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적 유전자 - 30주년 기념판
리처드 도킨스 지음, 홍영남 옮김 / 을유문화사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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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30년판이 나온지도 시간이  꽤 흘렀다. 맨처음 <이기적 유전자>를 접한건 아마도 중학교 때로 기억한다. 1992년에 두산동아에서 첫판이 나왔는데, 셈이 맞는지 모르겠는데 중학교 1학년 때인듯 하다. 중학교 때는 이 책이 어렵게 느껴졌다. 그 때 읽고 기억하고 있는건 맨처음 어떤 수프 속에서 생명이 탄생했다는 것 뿐이다. 이후 시간이 한참 흘렀고, 30년 기념판을 접했다.

  도킨스는 이 책에서 자신의 주장은 처음과 변함이 없고, 그동안 개정판이 몇 차례 나온 것은, 오직 자신의 주장을 좀더 쉽게 전달하기 위해 문장을 손보고, 더 많은 예들을 집어넣었을 뿐이라 했다. 30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도 이런 말을 한다는건 둘 중 하나다. 자신의 이론이 정말 진리라고 믿고 있거나, 아니면 그것이 진리이거나. 그런데. 여러 과학자들에 의해서, 심지어는 그와 비슷한 진영에 있는 학자들까지 그의 이론을 비판하는 것을 보면, 후자는 아닌 듯 하다.

  다윈이 <종의 기원>을 썼던 당시 기독교계의 무수한 비판을 받은 것과 비교하여, 자신의 이론이 처음 나왔을 때 온갖 학계로부터 비판을 받았다고 말한건 그가, 아마도 다윈의 후예임을 자처함과 동시에, 다윈과 동급으로 취급되고픈 마음을 드러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자기이론에 대한 자신감은 어느 정도 필요하지만, 외부로부터의 귀를 닫아놨을 때는 이건 고집 밖에 되지 않는다. 내가 봤을 때 도킨스는 나름 외부의 비판에 대한 반론을 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변함없이 자신의 이론을 고수하는 것을 보면, 외부의 비판을 수용하는 마음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그러나, 그의 생물학적 주장에서 벗어나 사회와의 관계 속에서 나오는 비판은 어느 정도 도킨스에게 향할 것은 아닌 듯 하다. 생물학 내에서의 이론과 사회와의 관계 속에서의 영향력은 엄밀히 구분해야하므로 도킨스에게 죄를 부과하는 것은 100% 온당해보이진 않는다.

  유전자는 '자기복제자' 의미로서의 단위이고, 개체는 '운반자'의미로서의 단위이다. 즉 우리의 몸은 유전자가 자기복제를 하기 위한 일종의  수단, 매개체가 되는 것이고, 행위를 결정짓는 것은, 우리의 진화를 결정짓는 것은 우리가 아니라 유전자라는 것이다.

  도킨스는 일단 이 책의 1장을 통해서 사람은 왜 존재하는가, 라는 질문을 던지고, 이 안에 진화와 다위니즘, 이기주의와 이타주의, 그룹 선택설이라는 소제목을 두고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도킨스의 이론을 이해하는데 있어 1장은 매우 중요하다. '이기적 유전자'라 할 때 유전자가 이기적이다라는 의미는, 일종의 비유로서 봐야지, 유전자에게 어떤 이타성이나 이기성이 잠재되어있다고 봐서는 안된다. 또한 그가 말하는 이기주의의 개념은 우리가 사회적으로 사용하는 의미와는 조금 다르다. 이런 것들이 1장에 들어있다.

  이어서 그는 인간의 존재, 행위, 노화, 돌연변이 등 인간의 외양의 변화와 행동양식을 통해 유전자가 어떻게 영향을 끼치는지를 설명한다. 이 책은 매우 두껍고, 많은 부분이 인간의 모든 양식에 대해서 이기적 유전자가 어떻게 영향을 끼치고 드러내는가에 대해 말하는데 할애하고 있다. 최대한 많은 부분에 대해서 유전자의 영향력을 언급해야만 외부의 비판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고, 자신의 주장이 강해지기 때문이다. 사람이 사람을 구하는 것은, 그 사람이 이타적이어서가 아니라, 단지 그 사람을 구해야만 유전자를 보호할 수 있고 널리 퍼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상황과 어떤 관계냐에 따라서 이는 다르게 표출된다. 세포는 유전자의 화학공장이며, 유전자는 일종의 뉴런이다.

 도킨스는 유전자 gene에 이어 문화 meme의 개념을 창조하며, 이를 일종의 유전자의 '길게 뻗어나간 팔'정도로 다루고 있다. 인간에게 문화가 있는 것은 사실이나 우리가 문화를 문화라 칭할 때의 그것과 도킨스의 그것은 엄밀히 다르다. 도킨스의 그것은 유전자의 변형된 형태로서 봐야한다. 그리고 이는 인간에게만 해당되는 것이다. (이에 대한 비판은 리 두거킨의 <동물에게도 문화가 있다>를 참조하기 바란다)

  애낳기와 애키우기에 있어서, 인구문제에 있어서, 가족계획에 있어서, 배우자를 선택하는데 있어서 유전자는 어떤 기준을 가지고 어떤 선택을 하는가. 모든 것이 이 책안에 들어있다. 그것을 믿고 안믿고는 독자 개인의 판단에 달려있으며, 단지 도킨스의 말만을 듣고 결론내리지 말고, 그의 비판자들의 목소리 또한 들어보고 결론을 내렸으면 한다. 도킨스의 이론과 주장은 나름 신선했고 충격적이었지만, 진실여부에 대해서는 아직도 많은 과학자들이 이에 대한 비판을 제기하고 있기에 확신할 수 없다.

  또한 '이기적 유전자'이론이 생물학계를 넘어서 인간사회에 끼칠 영향력은 대단하고 무섭다. 흔히 유전자 결정론, 사회생물학 이라하는 것이 그것이며, 지금 내가 처한 모든 상황들은 유전자에 의해 결정된 것이란 사실이다. 이에 대해서는 이 책만으로는 부족하고, 관련된 다른 책들을 참조하기 바란다. 최근 이상원 교수가 <이기적 유전자와 사회생물학>이라 하여, 이기적 유전자론을 요약/정리하고, 비판점을 다룬 책이 나왔다. 매우 쉽게 씌여졌고 얇으므로 부담없이 읽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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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d0735 2007-03-10 2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학교때 처음 접하셨다니 조숙하셨네요. 전 사회에 나와서 알았습니다. ㅠ.ㅠ
얼른 읽어봐야할텐데...

마늘빵 2007-03-10 2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학교 때 모르고 구입한거죠. 그냥. 아마도 추천도서목록 보고 사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몇장 못봤었어요.

hillbilly 2007-04-21 08: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내용 잘 읽었습니다. 내용 중 '이기적 유전자와 사회생물학' 의 지은이는 김상원 교수가 아니고 이상원 교수인 것 같습니다.


마늘빵 2007-04-21 0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이런 제가 큰 실수를 했군요. -_- 저자의 성을 바꿔버리다니. 지적 감사합니다.
 
동물에게도 문화가 있다
리 듀거킨 지음, 이한음 옮김 / 지호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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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에 대한 관심은 사회생물학이나 유전자결정론, 진화심리학 등의 관련된 분야들에 관심을 갖게 만들었고, 그 와중에 접한 책이 <동물에게도 문화가 있다> 이다. 이 책의 제목 아래에는 소제목으로 '이기적 유전자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동물들의 진화' 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개념은, 동물과 인간의 행동은 유전자에 의해 결정된다는 유전자결정론으로 이어진다. 사람이 물에 빠진 상황에서 그를 구하는 나의 '이타적' 행동 조차도 도킨스의 눈에는 이기적인 유전자에 의한 것이다. 도킨스는 모든 인간과 동물의 행동을 이러한 '이기적인 유전자'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다. <이기적 유전자>에서 도킨스는 gene 말고 meme 이라는 개념을 도입하는데, 혹자는 이를 두고 도킨스가 한발짝 물러난 것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혹자는 이기적 유전자론을 강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저걸 도킨스는 '밈'이라 부르는데, 이는 그리스어의 어근에 따르면 mimeme 이라 해야하지만, 유전자를 뜻하는 gene의 발음과 비슷하게 하기위해 meme이란 용어를 만들었다.

  인간에게서 보이는 행동양식은 유전자에 의한 것이기도 하고, 어떤 것은 밈에 의한 것이기도 한데, 이 밈이란 것은 결국 우리가 문화라 부르는 것의 총칭이다. 하지만 이 밈 역시도 유전자와 같이 "엄밀한 의미에서 살아있는 구졸 간주해야"하며, "당신이 내 머리에 번식력이 있는 밈을 심어 놓는다는 것은 글자 그대로 당신이 내 뇌에 기생한다고 하는 것"이라 한다. 밈도 유전자와 같이 복제를 하며 자기 생존을 위해 목적의식을 가진 능동적 존재로 봐야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의문이 하나 생긴다. 인간을 제외한 동물에게는 문화가 없을까?

  루이빌 대학에서 연구중인 진화생물학자 리 두거킨은 <동물에게도 문화가 있다>라는 책을 통해서 유전자 결정론의 헛점을 찾아 동물들도 사회적  협동을 할 수 있으며, 모방 인자를 통해 문화적 전달이 진화에 영향을 끼칠 수 있음을 이야기한다. 그는 이전에 <동물들 사이의 협동이라는 책으로 과학상을 받았다고 한다.

   이 책의 첫장에는 "문화는 단순한 것에서부터 복잡한 것에 이르기까지 모든 생명체에게 작용하는 강력한 힘이다." 라고 씌여있다. 도킨스가 주장하는 유전자뿐만 아니라 문화까지도 인간을 비롯한 모든 동물들에게 있어, 심지어 단세포에게까지도, 진화적 영향력을 가지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두거킨은 이 두꺼운 책을 통해서 '거피'실험 과정에서 보고 관찰한 것들을 자주 인용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을 이해하기 위해 '1장 문화적 동물'은 중요하다. '2장 이기적 유전자의 길게 뻗은 팔'에서는 문화를 두고 일종의 이기적 유전자로부터 비롯된, 여기에서 가지를 치고 뻗어나간 곁다리쯤으로 간주하는 과학자들의 의견에 대해서 반박하고 있다. 앞선 도킨스의 '밈'이라는 개념은 문화의 총칭이라고는 하지만, 그것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문화'의 개념이 아닌 유전자 개념으로부터 비롯된 즉, 유전자의 변형된 형태로서 바라볼 수 있는 개념이다. 즉, 도킨스의 '밈'은 '이기적 유전자의 길게 뻗은 팔'에 불과하다. 두거킨은 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문화를 동떨어진 다른 것으로 바라봐야하고, 그것이 인간 뿐 아니라 동물에게도 있음을 말한다.

  두거킨은 유전자가 진화에 미치는 영향력을 무시하진 않는다. 다만 그는 유전자 이외에 문화라는 것이 진화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인간뿐 아니라 동물에게도. 그래서 그는 도킨스가 자신의 주장을 내세울 때와 같이 다양한 동물들의 예를 든다. 거피를 중심으로 하여, 제비, 기린, 세일핀몰리, 고래 등등. 두거킨은 유전자의 진화에 대한 영향력이 강할 때가 있고, 문화의 진화에 대한 영향력이 강할 때가 있다고 한다. '4장 문화의 의미'는 이를 밝히는데에 할애하고 있다. "행동생태학자들과 심리학자들은 오래 전부터 동물이 살아가는 환경이 자주 변하긴 하지만, 너무 자주 변하지는 않을 때에는 학습이 유전적 전달보다 더 선호된다고 말해왔다." 과학적 관점에서 정보습득의 경로는 유전부호, 개체학습, 문화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문화적 전달이 유전적 재생산보다 정보를 축적하는 더 나은 수단이 되는가를 묻고 대답한다.

  실제로 동물들은 '모방'을 통해 동료의 행동을 따라하며 이것은 짝짓기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두거킨은 이러한 동물들의 모방행위를 문화의 일종으로 본다. 두거킨의 문화개념은 우리 인간세계에 있어서의 문화개념과는 조금 다르다. 범위가 더 넓다고 해야할 것이다. 여러 실험을 통해서 그는 모방이 진화를 결정짓는 광경을 목격한 바에 대해 진술하고 있다.

  인간은 왜 사람들은 지금과 같은 식으로 행동을 하는 것일까, 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져왔으며, 지난 세기 인류학, 생물학, 심리학 등의 학문이 이에 대해 대답하려 노력했다. 두거킨은 인간 "행동의 특성을 이해하려면 문화적 진화의 과정을 철저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으며, "우리는 남의 행동에 맞춰 행동하도록, 대개 그들의 행동을 본뜨도록 진화해 왔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동물에게 있어 뇌의 크기는 중요하지 않으며, 한 개체의 독특한 행위와 이를 따르는 다수의 개체들로 인해 표준유전이론은 극적으로 무너진다. 우리가 유전자의 통제를 받아왔다는 사실을 거부하진 않지만, 문화적 진화는 언젠가부터 유전적 진화 못지 않은 영향력을 발휘했고, 유전자에 의해 모든 행위가 결정된다는 유전자결정론은 진화의 한쪽면만을 바라 본 것이다. 인간을 비롯한 동물은 유전자뿐 아니라 문화의 영향을 통해 진화하며, 그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임이 두거킨의 실험과 이론을 통해 입증되었다. 아직 명확히 진화에 대한 연구가 종결된 것은 아니다. 꾸준히 연구는 아직도 진행중이며, 앞으로 새로운 다른 연구결과가 나올지도 모른다. 일단 그렇더라도 '동물에게도 문화가 있다'는 건 거부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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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적 유전자와 사회생물학 (양장)
이상원 지음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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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주년 기념판이 나왔으니 이 논쟁이 있은지도 벌써 30년이렸다. 30년간 서양에서 많은 학자들이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개념과 주장에 대해 여러 이야기를 나눴고, 그 중에는 이기적 유전자론을 지지하는 주장도 있었지만, 이를 비판한 학자들 또한 적지 않았다. 대표적으로 상황에 따라 도킨스와 함께 할 수 있으면서도 '이기적 유전자'의 영향력에 대해서는 비판을 제기하고 있는 스티븐 제이 굴드가 있다. 그는 다윈의 후예라는 점에서 도킨스와 같지만, 생물학적 결정론이 유전자 결정론으로 모습을 바꿔 등장하는 것을 목격하고, 이것이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을 우려한다. 생물학이 사회학의 영역에 발을 들여놨을 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현재 서울시립대 강의교수로 재직중인 이상원 교수는 <이기적 유전자와 사회생물학>이라는 얇은 책자를 통해서 그간에 논의되어온 이기적 유전자 논쟁에 대한 정리를 시도하고 있다.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가 함의하고 있는 바가 무엇이고, 그것이 왜 비판을 받는지,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지를 살펴본다. 

  먼저, 도킨스의 프로필과 기본적 관점을 살펴보고, <이기적 유전자>에 드러난 그의 주장들을 하나하나 우리말로 더 쉽게 풀어준다. 도킨스는 스스로 책을 매우 쉽게 썼다고 하고, 또 그러한 것이 사실이지만, 해당 분야에 대한 기본적 지식이 없는 나같은 이는 심정적으로 어려움을 느끼기 때문에 더 쉬운 해설서가 필요하다. 이 책은 도킨스의 이론에 대한 해설역할을 해줄 뿐 아니라 그간의 비판점까지도 담아내고 있어 '이기적 유전자'에 관해 정리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

  7장 생물학적 결정론과 사회생물학, 8장 과학의 이데올로기적 성격 부분은 특히나 '이기적 유전자'를 생물학적 결정론, 사회생물학과 어떤 연관성이 있는가를 살펴보고, 그것이 하나의 이데올로기로서 어떤 작용을 하는지를 알아본다.

  "사회생물학은 사회성 동물의 행동이 유전자에 의해 결정된다는 주장 자체에서 비롯되었다기보다는 그런 유전 결정론적 구도 안에 우리 인간 종마저 포함되었다는 점에서 촉발되었"으며, 인간의 모든 행동이 유전자에 의해 결정되면, 지금의 사회적 위치는 자연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므로 우리는 받아들여야 한다. 예를 들자면, 남녀차별이나 사회적 신분차, 계급, 불평등의 문제, 가부장제, 엘리트주의, 인종차별 등등의 모든 것들이 자연에 의해 불가피한 것이 되므로 생물학은 이데올로기로서 작용하게 된다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사회생물학자들은 인간의 행동을 유전자로부터 비롯된 것으로 바라보는데, 인간의 삶은 단지 유전자뿐 아니라 문화에 의해서도 영향을 받는 것이며, 그 어떤 것도 우리 개개인의 삶을 결정짓지 않는다. 저자는 "우리의 생물학적 특성, 특히 유전자가 우리의 삶에 심오한 영향을 준다는 이야기와 유전자에 의해서 우리의 삶이 결정된다는 이야기는 전혀 다른 이야기다. "라고 결론내리고 있다.

  <이기적 유전자>는 1판이 번역된 이래 엄청난 판매량을 보여왔다. 베스트셀러에서 스테디셀러로 자리매김하며 꾸준히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개정판이 나오고, 15년판이 나오고, 이제는 30년 기념판까지 나왔다. 도킨스는 스스로 개정판이라 하여 자신의 처음의 이론에서 달라진 것은 없으며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문장을 고치고, 예를 첨가하는 수준에서 머물렀다고 말했다. 그가 그만큼 거만하게 구는 것은 나름대로 이론에 대한 확신과 믿음이 있기 때문이겠지만, 수많은 과학자들과 인문/사회학자들의 그의 이론에 대한 비판은 각기 나름의 메세지를 전해주고 있다. 이 책으로 어느 정도 기본은 파악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만, 정리과 비판에 관한 내용이 그다지 깊이있진 않으므로, 나같은 입문자가 아니면 권하고 싶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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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포일러 경고

참으로 힘겨운 영화. 좁아터진 영화관의 좌석과 좌석 사이의 공간을 뒤척이며 인내심을 요하는 영화다. 뭐라고 말하면 좋을까. 러닝타임 133분은 극장을 가득 메운 관객들에겐 너무나 길었고, 이를 참다못한 많은 관객들이 끊임없이 어둠과 탁한 공기로부터 벗어났다. 아마도 그들은 나같이 이 영화의 감독과 감독이 영화를 만들어나가는 방식에 대해 사전지식이 전무한 사람들이었을게다. 솔직히 매우 힘겨웠다. 기왕 자리에 앉은거 끝까지 봐야하지 않겠느냐, 또 다른 사람들의 관람을 방해할 수 없다는 생각으로 끝까지 함께했다.

"정말로 소박하게, 상대를 마주보는 기분자체를 소중히 한다는 느낌을 추억하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라고 말하는 허우 샤오시엔 감독. <비정성시>와 <카페 뤼미에르>로 유명하다는데 이 감독의 수많은 작품 중 어떤 것도 본 적이 없으므로 나에겐 신인이나 다름없다. 간략히 감독에 대해 말하면, 대만 출생으로 1980년 <귀여운 여인>으로 데뷔해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작인 <비정성시>와 방황하는 젊은연인의 초상 <밀레니엄 맘보>, 오즈 야스지로 감독의 탄생 100년을 기념하는 <카페 뤼미에르> 등이 대표작으로 뽑힌다.

<쓰리타임즈>는 2005년 대만 금마장영화제 여우주연상 수상, 2005년칸영화제 경쟁 부문. 2005년 부산 국제 영화제의 개막작이었다고 한다. 영화는 '사랑의 꿈' '자유의 꿈' '청춘의 꿈'이라는 세 가지 에피소드로 구성되어있으며, 각각 대만의 1911년, 1966년, 2005년의 시대를 뛰어넘는 시간적 배경설정으로 각기 다른 사랑의 모습을 보여준다.



* 어렵게 그녀를 찾아온 첸과 그를 보고 웃는 슈메이. 사랑은 그렇게 시작됐다.

첫번째, 1966년 가오슝. 사랑의 꿈. 당구장 종업원 슈메이는 이전의 종업원에게 온 편지를 보게되고, 휴가를 나와 당구장의 그녀를 찾아온 첸과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이후에도 두 사람 사이에 편지가 오고 가고 첸은 슈메이가 떠난 당구장에서 그녀를 찾는다. 슈메이가 이곳을 떠나고 지나간 모든 경로를 추적하여 결국 어렵게 슈메이를 찾고, 그녀를 어렵게 찾아온 첸을 보고 그녀는 웃는다. 그건 사랑. 시간이 없어 함께 밥을 먹을 수 밖에 없는 두 사람, 함께 한 시간은 짧지만 충분히 서로를 확인할 수 있었다. 기차는 끊겼고, 버스만이 남은 어둠이 내린 인적없는 그곳에서 손을 잡는다.

* 양반신분의 지식인 창과 기녀 신분의 아메이. 날 사랑한다면 이곳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주실 순 없나요.

두번째. 1911년 대도정. 자유의 꿈. 양반임에도 개화사상을 주장하는 창과 기녀 아메이의 사랑. 창은 축첩제를 반대하는 글을 신문에 쓰지만, 정작 그녀의 동생이 누군가의 아이를 배자 아이의 아버지와 혼인시키기 위해 자신의 돈을 내놓기까지 한다. 축첩제 폐지를 주장하지만 정작 첩을 들이는데 있어 도움을 준 것이다. 지식과 행동이 서로 반하는 지식인의 모습을 그렸다. 대놓고 이야기하지 못하지만 자신을 데려가줬으면 하는 아메이와 그녀를 받아줄 수 없는 창. 두 사람의 대화는 말이 아닌 글을 통해 자막처리된다. 속내를 다 털어놓지 못하는 두 사람의 마음을 재밌는 방식으로 표현했다. 영화가 지루함에도 불구하고 중간중간 웃을 수 있는건 영화의 내용 때문이 아니라 형식미 때문이다.




* 도심을 가로지르는 오토바이와 무표정한 두 사람. 가는 길은 알고 있는가.

세번째. 2005년 타이페이. 청춘의 꿈. 1911과 1966년의 모습은 관객에게 숨을 턱 막히게 했다. 과거로 올라가면 갈수록 영화는 점점 지루해지고, 사람들은 떠나고 하품을 하지만, 2005년의 모습, 뻥 뚫린 아스팔트 도로 위로 질주하는 바람을 가르는 오토바이와 꼭껴안은 두 남녀의 모습은, 관객의 숨통을 틔여주었다. 간질병을 앓아 자신이 쓰러지면 어디로 데려가달라는 안내문까지 목에 걸고다니는 칭에게 반해버린 첸은 그녀의 사진을 찍으며 사랑을 나눈다. 애인이 있음에도 두 사람은 서로를 사랑하고, 잘못된 만남은 점점 엇갈려만 간다. 삶에 생기를 잃은 두 남녀의 방황하는 삶, 무엇을 향해가는지, 목적지는 있는지, 어떻게 살아야하는지에 대한 메뉴얼이 없는 이들은 하루하루의 삶이 힘겹다. 정체성의 상실, 방향성의 상실.

 "현대인의 연애와 옛날 과거에 살았던 사람들의 연애는 다양한 의미로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그 대비를 그리고 싶은 생각으로 찍은 것이 이 영화입니다. 지금은 다양한 연애의 세러모니나 이벤트가 있습니다만, 옛날에는 그런 일이 전혀 없었습니다. 정말로 소박하게 상대에게 마주보는 기분을 소중히 한다는 것 그것이 바로 연애의 형태였습니다. 그런 정서를 담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나는 최근이 되어서야 ‘지금의 시대를 어떻게 담을까’라는 것을 생각했습니다. ‘현재’를 그리는 것은 자신들과 거리가 너무 가까워서 객관화 하기 쉽지 않습니다. 이른바 현재라는 것은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곧바로 과거가 되어 가고 있으며 그 속도 또한 매우 빠르기 때문입니다. 나는 세 번째로 등장하는 에피소드 “청춘의 꿈”에서 현재를 다루었고, 그 전에 두 편의 에피소드에서 과거를 이야기 했기에 ‘현재가 어떤가’라는 것을 좀 더 쉽게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

  이 힘겹고 지루한 영화는 감독이 영화를 만든 의도를 읽고나면, 영화를 다 보고나면, 그제서야 서서히 빠져들게 된다. 러닝타임을 견디기 힘들었음에도 영화가 다 끝난 뒤 자리에서 일어설 수 없는건, 세 가지 에피소드를 통해 다가오는 사랑의 느낌 때문이다. 그것은 내용보다는 형식에 맞추어져있다. 행동과 글로서 모든 것을 표현하고자 했으며, 말은 최소한으로 줄였다. 그나마도 '자유의 꿈'에서는 음성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오로지 자막으로 두 사람의 마음을 교환했다. 말하지 않아도 두 사람은 서로의 마음을 안다. 하지만 서로가 원하는대로 할 수 없음.도  알고 있다. '청춘의 꿈' 은 시끄러운 자동차 소리와 네온사인 불빛으로 화면을 가득 메우지만, 정작 주변에서 들리는 소리만 귀청을 때리고 그들은 침묵하다. 침묵하다 툭툭 내뱉는 그 말들은 참참다못한 그들의 심정을 대변한다.

  사랑도 자유도 청춘도 결국 찾지 못했다. 사랑하지만 함께 할 수 없으며, 자유롭고 싶지만 자유로울 수 없으며, 나를 찾고 싶지만 내가 누군지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겠는 이들은, 계속해서 고민할 뿐이다. 아무 것도 얻은 것이 없으며, 아무 것도 해결되지 않았다. 결핍은 고민과 방황을 낳았다. 그리고 우리의 현재를 되돌아보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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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2-26 16: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늘빵 2007-02-26 16: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엇 속닥님. 반가워요.
 



- 지구멸망

  2007년 1월 어느시점엔가 네이버와 엠파스 등의 검색어 1위는 '지구 멸망의 날'이었다. 검색창에 '지구 멸망의 날'이라고 검색하면 지금도 그 당시에 사람들이 질문을 올리고 대답한 흔적들이 남아있다. 2007년 새해 당장 지구가 어떻게 되는것도 아니고, 어떤 질문자의 말마따나 북한의 핵실험으로 지구가 멸망한다는 시나리오도 아니다. 케이블티비 XTM 에서 방영한 영화 <카테고리 6 : 지구멸망의 날>에 대답이 있다.

  극장용 영화는 아니고 2004년 미국티비방송용 영화인데, 174분(약 세시간)의 꽤 긴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크게 지루하지 않다. 제목 그대로 '지구 멸망의 날'을 다루고 있다. 지구온난화로 인해 이상기후가 여기저기서 감지되고, 어디는 시베리아를 넘어 알래스카 기온이 되었다가, 어디는 세상에서 가장 더운 나라의 기온수치를 넘어서는 등, 미국 전 지역에서는 지구상에서 볼 수 있는 온갖 기후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주마다 홍수가 나거나 가뭄이 들거나 허리케인이 밀려오거나 토네이도가 상륙하여 휩쓸어가거나 우리가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모든 자연재해가 미국을 덮쳤다.

  지구가 멸망하는 시나리오는 <아마겟돈> <투마로우> <딥 임팩트> <우주전쟁> <인디펜던스 데이>  등등을 통해 많이 접해봤지만, 지구가 멸망하는 원인은 영화마다 각기 다르다. 외계인의 지구침공으로 인해, 우주에 떠도는 거대한 행성과의 충돌로 인해, 인간이 자연에 끼친 해악의 댓가로서 심각한 자연재해가 발생함으로써, 지구는 멸망한다. 기존에 나와있는 극장용 영화 중에는 <투마로우>가 이 영화와 가장 근접하다고 하겠다.

  지구가 멸망하는데 대해 사람들의 여러 반응을 살펴볼 수 있다. 인간이 그동안 지구를 병들게 한 댓가이므로 당연하다며 운명에 순종하는 유형, 어떻게든 온갖 과학기술을 동원해 원인을 제거하려는 과학찬양 유형, 난 아무 것도 모르겠다 그러나 어쨌든 살고봐야하지 않겠느냐며 종말이 올때까지 벌벌 떠는 유형 등. 네이버와 엠파스에 질문을 올린 이들은 특히나 지구멸망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들이다. 두려움의 감정은 어디로부터 비롯되는가. 같은 충격에 대해서 각기 다른 반응양상을 보이는 이들은 어디에서부터 그 차이가 드러나는지 모르겠다.

  영화는 이상기온에서부터 재앙을 감지하고는 기상학자들을 비롯한 과학자들을 불러 끊임없이 관찰하고 분석함으로써 원인을 찾아내고자 한다. 원인을 찾으면 재앙을 막을 수 있으니. 뉴욕에서 토네이도 두 개, 아니 세 개가 만나 도심을 휩쓸고 다니는 꼴이란, 고질라나 킹콩에 비할 바가 못된다. 토네이도는 방향성 없이 도심을 이리저리 쓸고 다니며 자동차, 사람, 건물 등 가리지 않고 모든 것을 하늘로 날려보낸다. 어느날 우리 집 앞에 자유의 여신상이 떨어져있다면 아 토네이도구나 하면 된다.

  영화는 지구멸망에 다가가는 모습을 현실감있게 보여준다. 극장판 영화가 아니어서 그런지, 이 영화는 흥미진진한 기승전결의 스토리보다는 서서히 지구에 재앙이 닥치는 순간과 그것을 어떻게 표현하는가에 주목한다. 영화는 지구멸망의 원인이 아주 사소한 부분에 있을 수 있고, 그것은 분명코 인간의 잘못이라는 점을 지적하는 듯 하다. 자연 상태 그대로 놔둔다면 사실상 생태계는 문제가 생길리 없다. 모든 것이 인위적인 행위를 가함으로써 연쇄작용에 의해 발생한다.  

- FTA

  재밌는 것은 영화 속 전기회사가 개인의 소유이고, 회사는 문제가 생기자 고객들에게 전기를 보급하고자 외부회사의 전력을 비싼값에 끌어오기도 하는 등 노력을 기울인다는 점이다. 사회의 공공재가 개인의 사적 소유 아래에 있을 때의 상황은 이 영화를 통해서 살펴볼 수 있다. 물이나 전기, 가스, 지하철 등이 어떤 개인에게 소유되었을 때 벌어질 수 있는 일은 뻔하다. 하나의 재화를 놓고 몇몇 회사가 고객에게 서비스를 제공할 것이고, 회사의 독점 내지 과점으로 인해 고객은 비싼 값에 기본재화를 사들여야할지도 모른다.

  지난주 어느 신문에서 한미 FTA가 체결된 그 이후의 모습을 그려놓은 글을 봤다. 소방산업이 민영화되었을 경우 여러 업체가 경쟁을 하면 서비스는 개선될 수 있다. 지금보다 더 빠르게 대처하고 불도 더 잘 끌 것이며 인명피해도 줄어들 것이다. 그러나 기업은 이익을 내야하고 주주들에게 배당도 줘야한다. 불이 났다고 무조건 불을 꺼줘서는 안되며, 돈을 받아야 한다는 앞선 전제가 깔린다. 경영자는 이왕하는거 돈 되는 강남지역 주민들만을 대상으로 서비스를 하길 원할 것이고, 못사는 동네 주민들을 고객으로 유치하고 싶진 않을 것이다. 서비스가 뛰어난 만큼 이윤은 그만큼 많이 들어온다. 거꾸로 이윤이 많이 들어올 곳에 서비스를 제공한다. 결국 불이 났지만 아무도 꺼주지 않아 사망하는 사람들이 늘어날 것이고, 전화를 했더니 "죄송합니다. 고객님이 계신 지역은 저희 서비스 지역이 아닙니다." 하고 끊어버릴지도 모른다.

  <카테고리 6 : 지구멸망의 날>에서는 전기재화가 민영화되었을 때 어떻게 운영되는지, 어떤 일이 발생하는지를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어느 지역은 전기가 들어오고, 어느 지역은 전기가 안들어온다. 회사는 비싼 돈을 주고 우리회사에 전기를 맡긴 고객들을 위해 외부 회사의 전기를 끌어온다. 애초 이 전기회사는 문제가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심각한 시스템상의 문제가 있었고, 외부의 간단한 바이러스에서 쉽게 무너질 구조였던 것이다. 최고 시스템 책임자는 이 문제를 끊임없이 제기했지만 회사는 돈이 많이 든다는 이유를 들어 무시해왔다. 그리고 결국 이런 사고가 터졌고, 그제서야 회사는 시스템 상의 문제를 인지하기 시작했다. 역시 회사의 제일 목적은 이윤이다. 돈이 안되면 안한다. 돈이 많이 들면 안한다.

  지구의 생명이 어디까지인가는 학자들마다 견해가 다르다. 온갖 과학기술을 동원하여 지구가 얼마나 병들었는가를 분석/언급하고 있지만, 언제 지구가 멸망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변하지 않는 것은 많은 사람들은 지금 현세의 삶의 안락과 행복을 위해 오늘을 산다는 것 뿐이다. 그들 대부분은 지구에 재앙이 닥친다는 사실에 대해, 지구가 멸망한다는 사실에 대해 인지하지 못한다. 지구가 점점 더워지고 있다는 신문지상의 기사는 그저 아침 식사와 병행해 한번 읽고 내려가는 정도의 것으로 치부되고, 막상 올해 겨울이 따뜻하더라도 그것이 지구재앙의 시작이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다. 오늘 겨울이 따뜻해서 활동하기 좋으니까 내일 모든 것이 녹아내리는 것에 대해서는 모른다, 로 일관한다. 오히려 지구멸망의 시작을 먼저 눈치채는 것은 과학자들이 될 것이다. 과학기술이 지구를 병들게 했고, 과학기술자들이 지구멸망을 감지한다는 사실은 재밌다.  

 감독 딕 로우리는 2004년에  <카테고리 6 : 지구멸망의 날>을 만든데 이어, 2005년엔 <카테고리 7 : 토네이도>를 내놨다. 카테고리가 왜 1부터 시작하지 않고 6부터 시작하는지는 모르겠지만, 현재 시리즈는 이 두 편이 전부이고, 전편을 재밌게 본 나로서는 후편까지 관심이 간다. 아마도 비디오로는 없을 듯 하고, 어느날 우연히 케이블에서 마주하는 수 밖엔 없겠다.

p.s 지구멸망이라기보다는 미국멸망의 날이 더 맞다. 재앙의 대상은 미국 영토에 한정되어 있고, 타국은 지구로부터 소외되었다. 미국이 만드는 모든 영화에서 언제나 지구의 위기는 미국에 먼저 오고, 미국의 멸망이 주축이 된다. '좋은 것도 미국 먼저, 나쁜 것도 미국 먼저'는 공평함을 보여주기보다는 미국이 세계의 중심, 지구의 중심임을 재확인시켜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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