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로 산다는 것
시사저널 전.현직 기자 23명 지음 / 호미 / 2007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시사저널 기자들이 파업 중에 책을 썼다. 덕분에, 평소엔 서로 바빠 얼굴조차 볼 수 없던 동료들이 무릎을 맞대고 옛이야기를 하게 됐다. 전직 선배들도 찾아와 얘깃거리가 더욱 풍성해졌다. 힘 있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겁도 없이 까불었는지, 또 서로를 얼마나 격렬하게 부딪치며 갈등했는지, 희미해진 기억들을 되살렸다. 그 얘기들을 모든 이 책에는 '기자로 산다는 것'의 기쁨과 고통과 보람이 모두 녹아있다. 전현직 기자 23인에게 시사저널이란 매체는 바로 그 자신이었다."

  시사저널 사태가 시작된지 벌써 8개월이다. 이 사태를 접한건 얼마 되지 않은 것만 같은데, 파업에 참여한 기자들의 그동안의 노고가 얼마나 컸을까 짐작이 간다. 이 책은 2006년 6월 16일에 있었던, 시사저널 870호의 삼성 이학수 부회장의 인사전횡을 다루던 3쪽 짜리 기사를 시사저널 금창태 사장이 인쇄소에서 몰래 들어내면서 시작되었다. 편집장의 사표수리와 이후 계속되는 기자들에 대한 감봉, 정직, 대기발령 등의 징계조치는 오늘에 이르게 하였다. 

  타 언론에서는 이를 다루지 않았다. 한겨레와 오마이뉴스 등 몇몇만이 사태에 대한 언급을 했을 뿐. 메이저 신문사들은 모두 침묵했다. 동종업계 종사들이 당한 무자비한 테러 앞에 그들은 모두 침묵했다. 이 책 속의 누군가에 따르면 이는 언론계의 불문율이라 한다. 타사의 편집권이 어떻게 운영되든 그건 그 회사만의 일이라는게다. 시사저널 기자들은 나홀로 싸움을 계속하고 있다. 그들이 아무리 끈질기고 깡따구가 쎄다고 하지만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소송을 통해 밀린 월급을 죄다 돌려받고 복귀했으면 좋겠다는 바램만 해본다.

  시사저널을 사랑하는 모임(이하 시사모)의 대표 고종석씨는 오마이뉴스에 기고한 글을 통해, "우리가 자본주의의 공기를 숨쉬고 있는 한, 매체의 보도와 논평에서 자본과 경영의 그늘을(다시 말해 '장사'의 그늘을) 말끔히 걷어 낼 수는 없다는 점을 인정한다. 그러나 나는, 다른 한편으로, 자본주의의 그 고귀한 자유가 불구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거기에 민주주의적 가치가 결합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편집권을 편집국 기자들이 공유하고, 어떤 사안을 기사화할 것인가에 대한 최종판단이 편집국장에게 맡겨져야 한다는 것은 그런 민주주의적 가치의 일부다." 라고 말했다. 고로 고종석은 편집권의 편집국 귀속을 지지한다고 결론 내린다.

  사태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고종석의 시각은 그가 시사모의 대표라는 주관적 입장을 불식시키고도 남는다. 어떻게 70-80년대 군사정권도 아닌, 대통령이 농담따먹기의 대상이 되고 개그프로의 소재로 다뤄지는 이 시점에, 이 같은 일이 발생할 수 있는지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어쩌면 그것이 자본주의의 논리가 점점 더 우리가 사는 이 땅에 굳건하게 발붙였기에 가능한지도 모르겠다. 독재정권에 의한 압박이 아니라 자본에 의한 압박으로 대치되었을 뿐이다. 우리 사회가 민주화되었다고 하지만, 독재로부터 벗어났다는 의미의 민주화일 뿐, 우리가 어느 방으로 들어가는지는 생각지 못한 것이다.

  삼성의 힘은 막강하다. 이 책에는 삼성 이건희 회장 취재를 위해 스파이짓(?)을 하던 기자들의 활약상(?)이 들어있다. 한국에서는 최강, 세계에서는 소니에 맞먹는 이 기업은, 오로지 개발과 돈벌기에 주력할 뿐, 스스로의 위치에 걸맞는 존경을 받고 싶진 않은 듯 하다. 삼성에 조금이라도 안좋은 기사가 나가려들면 홍보부와 회장단이 압력을 가하거나 돈을 바르는 식으로 어떻게든 막아내고,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안되면 해당 기사를 자신들에게 유리한 쪽으로 바꾸기 위해 후속기사를 내보내도록 한다. 겉으로 보이는 이미지에만 신경을 썼지 안은 잔뜩 곪아있다. 김훈은 이를두고  '인문적인 생각, 교양 있는 태도' 가 결여됐기 때문이라고 본다.

  이 책은 그간의 시사저널 사태에 대한 파업기자들의 현장스케치와 생각을 담아내고 있으며, 다른 한편 기자로 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어떤 삶을 살아야하는가를 담아내고 있기도 하다. 시사저널의 작금의 사태에 대한 브리핑과 더불어 '기자'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해주는 책이다. 손석희는 뒷날개를 통해 절반의 축하를 보낸다고 한다. 나머지 절반은 이들이 편집권을 되찾는 날 해주고 싶다며. 책을 낸건 축하할 일이나 언론으로부터 소외된 자신들의 이야기를 세상에 풀어내기 위해 책을 냈다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한때 기자가 되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1지망 철학자, 2지망 기자, 3지망 교사, 4지망 출판인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1지망은 아주 막연하게 다가가고 있고, 3지망은 직업이 되었으며, 4지망과 2지망은 머리에서 지웠다. 기자가 되기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조사하고 준비하던 때 기자로서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간접체험했기 때문이다. 내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힘겨워보였고, 그들이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나는 기자로서의 삶을 감당할 그릇이 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난 여기 한꼭지씩 글을 쓴 23명의 시사저널  기자들이 존경스럽다. 부디 그들이 편집권을 되찾아 다시금 '사실과 진실의 등불을 밝'히고,  '이해와 화합의 광장을 넓'히며, '자유와 책임의 참 언론을 구현'하길 바란다. 시사저널의 정기구독자는 아니었지만, 꾸준히 꼬박꼬박 구입하던 성실한 독자도 아니지만, 진정 한국의 타임이라 생각하던 불량독자로서 응원의 메세지를 보낸다. 시사저널 기자들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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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2-24 1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리뷰네요. 잘 봤습니다^^

마늘빵 2007-02-24 1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난책님 반갑습니다. 처음 뵙는 듯해요. ^^

얼음장수 2007-02-25 06: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힘내시길. 잘 읽었습니다.

승주나무 2007-07-17 15: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 님//이 글 시사서포터스 카페(http://cafe.daum.net/SISALOVE)에 '기자로 산다는 것...을 읽고' 게시판에 올려도 되나요.. 가능하면 직접 올려주시면 좋고.. 허락해주시면 제가 올릴게요^^ 이 문제에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해요.. 이벤트 추진해서 1년 구독권 걸고 대회를 할까 생각하고 있어요 ㅋㅋ

마늘빵 2007-07-17 22:17   좋아요 0 | URL
승주나무님 / 이거 이메일로 확인안했으면 못 볼 뻔 했는걸요. 오래된 글에 대한 댓글은 브리핑이 안되는지라. 넵 이거 가져가셔도 됩니다. 근데 참언론실천시사기자모임에서 이벤트 할 예정인건가요. :) 아 그리구요, 승주나무님께서 감사하실 일은 아니에요. 시사저널 사태를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관심갖고 분노를 느끼는게 당연하다고 봅니다.
 
기자로 산다는 것
시사저널 전.현직 기자 23명 지음 / 호미 / 2007년 2월
구판절판


'사실과 진실의 등불을 밝힌다, 이해와 화합의 광장을 넓힌다, 자유아 책임의 참 언론을 구현한다'
(시사저널 좌표)-10쪽

지금 발행되는 시사저널의 수준이 높으냐 낮으냐의 문제도 아니고, 기본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기본의 문제. 이것은 30년 전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다시 말해 편집권의 문제인 것이죠.
현재 경영진 쪽에서는 편집권을 자신의 인격권이나 재산권으로 판단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가 중국집에 가서 우동을 먹느냐, 자장면을 먹느냐를 내 마음대로 판단할 수 있다는 정도의 권리의식을 갖고 있다는 것이죠. 그런데 편집권이란 것은 우동이냐 자장면이냐를 선택하는 문제가 아닙니다. 이것은 인격권이나 재산권이 아니라 언론이 사회적으로, 공적으로 작동될 수 있느냐 아니냐에 대한 의무의 문제입니다. 곧, 편집권은 권리라기보다는 의무로서의 권리로, 기본적으로 자유권에 속하는 사항이라 할 수 있습니다. 표현의 자유, 출판의 자유에 속하는 사항이지 개인의 인격이나 재산에 귀속하는 사유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것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이 부족했고, 인식의 진화가 없었기에 이런 사태가 벌어진 것이라고 봅니다.
개인이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편집권이란 이 세상에 없습니다. 편집권이 기자에 속한 것이냐, 편집인에 속한 것이냐 하는 식으로 접근하는 것은 논의의 수준 자체가 저급한 것입니다. 그런 식으로 논의를 할 게 아니라, 그 편집권이 작동된 방향이 정당한지 아닌지를 문제삼아야죠. 편집인에게는 편집권이 지향하는 가치와 방향성, 이것을 수호할 의무가 있을 뿐입니다. ... 중략 ... 30년 전의 착각이 아직까지도 작동되고 있다는 것은 참 견딜 수 없는 일입니다.
(피디수첩 강지웅 피디의 김훈 인터뷰 내용 中)-224-225쪽

삼성은 세계 최고의 기업이죠. 일본 소니와 맞먹는 기업이잖아요. 우리 민족이 이만한 기업을 만든다는 것은 분명 자랑스러운 일입니다. 삼성은 정말 나라의 보배라고 생각해요. 그러나 삼성이 그러한 거대한 힘을 가진 만큼 언론과의 문제, 사회와 관련된 문제에 대해서 인문적인 생각을 가져야 한다고 봅니다. 인문적인 생각, 교양 있는 태도, 이런 것들이 필요하다는 것이죠. 언론을 대하고, 시민 사회를 대하는 부분에서 삼성이 세계 굴지의 기업으로서의 위신과 품격과 교양을 갖춰야 한다고 난 생각해요. 이건 삼성을 위해서 하는 얘기에요. 우리를 위해서 하는 얘기가 아니라고. 난 삼성 미워하지 않아요. 근데 내 후배들은 미워하는 것 같아(웃음). 삼성은 유능하고 소중한 기업이죠. 달러를 벌어 오고 우리를 먹여 살리고 있죠. 이런 훌륭한 기업이 어째서 사회와의 관계나 언론과의 관계에 실패하고 있는지... 이러면 그 기업이 국민의 지지를 받는 기업이 되기 어렵잖아요. 이번 일이, 삼성이 좀 발전하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피디수첩 강지웅 피디의 김훈 인터뷰 내용 中)-228쪽

편집권 수호 투쟁으로 보낸 7개월의 시간, 괴로웠지만 후회는 하지 않는다. 그 과정에서 나 스스로를 감동시켰기 때문이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스스로를 감동시키는 경험은 쉽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남이 나에게 감동받건 말건 어쨌거나 나는 나 스스로를 감동시켰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고재열, 지옥에서 보낸 한철, 아름다운 고통의 날들 中)-237쪽

편집권은 전적으로 편집국에 속한다고 무 자르듯 단언하기 어려운 것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떤 매체의 편집권은 그 언론 기업의 경영권 일반을 구성하는 하위 범주라고 볼 여지도 있기 때문이다(기사라는 상품을 시장에 내다 파는 사람은 경영자다). 편집국장에 대한 인사권이 경영진에 있다는 사실이 그 근거가 될 수 있겠다. 이것은 시사저널만이 아니라 사기업 형태를 띤 다른 언론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다시 말해 나는, 우리가 자본주의의 공기를 숨쉬고 있는 한, 매체의 보도와 논평에서 자본과 경영의 그늘을(다시 말해 '장사'의 그늘을) 말끔히 걷어 낼 수는 없다는 점을 인정한다.
그러나 나는, 다른 한편으로, 자본주의의 그 고귀한 자유가 불구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거기에 민주주의적 가치가 결합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편집권을 편집국 기자들이 공유하고, 어떤 사안을 기사화할 것인가에 대한 최종판단이 편집국장에게 맡겨져야 한다는 것은 그런 민주주의적 가치의 일부다. ... 중략 ...
비록 사기업이 공급한다고 할지라도, 기사는 공공재의 성격을 부분적으로 띠고 있다. 오로지 시장 기구에만 맡겨 놓기에는, 한 공동체의 총체적 위생을 위해 너무 귀중하고 결정적인 것이 기사라는 재화다. 그래서 나는 편집권의 편집국 귀속을 지지한다.
(고종석, 한국 저널리즘의 명예 시사저널에 달려있다 中)-242-24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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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는인생. 2007-02-24 0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저도 낼 이책이 온답니다.^^ 모두들 잘못되었다는걸 알면서도
이토록 해결되지 않는. 이 말도 안되는 사태에 답답함이 느껴지네요.

마늘빵 2007-02-24 0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읽으면서 춤추는 인생님 생각났습니다. 김훈에 대한 언급이 많거든요. ^^
 

2007. 2. 22 예스24 영화

http://movie.yes24.com/movie/movie_memwr/view.aspx?s_code=SUB_MEMWR&page=1&no=14446&ref=33&m_type=1




* 스포일러 경고

  그냥 이렇게 묻혀지기엔 아까운 영화다. 상영하는 곳이 전국에 몇 군데 없는데다가, 그마저도 언제 간판을 내릴지 모르는 비주류 영화인지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접하게 될지 모르겠다. 하지만, 정말 보고 후회하지 않는 영화.  내 인생의 영화 5편 안에 까지는 아니더라도 10편 안에는 포함시킬 수 있는 영화. 당신이 누군가를 사랑하고, 사랑했었고, 사랑할 사람이라면, 또 사랑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뭐 이런 영화를 추천하고 그래, 라고 툴툴 거리지는 않을 것이다. 

  " '비포 선라이즈' 보다 솔직담백하고, '비포 선셋' 보다 가벼운 영화' " 

  <낯선 여인과의 하루>와  <비포선라이즈> <비포선셋>은 분위기가 너무나 다르지만 통하는 면이 있다. 분명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이 말에 공감할 것이다. 확실히 <비포 선라이즈>보다는 솔직담백하고, <비포선셋>보다는 가볍다. 동시에 두 영화와 비교할 수 있다는 건 <비포 선라이즈>에서의 남녀의 만남과 헤어짐에서부터 <비포 선셋>에 이르기까지의 9년의 공백 후의 만남과 헤어짐까지 아우를 수 있다는 말. 



 

  작년 한해 철학자 알랭 드 보통의 책들이 사람들에게 꽤나 인기를 끌었더랬다. 그 중에서도 특히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와 <우리는 사랑일까>는 그의 작품 중 탁월하다. 에세이라 보기에도 어렵고, 연애소설이라 보기에도 어려운, 또 철학서라고 보기는 더더욱 어려운, 이 셋의 어느 중간즈음에 위치한 책인데, 에세이나 연애소설이나 철학서, 셋 중 '두 가지'에 관심을 갖고 있는 이라면 좋아할 만한 작품이다. 그러나 셋 중 어느 '한 가지만' 좋아하는 독자라면 실망하게 될 것이다.  

  알랭 드 보통 이야기를 꺼낸 것은,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를 읽었을 때의 느낌과 <우리는 사랑일까>를 읽었을 때의 느낌은 다르다는 말을 하고 싶어서다. 두 책을 읽은 다른 독자들은 어떻게 느낄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 책들을 두고 전자는 20대 초반의 나이에 막 사랑을 시작하는 연인들이 읽었음 좋겠고, 후자는 20대 중후반즈음의 나이에 어느 정도 만남과 헤어짐을 경험하고, 이별의 쓴 맛을 경험한, 연애의 시작과 끝이 어느 정도 익숙한 이들이 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비슷하게, <비포 선라이즈>와 <비포 선셋>은 실제로 9년간의 텀이 있는 만큼, 전작을 본 후 9년 뒤에 다시 보면 좋겠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배우들도 9살을 더 먹었고, 9년 만에 다시 만나 연기를 했으며, 영화 속 설정 또한 9년 뒤의 모습이다. 20살과 29살은 매우 다르다. 좋아하지만 좋아한다 표현하지 못하고, 그 혹은 그녀에게 다가서지 못하는 20살과, 좋아하면 좋아한다고 말 할 수 있고, 사랑을 표현할 줄도 아는, 그리고 만남에서 헤어짐의 과정이 반복되는 학습효과로 인해 더이상 생소하지 않은 29살은... 다르다.  한편, <낯선 여인과의 하루>는 <비포선셋>보다 조금 더 세월을 타고 간다. 그것은 영화의 주연배우의 물리적 나이 때문이기도 하지만, 영화 속 사랑의 느낌이 지니는 차이 때문이기도 하다. 
 



* 분홍색 꽉끼는 신부 들러리복 입고 삐딱하게 외딴남을 바라보고 있는 여자와 잘입은 양복 주머니에 손 꾹 찔러넣고 삐딱한 외딴녀를 바라보는 남자.


  영화는 어느 결혼식 피로연 파티장을 배경으로 한다. 사람들의 시선이 신랑과 신부에게로 집중되어 있는 이때, 카메라는 외딴 두 남녀에게 시선을 집중한다. 훤칠하게 잘 생긴 외딴 남자가 핑크색 들러리 드레스를 입은 외딴 여자에게샴페인 한잔과 말을 건넨다. "고맙지만 됐어요" "담배는 하면서 술은 싫다?" 친절한 사양과, 작업과 딴지의 어느 중간쯤 있는 멘트로 시작된 두 외딴 남녀의 대화는 우리를 어느 호텔방으로 안내한다. 그래 원나잇이다. 그런데 이들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흔히 20대에는 사랑을 배우고, 30대에는 사랑을 안다고 말하던가. 그것은 키스를 하고 섹스를 하느냐, 섹스를 하고 키스를 하느냐의 차이가 아니다. 사랑은 섹스가 아니고, 섹스도 사랑이 아니다. 스킨쉽의 농도를 가지고 사랑을 배운다, 사랑을 안다고 말하는 건 너무나 차원 낮은 사고방식이다. <낯선 여인과의 하루>는 30대 중후반의 남녀의 사랑을 그려내지만, 사랑을 배우는 20대와 사랑을 아는 30대가 모두 공감할 수 있는 영화다. 외딴 남녀 간의 쉴새없는 수다는 피로연장에서 호텔방으로 우리를 안내했고, 장소의 바뀜에 굴하지 않고 수다는 끊임없이 지속된다.  



* "고맙지만 됐어요" 하던 여자와 "담배는 하면서 술은 싫다?"고 하며, 재치넘치는 대화를 수고 받던 두 사람은 이제 온힘을 다해(?) 키스하고 있다. 


  "당신 피부 푸석푸석해" "당신은 냄새나. 그리고 배도 나왔네?" 아니 이게 처음 만난 외딴 두 남녀가 호텔방에서 섹스를 하며 나눌 말인가. 서로의 신체에 대해 칭찬을 퍼부으며 서로의 몸을 탐닉해야 할 두 사람은 서로에게 비방 아닌 비방을 하고 있다. 아니 원나잇하러 호텔방 들어왔는데 하겠다는거야 말겠다는거야. (뭘?) 두 사람의 대화는 너무나 솔직하고 꾸밈없다. 있는 그대로 보이는 그대로 느끼는 그대로를 서로에게 내뱉는 두 사람은, 어느새 나의 과거에 대해, 당신의 과거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때 그날 우리의 만남과 첫 키스, 사랑, 첫 섹스, 그리고 갑작스런 이별. 모든 것이 무서웠다. 그래서 떠났다. 남은 자는 놀랐고 울었으며 괴로웠다. 떠난 자도 남은 자도 상처를 안은 채 살아왔고, 현실을 받아들였으며, 각자의 인생을 걸었다.

  그 남자는 옷 잘 차려입은 변호사이고, 뮤지컬(?)을 하는 이쁘고 아름답고 나이 어린 여자친구가 있으며, 그 여자는 능력 좋은 심장전문의를 만나 결혼했고, 그의 아이를 키우며 그럭저럭 인생을 살아왔다. 그 남자는 전보다 배가 나왔고, 긴 머리는 짧은 머리로 변했으며, 여전히 열정을 가진 매력남이었고, 그 여자는 친하지도 않은 친구의 빠꾸놓은 8명의 예비들러리들을 제치고, 9번째 들러리로 식장에 들어선, 담배 뻑뻑 피워대고 피부는 윤기를 잃었지만 여전히 도도하고 "아무도 없는  호텔방에서 외로운 남녀가 뭘할까" 하고 작업을 걸줄도 아는 용기(?)도 가졌다.   

  <비포선라이즈>와 같은 원나잇이지만, 그들의 어색함과 풋풋함이 아닌, 농후하고 진하며 어색하지 않고 가볍다. 원나잇을 처음 해보는 자와 원나잇을 여러본 해본 자의 경험상의 차이는 절대 아니다. 제시와 셀린이 각자 원나잇을 몇번해봤는지, 이름없는 이 두 남녀가 각자 원나잇을 몇번해봤는지는 나는 모른다. 모두가 경험자일수도 모두가 초짜일수도 있다. 무엇이 이름없는 두 남녀의 호텔방을 그리 만들었을까. 서로에게 농을 던지고, 솔직하게 못난 신체에 대해 말할 줄도 아는, 위트와 재치가 어우러지는 이들의 대화 아니면 수다는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만났고 사랑했고 함께 했지만 헤어진 남녀는, 만났고 대화를 나눴고 하룻밤을 함께 했다. 그리고 여자는 집으로, 남자도 집으로. 헤어진 남녀가 만나 사랑을 나누고, 그간의 이야기를 풀어놓고, 해뜬 아침 서로의 자리로 돌아간다. 공허한가. 허무한가. 왜, 라고 질문하고 싶은가. 모든 의문을 참아주기 바란다. 그것이 사랑했다 헤어진, 지금은 각자의 자리를 가진 남녀의 사랑일지니. 세월은 그와 그녀에 대한 기억력을 훼손시켰고 우리는 서로가 잘못 기억하고 있는 기억의 조각들을 짜맞추며 만남에서부터 헤어짐까지의 일치된 줄거리를 만들어냈다. 그건 파란색 땡땡이 원피스였어, 아니라고 나는 검정색 나비 넥타이를 하고 있었다고. 그것이 뭐 그리 중요하냐. 줄무늬면 어떻고 빨간색이면 어떻고 니트면 어떻고 일반 넥타이면 어떠랴. 내가 사랑한건 너였고, 니가 사랑한건 나였잖냐. 그럼 됐잖냐. 영화를 통해 당신의 헤어진 그 혹은 그녀와 만나기 바란다. 그리고 현재 당신이 사랑하는 그 혹은 그녀와 만나기 바란다. 남은 것은 그것뿐. 여기까지.  
 
 

* '칼럼'이라고 붙여져있지만, 형식에 얽매이는 글을 쓰진 않습니다. 칼럼이면 칼럼이고, 리뷰면 리뷰고, 것도 아니면 아닌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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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2-23 1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매우 보고싶었지만,,,흐흑

마늘빵 2007-02-23 16: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몇 군데 안해요. 아직도 하나 모르겠습니다.

백년고독 2007-02-25 0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포선셋, 비포선라이즈를 재미있게 본 저로서는 이 영화 무조건 봐야겠네요. 게다가 알랭드보통 책과의 비교가 마음에 와 닿네요. 좋은 영화 추천 감사합니다. ^^

마늘빵 2007-02-25 08: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포선셋/선라이즈 와는 느낌이 많인 다를거에요. ^^ 나이먹은 유부녀, 유부남들의 원나잇인지라. 풋풋함보다는 농후함이죠. 둘 다 아주 능수능란해요.
 
다시 만난 옛 벗 공자의 논어 Easy 고전 1
한국철학사상연구회 기획, 황희경 글, 정훈이 그림 / 삼성출판사 / 2006년 12월
절판


[자로-18] 섭공이 공자께 말했다.
"우리 고을에 정직한 사람이 있소. 그의 아버지가 남의 양을 훔쳤는데 아들이 고발하였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우리 고을의 정직한 사람은 다릅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위해 허물을 숨겨주고, 아들은 아버지를 위해 허물을 숨겨줍니다. 정직은 바로 그 가운데에 있습니다." -51쪽

[자로-20] 자공이 공자께 물었다.
"어떻게 해야 선비라고 할 수 있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자신의 행동에 대해 부끄러움을 간직하고 있으며, 사방에 사신으로 가서는 임금의 명을 욕되게 하지 않으면 선비라 일컬을 수 있다."
"감히 그 다음을 여쭙겠습니다."
"그 종족들이 효성스럽다고 칭찬하고, 고향 마을에서 공손하다고 칭찬하는 사람이다."
"감히 그 다음을 여쭙겠습니다."
"말하면 반드시 지키고, 행동은 반드시 과단성이 있어야 한다. 고집세고 완고한 소인이지만, 그래도 그 다음이 될 만하다."
"지금 정치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어떻습니까?"
"아! 다 (도량이) 잘고 (견식이) 얕은 인물들이니 어떻게 낱낱이 헤아리겠느냐." -52-53쪽

[학이-16]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 것을 걱정하지 말고, 내가 남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을 걱정하라."
=>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 것을 지나치게 걱정하면 남의 노예가 되어 곡학아세 하기 쉽습니다. 나를 알아주고 말고는 어차피 남의 일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내가 주체가 되어 남을 인정하는 일이지요. 그렇지만 남과 더불어 살면서 남의 인정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공자도 때로 "나를 알아주는 이가 없구나!" "나를 알아주는 것은 하늘일 것이다"라고 탄식한 것이겠지요. -69-70쪽

[이인-14]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지위가 없는 것을 근심하지 말고 어떤 자리에 설 수 있는 자격을 갖출 것을 걱정하며, 자기를 알아주지 않는 것을 근심하지 말고 알아줄 만하도록 애써야 한다." -73-74쪽

[계씨-9]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나면서부터 아는 사람이 최고이고, 배워서 아는 사람은 그다음이고, 곤란을 겪은 다음에 배우는 사람은 또 그다음이고, 곤란을 겪고도 배우지 않으면 그런 사람은 최하이다."

[양희-3]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오로지 가장 총명한 사람과 가장 어리석은 사람만이 변화할 수 없다." -88-89쪽

[헌문-5]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덕이 있는 이는 반드시 말을 잘하지만, 말 잘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반드시 덕이 있는 것은 아니다. 인한 사람은 반드시 용기가 있지만, 용기 있는 사람이라고 해서 반드시 인한 것은 아니다." -113쪽

[양화-6] 자장이 인에 대해 묻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다섯 가지 덕행을 천하에 실행할 수 있다면 인이 될 수 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공손함, 너그러움, 믿음, 민첩함, 은혜이다. 공손하면 모욕을 당하지 않고, 너그러우면 많은 사람의 지지를 받고, 믿음이 있으면 남이 일을 맡길 것이고, 민첩하면 공적을 올리게 되고, 은혜를 베풀면 남을 잘 부릴 수 있을 것이다." -117쪽

[양화-8]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유야, 너는 여섯 가지 글자에 따르는 여섯 가지 폐단을 들었느냐?"
"아직 듣지 못했습니다."
"앉아라. 내 너에게 말하여 주겠다. 인을 좋아하면서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으면 그 폐단은 어리석음이요, 총명함을 좋아하면서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으면 그 폐단은 방종이요, 신실함을 좋아하면서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으면 그 폐단은 협애함이요, 곧음을 좋아하면서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으면 그 폐단은 박절함이요, 용맹을 좋아하면서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으면 그 폐단은 난폭함이요, 굳셈을 좋아하면서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으면 그 폐단은 광망함이다." -118-1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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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주나무 2007-02-21 0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근데 아프 님의 영화 리뷰들은 다 어디 갔나요. 목록표 좀 맹글려고 했는데.. 아무리 찾아봐도 없군요...

마늘빵 2007-02-21 07: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 제 영화리뷰 페이퍼에 있어요. '나쵸&콜라'에. ^^

2007-02-22 14: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동물에게도 문화가 있다
리 듀거킨 지음, 이한음 옮김 / 지호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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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방은 아이 때부터 인간에게 자연스러운 것이며, 인간이 더 하등한 동물들보다 우월한 이유 중 하나도 바로 그가 세상에서 가장 모방하기 좋아하는 생물이며 처음에 모방을 통해 배우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 -13쪽

유전자와 다윈의 관계는 기묘하다. 다윈의 자연선택 이론은 유전자가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 못한 상태에서 제시되었는데도 옳았다. 더구나 그 이론은 유전을 다룬 구체적인 항목들에서는 틀린 부분이 많았는데도 전체적으로는 옳았다. 다윈은 "제물 gemmule"이라는 용어를 중심으로 형질이 다음 세대로 전달되는 과정을 나름대로 설명했다. 그는 몸의 각 부위에서 제뮬이라는 아주 작은 입자들이 떨어져 나와 성세포로 모여든다고 믿었다. 그리고 자손의 몸 속에서는 어머니와 아버지의 제뮬들이 서로 뒤섞인다고 보았다. 다윈의 생각에는 두 가지 중요한 오류가 있었다. 첬재, 몸의 각 세포는 성세포로 아무것도 떼어 보내지 않는다. 둘째, 유전의 단위(다윈의 제뮬이라고 불렀고, 우리가 유전자라고 부르는 것)는 서로 뒤섞여 자신의 정체성을 잃는 것이 아니라, 대개 원래의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멘델을 제외한 그 시대의 다른 거의 모든 과학자들과 마찬가지로, 다윈도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유전학의 기본적인 내용들을 깨닫지 못했다. 달리 보면, 이렇게 자연선택 이론이 유전자를 전혀 모르는 진공 상태에서 개발되었다는 사실은 그가 정말로 놀라운 통찰력과 창조성을 지닌 인물이었음을 입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21-22쪽

"유전자는 그 안에 담긴 것이 무엇이든 간에 자신을 복제해 다음 세대로 전달하는 일을 하도록 선택된 것이며, 나머지는 세부 사항에 해당할 뿐이다." (진화생물학에 대한 요약) -22쪽

짝 선택 모방 연구가 명확하게 말하고 있는 사항이 하나 있다. 그것은 작은 뇌를 반드시 모방의 장벽이라고 볼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 직관에 반하는 발견은 우리가 문화를 말할 때 떠올리는 모든 것들을 뒤엎는다. 문화는 "고등"동물들만의 것이 아니다. 뿐만 아니라 지능의 표지도 아니다. 평범하게 볼 때 문화는 우리가 지금껏 생각해 왔던 것보다 훨씬 근본적인 힘이다. -93쪽

프리버그의 발견은 문화적 전달이 짝 선택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첫째, 그것은 생애 초기에 전달된 정보가 개인이 성숙할 때까지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다가, 일단 겉으로 드러나면 매우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명확히 보여준다. 둘째, 이 연구는 문화적 전달이 두 가지 방식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암시한다. 수컷들은 자신을 키워준 어른들의 행동을 모방함으로써 어떤 노래를 부를지(그리고 어떻게 행동할지)를 배우는 것이 분명했고, 한편 암컷들도 교사들을 지켜봄으로써 어느 수컷 형질을 매력적으로 볼 것인지 배우는 듯했다. -107-108쪽

문화가 동물 세계에서 정확히 어떤 방식으로 작용하는지는 아직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상태이지만, 증거들은 문화가 천성과 대립하는 힘이라는 것을 뚜렷이 보여준다. 우리는 이 힘의 작용 방식에 관한 기존의 견해를 수정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예전에 생각했던 것과 달리, 문화적 전달은 영장류처럼 인지 능력이 가장 뛰어난 동물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사실 이 현상의 연구는 대부분 이른바 "하등" 척추동물이라고 하는 생물들을 대상으로 이루어져왔다. 거피에서부터 새에 이르기까지, 비교적 뇌가 작은 동물들도 일종의 문화 규칙들을 짝짓기 행동과 연관짓는다. 따라서 문화적 전달은 뇌 크기와 상관이 없다. 그것은 대단히 중요한 이야기이다. 인류가 이 강력한 진화적 힘을 독점하고 있지 않으며, 영장류나 다른 어떤 장엄한 거대 동물들이 독점하고 있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109쪽

나는 추측이 없이는 뛰어난 관찰도 독창적인 관찰도 없다는 것을 굳게 믿네.
(찰스 다윈이 앨프레드 월리스에게 보낸 편지에서, 1867년) -111쪽

문화는 "학습이나 모방을 통해 당대 사람들로부터 얻는 개인의 표현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정보이다". 여기서 "표현형"이란 개체가 지닌 형질들의 복합체를 말한다. -113쪽

밈 개념을 다시 정의하려는 시도들을 몇 가지 살펴보면 이렇다.

- 모방 같은 비유전적 수단을 통해 전달되는 것으로 여겨지는 문화요소
- 인간의 정신에 기생적으로 감염되고 인간의 행동을 바꿈으로써 복제하는 전염성 정보 양상으로서, 인간에게 그 양상을 전파하도록 만드는 것. (도킨스가 "유전자"에 비유해 만든 용어이다.) 구호, 표어, 짧은 선율, 도상, 발명품, 유행하는 것 등이 대표적인 밈에 해당한다. 개념이나 정보 패턴은 누군가가 그것을 복제할 때까지는 밈이 아니다. 전달되는 지식은 모두 밈이다.
- 밈은 뇌에 들어 있는 정보 단위로 여겨져야한다. 그것은 뇌가 어떤 물리적 매체를 사용해 정보를 저장하든 간에 특정한 구조를 지니고 있다.
- 모방을 통해 전달되는 것은 무엇이든 밈이다.
- 문화 유전 단위. 문화 환경에서 자신의 생존과 복제에 "표현형적"결과를 미침으로써 자연적으로 선택되는, 입자성 단위인 유전자에 비유해 가정한 개념.

(* 밑줄그은이 주 : 마지막 것이 저자 리 듀거킨이 마음에 들어하는 정의) -145-146쪽

"밈은 나름대로 복제할 기회와 자신의 표현형 효과를 갖고 있으며, 밈의 성공이 유전자의 성공과 반드시 관련되어야 할 이유는 전혀 없다." (리처드 도킨스) -150쪽

어떤 행동이 자연선택의 관점에서 부적응할 때, 밈학자들은 그것을 밈이 작용한 결과라고 보는 반면, 진화심리학자들은 그런 행동이 제대로 설계된 정신의 반응이라고, 단지 그 정신이 원래 그 설계가 의도했던 세계와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것일 뿐이라고 말한다. -154쪽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과학이 상호 연관되어 있으며, 각각을 별도로 연구하는 것보다 함께 연구하는 편이 훨씬 더 쉽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따라서 사물의 진리를 진지하게 탐구하고 싶은 사람은 과학의 특수한 한 분야를 선택해서는 안된다. 모든 과학은 서로 결부되어 있고 상호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르네 데카르트, <정신 지도의 규칙>, 1629)-167쪽

오류와 과장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사고의 대담성이다. 결과를 걱정하지 않고 자신이 미든 것이 옳다고 선언하는 용기인 것이다. 절대적인 진리를 소유하고 싶다면, 바보가 되든지 벙어리가 되든지 해야한다. (호세 클레멘테 오로스코) -24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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