 부재에서부터 출발하여 새롭게 조직하는 일"에 대해 생각해 보라고 촉구하고 있다. -90쪽

인간의 시간이 노동과 여가, 공적 시간과 사적 시간으로 나뉘지 않고 24시간 늘 일하고 자기 계발하는 존재가 된 것은, 단지 경쟁이 가속화되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 아니다. 예를 들어 연봉제는 겉으로 보기에는 무한 경쟁의 산물이며 그것을 가속화시키는 임금 체계의 변화인 듯하지만, 사실은 노동자 자신의 경제적 삶을 주체화하는 방식이 극적으로 변했음을 뜻한다. 달리 말하면, 노동자가 자기 삶을 경영하는 일종의 자영업자, 경영자가 된 것이다. 우리들 모두의 시간과 공간, 관계는 이제 투자와 관리의 대상이 되었으며, 우리는 그것을 "자유"라고 부른다. -91쪽

신자유주의에 의해 학교와 가정 밖으로 내쳐진 아이들은 이 과정을 통해 역설적으로 신자유주의의 논리를 학습하고 신자유주의적 개인으로 성장해 가고 있다. 이 아이들에게는 몸도 팔릴 만한 몸과 팔리지 않는 몸으로 나뉘며, 팔릴 수 없는 못난 몸을 가진 아이들이 겪는 고통과 차별, 배제는 그 개인의 탓이 되어 버린다. 다시 한 번 신자유주의는 자신이 버린 이들의 마음속에서도 승리를 구가하게 된다. -94-95쪽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의 말을 빌린다면, 과거에는 육체가 영혼을 감싸고 있었다면 우리 시대에는 겉모습이 육체를 감싸고 있다. 과거에는 육체에 갇힌 영혼을 구하고 육신의 부활을 도모하는 일이 종교의 신성한 의무였다면, 요즘 시대에는 성형외과가 겉모습을 뜯어 고침으로써 육신을 부활시켜 인간을 구원하는 종교의 역할을 대신한다. 이제 구원받아야 할 대상은 영혼이 아니라 육체가 되었다. 이 신성한 구원의 행위에서 제외된 사람에게는 사회로부터의 영원한 탈락이라는 지옥불만 기다리고 있다. -130쪽

그 아이(일제고사를 치르고 자살한 아이)는 죽어서도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다. 스스로를 죽일 수는 있었지만, 타인으로부터 추모될 수는 없었다. 추모가 금지당한 존재라는 의미에서 그 아이는 살아서는 경쟁에서 뒤처져 잊힌 존재였고, 죽어서는 아예 존재가 말살된 존재이다. 이탈리아의 정치철학자 조르조 아감벤은 이런 존재를 일컬어 "신성한 인간"이라고 부른다. ‘신성한 인간’은 로마 시대에 "죽여도 아무도 처벌을 받지 않지만, 절대 제물로는 바쳐질 수 없었던" 사람을 일컫는 말이었다. 이들은 인도의 불가촉천민과 비슷한 존재이다. 불가촉천민 역시 예전에 상위 카스트로부터 아무런 거리낌 없이 살해를 당했지만, 불결하다고 하여 이들이 힌두교 사원에 들어갔다 나오면 그 자리를 반드시 물로 씻었다. -152쪽

국가가 나서서 이들을 도덕적으로 공격하는 동안 사회적 약자에 대한 공격과 혐오 범죄 역시 늘어났다. 미국과 영국 같은 서구에서 신자유주의가 가속화될수록 노숙자나 성 소수자, 이주 노동자에 대한 범죄가 증가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사회적 약자도 우리 사회의 구성원이고 내가 돌보고 연대해야 하는 이웃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나를 좀먹고 등쳐 먹는 기생충으로 바라보는 일을 국가가 정당화해 주었기 때문이다. 단지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남을 공격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혐오 범죄를 저지르는 이들의 눈에 공격받는 사회적 약자는 인간이 아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169-170쪽

인간의 형상을 하고 인간의 말을 한다고 해서 다 인간이 아니다. 이처럼 특정한 인간을 인간이 아닌 기생충으로 바라보게 하고 그들을 그렇게 취급해도 된다고 허용하는 것은 바로 신자유주의이다. -170쪽

인간은 인권을 가지기 위해서는 순수한 인간이 아니라, 어디에 소속된 무엇인가가 되어야만 한다. 즉, 인권의 실체는 시민권이다. 우리는 한 국가의 시민이 됨으로써만 비로소 인권을 가지게 되며, 소속 없이 순수한 인간일 때는 아무런 권리도 가지지 못한다. (아렌트로부터)-174쪽

(오늘날) 국가의 가장 주된 임무는 더 이상 국민을 돌보고 훈육하고 규율하는 일이 아니다. 국가는 시장이 원활하게 돌아가도록 법과 제도를 맏늘고 그것을 보호해야 한다. 국가가 국민을 위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일은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어서 기업을 최대한 유치하고, 시장을 통해 일자리를 창출하는 일일 뿐, 직접적으로 일자리의 문제에 관여하는 일은 반시장적인 행위이다. 또한 과거에 국가는 시장으로부터 축출된 ‘잉여인간’을 국민이라는 이유로 복지 제도를 통해서 죽게 내버려 두지 않았지만, 지금은 그 ‘잉여인간’이 스스로 구직을 하기 위해 노력하는 한에서만 제한적으로 돌본다. -188쪽

신자유주의 세계화라는 전 지구적 불평등 구조에 도전하기 위해 민족과 민족주의에 의지하는 일은 오히려, 자신을 억압하는 지역의 불평등을 강화하는 데 힘을 보태는 꼴밖에는 안 된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대한 사회적 약자의 도전은 지구적 수준에서의 착취와 불평등 구조뿐만 아니라, 지역적 수준에서의 착취와 불평등 구조에 대해서도 도전해야만 한다. 이를 위해 사회적 약자는 민족이라는 실패한 위안을 거부해야 한다. 대신 사회적 약자가 선택해야 하는 공동체는 바로 주변부 간의 연대인 것이다. 우리는 그 단초를 촛불 시위에서 볼 수 있었다. -216-217쪽

랑시에르에게 민주주의는 "합의와 동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말이다. 다수결, 합의나 동의는 그 사회에서 이미 목소리를 가지고 있는 이들이 협상하고 타협하는 과정이다. 이에 반해 민주주의는 그 협상의 테이블 바깥에 놓인 이들, 그 사회에서 자신의 몫을 가지지 못한 "아무개들"이 자기 몫을 주장함을 뜻한다. 이렇게 본다면 민주주의의 주체는 국민이 아니라 "아무개들"이다. -227쪽

교육은 누군가를 계몽하고 훈육하는 의미에서의 교육이 아니다. 오히려 사람들로 하여금 지속적으로 앎을 추구하게 하고, 진리를 향해 나아가며, 새로운 것을 시작할 수 있도록 북돋우며, 질문하기를 그치지 않게 하는 교육이다. 사유하기를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에게 사유하는 힘이 있음을 긍정하도록 힘을 북돋우는 그런 교육이다. 이런 점에서 교육은 그 자체로 사유이며, 활동이다. -237쪽

상대주의는 쿨함이라는 이름으로 사유하기를 거부한다. 너도 나도 다 다르다고 선언함으로써 그와 내가 어떻게 다른지, 그리고 얼마만큼 다른지에 대해 생각하기를 포기한다. 생각하여 진리에 나아가는 일은 현실의 조화를 깨고 사회에 불화를 다시 불러들이는 무모한 짓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교조주의가 폭력적으로 보수적이라면, 상대주의 역시 딱 그만큼 패배적으로 보수적인 태도이다. -238쪽

사유를 방해하는 교조주의와 상대주의의 밑바닥에는 진실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그 진실 가운데 하나는 우리 사회가 봉합이 불가능한 불화와 적대에 기초해 있다는 사실이다. 이 적대와 불화를 정면으로 응시하는 데 두려움을 느끼는 우리의 마음은 확실히 냉소와 공포로 가득 차 있다. -240-241쪽

윤리적으로 성장했다는 말은 그저 타자를 '인정'한다는 뜻이 아니라, 그들 속으로 나를 밀어 넣는 '몸과 마음'의 문제이다. 바우만은 우리 시대의 윤리에서 '자유, 평등, 박애'라는 근대적 윤리는 폐기되고 그 자리를 '자유, 다양성, 관용'이 차지하였다고 했다. 바우만은 특히 관용이 무관심으로 타락한 것이 우리 시대의 윤리적 위기의 핵심이라며, 그 자리를 연대로 채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관용이 고통받는 타자를 어떻게 인식하는가라는 태도의 문제라면, 연대는 자기 자신의 몸과 마음을 바꾸는 문제이다. -247쪽

"나로서는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모르겠다.'라는 말만이 진실한 답변인 경우가 매우 많다. 나는 있는 것을 엄격하게 분석하려고 노력할 수 있을 뿐이다. 이 점에서 사람들은 나를 책망한다. 당신이 비판을 하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더 낫게 만들지 말해 줄 의무도 있지 않냐고. 내 생각에 이것은 논란의 여지없이 부르조아적 편견이다. 역사에서는 순수하게 이론적인 목표만을 추구한 작업이 의식을 바꾸고 그럼으로써 사회적 현실까지 바꾼 사례가 아주 많다."(<지젝이 만난 레닌>에서 아도르노의 말 인용)-25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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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01 12:0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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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01 14:4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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