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없는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지음, 송필환 옮김 / 해냄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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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포일러가 약간 들어있습니다. 내용을 전혀 모른 채 책을 읽으실 예정이라면 여기 밑줄긋기를 읽지 않는 편이 좋습니다. 책을 읽을 계획이 없다면, 그러나 이 책이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궁금하다면, 읽으셔도 상관 없습니다. -0쪽

그들의 삶이란 항상 똑같아요, 왜죠, 생각해 보세요, 그들의 삶이란 항상 똑같아요, 다른 게 없죠, 나타났다가, 얘기하고,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고, 사진사들에게 미소를 짓고, 항상 나타났다 사라지곤 하죠, 우리 모두가 다 그렇죠, 저는 그렇지 않습니다, 선생님이나 저나, 모든 사람들은, 이곳 저곳에 나타나, 얘기를 하기도 하고, 집을 나섰다간 그곳으로 돌아가죠, 가끔씩 웃기도 하고, 상황에 따라 달라질 뿐이죠, 우리 모두가 유명인이 될 수는 없죠, 다행한 일이네요, 선생님의 수집이 등기소만한 크기가 된다고 생각해 보세요, 더 클 수도 있죠, 등기소는 단지 언제 태어나고, 언제 죽고, 그런 것에만 관심이 있으니까요, 우리가 결혼을 하든, 이혼을 하든, 홀몸이 되든, 등기소에선 그런 것엔 관심도 없어요, 그런 일들 가운데서 우리가 행복하든 그렇지 않든, 행복과 불행은 마치 유명인들과 같은 거예요, 인기가 왔다가 사라지는 것처럼, 그보다 더 끔찍한 사실은, 등기소에선 우리가 누군지조차도 알려고 하지 않는다는 거죠, 그들에게 우리는 몇 개의 글자로 된 이름과 날짜 외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겁니다. -206-207쪽

완전한 죽음은 망각의 마지막 열매이고, 삶이란 기억 속에서 영원할 것입니다. -221쪽

공동묘지란 아무 작은 공간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도시가 형성되면서 그 주위의 자그마한 공간을 차지하였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불행히도 그 공간은 점점 커질 수밖에 없었고, 오늘날에 와서는 엄청난 면적을 차지하게 되었다. 예전엔 그 주위를 빙 돌아가며 담을 쌓았지만, 시간의 흐름으로 인해 담 안쪽의 한정된 공간 속에 죽은 자들의 치열한 자리다툼이 일어나게 되고, 마치 등기소의 경우처럼, 어쩔 수 없이 담을 허물고 조금 더 넓게 새로운 담을 쌓아 왔던 것이다. 그러나 이미 사백 년 전, 묘지를 담당했던 한 관리인의 머릿속에, 거리로 향하는 담을 제외하고 다른 방향의 담들은 모두 제거해버리자는 생각이 떠올랐었다, 그것이 담 안쪽과 바깥쪽의 감성적 관계를 새롭게 환기시키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그는 변론했던 것이었다. 담이 가지는 의미가, 비록 위생적인 면이나 장식적인 면에서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는 있지만, 그저 빨리, 죽은 자에 대한 기억을 잊혀지게 하는 효과 외엔 그다지 쓸모가 없는 것이라 생각했다.-225쪽

생사에 관해 신고를 해야 됨에도 불구하고, 그 애절한 망각으로 인해 제때에 사실을 알리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런 의미에서 이 공동묘지는 등기소보다 더 빨리 죽은 자들의 이름을 알고 있게 되었으므로, 이 중앙 공동묘지의 또 다른 명칭은 모든 이름들이라 할 수 있다, 사실 그렇다는 것을 깨달을 수밖에 없지만, 등기소에서 그 두 단어란 마치 보자기 같은 것으로, 그 속에서 모든 이름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산 자든 죽은 자든, 공동묘지의 경우엔, 종착지라는 그 본질적 의미로 언제나 사망자의 이름이 적혀 있어야만 했다. -2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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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뜬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2007년 3월
품절


* 스포일러가 약간 들어있습니다. 내용을 전혀 모른 채 책을 읽으실 예정이라면 여기 밑줄긋기를 읽지 않는 편이 좋습니다. 책을 읽을 계획이 없다면, 그러나 이 책이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궁금하다면, 읽으셔도 상관 없습니다. -0쪽

인간이 가끔 두려움 때문에 또 가끔 자신의 이익 때문에 거짓말을 한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또 가끔씩은 거짓말이 진실을 방어할 유일한 수단임을 적시에 깨닫는 바람에 거짓말을 하기도 한다. -61쪽

테러 사흘 뒤인 이른 아침, 사람들은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굳은 얼굴에 입을 다물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백기를 들었다. 모두 왼팔에 하얀 완장을 둘렀다. 장례 예절에 밝은 사람들이 흰색은 애도의 상징이 될 수 없다고 말하지 못하게 하라. -175쪽

열한 시가 되자 광장은 이미 가득 찼다. 그러나 군중의 커다란 숨소리, 공기가 허파를 들락거리며 내는 둔한 속삭임만 들릴 뿐이었다. 공기는 들락거리며 이 살아 있는 존재들의 피에 산소를 먹이고 있었다. 들어갔다, 나갔다, 들어갔다, 나갔다, 그러다 마침내 갑자기, 이 말은 끝을 맺지 않겠다. 여기에 모인 사람들에게, 생존자들에게 그 순간은 아직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175쪽

시위대는 대통령궁으로 간다던데요. 조직한 사람들한테 물어보시오. 그 사람들이 어디 있습니까. 누굽니까. 모두이기도 하고 아무도 아니기도 하고 그런 것 같소. 틀림없이 지도자가 있겠지요. 이런 운동은 저절로 조직되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자발적인 세대는 이제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물며 이런 규모의 대중 행동인 경우에는, 지금까지는 그랬지, 맞소, 그러니까 백지투표 운동이 자발적이라고 믿지 않는다는 뜻인가요. 그런 추론을 하다니 언어도단이로군. 이 일과 관련하여 지금 말씀하시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아시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안다고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안다는 사실을 발견하는 때가 늘 오기 마련이지, (중략) 놀라운 건 아무런 외침도 들리지 않는다는 겁니다, 만세 소리 하나, 타도하라는 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군요,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말해주는 구호 하나 없습니다, 그냥 등뼈까지 떨리게 만드는 이 위협적인 전율뿐입니다. -183-184쪽

이자들은 시위도 제대로 할 줄 모르네, 그들은 말했다, 돌이라도 몇 개 던져야 하는 거 아냐, 대통령 인형이라도 태우고, 창문 좀 몇 개 깨고, 낡은 혁명가도 부르고, 자신들이 방금 묻어버린 사람들처럼 죽은 몸이 아니라는 걸 세상에 보여주어야 하는 거 아냐, 시위는 그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사람들이 도착해서 광장을 메웠다. 그들은 말없이 삼십 분 동안 눈앞의 대통령궁을 바라보며 서 있더니, 이윽고 해산했다. 어떤 사람들은 걸어가고, 어떤 사람들은 버스를 타고 갔다. 어떤 사람들은 마음씨 좋아 보잉는 낯선 사람에게서 차를 얻어타기도 했다. 그렇게 다들 집에 갔다. -184-185쪽

인간 본성이란 우리가 알고 있는 대로여서 이들 사이에서도 이기적인 환상, 거짓된 방심, 헤픈 감상을 향한 변덕스러운 호소, 기만적으로 유혹적인 조작 등이 나타날 수밖에 없었지만, 감탄할 만한 이타심의 사례도 있었다. 우리가 언제나 이런 식으로 훌륭한 포기를 할 수만 있다면, 어쩌면 우리도 창조라는 불멸의 기획에서 우리의 작은 역할을 수행하는 것 이상의 일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믿음을 유지하게 해주는 그런 사례들 말이다. -186-187쪽

진실을 말하면 안 된다는 것뿐 아니라, 필요하면 진실이 하나하나 거짓과 일치하게 해야 한다는 것도 배웠다. 사물의 틀린 면과 옳은 면이 늘 아주 자연스럽게 함께 발견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258쪽

내가 이 일을 하면서 배운 바로는 정부에 있는 사람들은 우리가 말도 안 된다고 판단한 것 앞에서 결코 물러서지 않고, 외려 그런 말도 안 되는 것을 이용해서 양심을 무디게 하고 이성을 파괴하오.
-377쪽

우리는 태어나는 그 순간 평생 지킬 협정에 서명을 한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렇게 자문할 날이 온다, 누가 여기에 나 대신 서명을 했는가. -377쪽

검은 색과 빨간색으로 된 표제만 보더라도 각각의 신문에 어떤 내용이 담겨 있는지 우리도 대충은 짐작할 수 있다, 조국의 적들의 또 한 번의 전복 행위, 누가 복사기를 돌렸는가, 허위 정보의 위험, 누가 그 복사 값을 냈는가.-419쪽

<옮긴이의 말>에서 옮긴이가 인용한 주제 사라마구의 글

우리가 사는 이 세계에서, 맹목적으로 비틀거리며 앞으로 나아가는 이 시대에, 나이가 들면서 젊었을 때 꿈꾸던 것과는 달리 돈도 많이 벌며 편안하게 살아가는 남자와 여자를 만나는 것은 아주 흔한 일이다. 그들도 열여덟 살 때는 단지 유행의 빛나는 횃불이었을 뿐 아니라, 무엇보다도 자신의 부모가 지탱하는 체제를 타도하고 그것을 끝내 우애에 기초한 낙원으로 바꾸어놓겠다고 결심한 대담한 혁명가들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선택할 수 있는 수많은 온건한 보수주의 가운데 어느 것 하나로 몸을 덥히고 근육을 풀었다. 따라서 그들이 과거 혁명에 애착을 갖던 것처럼 지금 애착을 갖고 있는 그 신념과 관행들은 시간이 흐르면 가장 외설적이고 반동적인 종류의 순수한 자기중심주의로 변해갈 것이다. 예의를 약간 걷어내고 말을 하자면, 이런 남자와 이런 여자들은 자신의 인생이라는 거울 앞에 서서 매일 현재의 자신의 모습이라는 가래로 과거의 자기 모습이라는 얼굴에 침을 뱉고 있다. -43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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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살라 인디아]의 서평을 보내주세요.
맛살라 인디아 - 현직 외교관의 생생한 인도 보고서
김승호 지음 / 모시는사람들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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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 시절, 지금은 이름이 잘 기억나지 않는 여자 선배 하나가 방학에 인도를 다녀왔다고 했다. 동기 하나도 인도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 했다. 그 맘때쯤 나이면 한번씩 해외여행을 꿈꿔보는 시절, 나는 여행에 대한 막연한 동경은 있으면서, 한번도 실천에 옮겨보지 않았다. 여행을 위해 특별히 알바를 하지도 않았고, 돈이 야금야금 생기는 족족 음반과 책을 사거나, 영화를 보거나 하는데 썼다. 만약 내가 여행을 간다면 인도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철학의 나라 독일과 그리스, 예술의 나라 프랑스, 음악의 나라 영국, 그리고 인도와 북유럽 국가 중 한 곳에 가보고 싶었다.  

  인도에 다녀온 선배가 그 때 그런 말을 했던 것 같다. 절대로 가방을 들어주겠다는 호의를 받아들여선 안된다고. 그네들은 사유재산의 개념이 희박해서인지 일단 제 손에 들어간 물건은 자기 것으로 간주한다고 했다. 그래서 살짝 무섭기도 했다. 여행지에서 가방을 잃어버리면 국제 노숙자가 되는 것과 다름이 없는데, 어이쿠. 그러나 그들이 살아가는 모습에서 삶의 여유를 느꼈고, 참 우리와 많이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고 했다. 그 때 직접 들은 이야기 외에 내가 인도에 대해 알고 있는 건, 별로 없다. 그럼에도 가고픈 여행지 중 하나로 인도를 손꼽은 것은, 인도가 또한 철학의 나라이기 때문이다. 선배가 느꼈던 그들의 삶의 여유란 그로부터 나오는 것이라 생각했다.  

  인도 철학은 동국대 말고는 정규 교과로 개설하지 않는 것 같다. 정규 교과도 아니다보니 접할 기회가 없었고, 한번쯤 접해보고 싶다 막연하게 생각하면서도 늘 주변부에서만 맴돌았던 탓에, 아직까지 인도 철학은 모른다. 인도 철학이 정리되어 나온 단행본 책은 있기는 하다. <인도철학>(민족사)나 <인도 철학 산책>(정우 서적), <인도 철학 입문>(동문선), <인도 철학사>(이문출판), <인도 철학사>(민음사), <인도 철학사>(한길사)와 같은.  

  <맛살라 인디아>는 현직 외교관이 직접 인도에서 보고, 듣고, 느낀 바를 바탕으로 쓴 현장 보고서다. '지금 인도'를 보여주는 가장 현장감있는 책이라고 할까. ('가장'이라는 말은 적절한 표현이 아닌 것 같기도 하다. 관련 서적을 널리 읽어본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럼에도 '가장'이라는 말을 붙이는 건 그만큼 오늘의 인도를 생생하게 보여준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더불어 이 책은 인도의 현실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동시에, 인도의 고유의 전통 문화와 그들의 삶의 가치관을 빠뜨리지 않으면서 깊이를 더해주고, 더불어 인도 속의 한국, 한국 속의 인도를 가로지르며 보여주기도 한다. 단순히 인도의 역사나 시대적 배경을 구구절절 설명하는 책이 아닌, 굳이 분류하자면 여행서나 여행 안내서, 혹은 에세이쯤이 되겠다.  

  여기 '맛살라'라는 말은 인도의 향신료에서 나온 말로, "단순한 향신료의 의미를 넘어 인도 문화를 대표하는 용어가 되고 있다." 오늘날의 인도를 지칭하는 용어라고나 할까. 전통 인도 음악과 서구의 팝이 어우러지고, 끊인 우유에 짜이 잎을 우려내 설탕과 생강즙을 적당히 가미한 짜이도 있다고 한다. 그들이 먹는 음식이나 즐기는 음악, 또 건축 공학, 정치 등에 이와 같은 인도 특유의 '맛살라' 문화가 있다는 말이다. 책은 크게 1부 인도를 움직이는 힘, 2부 인도는 지금, 3부 인도 이모저모, 4부 인도에서 한국을 만나다, 로 나누어져 있다.

  '인도를 움직이는 힘'에서는 자동차 시장에서의 인도와 문화 사업, IT와 BT, 우주 산업 등을 이야기 하면서, 왜 인도가 이 분야들에 강세를 보일 수밖에 없는지를 설명한다. 또 더불어 한국 사람들이 가장 관심있어 할 영어 교육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2부에서는 인도의 카스트 계급과, 그들의 연애와 결혼관, 일본과 인도의 외교 관계를 이야기하고, 3부에서는 인도의 영화와 종교, 음식 등에 대해서, 4부에서는 인도에서 자리잡은 한국 기업과 한국 전쟁, 한국 문화를 이야기한다. 각각의 작은 장에서 선명하게 드러내고자 하는 메시지나 모습이 있어 글 한편, 한편이 흥미롭게 읽힌다.  

  인상적인 부분은, 인도 안에서도 힌두계와 무슬림계가 대립하며 힌두계의 무슬림에 대한 잔인한 학살극이 장기간 지속되었다는 것, 그로 인해 고통받는 수많은 사람들을 경찰이 모른 척하거나 심지어는 폭도에게 넘겨주었다는 부분이다. 마치 지난 촛불 정국 때 우리네 경찰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다. 단지 죽거나 강간 당한 자가 없었을 뿐. 죽지는 않아도 멀쩡한 대낮에 회칼에 맞아 피 흘렸던 사람은 있었다. 그 잔인한 현장에 경찰들이 있었다고. 그네들은 인종으로, 우리는 당파성 혹은 명령으로 그 같은 일을 겪었다.  

  교육 측면에서는 "2006년에는 인도 정부가 23.5%로 되어 있던 하위 카스트의 대학입학 특례 비율을 49.5%로 확대하려는 과정에서 큰 저항에 부딪히기도 했다"고 한다. 사실상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하위 카스트들에게 그네들이 인도에서 차지하는 비율만큼 대학 입학 비율을 할당해주려고 한 것인데, 상위 카스트들이 크게 반발했던 것이다. 그때 극렬히 반대한 이들은 인도 유명 대학의 의과와 공과 대학생들이었다고. 교육의 정도에 따라 향후 살아가는 삶의 모습이 현격히 다르고, 빈부의 격차가 큰 만큼, 그들은 기득권을 내놓으려 하지 않았던 것이다.  

  있는 자들은 자신들이 누리는 것을 내놓는 데 인색하다. 반면 없는 자들은 내놓을 것이 없고 그들이 의당 받아야 할 것을 받으려 한다. 한편 이 부분에서 부러운 것은 정부가 나서서 그 비율을 할당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상황을 잘은 모르겠다만 개념이 제대로 박힌 정부다. 소위 기득권을 가진 이들이 정부에 몸담고 있을텐데, 그들이 나서서 하위 카스트들을 위해 비율 조정을 하려 했다는 것은 고무적이다. 한국의 공직자들에게서는 절대로 찾아 볼 수 없는 모습이다. 정부에 서민이 없다보니 서민을 위해 정책을 만들고 현실을 바꾸려 노력하는 이들도 없다. 그들은 그들이 보는 것만이 현실이라고 믿으니까.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마라톤 경주에서 상위 카스트나 좋은 가문 출신의 자녀들이 이미 반환점에 서 있다고 한다면, 소외계층 자녀들은 출발선에서부터 시작해야 하는 불공정 게임과 같은 이치이다. 인도 교육 불공정 게임의 근저에는 대부분의 부와 사회적 지위를 소수 상류계급이 독점하고, 이를 대를 이어 세습하려는 이기심이 도사리고 있다. 물론 현재 상황은 과거에 비해 어느 정도 개선되었다고는 하지만 아직 근본적인 대책이나 치유책이 없는 상황이다." 만약 롤즈가 같은 상황에 있었다면 역시 저자와 같이 말했을 것이다. 출발이 다른 불공정 게임에서는, 공정한 게임을 위해 약자들의 출발선을 앞당겨주는 등의 별도의 조치가 필요하다. 무지의 베일 안에서 모든 사람들이 생각해본다면 그들에게 그 정도의 '배려'를 해주는 것을 '혜택'이라고 생각지는 않을 것이다.  

  한편, 또 그 시작점이 다르다고 확실하게 인식할 수 있는 계급제 사회인 인도가 한국보다는 낫다는 생각도 든다. 한국은 계급이 분명히 존재하지만, 그 계급이 눈으로 보이게끔 나누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시작점이 다르다는 것을 인식시키는 데에 쓸데 없는 힘을 쏟아부어야 한다. 인식이 되어야 그 다음에 그럼 우리 약자들을 위해 출발선에서 배려를 좀 해주자, 고 이야기를 할 수 있을텐데, 인식조차 못하고 있다. 아니 왜 출발선이 다르냐고 묻는다. 교육의 기회를 똑같이 주었고, 똑같이 공부하는 데 왜 출발선이 문제냐고. 이러니 출발선이 다르다는 것을 증명하기가 너무나 힘들다. 차라리 인도처럼 계급제였다면 인식 논란은 불필요할텐데 말이다.

  저자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 듯 하다. "인도는 물론 한국에서도 교육의 균등한 기회 보장을 위해 국가의 책임, 사회의 책임이 어느 때보다도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교육이라는 중차대한 문제는 국가와 사회라는 큰 틀에서 접근해야 하기 때문이다. 최근 교육과 대학 발전을 이유로 고등학교까지 서열을 매겨 학생을 선발하겠다는 일부 한국 대학들의 태도는 인도의 비인간적인 교육 양극화를 연상시켜 씁쓸한 심경을 금할 수 없다."  참으로 통탄할 일이다. 있는 계급도 모자라 그 계급차를 더 벌이려 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 정부는 상위 5%가 전체를 지배하는 사회를 바라는 듯 하다. 거기에 그 하위 95%가 적극적으로 동조해주고 있으니 어찌 속 터지지 않으랴.

  다른 나라의 모습을 빌어 우리네 모습을 관찰하는 건 필요하다. 그 나라가 비록 우리보다 경제적으로 못살거나, 정치적으로 후진 국가라 하더라도 말이다. <100분 토론>에서 진중권이 사이버 모욕죄 이야기를 하면서 짐바브웨 사례를 꺼내려 하자 전원책 변호사가 아니 왜 다른 나라의 예를 비교하려 드느냐고 '호통'을 쳤는데, 납득이 안가더라. 왜 다른 나라의 사례를 들면 안되는건가. 진중권은 한국의 오늘이 짐바브웨의 과거보다 못하다는 걸 말하려는 데, 그게 짐바브웨 국민들을 모욕하는 거란다. 얼마나 기분 나쁘겠냐고. 진중권은 짐바브웨를 칭찬하려 했는데. 비교 국가가 어떤 대상이건 그게 꼭 소위 말하는 OECD 경제 선진국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 한국의 교육을 인도와 비교하는 게 잘못된 것은 아니다. 앞에 인용했듯 인도는 적어도 정부가 나서서 그 격차를 줄이려 하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교육뿐 아니라 모든 면에서 이런 모습을 제발 좀 보고 싶다.

  

* 숙제
서평 도서의 좋은(추천할 만한) 점 :  오늘날의 인도를 생생하게 볼 수 있다는 것.
서평 도서와 맥락을 같이 하는 '한핏줄 도서' : 관련 도서를 안 읽어봐서 패스.
서평 도서를 권하고 싶은 대상 : 인도 여행을 계획중인 이들, 오늘날의 인도에 대해 알고픈 이들.
마음에 남는 '책 속에서' 한 구절 :  위 리뷰에 인용했음. (별도로 올린 밑줄긋기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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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09-01-18 16: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민족분쟁에 관심이 많아서 그런지 인도 하면 힌두교도와 무슬림의 유혈참극이 떠오릅니다.특히 펀잡 지방의 시크교도들이 힌두교도와 사이가 안 좋지요.네루의 딸인 인디라 간디도 시크교도인 자기 경호원에게 암살당했고 그 소식을 듣고 격분한 힌두교도들이 무고한 시크교도들까지 살해했구요.
그리고 우리는 걸핏하면 서구,미국,일본의 사례를 거론하는데 우리가 배울 점이 있다면 제3세계 나라들의 사례도 많이 들었으면 좋겠어요.

마늘빵 2009-01-18 23:02   좋아요 0 | URL
아 인도도 생각보다 민족 분쟁이 심각한 것 같더라고요. 이 책에서도 인도의 정치 상황에 관해서 상당 부분 할애하고 있는데, 그쵸 인디라 간디 얘기도 나왔어요. 간디 얘기는 전에 한겨레21 구독할 때 접했는데... 무섭군요.
 
눈먼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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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만약 이 세상 모두가 눈이 멀어, 단 한 사람만 볼 수 있게 된다면?" 아마도 유일하게 눈 뜬 자는 눈 먼 자들의 왕이 되거나 눈 먼자들의 노예가 되지 않을까? 그렇지 않아도 눈 뜬 여자는 그들이 갇힌 수용소에서 이같은 고민을 한다. 지금 나만이 앞을 볼 수 있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게 된다면, 나는 그들의 노예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 그리하여, 그들의 더러운 몸을 씻기고, 빨래하고, 때마다 먹을 것을 받아다 갖다 바치고, 그들이 밥을 먹거나 화장실을 가는 등 조금이라도 몸을 움직여야 할 때 그녀는 그들의 손과 발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그들에게 꼭 말해야 할 순간이 올 때까지 남편을 제외한 모든 이들에게 그 사실을 말하지 않는다. 나는 앞이 보여요, 라고. 꼭 말해야 할 순간이란, 그녀 자신도 생각지 못했지만, 어쨌든 그때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잠시 눈이 먼 적이 있었다. 몇년 전 라섹 수술을 했을 때인데, 그게 그렇게 고통스러운 건지 몰랐다. (지금은 수술 방법이 개선되어 나와 같은 고통을 느끼는 이가 거의 없는 걸로 알고 있다.) 물론, 나의 고통은 눈이 멀었다, 는 것으로부터뿐 아니라, 수술 이후에 겪어야 할 고통까지 첨가된 것인지만, 눈을 뜰 수 없다는 것, 앞을 볼 수 없다는 건, 그 자체로 너무나 큰 고통이었다. 병원에서 집으로 올 때까지, 집에 와서 화장실에 가거나 밥을 먹거나, 듣고픈 음악을 들으려하거나, 이불을 펴거나 하는 등 이전에는 아무 것도 아니었던 사소한 행위들이 내게는 하나의 과제였다. 잠시 눈이 멀어 - 눈을 뜬 이후에는 세상을 더 선명하게 밝게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눈이 멀었다'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아보이지만 - 책도 읽을 수 없었고, 티비도 볼 수 없었던 것은 물론, 내 앞에 차려진 한 끼 식사를 끝내기가 그렇게 힘들었다. 어떤 반찬이 어디에 있는지, 어떤 음식이 차려져 있는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눈이 먼다는 것은, 아름다운 세상을 볼 수 없음과 동시에 세상의 추악한 모습도 볼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하지만, 보지 않음이 경험하지 않음과 같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소설 속에서 각자 운전을 하다가, 남의 차를 훔치다가, 눈에 문제가 있는 이들을 돌보다가, 약을 팔다가, 돈을 벌기 위해 어떤 남자에게 자신의 몸을 팔다가 갑자기 눈이 멀어버린 이들은, 비록 그들이 수용소에 갇혀있지 않다 하더라도, 또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눈이 멀어 국가와 사회의 모든 기능이 일시에 멈춰버리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들이 경험했던 모든 것들을 경험하게 됐을 것이다. 좋은 경험과 나쁜 경험 모두. 그들이 처한 상황은, 단지 어느 한 개인이 눈이 먼 것이 아니라, 이 세상 사람들 모두가 서서히 눈이 멀고, 그들이 하던 모든 일들이 정지했다는데서 더욱 심각해진다.

  수용소는 하나의 사회와 같다. 먼저 온 자들과 나중에 온 자들, 주어진 좁은 공간과 이 안에 수용할 수 없을 정도로 밀려드는 많은 사람들, 맛은 차치하고라도 부족한 식량과 배고픔에 굶주리는 많은 사람들, 무기를 지닌 자와 그렇지 않은 자, 남자와 여자, 늙은이와 젊은이, 원래 장님이었던 자와 그렇지 않은 자들, 기타 등등 그 안에 갇힌 사람들을 여러 기준으로 나누어 볼 수 있을 것이다. 어떤 기준으로 보느냐에 따라, 때론 여러 기준이 한데 묶여 상황이 발생한다. 수용소 안에서나 밖에서나, 눈이 멀었을 때나 그러지 않을 때나, 무기를 지닌 자는 언제나 왕이 되고, 그가 무기를 잃는 순간, 그는 더이상 왕이 될 수 없다. 눈이 멀었다 하여 성욕이 감퇴하는 것이 아니며, 그들에게 닦친 혼란을 다스리고 일상적인 평온함을 되찾은 뒤에는, 우리들이 느끼는 모든 기본적인 욕구들이 뒤따라 온다는 사실, 힘을 가진 자들은 힘이 없는 자들의 재산과 몸을 빼앗을 수 있다는 사실, 그건 변하지 않다.

  현실에서 눈 먼 자들은 약자로서 대우받아야 하지만, 눈 먼 자들의 도시에서 눈 먼 자들은 현실에서 눈을 뜬 자들과 다를 바가 없다. 그들이 정상으로, 눈을 뜬 자가 비정상으로 취급받는다. 그러나 눈 뜬 자가 비정상이라고 하여 특별한 대우를 받는 것은 아니다. 그는 주인이 되거나 노예가 되길 선택할 수도 있다. 하지만 다른 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쪽을 택할 수도 있다. "사모님은 눈이 멀지 않았잖아요. 그래서 사모님이 우리에게 명령을 내리고 우리를 조직할 수 있는 사람이 된 거잖아요, 나는 명령을 내리지 않아요, 그저 최선을 다해 조직하려 할 뿐이죠, 나는 그저 다른 사람들에게는 없는 눈일 뿐이에요, 자연스러운 지도자지, 장님의 나라에서는 눈을 가진 사람이 왕이니까, 검은안대를 한 노인이 말했다, 그렇다면 내가 눈이 보일 때까지는 내 안내를 받도록 하세요."  

  눈 먼 자들은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모든 모욕의 단계를 내려갔다. 그걸 다 내려가서 마침내 타락에 이르렀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이제 개인의 생존일 뿐이다. 이 상황이 지속된다면 얼마나 갈 수 있을까. 그들은 지금 살아있지만, 살아있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겪을 수 있는 온갖 수치와 모욕을 경험했고, 그들이 누리던 사회적 지위는 물론,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자존심마저 스스로 짓밟았다. 더이상 인간이 되기를 포기했다. 그리고 오로지 눈 뜬 한 사람만이 그 모든 것을 눈으로 경험했다. 그리고 아파했다. 눈을 뜬 것은 더 이상 그에겐 '특별한 혜택'이 아니다. 그것은 그에게 더해진 고통이다. "어떤 면에서는 나도 눈이 멀었지, 당신들의 먼 눈이 내 눈도 멀게 한 거야, 볼 수 있는 사람들이 더 많다면 나도 더 잘 볼 수 있을지 모르겠어."  

  소설에서 눈 먼 자들이 보이는 모든 행동들은 우리가 일상에서 경험하는 바를 상징한다. "가장 심하게 눈이 먼 사람은 보이는 것을 보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말은 위대한 진리에요." 라는 의사의 말은, 진리다. 사라마구는 두 눈 멀쩡히 뜨고 있으면서 보이는 것을 보지 않으려 하는 세상 사람들을, 현대인들을 풍자하고 있다. 진짜 눈이 먼 사람들은 우리들이다. 소설이니까 가능했을지 모르지만, 단 한 명의 눈 뜬 이는 다른 이들을 지배하지 않고 그들을 돕는다. 현실에서 대다수의 눈 뜬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고통 받는 이들에게 관심이 없다. 지금도, 곳곳에서는 추위에 떨고, 굶주리고, 목적을 알 수 없는 전쟁으로 고통받는다.  

  그들은 그들이고, 우리는 우리다. 이게 우리들의 모습이 아닌가. 내 고통은 고통이지만, 타인의 고통은 고통이 아니다. 오로지 내가 경험하는 것만이 내게 고통으로 다가올 뿐이다. 커다란 국가적, 사회적 문제뿐 아니라 아주 가까운 주변에서도 쉽게 관찰할 수 있다.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 상처받고 고통받으며 말 못하는 이들이 있다. 크건 작건 이들은 우리 주위에 분명히 있으며, 그들을 보지 않는 한, 우리는 두 눈을 뜨고 있지만 눈이 멀었다. 한편, 눈이 뜬 자들은 눈이 먼 자들보다 더 고통스럽다. 우리가 봐야 할 것들이 단지 눈을 뜨고 있다고 해서 언제나 보이는대로 믿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두 눈으로 사물을 제대로 보려면 우리는 알고, 깨닫고, 느껴야 한다. 

  "우리가 대체 어떤 시대에 살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사물의 질서가 뒤집혀 있어요, 늘 죽음을 나타내던 상징이 삶의 상징이 되어버렸어요."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다. "자 이제 철학과 마법은 그만하면 됐으니, 손을 잡고 계속 살아가도록 해요." 우리가 살아가야 하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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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r 2009-01-18 0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아하는 책은 반복해서 자주 보는 편이지만, 이 책은 그럴 수가 없어요.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과 다를 게 없어서 너무 무섭고 우울하거든요...

마늘빵 2009-01-18 01:44   좋아요 0 | URL
아, 이 책은 단순히 소설로 재미삼아 읽어도 재밌지만, 작가가 드러내는 메시지가 참으로 마음에 와닿고, 그걸 눈 앞에서 경험하는 듯이 보여주는 게 더 아프게 하더군요. 오웰의 1984년, 카프카의 심판, 카뮈의 페스트와 비교를 하는데, 오웰 빼고는 읽어보지 못했어요. 나머지 심판과 페스트도 읽어보려고 보관함에 넣어놨답니다. ^^ 이어서 눈뜬 자들의 도시도 읽고 있어요.

드팀전 2009-01-18 04: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눈이 보일 적에 나는 오히려 헛디뎌 넘어지곤 했다....세익스피어 <리어왕>
'두 눈을 온전히 뜨고 살아가기 위하여'에 비하면 재미없지요 ^^ 두 눈을 뜨려면 눈을 감고 오히려 넘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될 지도 모르지요. 말장난같지요..^^ 역설은 진리를 만드는 한 방법중에 하나일겝니다.doxa와는 다른 어떤 진리의 조각이 있어요.

제가 요즘 정신병 증상이 아닌가 심하게 걱정되고 있답니다.자가진단하면 분명히 초기 증상은 있는 것 같습니다.그러려니 하시구,,,푹 쉬어야되는데...

마늘빵 2009-01-18 09:21   좋아요 0 | URL
새벽에 깨어계셨군요. 아직 주무시지 않으신건지, 아니면 일찌감치 깨신건지. ^^ 저는 내내 자다가 밤에 깨서 새벽에 잤습니다. 이런 시간도 아주 오랫만이었죠. 얼마전 세익스피어 <햄릿>을 읽으셨더라고요. 햄릿의 그 대목은 제가 읽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그쵸, 때로 역설은 진리를 드러나게 해주는 좋은 방법 중 하나인 건 맞습니다.

요새 직장 안팎에서 많이 힘드실 줄 압니다. 결국 KBS에서 몇몇을 징계하기에 이르렀는데, 부디 몸 조심하시길...
 
눈먼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2002년 11월
구판절판


오후 네 시였다. 그러나 사실 시계는 그런 데 관심이 없다. 시계는 일부터 십이까지 움직일 뿐이고, 나머지는 그저 인간의 정신 속에 있는 관념일 뿐이다. -170쪽

어쩌면 눈먼 사람들의 세상에서만 모든 것이 진실한 모습을 드러내는지도 모르겠습니다. -180쪽

사람들이 흔히 눈이 멀었다고 표현하는 사랑도 그 나름의 목소리를 가지고 있다.-217쪽

남자들은 연민과 동정심을 보여주지 않았기 때문에 도덕적으로 패배했다. 여자들의 분노는 정당했다. 여자들은 각자의 교양, 사회적 배경, 개인적 기질에 따라 남자들을 신둥부러진 놈, 기둥서방, 기생충, 흡혈귀, 착취자, 뚜쟁이 등으로 불러댔다. 어떤 여자들은 그동안 순전히 관용과 동정심 때문에 불행에 처한 동반자들의 성적인 제의를 수락해 왔는데, 이제 그 일을 후회한다고 말했다. 그렇게 해주었는데도 이제 여자들을 최악의 운명으로 몰아넣으려 하는 이 배은망덕한 행동을 보라는 것이었다. -235쪽

여자들은 남자들과의 말싸움에서 재치로 승리를 거두는 것이 그 뒤에 불가피하게 따르게 되는 패배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이해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다른 병실들에서 벌어진 논쟁도 이와 똑같았을 것이다. 우리가 알다시피, 인간의 이성과 비이성은 어디에서나 똑같은 것 아닌가. -237쪽

여자들은 귀가 멀고, 눈이 멀고, 벙어리가 된 채로 비틀거리며 걸어갔다. 앞에 있는 여자의 손을 놓치지 않을 만큼의 의지력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올 때와는 달리 어깨가 아닌 손을 서로 잡았다. 누가 왜 돌아갈 때는 손을 잡고 가느냐고 물어도, 여자들 가운데 누구도 대답을 못했을 것이다. -255쪽

눈 먼 사람에게 말하라, 너는 자유다.-305쪽

도시의 미로에서는 기억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기억이란 어떤 장소의 이미지를 생각나게 해주는 것뿐이지, 우리가 그 장소에 이르는 길을 생각나게 해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305쪽

그들은 자기가 돌이 된 꿈을 꾸고 있었다. 돌이 얼마나 깊은 잠을 자는지는 우리 모두가 아는 일이다. 시골에 나가 산책만 해보아도 그 사실을 알 수 있다. 돌들은 땅을 반쯤 묻힌 채 누워 잠을 자면서 깰 때를 기다리고 있다. 돌이 깨어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누가 알겠냐만. 그러나 먹을 것이라는 말은, 특히 굶주림이 심할 때는 마술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 심지어 언어를 모르는, 눈물을 핥아주는 개도 꼬리를 흔들기 시작했다. 그런 본능적인 행동을 하다가 개는 젖은 개들이 당연히 해야 하는 행동을 아직 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몸을 힘차게 흔들어 사방으로 물을 튀기는 행동이다. 개들에게는 그것이 쉬운 일이다. 그들은 외투를 입듯이 털가죽을 입고 있으니까. 하늘에서 직접 내려온 가장 효험 좋은 성수(聖水)가 개의 몸에서 튀자, 돌이 사람으로 변하는 것도 빨라졌다. -331-332쪽

딱딱한 빵 한 조각의 냄새는, 숭고한 표현을 사용하자면, 삶 자체의 본질과 다름없었다고 할 수 있다. -332쪽

사모님은 우리의 복수를 하려고 죽인 거예요. 여자의 복수는 여자만이 해줄 수 있어요, 복수도 정의롭기만 하면 인간적인 거예요, 부정한 방법으로 피해를 준 사람에 대해 피해자가 아무런 권리도 가질 수 없다면 정의도 있을 수 없어요. -359쪽

자연스러운 지도자지, 장님의 나라에서는 눈을 가진 사람이 왕이니까.-360쪽

눈물을 핥아주는 개는 범죄를 저질렀다는 의식과 자신이 보호하던 인간이 떠난다는 깨달음 사이에서 아주 짧은 순간 망설이더니, 즉시 부드러운 땅을 발로 긁기 시작했다. -363쪽

그녀의 멀어버린 두 눈에 눈물이 고인다. 처음으로 그녀는 자신이 계속 살고 싶은 이유가 있는지 물어보았다. 그러나 답을 찾을 수가 없었다. 답이란 필요하다고 해서 꼭 나타나는 것은 아니니까. 유일한 답은 답을 기다려보는 것일 경우가 많다. -367쪽

우리는 모든 모욕의 단계를 내려갔죠. 그걸 다 내려가서 마침내 완전한 타락에 이르렀어요. -387쪽

우리는 모욕의 모든 단계를 내려갔죠. 그걸 다 내려가서 마침내 완전한 타락에 이르렀어요, 방식은 다를지라도 여기서도 똑같은 일이 생길 수 있어요, 그래도 그곳에서는 그런 타락이 다른 사람들 탓이라고 핑계댈 수 있었어요, 지금은 그게 안 돼요, 이제는 선과 악에 관한 한 우리 모두 평등해요, 선은 무엇이고 악은 무엇이냐고는 묻지 말아주세요, 눈먼 것이 드문 일이었을 때 우리는 늘 선과 악을 알고 행동했어요, 무엇이 옳으냐 무엇이 그르냐 하는 것은 그저 우리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이해하는 서로 다른 방식일 뿐이에요, 우리가 우리 자신과 맺는 관계가 아니고요, 우리는 우리 자신을 믿지 말아야 해요. -387-388쪽

말이란 것이 그렇다. 말이란 속이는 것이니까, 과장하는 것이니까. 사실 말은 자기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것 같다. 우리는 갑자기 튀어나온 두 마디나 세 마디나 네 마디 말, 그 자체로는 단순한 말, 인칭대명사 하나, 부사 하나, 동사 하나, 형용사 하나 때문에 흥분한다. 그 말이 저항할 수 없는 힘으로 살갗을 뚫고, 눈을 뚫고 겉으로 튀어나와 우리 감정의 평정을 흩트려놓는 것을 보며 흥분한다. 때로는 신경마저도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돌파당하고 만다. 사실 신경은 많은 것을 견딘다. 모든 것을 견딘다. 갑옷을 입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다. 의사의 아내의 신경은 강철로 되어 있다. 그러나 인칭대명사 하나, 부사 하나, 동사 하나, 형용사 하나 때문에, 이런 단순한 문법적 범주들 때문에, 단순한 부호 때문에 눈물을 흘리고 만다. 두 여자, 부정(不定)대명사로 표현하자면 다른 사람들, 그들 역시 울고 있다. 그들은 온전한 문장으로 이루어진 여자를 끌어안는다. 쏟아지는 비 아래 미의 세 여신이다. -395-396쪽

가장 심하게 눈이 먼 사람은 보이는 것을 보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말은 위대한 진리예요. -419쪽

사물의 질서가 뒤집혀 있어요, 늘 죽음을 나타내던 상징이 삶의 상징이 되어버렸어요. -428쪽

그러나 지금은 말의 음악밖에 없다. 이런 말의 음악이란, 특히 책 속에 나오는 말의 음악이란 두드러지지 않다. 그래서 설사 이 건물에 사는 누군가가 호기심에 이들의 문간에 귀를 대어보았다 해도, 한 사람이 웅얼거리는 소리, 무한으로 뻗어나가는 긴 실 같은 소리밖에 못 들었을 것이다. 이 세상의 책이란, 그것을 다 합쳤을 때는, 사람들이 우주를 두고 하는 말처럼, 무한한 것이다. -42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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