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사마리아인들 - 장하준의 경제학 파노라마
장하준 지음, 이순희 옮김 / 부키 / 2007년 10월
구판절판


198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형편없는 ‘성장’ 기록은 당혹스러울 정도이다. 성장의 가속화 - 필요하다면 불평등의 증대와 약간의 빈곤 증대라는 대가를 치르고라도 - 는 신자유주의 개혁이 내건 목표였다. 우리는 부를 더 많이 나누어 가지려면 그 전에 먼저 ‘더 많은 부’를 창출해야 하며, 신자유주의야말로 이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이야기를 되풀이해서 들어왔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적 정책의 결과 대부분의 국가에서 소득 불평등은 증대한 반면, 성장은 사실상 크게 둔화되었다. -53쪽

그러나 부자 나라들이 가진 막강한 영향력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그 영향력을 발휘해 자기들이 원하는 대로 세계 경제의 규칙을 만들고자 하는 부자 나라들의 의도이다. 예컨대 선진국들은 특정한 정책의 채택을 대외 원조의 조건으로 삼는다거나, (신자유주의적 정책의 채택과 같은) ‘착한 행동’에 대한 대가로 특혜적인 무역 협정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가난한 나라들이 특정한 정책을 채택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그렇지만 개발도상국들의 정책 형성에 있어 보다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내가 ‘사악한 삼총사’라고 부르는 다자적 기구들, 즉 IMF, 세계은행, WTO이다. 이들 사악한 삼총사는 부자 나라들이 조종하는 꼭두각시 인형은 아니지만, 주로 부자 나라들에 의해 통제되고, 부자 나라들이 원하는 나쁜 사마리아인 같은 정책을 구상하고 실행에 옮긴다. -58쪽

IMF와 세계은행은 상당히 제한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출범하였다. 그렇지만 이 기구들은 자기들로부터 돈을 빌려가는 나라들은 경제 운용에 실패한 나라들이고, 그런 만큼 그것이 경제적 성과에 영향을 미친다면 자신들의 본래 임무를 넘어서는 새로운 영역이라 하더라도 마땅히 개입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자신들의 영역을 확장한 것이다. -59쪽

리카도의 이론은 절대적으로 옳다. 그 이론은 좁은 테두리 안에서는 그렇다. 리카도의 이론은 정확히 말해 각 나라들이 ‘자신의 현재 기술 수준을 그대로 감수하는 한에서는’ 자신이 비교적 잘 하는 것들에 집중하는 것이 좋다는 의미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반박할 수가 없다.
그의 이론이 통하지 않는 것은 어떤 나라가 보다 고도의 기술을 획득해 대부분의 다른 나라가 할 수 있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들을 하고자 할 때, 즉 경제를 발전시키고자 할 때이다. 새로운 기술을 흡수하려면 시간과 경험이 필요하다. 이때 기술적으로 뒤처진 생산자들은 새로운 기술을 배우는 동안 국제적인 경쟁으로부터 보호를 받을 필요가 있다. 하지만 여기에는 희생이 따른다. 보다 우수하고 보다 저렴한 상품을 수입할 수 있는 기회를 포기해야 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러나 이것은 선진적인 산업을 발전시키길 원한다면 마땅히 치러야 할 대가이다. 리카도의 이론은 현재 상태를 그대로 감수하려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지, 현재 상태를 바꾸려고 하는 사람들을 위한 것은 아니다. -80쪽

나쁜 사마리아인인 부자 나라들은 개발도상국들에게 자유 무역을 권장하면서, 자신들이 모두 완전한 무역은 아니더라도 그에 가까운 무역을 하고 있다는 걸 강조한다. 그러나 이것은 마치 여섯 살 먹은 아이를 키우는 부모를 보고, 성공한 어른들은 부모에게 의지하지 않으며, 또한 자립을 했기 때문에 성공한 것이라는 논리를 들이대면서 여섯 살 먹은 그 아이를 일터로 보내라고 충고하는 것과 같다. 성공한 어른들은 성공을 했기 때문에 자립을 한 것이지, 자립을 했기 때문에 성공을 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그들은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실제로 성공한 사람들은 대부분 어린 시절에 부모로부터 경제적, 정서적으로 든든한 지원을 받아온 사람들이다. -119쪽

자유 무역은 단적으로 말해 개발도상국들이 생산성 증대 효과가 낮고, 따라서 생활수준 향상 효과도 낮은 부문들에 집중하도록 만들기 쉬운 정책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유 무역을 통해서 성공을 거두는 나라들은 거의 드물고, 성공한 나라들의 대부분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한결같이 유치산업 보호 정책을 사용해 온 나라들이다. 가난한 나라들은 경제 발전의 취약에서 비롯된 낮은 소득 때문에 자국의 미래를 결정하는 데 있어 구사할 수 있는 자유를 크게 제약 받는다. 따라서 ‘자유’ 무역 정책은 역설적으로 그 정책을 실행에 옮기는 개발도상국들의 ‘자유’를 축소시키는 것이다. -120쪽

신자유주의자들은 옛날의 자유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기존 경제 구조에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들에게 정치 권력을 줌녀 소유권(그리고 기타의 경제적 권리들)의 분배의 측면에서 반드시 현재 상태를 ‘불합리하게’ 수정하는 결과가 발생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다만 신자유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지적 선배들과는 달리 공개적으로 민주주의에 반대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점을 인식하고,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정치 일반에 대한 평판을 깎아내리는 방법을 쓰고 있을 뿐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민주적으로 선출된 대표들에게서 결정권을 빼앗는 자신들의 행동을 정당화하는 것이다. 이들은 이런 방법으로 민주주의 자체를 공개적으로 비판하지 않고도 민주적인 통제의 반경을 축소시키는 성과를 올리고 있다. 그 결과는 개발도상국들에게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개발도상국에 대해서 (세무기구의 정치적 독립성 따위의) 부자 나라들 내에서라면 받아들여질 수 없을 정도의 ‘반 민주주의적’ 행동을 밀어붙일 수 있기 때문이다.-271쪽

"사실이 바뀌면 나는 생각을 바꿉니다. 당신은 어떻게 하십니까?"(존 메이나드 케인즈)-33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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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장 지글러 지음, 유영미 옮김, 우석훈 해제, 주경복 부록 / 갈라파고스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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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아무리 내 가족 이외의 것에 관심이 없는 이들이라 하더라도 세계의 절반, 좀더 엄밀하게는 지구의 남반구 국가들에 가난하고 먹지 못해 죽어가는 이들이 많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다 알지만 역시, 내 문제가 아니고, 내 가족, 나아가 내 친구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별다른 관심을 쏟지 않을 뿐이다. 솔직히, 나도 '부정의'에 유독 민감하게 반응하는 듯 하면서도 관련된 신문기사나 책을 읽거나, 뉴스를 보지 않으면 일상에서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는 범인 중 한명이다. 그러나 누가 물으면 나는 대답할 수 있다. 지구의 남반구, 특히 아프리카는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 죽어가고 있다고.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분명 지구 반대편에는 먹다 남긴 음식이 산더미 같이 쌓여만 가고, 음식쓰레기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를 고민하면서, 왜 지구 반대편에서는 못 먹어서 죽어가는 이들이 그 반대편의 음식쓰레기만큼이나 많을까. 유엔이며, 세계식량기구며, 기타 등등의 온갖 NGO단체들이 활약하고 있는 이 시점에도 왜 아프리카에서는 사람들이 굶어죽어갈까.

  문제를 인식하면 해결책이 나올거라 생각하지만, 이 책을 읽고는 단순한 문제가 아님을 깨달았다. 사람들은 그러면 한쪽의 남는 음식을 다른 한쪽에 가져다주면 되지 않느냐고 간단하게 말하겠지만, 이건 매우 무식한 발언이다. 서양사람들이 즐겨먹는 햄버거나 초코렛, 땅콩쨈 따위는 이들에게 트럭으로 가져다준다고 해도 아무런 도움이 안된다. 하다못해 잠깐 체해서 몸이 안좋은 우리들도 다음 날 바로 밥을 먹기보다는 죽이나 따뜻한 국을 찾는데, 오랫동안 굶어 몸이 허약해진 이들에게 땅콩쨈이나 초콜릿 따위를 먹으라니. 이 책에서 저자는 영국(?)의 한 수송기가 아프리카 어느 나라에 먹을 것을 잔뜩 떨궈주는 장면이 신문에 실렸는데, 당시 언론은 이 장면을 두고 "OO에도 구호의 손길이!"라는 멘트를 날렸다는 점에 주목한다. 그 꾸러미 안에 이들이 먹을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아프리카는 오랜 식민지 생활을 했고, 독립국가로 선 지금은 부족 간의 피튀기는 싸움 때문에 국제기구가 그곳에 발을 디딜 수 없는 형편이다. 한 번은 그들을 도우러 간 어느 단체 직원들을 태운 비행기 한 대가 격추당해 전원 사망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엔을 비롯한 여러 기구들은 그들을 도우러 그곳에 간다. 목숨을 걸고. 

  식민지였던 아프리카는 당시 땅콩을 재배하는 곳은 땅콩만 재배하고 차를 재배하는 곳은 차만 재배하는 등 주로 한 가지 작물만을 집중 재배하고 있었다. 그들을 지배한 국가가 그런 환경을 강제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먹으려야 먹을 음식이 없다. 썩은 물을 마시며 죽어가고, 먹을 작물을 생산할 수 없어 죽어가고, 바다 밖으로부터 여러 국가나 국제 기구가 도와주려고 해도 부족 간 전쟁으로 쉽게 도움의 손길을 주기 힘든 상황이다. 국제 기구가 도와준다고 해도 일시적일 뿐 이들이 스스로 기아에서 벗어날 방법은 없어 보인다.

  세계 식량 시장 또한 이들의 굶주림을 지속시키는 요인이다. 시장에서의 식량 가격은 절대 이들에게 우호적으로 정해지지 않는다. 부자 국가들과 거대 기업들은 돈이 없으면 남는 식량을 썩히거나 버리는 한이 있어도 절대 이들에게 공급해주지 않는다. 그들은 '구호천사'라는 수식어보다는 돈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이런 세계 식량 시장은 미국을 비롯한 강대국들에 의해 움직이는데, 외견상 가장 많은 도움을 줄 것 같은 이들이 따지고 보면 가장 악랄하다.

  왜 세계의 절반이 굶주리는지는, 먹을 것 없어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이 시대에 아직도 지구 반대편에서 굶어죽어가는 이들이 많은 역설적인 상황이 연출되는지는, 더 이상 설명하지 않아도 될 듯하다. 우리는 ARS 버튼을 눌러 천원씩 기부하거나, 아니면 좀 더 마음을 쓰는 이들은 국제 단체에 정기적으로 돈을 넣음으로써 스스로의 마음의 짐을 덜고 - 그나마 이 정도도 안하는 사람들이 대다수다 - 있지만, 이 책을 보면 그들의 기아는 단순히 돈이나 먹거리의 문제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저자는 "기아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각국이 자급자족 경제를 스스로의 힘으로 이룩하는 것 외에는 진정한 출구가 없다"고 말한다. 말은 쉽고, 누구나 동의하는 명제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저자는 이어 말한다. "무엇보다도 인간을 인간으로서 대하지 못하게 된 살인적인 사회구조를 근본적으로 뒤엎"고, "인간의 얼굴을 버린 채 사회윤리를 벗어난" 시장원리주의 경제(신자유주의)와 "세계를 불평등하고 비참하게 만"드는 폭력적인 금융자본을 깨야 한다고 말한다.

  그럼 누가 할 수 있는가. 수렁에 빠진 88만원 세대를 구할 수 있는 건 결국 88만원 세대의 연대와 기득권 세대의 양보이듯, 이들을 구할 수 있는 것도 개념있는 거대국가들과 기업, 그리고 어려움에 처한 그들 자신의 연대로 수렴된다. 이 말은 곧 "마땅한 해결책이 없다"는 말과 동의어가 된다. 그들이 스스로 양보할리도 없거니와 어려움에 처한 이들이 똘똘 뭉쳐 연대를 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 책엔 자립경제를 이룩한 한 인물이 등장한다. 결국 친구의 손에 살해당하고 일찌감치 생을 마감했지만 상카라는 인구 1000만으로 구성된 극도로 가난한 부르키나파소를 살려냈다. 대통령에 취임한 그는 자주관리정책을 채택해 자치제로 전환하고는 주민들이 스스로 관리도 뽑고 지역을 다스리게 했다. 도로건설, 수도건설, 보건의료 등의 서비스를 실시하도록 하고, 대규모 철도 사업을 벌였다. 주민들을 보수가 없는데도 쌀 몇 줌에 적극적으로 나섰다고 한다. 또한 인두세를 폐지하여 가족 경제를 되살렸고, 토지를 국유화해 수요에 따라 재분배했다. 4년도 안되어 농업생산량이 크게 늘어나고 자급자족이 가능한 경제체제가 되었다. 그러나 외국세력과 결탁한 군부세력에 의해 살해당했고, 그를 살해한 콤파오레가 대통령이 되었다. 부르키나파소는 그냥 보통의 아프리카로 돌아갔다고 한다. 

  암울한 결론이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해 어떤 문제점들이 시정되어야 하는가는 알 수 있었다. 이제 빈곤은 단순히 돈와 식량지원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도 알았다. 무엇을 할지는 세계 각국에 흩어진 아프리카에서 굶어죽는 이들과는 아무런 연고도 없는 많은 사람들에게 달렸다. 돈 한푼에 마음을 놓기보다는 신자유주의 경제 체제와 싸우는 쪽이 이들의 빈곤을, 기아를 해결하는 빠른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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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14 00: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10-14 08:5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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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14 07:5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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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14 09:0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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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14 15:0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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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medusa 2009-01-07 2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Naver Opencast의 "風林火山의 분야별 대표 도서 소개"(http://opencast.naver.com/BK175)라는 캐스트의 캐스터 風林火山이라고 합니다. 이 글을 제 캐스트에 발행했는데, 혹시라도 발행을 원치 않으시면 '캐스터에게 한마디'에 적어주시거나, itmedusa@gmail.com으로 메일 주세요.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마늘빵 2009-01-08 09:21   좋아요 0 | URL
아 아녀. 사이트 들어가봤는데 무슨 사이트인지는 잘 모르겠는데, 대충 봐서는 발행(?)하셔도 될 듯 합니다. ^^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장 지글러 지음, 유영미 옮김, 우석훈 해제, 주경복 부록 / 갈라파고스 / 2007년 3월
구판절판


세계에는 그런 '이름도 없는 작은 이들의 무덤'이 무척 많은가요?

1분에 250명의 아기가 이 지구상에 새로이 태어나는데, 그 중 197명이 이른바 제 3세계라 불리는 122개 나라에서 태어난단다. 그리고 그들 중 많은 수가 곧 이런 '이름도 없는 작은 이들의 묘'에 묻히는 운명을 맞는거야. 레지 드브레(프랑스의 철학자)는 이들을 가리켜 "나면서부터 십자가에 못 박힌 아이들"이라고 표현했어. -65-66쪽

피슐러는 왜 남아도는 식량을 아프리카나 브라질의 굶주리는 아이들에게 보내지 않지요?

유럽연합은 나름의 논리를 따르고 있어. 자국의 농민들을 살려야 하고, 그 때문에 농산물가격을 높게 유지해야 해. 배고픈 사람들을 돕는 것은 FAO나 WFP의 과제일 따름이지. 하지만 이들 국제기구는 우선적으로 긴급한 지역만 도울 수 있을 뿐이야. 8억 이상이 고통을 받고 있는 '구조적 기아', 심각한 만성적 영양실조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어. 식량의 가격이나 생산량의 결정, 그리고 식량의 공평한 분배 등에 대해 FAO나 WFP는 그야말로 속수무책이야. 세계시장만이 힘을 가지고 있지. 그리고 그 시장은 아주 잔인하단다. -80쪽

미국의 대통령은 약간 부드러운 방식을 택하고 있어. 예를 들어 미국의 이집트에 대한 정책을 보자꾸나. 이집트 사람들의 주식은 밀이나 조를 빻아서 만든 에이시라는 빵이야. 그런데 에이시의 여섯 개 중 하나는 미국과 이집트 간에 맺어진 식량원조 협정에 따라 미국산 밀이 사용되고 있지. 이른바 'PL-480 프로그램'을 통해 조달되는거야. 이 프로그램은 이집트를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이 협정으로 미국은 자국의 잉여농산물을 이집트에 팔아넘길 수 있었던 것이란다.
이집트의 무바라크 정권은 미국의 조종을 받고 있는 셈이지. 무바라크는 미국의 손에 놀아나는 꼭두각시에 불과해. 중동지역에서 미국의 피리소리에 맞춰 춤을 추고 있단다. 무바라크는 양자택일을 할 수밖에 없어. 미국의 용병 역할에 순응하든가, 아니면 자국의 극심한 기아에 따른 반란으로 축출 당하든가 말야. -96쪽

"잘못된 것 안에 올바른 삶은 없다." (아도르노)-171쪽

소수가 누리는 자유와 복지의 대가로 다수가 절망하고 배고픈 세계는 존속할 희망과 의미가 없는 폭력적이고 불합리한 세계이다.
모든 사람들이 자유와 정의를 누리고 배고픔을 달랠 수 있기 전에는 지상에 진정한 평화와 자유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서로서로 책임져 주지 않는 한 인간의 미래는 없을 것이다.

희망은 어디에 있는가?
정의에 대한 인간의 불굴의 의지 속에 존재한다.
파블로 네루다는 그것을 이렇게 표현했다.

"그들은 모든 꽃들을 꺾어버릴 수는 있지만
결코 봄을 지배할 수는 없을 것이다."-171쪽

"선거용지가 고픈 배를 불리는 것은 아니다."(브레톨트 브레히트)-18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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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생각해 봐! - 세상이 많이 달라 보일걸
홍세화 외 지음 / 낮은산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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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우 빠르게 단숨에 읽어내려갔다. 출퇴근 길에 주로 책을 읽는 나는, 이 책 한 권이면 퇴근길까지는 충분하려니 생각했는데, 걸어가면서도, 버스에서 손잡이를 붙잡고도, 지하철에서 사람들 틈에 끼어서도 책장을 덮을 수 없었다. 몰입했다. 회사에 도착하기 전 결국 다 읽어버렸다. 이렇게 빨리 읽어도 되는 건가 싶었다. 그 바쁜 출근길 와중에도 가슴이 몇 번이나 먹먹해졌고 코끝이 찡해졌다. 세상이 어쩜 이럴 수가 있을까 싶었다. 부정하고 싶지만 현실이었다. 

  맨 처음 촛불을 든 여고생들과 그의 친구들에게 바치는 책이다. 비슷한 많은 청소년 서적이 나와있지만 - 우석훈은 <88만원 세대>와 <촌놈들의 제국주의>에서 10대 독자를 목표로 삼았다고 말했지만 청소년들이 읽기 쉬운 책은 아니다 - 이만큼 학생들의 눈높이에 맞춘 책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승자독식, 공정무역, 기술과 행복, 시와 삶, 공동체, 평화 등 어려운 사회과학 책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를 핵심만 간략하게 추려서 아이들에게 말을 건네고 있다.

  이 책은 불온서적이다. 국방부 기준에 따르면. 아직까지 정신 못차리고 뻘소리 내뱉는 MB의 기준에 따르면, 이 책은 분명 불온서적이다. 한창 감수성 예민한 아이들에게, 한창 공부해서 일류대학 가야할 아이들에게, 한창 공부해서 국가 발전에 기여해야 하는 잠재적인 '인적자원'들에게, 이 책은 절대 읽어서는 안되는 불온서적이다. 그러나, 나는 이 책을 중고등학생들에게 강력히 추천하겠다. 그들이 읽어야 할 필독서 중 하나로, 그 중 으뜸으로 추천하겠다. 왜냐하면 이 책엔 우리의 현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나있기 때문이다. 어른들이 감추고자 하는 현실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세상이 많이 달라보인다. 교과서가 의심스럽다면, 학교에서 배우는 내용을 믿지 못하겠다면, 왠지 세상은 지금 우리가 달달 외우고 있는 지식과는 달리 전혀 딴판으로 흘러가는 것 같다면, 이 책이 만족스러운 답을 제시해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100분 토론에서 활약을 펼친 수의사 우석균은 신자유주의와 FTA가 우리를 어떤 상황으로 몰고가는지를 깔끔하게, 그러나 처절하게 보여준다. 얼마 전 경제 대안 시리즈를 끝마친 우석훈은 그가 내놓은 네 권의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를 간략히 줄였다. 강수돌은 우리가 먹고, 입고, 마시는 것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왔는가를 알려준다.

  이른 아침부터 처 울고 싶었다. 여기 필자로 참여한 이들은 각기 다른 주제로 우리의 현실이 얼마나 처절한지를 꼬집고 있었다. 너무 적나라해서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이렇게나 많은 부정의와 부도덕이 판을 치고 있는 세상이라니. 사람들은 이 땅이 싫으면 이민을 가야겠다고들 말한다. 그러나 이미 진실을 안 이들마저 이 땅을 떠나버린다면 남은 이들의 삶은 어떻게 될까. 어떻게 하면 좋을까. 나 좋자고 피하기보다는 부정의의 시정을 함께 요구하며 하나씩 바꿔나가는 게 가장 현명하고 빠른 길이다.

  홍세화는 '추천하는 글'에서 간단한 명제들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이게 현실을 올바로 인식하지 못하는 우리 어른들이, 그리고 앞으로 세상에 나와 현실을 경험해야 할 아이들이 취해야 할 기본 태도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주어지는대로 받아들이기보다 자꾸 의심하고 거꾸로 생각해야 한다. 잠시 멍 때리고 있으면 순식간에 우리의 머리와 가슴은 세뇌되고 조종 당한다.

  "1) 나는 생각하는 동물이다. 2) 그렇지만 태어날 때 생각을 갖고 태어난 건 아니다. 3) 지금 나는 무척 많은 생각을 갖고 있다. 4) 그 생각들은 내가 스스로 만들어 가진 게 아니며 내가 선택한 게 아닐 수 있다. 5) 그럼에도 나는 지금 갖고 있는 생각을 고집하면서 살아간다. 6) 더구나 내 생각 중에 잘못된 게 있어도 나는 그것을 자각하지 못한다. 7) 그러므로, 나는 끊임없이 거꾸로 생각해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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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8-10-12 07: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집엔 10대가 둘이나 있으니 필독서로 꼽아야겠군요.
우리 현실이 구역질나게 싫어도 우리가 살아내야 할 나라고 세상이니까요.ㅜㅜ

마늘빵 2008-10-12 09:12   좋아요 0 | URL
^^ 저도 가르쳤던 애들 중 가끔 연락오는 애들이 있는데, 걔네들한테 선물해주고 싶네요.
 
거꾸로 생각해 봐! - 세상이 많이 달라 보일걸
홍세화 외 지음 / 낮은산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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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는 생각하는 동물이다. 2) 그렇지만 태어날 때 생각을 갖고 태어난 건 아니다. 3) 지금 나는 무척 많은 생각을 갖고 있다. 4) 그 생각들은 내가 스스로 만들어 가진 게 아니며 내가 선택한 게 아닐 수 있다. 5) 그럼에도 나는 지금 갖고 있는 생각을 고집하면서 살아간다. 6) 더구나 내 생각 중에 잘못된 게 있어도 나는 그것을 자각하지 못한다. 7) 그러므로, 나는 끊임없이 거꾸로 생각해 봐야 한다. (홍세화)-9쪽

"독서는 사람을 풍요롭게 하고 글쓰기는 사람을 정확하게 해 준다."-10쪽

"기존의 무역은 사람이 없는 무역이지만, 공정무역은 그들의 힘겨운 이야기를 직접 들어 보는 것"(영국 런던 정경대학 데이비드 랜섬 교수)-44-45쪽

한국 정부가 약값 절감을 위해 값싸고 효과 좋은 약만을 골라 건강보험 적용 대상으로 삼으려는 이른바 포지티브 리스트 제도에 대해 반대하는 다국적 제약회사들의 주장도, 미국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에서 한국에 요구하는 것도 바로 이 ‘특허권의 보호’라는 거야. (중략) 미국의 요구는 이러해.

1) 약가 절감을 위한 포지티브 리스트, 약가 계약제 도입을 하지 말 것.
2) 외국의 신약을 선진 7개국 평균 약값으로 하여 지금보다 두 배 이상 높일 것.
3) 특허 기간을 연장하여 복제품의 생산을 원천적으로 힘들게 할 것.
4) 특허권의 공적 사용이나 정부 사용(국민 건강에 필요하다고 판단되거나 비상업적 목적일 경우 특허가 걸린 의약품을 일단 생산하여 사용하고 나중에 특허가격으로 판매액의 일부를 지급하는 제도. ‘경제특허실시’, 또는 ‘강제실시’라고 한다. 이 제도는 세계무역기구에서도 보장한 각국의 권리이다)의 사유를 제한할 것. (우석균)-88-89쪽

참 신비롭고도 놀라운 것은 사람들이 ‘많이 갖고 힘이 셀’ 때보다 힘없고 약할 때 더 많이 나누게 된다는 거야. 가진 것이 없고 힘이 없을 때는 혼자보다 여럿이 모여 있는 게 훨씬 좋다는 것을 저절로 배우게 되지. 내게 없는 것이 있으니 다른 사람 없는 것이 눈에도 들어오고 마음에도 들어오고 말이야.
‘가난’과 ‘부족함’만이 ‘나눔’이 가장 좋은 것임을 받아들이게 하는 힘이지. 서로 더 많이 가지려고 할수록 가진 사람과 빼앗기는 사람으로 나뉘고, 둘로 갈린 무리는 서로 더 많이 가진 쪽으로 가려고 다투고 눈이 멀게 되니까 말이야. 언젠가 많이 갖게 되는 날 평화도, 우정도, 기쁨도 얻게 될 거라고 주문을 걸어 보지만, 그 ‘언젠가’를 위해서 더 많이 빼앗고 빼앗길 뿐이라는 걸 깨닫기도 어려워질 테고. (김수연)-139쪽

평화는 '평화'를 통해서만 구할 수 있을 뿐, 전쟁으로 얻을 수 있는 평화란 이 세상 어디에도 있지 않습니다. 그 아무리 무서운 폭력과 억압이 있따 해도 전쟁보다 더한 것은 없을 뿐 아니라 전쟁의 끝에는 더한 폭력과 억압만이 이어지기 때문이에요. 게임이나 영화에서 악을 물리쳐 선을 바로 세우는 전쟁이 있는 것처럼 보여지는 것에는 그 낱낱의 고통과 슬픔, 공포와 분노가 가려져 있어 그래요. (박기범)-16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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