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첫 십년의 한국 - 우리시대 희망을 찾는 7인의 발언록 철수와영희 강연집 모음 2
리영희 외 지음, 박상환 엮음 / 철수와영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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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3년 12월부터 2005년 6월까지 일곱차례에 걸쳐 열린 성균관대학교 양현재 콜로키움의 내용을 엮어, 2008년에 내놨다. 왜 지금인가. 3-4년이나 지난 이야기를 왜 지금 책으로 엮어 내는 것인가. 엮은이 박상환의 말처럼 "당시 제기한 문제는 아직도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이다. 3년이란 시간을 보내고 이명박이 대통령에 당선된 시점인 2008년에 그 내용이 책으로 엮여진 것은, 책을 팔아먹기 위한 적절한 시점을 제대로 선택하기 위함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아니 어쩌면 애초 책으로 낼 의도는 없었는데, 그때 했던 이야기들이 지금 내놓으면 먹힐 것 같자 내놓은 건지도 모르겠다.

  리영희는 "나의 책이 읽히지 않고 또 읽힐 필요가 없는, 그래서 팔릴 필요가 없는 사회를 소망한다."고 말했다 한다. 읽히지 않길 원하고, 팔리지 않길 원하지만, 여전히 내놓으면 팔리고 읽히는 시대이기 때문에, 리영희를 포함한 여기 저자로 이름을 찍은 이들은 여전히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저자로 이름 올린 이들 중 익숙한 이는 손호철과 홍세화 뿐이다. 다른 이들도 이름은 들어봤지만 글은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어 이들 각각에 대해 뭐라 말하긴 어렵다. 이 책에서 이들은 각기 다른 주제를 가지고 각자의 목소리를 낸다.

  여기 실린 글 중 리영희와 홍세화의 글이 인상적이었다. 리영희는 내가 그동안 갖고 있던 국가주의와 반공주의에 대한 반감과 맞물려 가슴에 들어왔고, 홍세화의 똘레랑스는 오래전부터 접해왔지만, (영어식 표현을 빌리자면) 아무리 반복해 말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여전히 우리 사회에 절실히 필요하다. 두 분 중 리영희의 말을 빌려 말해보자.

  "우리는 시민이어야 합니다. 시민이란 어떤 권위나 권력도 어느 누구도 지배하지 않는 평등 사회인 시민 사회 속에 존재하는 주체적이고 독립적인 개인을 말하기 때문입니다. (중략) 민주주의 사회에서 시민은 독자성을 가지고 자기 결정적이며 자유로워야 합니다. 진정한 의미의 자유인으로서 시민의 삶은 자유로운 인간의 가치를 부정하고 억압하고 탄압하는 정의롭지 않은 것에 대해 항거하며 싸울 때 보람을 느낍니다. 그런 저항 없이 ‘편안한’ 사회가 이루어진다면 우리에게 소망스런 일이기는 하지만 우리 개개인의 삶에 있어서 의미랄까 뭐 이런 것이 박탈되거나 퇴색되는 사회라고 볼 수 있지요."

  지금 이 촛불 정국에 다시 '시민'을 생각한다. 우리는 주체적이고 독립적인 개인인가. 독자성을 가진 자기 결정적이며 자유로운 인간인가. 우리는 자유인인가. 반은 그렇고 반은 아니다. 한국 땅에 살아가는 한국인의 절반이 그렇고 절반이 그렇지 않다는 말이 아니다. 광장에 나가 촛불을 들고 싸우는 이들이 그렇고, 무슨 일이 있냐는 듯이 집과 직장을 왕복하며 매일을 보내는 이들이 그렇지 않다는 말이 아니다. 아니. 다시. 이 말도 절반은 그렇고 절반은 아니다. 어느 정도 맞다.

  하지만, 촛불을 들고 촛불을 들지 않고, 촛불을 지지하느냐 촛불을 지지하지 않느냐를 가지고 무 자르듯 싹둑 잘라내어 주체적이고 독립적인 자유로운 '시민'과 국가 공동체 안에서 살아가는 하나의 구성원이고자 하는 '국민'을 나눌 수는 없다. 그러나 타인의 아픔을 나의 아픔으로 느끼고, 부당한 공권력의 폭력을 보고 거리로 나온 그들은 분명 주체적이고 독립적인 개인이다. 주체적이고 독립적인 개인은, 홀로하지 않는다. 타인에 의해 사고하지 않으며, 타인에 의해 움직이지 않으며, 국가에 의해 조정당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흔들리지 않는 불편부당성을 갖고 세상을 둘러본다. 그리고 판단이 끝나면 행동한다.

  리영희가 읊은 '반지성적이고 반이성적인 대한민국'은 지금을 향한다. 그는 분명 3년 후를 예측하고 이같은 발언을 하진 않았다. 이명박을 염두에 두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의 메세지는 노무현보다 이명박에게 더 알맞다. 물론 노무현의 과오를 그냥 지나쳐서는 안된다. 하지만 전두환을 연상시키는 이명박의 권력의 횡포와 독재는 '지성적이고 이성적인' 시민을 그때보다 더 강력히 요구한다. 그리고 시민들은 거리로 나가 자신의 분노를 보여줬다. 그들은 진보와 보수의 정치성을 떠나 광장에 나왔다. 이명박과 꼴통들은 어떻게든 색깔론을 뒤집어 씌우며 진보와 보수의 대결로 몰아가려 하지만, 이건 진보와 보수의 싸움이 아니다. 상식과 비상식의 싸움이다. 정의와 부정의의 싸움이다.  

  <21세기 첫 십년의 한국>에 실린 모든 저자와 그들이 쓴 글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잘 몰라서 따라가지 못하는 부분도 있고,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도 있다. 통독인 동시에 마음을 흔드는 곳에 서서 정독을 하며 전체적으로 발췌독을 했다. 각각의 저자들에게 얼마나 동의하느냐 여부를 가지고 이 책에 평가를 내리긴 힘들 것 같다. 전체적으로 이 책은 서로 다른 주제에 관심을 갖고, 자기 이야기를 하는 일곱 저자의 이야기를 한 권의 책으로 엮어 냈기 때문인지 조금 어수선하다. 글도 쉽게 잘 들어오진 않는다. 애초 성균관 양현재 콜로키움에서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이야기한 내용이어서인지도 모르겠다. 썩 친절한 책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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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사는 게 뭐예요? 철학하는 어린이 (상수리 What 시리즈) 2
오스카 브르니피에 지음, 이효숙 옮김, 프레데릭 베나글리아 그림 / 상수리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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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젠가 누가 내게 이런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철학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렇게 대답했다. "철학은 새로운 질문을 던지는 것입니다."  같은 질문을 던질 때마다 나는 다르게 대답한다. 대개 이 질문에 대해 몇 가지의 대답을 가지고 있지만, 그때 내키는대로 대답을 하곤 한다. 어떨땐 대답을 미리 생각해두고 있다는 사실이 싫을 때도 있어, 다른 새로운 대답을 내놓기도 한다. 어쨌든, 철학이 새로운 질문을 던지게 만드는 건 사실이다.

  철학은 탈레스부터 시작해서 매킨타이어와 싱어에 이르기까지 철학자들이 뭐라고 말했는가, 를 배우는 것이 아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철학자들의 사고를 빌려 우리는 생각지도 못했던 것들에 대해 생각해보는 계기를 마련하기도 한다. 그들로부터 세상을 바라보는 뛰어난 인식과 사고를 훔치기도 한다. 그러나, 그 내용물은 단지 재료에 불과하다. 철학은 그 재료를 가지고 새로운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다. 상수리 출판사에서 'What' 시리즈를 냈다. 철학 동화다. 아니 철학 그림책이라고 해야 하나. 동화보다는 그림책에 가깝다. 이 책은 오스카 브르니피에 라는 철학 선생님이 만든 '철학하는 어린이' 시리즈 중 하나이다.  

  이 철학그림책 생각보다 놀랍다. 어린이 책은 책장이 금방 넘어가지만 만들기는 힘들다. 작가는 많이 배운 사람이기 마련이고, 대개는 나이도 먹을만큼 먹었다. 나이가 많고 많이 배운 사람은 쉽게 쓰기 어렵다. 그 자신의 학식을 자랑하고자 어렵게 쓰는건지 아니면 쉽게 쓰고픈데 정말 안써지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린이 책은 어린이의 눈으로 바라보지 않으면 쓰기 어렵다. 그래서 이 그림책이 놀랍다. '혼자 살고 싶나요' ,'언제나 사람들을 존중해야 하나요', '다른 사람의 의견에 언제나 동의해야 하나요', '우리 모두는 평등할까요' ,' 우리는 모두 일을 해야만 하나요', '함께 살기 위해서는 규칙이 필요할까요' 등 보기만 해도 주제가 어렵다.

  마치 하나의 장문의 답변이 나와야 하는 논술 주제처럼 보이는 이 물음을 가지고 어떻게 조그만 아이의 눈높이에 맞게 적절한 대답을 해줄 수 있을까. 그렇지 않아도 얇은 그림책이 여러 주제로 나뉘어져 대답할 공간은 그다지 많지 않다. 게다가 상당부분이 그림으로 가득 차 있고, 문장은 얼마 되지 않는다. 어떻게 대답해줄 수 있을까. 그림책을 열어보면 알 수 있다. 하나의 짧은 줄거리를 가지고 적절한 질문과 대답을 섞어가며 생각거리를 제공한다. 우리(성인)가 어렵고 딱딱한 인문사회과학 서적을 통해 얻는 그 상식들이 짧은 문장과 그림으로 간단하게 이루어졌다.

  매우 유쾌하게 재밌게 읽었다. '철학하는 어린이' 시리즈를 나오는 족족 다 보고 싶다. 이건 그냥 의례적인 찬사가 아니라 진심이다. 이런 그림책을 볼 수 있는 건 분명한 행운이다. 고작해야 위인전 시리즈물 정도가 읽을거리의 전부였던 내 어린 시절에 비하면야. 어린이가 철학을 할 수 있냐고 묻기도 한다. 어린이도 철학을 할 수 있다. 철학은 골방의 먼지 묻은 책 속에 들어있는 읽어도 무슨 말인지 못알아먹는 철학자들의 글이 아니다.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자기 스스로 생각하는 것이다. 이 그림책은 그런 의미에서 철학책이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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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대를 대표하는 것으로서, 후세 사람들의 모범이 될 만한 가치를 지닌 사상집이나 문예 작품"을 '고전(古典)'이라 한다. 대학교 신입생 추천 도서, 고교생이 읽어야 할 필독 도서 등의 목록에는 항상 오래전부터 널리 읽혀온 양서라고 평가받는, 비슷비슷한 책 제목이 오르내린다. 흔히 고전이라 일컫는 그런 류의 책들이 아닌 출간된지 얼마 안됐으나 현세에 널리 읽히고, 후세에 모범이 될 만한 가치를 지닌, 그런 책 중에서 '나만의 고전'을 선정해보고자 한다. 지극히 주관적인 잣대로 선정했다.

  리스트는, 한 국가공동체 내에서 살아가는 개인으로서 반드시 알아야 할 것들, 그리고 반드시 지켜야 할 것들을 중심으로 구성해봤다. '자유롭고 평등한' 하나의 개인으로서 온전히 살아가기 위하여 꼭 필요한 것들이다. 나의 삶을 지켜내기 위해선 타인의 삶을 돌아볼 수 밖에 없고, 나와 당장 상관없는 일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못 본 채 한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나에게 돌아올 것이다. 타인을 위하는 이타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하는 이기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라도 꼭 지켜내야 할 가치들이다.

  * 가급적 저자가 한국인인 책을 선정했고, 불가피하게 한 권은 번역서를 넣었다. 이미 고전이라 손꼽히는 책은 모두 피했으며, 본인의 20대가 시작된 90년대 후반 이후 출간서적으로만 목록을 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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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장 지글러 지음, 유영미 옮김, 우석훈 해제, 주경복 부록 / 갈라파고스 / 2007년 3월
9,800원 → 8,820원(10%할인) / 마일리지 49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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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서울시 교육감 선거에 진보진영의 지지를 받고 있는 주경복이 부록을, 88만원 세대 저자인 우석훈이 해제를 단 책이다. 부익부 빈익빈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20대 80의 사회란 말도 나온다. 아니 이제는 10대 90이라고도 말한다. 한쪽은 점점 부자가 되고, 한쪽은 가난하다 못해 굶어죽는다. 왜 이런 일이 생길까. 이 책에 정답이 나와 있다. 도덕적 상상력, 도덕감을 가지고 있는 정상적인 이라면 이들의 아픔을 그냥 지나칠 수 없을 것이다. 빈부의 격차는 더 커질테고, 굶어죽는 이도 더 많아질테니 오래도록 읽힐 것이다.
88만원 세대- 절망의 시대에 쓰는 희망의 경제학
우석훈.박권일 지음 / 레디앙 / 2007년 8월
15,000원 → 13,500원(10%할인) / 마일리지 7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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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한숨을 쉬며 읽다가 절망감에 푹 쓰러지고야 마는 암울한 책이다. 책도 안 읽고 개념 없다는 20대들을 비판으로부터 자유롭게 해주는 책이자 그들이 처한 힘겨운 현실을 깨닫게 해주는, 그래서 더 토익책에 몰두하게 해주는(?) 책. 95%는 절망에 빠지고 5%는 그들을 배반한다. 연대만이 해법이나 그 95%조차 95%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구덩이에서 벌버둥친다. 먼저 올라가려고. 현실을 보여줬지만 절망감에 더 토익책으로 몰두하게 하는 암울한 책이다.
시민불복종 - 저항과 자유의 길
오현철 지음 / 책세상 / 2001년 3월
5,900원 → 5,310원(10%할인) / 마일리지 29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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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대의민주주의 체제하에서 마지막으로 국민이 국가를 대상으로 펼칠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인 시민불복종은 꼭 알아두어야 한다. 물론 저자에 따르면 시민불복종이 극단으로 가면 혁명으로까지 나아갈 수 있다고 하지만, 일단 체제를 전복하지 않는 선에서 국민이 민심을 받아들이지 않는 국가를 대상으로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불복종 뿐이다. 주옥같은 말들이 가득하다. 새기고 또 새겨야 한다. 지금과 같은 촛불 정국에서는 더더욱. 어디 이런 날이 이번 한번 뿐이랴. 미래를 대비하자.
희망의 사회 윤리 똘레랑스
하승우 지음 / 책세상 / 2003년 6월
5,900원 → 5,310원(10%할인) / 마일리지 29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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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택시운전사 홍세화씨가 프랑스에서 한국으로 돌아와 전파한지도 십수년. 더이상 우리는 똘레랑스가 뭐냐고 묻지 않는다. 똘레랑스가 뭐냐는 질문 대신 똘레랑스를 어떻게 지켜낼 것인가를 묻는다. 똘레랑스는 흔히 다양성에 대한 존중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기도 하는데, 반드시 그렇진 않다. 앙똘레랑해야 할 것에 대해서는 앙똘레랑으로, 똘레랑해야 할 것에 대해서는 똘레랑으로 대응하는 것이 진짜 똘레랑스 정신이다. 지금 이 시대 우리가 앙똘레랑 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이 책을 읽고 고민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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웽스북스 2008-07-11 0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점에서 보면 아프님 생각날 것 같은 책들 ㅋㅋㅋ

어제 길담서원 갔다가 시민불복종, 저 책 만지작만지작 했었는데

마늘빵 2008-07-11 07:39   좋아요 0 | URL
저는 지금 읽고 있는 중이에요. 아 보물 건졌어요. 소로우의 <시민의 불복종>읽고 저것도 읽어보세요. 일단 개념은 소로우에서 시작했으니깐 소로우 먼저.

환상범 2008-07-11 1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동안 올라온 리스트들을 많이들 봤었는데 아프락사스님의 목록이 참 인상적입니다.
그런데다가... 마감 10초전의 다분히 상품사냥꾼 적인 요소와 '아프락사스'라는 데미안에 나오는 신의 이름도 인상적이구요. 올려주신 책들 보관함에 넣어두었습니다. 좋은 책 많이 추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추천하고픈 도서가 있어 아래에 연결해 봅니다. 행복하세요.
http://blog.aladdin.co.kr/786035153/2136994

마늘빵 2008-07-11 13:30   좋아요 0 | URL
ㅎㅎ 제가 마지막 작성자였더라고요. 15분 정도 남겨놓고 했는데, 근 한 달 정도를 알고 있으면서도 귀찮아서, 또 피곤해서, 미루고 미루다가 막판에 작성하고 잤습니다. :) 리스트 구경 가겠습니다.

노이에자이트 2008-07-13 0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세상 문고에 좋은 책이 많죠.

마늘빵 2008-07-13 13:15   좋아요 0 | URL
네. 책세상 문고 좋아합니다. 그 중에 몇몇 권은 필독을 권하고플 정도입니다. 많지 않은 분량에, 압축적으로 다른 사상서나 두꺼운 단행본 책에서 말할 수 없는 주제를 꼼꼼히 다룬 책들이 있어요.

Jade 2008-07-13 04: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님 빈 중심 1부는 어려워서 읽다 말았는데 2부는 재미있어요! 흐흐

마늘빵 2008-07-13 13:16   좋아요 0 | URL
그 책은 아직 사지 않았는데. 다른 읽을 것들이 너무 많아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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홉스 & 로크 : 국가를 계약하라 지식인마을 22
문지영 지음 / 김영사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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홉스의 저작들에서 공포는 모든 개인적 권리의 뿌리이자 도덕성의 근거이고, 나아가 인간으로 하여금 평화를 추구하게 만드는 동기로 나타난다. 특히 『리바이어던』에서 공포는 사람들이 자연상태에서 벗어나 국가를 계약하게 만드는 감정이며, 절대적인 리바이어던의 힘을 요구하고 그에 복종하도록 만드는 감정이다.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해 인간은 공포의 대상을 제거하거나 통제 가능한 것으로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 -41쪽

가장 강력한 자들이 그러한 해악이나 비행을 저지르는 상황에서 어떻게 그러한 것들로부터 나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가를 묻는 것은 즉각적으로 분열과 반란을 조장하는 목소리로 들릴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마치 인간이 자연상태를 떠나 사회에 들어가면서 한 사람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은 법률의 구속하에 있어야 하지만 그 한 사람만은 자연상태에서 누리던 모든 자유를 여전히 보유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권력에 의해서 증대시키고 또 무절제하게 사용하더라도 책임을 묻지 않겠다고 합의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는 인간이 스컹크나 여우로부터 받을지도 모르는 해악을 피하기 위해서는 조심을 하면서도 사자에게 잡아먹히는 데는 만족하거나, 아니 심지어 안전하다고 생각할 정도로 어리석다고 가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통치론』제7장 93절)-44-45쪽

우선 홉스의 사상에는 서로 다른 사람들의 서로 다른 공리를 의미있게 비교할 수 있다거나 소수의 공리가 더 큰 집단 이익에 종속되어야 한다는 시사가 없다. 더욱이 개인주의적 전제에 충실했던 그는, 단지 더 많은 사람들에게 행복을 가져다준다는 이유로 어느 누군가의 희생을 강요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반면에 공리주의는 바로 그와 같은 도덕적 의무의 가능성을 핵심으로 했고, 따라서 공리주의자들이 홉스에게서 빌려오고자 했던 것은 자신들의 사회적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필요한 국가의 권리 혹은 권한에 관한 설명에 한정되었다. 무엇이 사회적 목표여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결코 그들 자신의 설명을 양보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것이 홉스에 대한 공리주의적 지지의 한계였다. -47쪽

(홉스에 대한 평가) 비록 절대군주를 옹호하긴 했지만, 군주의 절대권력이 조물주인 신에 의해서가 아니라 계약에 참여한 사회 구성원들의 동의에 의해서 발생한다고 주장했기 때문에, 전통적인 군주주권론자나 왕권신수설 주창자들에게 환영받지 못했다. 다른 한편 국가의 발생을 자유롭고 평등한 개인들의 자발적인 계약으로 설명하고 인민주권론의 중요한 토대를 마련하긴 했지만, 그 모든 논의가 결국 강력한 리바이어던으로 귀결된다는 점에서 자유주의와 대의정부를 지향하는 새로운 세력들에게도 환영받을 수 없었다. -54쪽

우선 "권리의 상호 양도"로 정의되는 계약 과정에서, 계약 당사자들은 자신의 판단과 이성에 따라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 가장 적합한 수단이라고 생각하는 일을 행할 수 있는 자연적 권리를 잃게 되며, 계약 이후 각 개인은 자신과 관련된 사안에 대한 유일하고 정당한 재판관으로서의 자격을 잃는다. (중략) 각 개인은, 다른 사람도 그렇게 한다는 전제하에, 사실상 모든 권리를 포기 혹은 양도하는 셈이 된다.
(중략) 그러나 꼼꼼히 따져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개인이 엄청난 상실을 경험하지 않는다는 말) 홉스가 설정한 자연상태에서는 생산 활동도 소유도 없고, 학문이나 예술, 심지어 정의, 불의도 없기 때문이다.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거나 양도한다고 할 때, 어떤 사람이 자신의 것으로 미리 가지고 있지 않은 권리에 대해 그렇게 할 수는 없다. 다시말해, 홉스의 자연상태에서 각 개인이 노동권, 소유권, 지적 재산권, 학문 및 예술의 자유 등을 갖고 있지 않았다면 사회계약의 과정에서 그러한 권리를 잃는다고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69쪽

<홉스가 말한 국가를 약화시키거나 해체시키는 원인>
1. 불완전한 인간들이 만든 불완전한 제도. 특히 절대권력의 결여.
2. 예컨대 "모든 사적 개인이 선악 행위의 판단자다", "사람이 그의 양심에 반하여 한 행위는 무엇이든지 죄다", "신앙과 신성함은 연구하고 이성적으로 추리함으로써 획득되는 것이 아니라 초자연적인 영감으로, 또는 강제적으로 주입함으로써 획득할 수 있다.", "주권자도 시민법에 복종해야 한다.", "모든 사적 개인은 자신의 재산에 대해 주권자의 권리를 배제하는 절대적 권리가 있다.", "주권은 분할될 수 있다." 등과 같은 선동적인 주의주장들이 끼치는 해독.
3. 이웃 나라의 통치를 모방하려는 태도.
4.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역사 및 정치 관련 서적을 읽도록 허용하는 것.
(계속)-86-87쪽

(이어서)
5. 시민적 권위와 영적인 권위를 구분하여 신민들에게 복종해야 할 두 개의 왕국을 제시하는 것.
6. 둘 이상의 통치 형태를 섞은 혼합정치체제.
7. 국가 재정, 특히 전쟁을 수행할 때 필요한 재원 조달의 어려움.
8. 한 개인이나 소수의 사람들에 의한 부의 독점.
9. 과다하게 인기를 끄는 유력한 신민.
10. 지나치게 커진 대도시와 군대의 과도한 육성 그리고 과다한 조합.
11. 정치적 분별력이 없는 사람에게 절대권력에 대항하는 자유를 허용하는 것.
12. 영토 확장의 야욕과 불필요한 정복, 안일함과 낭비. -86-87쪽

‘공동체 구성원의 복지’라는 신탁의 목적을 수행하는데 실패한 정부에 대해 국민이 저항권을 갖는다고 본 로크의 주장은 현대 사회에서 민주주의의 발전과 확산에 기여했다. 저항권에 대한 로크의 정당화는 정부의 권력행사가 국민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는 원칙을 다시 한 번 확증하는 것이다. 이제 권력을 자의적으로 행사하며 국민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정부는, 단순히 나쁜 것이 아니라, 타도하고 전복해야 한다는 것이다.-109쪽

홉스에게 자연법은 자연상태의 공포에서 벗어나 평화롭고 안전하게 살기 위해 계약을 맺도록 개인을 이끄는 정도의 효력을 발휘한다. 그러나 로크에게 자연법은 사회계약에 이르도록 이끌뿐만 아니라 이미 그 전에 자연상태에서도 각 개인이 타인에게 속하는 재산권과 자연법을 위반한 자에 대한 처벌권을 존중하도록 자신의 의지를 제약하게 한다. 그리고 각 개인은 그의 이성에 따라 사는 한 자연법을 알 수 있고 또 준수한다. -122쪽

홉스의 자연상태를 특징짓는 공포는 기본적으로 인간의 본성에서 비롯되는 필연적인 것인데 비해 로크의 자연상태에서 발생하는 불안과 위험은 권리들의 충돌 가능성과, 무엇보다 그것을 조정할 권위의 부재로 인한 것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126쪽

구성원 개인의 동의와 위임을 기원으로 공동체 내의 입법권(자)과 집행권(자)은 무소불위의 권한을 행사하는 지배자이기보다 계약의 직접적인 구속을 받으면서 맡겨진 책임과 의무를 다해야 하는 일종의 청지기이다. 그러므로 계약 이후에도 로크의 개인은 평등한 지위와 자유를 잃지 않는다. 나 자신의 동의가 없는 한 어느 누구도 나를 정당하게 지배할 수 없고, 또 나는 거기에 복종할 필요가 없다는 원칙에 입각해서 보면, 현실 세계에서 경험하게 되는 지배-복종이란 결국 내가 나를 지배하고 또 내가 나에게 복종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134쪽

로크의 사회계약론에서 시사되는 정부와 인민 간의 관계는 홉스에게서 살펴본 리바이어던과 신민 간의 관계를 정확히 뒤집어서 보여준다. 홉스의 사회계약은 신민들 상호간에 맺어지는 것으로서, 리바이어던은 계약의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에 계약으로 인한 어떠한 구속도 받지 않고 신민들에 대해 일체 의무도지지 않으며 천하무적의 권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반면에 신탁으로 설명되는 로크의 통치계약은 신탁의 수혜자로서 인민이 계약의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에 수탁자인 정부에 대해 아무런 의무는 없이 권리만 주장하고, 심지어 정부의 폐지를 결정할 정도로 책임을 물을 수 있게 한다. 인민은 다만 원초적인 사회계약이 요구하는 의무, 곧 공동체를 유지하고 보존할 의무를 서로에 대해 질뿐이다. -141-142쪽

<로크 : 입법권의 범위 제한 내용>
1. 입법권은 인민의 생명과 재산을 절대적, 자의적으로 다룰 수 있는 권력이 아니며 또 그러한 권력이 될 수도 없다. 입법권은 사회의 공공선에 의해 최대한 제한된다. 그것은 보존 이외에 그 밖의 어떠한 목적도 가지지 않는 권력이다. 그렇기 때문에 신민들을 죽이고, 노예로 삼고, 의도적으로 궁핍하게 만드는 권리를 결코 가지고 있지 않다.
2. 입법권 또는 최고의 권위는 즉흥적이고 자의적인 명령을 통해서 통치권을 행사할 수 없다. 그것은 공포된 영속적인 법, 그리고 널리 알려진, 권한을 위임받은 재판관에 의해서 정의를 시행하고 신민들의 권리를 결정해야 한다.
3. 최고의 권력은 어떤 사람으로부터는 그의 재산의 일부를 그의 동의 없이 취할 수 없다. 입법부는 인민들 스스로가 표명하든 아니면 그들의 대표자들이 표명하든, 인민의 동의 없이 그들의 재산에 세금을 부과해서는 안 된다.
4. 입법부는 법률을 제정할 권력을 그 밖의 다른 사람 또는 기관에 이전해서는 안 된다. 또한 인민이 그 권력을 설정한 곳 이외의 다른 곳에 설정해서는 안 된다. -145쪽

<로크의 논리전개과정>
1. 국가가 존재하기 이전의 자연상태에서 로크의 개인들은 이미 신이 부여한 자연권의 주체로서 ‘자연법의 테두리 안에서 스스로 적당하다고 생각하는 바에 따라 자신의 행동을 규율하고자신의 소유물과 인신을 처분할 수 있는 완전한 자유’를 누리고 있었다.
2. 자연상태의 개인들은 자신의 복지와 안전을 더욱 확실히 하기 위해 계약을 맺고 국가를 수립했다.
3. 계약 후 정치사회에서는 입법권이 단일한 국가 최고 권력으로 설정되지만, 입법권은 인민의 복지라는 일정한 목적을 위해서만 활동할 수 있는, 단지 신탁된 권력이다.
4. 그러므로 입법권을 담당한 자들이 그들에게 맡겨진 신탁에 반해서 행동하는 것이 발견될 때 인민은 입법부를 폐지하거나 변경할 수 있다. -151쪽

<로크 : 계약된 정부가 해체되는 경우>
1. 국가에서 권력을 가진 자들이 권력을 남용하여 입법부를 변경할 때, 예컨대 사회의 의지인 법률을 자의적인 의지로 대체하거나 정해진 시기에 입법부가 집회를 갖는 것 혹은 그것이 설립된 목적에 의거하여 활동하는 것을 방해할 경우, 자의적인 권력에 의해서 인민의 동의 없이 또는 인민의 공통된 이익에 반해 선거인단이나 선거 방법을 변경할 경우, 군주나 입법부가 인민을 외국 세력에 넘겨서 예속시킬 경우 등.
2. 최고의 집행권을 가진 자가 자신의 임무를 게을리 하고 방기함으로써 이미 제정된 법률이 더 이상 집행될 수 없을 때.
3. 입법부와 군주, 둘 중 어느 한편이 그들의 신탁에 반해서 행동할 때. 예컨대 신민 혹은 공동체 구성원의 재산을 침해하고 자신들이나 공동체의 특정 부분을 인민의 생명, 자유, 재산의 주인 또는 자의적인 처분자로 만들고자 기도할 경우 등. -153쪽

"탄압, 음모 또는 외국에의 양도로 자신들의 예전 입법부가 없어졌을 때 인민들에게 새로운 입법부를 설립함으로써 자신들의 삶에 대비하라고 말하는 것은 너무 늦어서 해악을 더 이상 치료할 수 없을 때 구제를 기대해보라고 말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것은 결과적으로 먼저 그들에게 노예가 되라고 말하고 그 다음에 자유를 지키라고 말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또 사슬로 묶인 후에 그들에게 자유인처럼 행동하라고 말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것은 설사 가능하다고 해도 구제라기보다는 조롱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폭정에 완전히 속박될 때까지 그것으로부터 도망갈 수단이 없다면 인간은 결코 폭정으로부터 안전할 수 없다. 그러므로 인간은 폭정으로부터 벗어날 권리 뿐만 아니라 그것을 예방할 권리도 가지고 있다."(『통치론』제19장 220절)-153-154쪽

"입법부가 사회에 그토록 필요한, 그리고 인민의 안전과 보존이 걸려 있는 업무를 수행하는 것을 무력에 의해서 방해받을 경우, 인민은 그것을 무력에 의해서 제거할 권리가 있다. 상황과 조건을 불문하고 권한 없는 힘의 사용에 대한 진정한 치유책은 힘으로 대항하는 것이다. 권한 없이 힘을 사용하는 자는 항상 침략자로서 전쟁상태를 자초하는 것이며, 따라서 그와 같이 취급되어 마땅하다."(『통치론』제13장 155절)-154쪽

"상대방으로부터의 공격에 대항하기 위해서 그 가격을 막는 방패만을 사용하는 자나 공격자의 오만함과 위력을 약화시키기 위해서 손에 칼을 들지 않은 채 공손한 자세로 대처하는 자는 즉각적으로 저항의 밑천이 떨어짐은 물론 그러한 방어가 그 자신에게 오히려 악화된 사태만을 초래할 것이라는 점을 깨닫게 될 것이다. ...... 따라서 저항을 해도 좋은 사람은 반드시 가격을 하는 것이 허용되어야 한다. (『통치론』제19장 235절)-154-155쪽

"정부의 목적은 인류의 복지다. 그렇다면 인민이 항상 폭군의 무제한적인 의지에 신음하는 것과 통치자가 권력을 방만하게 행사할 때 그리고 권력을 인민의 재산을 보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파괴하기 위해서 사용할 때 종종 저항하는 것 중 과연 어느 편이 인류에게 최선인가?"(『통치론』제19장 229절)-157-158쪽

"이 질문에 대해서 나는 인민이 재판관이라고 답변하겠다. 수탁자 또는 대리인이 그에게 맡겨진 신탁에 따라 잘처신하고 있는지는 대리를 위임한 사람, 곧 위임했기 때문에 그가 신탁에 반해 행동하면 그를 해임할 권력을 여전히 가지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누가 판단하겠는가?"(『통치론』제19장 240절)-15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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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선들의 대한민국 - 한국 사회, 속도.성장.개발의 딜레마에 빠지다
우석훈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6월
품절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는걸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 우리의 부력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 신을 행복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다. (김구, 『백범일지』)-4쪽

죽어가는 것들의 아픔을 느끼되, 명랑함으로 다양성을 만드는 것. 그리고 세상이라는 것은 지구 위에 깃든 거대한 공동체라는 것을 느끼고 이를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키는 것. 그것을 나는 생태 미학이라고 부르고 싶다. -7쪽

한국에서 ‘상식적인 수준의 좌파’라고 하면 정말 한 줌밖에 안되는데, 정말로 좌파 인사 중에는 장관은커녕 행정부처의 국장 자리 정도에 가본 사람도 없다고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우리나라에서 좌파는 학계와 노동계, 그리고 시민단체 일부에 움츠려 살아가고, 기타 사회활동 속에서 자신의 철학을 힘들게 지키면서 생활인으로 살아간다고 봐야 옳을 것이다. 그러니 대체로 표현하면 한국은 극우파 사회라고 할 수 있다. 한국에서 스스로를 ‘합리적 보수’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국제 기준으로 보자면 극우파에 가깝고, 일부 신문이 좌파라고 부르는 정치인들은 경제정책과 사회정책을 들여다보면 중도우파 정도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 정치 지형을 정확하게 보고 싶다면 오른쪽으로 한 칸씩 옮기면 된다. 그러면 제대로 된 이름과 지평에 대한 판단이 나올 것이다. -17쪽

경제이성이 제대로 작동한다고 해도 또 다른 도덕이나 가치에 대한 문제들이 있겠지만, 지금 우리가 보는 한국 사회는 일종의 ‘경제종교’가 움직이는 단계에서의 악몽이다. (중략) 많은 사람이 자기 동네 집값이나 땅값이 오르면 자기가 잘살게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좋게 이야기하면 마음씨가 너무 좋은 것이고, 정확히 말하면 비경제적 행위에 의한 반계급적 현상이다. 자신의 계급을 스스로 배반하는 현상, 이 과정을 통해서 가난한 사람들은 더 가난해지고, 일상에서 그렇게까지 고통을 느끼지 않아도 좋았을 사람들이 더 고통받는 일이 벌어진다. (중략)
비정규직이 비정규직을 강화하겠다는 공약을 내건 정당에 투표하는 것은, 비정규직이라는 제도에 대한 경제이성보다 특정 정당에 대한 종교적 믿음이 더 강하기 때문이라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 (중략) 이 종교가 외치는 것은 최선을 다하라는 것과 당분간 다들 죽었다고 각오 단단히 하라는 것, 두 가지 교리다. 부차적으로 한나라당 후보에게 투표하면 "경제가 살아난다"라는 부활의 예언이 하나있다. -69-71쪽

전문가들은 이런 식의 사업(청계천)을 수도만 틀면 나온다고 해서 ‘수도꼭지’라 부르기도 하고, 임시로 만들어놓은 물길에 물고기를 풀어놓는다고 해서 ‘어항’이라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프로젝트에 ‘생태복원’이라는 이름을 붙이지는 않는다. 이런 식의 도시 조경을 ‘생태복원’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전 세계에서 서울 시민들과 이를 칭송했던 전문가들, 그리고 예술가들 외에는 없다. 비만 오면 도시의 오염 물질이 한꺼번에 청계천을 흐르고, 당연히 생명체가 살 수 없는 BOD의 피크치가 발생한다. 그러면 죽은 물고기를 걷어내고 또다시 물고기를 방류하는데, 이런 숨바꼭질은 청계천이 제대로 복원되는 날까지 끝없이 반복될 것이다. 언제까지 우리의 아이들에게 이것이 ‘자연’이라고 가르칠 것인가? 지금의 그 어린이들이 언젠가 어른이 되어 물질순환과정과 물의 흐름을 알게 되면 그들은 자연스럽게 지금 이 순간에 배운 것이 아주 이상한 것이었음을 깨달을 것이다. -80-81쪽

근본을 따져보자면 한국인들은 모두 전형적인 메갈로마니아들이다. 큰 것을 사랑하며 새로 생긴 것을 사랑하고, 인공적인 것을 사랑한다. 이러한 가치관이 동반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패권주의’성향이다. 힘없는 것은 죽어도 그만이고, 나보다 약한 것은 짓밟아도 그만이며,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죽거나 말거나 상관없다는 것. 이것이 미학적 가치의 위치에 있다. -143쪽

다원성은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누구도 돈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힘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아니면 권력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렇지 않은 것들을 함부로 대하거나 죽여도 된다는 권리를 갖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것을 문화적이고 미학적인 차원에서 구현하기란 쉽지 않은 것 같다. 힘이 없어도, 땅이 없어도, 자신의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생태 미학의 다원성이다. 못생겼다는 이유만으로 핍박받고, 멋지게 말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죽을 필요는 없지 않은가? 그러나 건설 미학은 못생긴 것들, 그리고 말 못하는 것들, 혹은 묵묵히 자신의 할 일을 하는 도시의 자투리땅을 "놀고 있다"라는 이유로 밀어버리려고 한다. 여기에 반하는 것이 다원성의 원치이 아니겠는가. 내가 생각하는 다원성이란 이런 것이다. -177-17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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