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과 속도는 다양성과 아름다움에 대한 추구를 거부하며, 가부장제는 모든 딸들의 미래에 일찌감치 한 뭉텅이의 소금을 뿌린다. 자본의 집중과 소비를 향해서만 거대한 관용이 10차선 도로를 내주는 이 사회에서, 한 뼘의 자유를 차지하려고 투사가 되는 것보다 ‘고객님’으로서의 존재로 충실히 지내는 것은 쉽고 편한 선택일 수밖에 없다. -18쪽
개인주의를 소중한 사회적 미덕으로 여기는 나라에서 이만큼 정치적 진보를 이룬 것은 그 바탕에 연대의 미덕이 신념처럼 확고하게 뿌리박혀 있기 때문이다. 똘레랑스가 프랑스 사회를 유연하게 만드는 여러 개의 벽돌이라면, 연대는 그 벽돌 사이를 메우는 유연하게 메워 주는 풀이다. 이 풀은 원한다면 언제고 떼어내고 다시 결합할 수 있어 아나키스트적 운동을 가능하게 만들어준다. -67-68쪽
내가 투자할 시간, 투자할 돈, 그렇게 해서 딴 학위가 나에게 확실한 미래를 보장할 것인가를 염두에 두고 더 분명하고 안전한 선택을 매순간 계산해야 한다면, 한 순간도 인생은 나 자신의 것이 될 수 없다. 불만은 터뜨리고 욕망은 충족시키면서 사는 것이 건강한 삶이다. 그러나 내가 충족시키고자 하는 욕망이 진정한 나의 욕망인지 아니면 모두가 욕망해야 하는 것이라고 정해진 일반적 욕망의 리스트일 뿐인지를 가늠해 보는 과정이 필요하다. -100쪽
선과 악, 미와 추에 대한 사회적 기호를 아직 익히기 전의 인간들은 얼마나 신선한 눈으로 세상을 창조했던가. 인간이 창조하는 존재라는 건 분명하다. 그런데 그런 인간이 마술 정도를 할 수 없다든 건 말이 되지 않는다. (중략) 마술이 존재하는 세상에 살고 싶다. 여전히, 그러나 인간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사물을 소비와 재화 창출의 잠재적 대상으로 전락시키며 살아가는 순간 마술은 멎는다. 우리가 더 이상 우주와 교류할 수 없게 되는 것은 매우 당연한 이치다. 나는 칼리에게 십대 시절의 나를 분개하게 만든 세상의 거짓말이 사실은 거짓이 아니라고 말해줄 것이다. "넌 이미 마술사야. 네가 그걸 원한다면 언제라도 마술사야." -109쪽
세상의 모든 남자들에게 그들의 잠자던 영혼에 날개를 달아줄 여신이 있을 터이다. 그녀를 만나거든 그 앞에 겸허히 엎드려 사랑과 존경을 바치시길. 그 때 인류는 비로소 평화를 얻게 될 것이다. -140쪽
세상의 모든 자장가는 평화로우면서도 구슬프다. 전쟁과 실업 그리고 기아라는 세계 공통의 비극이 인류를 뒤덮는 동안, 그녀들은 품에 꼭 끌어안은 아이의 달콤한 살 냄새를 맡으며 고달픈 삶을 위로받았을 것이다. 애절할 수밖에 없는 곡조는 평화와 소박한 행복을 비는 그녀들의 주문 같았다. -156쪽
음악은 사람이 모태에서 접할 수 있는 최초의 예술이다. 언어를 매개로 하지도 않고 가시적이지도 않은 매우 추상적인 예술이지만, 그 추상성 때문에 어떠한 중계나 왜곡도 없이 우리의 영혼 속으로 직접 침투하는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아이들은 엄마 뱃속에서부터 소리로 세상을 배우고 유추한다. -157-158쪽
움직이는 기업으로 불리는 몇몇 대형 스타 가수들만이 이 사회의 모든 환호와 찬사를 독차지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비’라는 가수를 수천 번 보았을지언정 그가 부른 노래 하나를 알지 못한다. 그들은 사막 속에서 검은 물을 콸콸 쏟아내는 몇 개의 유전일 뿐. 한국 문화의 수출은 대형 기획사들의 추진력으로 키워진 아이돌스타에게만 기대고 있다. 한류는 전적으로 그들의 몫이다. 정부가 나서야 할 일은 문화교류의 폭을 확장하고 질적 수준을 고양시키는 것이지만 몇몇 기획사들의 움직임에 훈수를 두는 것을 자신의 역할로 규정짓고 만족스러워 한다. 정부가 자연스런 업적처럼 내세우는 한류가 어쩐지 부끄럽게 느껴지는 이유다. -159쪽
기껏해야 자본의 제단에 머리나 조아리는 존재들이 여성들 앞에서는 기어이 군림하려 드는 현상... 됐다. 이후 나는 누군에게서든 눈꼽 만큼이라도 가부장적 징후를 발견하면 그것을 낱낱이 지적하고 과감하게 잘못을 응징하는 태도를 보였다. 이런 결심을 하게 된 건 나뿐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외환위기 이후 급증한 이혼율은 더 이상 자신의 삶을 참지만 않겠다고 결심한 여성들이 주도한 현상이었다. 자신의 몫을 두 손으로 움켜쥐겠다고 결심한 것이다. 정치적 의미에서의 혁명은 여전히 일어나주지 않았지만, 여성들의 머리와 가슴 속에서 혁명은 찬란하게 진행 중이었다. -169쪽
행복은 마음에만 있는 게 아니라 사회 속에서 쟁취하고 학습하는 것이며 또 전이되는 것이다. 우리는 어린아이 속옷에, 팬시용품에 값싸게 수놓아진 장식으로서 Happy가 지천인 사회에 산다. 하지만 불합리한 문제들이 있을 때마다 "원래 그렇다."는 말 밖에 들려주지 않는 이 사회는 얼마나 행복할까. 결코 납득할 수 없는 편협한 정상이 활개를 치는 한, 이 사회의 행복은 버석거리는 포장지로만 존재하는 공허한 사기일 뿐이다. -198-199쪽
공부를 잘하면 선택할 수 있는 학과와 대학의 선택의 폭이 넓어져야 하지만 이 부분에서도 한국 사회는 예외의 답을 제공한다. 한국 사회에서 공부를 잘 한다는 의미는 조변석개하는 입시제도에 발 빠르게 대응할 만큼 기동력을 갖춘 학원 강사들에게서 정답 고르는 요령을 잘 배웠다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니 진정한 지성과 명민함이나 세상을 통찰하는 독자적 시각을 갖추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다. -211쪽
대의를 위해 자아를 희생하거나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본질적인 지향과 욕망에 충실한 선택으로서의 좌파, 자유롭고 당당한 생활 좌파가 많을수록 미래가 밝다는 게 내 생각이다. 두 주먹을 불끈 쥐고 투쟁의 깃발을 높이 올리는 모습만이 좌파의 전부는 아니며, 그런 자세가 좌파의 승리를 앞당긴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213쪽
사랑은 단지 개인적인 감정을 소모하는 경험이 아니라 우리 인생을 숨쉬게 만드는 경험이다. 동시에 사랑에는 치명적인 상처를 줄 위험도 도사리고 있다. 나의 주장은 이러한 것들을 객관화해보자는 것이다. 그래서 그것을 적극적으로 전면적으로 삶 속에 친화시켜 사랑의 결핍이나 과잉을 겪지 않고, 사랑의 배달사고가 일으키는 피해에서 좀 더 자유로워지자는 것이다. 사람들은 소설에서처럼 사랑하지 않는다. 이성과 논리로는 통제 불가능한 영역이어서 언제인지 알 수 없지만 예정된 운명의 길목에서 기적처럼 만나서 꽃피거나 가차 없이 저버리는 게 아니다. 물론 물화된 영역에 있지도 않다. 재력 있는 남자와 미모와 젊음을 가진 여자가 만나 서로의 가치를 기계적으로 교환하는 것도 사랑이 아니다. 그러니 사랑학을 통해 이러한 사실들에 대해 담담하게 통찰하자고 제안하는 것이다. -243-244쪽
자유로운 두 개인이 서로 감정을 구체화하고 교류하면서 연애의 기쁨을 누리고, 영혼의 날개가 천상을 휘젓는 사랑으로 나 있는 통로는 비좁다. 연애는 결혼이라는 요란스런 사회적 통과의례로 가기 위한 청춘남녀의 요식행위가 돼 버렸고, 심지어 너저분한 상행위로 전락하는 경우도 숱하다. 이런 상황에서는 "행복하게 결혼해서 잘 사는" 걸로 끝나지 않는 모든 사랑은 불장난이며 실패로 규정된다. -245쪽
<목수정이 연애상대에게 기대하는 사항들> 예술적인 감수성은 있는 사람인가? 삶에 대한 열정은 충만한가? 지적인 욕망과 그가 쌓아온 지식의 창고는 어느 정도인가? 어린시절 부모와 충분히 애정을 교감했는가? 정치적 지향은 어떤가? 사고와 행동은 얼마나 일치하는가? 머릿속은 얼마나 자유로운가? 미적 감각이나 옷 입는 취향은 만족스러운가? 볼 때마다 탄성을 자아내는 외모인가? ‘멋있다’는 형용사에 가까운 사람인가? -254쪽
결혼의 입구에서 닫히고 만 그 무책임한 동화들이 수세기 동안 퍼다나른 환상을 품고 결혼의 문으로 성큼 들어간 커플들은 그 이후 펼쳐지는 전쟁 같은 일상에 무방비로 노출된다. 그리고 어째서 달콤하고 아름다운 동화로 이어지지 않는지 고민하며 결혼의 환멸을 개인의 몫으로 끌어안기 시작한다. 그 다음 순서는 사랑의 감정을 유지하려는 꿈을 접는 것이다. -258쪽
까페에서 나란히 손을 잡고 앉아 있되, 시선은 밖으로 열어두는 방식에서처럼, 적절한 통풍과 환기를 허락하여 서로의 삶에 독립된 영역과 자유를 적절히 보장하는 방식은 그 관계를 더 건강하게 유지하게 만든다. 사실 사랑만 하고 결혼은 하지 않는 그런 무책임한 방법이야말로 가장 이상적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유림 할아버지들한테 맞아죽을 이 생각은 세상의 모든 모계사회가 지속해 온 방식이고 인간을 제외한 대부분의 동물들이 생식하고 공존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260쪽
우파는 오른쪽으로 가기 보다는 주어진 길을 가는 사람들이며, 좌파는 현상을 까뒤집어보고 다른 각도에서 삐딱하게 바라보는 사람들이다. 철학을 하는 자세와 예술을 하는 자세는 같다. 우파는 사람들을 얌전히 성냥갑 안에 넣어놓고 통제하려 들며, 좌파는 어떻게 해서든 그 통제의 틀을 뛰쳐나오려 한다. 평등에 초점을 맞추던 좌파의 태생적 관점은 점점 자유 쪽으로 그 무게중심을 옮겨왔다. 그러나 자본의 무한한 자유를 허락하는 ‘신자유주의’의 도래로 말미암아 이는 부언이 필요한 난감한 설명이 되어버렸다. 최근 들어 깨달은 좌와 우에 대한 가장 명확한 정의는 전자는 생명을 지향하고, 후자는 죽음을 지향한다는 것이다. 정신의 무한한 자유를 추구하고 모든 살아있는 것들과 조화로운 상생을 꿈꾸며 깨어있는 존재가 좌파라면, 텔레비전 앞에서 일생의 대부분을 보내면서 일찌감치 자신의 영혼을 무덤 속에 파묻고 보수언론의 선동을 묵묵히 받아들이며 개발이라는 미명 하에 생태를 파괴하는 것이 발전이라고 믿는 쪽이 우파다. 우파가 가장 싫어하는 좌파의 부류가 생태주의자라는 사실이 어떻게 우연일까. -289-290쪽
사랑에 눈멀 때, 우리는 그 사람의 한 가지를 사랑하면서 다른 것들을 기꺼이 윤색하고 거기에 도취되는 실수를 범한다. 그리고 서서히 사랑의 환각에서 벗어나 아름답지만은 않은 현실을 직면할 때, 환멸과 상처를 내 손으로 보듬어 새 살로 만드는 것이 그 사랑을 지키는 유일한 방법이며, 내 최초의 선택을 존중하는 것이 스스로 성숙해지는 가장 좋은 길이다. -294쪽
다른 세상에 대한 실험은 우리 내부에서 시작하는 게 마땅하다. 실험하지 않고 실천하지 않으면서 권력을 잡아 하루아침에 세상을 바꾸겠다는 건 거짓말이다. 나부터도 그 거짓말은 믿을 수 없다. 실천하지 않는 만큼 우리의 미래는 더 멀리로 꽁무니를 뺀다. -297쪽
한 우물을 파서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되고, 그리하여 인류의 발전을 도모하는 동시에 밥벌이를 해야 한다는 전 인류가 주입시켜온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다. 살아있는 동안 나의 욕구와 관심은 나와 함께 진화할 것이며, 열심히 그 새로운 호기심과 열정에 화답하며 살고 싶다. 그것이 나의 진실이다. 그래봤자 1세기도 안 되는 짧은 시간이 내게 주어져 있을 뿐이고 나의 관심사는 ‘문화’라는 거대한 대지 속에서 이리 저리 출렁거릴 뿐이다. -3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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