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스포일러 경고
봉태규표 코미디란 이런 것. 봉태규 주연이 아니었다면 망할 수도 있는 영화다. 이 영화를 본 뒤 봉태규를 쏙 빼버리는 남는 것은 없다. 그를 제외하고는 출연진이 죄 신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지금은 이제 조금 유명해진 하석진의 경우 봉태규와 동갑내기이고, 한명은 SBS 웃찾사 코너 중 '단무지 아카데미' 를 진행하는 개그맨이다. 여주인공도 모델로 깜짝 활동했던 신인이고. 그러니 연기력을 기대할 수 있는건 '검증된' 봉태규 뿐이고, 그가 제외되었다면 주목도 받지 못할 영화다. 솔직히 봉태규 없으면 이 영화 보지 않았다.
이렇게 어느덧 봉태규는 서서히 자신의 영역을 구축하고 있다. 명지전문대 연극영화과 출신으로 타이틀로 먹고 들어가는 우리나라 연예계에서도 그의 프로필은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다. 순전히 봉태규만의 독특한 캐릭터와 연기력으로 승부를 봤다고 봐야지. 2000년 <눈물>로 데뷔하여, <정글쥬스> <굳세어라 금순아> <품행제로> <튜브> <바람난 가족> <그때 그 사람들> <광식이 동생 광태> <가족의 탄생> <애정결핍이 두 남자에게 미치는 영향> 등 많은 영화에 출연했다. 대략 지금의 그를 만든 이미지는 <광식이 동생 광태>가 큰 역할을 하지 않았나 싶다. 아니면 그의 캐릭터가 가장 빛을 발한 영화가 그것인지도.
능글능글 거리면서 대담하고 엉뚱하고 막무가내인 그가 결코 부담스럽지 않은건, 봉태규 캐릭터의 귀여움과 사랑스러움 때문이다. 무슨 짓을 해도 싫지 않으니 어쩌랴. 남자인 나도 이런데 여자들은 오죽할까. 솔직히 이런 캐릭터가 지금 가장 사랑받는 캐릭터가 아닌가. 배우로서가 아니라 남자로서. 볼따구 넙적하고 눈은 찢어지고 입은 헤벌쭉. 결코 잘생겼다고 할 수 없는 이런 특이하고 개성있는 외모는 배우로서의 그를 만드는데 자연스럽게 일조하지 않았을까.

* 능글능글, 귀엽게, 헤벌쭉, 시선은 야릇하게. 무슨 상황일꼬.
영화는 진짜 별거 없다. 왕따의 천성을 타고나 가는 곳마다 괴롬힘을 당하는 이 녀석은 2년 후 다시 학교로 돌아가지만, 다시 왕따당하고 맞을 것을 우려하여 어머니께서는 10만원짜리 수표 한장을 건넨다. 역시나 첫 학교였지만 이미 이상한 애라는 주위의 시선, 그리고 그를 죽어라 패주었던 예전의 친구가 정문에서 기다린다. 좆됐다. 나름 왕따교실의 친구였다 적응한 녀석의 도움으로 온전한 학교 생활 해볼까 해보지만 될리가 만무하지. 하필 또 이 학교 짱에게 대들건 뭐람. 얼굴 반반하게 생긴 우리반 반장 구한답시고 나는 이제 죽게생겼다. “너, 오늘 나랑 붙는다! 방과후 옥상이다! 도망가도 죽는다! 안나와도 죽는다! 어차피 넌 죽는다!" 너무나 무섭습니다. 아 나는 이제 어쩐답니까.
방과 후 옥상까지 7시간 남았다. 자 피할 방도를 생각해보자. 권투부 친구에게 돈을 먹여 대적하게 하기도, 눈을 찔러 눈병인 척하기도, 유통기한 며칠 지난 우유를 먹어볼까 생각하기도 해봤지만, 아 대책이 안섭니다. 그런데 이게 왠일. 다들 내가 대단한 녀석인 줄 알고 있습니다.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내가 그를 바라보는 시선과 같다니. 은근 기분 좋은걸. 우쒸 덤비기만 해봐. 다 죽었쓰. 그런데. 그런데. 그럼 뭐합니까. 이따 붙으면 다 뻔히 드러날텐데.
싸움의 결과는 안봐도 뻔하지만, 어디 이 영화가 그걸 노리고 영화를 만들었겠는가. 뭔가 다른 의미가 있는 싸움이겠거니. 영화 중반 쯤 넘어서면 대략 결과가 어떻게 날지는 예상가능하지만, 남은 데드라인까지의 봉태규의 대처방법이 궁금해 끝까지 보지 않을 수 없다. 예상을 넘어서는 행동과 웃기는 이 캐릭터, 꼬봉이며 꼬봉이었지 결코 왕따일 수 없는 이 녀석이 어떻게 이 지경이 되었을꼬.

* 이쁘지는 않지만 신비한 매력이 있다. 뒷조사 결과 숙명여대 디자인학과생이라 하던데. 에꼴로 데뷔했다지.
<방과 후 옥상>은 의외의 어떤 영화와 상당히 일치하는 부분이 많다. 말.죽.거.리. 잔.혹.사. 분위기도 완전 다르고, 영화 장르, 캐릭터 하며 비슷한 구석이 전혀 없어보이지만, 대략 진행되는 상황이 비슷하다. 위험에 처해있는 친구 구하다가 일짱한테 찍혀서 학교 옥상에서 한판 붙게되는 줄거리하며, 한주먹거리도 안되는 녀석이 일짱한테 개기는 것하며, 교실에서 웬놈하나가 선생님에게 찍혀 죽어라 맞는 장면하며, 이런 상황들이 큰 줄거리가 되어 맞물리는 상황들이 비슷하다. 그러나 어떤 과거의 시대상을 보여주려한 것 같지는 않다. 그저 왕따가 일짱한테 개기고 맞붙게 되었고, 데드라인 얼마 안남았다는 상황에서 벌어지는 일들로 웃고 즐기는 영화로 봐야한다. 킬링타임용 유치코믹영화이지만 약 100분 가량의 러닝타임은 결코 지루하지 않다. 봉태규를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 만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