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의 불복종
헨리 데이빗 소로우 지음, 강승영 옮김 / 이레 / 1999년 8월
절판


권력이 일단 국민의 손에 들어왔을 때 다수의 지배가 허용이 되고 오랜 기간 동안 지속되는 실제적인 이유는 그들이 옳을 가능성이 가장 크거나 그것이 소수자들에게 가장 공정한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 아니라 단지 그들이 가장 힘이 세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사건건 다수가 지배하고 있는 정부는 정의(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한도 내의 정의일지라도)에 입각한 정부라고 할 수 없다. 옳고 그름을 실질적으로 결정하는 것이 다수가 아니라 양심인 그런 정부는 있을 수 없는가? 그 안에서 다수는 오직 편의의 원칙이 적용될 수 있는 문제들만을 결정하는 그런 정부는 있을 수 없는가? 시민이 한 순간만이라도, 혹은 아주 적은 정도라도 자신의 양심을 입법자에게 맡겨야만 하는가?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양심을 가지고 있는가? (계속)-12-13쪽

우리는 먼저 인간이어야 하고, 그 다음에 국민이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법에 대한 존경심보다는 먼저 정의에 대한 존경심을 기르는 것이 바람직하다. 내가 떠맡을 권리가 있는 나의 유일한 책무는, 어떤 때이고 간에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행하는 일이다. 단체에는 양심이 없다는 말이 있는데 그것은 참으로 옳은 말이다. 그러나 양심적인 사람들이 모인 단체는 양심을 가진 단체이다. 법이 사람들을 조금이라도 더 정의로운 인간으로 만든 적은 없다. 오히려 법에 대한 존경심 때문에 선량한 사람들조차도 매일매일 불의의 하수인이 되고 있다. (계속)-13쪽

법에 대한 지나친 존경심이 빚는 일반적이고 자연적인 결과를 당신은 일단의 병사들에게서 볼 수 있다. 놀라울 만큼 질서정연한 대오를 이루며 언덕과 골짜기를 넘어 싸움터로 행군해 가는 대령, 대위, 하사, 사병, 탄약운반 소년병 등의 행렬에서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의 뜻뿐만 아니라 자신의 상식과 양심에도 어긋난 짓을 하고 있기 때문에 행군은 무척 힘들고 가슴은 마구 뛰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하고 있는 일이 저주받을 일임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다. 그들은 모두 원래는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이제 그들은 무엇인가? 정말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아니면 권력을 잡은 어떤 파렴치한의 명령을 따르는, 걸어다니는 작은 요새나 탄약고인가? -13-14쪽

수많은 사람들이 인간으로서가 아니라 기계로서, 자신의 육신을 바쳐 국가를 섬기고 있다. 상비군, 예비군, 간수, 경찰관, 민병대 등이 바로 그런 사람들이다. 대부분의 경우 그들이 판단력이나 도덕 감각을 자율적으로 사용하는 일은 전혀 없으며 오히려 그들 스스로가 자신을 나무나 흙이나 돌과 같은 위치에 놓아버린다. 그래서 나무로 사람을 깎아 만들더라도 그들이 하는 일을 해내는 데는 별 지장이 없을 것이다. (계속)-14-15쪽

그런 사람들은 짚으로 만든 사람이나 흙덩이 이상의 존경을 받을 자격이 없다. 그들의 값어치는 말이나 개보다 나을 것이 없다. 그런데도 이런 사람들이 보통은 선량한 시민으로 대접받고 있다. 그 외에 대다수의 입법자, 정치가, 변호사, 목사 그리고 관리 등이 주로 자신의 머리를 가지고 국가에 봉사하고 있다. 그런데 이들은 도덕적인 변별력이 거의 없기 때문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하느님뿐만 아니라 악마도 함께 섬기게 된다.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참다운 의미의 영웅, 애국자, 순교자, 개혁가로서, 그리고 인간으로서 그들의 양심을 가지고 이바지한다. 그런데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필연적으로 국가에 저항하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따라서 국가로부터 흔히 적으로 취급을 받는다. 현명한 사람은 오직 사람으로서만 쓰이기를 바랄 뿐이고, 진흙이 되어 바람 구멍을 막는 데 쓰이는 것을 바라지 않을 것이다. 자신이 죽어 흙이 된 다음에는 그런 역할을 맡으려 할지도 모르겠지만. -15쪽

같은 인간을 위해 자시 자신을 모두 내주는 사람은 쓸모없는 이기주의자로 보이지만 자기 자신의 일부만을 주는 사람은 자선가나 박애주의자라고 불린다. -16쪽

우리는 입버릇처럼 말하기를 대중은 아직도 멀었다고 한다. 그러나 발전이 느린 진짜 이유는 그 소수마저도 다수의 대중보다 실질적으로 더 현명하거나 더 훌륭하지 않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당신처럼 선하게 되는 것이 중요한 일은 아니다. 그보다는 단 몇 사람이라도 ‘절대적으로 선한 사람’이 어디엔가 있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다. 왜냐하면 그 사람들이 전체를 발효시킬 효모이기 때문이다. -20쪽

투표는 모두 일종의 도박이다. 장기나 주사위놀이와 같다. 단지 약간의 도덕적 색채를 띠었을 뿐이다. 도덕적인 문제들을 가지고 옳으냐 그르냐 노름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당연히 내기가 뒤따른다. 그러나 투표자의 인격을 거는 것은 아니다. 나는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쪽에 표를 던지겠지만 옳은 쪽이 승리를 해야 한다며 목숨을 걸 정도는 아니다. 나는 그 문제를 다수에게 맡기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책임은 편의의 책임 정도를 결코 넘지 못한다.
정의 편에 투표하는 것도 정의를 위해 어떤 행동을 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정의가 승리하기를 바란다는 당신의 의사를 사람들에게 가볍게 표시하는 것일 뿐이다. 현명한 사람이라면 정의를 운수에 맡기려고 하지 않을 것이며, 정의가 다수의 힘을 통해 실현되기를 바라지도 않을 것이다. (계속)-21-22쪽

대중의 행동에는 덕이란 게 별로 없다. 결국에 가서 다수가 노예제도의 폐지에 표를 던지게 될 때는 그들이 노예제도에 관심이 없어졌기 때문이거나 또는 투표에 의해 폐지될 만한 노예제도가 거의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만이 그때 가서 남아 있는 유일한 노예들일 것이다. 자신의 표를 가지고 스스로의 자유를 주장하는 사람만이 그 표를 통하여 노예제도의 폐지를 앞당길 수 있다. -22쪽

한 인간의 의무가 어떤 악을(비록 그것이 엄청난 악일지라도) 근절하는 데 자신의 몸을 바치는 것이라고는 물론 할 수 없다. 그는 그밖에도 다른 할 일들이 있는 것이며 그것들을 추구할 온당한 권리가 있다. 그러나 그는 최소한 그 악과 관계를 끊을 의무가 있으며, 비록 더 이상 그 악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더라도 그 악을 실질적으로 지원하는 일이 없도록 할 의무가 있다. 내가 다른 사업이나 계획에 전념하고 있더라도, 내가 다른 사람의 어깨 위에 올라타고 앉아 그를 괴롭히면서 내 일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먼저 살펴야 할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먼저 그 사람의 어깨에서 내려와야 할 것이다. 그 사람 역시 자신의 계획을 추진할 수 있도록 말이다. -24쪽

원칙에 따른 행동, 즉 정의를 알고 실천하는 것은 사물을 변화시키고 관계를 변화시킨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혁명적이며, 과거에 있던 것들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그것은 국가와 교회를 갈라놓으며 가족을 갈라놓는다. 심지어 그것은 한 개인 조차도 갈라놓는다. 즉 한 개인 속에 있는 ‘악마적인 요소’와 ‘신적인 요소’를 분리시키는 것이다.
불의의 법들이 존재한다. 우리는 그 법을 준수하는 것으로 만족할 것인가, 아니면 그 법을 개정하려고 노력하면서 개정에 성공할 때까지는 그 법을 준수할 것인가, 아니면 당장이라도 그 법을 어길 것인가? (계속)-26-27쪽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지금과 같은 정부 밑에서는 다수를 설득시켜 법을 개정시킬 수 있을 때까지는 기다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만약 저항한다면 치료가 병보다 더 나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치료가 병보다 더 나쁜 것은 정부의 잘못이다. 정부가 치료를 더 나쁜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왜 정부는 좀더 앞을 내다보고 개혁에 대한 준비를 하지 않는가? 왜 정부는 현명한 소수를 소중히 여기지 않는가? 왜 정부는 상처도 입기도 전에 야단법석을 떨며 막으려 드는가? 왜 정부는 시민들로 하여금 방심하지 않고 정부의 잘못을 지적하며, 정부가 기대하는 이상으로 시민들이 잘하도록 격려하지 않는가? 왜 정부는 항상 예수를 십자가에 매달며, 코페르니쿠스와 루터를 파문하고, 조지 워싱턴과 프랭클린을 ‘반역자’라 부르는가? -27쪽

만약 불의가 정부라는 기계의 필수불가결한 마찰의 일부분이라면 그냥 내버려두라, 그냥 내버려두라. 모르긴 하지만 그 기계는 매끄럽게 닳아서 돌아갈 것이다. 그렇지 않더라도 결국에는 닳아 없어질 것이다. (중략) 그러나 이 불의가 당신으로 하여금 다른 사람에게 불의를 행하는 하수인이 되라고 요구한다면, 분명히 말하는데, 그 법을 어기라. 당신의 생명으로 하여금 그 기계를 멈추는 역마찰이 되도록 하라. -28쪽

나는 이것만은 알고 있다. 즉, 이 매사추세츠 주 안에서 천 사람이, 아니 백 사람이, 아니 내가 이름을 댈 수 있는 열 사람(열 사람의 정직한 사람)이, 아니 단 한 명의 정직한 사람이라도 노예 소유하기를 그만두고 실지로 노예제도의 방조자의 입장에서 물러나며 그 때문에 형무소에 갇힌다면 미국에서 노예제도가 폐지되리라는 것을 말이다.
시작이 아무리 작은 듯이 보여도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한 번 행해진 옳은 일은 영원히 행해지기 때문이다. -31쪽

사람 하나라도 부당하게 가두는 정부 밑에서 의로운 사람이 진정 있을 곳은 역시 감옥이다. -32쪽

노예의 나라에서 자유인이 명예롭게 기거할 수 있는 유일한 집이 감옥인 것이다. 감옥 안에서 그들의 영향력이 상실되고 그들의 목소리가 더 이상 정부를 괴롭히지 못하며 그들이 그곳의 담장 안에서는 더 이상 정부를 괴롭히지 못하며 그들이 그곳의 담장 안에서는 더 이상 정부의 적이 되지 못하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 사람들은 진리가 오류보다 얼마나 더 강한가를 모르는 것이요, 감옥 안에서 불의를 직접 겪어본 사람이 얼마나 더 큰 설득력을 가지고 효과적으로 싸울 수 있는가를 모르는 것이다.
당신의 온 몸으로 투표하라. 단지 한 조각의 종이가 아니라 당신의 영향력 전부를 던지라. 소수가 무력한 것은 다수에게 다소곳이 순응하고 있을 때이다. 그때는 이미 소수라고 할 수도 없다. 그러나 소수가 전력을 다해 막을 때 거역할 수 없는 힘을 갖게 된다. -33쪽

"나라에 도가 있는데도 가난하고 천하다면 부끄러운 일이요, 나라에 도가 없는데도 부하고 귀하면 부끄러운 일이다."(공자)-37쪽

정부는 한 인간의 지성이나 양심을 상대하려는 의도는 결코 보이지 않고 오직 그의 육체, 그의 감각만을 상대하려고 한다. 정부는 뛰어난 지능이나 정직성으로 무장하지 않고 강력한 물리적 힘으로 무장하고 있다. 나는 누구에게 강요받기 위하여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아니다. 나는 내 방식대로 숨을 쉬고 내 방식대로 살아갈 것이다. 누가 더 강한지는 두고보도록 하자. -40-41쪽

정부는 피통치자의 허락과 동의를 받아야 한다. 정부는 내가 허용해 준 부분 이외에는 나의 신체나 재산에 대해서 순수한 권리를 가질 수 없다. 전제군주제에서 입헌군주제로, 입헌군주제에서 민주주의로 진보해 온 것은 개인에 대한 진정한 존중을 향해 온 진보이다. 중국의 철인조차도 개인을 제국의 근본으로 볼 만큼 현명했다. -57쪽

국가가 개인을 보다 커다란 독립된 힘으로 보고 국가의 권력과 권위는 이러한 개인의 힘으로부터 나온 것임을 인정하고, 이에 알맞은 대접을 개인에게 해줄 때까지는 진정으로 자유롭고 개화된 국가는 나올 수 없다.
나는 마침내 모든 사람을 공정하게 대할 수 있고 개인을 한 이웃으로 존경할 수 있는 국가를 상상하는 즐거움을 가져본다. 그런 국가는, 일부 소수의 사람들이 국가에 대해 초연하며 국가에 대해 참견하지도 않고 국가의 간섭을 받지 않고 살더라도 이웃과 동포에 대한 의무를 다하는 한 그들이 국가의 안녕을 해치는 자들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러한 열매를 맺고 또 이 열매가 익는 대로 떨어지게 허락해 주는 국가는, 그보다 더 완전하고 영광스러운 국가, 내가 상상만 했지 결코 보지는 못한 그런 국가가 탄생하도록 길을 열어줄 것이다. -57-5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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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첫 십년의 한국 - 우리시대 희망을 찾는 7인의 발언록 철수와영희 강연집 모음 2
리영희 외 지음, 박상환 엮음 / 철수와영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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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국민이라는 말을 쓰면 안됩니다. 민주주의적 시민이라는 말을 써야 합니다. 국민이라는 것은 국가라는 상대적인 권위를 인정하고 그에 봉사하는 존재로서의 인간들을 말할 때 쓰는 말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해방 후 오늘날까지도 정치인들뿐만 아니고 심지어 결혼식장에서 주례사를 하면서도 ‘국민 여러분’ 이라는 말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무의식적으로 사회적 존재의 구성원인 스스로를 시민이라고 지칭하는 대신 국민이라는 말로 표현합니다. 이것은 벌써 소외의 상징적 표현입니다. 돈, 권력, 힘을 상징하는 국가라는 상위의 가치와 존재를 인정하고 그 밑에 존재하는 개개인들을 국민이라는 정치용어로 부르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스스로를 국민이라고 부를 때 이를 소외라고 볼 수 있습니다. (계속)(리영희)-15-16쪽

우리는 시민이어야 합니다. 시민이란 어떤 권위나 권력도 어느 누구도 지배하지 않는 평등 사회인 시민 사회 속에 존재하는 주체적이고 독립적인 개인을 말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해방 후 50년 동안 권위주의적인 지배자로서의 국가권력은 극우반공이라는 광적인 사상 통제수단을 가지고, 우리의 시민으로서의 삶을 부정하고 우리의 행동을 지배해왔습니다. 이런 지배에 항거하고 투쟁하며 죽어간 선배들은 시민으로서의 자기 존재를 위해 싸웠기에, 소외를 극복하며 삶에 귀중한 보람을 느낀 세대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시민은 독자성을 가지고 자기 결정적이며 자유로워야 합니다. 진정한 의미의 자유인으로서 시민의 삶은 자유로운 인간의 가치를 부정하고 억압하고 탄압하는 정의롭지 않은 것에 대해 항거하며 싸울 때 보람을 느낍니다. 그런 저항 없이 ‘편안한’ 사회가 이루어진다면 우리에게 소망스런 일이기는 하지만 우리 개개인의 삶에 있어서 의미랄까 뭐 이런 것이 박탈되거나 퇴색되는 사회라고 볼 수 있지요. (리영희)-16쪽

유엔인권조약에는 A협약과 B협약이 있습니다. A협약은 사회권의 문제라 부르는 즉, 사회 실업으로부터의 자유, 최소한의 생존권, 사회적 또는 경제적 민주주의와 관련된 협약입니다. B협약은 영장 없이 구속당하지 않을 자유, 사상, 표현, 결사, 집회 등의 자유입니다. 이 중 B협약의 자유들이 보장된다면 그것은 민주주의입니다. (손호철)-56쪽

황도유학의 기본은 원시유학의 특정 요소를 끄집어내어, 천황은 소위 자기 수하의 백성들을 한결 같이 사랑한다는 황도정신에 대한 구호로 변모시켰다는 것입니다. 일부 개량주의자들의 주장과 같이, 일본은 1등 국민이고 우리는 2등 국민이라 생각하고 만주나 몽골은 3등 국민이라 생각하는 그런 민족의 등급을 매기는 것에서도 황도유학이 이용됩니다.
가령 한 가지만 덧붙이자면, 지원제에서 징병제로 전환될 때, 일부 개량주의자와 황도유학자들이 이제야 독립이 되는 계기가 된다고 주장한 바가 있습니다. "우리가 천황을 위해서 군대에 가서 희생을 다하고, 충성을 다하고, 국민된 의무를 다해야 한다."라고 생각한 것이 그들의 논리였습니다. 이런 부정적 맥락에서 실천적 요소에 대하여 황도유학의 논리가 이용된 것입니다. (이이화)-129쪽

성찰이성에 눈뜬 사람은 나와 다른 사람을 만났을 때 서로 좋은 점을 공유하려고 노력합니다. 반면에 성찰이성에 눈뜨지 못한 사람은 나와 다른 사람을 만났을 때 누가 더 우월한지를 견줍니다. 서로 비교하여 내가 우월하다는 점만 확인하려고 합니다. 똘레랑스가 성찰이성을 요구하는 까닭이 바로 이 점에 있습니다.
다름을 용인하라는 정언명령으로서의 똘레랑스는 다름을 용인하지 않고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하고 억압하고 배제하는 앵똘레랑스에 ‘단호히’ 반대할 것을 요구합니다. 모든 다름을 용인하는 똘레랑스이지만 용인할 수 없고 용인해선 안되는 것은 앵똘레랑스입니다. 인류 역사상 똘레랑스 사상이 먼저 생긴 게 아닙니다. 똘레랑스사상은 인간의 앵똘레랑스 행위에 대한 반성적 성찰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즉 앵똘레랑스의 인간 행위가 먼저 있었고 그에 대한 ‘반성적 성찰’로 태어난 게 똘레랑스사상인 것입니다. (홍세화)-162쪽

사회구성원들에게 합리적 이성이 결핍되고 긍정적 가치가 공유되지 못할 때, ‘다름’의 관계는 서로 부정하는 관계로만 설정됩니다. 공익과 진실이라는 목표를 놓고 서로 다른 의견이 합리적 논거를 통해 경쟁하는 대신에 서로가 서로를 극복해야 하는 부정의 관계로만 설정되는 것입니다. 서로 용인하는 경쟁 대상은 설 자리가 없고 내 편이 아닌 모든 사람이 극복대상이 되어버립니다. 소수자는 강자, 다수 집단에게 아주 쉬운 극복대상이 되고 인권 침해의 희생자로 전락할 위험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홍세화)-16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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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 오프 더 레코드 - 여자들끼리만 공유하는 연애의 모든 것
박진진 지음 / 애플북스 / 2008년 6월
평점 :
절판



  읽는 동안 뜨끔해서 혼났다. 그녀*가 볼까 두려워 이런 소리 못하겠지만 나는 스스로  '나쁜 남자'이기는 해도 '못된 남자'는 아니라 생각해왔다. (둘의 차이가 뭔지 정확히 전달하기 힘든데 이렇게밖에 표현하지 못하겠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나니 나만의 '착각'에 불과했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 한편으로는 이 책의 어느 구절에 공감을 표하며 아 그래, 난 그랬지, 그랬어, 끄덕이면서 괜찮은 남자라는 생각도 해본다. 어쩔 땐 영 아니게 보이면서, 어쩔 땐 또 괜찮아 보이고, 어느 장단에 맞추어 스스로를 평가해야 하는건지 모르겠지만, 그래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자 생각하고, 잘못한 건 잘 하려고 애쓰면 되지,라는 결론으로 맺는다. 

  이 책은 남녀 간에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사건'을 다루고 있고, 그 중 상당 분량을 둘만의 '그것'에 할애하고 있다. 그것은 대개는 오래 사귄 남녀들에게만 해당하는 행위라 여겨지기만, 길지 않은 연애 기간임에도 이 책 처음부터 끝까지 등장하는 모든 언행들이 직접 다가와 부딪쳤다. 그것은 아직 경험해보지 않은 미지의 영역이지도, 잘 몰라서 궁금한 영역도 아니다. 저자의 펜은, 생생하지는 않지만 언제나 끄집어내면 떠올릴 수 있는, 나의 과거의 기억들-엄밀히는 그녀*에 대한 기억-을 모두 한 자리에 펼쳐놓았다. 

*'그녀들'이라 말하지 않는 건, 연애 상대가 한 명은 아니었지만 서로 다른 느낌과 기억을 안겨준 전 여친들을 '들'로 묶어 한꺼번에 말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헤어짐이 어찌되었든 모두 각기 다른 기억으로, 다른 느낌으로 소중하게 자리하고 있다.

  좋아함과 사랑함이 어떻게 다른지를 고민하던 첫사랑의 시절부터, 연애의 각 단계가 보다 빨리 진행될 즈음인, 그래서 심지어는 내가 이 여자를 좋아하는 것이 맞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던, 가까운 과거까지, 만남과 헤어짐, 그 과정이 어찌되었건 나는, 사랑했다. 마지막 이별을 경험한지 시간이 꽤 흘렀고, 내게 다시 사랑이 찾아오길 바라지만, 일부러, 애써서, 인위적으로, 사랑을 만들고 싶지는 않다. 언제나처럼. 기대치 않은 곳에서, 기대치 않은 때, 사랑은 불쑥 찾아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마냥 자신의 운명이 찾아오길 한없이 바라는 그런 기다림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을 만나는 과정 속에서 자연스럽게 마음이 움직이는 그런 인연을 만나고 싶다. (그래서 내가 소개팅은 안한다고 했잖아!)

  이 책은 호기심으로 도서관에서 뒤적이던 그런 연애서와는 차원이 다르다. 저자가 내가 아는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정말로 여기 쓰여진 문장들은 꽤나 깊다. 그건 저자의 글발이 좋아서이기도 하겠지만, 단순히 글발만 좋아서는 이럴 수 없다. 저자의 생생한 연애경험과 성찰로 인한 직접체험, 그리고 주변인들과의 대화와 상담과정을 통한 간접체험이 함께 저자의 머리와 마음을 열심히 헤집어놨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나 또한 쉽게 몰입했고, 때로 양심의 가책을 느끼며, 때로 스스로 토닥이며 마지막 장을 덮었다. 왜 그때 내가 그랬을까, 왜 그렇게 헤어졌을까, 왜 그보다 더 잘해주지 못했을까, 이런 생각이 끊임없이 오갔다 . 장면을 하나씩 떠올리며 지난 내 행동을 되짚어봤다. 웃음도 나왔다. 눈물도 나왔다.   

  지난 연애엔 공통점이 있다. 모두 다 그랬던 것은 아니지만, 대개 먼저 헤어짐을 '통보'했고, 눈물로 붙잡는, 때로는 격한 감정을 드러내며 나를 원망하는 그녀에게, 아주 냉정하게 무 자르듯 관계를 끊었다. 당장은 힘들지라도 그건 '잘한짓'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이 책을 읽은 다음에도, 그건 한편으로 잘한짓 같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순전히 관계를 깔끔히 정리하기 위함이었을까 생각해보면, 상대방에 대한 배려는 고려치않은 나의 일방적인 '관계의 단절'에 가까웠다. 어느날의 일방적인 통보와 눈물, 그것이 다였다. 그러면서도 시간이 지난 뒤 연락하는 그녀를 막지 않고 친구로 다시 받아준 건, 내 잘못이었다.

  이 책에 의하면 헤어진 여자친구를 다시 친구로 만나는 건, 매우 못된 행위이다. 그런데 나는 과거의 여자 중 몇몇을 실제로 친구로 만나고 있고, 그들도 나도 연애감정으로 서로를 대하진 않는다. (그렇다고 둘 사이의 지난 일을 잊었다는 말은 아니다.) 추측일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믿는다. 분명 다시 만나면 안되는 인연이 있는가 하면, 다시 만나면 오히려 더 좋은 친구 사이로 만날 수 있는 인연도 있다. 저자는 그것을 간과한 듯 하다. 심지어는 짝이 있는 과거의 여친과도 친구로서 자연스럽게 대화한다. 그리고 더 놀라운 건 그 여인의 새로운 짝 또한 내 존재를 알고 있다는 것이다. 해괴하다 말할 수도 있겠지만, 엄연히 현실이다. 사람의 마음이 어디 그렇게 스위치 껐다 켜듯이 버전을 바꿔가며 옮겨다닐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실제로 그렇다.

  분명 저자는 사랑하는 두 남녀가 서로의 몸을 구석구석 탐하듯 연애에 있어 꼭 알아야 할 것들에 대해 세심하게 건드리지만, 여기 활자화된 모든 경험들이 수학공식처럼 적용돼 반드시 같은 결론을 도출하는 건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이건 어쩌면 저자가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연애와 사랑은 언제나, 자로 재듯, 공식에 적용해 도출하듯, 항상 같을 수는 없으며, 같은 경우 또한 있을 수 없다. 여기 쓰인 말들이 잘못되었다고, 거짓이라고 말하긴 어렵지만, 독자들이 거시적인 차원에서 옳고, 미시적인 차원에서 다를 수 있음을 인지한다면, 저자의 깊이 있는 문장을 통해 자기 자신을 돌아볼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이 책은 소임을 다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연애와 사랑은 언제나, 케이스 바이 케이스다. 참고할 순 있겠지만 그것을 진리로 받아들이면 안 된다. 뭐뭐 해야한다는 식의 단정적인 서술은 진리치를 담보하고 있는 듯 보이지만, 그건 한 권의 책으로서, 하나의 완성된 글로서 보이기 위한 장치쯤으로 생각해야 한다. 예외가 빠져나갈 구멍은 언제나 열려있으며, 때로는 예외가 대세가 되기도 한다. 누군가에게는 대세인 것이 누군가에게는 예외로 현재한다. 나는 이 책을 통해 지난 연애를 돌이켜 보았고, 책상 앞에 두고 한 꼭지씩 다시 차근차근 읽으며 지난 연애의 장면들을 하나씩 꺼내어 볼 것이다. 연애휴식기에 돌입한지 오래인 나에게, 저자는, 언제 올지 모르는 다음 연애를 준비하라 말한다. 다시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도록.  

p.s.

1. 누군가로부터 선물받아 읽은 책인데, 여러모로 나를 돌아보게 한 책이라 시련의 아픔을 겪고 있는 한 지인에게 소개해줬다. 자신이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잘 모르겠는, 만남과 헤어짐 사이에서 갈등하다 결국 헤어짐을 선택한 지인에게 부디 이 책이 쓴 약이 되길. 아픔을 치유하는 약이 되길 바란다.  

2. '여자들끼리만 공유하는 연애의 모든 것'이라지만 이 책엔 다분히 남자를 의식한 듯한 문장이 숨어있다. 어느 구절에서 난 그걸 발견했다. 분명 남자에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여자들끼리만 공유하는'은 여자들이 꼭 알아야 하는 것이라는 의미 정도이고, 여자들만 알아서는 좋은 연애가 이루어지기 힘드니, 연애의 다른 상대자인 남자들도 꼭 읽어야 한다는 암묵적인 메세지. 남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부제인 셈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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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8-06-24 2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내가 이 책을 읽기엔... 우리 딸을 위해선 좀 후에... 그래도 추천은 꾹! ^^

마늘빵 2008-06-24 23:11   좋아요 0 | URL
^^ 네. 물리적인 나이가 중요한건 아니지만, 대략 20대 중반에서 30대 초반에 읽으면 좋을 듯 합니다. 아니 어쩌면 미리 읽어두고, 수년 후 다시 읽어보며 돌아보는 게 더 나을수도. 비포 선라이즈, 비포 선셋 영화처럼요.

2008-06-25 00: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매지 2008-06-25 0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점에서 슬쩍 봤는데 꽤 공감되는 글들이 많을 것 같았어요 :)
연애는 정말 케이스 바이 케이스.ㅎ

마늘빵 2008-06-25 09:34   좋아요 0 | URL
네 케이스 바이 케이스 ^^ 그게 맞죠. 근데 경험은 축적되더라고요. 축적되면서 계속 변화한다는.

플라시보 2008-06-25 0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프락사스님. 정말 좋은 리뷰 감사합니다. 이 리뷰가 거의 이벤트 마지막에 올라왔음에도 불구하고 가장 많은 추천수를 받았네요. 축하드려요. 일단 상품권 10만원의 주인공은 아프락사스님이 되셨습니다. 짝짝짝^^

제가 리뷰를 쓸때는 몰랐습니다. 잘 쓴 리뷰는 그저 책 읽는 사람들 즉 독자들에게만 좋은건줄 알았어요. 근데 아니군요. 저자가 되고 나니 이 리뷰는 독자일때보다 훨씬 고맙고 마음에 와닿습니다. 내가 놓친 부분들. 미처 알지 못했던 부분들까지 일일이 꼬집어주시니 더더욱 감사할 따름입니다.

한가지 죄송스러운건 제가 상품권을 미리 구매했어야 하는데. 신청만 해놓구서는 입금할 시간이 없어서 (요새 정신이 많이 없어서 사실은 구매 신청만 해놓은걸 입금 완료로 생각했습니다. 늘 책살때 신용결제 하던 버릇이 되어서요.) 지금 구매를 하기 때문에 조금 기다리셔야 한다는겁니다. 아...정말 죄송합니다. 조금 전에서야 알았어요. 그냥 구매 신청만 해놓고 입금 안했다는걸요. (상품권은 카드로 구입을 못하더라구요.)

그래도 최대한 빨리 상품권을 보내드리겠습니다. 직접 보내드릴께요. 온라인으로 상품권이 아프락사스님께 가도록 하는 방법도있겠지만 작은 편지라도 함께 보내고 싶어서요. 너무 고맙습니다.

저는 이제 이벤트 종료를 알려야겠네요. 사실 이벤트 하면서 아는 사람이 받았으면 좋겠다라는 다소 팔은 안으로 굽는 생각을 했더랬는데. 꿈이 이루어졌군요. 더구나 단순히 아는 사람이 아닌. 정말 잘 쓴 리뷰에 돌아가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책을 칭찬해주셨기 때문이 아니라 본인의 경험도 녹여가면서 너무 진실하게 써 주셔서요.

다시한번 축하드리고 감사드립니다.^^

마늘빵 2008-06-25 09:38   좋아요 0 | URL
끄아 플라시보님 ^^ 주인 없는 새벽에 들러주셨군요. 감사합니다. 어제 밑줄긋기 올리기 전에 리뷰 먼저 쓸까 하다가 피곤해서 그냥 잠들어버렸다는. 어젯밤에도 무지 피곤했는데 쓰고 잤어요. 쓰고선 글이 썩 맘에 들진 않았어요. 비문도 많고. 상품권 유익하게 잘 쓰겠습니다.

무해한모리군 2008-06-25 0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벤트 당첨 축하드리고 이글을 보니 이책 읽어보고 싶네요.. 요즘 긴축재정 중인데 아잉 -.-

마늘빵 2008-06-25 09:39   좋아요 0 | URL
^^ 찬찬히 과거사를 끄집어내어 생각하며 읽으면 느끼는바가 많을 거에요.

도넛공주 2008-06-25 0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연애는 이제 안할거라서! 책은 읽지 않을 것이지만! 아프락사스님의 리뷰는 정말 애틋하네요.

마늘빵 2008-06-25 10:05   좋아요 0 | URL
연애를 안하심 어떡해요. 그 좋은걸. ( '')
 
연애, 오프 더 레코드 - 여자들끼리만 공유하는 연애의 모든 것
박진진 지음 / 애플북스 / 2008년 6월
절판


사랑이 식는 건 한순간이다. 실제로는 서서히 조금씩 식어가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당사자에게는 한순간이다. 더이상 떨림이 없는 손, 다시 하이힐을 신기 시작한 나, 어느 날은 식어가는 사랑이 너무 서글프게 느껴져 그의 팔을 가만히 베고 누워 소리 없이 울기도 했었다. 전에는 보였지만 굳이 인정하지 않았던 단점, 그리고 새로 보이기 시작한 단점들 앞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었다. 중요한 건 그 사람의 단점이 아니라 그걸 보는 내 눈이란 것을 알았지만 사랑이 식어버린 눈으로는 더 이상 애정 어린 시선으로 봐줄 온기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23쪽

사랑을 하는 동안에는 포기한다는 사실조차 느끼지 못했던 것들이 어느 날 아깝게 느껴지는 건 순식간이다. 사랑 때문에 못한 것들, 심지어는 내 사랑에서 충족되지 못한 부분들까지 못마땅해진다. 사랑을 하고 있으면서도, 모든 걸 다 걸고 제대로 된 사랑 한 번 해봤으면 좋겠다는 생각부터, 어디선가 그런 사랑이 나타날 것만 같은 느낌까지 별의별 생각이 다 든다.
사랑은 변한다. 그리고 모든 사람에게는 단점이 있다. 우린 그저 잠깐 그걸 눈감아줄 뿐이다. 이렇게나 얄팍하고 미덥지 못하고 신념도 잘 뒤바뀌는 인간들이 대체 사랑이란 걸 왜 할까? 그건 사랑이 식는 과정의 슬픔보다 콩깍지가 쓰인 사랑의 순간이 너무 행복해서일 것이다. -24쪽

사람들은 대부분 첫사랑을 좋게 기억한다. 뭔가 잘 모르고 순수했던 시절이라서 서툴렀지만 그래도 그때는 ‘진심’이라는게 존재했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 진심은 서로가 다시 만나면 언제든 부활할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첫사랑은 원래 이뤄지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어서 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만난다고해서 그 이유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내가 참을 수 있는 그 무언가가 되지도 않는다. 지난날의 좋았던 기억만 가지고 다시 만나보지만, 그건 좋았던 일만 있어서가 아니라 편리하게도 우리의 뇌가 그것만을 취사선택해서 기억했기 때문이다.
지나간 일은 그냥 지나가게 둬야 한다. 세월의 흔적을 다 버릴 수 있는 건 노래 가사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그 흔적들을 다 떠안은 채 다시 예전처럼 사랑할 수는 없다. 세월만 흐른 게 아니라 우리의 일부분도 그 세월 안에 흘러가버렸기 때문이다. 첫사랑은 되도록 만나지 않는 게 좋다. 그냥 좋았던 기억, 그걸로 충분하다. -50-51쪽

세상에서 가장 ‘등신쪼다’같은 일을 꼽으라면 헤어진 남자에게 친구로라도 만나고 싶다며 매달리는 것이다. 그렇게 못잊겠걸랑 차라리 눈물 콧물 다 짜가면서 마지막으로 딱 한 번만 애걸복걸해보고, 그래도 안 된다면 깨끗하게 잊는 게 맞다. 괜히 자존심 한 조각은 남겨두고 싶어서 친구 어쩌고 하는 어설픈 가면을 써봐야 상대는 이미 어떤 마음으로 친구 운운하는지 다 알고 있다. 그러면서도 못 이기는 척 친구로 받아주는 놈은 십중팔구 진짜 나쁜 남자다. 적어도 자기가 아니라면 상대방의 미련 정도는 싹을 잘라줘야 하는데 이건 그 싹에 물을 주고 앉았으니 나쁜 남자란 말도 아깝다. -104-105쪽

섹스는 분위기다. 왜 여자들이 촛불도 켜놓고 침대에 꽃잎도 뿌리길 바라겠는가. 또 제아무리 평소에는 깡소주를 즐기나 하더라도 그날만큼은 맛도 모르는 와인을 고집하겠는가. 그것은 섹스할 때 뭔가 그럴듯하고도 로맨틱한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해서이다. 신음이라고 해서 어디서 산모가 애 낳나 싶을 정도의 신음을 말하는 게 아니다. 귓전에 살짝살짝 흘리듯 내는 신음은 아마 섹스 테크닉 못지않게 서로에게 만족감을 선사할 것이다. -110쪽

우리는 바람을 피우기 전에 딱 한 가지를 생각해야 한다. 그건 현재 사랑하는 사람이 이 일을 알게 될 경우 받게 될 마음의 상처이다. 아마도 바람난 애인 때문에 마음고생을 해본 사람이라면 이 말이 무슨 말인지 잘 알 것이다. 세상에 배신만큼 사람을 아프게 하는 건 없다. 믿었던 사람에게 찍히는 발등이 얼마나 아프고 고통스러운지 모른다. 간혹 자기를 배신한 사람이 작정하고 자신을 이용했다는 사실보다 그들의 바람 상대가 믿었던 친구나 애인이라는 점에 더 오래 마음 아파한다. -196쪽

연애가 좋은 건 새로운 사랑이 찾아왔을 때 얼마든지 선택의 기회가 있어서이다. 지금의 사랑보다 훨씬 더좋은 사랑이 찾아왔다면 미련 없이 떠나도 좋다. 그러나 상대방이 마음 아파할까 봐 차마 고백하지 못하고 양다리를 걸친다면 그건 정말로 이기적인 행동이 아닐 수 없다. 모르기만 하면 모든 게 다 괜찮은가? 결혼이라는 이름으로 결속된 남녀의 경우 새로운 사랑을 선택하려면 너무나 많은 희생이 필요하다. 하지만 연애의 경우는 다르다. 물론 상대방은 엄청난 마음의 상처를 받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두 사람을 사랑하는 당신을 원하지는 않을 것이다. 상대방을 위한답시고 이 사람도 사랑하고 저 사람도 사랑한다면 그 사람은 둘 중 어느 하나도 진지하게 사랑하고 있지 않는 것이다. -196쪽

시간이 흐르면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당연히 단점이 보일 것이다. 하지만 사랑은 이 단점을 견디느냐 못 견디느냐아 아니다. 견디고 있다면 이미 그건 사랑이 아니다. 도저히 어쩔 수 없는 단점이라면 내가 조금씩 노력해서 그가 고쳐나가도록 해야 할 것이고, 만약 조금씩 양보하면 되는 단점이라면 그 단점 그대로 받아들이고 이해해야 한다. 이 단점 때문에 그 단점을 전혀 갖고 있지 않은 사람과 바람을 피우는 방법은 지혜로운 방법이 아니다. 바람의 상대 또한 단점을 갖고 있다. 단점 없는 사람이 어디 있고, 완벽하게 내 마음에 드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197-198쪽

여자들은 사랑을 하면 자신의 전부를 거는 경향이 있다. 생활 자체에 사랑이 함께하기를 바란다. 하지만 남자들은 처음에는 여자와 같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정상적인 생활로의 복귀가 여자보다는 훨씬 빠르다. (중략)
어쩌면 남자들이 우리처럼 사랑에 온 신경을 집중하지 않는 건 바로 이런 차이 때문인지도 모른다. 여자들과 달리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하지 못하는 그들에게 사랑만을 강요하는 건 다 포기하란 소리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남자에게 너무 많은 집중도를 요구하는 것은 내가 1순위일 때만 가능하다. 그리고 그것은 연애 초창기에나 그렇다. 시간이 지나고 여자친구가 일상으로 자리 잡으면 그는 늘 해왔던 생활로 다시 복귀하려고 한다. 여자친구가 있어도 늦게까지 회사 일을 하고 친구들을 만나 술을 마시며 컴퓨터 게임을 한다. 그러나 여자들은 이런 일들을 결코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 나는 도대체 당신에게 어떤 존재이냐며 따진다. 그러면 남자들은 여자들을 이해하기보다는 지나치게 보챈다고 생각한다. (중략)-216-218쪽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남자들이 여자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여자친구가 싫어져서 혹은 당신의 존재가 너무 익숙해져서 그런 것은 아니다.
그들은 우리를 제쳐두고 다른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해왔던 일을 하는 것이며, 단지 달라진 것은 여자친구가 있다는 사실뿐이다. -219쪽

사랑을 계산하는 시기는 이 사람과 사귈지 말지를 고민하는, 연애를 시작하기 바로 전이어야 한다. 이미 연애를 시작했다면 그런 계산은 접어야 한다. 사랑하는 도중에 계산하기 시작하면 누구나 자기가 아깝다는 생각만 한다. 그런 상태에서는 상대방을 충분하게 사랑하지 못한다. 사랑은 천년만년 지속되는 게 아니다. 언젠가 끝난다.
그렇게 때문에 사랑할 수 있는 그 시간에 후회 없을 만큼 충분히 사랑해야 한다. 오래전에 끝났던 사랑이 아쉬워 다시 만난다고 해서 예전보다 더 사랑할 수 있는 기회 같은 건 없다. 그때의 그와 나는 이미 과거의 인물이다.
아무리 변하지 않았더라도 서로 분명 달라져있다. 다시 사랑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새로운 사랑을 하는 것이지, 과거의 사랑을 이어가는 게 아니다.
누군가가 헤어짐을 고민하고 있다면 제일 먼저 충분히 사랑했는가를 자신에게 물어보라고 말하고 싶다. 아직 그와 하고 싶은 일이 더 많다면, 그와 함께할 행복한 일들이 남아있다면 다 해보고 헤어져도 늦지 않다. -223쪽

첫사랑을 두고두고 잊지 못하는 건 단지 그게 처음이어서가 아니다. 뭘 잘 몰라서 충분히 사랑을 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 사랑이 자꾸만 생각나고 아쉬운 것이다. 생각보다 첫사랑의 기억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어떤 사랑을 해도 첫사랑을 잊지 못한다. -2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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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읽는 CEO - 명화에서 배우는 창조의 조건 읽는 CEO 2
이명옥 지음 / 21세기북스 / 2008년 3월
평점 :
품절



  창의적인 사람인가? 나 자신이 창의적인 사람인지 아닌지 여부는 내가 사물을 여러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는지에 달려있다. 대개의 많은 사람들은 사물이 보여지는 그대로를 바라보나 어떤 사람들은 '보여지는대로'를 넘어 그 사물에 자기 해석을 가함으로써 사물을 뒤집어보기도 한다. '수동적인 바람봄'이 아닌 '능동적인 바라봄'을 통해 사물이 가진 다른 속성들을 끄집어낸다. 창의성은 이로부터 나온다. 국민대 미술학부 교수이자 사바나 미술관장인 이명옥에게 "예술은 일상이고, 업무이고, 여가다." 그녀 자신이 직접 창작 활동을 통해 작품을 만들어내지는 않지만, 그녀는 만들어진 작품을 새롭게 배치하거나 그것에 해석을 가하고, 때로 작품을 만든 예술가들을 만나면서 '창의적인 인간'이 되기 위한 기본 환경에 놓여있다.

  이 책의 주제는 '명화에서 보는 창조적 지혜'이다. '그림 읽는 CEO'라고 해서 나름 자기계발류의 상업적 흐름에 편승하고자 했으나 이건 어디까지나 책을 홍보하고 팔기 위한 장치일 뿐이고, 기본적인 컨셉은 '명화를 통해 보는 창조적 지혜'라 할 수 있다. 이 책은 미술관에서 이런저런 작품들을 새롭게 배치하고 꾸미는 등 작업의 연장이라 할 수 있다. 여기 실린 화가들과 그들의 작품을 하나의 주제로, 또 그 안의 여러 주제로 세분화시켜 분류하고 해설하는 일은, 또 하나의 창작 활동이다. 1부에서는 작품을 통해 예술가들의 창의적 생각 기법을 벤치마킹하고, 2부에서는 예술가적 창의성을 혁신의 원동력으로 삼으며, 3부에서는 예술가들의 창의성을 빌어 자신을 재창조한다.  

  그림에는 문외한인지라 여기 실린 그림 중 익숙한 것은 몇 되지 않는다. 나름 유명한 화가들이고, 유명한 화가의 작품들일진대, 내가 직접 눈으로 본 건 르네 마그리트의 <골콘드> 정도뿐. 다른 몇몇 작품들도 어딘가에서 본 적은 있지만, 그 작품이 누구의 것인지도 모르고, 제대로(?) 감상해 본 바도 없기 때문에 '작품을 접했다'고 말하긴 어렵다. 전시회에서 직접 본 이후 마그리트의 그림에 빠졌다. 어쩌면 그림을 좋아하는게 아니라 그림 밑에 달린 마그리트의 한 줄 문장을 더 좋아하는건지도 모르겠다. 단지 그림만 내 앞에 놓여있었다면 나는 별다름 감흥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림 아래 달린 한 줄 문장은 그림과 어우러지며 마그리트의 메세지를 생생하게 전달해준다. 이 책의 15쪽에 실린 <골콘드>는 명동거리 어느 건물 외벽에서 본 것 같다.

  책을 넘기다보면 화가들은 그림을 잘 그려서 유명해진게 아니고, 그림을 못 그려도 그림 안에 담긴 메세지나 그 기법이 독특하고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잡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잠자는 집시>라는 그림을 그린 앙리 루소라는 화가는 정규 미술 교육을 받아본 적도 없다고 한다. (<화가의 똥>을 그린 안찬홍도 마찬가지다.) 데생, 미술사, 원근법 등의 기초에도 무지했던 그가 세관일을 하며 나이 사십에 그림을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또 그들끼리의 미술계로부터 왕따당하고 무시당하면서도 주목받을 수 있었던 건, 열정과 꾸준함, 그리고 창의력 때문이었다. 고갱은 "루소의 그림에는 진실이 있어, 미래가 있다고. 바로 여기에 회화의 진실이 있"다고, 피사로는 "느낌이 학습에 의한 기법보다 우월하다"고 말했다 한다. 실력이 아닌 표현 방식과 느낌이 작품의 기준이다.  

  살바도르 달리며, 앤디 워홀 같은 이들은 그림보다는 그림 외적인 활동으로 주목을 받고 유명해졌으나,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그것도 자기를 창조하고 가꿔나가는 하나의 능력이라면 능력이다. 미켈란젤로와 같이 20미터 높이의 비계에 올라가 척추가 휘고, 관절염과 근육 경련, 안료로 인한 눈병까지 겪어가며 고된 작품 활동을 거쳐 순수하게 작품으로만 인정받은 이들이 있는가 하면 작품 외의 쇼맨쉽과 놀이로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상업적으로 이용해 자신을 팔아먹은 화가들도 있다. 엄밀히 예술이 아닌 포장술의 달인이라고 불러야겠지만, 그들의 작품도 나름의 독특한 컨셉과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있다.

  여기 실린 모든 예술가들의 공통점은 그들이 꾸준히 공부하고 현실을 극복하고 자신을 성찰함으로써 이름을 날리고 작품을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그들이 작품을 탄생시키기까지, 오늘날 사람들에게 주목받기까지의 과정은 각기 다르지만, 그들 모두는 무엇인가를 꾸준히 시도하고 실험하고 그것에 자기 자신을 내던졌다. 내가 진심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꾸준히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나는 발전할 수 있다. 창의성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자기 삶을 통해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그들은 보여지는 사물을 그대로 보지 않고 스스로 만들어낸 창을 통해 재해석함으로써 자기를 발견했고 탄생시켰다. 이건 누구나 할 수 있다. 단지 누구나 하지 않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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