뼛속까지 자유롭고 치맛속까지 정치적인 - 프랑스 남자와 결혼하지 않고 살아가기
목수정 글, 희완 트호뫼흐 사진 / 레디앙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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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과 속도는 다양성과 아름다움에 대한 추구를 거부하며, 가부장제는 모든 딸들의 미래에 일찌감치 한 뭉텅이의 소금을 뿌린다. 자본의 집중과 소비를 향해서만 거대한 관용이 10차선 도로를 내주는 이 사회에서, 한 뼘의 자유를 차지하려고 투사가 되는 것보다 ‘고객님’으로서의 존재로 충실히 지내는 것은 쉽고 편한 선택일 수밖에 없다. -18쪽

개인주의를 소중한 사회적 미덕으로 여기는 나라에서 이만큼 정치적 진보를 이룬 것은 그 바탕에 연대의 미덕이 신념처럼 확고하게 뿌리박혀 있기 때문이다. 똘레랑스가 프랑스 사회를 유연하게 만드는 여러 개의 벽돌이라면, 연대는 그 벽돌 사이를 메우는 유연하게 메워 주는 풀이다. 이 풀은 원한다면 언제고 떼어내고 다시 결합할 수 있어 아나키스트적 운동을 가능하게 만들어준다. -67-68쪽

내가 투자할 시간, 투자할 돈, 그렇게 해서 딴 학위가 나에게 확실한 미래를 보장할 것인가를 염두에 두고 더 분명하고 안전한 선택을 매순간 계산해야 한다면, 한 순간도 인생은 나 자신의 것이 될 수 없다. 불만은 터뜨리고 욕망은 충족시키면서 사는 것이 건강한 삶이다. 그러나 내가 충족시키고자 하는 욕망이 진정한 나의 욕망인지 아니면 모두가 욕망해야 하는 것이라고 정해진 일반적 욕망의 리스트일 뿐인지를 가늠해 보는 과정이 필요하다. -100쪽

선과 악, 미와 추에 대한 사회적 기호를 아직 익히기 전의 인간들은 얼마나 신선한 눈으로 세상을 창조했던가. 인간이 창조하는 존재라는 건 분명하다. 그런데 그런 인간이 마술 정도를 할 수 없다든 건 말이 되지 않는다. (중략)
마술이 존재하는 세상에 살고 싶다. 여전히, 그러나 인간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사물을 소비와 재화 창출의 잠재적 대상으로 전락시키며 살아가는 순간 마술은 멎는다. 우리가 더 이상 우주와 교류할 수 없게 되는 것은 매우 당연한 이치다. 나는 칼리에게 십대 시절의 나를 분개하게 만든 세상의 거짓말이 사실은 거짓이 아니라고 말해줄 것이다.
"넌 이미 마술사야. 네가 그걸 원한다면 언제라도 마술사야." -109쪽

세상의 모든 남자들에게 그들의 잠자던 영혼에 날개를 달아줄 여신이 있을 터이다. 그녀를 만나거든 그 앞에 겸허히 엎드려 사랑과 존경을 바치시길. 그 때 인류는 비로소 평화를 얻게 될 것이다. -140쪽

세상의 모든 자장가는 평화로우면서도 구슬프다.
전쟁과 실업 그리고 기아라는 세계 공통의 비극이 인류를 뒤덮는 동안,
그녀들은 품에 꼭 끌어안은 아이의 달콤한 살 냄새를 맡으며
고달픈 삶을 위로받았을 것이다.
애절할 수밖에 없는 곡조는 평화와 소박한 행복을 비는 그녀들의 주문 같았다. -156쪽

음악은 사람이 모태에서 접할 수 있는 최초의 예술이다. 언어를 매개로 하지도 않고 가시적이지도 않은 매우 추상적인 예술이지만, 그 추상성 때문에 어떠한 중계나 왜곡도 없이 우리의 영혼 속으로 직접 침투하는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아이들은 엄마 뱃속에서부터 소리로 세상을 배우고 유추한다. -157-158쪽

움직이는 기업으로 불리는 몇몇 대형 스타 가수들만이 이 사회의 모든 환호와 찬사를 독차지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비’라는 가수를 수천 번 보았을지언정 그가 부른 노래 하나를 알지 못한다. 그들은 사막 속에서 검은 물을 콸콸 쏟아내는 몇 개의 유전일 뿐. 한국 문화의 수출은 대형 기획사들의 추진력으로 키워진 아이돌스타에게만 기대고 있다. 한류는 전적으로 그들의 몫이다. 정부가 나서야 할 일은 문화교류의 폭을 확장하고 질적 수준을 고양시키는 것이지만 몇몇 기획사들의 움직임에 훈수를 두는 것을 자신의 역할로 규정짓고 만족스러워 한다. 정부가 자연스런 업적처럼 내세우는 한류가 어쩐지 부끄럽게 느껴지는 이유다. -159쪽

기껏해야 자본의 제단에 머리나 조아리는 존재들이 여성들 앞에서는 기어이 군림하려 드는 현상... 됐다. 이후 나는 누군에게서든 눈꼽 만큼이라도 가부장적 징후를 발견하면 그것을 낱낱이 지적하고 과감하게 잘못을 응징하는 태도를 보였다. 이런 결심을 하게 된 건 나뿐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외환위기 이후 급증한 이혼율은 더 이상 자신의 삶을 참지만 않겠다고 결심한 여성들이 주도한 현상이었다. 자신의 몫을 두 손으로 움켜쥐겠다고 결심한 것이다. 정치적 의미에서의 혁명은 여전히 일어나주지 않았지만, 여성들의 머리와 가슴 속에서 혁명은 찬란하게 진행 중이었다. -169쪽

행복은 마음에만 있는 게 아니라 사회 속에서 쟁취하고 학습하는 것이며 또 전이되는 것이다. 우리는 어린아이 속옷에, 팬시용품에 값싸게 수놓아진 장식으로서 Happy가 지천인 사회에 산다. 하지만 불합리한 문제들이 있을 때마다 "원래 그렇다."는 말 밖에 들려주지 않는 이 사회는 얼마나 행복할까. 결코 납득할 수 없는 편협한 정상이 활개를 치는 한, 이 사회의 행복은 버석거리는 포장지로만 존재하는 공허한 사기일 뿐이다. -198-199쪽

공부를 잘하면 선택할 수 있는 학과와 대학의 선택의 폭이 넓어져야 하지만 이 부분에서도 한국 사회는 예외의 답을 제공한다. 한국 사회에서 공부를 잘 한다는 의미는 조변석개하는 입시제도에 발 빠르게 대응할 만큼 기동력을 갖춘 학원 강사들에게서 정답 고르는 요령을 잘 배웠다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니 진정한 지성과 명민함이나 세상을 통찰하는 독자적 시각을 갖추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다. -211쪽

대의를 위해 자아를 희생하거나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본질적인 지향과 욕망에 충실한 선택으로서의 좌파, 자유롭고 당당한 생활 좌파가 많을수록 미래가 밝다는 게 내 생각이다. 두 주먹을 불끈 쥐고 투쟁의 깃발을 높이 올리는 모습만이 좌파의 전부는 아니며, 그런 자세가 좌파의 승리를 앞당긴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213쪽

사랑은 단지 개인적인 감정을 소모하는 경험이 아니라 우리 인생을 숨쉬게 만드는 경험이다. 동시에 사랑에는 치명적인 상처를 줄 위험도 도사리고 있다. 나의 주장은 이러한 것들을 객관화해보자는 것이다. 그래서 그것을 적극적으로 전면적으로 삶 속에 친화시켜 사랑의 결핍이나 과잉을 겪지 않고, 사랑의 배달사고가 일으키는 피해에서 좀 더 자유로워지자는 것이다. 사람들은 소설에서처럼 사랑하지 않는다. 이성과 논리로는 통제 불가능한 영역이어서 언제인지 알 수 없지만 예정된 운명의 길목에서 기적처럼 만나서 꽃피거나 가차 없이 저버리는 게 아니다. 물론 물화된 영역에 있지도 않다. 재력 있는 남자와 미모와 젊음을 가진 여자가 만나 서로의 가치를 기계적으로 교환하는 것도 사랑이 아니다. 그러니 사랑학을 통해 이러한 사실들에 대해 담담하게 통찰하자고 제안하는 것이다. -243-244쪽

자유로운 두 개인이 서로 감정을 구체화하고 교류하면서 연애의 기쁨을 누리고, 영혼의 날개가 천상을 휘젓는 사랑으로 나 있는 통로는 비좁다. 연애는 결혼이라는 요란스런 사회적 통과의례로 가기 위한 청춘남녀의 요식행위가 돼 버렸고, 심지어 너저분한 상행위로 전락하는 경우도 숱하다. 이런 상황에서는 "행복하게 결혼해서 잘 사는" 걸로 끝나지 않는 모든 사랑은 불장난이며 실패로 규정된다. -245쪽

<목수정이 연애상대에게 기대하는 사항들>
예술적인 감수성은 있는 사람인가? 삶에 대한 열정은 충만한가? 지적인 욕망과 그가 쌓아온 지식의 창고는 어느 정도인가? 어린시절 부모와 충분히 애정을 교감했는가? 정치적 지향은 어떤가? 사고와 행동은 얼마나 일치하는가? 머릿속은 얼마나 자유로운가? 미적 감각이나 옷 입는 취향은 만족스러운가? 볼 때마다 탄성을 자아내는 외모인가? ‘멋있다’는 형용사에 가까운 사람인가? -254쪽

결혼의 입구에서 닫히고 만 그 무책임한 동화들이 수세기 동안 퍼다나른 환상을 품고 결혼의 문으로 성큼 들어간 커플들은 그 이후 펼쳐지는 전쟁 같은 일상에 무방비로 노출된다. 그리고 어째서 달콤하고 아름다운 동화로 이어지지 않는지 고민하며 결혼의 환멸을 개인의 몫으로 끌어안기 시작한다. 그 다음 순서는 사랑의 감정을 유지하려는 꿈을 접는 것이다. -258쪽

까페에서 나란히 손을 잡고 앉아 있되, 시선은 밖으로 열어두는 방식에서처럼, 적절한 통풍과 환기를 허락하여 서로의 삶에 독립된 영역과 자유를 적절히 보장하는 방식은 그 관계를 더 건강하게 유지하게 만든다. 사실 사랑만 하고 결혼은 하지 않는 그런 무책임한 방법이야말로 가장 이상적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유림 할아버지들한테 맞아죽을 이 생각은 세상의 모든 모계사회가 지속해 온 방식이고 인간을 제외한 대부분의 동물들이 생식하고 공존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260쪽

우파는 오른쪽으로 가기 보다는 주어진 길을 가는 사람들이며, 좌파는 현상을 까뒤집어보고 다른 각도에서 삐딱하게 바라보는 사람들이다. 철학을 하는 자세와 예술을 하는 자세는 같다. 우파는 사람들을 얌전히 성냥갑 안에 넣어놓고 통제하려 들며, 좌파는 어떻게 해서든 그 통제의 틀을 뛰쳐나오려 한다. 평등에 초점을 맞추던 좌파의 태생적 관점은 점점 자유 쪽으로 그 무게중심을 옮겨왔다. 그러나 자본의 무한한 자유를 허락하는 ‘신자유주의’의 도래로 말미암아 이는 부언이 필요한 난감한 설명이 되어버렸다.
최근 들어 깨달은 좌와 우에 대한 가장 명확한 정의는 전자는 생명을 지향하고, 후자는 죽음을 지향한다는 것이다. 정신의 무한한 자유를 추구하고 모든 살아있는 것들과 조화로운 상생을 꿈꾸며 깨어있는 존재가 좌파라면, 텔레비전 앞에서 일생의 대부분을 보내면서 일찌감치 자신의 영혼을 무덤 속에 파묻고 보수언론의 선동을 묵묵히 받아들이며 개발이라는 미명 하에 생태를 파괴하는 것이 발전이라고 믿는 쪽이 우파다. 우파가 가장 싫어하는 좌파의 부류가 생태주의자라는 사실이 어떻게 우연일까. -289-290쪽

사랑에 눈멀 때, 우리는 그 사람의 한 가지를 사랑하면서 다른 것들을 기꺼이 윤색하고 거기에 도취되는 실수를 범한다. 그리고 서서히 사랑의 환각에서 벗어나 아름답지만은 않은 현실을 직면할 때, 환멸과 상처를 내 손으로 보듬어 새 살로 만드는 것이 그 사랑을 지키는 유일한 방법이며, 내 최초의 선택을 존중하는 것이 스스로 성숙해지는 가장 좋은 길이다. -294쪽

다른 세상에 대한 실험은 우리 내부에서 시작하는 게 마땅하다. 실험하지 않고 실천하지 않으면서 권력을 잡아 하루아침에 세상을 바꾸겠다는 건 거짓말이다. 나부터도 그 거짓말은 믿을 수 없다. 실천하지 않는 만큼 우리의 미래는 더 멀리로 꽁무니를 뺀다. -297쪽

한 우물을 파서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되고, 그리하여 인류의 발전을 도모하는 동시에 밥벌이를 해야 한다는 전 인류가 주입시켜온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다. 살아있는 동안 나의 욕구와 관심은 나와 함께 진화할 것이며, 열심히 그 새로운 호기심과 열정에 화답하며 살고 싶다. 그것이 나의 진실이다. 그래봤자 1세기도 안 되는 짧은 시간이 내게 주어져 있을 뿐이고 나의 관심사는 ‘문화’라는 거대한 대지 속에서 이리 저리 출렁거릴 뿐이다. -3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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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01 22: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1-01 22: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1-01 22: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1-01 22: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1-01 22: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1-01 22: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1-02 09: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1-02 10: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1-02 11: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새초롬너구리 2009-01-01 2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국여자말고 이제 프랑스남자로 바꿔보신 거예요?

마늘빵 2009-01-01 23:07   좋아요 0 | URL
^^ 아녀. 저는 남자 말고 여자.
 
맛살라 인디아 - 현직 외교관의 생생한 인도 보고서
김승호 지음 / 모시는사람들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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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5월 인도인민당이 정권을 잡은 후) 인도 역사 교육에도 큰 변화가 있었다. 기원전 2천년 인도 드라비다족을 정복한 아리안족들이 사실은 인도인들이었으며, 이들이 인도로부터 세계의 다른 지역으로 이주해 갔다는 쇼비니즘적인 학설을 제기한 것이다. 나아가 하라파 시대와 그 후의 베다 시대는 지금까지 알려진 것보다도 수천 년 전에 존재한 것으로, 인도가 인류 문명의 유일한 요람이며 세계의 다른 어떤 분명보다도 훨씬 앞선다고 주장했다. 고고학의 기초를 허무는 이 입증되지 않은 이론은 교과서로 제작되어 인도 전역의 학교에 배포되기도 했다. -121쪽

구자라트 저역에서 힌두 급진주의자들이 주동이 되어 전개한 무슬림에 대한 복수와 학살은 3개월간이나 지속되었고, 이 와중에 2천여 명의 무슬림들이 목숨을 잃었다. 가장 잔인한 행위는 무슬림 여성과 어린이들에 대한 폭력이었다. 폭도들은 여성들을 강간한 다음 그들의 목구멍에 기름을 붓고 불을 붙였다. 더욱 끔찍한 것은 경찰들이 옆에 서서 이런 잔인한 행위들을 수수방관했다는 것이다. 심지어 일부 경찰들은 달아나는 무슬림들을 잡아서 폭도들의 손에 넘겼다는 혐의까지 받고 있다. -122쪽

2006년에는 인도 정부가 23.5%로 되어 있던 하위 카스트의 대학입학 특례 비율을 49.5%로 확대하려는 과정에서 큰 저항에 부딪히기도 했다. 당시 하위 카스트 입학 할당제를 극렬히 반대했던 세력은 인도 유명대학의 의과 및 공과대학 학생들이었다. 상위 카스트 출신 학생들이 좋은 직장이 보장되는 이들 대학의 기득권을 하루아침에 포기하는 것이 쉽지 않았던 것이다. -146쪽

마라톤 경주에서 상위 카스트나 좋은 가문 출신의 자녀들이 이미 반환점에 서 있다고 한다면, 소외계층 자녀들은 출발선에서부터 시작해야 하는 불공정 게임과 같은 이치이다. 인도 교육 불공정 게임의 근저에는 대부분의 부와 사회적 지위를 소수 상류계급이 독점하고, 이를 대를 이어 세습하려는 이기심이 도사리고 있다. 물론 현재 상황은 과거에 비해 어느 정도 개선되었다고는 하지만 아직 근본적인 대책이나 치유책이 없는 상황이다. -166쪽

인도는 물론 한국에서도 교육의 균등한 기회 보장을 위해 국가의 책임, 사회의 책임이 어느 때보다도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교육이라는 중차대한 문제는 국가와 사회라는 큰 틀에서 접근해야 하기 때문이다. 최근 교육과 대학 발전을 이유로 고등학교까지 서열을 매겨 학생을 선발하겠다는 일부 한국 대학들의 태도는 인도의 비인간적인 교육 양극화를 연상시켜 씁쓸한 심경을 금할 수 없다. -16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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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하는 글쓰기 - 발설하라, 꿈틀대는 내면을, 가감 없이
박미라 지음 / 한겨레출판 / 2008년 11월
절판


열 수 있도록 되어 있지만 열 수 없는 것, 그것은 마치 인간의 입과도 같다. 인간은 말할 수 있는 입을 가지고 있지만 말해서는 안 되는 것들의 긴 목록도 가지고 있다. 미움, 시기, 질투, 경쟁심, 원망 같은 것들을 말해서는 안 된다. 고통, 절망, 슬픔, 분노, 수치감 등도 말할 수 없다. 때로는 외로움이나 우울감 등도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기 때문에 거부당한다. 문화에 따라서는 자기를 설명하고 표현하는 것도 문제가 되며, 심지어 피해자임을 폭로하는 것도 제지당한다. 어쨌든 우리는 어둡고 부정적인 것들을 말할 때 불편함을 느껴야 한다. -26쪽

훌륭한 상담자라면 상대의 입을 열게 하려고 애쓰기보다는 그가 침묵으로써 보여주는 자기표현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 말하기의 방식이 다양하듯이 침묵의 모습도 다양하다. 그의 침묵은 분노가 원인일 수도 있고, 관심을 받고 싶어서일 수도 있으며, 발설을 열망하지만 아직 용기가 나지 않기 때문에 지속되는 것일 수도 있다. 우리는 그런 상대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볼 필요가 있고, 또 침묵하는 당사자도 자신의 침묵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알아줘야 한다. 왜 나는 침묵하는가, 스스로에게 물으면서 말이다.
물론 그보다 더 기본적인 과정이 있다. 발설의 주인공이 보여주는 태도가 무엇을 말하는지 분석하기 전에 그런 모습 자체를 인정해주는 일이다. 상담자가 침묵이 발설만큼이나 자연스러운 과정임을 인정하면서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는 태도를 보일 때 내담자는 치유를 경험한다. -36-37쪽

그러나 비판은 정확한 것이든 그렇지 않든 자칫 상대의 생명력과 창조성을 짓밟는 행위가 될 수 있다. 상대가 그 비판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을 때는 두말할 것도 없다.
그러니 칭찬이 우선이다. 좋은 점과 강점과 미덕을 먼저 칭찬한 뒤에 서로에 대한 신뢰감이 쌓였다면 조금 진지한 언어로 깊이 있는 얘기를 나눌 수도 있지만 그때도 반드시 혹독해질 필요는 없다. 사실 칭찬도 습관이 된다. 자기 자신에게도, 타인에게도 칭찬을 해주기 시작하면 칭찬하고 싶은 부분이 점점 더 많이 보인다. 칭찬을 받고 자신감을 얻은 사람이 마음의 여유를 찾으면 스스로 균형을 잡을 수 있게 되고, 또 자신의 매력을 더 잘 발휘하게 되기도 한다. -82쪽

타인의 말을 어떻게 잘 들어줄 것인가에 대해 얘기하면 어떤 사람들은 막중한 의무감과 부담감에 시달린다. 그동안 남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사느라 지쳤던 이들이 그렇다. 만약 그런 피로감을 느끼고 있다면 남의 이야기를 들어준 만큼 자신의 고민도 털어놓기를 권한다. 소통도 균형의 경제학을 가지고 있다. 남의 고백을 들었다면 내 마음도 어느 정도는 열어놓아야 하며, 지금까지 애써 상대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면 나 역시 그에게 고민을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어느 쪽이든 일방적인 관계는 건강하게 발전하기 어렵다. -88쪽

타인에 대한 공감은 결국 나 자신의 문제와 연결된다. 타인의 고통과 문제를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결국 내가 가지고 있던 고정관념이나 틀에 박힌 사고방식, 좁은 시야에서 벗어나야 한다. 상대의 한계조차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줘야 하고, 지나친 욕심을 부려서도 안 된다. 어찌 보면 타인을 공감하기 위한 노력은 나 자신을 해방시키고 자유롭게 만드는 훈련이기도 하다. 아니, 분명히 그렇다. 우리는 자신이 해방되기 위해서 상대를 이해하고 상대의 감정에 공감하는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공감하는 과정에서 힘든 것은 상대의 고통스러운 이야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내 자신의 틀을 깨느라고 힘든 것이다. 만약 자신으로부터 해방되고 싶거든, 영혼까지 자유로운 삶을 원하거든 타인의 이야기에 완전히 몰입해보라. 그러면서도 쉼 없이 공감하고 있는 이 순간이 상대가 아닌 나 자신을 위한 순간임을 자각하라. -98-99쪽

인터뷰 역시 일종의 대화기법 글쓰기이다. 다만 질문하는 이와 대답하는 이를 좀더 명확하게 구분해서, 대답하는 이에게 더 많은 지면을 할애한다. 대답하는 이가 상대에게 압도당하지 않고 표현할 기회를 충분히 가질 수 있게 하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대답하는 이가 질문하는 사람에게서 충분한 사랑과 존중을 받고 있다는 걸 느끼게 하기 위해서이다. 인터뷰 대상도 아주 다양하다. 그 무엇을 대상으로도 인터뷰할 수 있으며, 글을 쓰기 시작하면 창조성의 문이 열리면서 무한한 얘기들이 쏟아져 나온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188쪽

가치란 인간이 본래부터 추구하던 어떤 지향성이나 삶의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한 개인의 잠재능력을 개발시킬 때, 그 사람이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도록 돕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결국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가치와 일치하는 일을 할 때 가장 뛰어난 능력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210쪽

사실 글의 탐식성은 무섭다. 어떤 영역이든 손을 뻗어 활자화시키고야 마는 대단한 장악력을 가지고 있다. 글로 그림과 영화와 자연풍경을 묘사하고, 감정의 내밀한 부분을 그려내며, 소리와 촉감까지 표현하려고 한다. 마치 우리가 한 편의 영화를 보듯이, 글 속의 등장인물을 만나 직접 접촉이라도 하듯이 글을 통해 생생한 가상체험을 할 수 있는 것이다. -248쪽

가슴의 울림이란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위에서 말한 눈물을 비롯해 온몸을 휘도는 열감, 근육경련, 통증이나 목이 메는 것과 같은 신체적 증상도 있지만 가슴이 쿵쾅거리는 느낌일 수도 있고, 분노 때문에 터질 것 같은 상태일 수도 있다. 가슴이 싸하게 아려오거나 서늘해지거나 따뜻해지는 느낌, 환희에 벅차오를 수도 있고, 쥐어짜는 느낌일 수도 있다. 그 어떤 것이든 반갑게 맞이하고 충분히 느끼면서 글을 써야 한다. 글을 쓰다가 가슴의 울림이 느껴지거든 자신의 느낌을 종이의 여백에 기록해도 좋다. 글을 다 써야 한다는 목적의식 때문에 서두르지 말고 이 아픔이 어디서 오는지 가만히 들여다볼 수 있다면 더욱 좋다. -25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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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은 식민지다! - 지방자치.지방문화.지방언론의 정치학
강준만 지음 / 개마고원 / 2008년 10월
절판


지역의 우수한 인재를 서울로 보내는 걸 지역발전 전략으로 삼는 ‘내부식민지’ 근성만큼은 꼭 청산해야 한다. 유능한 인재일수록 지역에 붙잡아두는 걸 지역발전 전략의 제1 원칙으로 삼지 않는 한 중앙의 오만한 지방 폄하는 계속될 것이며, 지역분권화는 신기루가 될 수밖에 없다. 지방 내부 개혁과 인재 육성을 지역분권의 초석으로 삼아야 한다. -8쪽

"탈식민시대에 식민주의란 단순히 정치적, 경제적인 종속을 뜻하는 것만이 아니며, 영토적 경계에 기초한 것도 아니다. 식민주의는 모든 국가 내부에서도 계층, 민족, 종족, 성, 지역적 차별로 인해 계속해서 만들어져 왔고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즉 이제 식민주의는 정치적, 경제적 지배와 종속뿐만 아니라, 문화적 지배와 종속으로까지 그 의미가 확대된 것이다."(윤택림)-55쪽

SKY의 정원을 대폭 줄여나가자. 이건 대학총장 혼자 힘으로는 안된다. 사회적 차원의 문제의식과 합의와 지원이 필요하다. SKY의 정원을 대폭 줄이면 그만큼 SKY에 들어가기 위한 경쟁이 치열해짐으로써 기존 ‘입시지옥'을 더 악화할 게 아닌가? 이런 반론이 있을 수 있다. 단기적으론, 또 어떤 사람들에겐 영원히 그럴 수도 있겠다. 그건 그냥 내버려두자. 엘리트 집단 구성의 다양성이 우리 모두에게 이롭다는 원칙에 충실하기로 하자.
SKY의 정원 대폭 축소로는 성에 차지 않는 사람들도 ‘실천 가능성’에 주목하는 게 좋겠다. SKY가 결사반대하는 한 그 어떤 학벌주의 완화책도 실현하기 어렵다는 현실감각을 갖기로 하자. 큰 욕심 부리지 말고 우선 한 가지 원칙만 재확인하자. 인해전술로 경쟁력을 확보하는 엘리트의 시대는 이젠 끝내야 한다는 것이다. SKY는 소수정예주의로 가면서 사회적 존경을 누려야 한다. -1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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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za 2008-12-22 19: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에 살고 책에 죽고 싶은데 올핸 좀 바쁘다는 핑계로 회피만 했네요.. 다시 이렇게 댓글 인사를 나누니깐 참 좋네요~~~

마늘빵 2008-12-22 23:15   좋아요 0 | URL
바쁘신거 같더라고요. :) 이제 수면 위로 다시 나오신건가요?
 
한국인은 무엇으로 사는가 - 위기의 시대를 돌파해온 한국인의 역동적 생활철학
탁석산 지음 / 창비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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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다른 방식으로 사유하는 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세계를 고찰하는 방식에 있어서 은밀하고 급작스러우며 세상에 알려져 있지 않은 어떤 단절이 반드시 필요하다."(강준만, <한국 생활문화 사전>)-28쪽

일본의 식민지배가 한국 근대화에 기여했는가에 대해 여전히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러시아 이주민의 성공적인 근대화 사례가 논쟁의 진전에 도움이 되길 바란다. 즉 일본과 관계없이 근대화에 성공한 사례가 있다면, 일본의 식민지배가 근대화에 끼친 영향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나는 일본이 한국의 근대화를 도왔다든가 혹은 일본의 식민지배가 한국 근대화의 거름이 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대중이 일본을 이용해 근대화를 이루었다고 생각한다. 국가는 존재하지 않았지만 한국인은 존재하였고, 일본의 지배조차 이용할 줄 알았다는 것이다. 물론 이때 한국인은 대중을 말한다. -32쪽

실용주의란 어느 시기에는 천해 보이기도 하지만 당대의 가장 절실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것이 가장 유용한가를 찾아내 실천에 옮기는 것이다. -36쪽

한국은 종교, 이데올로기, 전통에서 자유로웠기 때문에 실용주의를 택하게 되었고, 실용주의는 그 시대에 필요한 것들 중 최우선하는 것을 택하는 특성이 있다. 민주주의도 곁에 있었으나 생활에 밀려 있었다. 하지만 대중은 생활을 어느정도 해결한 뒤에는 민주화를 택했다. -39-40쪽

(불교가) 죽은 후의 세계에 대해 답을 하지 않는 것은 현재 눈에 보이는 세계가 전부라는 뜻이 되고 말기 때문이다. 죽은 후의 세계에 대해 알 수 없고 알 필요도 없는 것이라면, 지금 눈으로 보는 세계가 전부라고 믿고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는 없기 때문이다. -59쪽

한국의 불교는 전래 당시부터 이미 말법시대의 특징을 지니고 있었다. 즉 깨달음의 종교에서 이미 믿음의 종교로 바뀐 것이다. 이 점은 미륵반가유상으로 대표되는 불교 유물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미륵은 미래불로서 현재 고통의 구제를 주임무로 한다. 다시 말해서, 스스로 수행을 하여 해탈의 경지에 이르러 저 세계마저 없이 사라져버리는 것을 목표로 삼지 않고, 세상을 구제해줄 미래불에게 모든 것을 의탁하는 종교로 바뀐 것이다. 문제는 해탈이 아니라 현재의 고난을 피하는 것이었다. 이것이 현세주의의 모습이다. -59-60쪽

한국에서 기독교문화는 기본적으로 예수를 거쳐 하느님이 신자의 모든 것을 주관하는 구조로 되어 있다. 즉 불교에서 아미타불을 거쳐 부처님이 모든 것을 주관하는 구조와 기본적으로 동일하다. 기독교 역시 스스로를 수양하거나 선행을 하는 것보다는 예수를 믿는 일이 더 중요하다. 스스로의 힘으로 천국에 갈 수는 없다. 에수를 통하거나 성당을 통하거나 중개자를 통해야 한다. 기본적으로 타력구제 신앙인 것이다. 한국에 기독교가 비교적 짧은 기간에 뿌리를 내리는 데 성공한 이유 중 하나는 불교와 기본적 구조가 다르지 않았기 때문으로 추측된다. 즉 믿는 대상이 부처에서 하느님으로, 아미타불에서 예수로 바뀌는 것뿐이다. -62-63쪽

인생주의는 이 모두가 아닌 인생 자체를 중시한다. 자연이 아니라 인간을, 인간이 만든 제도나 작품이 아닌 인생을 중시하는 것이다. 신을 중심으로 하는 사회는 결코 인간중심 사회가 될 수 없고, 인간중심이 아니라면 인생주의도 생겨날 수 없다. 하지만 인간중심주의라고 해서 인생주의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제도나 인간이 만든 작품에 삶 자체보다 더 큰 가치를 두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한국문화는 자연이나 인간의 제도나 작품이 아닌 인생 자체에 가치를 부여하는 인생주의다. -78쪽

휴머니즘이 신보다 사람이 중심이라는 뜻이라면, 인생주의는 사회적 제도나 법보다는 사람이 더 소중하며 사회적 성취나 성공보다는 삶의 쾌락이 더 귀중하다는 뜻이다. -82-83쪽

일본은 세상을 긍정으로 가득한 것으로 파악하는 성향이 있는데, 이는 엄밀성과 함께 긴장감을 가져다주었다고 생각한다. 참으로 꼼꼼하고 빈틈이 없어 보이지만 정신적 긴장의 지속이라는 댓가를 치른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한국은 인생은 원래 허무한 것이라는 믿음이 상존하기 때문에 정신적 긴장감은 훨씬 덜하다. 한잔 먹고 풀고, 한바탕 싸우고 풀고 하는 식이다. 즉 회복력이 빠른 편이다. -109쪽

"프래그머티즘은 '실용주의'로 번역되지만, 사실 그 사상은 우리말의 '실용주의'가 함축하고 있는 뉘앙스보다 훨씬 폭넓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프래그머티즘이란 단순히 '실용성이 최고'라는 발상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실용성뿐만 아니라 실천주의, 결과주의, 실험주의, 개방성, 진취성, 창의성 등으로 표현될 수 있는 성격과 특징을 아울러 갖추고 있다. 프래그머티즘은 단지 현실적으로 부딪히는 문제들의 타개를 위한 단순한 방책이나 기술이 아니라, 세계관과 가치관 및 방법론 등도 아울러 함축하고 있는 하나의 사조이다."(<프래그머티즘>, 김동식)-131-132쪽

진리나 정의도 좋음 앞에서는 순위가 밀리는 상황이므로 서양처럼 진리를 위해 목숨을 버리며 싸우는 일은 한구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진리나 정의보다는 인생의 즐거움이 앞서기 때문에 인생의 즐거움에 좋은 것이라면 그 어떤 것도 받아들일 수 있고 변화할 수 있는 것이다. -139쪽

창조적 실용주의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는데 무슨 개념인지 알기 어렵다. 이명박 정부의 실용주의는 사이비 실용주의라고 할 수 있다. 말만 실용을 내세우고 실제로는 무엇이 실용인지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기껏해야 효율이나 경제성이 높은 것을 실용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이 정도 수준이라면 천박한 실용주의로 불러도 되겠다. -149쪽

실용주의는 이 세상의 즐거움을 추구하는 데 어떤 것도 배제하지 않는다. 따라서 지금은 감각적 즐거움이 인생주의의 내용을 채우고 있지만 상황이 변한다면 사색의 즐거움이 이를 대체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인생주의는 유지되겠지만 그 내용은 변할 것이다. 다시 말해서, 도구의 뛰어난 효능 때문에 의도나 내용이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현세주의도 마찬가지이다. 인생에 좋은 것이 무엇이냐를 판단할 때 이 세상이 아니라 죽음 후의 세상을 진정한 세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더 유용하다는 결론을 내리면 현세주의가 사라질 수도 있다. 물론 허무주의도 예외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지금은 허무주의가 현세주의와 인생주의의 보험 역할을 하고 있지만 현세주의가 무너지면 허무주의도 쇠락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159쪽

인생주의가 추구하는 감각적 즐거움은 학교에서 가르친 것이 아니다. 오히려 학교에서는 이성적인 인간이 되라고 가르쳤다. 누가 주도적으로 퍼뜨린 것은 아니지만 즐거움을 추구하는 인생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많이 배운 사람이나 가난한 사람이나 모두 즐거운 인생을 추구하는 것은 새로운 이데올로기의 전파로 생겨난 것이 아니다. (중략) 다시 말해서, 사람들 속에서 자발적으로 자라나서 오랜 시간 검증을 받았다는 것이다. 학교가 아닌 집에서, 시장거리에서, 사무실에서 인생주의는 온갖 풍상을 겪으면서 정착한 것이다. 저잣거리에서 생겨나 자랐기에 쉽사리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국가가 나선 것도 아니고 고매한 학자들이 주창한 것도 아니며 외국에서 수입되어 일시적으로 유통된 것도 아니기에 그 생명력은 강하다. -173쪽

우리는 문화재와 문화를 혼동한다. 눈부신 문화재를 가진 국가가 훌륭한 문화를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중략) 문화는 삶의 총체적 방식이고 물리적 대상들은 인간 마음속에서 개념들로 표상될 때에만 의미를 지닌다. 문화재는 ‘문화적 가치가 있다고 인정되는 인류 문화활동의 소산’이라고 정의되어 있는데, 보통은 현재의 것을 제외한 옛날 것에서 지정된다. 즉 문화재라는 것 자체가 정의상 현재의 삶의 방식을 포함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설사 포함되어 있다하더라도 문화재는 삶의 총체적 방식이 될 수는 없다. 예를 들어, 첨성대는 문화재이지만 첨성대 주변에서 장사를 하는 사람들의 삶의 방식은 문화이다. -238-239쪽

동일한 것이 문화에 따라 다른 의미를 획득하는 것은 문화가 단절을 통해 진행되기 때문이다. 문화가 연속적으로 단절 없이 계승되고 전달된다면, 다시 말해서 삶의 총체적 방식이 변하지 않는다면 동일한 물리적 대상은 동일한 의미를 확보할 것이다. 하지만 문화는 단절을 통해 진화한다. 따라서 동일한 대상이 상이한 문화 속에서 상이한 의미를 획득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이런 점을 염두에 둔다면 문화재를 연결함으로써 문화를 구성하는 시도는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39-240쪽

문화가 낱낱의 대상이 아니라 총체적인 삶의 방식이라고 한다면, 한국 문화를 논할 때 흔히 등장하는 원전중심주의도 비판되어야 한다. 즉 문화현상을 중요시하지 않고 원전을 가장 우선하는 경향이 있다. 원전이 아니라 원전을 둘러싸고 어떤 현상이 있는가가 삶의 방식 그리고 당대의 문화와 연관이 있는 것이다. 이런 현상을 원전 콤플렉스라고 부를 수 있는데, 누가 원전을 정확히 해석했느냐를 놓고 치열한 논쟁을 벌이곤 한다. 그런데 문화는 심지어 오역에서도 비롯된다. 즉 오역을 했는데 오역이 새로운 영감을 불어넣을 수도 있는 것이다. 문화에는 정오표가 없다. 그때그때의 현상이 바로 문화 자체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문화는 흘러가는 물과 같은 것으로 변화에 변화를 거듭한다. -240-24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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