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콘서트 1 - 노자의 <도덕경>에서 마르크스의 <자본론>까지 위대한 사상가 10인과 함께하는 철학의 대향연 철학 콘서트 1
황광우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6년 6월
구판절판


당신은 토마스 아퀴나스처럼 인간이 신을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아리스토텔레스처럼 인간은 자신의 행복을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가? 어느 쪽을 선택하든 그것은 당신의 자유이다. 당신은 칸트처럼 인간의 행복이 도덕적 의무의 준수에 있다고 보는가, 아니면 벤담처럼 쾌락의 증대에 있다고 보는가? 어느 쪽을 추구하든 그것은 당신의 자유이다. 유토피아는 당신의 철학과 가치관과 취향을 간섭하지 않는다. 유토피아가 하고자 하는 모든 사업의 목적은 생존을 위해 투여해야 하는 노동시간을 줄이고, 자유시간을 늘리는데 있다. 행복은 당신이 찾는 것이 아니고 당신이 누리는 것이다. 유토피아의 목적은 모든 시민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조건을 보장하는데 있다.
(토마스 모어 편 中)-188쪽

"유토피아에서 사유재산이 없기 때문에 사람들은 사회에 대해 열심히 일합니다. 유토피아에서는 모든 것이 공동의 소유이므로 결핍과 공포가 없습니다. 유토피아에서는 돈이 사라졌고 아울러 돈을 벌려는 열망이 사라졌기 때문에 돈으로 인한 많은 범죄가 사라졌습니다. 금전 사용의 종말은 사기, 절도, 강도, 말다툼, 분규, 반란, 살인, 배신, 독살 등 많은 범죄의 종말을 의미합니다. 돈이 사라지면 돈으로 인한 불안, 긴장이 사라집니다. 그렇습니다. 가난, 그것이 돈의 결핍을 의미한다면 화폐의 소멸은 가난의 소멸을 의미할 것입니다."
(토마스 모어, <유토피아> 中)-192-193쪽

인간의 의식이 그의 존재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존재가 그의 의식을 결정한다. 인간이 어떤 사회관계 속에서 살아가느냐에 따라 그의 의식이 결정되는 것이다. 의원이 환자의 고름을 빠는 것은 그의 도덕적 의무감 때문이 아니라 그의 이해관계 때문이란다. 장의사는 그의 이해관계 때문에 죽음을 바라는 악마적 심성을 갖는 것이고, 이렇게 한비자는 인간의 이기심을 솔직하게 표현하고 있다. 또 섭섭해하는 분이 있다. 스미스의 대선배 격인 홉스가 한마디 아니 할 수 없다.

... 중략 ...

만일 국가가 없다면 자연 상태의 인간은 '만인의 만인에 대한 전쟁'을 치르게 될 것이라고 홉스는 단언한다. 그야말로 인간을 아프리카 초원의 동물이나 다름없는 존재라고 본 것이다. 이렇듯 홉스는 한비자나 모두 인간을 이기적인 조재로 보았는데, 우리는 왜 유독 스미스의 이기심에 주목하는가? 홉스가 한비자 모두 인간의 이기적 본성을 전제로 전제군주의 강력한 통치를 역설했다면, 이와는 정반대로 스미스는 "정부는 경제 활동에 간섭하지 말라" "각자 자신의 이기심에 충실하도록 자유방임하라" "그것이 공익을 실현하는 지름길이다" 라며 자유주의 경제 이론을 제시했던 것이다.
(애덤 스미스 편 中)-203쪽

"그들은 자신이 세운 이상적인 계획의 아름다움에 현혹되어 계획이 조금이라도 수정되는 것을 참지 못한다. 그들은 자신의 계획과 수많은 이해는 아무 고려도 하지 않은 채, 계획의 모든 부문을 완벽하게 짜나간다. 그들은 장기판에서 말을 옮기는 것만큼 사회를 계획하는 일을 쉽게 생각한다. 장기판의 말은 손이 움직이는 대로 움직이지만, 인간 사회라는 거대한 사회는 저마다 자신의 독자적인 운동 원리에 입각하여 움직인다. 인간 사회가 독재자의 의지대로 움직여준다면 사회는 조화롭게 굴러가겠지만 독재자의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을 경우 사회는 불행해진다."
(애덤 스미스, <도덕감정론> 中)-207쪽

"우리의 환경을 개선하려는 욕구는 자궁에서 태어나 무덤에 들어갈 때까지 지속적인 욕구이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사람은 자신의 상황에 완벽하게 만족하는 경우가 단 한 순간도 없다."
(애덤 스미스, <도덕감정론> 中)

토머스 모어가 대중을 사회의 주체로 파악한 점에서 플라톤을 넘어섰다면, 애덤 스미스는 대중을 역사 변화의 창조자로 파악한 점에서 플라톤을 능가했다. 역사는 철인의 지혜에 의해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더 좋은 환경을 만들고자 하는 대중의 창의에 의해 발전하는 것이다. 스미스의 사상은 이기심을 존중한 점에서 한비자와 유사하다면, 대중의 경제 활동을 존중한 점에서 맹자와 유사하다. 안정된 생산 활동이 안정된 심성을 낳는다.
(애덤 스미스 편 中)-208쪽

고대 공동체 내의 분업과 근대 공업 내의 분업은 무엇이 다른가? 고대 공동체에서 생산물의 대부분은 공동체 자체의 직접적 수요를 충족하는 물품인 반면, 근대 공업의 생산물은 시장에 내다 팔기 위한 상품이다. 고대 공동체에서 생산물을 분배하는 원리는 관습인 반면, 근대 공업에서 각 생산물의 가격을 매겨 적당한 보수를 받게 하는 것은 시장이다. 고대 공동체에서 작업자는 물품의 전 공정을 다루는 장인인 반면, 근대 공업의 작업자는 무수히 많은 공정으로 잘게 나누어진 부분 노동의 수행자이다. 요컨대 근대 공업 노동자 그 자체가 기계의 부속품이다.
(애덤 스미스 편 中)-210쪽

자본가 계급의 이해를 대변하는 이들은 경제의 효율을 추구하는 것을 합리적 행동으로 간주했고, 효율을 위해서 자유로운 경쟁을 자연법칙으로 내세웠다. 그 결과 발생하는 사회의 불평등은 아프리카 초원에서 벌어지는 약육강식처럼 불가피한 현상이다. 이에 반해 노동자 계급의 이해를 대변하는 이들은 경제의 형평을 추구하는 것을 정의로운 행동으로 간주했고, 형평을 위해서 사회적 연대를 강화할 것을 요구했다. 그 결과 발생하는 경제의 비효율이나 노동자의 게으름은 부차적인 문제였다. 자유냐 평등이냐?
(애덤 스미스 편 中)-216쪽

인간의 본질은 노동에 있다. 인간은 노동을 통하여 자연과 소통하며, 노동의 열매를 사회에 제공하면서 사회적 존재가 된다. 인간은 노동을 통하여 진화해왔으며, 노동을 통하여 자아를 실현한다.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는 이 노동의 과정이 자신의 의지와 무관한 외적 강제에 의해 통제되는 한, 인간은 불행하다. 자아를 실현하는 이 노동 과정이 기계의 부속품으로 전락했을 때, 노동자가 느끼는 것은 비참함이요, 자아의 상실이다.
(애덤 스미스 편 中)-219쪽

"인간이 아무리 이기적이라고 상정하더라도 인간의 본성에는 분명 이와 상반되는 몇 가지 원리가 존재한다. 이 원리들로 인해 인간은 타인의 운명에 관심을 가지게 되며, 단지 그것을 지켜보는 즐거움 밖에는 아무 것도 얻을 수 없다고 하더라도, 타인의 행복을 필요로 한다. 연민과 동정이 이런 종류의 원리이다. 타인의 비참함을 목격하거나 생생하게 느끼게 될 때 우리는 이러한 감정을 느낀다."
(애덤 스미스, <도덕감정론> 中)-220-221쪽

"거미는 직포공이 하는 일과 비슷한 일을 하며 꿀벌의 집은 많은 건축가를 부끄럽게 한다. 그러나 가장 서투른 건축가라도 가장 훌륭한 꿀벌보다 뛰어난 점은, 그는 집을 짓기 전에 미래 자기의 머릿속에서 집을 짓는다는 것이다. 노동 과정의 끝에 가서는 그 시초에 이미 노동자의 머릿속에 존재하고 있던 결과가 나오는 것이다. 노동자는 자연물의 형태를 변화시킬 뿐만 아니라 자기가 의식하고 있는 목적을 자연물에 실현하는 것이다." (마르크스, <자본론> 中)-228쪽

"1. 인간은 자신의 의지와는 독립된 특정의 생산관계 속에 편입된다. 생산관계는 물질적 생산력의 특정 발전 단계와 조응한다. 이러한 생산관계의 총체가 사회의 경제구조를 형성하고, 이 경제구조 위에 법적, 정치적 상부구조가 세워지며(교육, 예술, 종교, 윤리 등) 특정 형태의 사회의식들이 이 상부구조에 조응한다. 물질생활의 생산양식은 사회적, 정치적, 정신적 활동 전반의 성격을 결정한다. 인간의 의식이 자신의 존재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인간의 사회적 존재가 자신의 의식을 결정한다."
(마르크스, <정치 경제학 비판을 위하여> 中)-251-252쪽

"2. 기존의 생산관계는 생산력을 구속하는 질곡으로 변한다. 이리하여 사회혁명의 시기가 도래한다. 경제적 기초가 변하면 거대한 상부구조 전체가 재빨리 변혁된다. 어떠한 사회구성체도 생산력이 그 안에서 발전할 여지가 있는 한 결코 사멸하지 않으며, 보다 높은 새로운 생산관계는, 낡은 사회의 태내에서 새로운 물질적 조건들이 성숙하기 이전에는 출현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인류는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과제만을 자기에게 제기한다.'
(마르크스, <정치 경제학 비판을 위하여> 中)-25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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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도와 떠도는 사원
김용규.김성규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6년 12월
품절


오늘날은 전문인의 시대이다. 따라서 모든 사람이 전문인이 되려고 노력하며 또한 되어야만 한다. 전문인이란 기술자, 과학자, 관리자, 경영자, 의사, 법률가, 디자이너 등과 같이 도구적 지식을 가진 사람들을 말한다. 이들의 힘은 실용성에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전문인의 활동은 그 본성상 개인적이며 합목적적이기 때문에, 이들에게는 지식인으로서 갖추어야 할 도덕적, 거시적 전망이 요구되지 않는다. 여기에 이들이 중심이 되는 현대 사회의 위험성이 잠재되어 있다.
문제는 또한 우리의 삶이다. ... 중략 ... 우리의 삶과 사회를 의미 있고 풍요롭게 하는 다양하고도 숭고한 인류 보편적 가치들 대신에 실용성, 경제성이라는 획일적 가치만을 추구하면서, 기계적이고도 과도한 경쟁 체계 속에 살아야 하는 오늘날 청소년들과 젊은이들은 자신도 모르게 황폐해지고 있다. 이들의 삶은 마치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열차에 오른 것과 같이 불안하다.
(초판 저자 후기 中)-477쪽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진정한 해결책은 과연 어디에 있는가? 해결의 열쇠는 지식인이라는 말에 있다. 지식인이란 인류 보편적 가치를 인식하고 그것을 수호하며 사회에 구현하려는 의무를 스스로에게 부여하는 자이다. 때문에 이들의 사고와 행동은 초개인적이고도 합리적이며 도덕적이고 또한 인간적이어야 한다. 이러한 사고와 행동에 의해서만 사회가 발전하며 개인의 삶이 풍요로워진다. 때문에 우리 모두는 단순한 전문인이 아니라 지식인이 되기 위해 힘써야 한다.
지식인이 되기 위한 첫걸음은 '보편적 주제'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시작한다. ... 중략 ...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바르고도 바람직한 지식과 견해를 가져야만 하는데, 이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이 곧 사상들이다. ... 중략 ...
<알도 시리즈>는 정치, 경제, 사회, 과학, 문화, 예술, 교육, 철학, 종교 등등 각 분야에 관한 다양한 사상들을 소설 형식에 담아서 독자들이 건전한 지식인으로서 가져야 할 각종 지식들을 흥미롭고 쉽게 접할 수 있도록 하려는 시도라 할 수 있다.
(초판 저자 후기 中)-47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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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7-04-17 2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문구가 마음에 드셨나요? :)
이 책 뒤에 초판 저자 후기 문구들이 전부다 맘에 쏙 들어왔습니다. 환타지 소설이지만 지향점은 그곳에 있죠. 굉장히 재밌게 봤습니다. 곧 리뷰도.
 
대장부의 삶 - 옛 편지를 통해 들여다보는 남자의 뜻, 남자의 인생
임유경 지음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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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조선 지식인들의 삶에 주목하는 책들이 여러권 나오고 있다. <대장부의 삶>은 이런 흐름 속에서 인기를 누리고 있는 책 중의 하나다. 조선 시대 선비들의 편지글을 묶어 오늘날의 한국어로 '번역'해 내놓은 이 책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조선 선비들인, 허균, 권필, 이덕무, 정약용, 박지원, 김정희, 이순신, 기대승, 이황부터 시작해서 잘 알지 못하는 홍귀달, 박사해, 조익, 이천보, 남구만, 이광사, 박태보, 이학규 등등의 선비들의 편지글까지 추스리고 있다. 책 한 페이지 분량도 안되는 짧은 편지글부터 시작해 두 세 페이지가 넘어가는 긴 편지글도 있고, 책을 돌려 달라고 떼쓰는 가벼운 쪽지 개념의 편지글이 있는가 하면, 상대방을 훈계하고 다그치는 편지글도 있다. 

  책은 주제별로 많은 편지글들을 분류하고 있는데, 뜻을 세우다, 벗으로 산다는 것, 세상살이 고생길, 아버지로 산다는 것, 죽음 앞에서의 다섯 범주를 사용하고 있다. 학문과 벗사귐과 삶과 관계와 죽음에 대한 이들의 편지글은 때로 지하철 간에서 속으로 크큭 거리게 만들기도 하고, 자세반듯 비장한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게 만들기도 한다. 웃겼다 울리며 마음을 動하게 만들고, 머리로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기도 한다. '대장부의 삶'이라 하여 유명한 조선 선비들의 비장함 각오와 학문에 정진하는 자세 등을 예상했다면 뜻 밖의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책을 빌려준지가 언제인데 아직도 돌려주지 않느냐며 상대를 어르고 달래고 다그치고 독촉한다. 한번 빌려준 책은 '빌려' 준 것이 아니라 그냥 '준' 것이지 않느냐며 어찌 책을 달라고 하느냐고 대답하기도 하는 등 오가는 편지들이 아주 재미있다. 역시 선비들인지라 학문하는 자세나 책을 소재로 삼는 경우가 많지만, 때로는 아버지가 아들의 생활습관을 훈계하고, 멀리 유배 떠난 동료에게 안부를 전하고, 희망을 갖도록 만드는 편지들도 있으며, 열여섯에 시집가 스물다섯에 죽은 딸을 향해 부모로서의 슬픔을 표하는 긴 편지글에서는 멈추어 울컥한다. 선비라하여, 학자라하여, 그들이 우리와 다른 것은 없다. 그들도 한 사람으로서의 삶을  살았을 것이고, 한 사람으로서의 삶이 거쳐가는 희노애락의 모든 감정들은 그들에게도 해당한다. 울고 웃고 기뻐하고 슬퍼하고 화내고 짜증내고 하는 모든 감정은 인간이라면 누구에게나 있다. 고고한 학자라하여, 청렴하고 반듯한 삶을 살았던 선비라하여 예외는 아닐 것이다.  이 책을 통해 그들을 학자나 선비로서가 아닌, 우리와 같은 하나의 삶을 살아간 사람으로서 마주한다.  

  "잔뜩 분위기 잡는 선비들일 줄 알았는데 아주 하찮은 문제에서조차 범인처럼 억지를 부리며 자기주장을 고집하곤 한다. 때로는 분위기 잡고 심각하게 이야기하기도 하고, 때로는 농담으로 일관한 편지를  쓰기도 하는 등 선비들의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어 재미있다. 재밌게 읽던 와중에 새삼스럽게 얻은 깨달음 하나. 손으로 편지를 써본 지 오래인 우리 삶을 돌아보면서 형식의 간소화가 마음의 간소화로까지 번지지는 않아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책 뒷날개의 본인의 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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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4-17 20: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marine 2007-04-24 15: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서점에서 보고 살까 말까 고민 많이 했던 책인데, 읽으셨군요

마늘빵 2007-04-24 15: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별 기대는 하지 마시고요, 편지글의 내용이 즐겁습니다. 딱 그 정도 예상하시면 돼요. 옛 선비들의 편지글을 읽는다는 의미.
 
새로운 논문작성법
고려대학교 출판부 엮음 / 고려대학교출판부 / 2001년 6월
평점 :
품절



  어느덧 2년 이상의 세월이 흐르고 졸업을 앞둔 시점에서 논문을 써야하는 부담감을 느끼고 있다. 지난 학기부터 느껴왔던 부담감은, 좀처럼 그 무게를 덜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한번 필 받으면 쭉쭉 밀고 나가겠다는 나의 계획은, 한달 두달 시간만 축내며 마지노선을 향해 간다. 딱히 무엇을 써야겠다는 어떤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시점에서 논문은 매우 부담스럽다. 그저 졸업을 위한 힘겨운 코스로서 마주할 것인가, 아니면 문제의식을 토대로 밑바탕 작업을 끝낸 후에 논문을 쓸 것인가. 당연 후자가 바른 선택의 길이겠지만, 지금의 상황에서 후자의 선택은 졸업 시기를 늦추는 결과를 불러온다.

  어쨌든 논문은 써야겠고, 대략 무엇에 대해 쓰겠다는 생각도 있지만, 직장과 학업을 병행하는 나로서는 퇴근 후의 시간들은 달콤한 휴식으로 연결되기 십상이다. 매일매일이 이러니 언제 책을 보고, 언제 글을 쓰겠느냐. 핑계라면 핑계고, 이유있는 항변이라면 항변이다. 일단 논문을 쓰기 위해서는 대략 어떤 작업을 할 것인가를 계획해야 할 것이고, 그 순서에 맞추어 야금야금 진행해야 할 것이다. 

  고려대학교에서 나온 <새로운 논문작성법>은 나름 이에 충실한 해답을 제시해주고 있다. 논문쓰기를 앞두고 무엇을 해야할지 막막한 이들을 위해, 또 구체적인 어떤 작업을 해야할 것인지 모르겠는 이들을 위해, 논문작성방법을 익히려는 이들을 위해 적합한 책이다. '논문'은 학문은 하는 이들이 익혀야 하는 글쓰기의 규칙을 담고 있다. "논문이란 '새로운 견해를 제시함으로써 학문의 발전에 공헌하고, 나아가 인류의 지식의 총화에 무엇인가 보탬이 되는 것'이어야 한다" 는 문구에도 작게나마 충실해야 할 것이지만, 업적을 내건 그렇지 않건 논문은 학문을 하는 이들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글쓰기의 과정이다.

  전공 교수님 한분은 십수년 논문을 작성하다보니 이제 나름대로의 비법이 생겼다고 하시지만 논문을 처음 쓰는 이로서는 그렇게 부담스러울 수가 없다. 부담감을 덜어내기 위해서는, 첫째, 내 스스로가 만족하는 논문을 쓸 것, 둘째, 인터넷에 내놓아도 얼굴 빨개지지 않을 정도의 질은 담보할 것, 의 조건을 충족시켜야한다. 이 정도만 되어도 성공이라고 하겠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논문은 네 가지의 요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정확성, 객관성, 검증가능성, 가독성. 정확성은 논문에 실리는 통계나 인용된 인명, 표제 등등이 정확해야 한다는 것이다. 논문 내용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는 선이라 할지라도 이런 부분에서 정확하지 않으면 논문에 대한 신뢰는 떨어질 수 밖에 없다. 한글맞춤법에 맞게 쓰는 것은 물론이고, 점 하나까지도 신중히 다루어야 한다.  "객관성은 사실과 증거가 논문을 뒷받침해야 하고, 집필자의 주관적인 견해나 자료가 바탕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편견, 선입견, 감정은 금물이요 오직 진리를 위해 성의껏 작성해야 한다. 검증가능성은 다른 이가 이를 재현할 수 있도록 기술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출처, 방법, 주제에 대한 접근방법 등이 명시되어야 한다. 가독성은 간결하고 명료하게 읽기 편하도록 작성해야 함을 의미한다. 

  대략 이러한 요건들에 충실하게 작성되면 글쓰기의 면에서는 무리가 없다 하겠다. 유념해야 할 것은, 이것은 권유사항이 아니라 필수사항이라는 점이다. 작성요건 뿐 아니라 이 책에 나와있는 출처 다는 법, 각주 작성, 인용법 등등의 모든 내용은 논문작성의 필수다.  모든 해당 항목에 충실했을 때 논문은 최소한의 논문으로서의 자격을 갖추게 되며, '좋은 논문'을 쓰는 것은 작성하는 개개인에게 달려있다. 작성법을 어느 정도 익혔다면 이제 펜을 들자.  

 * 이 책의 저자는 '고려대학교 출판부'로 되어있는데, 확실한 저자는 누구인지 알 수 없다. 설마 출판부 직원들이 쓰지는 않았을테고, 그렇다면 누가. 96년에 나온 <논문작성법>을 토대로 하여 보완한 것으로 보이는데, 그때의 저자도 역시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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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인 2007-04-14 14: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오.. 구체적인 내용이 궁금해 지네요.. 이런 종류의 책 몇권 봤는데, 에코의 책만한 것이 없던데.. 정말 구체적 논문 작성에 도움이 되나요? ^^

마늘빵 2007-04-15 0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코 책 저도 봤는데, 가물가물해요. 이 책 참고문헌에 에코 책도 포함되어있더군요. 서울대 논문작성법 책이랑 이화여대 책도 참고문헌에 있던데요?

BRINY 2007-04-15 17: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딱히 무엇을 써야겠다는 어떤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시점에서 논문은 매우 부담스럽다.->무척 공감가는 말이여요. 저는 3번재 쓰는 논문인데도 어째 점점 아이디어와 열정은 고갈되어 가는 중...자격증 따려고 시작한 공부라서 그런가봐요.

다락방 2007-04-15 1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대학 졸업논문 쓸 때 정말 너무 너무 신경을 써서 말이죠. 그렇다고 잘 썼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고 이책저책 짜집기를 했더랬어요. 정말 부끄러운 논문이었죠. 제가 그때 이 책을 읽었다면 논문을 잘 쓸 수 있었을까요? 흐음. 논문, 정말 싫어요.

마늘빵 2007-04-16 0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브라이니님 / 세번째 논문이라고요? 헙. 그렇담 대학원을 세개요?
다락방님 / 저도 그리될 공산이 높습니다. -_- 그럼 안되는데. 쩝.
 
지식을 위한 철학통조림 - 고소한 맛 1318을 위한 청소년 도서관 철학통조림 4
김용규 지음 / 주니어김영사 / 2006년 9월
구판절판


"계몽이란 인간이 스스로의 잘못으로 빠진 미성숙의 상태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미성숙함은 다른 사람의 지도 없이는 자신의 이성을 사용하려고 하지 않는 무능력함을 말한다. 이것의 원인은 이성의 부족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지도 없이는 자신의 이성을 사용할 결단과 용기의 부족함에 있다. 때문에 이러한 미성숙은 스스로에게 책임이 있는 것이다. 용기를 가져라! 자신의 고유한 이성을 사용할 용기를 가져라! 이것이야말로 바로 계몽의 좌우명이다."
칸트 <계몽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변> 中-17쪽

첫째, 참된 지식의 근거를 이성에 두었다는 것. 둘째, 직관에 의해 얻어지는 제일원리를 인정한다는 것. 셋째, 제일원리로부터 모든 참된 지식을 차례로 연역해 내는데, 그것들이 결국 하나의 정합적인 체계를 이룬다는 것이다.
(데카르트, 스피노자, 라이프니츠의 공통점)-22쪽

첫째, 모든 지식은 경험에서 나온다. 둘째, 우리의 정신 안에는 태어날 때부터 갖고 있는 본유관념이나 원리는 없다.
(로크, 버클리, 흄의 공통점)-22쪽

우리는 오직 경험을 통해 사물에 대한 감각들을 받아들이는데, 그 감각들이 텅 빈 우리의 정신에 반영된다. 그 결과로 우리의 정신이 얻는게 사물에 대한 관념인데, 이것이 우리가 외부 세계에 대해 아는 지식의 전부이다.
이것은 우리가 마치 '사과'하나를 거울 앞에 가져다 놓으면 그 사과가 거울에 비치는 것처럼 생각할 수 있다. 우리의 정신이라는 거울은 자신에게 비친 사과를 관념으로 얻은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우리의 정신을 '빈서판'보다는 '빈거울'에 비유하는게 더 나을 것 같다.
(로크, 버클리, 흄의 공통점) -25쪽

"우리는 관념을 가지는 것 외에 어떤 지식도 가질 수 없다." (로크) -25쪽

"경험에 의거한 어떠한 논증도 과거와 미래 사이의 유사성을 증명할 수 없다" (흄)-29쪽

우리의 모든 지식은 판단의 형식을 취하며, 판단에는 '분석판단'과 '종합판단' 두 가지가 있다.
분석판단이란 '모든 물체는 연장(공간의 일정 부분을 차지하는 물체의 성질)을 갖고 있다.' 나 '삼각형은 세 변을 갖고 있다'와 같이 술어 개념이 이미 주어 개념에 포함되어 있어서, 경험의 도움을 빌리지 않고 오직 주어진 개념의 분석만을 통해 술어 개념을 이끌어낼 수 있는 판단이다. 때문에 분석판단은 선천적으로 보편성과 필연성을 가진다. 술어가 주어를 설명한다고 해서 '설명판단'이라고도 부른다.
종합판단이란 '모든 물체는 무게를 가진다' 나 '이 사과는 빨갛다'와 같이 술어 개념이 주어 개념에 포함되어 있지 않아 경험을 통하지 않고는 내릴 수 없는 판단을 말한다. 이런 판단은 후천적이며 당연히 개별성과 우연성을 갖고 있다. 술어가 주어에 새로운 개념을 더한다고 해서 '확장판단'이라고도 부른다.
그러니까 '총각은 결혼하지 않은 남자다'는 분석판단이지만, '나의 이웃은 결혼하지 않은 남자다'는 종합판단이다.
(칸트의 인식론 정리)-30-31쪽

과학과 수학의 판단들이 수학의 판단들처럼 보편성과 필연성을 가지려면 결국 '선천적'이어야 하며, 우리의 경험과 맞아떨어지려면 '종합판단'이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의 지식이 보편성과 필연성을 가지면서도 경험과 맞아 떨어지게 하는 방법, 즉 우리의 지식이 이성과 경험 모두에 의해 정당화 될 수 있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이 둘을 종합하여 지식이 '선천적 종합판단'이 되게 하면 된다. -32쪽

"인간의 인식에는 단지 이 두개의 근본적인 줄기만이 있다. 이 줄기들은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은 하나의 뿌리에서 발생했다." (칸트 <순수이성비판>)

"감성과 오성이다. 감성에 의해서 대상이 우리에게 주어지며, 오성에 의해서 대상이 사유된다." (칸트 <순수이성비판>)
-34쪽

감성이란 우리의 정신이 감각(시각, 청각, 미각, 촉각, 후각 등)을 통해서 대상들을 받아들이는 능력이다. 오성이란 감성을 통해 받아들인 내용들을 정리하여 개념을 만들어 내는 능력이다. -34쪽

"감성이 없으면 어떠한 대상도 우리에게 주어지지 않을 것이며, 오성이 없으면 어떠한 대상도 사유되지 않을 것이다. 내용 없는 사고는 공허하며, 개념 없는 직관은 맹목이다. 그러므로 '개념을 감성화하는 것'(즉, 개념에 의해 그 대상을 직관에 부여하는 것)은 '직관을 오성화하는 것'(즉, 직관을 개념 아래 넣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필요하다. ...... 이 둘의 종합에 의해서만 인식이 나올 수 있다."
(칸트, <순수이성비판>) -36쪽

참된 지식은 이제 '실재에 대한 지식'이 아니라, 단지 우리의 정신이 구성한 '현상에 대한 지식'이다. 즉 객관적 지식일 뿐이다. -46쪽

"우리가 자연이라고 부르는 현상의 질서와 규칙성은 우리 자신이 집어넣은 것이다. 만약 우리가, 혹은 우리의 마음이 질서와 규칙성을 집어넣지 않았더라면 이것들은 자연 속에서 발견될 수 없을 것이다."
(칸트, <순수이성비판>)-51쪽

모든 지식은 '사실을 통해 입증', 곧 실증되어야 한다. 따라서 실증할 수 없는 종교적 또는 형이상학적 지식은 무의미하다. 또 지식의 목적은 진리를 알아내려는 데에 있지 않고, 예측을 가능하게 하는 데에 있다. 때문에 우리의 지식은 이론적으로 무한하지만 어디까지나 상대적이다.
(비트겐슈타인과 검증주의 中) -82쪽

"우리는 과학적 세계 파악을 두 가지 모습에 의해 본질적으로 특징지을 수 있다. 첫째는 경험주의적이고 실증주의적이다. 지식은 오히려 경험에서 유래한다. 경험은 직접 주어진 것에 의존한다. 경험이 정당한 과학 내용의 범위를 정한다. 둘째로 과학적 세계 파악은 특별한 방법, 곧 논리적 분석으로 특징지어진다. 과학적 노력의 목표는 논리적 분석을 경험적 질료에 적용함으로써 통일과학이라는 목표에 도달하는 것이다."
( <비엔나 학단의 과학적 세계 파악> 中)-89쪽

"한 명제를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그 명제를 '참'으로 만드는 특별한 상황과 '거짓'으로 만드는 특별한 상황을 정확히 지적할 수 있어야만 한다. '상황'이란 경험의 사실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경험이 명제의 '참'과 '거짓'을 결정한다. 즉 경험이 명제를 검증한다."
(슐리크, <경험의 새로운 철학> 中)-93쪽

"철학적인 사항에 관하여 씌어진 문장과 질문의 대부분은 거짓이 아니라 비의미하다. 그러므로 이런 종류의 질문에 우리는 도대체 대답할 수 없고, 단지 그것들의 비의미성을 증명할 수 있을 뿐이다."
(비트겐슈타인, <논고>, 4.003) -94쪽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사실의 그림을 그린다. ...... 그림은 실재의 모형이다. 그림에서 그림의 요소들이 대상들에 대응하낟. 그림은 그 요소들이 일정한 방식으로 서로 관계를 맺음으로써 이루어진다. 그림은 사실이다."
(비트겐슈타인, <논고> 2.1-2.141) -97쪽

"세계는 모두 사례들이다.'
"세계는 사물들의 총합이 아니고 사실들의 총합이다."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
(비트겐슈타인, <논고> 中)-102쪽

사회다윈주의는 다윈의 진화론의 두 가지 원칙, 즉 '생존경쟁'과 '적자생존'을 사회학에 받아들임으로써 탄생한 이론이다. 즉 사회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경쟁을 통해 사회적으로 부적합한 사람들, 예컨대 장애인이나 정신병자 또는 극빈자들 같은 사회적 약자 등을 제거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131쪽

포퍼는 어떤 설명적인 보편적 과학이론도 검증(또는 귀납적 방법)에 의해서는 그 무한정성 때문에 완전히 증명될 수 없지만, 그 반증은 가능하다고 했다. 왜냐하면 반증이란 단 하나의 '반대적 사례'에 의해서도 증명될 수 있기 때문이다. -137쪽

데카르트가 시를 뿌리고 칸트가 거둔 합리적인 열매인 '객관적 지식'이라는 말은 '언제 누가 보아도 그렇다고 인정되는 지식'을 뜻한다. "빨간 사과가 실제적으로 빨간지는 알 수 없지만, 아무튼 우리는 모두 그것을 빨갛게 인식한다."라는 것이다.
그런데 만일 누군가가 "이 사과는 빨갛다"라는 내 생각과 달리 "이 사과는 파랗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하자. 그러면 나는 당연히 그가 틀렸다고 생각할 것이다. 객관성을 믿는 합리적 인간에게 '다르다'는 것은 곧 '틀리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나는 - 선의에서라도 - 그것을 바로잡아 옳게 만들려고 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합리성->객관성->획일화->지배'라는 연결고리로 이어지는 근대성의 특징이다.-169쪽

"진리란 과연 무엇인가? 유동적인 한 무리의 은유, 환유, 의인관들이다. 간단히 말해서, 시적 수사학적으로 높여지고 위엄 있게 치장하고 장식되어 이를 오랫동안 사용한 종족에게는 확고하고, 교훈적이고, 구속력이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 인간적 관계의 총체이다. 진리는 환상이다."
(니체, <비도덕적 의미에서의 진리와 허위에 대하여>)-170쪽

역사학자들이 역사를 연구할 때에 현재의 관점, 곧 과거에서 본다면 '사후적 관점'에서 과거를 이해하는 방법을 사용하는 것은 부당하다. 우선, 현재의 유리한 관점에서 과거 과학자들의 사상을 뒤돌아본다면, 그 사상이 본래 가진 본질을 그대로 재현하지 못하기 때문에 오해하게 된다. 더욱 나쁜 것은, '옛날 사람들은 이렇게 엉뚱하게 생각했나?' 와 같은 생각을 갖게 되어 현재의 과학지식이 그 전 시대의 것보다 더 우월하다는 생각과 역사가 어떤 획일적인 방향으로 진보한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쿤의 '아하체험'을 통해 알아낸 사실)

-172쪽

포퍼는 실용주의는 '참'과 '유용성'을 혼동하고 있다고 했고, 러셀과 무어는 '거짓'도 때로는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고, '참'도 경우에 따라 나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면서, 이 이론은 도덕적으로도 반대되어야 할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 우둔하다고 평가했다.
-190쪽

로티가 비트겐슈타인으로부터 배운 것은 철학이 진리를 탐구하는 작업이 아니라 각각의 언어 게임 안에서 사용된 언어의 의미를 명확히 하는 '활동'이라는 것이다. 쿤으로부터 배운 것도 역시 과학이 객관적 지식의 탐구가 아니고 과학자 사회가 공통적으로 인정한 '합의', 곧 패러다임을 이끌어가는 '활동'이라는 점이었다.
-191쪽

"우리의 긴념에 관한 질문은 그것이 실재에 관한 것이냐 현상에 관한 것이냐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욕망을 충족시키기에 가장 좋은 행동 습관이냐 아니냐 하는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우리가 아는 한 어떤 신념이 '참'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 밖의 어떤 대안적 신념도 우리가 아는 한 더 나은 행동 습관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다.
(로티, <상대주의 : 발견하기와 만들기> 中)

-193쪽

로티의 '유대성의 철학'이 제시하는 '희망'이란 '인류가 승리할 것이라는 생각에 방해받지 않고, 자신의 내적 본성에 전념한다면 항상 우리의 세계관, 우리의 도덕 이상, 우리의 예술과 같은 것이 햇빛을 보게 될 것이라는 확실성'이다. 그러나 그것은 ' 인간적 진보를 인류를 위해 미리 준비된 장소를 향하여 나아가는 것으로서 생각하지 않고, 보다 관심있는 사물을 행하고 보다 관심 있는 인물로 존재할 수 있는 가능성으로서' 생각하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197쪽

누구에게나 똑같이 파악되는 하나의 객관적 세계란 존재하지 않고 오직 각각의 생물체가 구성하는 수많은 '비누방울'과 같은 다양한 환경 세계들만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만들어진 환경 세계 사이에는 어느 것이 더 '참되다'거나 더 '객관적'이라는 기준이 전혀 없다. 각자에게는 자기가 구성한 환경 세계가 참되고 객관적인 세계이다.
(윅스퀼이 연구로부터 주장하고자 하는 것) -231쪽

인식이란 - 지금까지 보아온 것처럼 - 인간이 어떤 사물에 대하여 갖는 참된 개념이나 그것을 얻는 과정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어 왔다. 이때 인식이라는 행위를 하는 사람을 인식주체라 하고, 인식되는 사물을 인식객체라고 했다. 그리고 이러한 인식 과정을 통해 얻어진 기호적(언어나 수식) 생산물이 곧 지식이다.
이와 달리, 인지란 본래는 사람이나 동물이 지각, 기억, 상상, 판단, 추리 등을 하는 것이나 그 과정을 뜻하는 심리학적 용어였으나 오늘날에는 인지과학 이라는 학문의 발달과 함께 보다 폭넓게 쓰인다. 즉 사람이나 동물뿐만 아니라 컴퓨터에 의해 구성된 인지 시스템 등이 어떤 자극을 받아들이고, 저장하고, 인출함으로써 그것이 무엇인가를 알아내는 일련의 정보처리 과정을 가리킨다.
(마투라나의 인지론과 관련하여)-240쪽

'괄호 없는 객관성'이란 칸트의 구성주의가 보장하는 객관성이다. 즉, '나에게 빨간 것은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빨갛다'라고 생각하는 객관성이다. 그렇기 때문에 동시에 내 생각과 다른 생각을 가진 모든 사람을 부정하거나 배척하는 것을 포함한 객관성이기도 하다.

'괄호 친 객관성'은 마투라나의 급진적 구성주의가 보장하는 객관성이다. 즉 나에게 빨간 것은 단지 나에게 또는 나와 같은 인지 시스템을 가진 존재에 한정하여(또는 괄호 쳐서) 빨갛다고 생각하는 객관성이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든 모두에게 타당한 지식을 알았다고 주장할 수 없고 무수하게 다양한 세계와 그 세계에서 타당한 지식들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며, 내 생각과 다른 생각을 가진 모든 사람의 주장을 - 역시 괄호 쳐서, 하지만 충분히 - 받아들이는 것을 포함하는 객관성이다.
(마투라나의 인지론과 관련하여)
-251쪽

"언어의 통일성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언어의 섬들만이 있을 뿐이다. 이들은 각각 서로의 규칙 체계에 의해서 지배되고, 어떤 것도 다른 것으로 번역될 수 없다."
(리오타르, <포스트모던적 조건> 中)-252-253쪽

"...... 누구나 다 아는 이 세계는 오직 한 세계가 아니라 우리가 다른 이들과 함께 내놓은 '어느 한' 세계임을 깨닫도록 우리를 얽어맨다. 그리고 우리가 다르게 살 때만 세계가 변할 것이라는 것을 알도록 우리를 얽어맨다. 앎의 앎은 우리를 얽어맨다. 왜냐하면 우리가 안다는 것을 알면, 더는 우리 자신이나 다른 사람들 앞에서 마치 우리가 모르는 것처럼 행동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마투라나, <인식의 나무> 中)-257쪽

"우리의 세계가 다른 사람들과 함께 만들어 내놓은 세계라는 것을 알게 되면, 다른 이들과 다투더라도 '그들과 계속 함께 살야 하는 한' 자신만의 확실한 어떤 것을 진리라고 고집할 수 없게 된다. 왜냐하면 그들이 그것을 부정할 것이기 때문이다. 다른 이들과 함께 살고 싶으면 그것이 아무리 마땅치 않게 보인다고 해도, 그들에게 확실한 것 또한 '우리의 것만큼이나 정당하고 타당함'을 인정해야 한다. ...... 이런 행위를 가리켜 사람들은 사랑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좀 약하게 표현하면 일상생활에서 내 곁에 남을 받아들이는 일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마투라나, <인식의 나무> 中)-258쪽

윤리와 지식에 대한 마투라나의 입장은 "무릇 함이 곧 앎이며, 앎이 곧 함이다"라는 그의 아포리즘에 잘 나타나 있다. 그는 '함'과 '앎'을 각각 행위와 경험, 곧 '세계를 내놓은 행위'와 '세계를 인지하는 경험'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우리가 존재하는 방식'과 '세계가 우리에게 나타나는 방식'이라고도 표현했다. 그렇다면 "무릇 함이 곧 앎이며, 앎이 곧 함이다." 라는 아포리즘에는 적어도 두 가지 의미가 담겨 있다.

하나는, '세계를 내놓은 해위'와 '세계를 인지하는 경험'을 분리할 수 없다는 것, 즉 '우리가 존재하는 방식'과 '세계가 우리에게 나타나는 방식'이 구분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이 마투라나의 인지론에서 지식과 윤리가 분리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다른 하나는, '함'과 '앎'이 서로 반복하여 순환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세계를 구성해 내놓으면 '그렇게' 구성된 세계를 경험하며, '그렇게' 구성된 세계를 경험하면 다시 '그렇게' 세계를 구성해 내놓는다는 말이다. 달리말해, 우리가 '그렇게' 존재하면 세계가 우리에게 '그렇게'나타나고, 세계가 우리에게 '그렇게' 나타나면 우리가 다시 '그렇게'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마투라나의 인지론에서 지식과 윤리가 서로 반복적으로 순환하는 이유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함'과 '앎'의 이러한 순환구조가 가치 중립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윤리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그렇다. 그래서 '함'과 '앎'의 순환은 당연히 그것을 결정한다. 즉 '세계를 내놓는 행위', '우리가 존재하는 방식'이 선하면 선순환이 일어나기 시작하고, 악하면 악순환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260-26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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