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중권의 이매진 - 영화와 테크놀로지에 대한 인문학적 상상
진중권 지음 / 씨네21북스 / 2008년 12월
구판절판


"예술에서 혁신은 내용도 아니고 형식도 아니고, 기술에서 나온다."(발터 베냐민)-7쪽

영화는 정신적 지각의 대상을 제작하는 행위에서 점차 신체적 체험을 연출하는 행위로 변해가고 있다.

"기술을 통해 인류에게 하나의 자연이 조직되고 있다."(발터 베냐민)-9쪽

렌즈는 소수를 전지한 간수로 만들면서 다수를 무력한 수인으로 만든다. -10쪽

디지털 시대는 새로운 상형문자의 시대다. 윈도 창문의 아이콘처럼 오늘날 이미지와 텍스트는 하나가 되고 있다. 문맹 대중에게 의미를 그림으로 보여주어야 했던 시대에는 해석의 다의석이 문제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다원주의 시대에 지성적 몽타주의 해석적 모호함은 외려 미적 매력이 될 수 있다. 디지털은 영화로 하여금 제 언어에 대해 다시 고민하게 만들고 있다. -29쪽

글쓰기는 청각을 시각으로 바꾸어놓는다. 하지만 글자를 피부에 쓸 때, 글쓰기는 촉각이 된다. 그리고 그 종이의 냄새를 맡을 때 글쓰기는 후각이 된다. "종이 냄새는 모두 좋았다. 모두 살갗 냄새 같았다."(<필로우북>) 청각과 시각이 후각과 촉각이 될 때, 글쓰기는 섹슈얼리티로 연결된다. -35쪽

19세기까지의 주요한 이미지는 회화나 그래픽처럼 손으로 직접 그리는 ‘원작 이미지’였다. 20세기의 이미지는 장치로 찍은 그림, 즉 사진이나 영화와 같은 ‘복제 이미지’였다. 21세기 디지털 시대에 등장한 것은 ‘생성 이미지’. 여기서 앞의 두 이미지는 하나가 된다. 원작 이미지는 없는 것도 그릴 수 있으나 묘사한 생생함이 떨어진다. 복제 이미지는 사실성은 뛰어나나 피사체를 요구한다. 그런데 생성 이미지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 사진적 사실성을 가지고 생생하게 나타난다.
‘컴퓨터그래픽’이란 결국 만화와 사진의 결합이다. 만화는 맥루언식으로 표현하면 정세도(해상도)가 떨어지는 전형적인 ‘쿨미디어’다. 하지만 그래픽이 컴퓨터를 만나면 사정이 달라진다. 컴퓨터는 그래픽을 뜨겁게 달군다. 디지털 기술은 그래픽의 환상적 이미지에 사진보다 더 실감나는 고해상의 하이퍼리얼리티를 부여한다. 이때 환상은 관객의 눈앞에 사실보다 더 실감나는 현실로 나타난다. 환상이 고해상의 실재가 되어 나타나는 것. 이것이 오늘날 대중이 겪는 새로운 이미지 체험이다. -41쪽

(unheinlich(uncanny, 不氣味)에서 오는 섬뜩함에 관하여)
시체의 표정과 좀비의 동작을 닮은 휴머노이드가 불쑥 ‘죽음’을 연상시키기 때문(사망 가설)이라고 한다. 다른 가설에 따르면 뭔가 결함이 있어 보이는 존재가 종족의 유전자 풀에 섞여 들어오는 것에 생명체가 본능적 거부반응을 보이기 때문(진화 미학적 가설)이라고 한다.아무튼 인간-기계의 관계는 원래 1인칭-3인칭의 관계이나, 그것을 1인칭-2인칭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에는 분명히 어떤 섬뜩함이 있는 게 사실이다. -53-54쪽

50년대 미디어 철학자 권터 안더스는 <인간의 골동성>에 대해 얘기한 바 있다. 기술은 빠른 속도로 발전하나, 인간의 자연적 신체와 정신은 그 속도를 따라갈 수 없다. 그 격차로 인해 날로 새로워지는 테크놀로지 앞에서 인간이 ‘골동품’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얘기. 미디어가 새로워지고 신체는 고루해진다. -97쪽

‘사이보그’라는 낱말은 그 사이에 ‘심보그(symborg)’라는 신조어로 진화했다. 'symbios'와 ‘organization'의 합성어인 심보그는 한마디로 인간과 동물, 신체와 기계, 가상과 현실의 공생관계 위에서 살아가는 유기체를 가리킨다. 바이러스가 돌연변이를 일으킨 것이 진화의 원동력이 되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생명 자체가 실은 다른 생명체와의 공생을 통해서만 탄생하고 존속할 수 있다는 얘기. 이 자연현상을 인공적으로 수행하는 존재가 바로 ’심보그‘다.
사이보그가 ‘미디어는 인간의 확장’이라는 관점에서 이식된 타자에 대한 자아의 지배를 의미한다면, 심보그는 자아와 타자 사이의 평등한 공존을 함축한다. 어느 퍼포먼스에서 스텔락은 여러 개의 낚싯바늘로 제 몸을 공중에 띄웠다. 인포머틱과 로보틱스를 결합한 이 퍼포먼스에서 그는 네티즌들로 하여금 인터넷을 통해 원격으로 크레인을 조종하게 만들었다. 여기서 그의 신체는 더 이상 그만의 것이 아니라 타자와 공존하는 어떤 것이 된다. (계속)-100쪽

(이어서) 그 타자가 굳이 기계나 기관처럼 물질성을 띨 필요는 없다. 오늘날 누구나 사이버공간에서 자기의 ID를 갖고 있고, 어떤 이들은 ‘아바타’라는 이름으로 제 자신의 화신을 갖고 있다. 숙주가 돈을 들여 아바타를 먹여주고 입혀주면, 아바타는 그 대가로 숙주에게 삶의 보람과 기쁨을 선사한다. 심보그는 자아가 사이버공간의 이 도플갱어 없이는 도저히 살 수 없게 된 어떤 상황을 가리킨다.
-100쪽

"국가와 전쟁의 주체가 누구인지를 아는 문제는, 지각의 주체가 누구인지를 아는 것과 정확히 동일한 본성을 갖는다."(메를로 퐁티)-162쪽

문화적 기억은 한 사회의 대부분의 성원에게 공유된다. 하지만 기억을 수정하고픈 사람들도 있게 마련. 가령 <조선일보>가 건국한 '대한민국'의 정체성은 우리 헌법에 기입된 것과는 전혀 다르다. 이 사제(私製) 대한민국의 법통은 '이승만-박정희-전두환'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이승만 독재는 4.19 민주이념에, 박정희의 친일은 3.1운동에 배치된다는 점에서, <조선일보>의 옆차기는 가망없는 위헌적 망동에 불과하다.
최근 박근혜 대표는 5.16을 "구국혁명"이라 불렀다가 구설수에 올랐다. 쿠데타의 정의 자체가 헌법을 부정하는 것이기에, 그의 견해는 집단의 문화적 기억이 아니라, 그의 추종자들의 사제 기억에 머물 뿐이다. -272-273쪽

"우리는 폭도가 아니다." 당시에 <조선일보>의 김대중 전 주필은 광주 시민을 '폭도'라 불렀고, 실제로 광주 시민은 오랫동안 공식적 기억 속에서 '폭도'로 지내야 했다. 하지만 군사정권이 강요한 그 기억은 그저 단기기억에 불과했다. 오랜 싸움 끝에, 광주의 시민군은 오늘날 장기기억 속에 민주화 유공자로 기입됐다. 심지어 한나라당의 정치인들도 이제는 광주를 참배하는 것으로 정치일정을 시작해야 한다.
물론 인터넷에 모인 '전사모' 회원이 1만 4천 명이라 한다. 하지만 어느 사회나 제 분량의 또라이를 갖고 있게 마련이다. 독일사회에도 그 정도 분량의 네오 나치는 서식하고 있다. 문제는 이 소수의 얼빠진 이들이 아니다. 광주의 빛을 바래게 하는 것은 그 기억을 현실 정치에서 정략의 수단으로 써먹는 이들이다. -275-27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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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장수 2009-01-11 14: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재미있게 읽고 있습니다. 기술미학으로 영화를 읽어나가니 확실히 여타의 영화 평문들과는 다르더군요. 읽고 있는 책 반가워서 댓글 남기고 갑니다.

마늘빵 2009-01-11 23:03   좋아요 0 | URL
^^ 재밌는데 조금 어렵더라고요. 잘 모르는 영화 기술적 개념들이 많이 나와서요. 근데 계속 읽다보면 또 중복되는 부분이 있더군요.

2009-01-11 18:0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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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11 23: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1-11 22:5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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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11 22: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1-12 01: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1-12 09: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탐욕의 시대 - 누가 세계를 더 가난하게 만드는가?
장 지글러 지음, 양영란 옮김 / 갈라파고스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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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치심은 도덕을 구성하는 기본 요소 중의 하나다. 수치심은 인간으로서의 자각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상처를 받거나 배가 고프거나 궁핍함으로 인한 모욕감 때문에 심신이 괴롭다면, 나는 고통을 느낀다. 나 아닌 다른 인간에게 가해진 고통을 바라볼 때도 나는 나의 의식 속에서 얼마간 그 사람의 고통을 함께 느끼며, 그로 말미암아 내 안에 연민의 감정이 생겨나고, 도와주고 싶은 연대감이 발동하며, 동시에 수치심을 느낀다. 이렇게 되면 내 안에서는 행동하라는 부추김이 일어나게 된다.
나는 직관적으로 이성의 작용에 의해서 혹은 도덕적인 의무감에서 모든 인간은 일할 권리, 먹을 권리, 건강을 돌볼 권리, 배울 권리, 자유를 누릴 권리, 행복해질 권리를 가지고 있음을 안다.
인간 정체성에 대한 자각이 세계화 지상주의를 표방하는 자들을 포함한 인간들에게 깃들어 있다면, 이들은 도대체 어떻게 그처럼 인류를 황폐하게 만드는 행위를 서슴지 않고 행할 수 있단 말인가? 그자들은 도대체 어떻게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행복 추구 욕구마저도 그토록 냉소적이고 잔인하며 교활한 방식으로 깔아뭉갤 수 있단 말인가? (계속)-13-14쪽

(이어서) 그들은 한 인간이면서 동시에 부자가 되고 싶고, 시장을 지배하고 싶으며,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거나 세계의 주인이 되고 싶다는 모순적인 욕망에 사로잡혀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잠재적인 경쟁자들을 상대로 경제전쟁이라는 이름의 계엄령을 내렸다. 인간 누구에게나 공통으로 적용되는 도덕을 비껴갈 수 있는 예외적인 체제를 마련했다는 말이다. 새로운 체제 안에서 그들은 기본적인 인권을 외면하고(하지만 지구상의 모든 나라가 인권 보장을 지지한다), 도덕적인 원칙을 무시하며(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도덕적인 원칙이 보장된다), 평범하고 상식적인 감정(이들은 자신의 가족이나 친구들한테만 이 같은 감정을 허용한다)을 억누른다. (계속)-13-14쪽

(이어서) 내가 타인에게 연민의 감정을 표하거나 연대감을 보인다면, 나의 경쟁 상대는 그 즉시 이를 나의 약점으로 여겨서 이용하려 들 것이다. 나의 경쟁 상대는 나를 무너뜨리려고 할 것이다. 결과적으로 나는 수치심(이런 경우 억눌러야 한다)을 느끼는 나의 마음에도 불구하고, 하루 24시간 밤이든 낮이든 어떤 대가를 치러서라도 최대의 이익을 추구해야 하며, 그 이익을 축적하고 최단 시간에 최저 비용으로 가장 많은 부가가치를 창출해내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 한다.
이른바 경제전쟁은, 다른 모든 전쟁들이 그렇듯 전쟁이 지속되는 한 영원토록 희생을 강요할 것이다. 게다가 불행하게도 이 전쟁은 끝없이 계속되도록 프로그래밍된 듯하다. -13-14쪽

"지식인의 의무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증언하는 것이다. 지식인의 임무는 민중을 현혹시키는 것이 아니라 이들을 무장시키는 것이다." (레지 드브레-프랑스 출신 철학자, 교수, 기자, 볼리비아에서 체 게바라의 혁명 동지)-17쪽

"특정 계급에 속하는 사람들이 아무런 죄의식도 없이 다른 계급에 속하는 사람들을 기아에 허덕이게 만들 때, 자유란 한낱 허울뿐인 유령에 불과하다. 부자가 독점을 통해서 동시대인들의 생사여탈권을 장악할 때, 평등이란 한낱 허울 좋은 유령에 불과하다. 혁명의 반동 세력이 나날이 곡식의 가격을 쥐고 흔들어 시민들의 4분의 3이 눈물 없이는 식량을 조달할 수 없을 때 공화국은 한낱 유령에 불과하다."(자크 루-사제)-24쪽

"자유란 먹고살 걱정이 없는 사람들이나 행사할 수 있는 것이다."(루이 드 생쥐스트)-25쪽

유토피아는 다른 것에 대한 욕망을 의미한다. 유토피아는 지상에서의 짧은 생애 동안 우리가 손에 넣을 수 없는 것을 의미한다. 유토피아는 요구 가능한 정의까지도 내포한다. 유토피아는 인간의 의식이 미리 예견할 수 있는 자유와 연대의식, 나누어 갖는 행복의 도래를 표현한다. 유토피아는 결핍인 동시에 욕구로서 전 세계적인 사회정의를 위한 인간들의 모든 행동의 가장 내밀한 원천이 된다. 이러한 정의 없이는 우리들 그 누구에게도 행복이란 불가능하다. -28쪽

"죽음의 순간에 우리들 각자는 생을 마감하기 위해서 더 많은 생을 필요로 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임종의 고통 속에 놓인 순간에, 우리는 원하건 원하지 않건 우리 자신, 즉 우리의 자아를 다른 사람, 즉 우리보다 뒤에 살 수입억 명의 사람들에게 넘겨주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들만이 미완성으로 끝나는 우리의 삶을 완성시켜줄 것이기 때문이다."(에른스트 블로흐)-29쪽

"자기 눈앞에 펼쳐진 지평선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눈에 보이는 것만 보는 사람들, 다시 말해서 실용주의만 고집하며 일단 손에 쥔 것만 가지고 무언가를 하려는 사람들은 절대로 세상을 바꿀 수 없습니다. 오직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사람들, 지평선 너머로 펼쳐져 있을 세계를 보는 사람들만이 실재론자들입니다. 이 사람들만이 세상을 바꾸는 행운을 거머쥘 수 있습니다. 유토피아는 지평선 너머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분석적인 이성으로는 우리가 원하지 않는 것이 무엇인지, 우리가 바꾸고 싶어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간파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다음에 도래할 것, 우리가 원하는 것, 지금과는 전혀 다른 세상은 내면의 눈, 즉 우리 안에 깃들어 있는 유토피아를 통해서만 볼 수 있습니다."(르페브르)-30-31쪽

"나는 나를 이루고 있으면서 당신들 앞에서 말을 하는 이 먼지 덩어리를 경멸합니다. 당신들은 나를 처형하여 이 먼지 덩어리의 입은 막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앞으로 몇 세기가 지난 다음, 아니면 하늘나라에서라도 나한테서 나만의 독자적인 삶을 앗아갈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얼마든지 그렇게 해보십시오."(생쥐스트가 판정관들인 파리 공안위원회 위원들 앞에서 한 말)-31쪽

부채를 얻고, 그 부채를 갚기 위해 이자를 지불하고 원금을 상환하는 일련의 과정은 봉건시대에 유행하던 충성 서약의 가시화된 표현과 다르지 않다.
노예는 국제통과기금으로부터 협정서 혹은 구조조정 합의서를 받을 때마다 무릎을 꿇는다. 무릎을 꿇지 않고 서 있는 노예는 비록 목이나 손목, 발목에 무거운 쇠사슬을 칭칭 동여매고 있더라도 위한한 노예다. -104쪽

"계급에 대한 편견은 심지어 노동자들 자신의 마음과 정신으로도 파고들어, 우리 스스로에게 역사의 주체로서 행동할 수 있는 역량이 있는지 의심하게 만든다."

"우리는 정부를 구성하고 있을 뿐 권력을 장악한 것이 아니다. 한 나라의 사회구조를 바꾸기 위해서는 대통령 한 사람이나 의회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민중들이 나서야 한다."(룰라-브라질 대통령)-208-209쪽

부채로 인해서 야기될 수 있는 결과 또한 매우 다양한 양상으로 전개된다. 첫째, 한 나라가 대외적으로 허약해지며, 경제의 대외 의존도가 높아진다. 둘째, 외화로 갚아야 할 돈의 액수가 점점 증가하며(오늘보다 내일 갚아야 할 돈이 많아진다), 따라서 한 국가의 젊은 세대들의 발전을 저해한다. [......] 넷째, 주권을 상실하게 되며 국제금융 시장의 전략과 세계열강의 위력에 복종해야 한다. 다섯째, 부채를 들여와 경제가 성장하는 시기에는 아무런 혜택도 받지 못하다가 상환을 해야 하는 무거운 의무만 짊어진 무방비 상태의 소시민들에게 희생을 강요한다. -239쪽

"인간에 대한 사랑은 정의에 대한 사랑의 토대를 이룬다. 정의감이란 이성에 의해서만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감정에 의해서도 형성되기 때문이다."(장 폴 마라)-331쪽

희망은 어디에 있는가?
소수, 즉 대체로 별다른 의식 없이 사는 백인들의 편의를 위해 언제까지고 대다수가 가난과 절망, 착취, 기아 속에서 신음해야 하는 세상을 거부하는 인간의 이성 속에 희망은 깃들어 있다. 우리들 각자의 마음속에는 도덕적인 요청이 자리 잡고 있다. 그러니 그것을 흔들어 깨우고, 저항하겠다는 의지를 북돋우며, 투쟁을 조직해야 한다.
나는 타인이며 동시에 타인은 나다. 타인에게 가하는 비인간적인 행동은 내 안에 깃들어 있는 인간성을 말살시킨다.
카를 마르크스는 "혁명가는 한 포기 풀이 자라나는 소리도 들을 줄 알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342-343쪽

"당신들은 구호를 받는 가난한 자들을 원하지만, 나는 가난이 없어지기를 바란다."(빅토르 위고)

"그들은 꽃이란 꽃은 모조리 꺾어버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해도 결코 봄의 주인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파블로 네루다)-344쪽

얼마 전, 아프리카에서 상당히 오랜 동안 일을 한 경력이 있는 지인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그이와 같이 일하던 현지 직원 한 명이 어느 날 눈물을 펑펑 쏟고 있기에 이유를 물었더니, 뇌염 예방주사를 맞히지 못해 자녀가 죽었다고 하더라는 것이다. (중략) 가난과 부채가 빚어내는 비극을 멀리 떨어진 다른 나라만의 이야기롤 듣지 말자. 내 직장 동료, 내 이웃이 겪는 아픔에 가슴 한구석이 찡해지는 보통 사람들이라면, 앞으로 더 이상 이런 비극이 일어나선 안 된다고 분명하게 말해보자. 혁명은 거창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혁명가이고, 또 혁명가이고 싶다. -34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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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섬 2009-01-09 0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탐욕의 시대 읽고 싶네요.

마늘빵 2009-01-09 09:11   좋아요 0 | URL
서론, 결론 격인 부분엔 위에 밑줄그은 것과 같은 인용구와 가치 서술이 많고, 그보다 훨씬 많은 본문은 빈곤국가의 실상(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거대 기업의 횡포와 비리 등에 촛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
 
뉴라이트 비판 - 김기협의 역사 에세이
김기협 지음 / 돌베개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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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라이트 역사관의 근본적 문제는 무엇보다 인간을 ‘이기적 존재’로만 본다는 데 있다. (중략)
다른 요인을 일절 돌아보지 않고 인간을 이기적 존재로만 본다면 사회를 약육강식의 정글로 볼 수밖에 없다. 그렇게 본다면 자유방임의 신자유주의가 옳은 길이다. 환율 정책, 제세 정책, 경제 운용을 모두 가진 자, 힘 있는 자 위주로 하면 된다. 덜 가진 자, 못 가진 자들의 불만은 공안 입법과 공권력의 무절제한 행사를 통해 틀어막으면 된다.
강자가 군림하는 사회를 뉴라이트는 만들고 싶은 것이다. 이는 한국인에게 익숙한 사회이기도 하다. 식민지 시대부터 독재 시대까지 내내 겪어온 것이니까. 그런데 식민지 시대에도 독재 시대에도 현실에서는 강자가 군림할지언정, 말은 다르게 했었다. 군림당하는 자들에게 희망이라도 줘야 체제를 끌고 가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10-11쪽

근년 교과서를 비롯한 역사학계 주류의 서술 기조가 민족주의와 민중주의 등 이데올로기에 지나치게 묶여왔다는 뉴라이트 측의 지적에 나는 동의한다. 따라서 일제강점기를 바라보는 데도 일부 세력의 항일운동에 절대적 비중을 두는 대신 대다수 한국인이 처해 있던 현실 상황에 더 주목하자는 그들의 제안을 반갑게 받아들인다.
그러나 뉴라이트 쪽에서 기회 있을 때마다 ‘실증’을 내세우는 데는 역사 개발의 경쟁에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려는 뜻이 보인다. 그 실증이란 것이 역사학자들보다 숫자놀음에 익숙하다는 이점을 활용해 유사 과학의 특성을 강화하는 방향이라면 그 한계는 뻔하다. 인간 자체의 이해 노력을 외면하는 유사 과학으로서의 역사학은 하나의 이데올로기를 배척하면서 또 하나의 다른 이데올로기에 복무할 뿐이다. 기존 역사관이 민족과 민중에 복무하는 것이라면 뉴라이트 역사관은 ‘주식회사 대한민국’의 사사 수준으로 물러서는 것이다. -174쪽

‘승리’를 곧 ‘성공’으로 풀이하는 뉴라이트 세계관은 역사를 보는 눈만이 아니라 현실을 보는 눈도 한쪽으로만 열어준다. 진보 진영의 선거 패배는 곧 그들의 실패라고 뉴라이트는 본다. 패배자들이 했던 모든 일을 승리자가 뒤집을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일제강점기 친일파도, 지금 ‘강부자’도 뉴라이트의 눈에는 승리자들이며, 따라서 성공한 자들이다. 성공했다는 것은 목표가 올바르고 노력이 충분했다는 뜻이다. 따라서 친일파 비판은 실패한 자들의 시기심일 뿐이며, 부자에게 세금을 더 물리려는 종합부동산세는 "잘못된 세금 체계"인 것이다. 경제학자들이 종합부동산세의 타당성을 아무리 설명해도 소용없다. 성공한 자들을 대접해주기는커녕 부담을 지우려들다니, 올바른 세금 체계일 수 없다는 것이다. -186-187쪽

2008년 10월 6일 교육과학기술부 국정감사. 한나라당 정두언 의원과 금성출판사 교과서 저자 김한종 교수 사이에 이런 말이 오갔다.

정두언 (또 말을 끊으며) (북한의) 지침 때문에 쓴 것인가, 아니면 본인 소신인가?
김한종 어떤 부분인지(어떤 부분이 북한 책과 똑같은지) 말해달라.
정두언 본인이 더 잘 알 텐데. 북한 역사관에 대해서 공부를 많이 했으니까.
김한종 ......
정두언 교과부의 수정 요구안에 대해서 응하지 않으면 교과서가 폐지될 수 있다. 어떤 일이 전개될지 알 수 있을 텐데...... 마음의 준비를 하라. -200쪽

뉴라이트를 앞세운 현 정권의 공세는 역설적으로 민주주의 발전의 기회를 만들어주고 있다. 물론 민주 시민들은 수구집단의 현실적 위협으로부터 민주, 평화, 진실, 정의, 자유의 제 가치를 지키기 위해 분투, 노력해야 할 것이다. 바로 그 분투, 노력의 과정 속에서 그 가치들은 자라날 수 있다. 지키는 노력 속에 이 가치들의 성장 기회가 있는 것이다. -221-222쪽

역사학이란 인간성을 경험적으로 탐구하는 학문이다. 인간성이 어떤 범위에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는 것인지, 과거의 사실에 비추어 더듬어보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은 이기적 존재"란 독단적 명제를 선험적으로 정해놓고 이에 과거의 사실을 끼워 맞추려고 드는 것은 역사학의 기본 문법에 벗어나는 오류다. 게다가 자라나는 청소년에게 '너도나도 모두 이기적 존재'란 관념을 주입하려 든다는 것은 교육의 기본 의미를 망가뜨리는 짓이다. 교과서포럼의 '대안 교과서'는 극우 정당의 수련 교재는 될 수 있을지 몰라도 역사 교과서를 바라볼 물건은 아니다.-23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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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09-01-05 0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책 징글징글할 거 같애서 못 보고 있습니다. ㅠㅜ
지금 이책 읽음... 혈압이 넘 오를 듯...

바람돌이 2009-01-05 00:57   좋아요 0 | URL
아뇨? 오히려 전 희망이 보이는듯하던데요. ^^ 뉴라이트 너 얼마 못가겠구나 하는.... ^^ 이 책 쓰신분이 굳이 이념적으로 나누자면 중도보수정도? 근데 이런 분도 설득시키지 못하는 뉴라이트라니 싶더라구요.

마늘빵 2009-01-05 09:20   좋아요 0 | URL
^^ 바람돌이님은 읽으셨군요! 저도 몇 장 안남았습니다. 근데 기대했던 것보다는 조금 방향이 달랐어요. 바람돌이님 리뷰 읽어보고 싶네요. 글샘님 생각보다 화가 많이 안날지도 모릅니다. 아니 어쩌면 아니 왜 이 정도밖에 비판을 못해, 하면서 답답해 하실지도...

무해한모리군 2009-01-05 10:14   좋아요 0 | URL
너무 쉽고 간단하게 쓰셔서 오히려 아쉬울 정도입니다 ^^

Jade 2009-01-08 0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책, 알라딘 한줄광고에 "이 모든게 뉴라이트 때문이다"라고 뜨는거에서 어이상실했어요 ㅋㅋ 서점가서 뒤적뒤적 해보니 뭔가 한이 맺힌듯 느껴지던데 ㅎㅎ

마늘빵 2009-01-08 09:23   좋아요 0 | URL
'한줄광고'는 뭐지? 음, 제목이 뉴라이트 비판인 만큼 뉴라이트 비판에 촛점을 맞추고는 있는데, 그렇게 세진 않은데.

2009-01-08 22: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1-08 22:5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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뼛속까지 자유롭고 치맛속까지 정치적인 - 프랑스 남자와 결혼하지 않고 살아가기
목수정 글, 희완 트호뫼흐 사진 / 레디앙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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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과 속도는 다양성과 아름다움에 대한 추구를 거부하며, 가부장제는 모든 딸들의 미래에 일찌감치 한 뭉텅이의 소금을 뿌린다. 자본의 집중과 소비를 향해서만 거대한 관용이 10차선 도로를 내주는 이 사회에서, 한 뼘의 자유를 차지하려고 투사가 되는 것보다 ‘고객님’으로서의 존재로 충실히 지내는 것은 쉽고 편한 선택일 수밖에 없다. -18쪽

개인주의를 소중한 사회적 미덕으로 여기는 나라에서 이만큼 정치적 진보를 이룬 것은 그 바탕에 연대의 미덕이 신념처럼 확고하게 뿌리박혀 있기 때문이다. 똘레랑스가 프랑스 사회를 유연하게 만드는 여러 개의 벽돌이라면, 연대는 그 벽돌 사이를 메우는 유연하게 메워 주는 풀이다. 이 풀은 원한다면 언제고 떼어내고 다시 결합할 수 있어 아나키스트적 운동을 가능하게 만들어준다. -67-68쪽

내가 투자할 시간, 투자할 돈, 그렇게 해서 딴 학위가 나에게 확실한 미래를 보장할 것인가를 염두에 두고 더 분명하고 안전한 선택을 매순간 계산해야 한다면, 한 순간도 인생은 나 자신의 것이 될 수 없다. 불만은 터뜨리고 욕망은 충족시키면서 사는 것이 건강한 삶이다. 그러나 내가 충족시키고자 하는 욕망이 진정한 나의 욕망인지 아니면 모두가 욕망해야 하는 것이라고 정해진 일반적 욕망의 리스트일 뿐인지를 가늠해 보는 과정이 필요하다. -100쪽

선과 악, 미와 추에 대한 사회적 기호를 아직 익히기 전의 인간들은 얼마나 신선한 눈으로 세상을 창조했던가. 인간이 창조하는 존재라는 건 분명하다. 그런데 그런 인간이 마술 정도를 할 수 없다든 건 말이 되지 않는다. (중략)
마술이 존재하는 세상에 살고 싶다. 여전히, 그러나 인간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사물을 소비와 재화 창출의 잠재적 대상으로 전락시키며 살아가는 순간 마술은 멎는다. 우리가 더 이상 우주와 교류할 수 없게 되는 것은 매우 당연한 이치다. 나는 칼리에게 십대 시절의 나를 분개하게 만든 세상의 거짓말이 사실은 거짓이 아니라고 말해줄 것이다.
"넌 이미 마술사야. 네가 그걸 원한다면 언제라도 마술사야." -109쪽

세상의 모든 남자들에게 그들의 잠자던 영혼에 날개를 달아줄 여신이 있을 터이다. 그녀를 만나거든 그 앞에 겸허히 엎드려 사랑과 존경을 바치시길. 그 때 인류는 비로소 평화를 얻게 될 것이다. -140쪽

세상의 모든 자장가는 평화로우면서도 구슬프다.
전쟁과 실업 그리고 기아라는 세계 공통의 비극이 인류를 뒤덮는 동안,
그녀들은 품에 꼭 끌어안은 아이의 달콤한 살 냄새를 맡으며
고달픈 삶을 위로받았을 것이다.
애절할 수밖에 없는 곡조는 평화와 소박한 행복을 비는 그녀들의 주문 같았다. -156쪽

음악은 사람이 모태에서 접할 수 있는 최초의 예술이다. 언어를 매개로 하지도 않고 가시적이지도 않은 매우 추상적인 예술이지만, 그 추상성 때문에 어떠한 중계나 왜곡도 없이 우리의 영혼 속으로 직접 침투하는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아이들은 엄마 뱃속에서부터 소리로 세상을 배우고 유추한다. -157-158쪽

움직이는 기업으로 불리는 몇몇 대형 스타 가수들만이 이 사회의 모든 환호와 찬사를 독차지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비’라는 가수를 수천 번 보았을지언정 그가 부른 노래 하나를 알지 못한다. 그들은 사막 속에서 검은 물을 콸콸 쏟아내는 몇 개의 유전일 뿐. 한국 문화의 수출은 대형 기획사들의 추진력으로 키워진 아이돌스타에게만 기대고 있다. 한류는 전적으로 그들의 몫이다. 정부가 나서야 할 일은 문화교류의 폭을 확장하고 질적 수준을 고양시키는 것이지만 몇몇 기획사들의 움직임에 훈수를 두는 것을 자신의 역할로 규정짓고 만족스러워 한다. 정부가 자연스런 업적처럼 내세우는 한류가 어쩐지 부끄럽게 느껴지는 이유다. -159쪽

기껏해야 자본의 제단에 머리나 조아리는 존재들이 여성들 앞에서는 기어이 군림하려 드는 현상... 됐다. 이후 나는 누군에게서든 눈꼽 만큼이라도 가부장적 징후를 발견하면 그것을 낱낱이 지적하고 과감하게 잘못을 응징하는 태도를 보였다. 이런 결심을 하게 된 건 나뿐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외환위기 이후 급증한 이혼율은 더 이상 자신의 삶을 참지만 않겠다고 결심한 여성들이 주도한 현상이었다. 자신의 몫을 두 손으로 움켜쥐겠다고 결심한 것이다. 정치적 의미에서의 혁명은 여전히 일어나주지 않았지만, 여성들의 머리와 가슴 속에서 혁명은 찬란하게 진행 중이었다. -169쪽

행복은 마음에만 있는 게 아니라 사회 속에서 쟁취하고 학습하는 것이며 또 전이되는 것이다. 우리는 어린아이 속옷에, 팬시용품에 값싸게 수놓아진 장식으로서 Happy가 지천인 사회에 산다. 하지만 불합리한 문제들이 있을 때마다 "원래 그렇다."는 말 밖에 들려주지 않는 이 사회는 얼마나 행복할까. 결코 납득할 수 없는 편협한 정상이 활개를 치는 한, 이 사회의 행복은 버석거리는 포장지로만 존재하는 공허한 사기일 뿐이다. -198-199쪽

공부를 잘하면 선택할 수 있는 학과와 대학의 선택의 폭이 넓어져야 하지만 이 부분에서도 한국 사회는 예외의 답을 제공한다. 한국 사회에서 공부를 잘 한다는 의미는 조변석개하는 입시제도에 발 빠르게 대응할 만큼 기동력을 갖춘 학원 강사들에게서 정답 고르는 요령을 잘 배웠다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니 진정한 지성과 명민함이나 세상을 통찰하는 독자적 시각을 갖추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다. -211쪽

대의를 위해 자아를 희생하거나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본질적인 지향과 욕망에 충실한 선택으로서의 좌파, 자유롭고 당당한 생활 좌파가 많을수록 미래가 밝다는 게 내 생각이다. 두 주먹을 불끈 쥐고 투쟁의 깃발을 높이 올리는 모습만이 좌파의 전부는 아니며, 그런 자세가 좌파의 승리를 앞당긴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213쪽

사랑은 단지 개인적인 감정을 소모하는 경험이 아니라 우리 인생을 숨쉬게 만드는 경험이다. 동시에 사랑에는 치명적인 상처를 줄 위험도 도사리고 있다. 나의 주장은 이러한 것들을 객관화해보자는 것이다. 그래서 그것을 적극적으로 전면적으로 삶 속에 친화시켜 사랑의 결핍이나 과잉을 겪지 않고, 사랑의 배달사고가 일으키는 피해에서 좀 더 자유로워지자는 것이다. 사람들은 소설에서처럼 사랑하지 않는다. 이성과 논리로는 통제 불가능한 영역이어서 언제인지 알 수 없지만 예정된 운명의 길목에서 기적처럼 만나서 꽃피거나 가차 없이 저버리는 게 아니다. 물론 물화된 영역에 있지도 않다. 재력 있는 남자와 미모와 젊음을 가진 여자가 만나 서로의 가치를 기계적으로 교환하는 것도 사랑이 아니다. 그러니 사랑학을 통해 이러한 사실들에 대해 담담하게 통찰하자고 제안하는 것이다. -243-244쪽

자유로운 두 개인이 서로 감정을 구체화하고 교류하면서 연애의 기쁨을 누리고, 영혼의 날개가 천상을 휘젓는 사랑으로 나 있는 통로는 비좁다. 연애는 결혼이라는 요란스런 사회적 통과의례로 가기 위한 청춘남녀의 요식행위가 돼 버렸고, 심지어 너저분한 상행위로 전락하는 경우도 숱하다. 이런 상황에서는 "행복하게 결혼해서 잘 사는" 걸로 끝나지 않는 모든 사랑은 불장난이며 실패로 규정된다. -245쪽

<목수정이 연애상대에게 기대하는 사항들>
예술적인 감수성은 있는 사람인가? 삶에 대한 열정은 충만한가? 지적인 욕망과 그가 쌓아온 지식의 창고는 어느 정도인가? 어린시절 부모와 충분히 애정을 교감했는가? 정치적 지향은 어떤가? 사고와 행동은 얼마나 일치하는가? 머릿속은 얼마나 자유로운가? 미적 감각이나 옷 입는 취향은 만족스러운가? 볼 때마다 탄성을 자아내는 외모인가? ‘멋있다’는 형용사에 가까운 사람인가? -254쪽

결혼의 입구에서 닫히고 만 그 무책임한 동화들이 수세기 동안 퍼다나른 환상을 품고 결혼의 문으로 성큼 들어간 커플들은 그 이후 펼쳐지는 전쟁 같은 일상에 무방비로 노출된다. 그리고 어째서 달콤하고 아름다운 동화로 이어지지 않는지 고민하며 결혼의 환멸을 개인의 몫으로 끌어안기 시작한다. 그 다음 순서는 사랑의 감정을 유지하려는 꿈을 접는 것이다. -258쪽

까페에서 나란히 손을 잡고 앉아 있되, 시선은 밖으로 열어두는 방식에서처럼, 적절한 통풍과 환기를 허락하여 서로의 삶에 독립된 영역과 자유를 적절히 보장하는 방식은 그 관계를 더 건강하게 유지하게 만든다. 사실 사랑만 하고 결혼은 하지 않는 그런 무책임한 방법이야말로 가장 이상적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유림 할아버지들한테 맞아죽을 이 생각은 세상의 모든 모계사회가 지속해 온 방식이고 인간을 제외한 대부분의 동물들이 생식하고 공존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260쪽

우파는 오른쪽으로 가기 보다는 주어진 길을 가는 사람들이며, 좌파는 현상을 까뒤집어보고 다른 각도에서 삐딱하게 바라보는 사람들이다. 철학을 하는 자세와 예술을 하는 자세는 같다. 우파는 사람들을 얌전히 성냥갑 안에 넣어놓고 통제하려 들며, 좌파는 어떻게 해서든 그 통제의 틀을 뛰쳐나오려 한다. 평등에 초점을 맞추던 좌파의 태생적 관점은 점점 자유 쪽으로 그 무게중심을 옮겨왔다. 그러나 자본의 무한한 자유를 허락하는 ‘신자유주의’의 도래로 말미암아 이는 부언이 필요한 난감한 설명이 되어버렸다.
최근 들어 깨달은 좌와 우에 대한 가장 명확한 정의는 전자는 생명을 지향하고, 후자는 죽음을 지향한다는 것이다. 정신의 무한한 자유를 추구하고 모든 살아있는 것들과 조화로운 상생을 꿈꾸며 깨어있는 존재가 좌파라면, 텔레비전 앞에서 일생의 대부분을 보내면서 일찌감치 자신의 영혼을 무덤 속에 파묻고 보수언론의 선동을 묵묵히 받아들이며 개발이라는 미명 하에 생태를 파괴하는 것이 발전이라고 믿는 쪽이 우파다. 우파가 가장 싫어하는 좌파의 부류가 생태주의자라는 사실이 어떻게 우연일까. -289-290쪽

사랑에 눈멀 때, 우리는 그 사람의 한 가지를 사랑하면서 다른 것들을 기꺼이 윤색하고 거기에 도취되는 실수를 범한다. 그리고 서서히 사랑의 환각에서 벗어나 아름답지만은 않은 현실을 직면할 때, 환멸과 상처를 내 손으로 보듬어 새 살로 만드는 것이 그 사랑을 지키는 유일한 방법이며, 내 최초의 선택을 존중하는 것이 스스로 성숙해지는 가장 좋은 길이다. -294쪽

다른 세상에 대한 실험은 우리 내부에서 시작하는 게 마땅하다. 실험하지 않고 실천하지 않으면서 권력을 잡아 하루아침에 세상을 바꾸겠다는 건 거짓말이다. 나부터도 그 거짓말은 믿을 수 없다. 실천하지 않는 만큼 우리의 미래는 더 멀리로 꽁무니를 뺀다. -297쪽

한 우물을 파서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되고, 그리하여 인류의 발전을 도모하는 동시에 밥벌이를 해야 한다는 전 인류가 주입시켜온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다. 살아있는 동안 나의 욕구와 관심은 나와 함께 진화할 것이며, 열심히 그 새로운 호기심과 열정에 화답하며 살고 싶다. 그것이 나의 진실이다. 그래봤자 1세기도 안 되는 짧은 시간이 내게 주어져 있을 뿐이고 나의 관심사는 ‘문화’라는 거대한 대지 속에서 이리 저리 출렁거릴 뿐이다. -3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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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01 22:2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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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01 22:2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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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01 22:4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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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01 22:4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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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01 22:5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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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01 22:5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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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02 09:1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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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02 11:4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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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초롬너구리 2009-01-01 2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국여자말고 이제 프랑스남자로 바꿔보신 거예요?

마늘빵 2009-01-01 23:07   좋아요 0 | URL
^^ 아녀. 저는 남자 말고 여자.
 
맛살라 인디아 - 현직 외교관의 생생한 인도 보고서
김승호 지음 / 모시는사람들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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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5월 인도인민당이 정권을 잡은 후) 인도 역사 교육에도 큰 변화가 있었다. 기원전 2천년 인도 드라비다족을 정복한 아리안족들이 사실은 인도인들이었으며, 이들이 인도로부터 세계의 다른 지역으로 이주해 갔다는 쇼비니즘적인 학설을 제기한 것이다. 나아가 하라파 시대와 그 후의 베다 시대는 지금까지 알려진 것보다도 수천 년 전에 존재한 것으로, 인도가 인류 문명의 유일한 요람이며 세계의 다른 어떤 분명보다도 훨씬 앞선다고 주장했다. 고고학의 기초를 허무는 이 입증되지 않은 이론은 교과서로 제작되어 인도 전역의 학교에 배포되기도 했다. -121쪽

구자라트 저역에서 힌두 급진주의자들이 주동이 되어 전개한 무슬림에 대한 복수와 학살은 3개월간이나 지속되었고, 이 와중에 2천여 명의 무슬림들이 목숨을 잃었다. 가장 잔인한 행위는 무슬림 여성과 어린이들에 대한 폭력이었다. 폭도들은 여성들을 강간한 다음 그들의 목구멍에 기름을 붓고 불을 붙였다. 더욱 끔찍한 것은 경찰들이 옆에 서서 이런 잔인한 행위들을 수수방관했다는 것이다. 심지어 일부 경찰들은 달아나는 무슬림들을 잡아서 폭도들의 손에 넘겼다는 혐의까지 받고 있다. -122쪽

2006년에는 인도 정부가 23.5%로 되어 있던 하위 카스트의 대학입학 특례 비율을 49.5%로 확대하려는 과정에서 큰 저항에 부딪히기도 했다. 당시 하위 카스트 입학 할당제를 극렬히 반대했던 세력은 인도 유명대학의 의과 및 공과대학 학생들이었다. 상위 카스트 출신 학생들이 좋은 직장이 보장되는 이들 대학의 기득권을 하루아침에 포기하는 것이 쉽지 않았던 것이다. -146쪽

마라톤 경주에서 상위 카스트나 좋은 가문 출신의 자녀들이 이미 반환점에 서 있다고 한다면, 소외계층 자녀들은 출발선에서부터 시작해야 하는 불공정 게임과 같은 이치이다. 인도 교육 불공정 게임의 근저에는 대부분의 부와 사회적 지위를 소수 상류계급이 독점하고, 이를 대를 이어 세습하려는 이기심이 도사리고 있다. 물론 현재 상황은 과거에 비해 어느 정도 개선되었다고는 하지만 아직 근본적인 대책이나 치유책이 없는 상황이다. -166쪽

인도는 물론 한국에서도 교육의 균등한 기회 보장을 위해 국가의 책임, 사회의 책임이 어느 때보다도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교육이라는 중차대한 문제는 국가와 사회라는 큰 틀에서 접근해야 하기 때문이다. 최근 교육과 대학 발전을 이유로 고등학교까지 서열을 매겨 학생을 선발하겠다는 일부 한국 대학들의 태도는 인도의 비인간적인 교육 양극화를 연상시켜 씁쓸한 심경을 금할 수 없다. -16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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