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왕국의 게릴라들 - 삼성은 무엇으로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가
프레시안 엮음, 손문상 그림 / 프레시안북 / 2008년 2월
평점 :
품절



  오늘 오후 삼성특검 발표가 났다. 결과야 신문, 티비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그대로다. 김용철 변호사와 천주교정의사제단을 비롯한 이 책에 등장하는 김상조, 노회찬, 심상정, 이상호, 김성환은 모두 그간 뻘짓하느라 고생했다. 어떡하냐, 그렇게 뻘짓했는데 아무런 소득도 없고. 삼성은 굳이 애써 돈 들여가며 변호사를 고용할 필요도 없이 정부가 국선 변호사를 고용해 열심히 해준 결과를 얻어냈고, 뭐 이건희 회장와 사모님, 아들내미가 티비에 얼굴 좀 비춰주고, 검찰청에 왔다갔다 발품 좀 팔긴 했지만, 택시비도 안드니깐 뭐 손해볼거야 없지. 누구는 티비에 얼굴 한 번 내보이고자 몸도 파는 세상인데, 공짜로 얼굴 보여주고 얼마나 좋냐 그래. 

  손문상 화백이 이건희와 이재용 캐리커쳐를 왕관까지 씌워줘가며 참 멋지게 그려줬는데, 손문상 화백이 왕관을 씌워줘서 결과가 이렇게 나온게 아닐까. 정말 그런건가. 대한민국에서 대통령보다 더 센 권력이 딱 두 개 있다. 삼성과 김앤장이다. 나란히 두 권력에 대한 비판서가 출간 되었건만, 그저 그들을 비판할 수 있는 책을 출간했다는 사실만으로, 그들로부터 소송을 당하거나 해코지를 당하지 않았다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하는가보다. "삼성이란 절대 권력에 맞서 싸운 사람들 이야기"라는 카피는, '진실'이다. 삼성은 절대 권력이 맞고, 절대 권력이 맞기 때문에 아무리 증거나 나오고, 잘못한 이들이 자백을 하고 해도 쓰러질 수 없는거다. 왜냐면 절대 권력이니까.

  김용철 변호사 이전에 노회찬과 심상정, 이상호, 김성환이 오래전부터 참 열심히 싸워줬다.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언론에는 비춰지지도 않고 서운하게시리. 잠잠하다 싶었는데 삼성의 절대 권력을 나눠먹던 김용철 변호사가 어느날 갑자기 뻥하고 터뜨려 세상의 모든 카메라를 받더니 카메라만 받고 끝났다. 이제부터 김용철 변호사는 조직의 배신자요, 돈 되니까 들어갔다 열심히 돈 받아먹다 돈 안주니까 여지껏 돈 준 회사 해코지한 나쁜 놈이요, 세상의 모든 카메라를 독차지했으니 이기주의자요, 가족보다, 회사보다, 지인보다, 정의를 사랑했으니 가정파괴범이요, 세상에 가족도 친구도 없는 놈이다.

  삼성특검 발표가 나자 어떤 이는 벌써 예언을 하기도 하더라. "속보입니다. 이건희 회장 건강상 이유로 형집행정지" 몇날몇시에 나올 기사인지는 모르겠지만, 가까운 미래에 보게 될 것이다. 이건희 회장이 휠체어 타고 나와서 건강상의 이유로 형집행이 정지되었다는 기사를, 그리고 초췌한 모습으로 병원에 실려가는 모습을. 그렇게 또 한바탕 시끄러운 사건은 세상 모든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져갈 것이다. 그리고 삼성은 다시 또 열심히 국가를 지배할 것이다. 대통령과 국회의원과 검찰과 국세청과 기타 권력있는 모든 이들에게 자기가 가진 재산을 조금씩 나눠주며 세상을 풍요롭게 하고자. 그 옛날 단군왕검의 홍익인간 정신처럼, 세상을 붉고 이롭게, 아니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한다는 사명감을 갖고서.

  짜고치는 고스톱 흥미진진하게 잘 봤다. 프레시안북과 프레시안 기자들, 그리고 인터뷰에 응해준 이 책 표지에 이름찍힌 김용철, 사제단, 심상정, 노회찬, 김상조, 이상호, 김성환 모두 수고했다. 짜고치는 고스톱에 흥미를 더해줘서. 냅다 그냥 짜고 치면 보는 사람은 재미없다. 중간에서 딴지도 걸어주고, 씨발씨발 하면서 화도 내고 해야, 아 이 게임이 어떻게 진행될까 궁금하다, 이런 마음이라도 가져보지. 노회찬, 심상정 두 사람은 그래도 나름 권력을 가졌던(?) 국회의원으로서 뭐라도 해보려고 했을텐데, 이제 국회의원 뺏지도 반납하게 됐으니 그것두 힘들게 됐고. 에라이. 당신같은 사람들 없으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냐. 뭘 보고, 뭘 믿고 살아가냐.

  김용철 변호사, "너무 힘들어 그만하고 싶다"고, 이제는 지쳤다고 했다는데, 그 정도면 참 열심히 했습니다. 근데 하던 건 마저 하고 쉬었으면 합니다. 거 왜 있잖아요. 해외 언론 BBC나 NHK에 공개하겠다던 그 동영상, 그거라도 마저 찍고 보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참 나쁘다. 삼성. 이건희. 참 나쁜 기업이다. 참 나쁜 회장이다. 그냥 잘못한거 잘못했다고 인정하고 벌받고 깔끔한 마음으로 다시 시작하면 되지 않느냐. 잘못한거 잘못했다 인정하면 모두에게 용서받을 수 있을텐데 왜 인정을 안하냐. 그리고 니들 특검. 그게 한다고 한거냐. 증거 다 나왔구만 뭘 인정이 안 돼 안 되긴. 왜 이건희가 인정 안하면 증거 불충분인거야? 증거로서 효력이 없는거야? 그런거야? 에이, 참 못됐다. 어쩜 그래. 돈 없는 내가 그동안 열심히 꼬박꼬박 세금 내줘가면서 조사하라고 응원해줬구만 어떻게 내 돈을 그렇게 써. 얼마 안되는거 기껏해야 니들 밥 값 밖에 안되겠지만. 에이, 그래도 그러는거 아냐.

  애초 터뜨렸던 주요 국가 기관의 수장들에게 들어갔던 뇌물 이야기는 쏙 들어가고, 그러니까 그 뇌물로 국가를 장악하려 했던 이야기는 쏙 들어가고, 이건 뭐 별 것도 아닌 것만 -우리에겐 별 것 맞지만, 삼성에겐 별 것 아닌 - 죄로 인정해서 불구속기소 어쩌고 하는 꼴이라니. 아주 오래전에 지강헌이 했던 그말, 그대로 맞네. 너무 많은 사람들이 말해서, 너무 많은 사람들이 경험해서, 이제는 말하기조차 민망하고 식상한, 유전무죄 무전유죄. 별 거 있겠어. 돈 있으면 다 되는 세상인데. 그러니 OECD 국가 중에서 대한민국 청소년의 물질추구욕구지수가 월등히 앞선 1위를 달리지. 맨날 보는게 돈으로 다 해결하는건데, 당연히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얘네들이 돈이 최고라고 생각하는 것도, 돈만 벌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도, 다 얘들을 탓할게 못돼.

  에혀. 그만하자. 리뷰는 잡소리로 대신한다. 절대 권력에 맞서 뻘짓한 이들의 분투기를 꼭 보자. 10년동안 떠들어도 언론에서 안 다뤄주는데 이 책이라도 읽어서 이들의 한 이라도 풀어주자. 책 읽고 이들의 뻘짓에 공감한다면 한두 줄이라도 열심히 뻘짓했다고 써주자. 혹시 블로그 어디에 써놓으면 읽어줄지도 모르니깐. 다음 뻘짓 타자는 누가 될까. 언제까지 다음 타자를 기다려야 할까. 누가 될지 모르지만 김용철, 사제단, 김상조, 노회찬, 심상정, 이상호, 김성환보다 더 끈질기고 무식하게 물고 늘어졌으면 한다. 이들보다 더 무대뽀로 들이댈 뻘짓타자가 있을지는 모르겠다. 이 사람들이 한 것만으로도 나는 너무나 이들이 대단해보인다. 나와 다른 세상에 사는 사람들 같아서. 나는 절대 권력에 들이대기엔 지은 죄도 많고 해서 언론에서 김용철보다 더 심하게 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무섭다.  

 "빨리 양심선언 하라. 그게 살 길이다. 우리가 당신을 죽이자고 이러는건 아니니까. 빨리 양심선언을 해서 사람들이 '대한민국에 이정도 되는 재벌이 있었다' 그렇게 긍정적인 얘기를 할 수 있게 하고, 그걸 토대로 새로운 세상으로 나갈 수 있도록 하자. 노사 갈등이 꼭 나쁜 건 아니다. 그런데 삼성에서는 그 자체가 범죄 수준이다. '페어플레이' 하자는 얘기다. 납치하고, 끌고 가고 하지 말고... 그러면서 건설적으로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데 힘이 됐으면 좋겠다." (양심수 김성환)

  바꾸자. 조용히 말하면 안 듣는다. "삼성아, 그러지마라. 형이 비자금 만든다고 패고 국민 우롱한다고 패고. 어떤 이씨 父子는 불법으로 살아가길래 기분나뻐! 그래서 패고. 그렇게 형한테 맞은 놈들이 사열종대 앉아 번호로 연병장 두 바퀴다." (잉크냄새님)   

p.s. 나는 앙가주망철학네트워크의 토삼성격문 발표 이후로 삼성 불매 운동에 동참하고 있다. 불매운동만이 그들을 불안에 떨게 만들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동영상을 제작해 해외 방송사로 내보내겠다는 김용철 변호사와 전 방송국 피디의 작업을 지지한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순오기 2008-04-18 09: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삼성건 뭐든 안보고 안 쓰려고 노력합니다. 신문은 3월 1일자로 바꿨고 카드는 진즉에 폐기했고...가전제품도 몽땅 L모 기업이죠.
어제 뉴스보다 요거 나오니까 우리남편 '에잇~C'하면서 채널 확 바꿨는데, 거기서도 나오더라니.ㅠㅠ

마늘빵 2008-04-18 09:32   좋아요 0 | URL
저는 외면하면 더 안 될거 같아서 더 보고 분노하려고 해요. 많이 알고 많이 보고 많이 분노하고 많이 쓰고, 그러면서 알려야 한다고 생각해요. 더 많은 공감대를 이루어 많은 이들이 분노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삼성카드는 저도 연계된게 하나 있었는데, 알라딘 신한카드였나 뭐였나, 한 번도 쓰지는 않았지만 없애버렸습니다.

마노아 2008-04-18 2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주의 마이리뷰 또 타셔야겠습니다. 같이 버럭버럭! 그래서 저도 애니* 핸드폰 싫어합니다. 죽어라 싸이온..;;;;

마늘빵 2008-04-19 00:05   좋아요 0 | URL
저도 이번에 싸이언으로 바꾸고 문자질 느려졌잖아요. :)
 
디지털 촌수, 변화하는 인간관계 SERI 연구에세이 71
김유정 지음 / 삼성경제연구소 / 2007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98년이었던가. 처음 피씨통신을 했던게. 컴퓨터를 사니 유니텔 무료이용권을 줬고, 그리하여 달리 가입할 게 없었던 나는 인터넷을 하기 위해 유니텔에 가입했고 오래도록 그곳에서 노닐었다. 대학 동호회에도 가입하고, 록 동호회에도 가입하고, 철학 동호회에도 가입하고, 여기저기 쑤시고 다니면서 매일 같이 신기한 세상을 접했다. 그러다가 그 공간에서 떠들던 사람들과도 만나고, 따로 채팅하다가 번개란 것도 해보는 묘한 경험을 많이 했었는데, 아마도 그때부터였던거 같다. 사람을 먼저 만나고 사귀는 것보다 글을 보고 사람을 만나는 것을 선호하게 된 때가. 글을 보고 만난 사람에게 실망했던 적은 거의 없었던 거 같다. 글은 그 사람을 담아낸다.

  어쨌든, 이렇게 온라인의 인연이 오프라인으로 이어지는 경험을 하게 되면서, 글을 통해 호감을 갖고 있던 여자에게 마음을 뺏기고 그렇게 두 사람이 특별한 인연으로 발전하기도 했다. 생판 아무것도 모르는 소개팅이나 미팅보다 - 미팅도 꽤나 했었다 - 글을 통해 만난 인연이 나에겐 훨씬 마음으로 다가왔다. 별 다른 글도 아니었는데, 얼굴도 모르는 두 남녀가 글을 가지고 티격태격하면서, 그 남자 마음엔 그 여자가 어느새 들어앉았다. 비단 그때 뿐만 아니라 이런 경험은 나이를 먹은 이후에 또 있었다. 단지 드러내지 않았을 뿐. (영화 속에서) 전도연과 한석규가 채팅으로 만나 사랑을 나눈게 99년이었나. 여튼 그런 식으로 인연을 맺은 이들이 한 둘은 아니었던거 같다.
 
  이 책은, 인터넷 상에서 타인을 만나 관계를 맺는 것이 더 이상 새로울 것이 없는, 디지탈 시대의 '관계맺음'에 대해 말한다. 시대의 변화 흐름을 잡아내고, 그 과정에서 인간 관계가 어떻게 변화해왔는지, 그리고 그것이 사람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정리해본다. 저자는 이 책을 쓴 목적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이메일과 이동전화의 보편적인 사용, 다시 말하면 디지털 및 모바일에 의존하여 변화하고 있는 인간관계를 파악하여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점차 유비쿼터스 환경으로 전환하고 있는 오늘날 인간관계가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를 예측하고 또 향후 전개방향을 전망해보려" 한다고.

  저자는 온라인상에서의 소통은 오프라인상에서보다 메세지를 착안하고 구상하는 데 시간을 많이 투자하는 반면, 같은 시간대에 의사 교환이 이루어지기 어렵고, 이런 의미에서 효율적인 상호 교류가 제대로 이루어지기 힘들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것은 엄격한 의미에서 그렇다는 것이고, 상호 교류를 무엇이라 정의하느냐에 따라서, 소통을 무엇이라 정의하느냐에 따라서, 그 의미는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같은 시간대에 오프라인상에서 만난 사람들이 대화를 나누지만 말이 오갈 뿐 의사 교환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제대로 된 소통이라 볼 수 없을 것이다. 

  저자는 또 온라인 상에서의 관계 맺기의 특징으로 다음 네 가지를 이야기한다. "첫째, 서로의 신분이 노출되지 않은 상태이므로 의견 교환이 그만큼 솔직하고, 주고받는 주제나 내용에 보다 정확하게 접근할 수 있다. 둘째, 참여자들은 좀더 자기중심적이 되어 타인보다는 자기 자신을 위주로 교류를 진행한다. 셋째, 의사 교류를 하는 데 특정 개인의 영향을 받지 않으며 보다 자유로운 상황에서 전개된다. 넷째, 교류 과정을 특정인이 독점적으로 지배하는 경우가 적어서 보다 평등한 참여가 보장된다."
 
  내가 경험해 본 바에 의하면, 온라인 상에서의 관계 맺음에 있어선, 오프에서의 관계에서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인맥이나 학벌, 상대방의 재산 정도, 얼굴이나 몸매의 미추가 거의 완벽하게 배제된다는 장점이 있다. 각자가 사진을 공개하거나 재산이나 학벌 등을 밝히거나 하지 않으면, 각자의 모든 정보는 차단된다. 물론 잡다한 자신의 일상을 떠들다보면 이런저런 정보들이 하나둘씩 노출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런 정보들이 공개된다고 하더라도 위 특징에서 언급하듯 교류과정에서의 독점적 지배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봐야 한다. 오프에서보다 지위나 신분 등으로부터 독립되어 관계맺음에 있어 자유롭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또 단점도 있어서, 자기중심의 교류를 하는 경향이 있고, 관계를 심각하게 보지 않은 나머지, 상대를 깊이 배려하지 못하는 면을 보이는 이들도 있다는 것이다. 나는 나고 너는 너고, 싫으면 안 보면 그만, 이라는 식의 '관계의 가벼움'이 널리 퍼져있달까. 저자는 인터넷 뿐 아니라 휴대전화까지 다루면서 그와 같은 가벼움을 이야기한다. "이동전화는 사람을 느슨하게 한다. 언제라도 이동전화로 연락할 수 있기 때문에 반드시 시간을 엄수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줄기 때문이다." 핸드폰이 없던 시절에는 약속을 정하고 나가지 않으면 상대는 마냥 기다리다 지쳐 잔뜩 화가 난 채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누구나 핸드폰을 가지고 있는 지금은, 언제 어디서나 가능하기 때문에, 귀찮으면 핑계를 대고 못간다 통보하면 그만이다. 약속과 관계를 가볍게 여기게 된 것이다.

  현대인은 관계에 목말라있고 끊임없이 관계를 갈망한다. 동시에 그들은 관계를 가벼이 여긴다. 나 역시 이러한 현대인의 특징으로부터 자유로울 순 없다. 관계와 소통을 추구하지만, 동시에 관계와 소통을 가벼이 여기는 이들은, 따로 떨어져 우주를 부유하는 운석 조각과 같다. 내 의지에 의해서 나는 타인과 관계를 맺을 수 있고, 또 내 의지에 의해서 타인과의 관계를 끊을 수도 있다. 인터넷이나 휴대전화를 통한 관계의 자급자족이 가능해진 것이다. 나란 인간은 내가 관계맺는 인물들에 의해 규정지어진다. 

  디지털 기기는 관계를 수직에서 수평으로 이동시켰지만, 개인을 더 자유롭게 만들었지만, 개인에게 많은 선택지를 주었고, 나의 선택에 따라 나의 존재가 변화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과거를 떠올려보면 온라인을 통해 인연을 맺었지만 어느 순간 연락이 두절된 친구들이 한 둘이 아니다. 한때 자주 만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지만, 지금은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어떻게 변했는지 알 수 없는 남남이 되어버렸고, 다시 만난다해도 어색하기만 할 것 같다. 관계는 양자 모두 서로에게 충실했을 때 유지될 수 있다. 어느 한쪽이 한쪽을 가볍게 여기기 시작하면서, 혹은 무심해지면서 남남이 된다. 아쉬운 인연도 있다. 더 알고 지내고 싶지만 한쪽의 일방적인 잠적으로 인해 관계를 발전시키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아쉽고 안타깝지만, 그 사람을 마냥 탓할 수 없는 건, 디지털의 특징 때문인걸 어쩌랴. 하지만 각 개인의 노력으로 그것을 메울 수 있는 부분은 분명 남아있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로그인 2008-04-15 1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은 그 사람을 담아낸다."
그런 거 같아요.. 아프락사스님.

사이버스페이스라는 게 단점도 많지만
끈적거리지 않아서 좋은 거 같아요.
멀지도 가깝지도 않는 거리 조절이 가능한 듯합니다.

 
공부하다 죽어라 - 눈 푸른 외국인 출가 수행자들이 던지는 인생의 화두
현각.무량 외 지음, 청아.류시화 옮김 / 조화로운삶(위즈덤하우스) / 2008년 1월
평점 :
절판



  이런 무서운 제목을 달고 있는 이 책을 종로의 대형 서점에서 목격했을 때 분명 중고생들을 향해 시험공부에 몰두하여 '수능점수 높은' 대학에 가라는 주문이나 하겠지, 정도로 생각하고 지나쳤는데, 아니었다. 도대체 이건 또 무슨 책이기에 이렇게 대형서점 한복판에 수십권씩 자리를 깔고 탑을 쌓아놨을까, 하는 호기심에 열어봤더니 외국인 스님들의 강연을 글로 옮겨 엮은 것이었다. 내 인생의 힘겨운 시기에 나를 위로해주었던 책 <만행, 하버드에게 화계사까지>를 쓴 현각 스님을 비롯해 무량, 명행, 무심, 무진, 청고 등 한국의 스님으로부터 계를 받은 외국인 스님들과 달라이 라마 등으로부터 계를 받은 외국인 스님들의 강연 내용을 번역해 옮겼다.

  책을 읽기 전에 그렇다면, 책 제목인 '공부하다 죽어라'는 두 가지 의미 중 한 가지일 것이다 라고 가정했는데, 하나는 역설적인 제목으로, 주변을 둘러보지 않고 자기계발에만 몰두하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공부하지 말라는 반대의 메세지를 품고 있을 것이라는 가정이었고, 또 하나는 여기에서 말하는 '공부'가 우리가 흔히 이해하는 '공부'가 아닌 '수행'을 뜻할 것이다는 가정이었다. 책을 읽고 난 후 제목의 의미는 후자였음을 알았지만, 전자로 봐도 무방하다. 제목은 극단적이고 무섭기까지 하지만 두 가지 의미를 모두 잘 담아내고 있다.

  2003년 초겨울, 대전의 한 절에서 국내외 외국인 스님들이 모여 영어로 대중 법문을 시작했고, 그 법문은 꼬박 일년이 걸렸다고 한다. 그것을, 법회를 주관한 청아 스님 그리고 류시화 시인이 말을 글로 옮기고, 영어를 한글로 번역해 책으로 묶었다. 이 책은 불교 대중서라고 봐야 할 만큼 불교의 기본 이론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특히나 한국에서 활동하는 외국인 스님들보다 외국에서 건너온 스님들의 말씀에서 이론적 경향이 두드러지는데, 마음으로 공감하기에는 거리감이 있고 어렵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현각 스님이나 명행, 무량, 무진 스님들의 말씀은 그보다는 인간의 삶과 연관된 철학적 메세지가 주를 이루어 한결 마음으로 접할 수 있었다.

  특히나 현각 스님의 법문을 읽으면서 옛날 생각이 다시 났는지 심하게 '마음이 움직이기도'(감동) 했다. 전체적으로 스님들의 메세지는, 현실에서 우리가 집착하는 것들, 돈, 명예, 권력 등으로부터 멀어져 수행을 통해 참나를 발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세상에는 참으로 많은 집착이 있고, 결국 그러한 집착으로부터 고통이 시작된다. 그러한 생각으로부터 고통이 시작된다. 고통으로부터 벗어나려면 집착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고통은 생각에서 나오는데, 지금 세상에는 너무 많은 생각과 너무 많은 집착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무지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무지란 다만 생각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생각 자체는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내 생각이 실체라고 믿거나, 내 생각은 실재하는 것이라고 믿거나, 내 생각이 영원하며 가치 있는 것이라고 믿을 때, 그것이 무지이며 그래서 그런 문제들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주변 사람들과 자신을 비교하는데서부터 고통은 시작하지 않나 생각한다. 오로지 나만을 놓고 본다면 그 어떤 것에 대해 집착할 필요가 없는데, 나에서 나아가 남을 바라보면서, 나는 왜 쟤보다 더 못한 대접을 받고 있지, 쟤가 나보다 나은게 뭔데, 내 친구가 이번에 집을 샀는데 집값이 수천만원 올랐다더라, 구두 신상품 나왔는데 너무 이쁘다 꼭 갖고 싶다, 등등의 생각들로부터 고통이 시작된다. 교과적인 말이지만 오랜 옛날보다 지금은 고통을 주는 요소들이 너무나 곳곳에 널려있다. 한적한 시골마을이 아닌 도심지에서 살아서 그런지, 의무교육을 받은 후에 대학과 대학원에서 또 교육을 받아서 그런지, 주변에 잘 나가는 사람들이 많이 보여서 그런지, 내가 내 능력을 과대평가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내게 고통을 주는 요소들이 너무나도 많다.

  고통으로부터 벗어나라고 말하는 스님들은 모든 고통으로부터 벗어나 있는 것일까. 스님들은 진정 어떤 것에 대한 집착이 없는 것일까. 그들의 생각은 모든 것으로부터 떠나있는 것일까. 책을 읽으면서 계속 그런 생각들이 떠나지 않는다. 과연 그것이 가능한걸까. 스님들은 모두 외국을 여행하는 과정에서 아니면 그곳에 온 한국의 스님들로부터 깨달음을 얻었다고 하는데, 그들은 정말 깨달음을 얻은 것일까. 나이를 먹을수록, 공부를 할수록, 사람들을 더 만날수록, 내가 집착하는 요소가 더 많아지는 느낌을 받는다. 오히려 차라리 의무교육만을 받고 시골 어디 한적한 마을에 가서 마을 사람들하고나 함께 생활하면서 살아간다면 지금과 같지 않을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

  어떻게 하면 내가 자유로울 수 있을까, 를 고민하고, 자유로워지기를 갈망하지만, 나는 여전히 어디엔가 매어있고, 내 몸조차 가까운 어디로도 떠날 수 없음을 안다. 감각세계를 멀리하고, 나를 버리고 나를 만난다는 것은 내겐 너무나 힘겹다. 그렇다고 스님들의 말씀이 전혀 의미없는 머나먼 세계의 말이라는, 구름 잡는 말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그 분들의 말씀은 당연하고, 옳아보이지만, 그것에 도달하기까지는 지금의 나로선 너무나 멀리 있다는 생각이다. 끊임없이 수행하고 나를 닦으려는 노력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러다보면 서서히 변하고 있는 나를 발견할테니까.

  불교에 관심이 있으면서 절에는 한 번도 간 적이 없다. 종교로서의 불교가 아닌 철학으로서의 불교, 삶의 깨달음을 주는 불교로서의 불교를 접하고 싶다. 현각 스님의 책을 통해 마음이 '동(動)'했을 때, 현각 스님을 만나뵙고 싶기도 했다. 결국 아무데도 못가고 방안에 머물러 있었지만. 64년생인 그가 미국에서 숭산 스님을 만나 출가를 결심한게 1990년, 그리고 그간의 경험을 풀어 책을 쓴게 1999년이다. 우리 나이로 스물일곱의 나이에 출가를 했고, 서른여섯의 나이에 그가 출가를 결심하게 되기까지의 고민과 생각을 풀어 썼다. 그로부터 또 9년이 흘렀다. 그의 책을 접한 때가 2000년, 그로부터 8년이 지난 지금, 나는 거기서 더 나아가지 못했다. 어떻게 하면 참나를 찾을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집착하는 나를 버릴 수 있을지, 아직 모른다.  

  이 책은 큰 깨달음을 줄 수 있는 책은 아니다. 마음의 큰 감동을 줄 수 있는 책도 아니다. 그런 책을 원한다면 절판된 <만행, 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를 접하기를 바란다. 푸른 눈의 외국인 스님들의 법문을 현장에서 경험했다면 조금 다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 책은 깊은 마음의 움직임을 주지는 못한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독자에 따라 어떤 글줄을 읽다가 멈춰서서 생각에 잠길 수는 있을 것이다. 많은 스님들의 법문을 한데 모아 짧게 엮다보니 지면의 한계로 메세지가 깊이 전달되지 않은 까닭도 있을 것이고, (한국에 머무는 외국 스님들이 아닌) 외국에서 온 스님들의 불교 이론에 관한 해설이 오히려 마음보다 머리로 읽도록 했다는 데에도 한계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괜찮은 책이며, 이 책을 계기로 한글로 출판된 다른 스님들의 책도 읽어 감동을 얻는다면 그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개인적으로 아직 접하지 못한 무량스님의 책을 읽어보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공부하다 죽어라 - 눈 푸른 외국인 출가 수행자들이 던지는 인생의 화두
현각.무량 외 지음, 청아.류시화 옮김 / 조화로운삶(위즈덤하우스) / 2008년 1월
절판


살아 있는 것은 어느 것이나 반드시 죽음을 맞이한다. 모든 것은 덧없으니 게으르지 말고 부지런히 공부해 깨달음을 이루라. - 붓다의 마지막 가르침 -5쪽

삶에 더 깊이 들어가고, 진정 열심히 시도하고, 내면을 들여다보기 위해, 그 불꽃을 일으키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모든 것은 변화한다. 삶의 한순간도 멈춤이 없이 흐르며, 어떤 것도 변화의 수레바퀴에서 벗어날 수 없다. 하지만 생멸하는 이 모든 것 뒤에는 변하지 않는 무언가가 있다. 우리는 그것을 발견해야만 한다. 각각의 순간을 깊이 있고, 행복하고, 평화롭게 사는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 깨어 있는 삶을 살 때, 우리는 자신의 주인이 될 수 있다. 몸 안에서 몸을 관찰하고, 느낌 안에서 느낌을 관찰하고, 마음 안에서 마음을 관찰하는 것, 그것이 곧 수행의 길이다. (청아, 류시화) -10쪽

모든 것은 변화한다. 이 육신도 세상에 왔지만 세상으로부터 사라질 것이다. 고통은 그 변화를 막으려고 하는 데서 온다. 우리가 생각으로 만들어 내는 이 세상은 근본적으로 무상한 것이다. 그것들에 집착할 때, 그것이 무지이고, 고통의 원인이다. 하지만 생멸하는 이 모든 것 뒤에는 변하지 않는 무언가가 있다. 파란 하늘에는 구름이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온갖 변화가 일어나지만, 그 뒤에 항상 존재하는 그 무엇이 있다. 우리는 그것을 발견해야 한다. (현각)-11쪽

"사실 무지란 이 세상이 무상하다고 보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만일 여러분이 '이 세상은 무상하다.'라고 보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어떤 것에 집착하게 됩니다. 그때 여러분은 사물과 돈, 권력, 명예, 명성으로 이루어진 이 세상뿐 아니라, 나아가 여러분 자신의 생각으로 만든 세상까지도 영원히 곁에 둘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이것이 숭산 스님께서 실제로 의미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으로 만들어 내는 이 세상은 근본적으로 무상한 것입니다. 모든 생각, 모든 견해, 모든 느낌, 모든 조건, 그리고 모든 관념들은 본질적으로 다만 무상할 따름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것들에 집착할 때, 그것이 곧 무지입니다. 나의 생각, 나의 느낌, 나의 견해, 나의 정체성, 그 모든 것이 무상합니다. 그 모든 것은 실체가 아닙니다. 그 모든 것은 고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 모든 것은 텅 비어 있습니다. 그러나 한순간 그런 것들을 생각하고 그것들에 집착할 때, 그것이 곧 무지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매우 흥미로운 관점입니다. (현각)-19-20쪽

고통은 생각에서 나오는데, 지금 세상에는 너무 많은 생각과 너무 많은 집착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무지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무지란 다만 생각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생각 자체는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내 생각이 실체라고 믿거나, 내 생각은 실재하는 것이라고 믿거나, 내 생각이 영원하며 가치 있는 것이라고 믿을 때, 그것이 무지이며 그래서 그런 문제들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현각)-25쪽

생과 사로부터 자유로워진다는 것은 매 순간 깨어 있고, 매 순간 '나는 누구인가?'를 묻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간단한 진리이지만 대단히 흥미로운 인간 상황이다. 우리는 단지 이 몸, 이 무상한 수레, 어느 날엔가는 우주로 돌아가게 될 이 렌터카를 만족시키기 위해 생을 소비하고 있다. 하지만 만일 잠에서 깨어나 '참나'를 진정으로 이해한다면, 이 렌터카를 우주에게 돌려줄 때가 되어도 아무 문제가 없다. 그때는 문제될 것이 아무것도 없다. 죽을 때는 죽을 뿐이다. (명행)-45쪽

삶에서 몇 번이나 진정으로 남을 위해 베풀었습니까? 일생에 몇 번이나 아무 주저함 없이 주었습니까? 비록 타인에게 베푼다 해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난 네게 무언가를 주었어.'하는 마음을 갖습니다. 아니면 어떤 자선 단체에 베풀면서 '난 그들에게 많은 돈을 주었어. 난 그들에게 많은 음식을 주었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참된 베풂이 아닙니다.

참된 베풂의 의미는 거기에 주는 자도 없고, 받는 자도 없으며, 또한 베푸는 물건마저도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일생에 과연 몇 번이나 어떤 보상도 바라지 않고, 무엇인가 돌아올 것이라는 어떤 생각도 갖지 않고 진정으로 베풀까요? 매우 드물 것입니다. 실제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보상으로 무엇인가를 기대합니다. (중략)

실제로 이것이 사물을 바라보는 인간의 일반적인 태도입니다. 누군가에게 선물을 주고 난 다음엥는 그 사람이 그것을 가지고 다니는가, 또는 지니고 있는가에 관심을 갖습니다. 그리고는 "아! 그건 내가 준 시계다! 저건 내가 선물한 차야! 네가 내 차를 아직도 운전하고 있다니 믿을 수 없구나." 하고 말합니다. (명행)-66-67쪽

"자신을 돕는 일과 남을 돕는 일은 새의 두 날개와 같다." (원효)-69쪽

"내려놓으라! 그대의 의견, 그대의 조건, 그대의 상황을 모두 내려놓으라! 지금 그대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순간순간 행하라! 그대의 올바른 상황, 올바른 관계, 올바른 역할을 따르라." (숭산)-73쪽

늘 더 갖기를 원하고 더 좋은 거을 원한다면, 언제나 고통스러워질 것이다. 왜인가? 더 갖기를 원하고 더 좋은 것을 원하는 마음은 그 자체가 고통이기 때문이다. 좋은 것을 갖고 싶어서 밖을 기웃거리는 마음은 불안한 마음, 혼란스러운 마음이다. 반면에 내면에 만족이 있는 마음은, 마음이 모든 것을 지니고 있음을 아는 마음은 언제나 평화롭다. 이런 마음 상태에서는 무엇이 일어나든 집착할 것이 없음을 이해하며, 그런 사람에게는 고통이 없다. (텐진 위용) -77쪽

죽음의 순간에 무엇이 가장 중요한가? 살아 있는 동안 키워 온 자비, 사랑, 만족, 마음의 평화 같은 긍정적인 것들이다. 이것들만이 죽음의 순간에 우리에게 도움을 준다. 즐거움의 순간, 즐거움의 기회, 우리가 원하는 것을 소유하는 순간에도 그 안에는 고통의 씨앗이 담겨 있다. 또한 인간 존재는 단순히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죽음을 향해 가는 과정 속에 있다. 자비는 우리를 한 걸음 더 나아가게 한다. 자비는 생명 가진 존재들이 겪는 모든 고통의 근본 원인이 무지를 제거하려는 염원이다. (게셰 툽텐 룬둡)-115쪽

인간은 언제나 희망, 욕망, 혹은 바람을 지닌 채 계속 앞으로만 달려간다. 이것이 인간 삶의 방식이다. 언제나 달려가지만 최종적인 만족이란 없다. 좌절과 고뇌만이 있을 뿐이다. 소원이나 욕망을 이루면, 그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욕망은 이미 조금 더 앞서 간다. 우리는 또 다른 것을 얻으려고 할 것이며, 이런 악순환은 계속된다. 그때 늘 불만족한 채 살아갈 수밖에 없다. 모든 즐거움에는 하나의 조건이 있다. 어떤 것도 영원하지 않다는 것이다. (파나 완사)-140쪽

"그 누구도 위대하게 태어나지 않는다. 그 누구도 고구하게 태어나지 않는다. 그 누구도 천하게 태어나지 않는다. 누구나 자신의 행위에 따라 고귀하게도 되고 천하게도 된다." (붓다)-155쪽

고통의 원인은 마음속 집착과 갈망이다. 감각적 쾌락은 중독성이 있으며, 즐겁다. 그래서 우리는 또다시 그곳으로 가게 된다. 자꾸만 그곳으로 간다는 사실 자체가 고통이다. 금방 끝나 버리는 그 경험들로부터 쾌락을 얻기 위해 습관과 중독성을 키우기 때문이다. 그것이 어떤 면에서는 즐거울지라도, 실제로는 훨씬 깊은 불만족을 불러일으킨다. 평화와 기쁨을 경험할 다른 길이 없다면, 우리는 외부에 존재하는 이런 것들에 의존하게 되고 그것에 걸려들게 된다. (아잔 지틴드리야)-171쪽

보석을 물속에 떨어뜨리면 정신없이 물속에 들어가 그것을 찾으려 할 것이며, 배가 고프다거나 피곤하다는 생각은 들지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찾아도 끝내 찾지 못하면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신경 쓰지 말자. 보석을 되찾으면 그만이고, 찾지 못한다 해도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고 나서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온다. 보석을 포기하는 그 순간이 매우 중요하다. 만일 계속해서 잃어버린 보석을 생각한다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그것을 통해 무엇을 얻을 수 있겠는가. 단지 고통을 더하고 있을 뿐이다. (아잔 차) -204쪽

자유의 상태에 머문다 해도, 그 상태에 아무리 오랫동안 머물더라도, 결국 고통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어떤 상태, 어떤 장소, 어느 순간에도 중단하지 말고 순간순간 명상하라. 일상의 작은 나를 따르지 말고, 단지 행동하라. 매 순간 앉아 있든 서 있든, 걷든 누워 있든, 말하든 침묵하든, 그 어떤 상태, 어떤 장소에서도 중단하지 말고 명상하라.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우리의 삶 역시 분명해질 것이다. 그때 우리의 삶이 곧 우리의 수행이 된다. (무심)-205쪽

이 세상의 어떤 기쁨이든지 다른 모든 사람을 행복하게 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된다. 이 세상의 어떤 고통이든지 모두 자기 자신만 행복해지려는 욕망에서부터 시작된다. (티베트 잠언) -234쪽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나다니! 왜 하필이면 나이지?' 하고 불평하지 말라. 원인이 있었기 때문에 결과가 돌아오는 것이다. 오랫동안 기다려 온 친구가 마침내 도착한 것처럼. 지난날 내가 쌓은 업이 현재의 나를 이 상황에 몰아넣는 것이다. 이 업은 생의 시작부터 우리와 함께 해오고 있으며, 전생들로부터 계속되고 있다. 불행한 상황이나 환경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 스스로 원인을 만들지 말아야 한다. 자신의 행복을 바란다면, 타인을 소중히 하라. 바른 원인을 만들라. (텐진 데키)-235쪽

존재의 본성은 다름 아닌 고통입니다. 물론 이곳에 존재하는 한, 공통된 망상의 지배하에 놓여 있는 한 그런 일은 일어날 것입니다. 저는 고통을 겪을 수밖에 없으며, 아플 수밖에 없고,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제 주변의 사람들도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제 곁을 떠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저는 좋든 나쁘든 제가 쌓은 업의 결과를 경험해야 합니다. 고통을 중단하려는 굳은 의지를 키워 나가면서 존재의 본질에 대해 생각할 때 저는 그런 사실들을 깨닫게 됩니다. 고통의 한 가지 좋은 점은 자만심을 없애 준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만심이란 과거사의 재발생이기 때문입니다. 자만심이란 특히 자기를 중요하게 여기는 마음으로, '나는 그만큼 중요한 사람이며, 남보다 나은 사람이며, 훨씬 중요한 존재다.'라고 하는 감정입니다. 흔히 자만삼이란 부풀려진 에고라고 합니다. 자기 자신에 사로잡혀 있는 에고는 매우 나쁜 것으로, 마치 부풀어 오른 풍선과 같습니다. 티베트 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계속)
-246-247쪽

(이어서)

"당신에게 바람을 잔뜩 불어넣은 풍선이 있는데, 거기에 어떤 액체를 부으면 풍선 표면에는 아무 것도 남지 않게 될 것이다. 풍선 위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자만심을 갖는다면, 당신은 아무것도 배울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큰 장애이다. 우쭐대면, 귀 기울여 들을 수 없다." -247쪽

"이기적이 되고 싶다면 지혜롭게 이기적이 돼라. 그대 자신의 행복을 바란다면, 타인을 소중히 하라. 바른 원인을 만들라. 그대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 그대의 행복의 원인이 아님을 알라." (달라이 라마)-257쪽

모든 것이 변하고 또 변한다. 그러나 겉모습은 바뀌지만, 모든 것이 같은 본질을 지니고 있다. 이름과 형태에 집착하지 않는다면, 모든 것은 같다. 우리는 왜 이 세상에 살아 있는가? 무엇보다 삶의 방향이 명확해져야 한다. 이것은 곧 명상을 의미한다. 명상은 우리로 하여금 내면을 보게 하고, 우리의 생각 습관으로부터 약간의 거리를 갖게 한다. 그때 우리의 마음은 평화와 자유를 얻는다. 이것은 놀라운 일이다. (무량)-265쪽

이 순간을 산다는 것은 진정으로 깨어 있는 것이다. 현재에 있음을, 깨어 있음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과거의 습관에 물들지 말라. 진정으로 새롭게 산다는 것은 과거의 경험으로 판단하지 않고, 비교하지 않고, 옛 생각을 끄집어내지 않는 것이다. 이것이 곧 자유이다. 지금 당신은 살아 있다. 자유로워질 기회가 있다. 그 기회르 놓치지 말라. (무진) -301쪽

수억 겁 동안 반복해 온 수맣은 습관들은 우리의 마음 상태를 나쁘게 한다. 첫날에 생선은 신선하지만, 생선을 며칠 동안 주머니에 넣어 가지고 다닌다면 그 생선에서 악취가 나기 시작할 것이다. 굉장히 나쁜 냄새가 날 것이다. 자신이 안다고 생각하는 것들이나 체험한 것을 내려놓지 못하면, 이것들은 자신을 오만하게 하고, 다른 사람보다 더 알고 있다는 생각을 일으키게 한다. 이러한 것들을 내려놓는 것, 그것이 곧 마음의 수행이다. (청고)-329쪽

여러분이 자신의 아이들에게 남길 수 있는 가장 소중한 것은 집이나 아파트가 아니고, 상속 재산도 아니며, 많은 액수의 현금도 아닙니다. 그것은 자기 자신의 참성품에 대한 지식일 것입니다. 항상 자기 자신의 참성품에 귀의할 수 있는 습관입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만일 여러분이 스스로 수행하고 계신다면, 아이들에게 참성품에 대해 많은 말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대단히 영리합니다.

어떤 살마들은 말하기를, 아이들이 그들의 부모들이 자신들을 어떻게 대하는가에서 가장 많이 배운다고 하지만, 제가 생각하기로는 아이들은 그들의 부모들이 서로를 어떻게 대하는가에서 그리고 그들의 부모들이 다른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는가에서 가장 많이 배웁니다. 만일 여러분이 정말로 진실하게 수행하는 사람이라면, 여러분의 아이들 또한 잘 성장할 것입니다. 아이들 또한 부모의 수행을 보고 배울 것입니다. 단지 작은 배려와 몇 마디 조언으로 아이들 또한 이런 수행에 대해 배울 것입니다. -344-345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디지털 촌수, 변화하는 인간관계 SERI 연구에세이 71
김유정 지음 / 삼성경제연구소 / 2007년 1월
장바구니담기


지금까지 사람들 사이의 친밀한 관계는 면대면 접촉 및 교류에 의한 인간 네트워크의 결속력에 의해 형성, 유지된다고 믿어왔다. 그러나 온라인을 통한 관계도 이에 못지않은 친밀도를 형성할 수 있으며, 특히 높은 친밀도가 요구되는 가족, 친구, 친지 관계도 온라인 접촉(연결)과 교류를 통해 한층 더 돈독하게 유지되고 있음이 여러 연구와 조사를 통해 밝혀졌다. 이것은 인터넷이, 면대면 접촉과 유사한 친밀하고 안정적인 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할 수 있게 하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즉 사회적 정보 전달과 습득에 적합한 것으로 알려진 인터넷상에서, 이용자들은 적극적으로 자아 표현을 하여 상호간의 긴밀한 유대감을 쌓고 있는 것이다. 요즈음과 같이 바쁜 현대인들에게는 직접 대면해서 누군가를 만나는 일보다, 업무상 자주 이용하는 인터넷을 통해 교류하는 것이 더 편리할 것이다. -19쪽

비동시적인 커뮤니케이션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동시적 커뮤니케이션을 이용하는 사람에 비해 메시지를 착안하고 구상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 하지만 비동시적인 커뮤니케이션이기 때문에, 같은 시간대에 의사 교환을 하기 위한 즉각적 반응에 대해 의무감을 갖지 못할 수 있다. 상대방의 의견에 반드시 같은 시간대에 즉각적으로 반응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비동시적 기능은 양자가 각자 편리한 시간대를 활용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는 유용하지만 제한된 시간 내에서 상대방의 반응을 기대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어서, 엄격한 의미에서 보면 효율적인 상호 교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40쪽

(온라인의 특징을 언급하며) 첫째, 서로의 신분이 노출되지 않은 상태이므로 의견 교환이 그만큼 솔직하고, 주고받는 주제나 내용에 보다 정확하게 접근할 수 있다. 둘째, 참여자들은 좀더 자기중심적이 되어 타인보다는 자기 자신을 위주로 교류를 진행한다. 셋째, 의사 교류를 하는 데 특정 개인의 영향을 받지 않으며 보다 자유로운 상황에서 전개된다. 넷째, 교류 과정을 특정인이 독점적으로 지배하는 경우가 적어서 보다 평등한 참여가 보장된다. -45쪽

비록 익명이지만 서로 진실로 대하는 것이 관계 유지를 위한 최선책이다. 익명 상태를, 거짓말을 해도 되는 상황으로 잘못 인식하면 안 된다. 익명 상태란, 가면 속에 실체나 진실을 감추고 거짓을 행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실체를 드러내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체를 동원한 자아 노출이 아니라 텍스트에 의한 자아 노출인 것이다. 그러므로 표현한 텍스트가 곧 자신이 되는 것이다. -49쪽

사이버 공간에 참여하는 모든 이용자들은 하나의 똑같은 현상으로 인식되어 모두 동질적인 개인으로서 커뮤니케이션 과정에 참여한닫는 것이 중요할 따름이다. 즉, 모든 사람들이 사이버 공간에서는 텍스트상으로 똑같은 기호와 조건을 갖는 동등한 대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이다. 그 이유는, 사이버 공간이 지각적 사실주의에 의해 주도되기 때문이다. 지각적 사실주의는 실제로 제시되는 것에 따라 느끼기보다는 표현된 텍스트에 대한 해석을 근거로 판단한다. 그래서 사이버 공간에서는 텍스트에 표현된 개념적 해독에 의한 상호 간의 인식에 충실하기 때문에 가시적인 형상에 의한 전형화되고 차별적인 지각을 방지할 수 있다. -63쪽

현실 속의 각 개인은 무리를 짓거나 정착하지 않고 떠돌아다니지만 기기에 의존하여 관계가 맺어지고 통제되므로 스스로 모든 것을 알아서 해야 한다. 즉, 각자에 대한 '자급자족'의 개념이 강화된다. 그래서 인간관계는 자연히 내가 구축하는 관계망을 통해 형성된다. 그 관계망에서 내가 무엇을 얼마나 주도해나가는가, 또는 내가 얼마나 적극적으로 참여하는가에 따라 그 관계의 의미가 달라진다고 할 수 있다. 결국 인간관계는 개인이 형성한 관계망 차원에서 논의될 것이다. 예컨대 관계망이 확장되었는지 혹은 축소되었는지에 따라 한 사람의 인간관계가 어떤지를 평가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에 따라 개인 중심적인 성향은 증가하고 개인 간의 연락을 위주로 하는 통신 미디어가 더 많이 출현하고 발전하여 개인 중심적인 사인주의는 더 가속될 것이다. -107-108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