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일러 경고

  원작을 읽어보지 않아 잘 모르겠다만 이 영화에 대한 평 중 다수가 "원작과 다르지만 재미있다"로 요약된다. 해리포터 시리즈가 언제부터 나오기 시작했는지 모르겠는데 이제 7권을 쓰고 있고, 조앤롤랑에 의하면 마지막편에서 두 주인공의 죽음을 예고하고 있다고 하니, 작품의 완성도를 위해 과감히 주인공을 '죽여버리는' 결단을 주저하지 않는구나. 주인공의 죽음이야 말로 정말 시리즈의 완결을 의미하는 것이니. <터미네이터> 처럼 주인공이 다시 되살아난다거나 하는 일은 해리포터에선 없을 듯 하다. 사이보그와 인간의 차이.

  원작은 어떤지 모르지만 재미있는건 사실이다. 한번 첫편을 놓친 이후부터 후속편이 줄줄이 나와도 읽지 않고 보지 않은건, 처음부터 끝까지 순서대로 보겠다는 의지 때문이었는데, 마음먹고 동네 비디오 가게에서 시리즈를 빌리지 않는 이상 그럴 기회는 오지 않을 듯 해서 그냥 먼저 다가오는 순서대로 봤다. 1편, 2편 숫자를 붙여놓은 것이 아닌지라 무엇이 먼저이고 나중인지도 헷갈리고, 아무거나 먼저 봐도 하나의 작품으로서 완결성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 세 학교의 교수와 학생이 모인 가운데 불의 잔은 트리위저드 대회 참가자 명단을 발표한다.

  트리위저드 마법경연대회. 인근의 명문 세 개 학교에서 트리위저드 컵을 놓고 대결을 펼친다. 지원자는 불의 잔에 이름을 집어넣고, 추첨을 통해 자동으로 참가자가 결정된다. 각 학교에서 세 명의 참가자가 나오게 되는데, 당연 해리포터는 나이제한으로 참가자격 미달이다. 그러나. 역시 일은 예정대로 진행되면 재미없다. 덤스트랭 학교의 빅터 크룸(스타니슬라브 이아네브스키)과 보바통 마법아카데미의 플뢰르 델라쿠르(클레멘스 포에시), 그리고 호그와트의 케드릭 디고리(로버트 패틴슨). 불의 잔은 마지막으로 한 명의 참가자 더 추가하는데, 자격미달인 해리포터의 이름이 호명된다.
 
  모두들 어이없어하고 심지어는 해리포터에게 불의 잔에 이름을 넣었냐고 캐묻지만 그건 애초 불가능하다. 자격미달인 자가 이름을 넣게 되면 불의 잔은 벌을 주게 되었었으니까. 어쨌든 이미 호명되었으니 되돌릴 순 없다. 네 명의 참가자는 주어지는 과제를 수행하고 다음 단계로 이동해야 한다.



* 귀여운 꽃미남 해리포터와 이쁘장한 그의 단짝 헤르미온느

  영화는 마치 어드벤처 컴퓨터 게임과 같다. 우리가 직접 조작하는 것은 아니지만, 컴퓨터 게임에서 진행되는 상황과 다를 바는 없다. 마법을 사용하고 아이템을 얻고 동료를 구출하고 적을 물리치고 시간의 문을 넘어 어딘가로 빠져들고 함정에서 나와야 한다. 때로는 죽을 위험에 처하기도 하지만, 정해진 규칙대로 하지 않았더라도 '희생정신 발휘'를 통해 보너스 점수를 획득한다. 언제 어디서 닥칠지 모르는 함정과 적들, 그리고 믿어도 될지 모르는 주변 사람들을 의심해가며 주어진 임무를 달성했을 때의 쾌감. 게임에서나 영화에서나 다르지 않다. 단지 내가 직접 화면을 보며 조작하느냐 아니면 조작된 화면을 눈으로 보며 즐기느냐의 차이일 뿐. 때로는 조작된 스토리가 직접 자판을 치는 것보다 흥미로울 때도 있다. 역시 게임과 마찬가지로 임무를 수행하고 나면 영화는 종료된다. 다음 임무는 5편에서. 다음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게임 추가 확장판을 사야하듯 다음 영화표를 구매해야 한다.

 p.s.

해리포터로 일약 스타가 된 이제 18살이 된 다니엘 래드클리프는 연극 '에쿠스'에 출연하며 누드를 감행했다. 그를 우상으로 떠받드는 어린 아이들이 다수 있는 상황에서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데, 연예인이니 공인이냐 아니냐의 차원으로 번질 수도 있는 문제라 생각된다. 공인으로서의 이미지를 지켜달라, 당신은 많은 이들의 우상이다, 라는 의견이 있는 한편 나는 내가 갈 길을 간다, 작품은 내가 선택하고, 노출의 수위도 내가 결정한다, 라고 말 할 수도 있는 형편.

국내 아역배우들 중 상당수가 아이에서 어른으로 나아가기 위해 노출연기를 감행한 것과 비슷하지 싶다. 김민정과 이재은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아무래도 어린 나이에 영화에 출연해 떴으니 아이로서의 이미지가 부각되었을 것이고, 이를 없애고 더 나아가기 위해서는 불가피했을 거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는 최근 시사주간지 ‘뉴스위크’와의 인터뷰에서 “내 안의 일부는 사람들의 나에 대한 인식을 바꾸라고 요동을 친다”며 “연극 출연은 나를 일깨우는 일이고, 대중이 ‘해리포터’보다 더 나은 뭔가를 연기할 수 있구나’ 평가해 주기를 원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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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한 나라의 앨리스 책세상문고 세계문학 36
루이스 캐럴 지음, 남기헌 옮김 / 책세상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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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릴 적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를 접해보지 못한 사람은 없을게다. 세월이 아무리 많이 흐르고 시대가 변했다고 하지만 여전히 지금의 꼬마 아이들은 방법은 달라졌을지 몰라도 우리가 어린 시절 받았던 교육을 그대로 받고 있으며, 우리가 봤던 동화책과 만화를 보며 자란다. <신기한 나라의 앨리스>는 우리가 어린 시절 보았던 만화와 책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이다. 단지 '이상한'이 '신기한'으로 번역되었을 뿐.  

 얼마전 영화 <매트릭스>를 오랫만에 다시 보고선 두 동화가 떠올랐다. 이것들을 단순히 동화라고 지칭하기에는 너무 거대하지만, <신기한 나라의 앨리스>와 <오즈의 마법사>가 그것이다. 영화 <매트릭스>는 참으로 다양한 텍스트들을 짬뽕시켰으며 이 영화를 통해 무엇을 떠올리건 그건 자연스러울 것이다. 내가 <매트릭스>를 통해서 <신기한 나라의 앨리스>를 떠오른 것도 그 다양한 '떠오름' 중의 하나이며, 그 덕분에 다시 이 소설을 본격적으로 보게 되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검색하면 몇 가지 번역본이 있다. 먼저 검색어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라고 했을 때 시공주니어와 북폴리오, 삼성출판사, 중앙출판사, 지경사, 길벗이지톡, 아이즐북스 등이 나오고, '신기한 나라의 앨리스'라고 쳤을 때는 책세상 것 밖에 나오지 않는다. '신기한'과 '이상한'의 번역차이지만 어쨌든 검색해서 나오는 책 모두가 루이스 캐럴의 원본을 토대로 하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 내가 본 책은 책세상 문고의 것으로, 다른 책들이 어린이용으로 나온 것에 비해 이 책은 하나의 문학소설의 뽀대를 띠고서 태어났기에 꼬레 또 어른이라고 이 책을 골라잡았다. 어린이용으로 나오는 것은 아무래도 더 쉬운 말로, 그리고 모든 것을 담아내지 않고 축약하거나 발췌하여 골랐을 공산이 크기에 위험부담이 없이 책세상의 것을 구입했다.  

  막상 이 책을 읽고 나니 후속편인 <거울 나라의 앨리스>도 읽어싶어졌는데 이건 시공주니어 어린이용과 넥서스, 북폴리오 세 군데 것이 있다. 같이 책세상에서 나온 것이었으면 좋았으련만 읽게 된다면 천상 북폴리오 것을 읽게 생겼다. 넥서스는 '중학교 영어로 다시 읽는 세계명작' 시리즈 이기에 부적합하고, 유일하게 남은 것이 북폴리오인데 이 책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거울 나라의 앨리스>가 모두 담겨있어 부피도 크고 가격부담도 좀 있다. 애초 두 책을 다 읽을거라면 책세상문고보단 북폴리오를 구입하는게 이득이다.

   루이스 캐럴은 일찍이 예술적인 재능을 드러냈으나 말을 심하게 더듬고 청력이 좋지 않았으며 이런 장애 때문인지 내성적인 성격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집 밖의 다른 이들과 접할 기회가 별로 없고, 집 안의 동생들과 놀다보니 동화를 집필하게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을 해볼 수 있다. 그의 직업은 수학자이며 논리학자이고 동시에 사진작가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보다 이 동화로 더 알려져있으니 동화작가로서 그를 인지하고 있는 사람이 훨씬 많다. 참으로 다재다능했던 사람이다.  

  그는 옥스퍼드 대학 교수 시절 옥스퍼드 크라이스트 처치 칼리지 학장으로 온 헨리 리델의 아이들을 데리고 강에서 배를 타고 놀며 그네들에게 재밌는 이야기 한 편을 해줬는데, 그것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모태가 되었다. 앨리스는 그때 배를 타고 있던 세 아이 중 한 아이의 이름이었는데 그녀를 주인공으로 삼아 즉석해서 말로 환타지 소설을 쓴 셈이다. 이후 이것을 책으로 내려고 마음 먹으면서 이야기에 이것저것 덧붙이고 새로 꾸미고 하며 지금과 같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다들 알다시피 앨리스란 아이가 토끼를 발견하고는 따라가다 굴로 떨어지고 몸이 작아졌다 커졌다 하며 사물을 다른 시각에서 체험하기도 하는 등의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구성된다. 이 책은 동화로서 아이들에게 다가가지만 환타지 소설로서 다가오기도 한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등장하는 각종 장면들이 이후 곳곳의 소설과 영화에서 재현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환타지는 "현실의 타자로서 현실의 문제를 다른 관점에서 볼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니 현실을 여러 가지 관점에서 바라보고자 하는 다양한 해석이 시도되는 지금, 그의 소설이 여기저기에 적용되고 드러나는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니다. <매트릭스> 또한 그 많은 시도들 중의 하나일 뿐이다.  

  어린 시절 무심코 읽고 받아들였던 것을 제법 자란 지금에 와서 다시 살펴보는 일은 즐겁다. 생각하지 못한 채 주는대로 넙죽넙죽 받기만 했던 시절엔 아무것도 몰랐지만, 그것이 다른 의미로 읽힐 수 있다는 것을 안 지금, 내가 현재 읽고 있는 다른 것들, 받아들이고 있는 다른 것들이, 또 내가 한참 자란 뒤에 다르게 읽힐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분명 다를 것이다. 코흘리개 찔찔이가 읽었던 동화는 이제 문화예술 영역에서의 환타지 작품으로서, 다른 문학과 영화의 재료로서 다가왔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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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d0735 2007-02-04 15: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어릴적 앨리스를 접해보지 못했습니다. ㅠ.ㅠ ;; 이제라도 읽어봐야겠어요.
책세상 문고본 관심두고 있었는데... 책이 괜찮았나 보군요. 뺘쑝님 멋져용~!

마늘빵 2007-02-04 16: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스카님 / ^^ 아 본적 있는데 기억 못하시는거 아녀요? 만화든 동화든 보셨을텐데. 이번에 한번 보세요.

mind0735 2007-02-05 1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로 나온걸 잠깐 봤는데.. 그것도 드문드문 봐서 제대로 기억이 안 나요. 그나저나.. 이상한 나라의, 와 신기한 나라의, 는 정말 어감이 틀리군요. 어느것이 정답인지... 네. 꼭 읽어보겠습니다. ^^

마늘빵 2007-02-05 1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wonderful 을 번역한건데, 머 어느 걸로 하든 의미는 괜찮은거 같아요.

가넷 2007-02-12 0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북플리오에서 나온 걸 살려고 했었는데... 다들 리뷰에 올리신것이나 다른 곳에서 관련 정보를 볼때 편집이나 번역에 문제가 있는 듯 해서... -_-; 안 그랬으면 사버렸을텐데 말이죠..ㅜ; 그런데 책세상에서 나오는 세계문학 시리즈는 값이 아주 착한 것 같네요.ㅋㅋ

마늘빵 2007-02-12 07: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가격이 그냥 부담없이 낼 수 있는 정도더라구요. 개인적으로 책세상 우리시대 문고판도 좋아하는데, 싸고 휴대하기 좋게 나오는거 같아요. 디자인도 깔끔하고.

2007-04-09 20: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제자, 스승에게 길을 묻다
이선민.최홍렬 엮음 / 민음인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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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자, 스승에게 길을 묻다>는 조선일보에 2004년 8월 10일부터 2005년 3월 1일까지 연재되었던 것을 책으로 묶은 것이라 한다. 나야 조선일보를 보지 않으니 그랬는지는 모르겠고, 그저 하나의 책으로서 대했는데 결론을 이야기하자면 별로다. 이 책의 내용들이 조선일보 연재물 이었기 때문에, 내가 조선일보를 싫어하기 때문에 그런 결론에 도달한 것이 아니고, 생각보다 내용이 부실하다.

  이 책은 대담집이고 나는 대담집을 좋아한다. 대담집의 장점은 사람과 사람의 대화를 지면으로 옮겨놓은 것이기에 마치 두 사람의 대화를 현장에서 엿듣고 있는 거 같은 사실감을 전해준다는 것이다. 또한 어려운 말을 하더라도 대화이기 때문에 - 대화란 곧 말로 풀어놓은 것이기 때문에 당연히 문어체보다는 구어체에 가깝다 - 쉽게 다가온다는 것이다. 일전에 읽은 <춘아 춘아 옥단 춘아 네 아버지 어디갔니>도 세계의 문학의 특별기획으로 구성된 대담집인데, 이 책을 통해서 참 많은걸 배웠고 많은 생각을 했기 때문에, 내 고민이 풀리면서 또다른 더 큰 고민으로 나아갔던 책이기에 '대담집'에 대한 내 감정은 더욱 호의적이다. 참고로 이후에 읽은 <서양과 동양이 127일간 E-mail을 주고 받다> 도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어쨌든 이 같은 기대감을 가지고 <제자, 스승에게 길을 묻다>를 접했지만 너무나 실망스러웠다. 내가 잘 모르는 사람들이 대화를 나눈 것은 상관이 없는데, 이들의 대화가 좀 진행이 된다 싶으면 금방 끊어져버린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이 신문지면의 연재물의 한계이기도 하겠지만 대화를 하다마는 느낌이다. '잠깐 인터뷰' 형식이랄까. 제자가 스승을 만나 스승에게 질문을 던지고 스승이 이에 대해 답하고 여기서 대화를 주고 받는 이 형식과 과정은 참으로 좋은데, 볼 만한 내용이 없다는 것이 문제이다.

  조선일보 연재 당시엔 많은 인기를 끌었다고 하지만 신문 연재물이 책으로 옮겨진다고 해서 반드시 인기를 끄는 것은 아니다. 잡지에 기고하기엔 퍽 좋은 글이 묶여져 책으로 냈을 때 별거 아닌 책이 되는 이치와 같달까. 글은 성격에 맞게 있어야 할 곳이 따로 있다. 인기있던 신문 연재물이라 해서 책으로 묶어서 '괜찮은 책'의 반열에 오르는 것은 아니다. 이걸 책으로 묶고 싶었다면, 좀 더 많은 이들에게 선보이고 싶었다면, 대담 분량을 더 늘려서 묶었어야 할 것이다. 이 두꺼운 책 한권을 읽고 뭔가 시각이 트인다거나 삶의 깨달음을 주었다거나 하는 뭔가가 있어야 책으로서의 역할을 했다 할 것이 아닌가. 이 책이 내게 전해준 것은 잘 몰랐던 많은 이들을 접했다는  사실 외에는 없다.

  하나 더. 대담이 조선일보 연재물이라 그런지 이 안에 대담에 참여한 이들 중 다수가 조선일보식의 사회관을 가지고 있었다. 대통령 탄핵사건이나 경제문제나 교육문제, 친일청산문제에 대해서 조선일보식 사고방식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 참으로 안타까웠다. 조선일보식 사고방식과 그 사람들의 평소 가치관이 우연히 일치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이 마저도 왜 조선일보의 계략이라 생각되는거지. 무엇이 옳다 그르다의 관점을 떠나 대담까지도 '조선일보식'이구나 하는 생각에 더 속이 불편해졌다. 다른 사람들의 정치성이야 잘 모른다쳐도 김호기와 임지현이 대담자 리스트에 들어있는 것은 참으로 거시기허다.

  유일하게 이 책에서 내가 건진 것이 있다면, 이 책의 마지막에 있는 한림대 한림과학원 특임교수 김용구의 말이다.

  "저는 후학들이 '철학자로서의 지식인'이 되길 바랍니다. 지식인은 활자나 기호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전파하여 그 사회의 문화 향상에 영향을 주는 사회 계층을 지칭합니다. 교수와 언론인, 종교인이 대표적인 계층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저는 지금 국제 정치학자들을 대상으로 말씀드립니다. 지식인은 세 가지 유형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째, '기술자로서의 지식인'입니다. 강대국 국제 정치 이론을 충실히 전파하는 집단인데, 이들의 역할은 긍정과 부정 두 가지가 있습니다. 강대국 이론을 전달하는 면에서는 긍정적일 수 있으나, 전달 자체가 자기 해석이 결부되기 때문에 매우 위험한 전달이 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문화 제국주의의 첨병 역할을 무의식적으로 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둘째, '이념 전달자 또는 이념 창조자로서의 지식인'입니다. 특정 정당, 정치 집단의 명분을 선전하는 집단인데, 그들이 지탱하려는 집단의 성격에 따라 역할이 상이하고 이른바 선진국과 후진국에서의 그들 역할도 상이합니다. 1960년대 이후 너무 많은 교수들이 이 유형에 해당하는 것이 한국 국제 정치학 발전에 과연 도움이 되는 일인지 생각해 봐야 할 문제입니다.

  셋째, '철학자로서의 지식인'입니다. 자신이 처한 국가나 사회의 역사적 발전 방향을 설정해 이에 대한 원칙을 제시할 수 있는 지식인입니다. 저는 후학들이 이런 지식인이 되길 간절히 바라며, 무엇을 연구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철학자로서의 지식인에게는 자연히 뒤따라 발생하는 부차적인 문제입니다."

 p.s. 리뷰를 쓰다 전에 읽었던 두 대담집을 검색해보았다. <춘아 춘아 옥단 춘아 네 아버지 어디갔니> 와 <서양과 동양이 127일간 e-mail을 주고 받다>가 절판되었었는데, 다시 확인해보니 지금은 둘 다 판매중이다. 절판되어 참 아깝다고 생각했던 두 책이 다시 보여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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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명하게 세속적인 삶
복거일 지음 / KD Books(케이디북스)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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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하는 고민은 언제나 지속된다. 마치 나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을 수없이 던져놓고 매번 다른 대답들을 내놓고 있는 것처럼. 그러나 여전히 삶은 진행 중이며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도 여전히 나를 찾고 있는 중 이라는 대답으로 일관하며 모색 중이다. 결국 아마도 난 자연히 나이가 들어 대한민국 남성의 평균 연령에 도달하는 즈음에서 죽어가는 시점에서도 나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에 만족스런 대답을 하지 못한 채 눈을 감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 그런 질문을 던지고 스스로 대답하는 삶을 살아왔다는 것만으로 나는 만족할지도 모른다.

 다시 질문을 던져보자.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복거일은 '세속적으로 현명한' 보다는 '현명하게 세속적인' 것이 삶의 본질에 맞다고 이야기한다. '세속'과 '현명'은 '삶'을 똑같이 수식해주지만, 똑같은 질감으로 삶을 수식하진 않는다. '세속적으로 현명한 삶'과 '현명하게 세속적인 삶'은 분명 다르다. 영국의 시인 콸스는 어느 싯구절에서 "현명하게 세속적이어라. 세속적으로 현명하지 말고"라고  말했다. 복거일은 말한다. "이 세상에서 살아가려면 어쩔 수 없이 세속적이어야 한다. 그러나 세속적 처신으로 시종하면, 무언가 근본적 중요성을 지닌 것을 놓칠 수도 있다. 따라서 자신이 추구하는 삶에 맞는 방식과 정도로 세속적이어야 한다"

  우리 모두는 세속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의 후손들이고, 당연히 우리는 보다 높은 자리로 올라가기 위해 애쓰고 노력한다. 한편 모두 세속적 성공에 대해서 또 약간의 진정한 경멸감을 가지고 있다. 세속적으로 성공한 자들에게 부러움을 표현하지만, 그들은 존경을 받지 못한다. 그러나 존경을 받는 너무 낮은 자리를 차지하면 당장 살기 어렵고 발전에 도움이 안된다. 뜻하고자 하나 뜻한 바를 이루지 못할 공산이 크다. 고로 여기서 "현명하게 세속적"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결국 복거일이 말하는 "현명하고 세속적인 삶"을 지칭하는 것은 기업인의 삶과 연관되어 있다. 자리가 한정되어 있는 공무원, 관료 등을 향한 젊은이들의 열망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위치재는 "가치의 큰 부분이 특수한 위치 덕분에 생긴 재화"를 가리키는데, 이는 더 생산될 수 없고 재분배 될 수만 있다는 것이다. 위치재에 대한 다툼은 치열하고 이를 향한 경쟁과정에서 창출되는 가치는 없다. 그러나 기업 등의 상업활동은 돈을 많이 벌어 자신의 위치를 높일수도 있으며, 아울러 물질적 가치를 창출해 사회에 공헌하므로 권장할만하다. 위치재와는 다르게 높은 사회적 성공에 따르는 부러움과 존경도 받을 수 있고, 사회에 공헌도 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라는 것이다. 복거일에게서 "현명하게 세속적인 삶"은 바로 이를 뜻한다.

  더불어 그가 말하는 것은, 이러한 삶에 도달한 뒤에는 회사나 기업의 이름으로 자선을 할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이름으로 자신의 재산으로 기부를 해야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기업들은 자신의 이름으로 회사의 돈으로 기부를 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바람직하지 못하다. 진정한 사회적 공헌과 함께 나 개인에 대한 사람들의 존경을 받고 싶다면 내 이름으로 내 재산을 털어 자선을 해야한다는 것이다.

  평소 복거일의 발언내용이나 다른 책을 통해서 접했던 그의 사회에 대한 가치관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는 책이다. 복거일은 친기업적이고, 친시장적인 발언을 자주했으며, 그것이 진정한 의미에서 자유를 실현하는 길이고, 모두가 함께 잘 살 수 있는 길이라 믿는 사람이다. "현명하게 세속적인 삶"을 기업인의 삶과 연관지어 설명하는 것도 그의 평소의 생각과 같다. 그는 한국의 지식인 지도에서 '자유주의자'에 속하는 사람이고, 이에 대해서는 다른 이들도 동의하리라 생각한다. 이 책과 그의 몇몇 책들을 살펴본 결과, 그의 자유주의는 삶의 방식에 있어서 그럴 듯 하고 설득력을 갖기도 하지만, 그것이 사회적인 문제로 나아갔을 때는 다르게 바라봐야 할 듯 하다. 한 개인으로서의 삶과 그것을 사회나 국가의 차원에 적용했을 때의 차이랄까.  

  책 몇 권 읽었다고 복거일과 그의 생각에 대해서 다 알았다고 하면 성급한 일반화일 것이다. 그는 꽤나 굳건하게 꾸준히 자유주의에 대한 옹호 논변을 표현하고 있으나 그것이 얼마나 의미있는 메세지일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이 책에는 "현명하게 세속적인 삶"에 대해 두 가지 관점에서 바라 볼 수 있는데, 지금까지 이야기한 '기업인으로서의 삶'과 연관지어 볼 수 있는 작은 소제목이 그 하나요, 이 책 전체를 통해 "현명하게 세속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는 복거일의 눈으로 본 일상과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또 하나다. 짧은 글들의 집합으로 이루어져있지만 읽으며 생각할 거리들은 꽤 많다. 그의 의견에 동의하건 동의하지 않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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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2-05 1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현명하게 세속적인.. 보통사람이 추구하는 삶의 양상일 것입니다.
복거일의 책은 유행하는 '왜곡된 평등'에 대한 일종의 'rebound'일 것입니다.
세상이 노멀이라면 무의미한 책이지요.

 
호모 코레아니쿠스 - 미학자 진중권의 한국인 낯설게 읽기
진중권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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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 한국 사회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과 이를 토대로 한 글쓰기를 하는 사람들은 많다. 강준만, 한홍구, 김동춘, 탁석산, 박노자, 홍세화 등등. 하지만 진중권은 다른 이들에 비해서 재미난 글쓰기를 하는 사람이다. 같은 것을 보지만 다르게 표현한다. 진중권이 이 책을 통해서 드러낸 그가 바라본 한국사회는 우리가 살면서 흔히 접하는, 또 느끼는 것들이다. 그 중에는 우리가 이것만은 좀 고쳐졌으면 좋겠는데, 이런 면은 이렇다, 라고 스치듯 생각이 지나치는 경우들도 많다. 진중권은 이런 평범한 한국 사회의 일상생활에서 접하게 되는 것들을 소재로 삼아 한국인을 성찰한다.  크게 근대화, 전근대성, 미래주의 로 나누고, 각각에 들어맞는 한국 사회의 모습들을 담아낸다.

  진중권은 이 책의 서문에서 '한국의 정체성'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했다. "'정체성'이라는 낱말은 다분히 이념적이어서, 한국인이 마땅히 수립하고 보존해야 할 어떤 가치 체계를 함축한다. 가치관이 다양해진 시대에, 과연 한국의 문화라면 마땅히 갖춰야 할 어떤 양식 같은 게 존재하는지 모르겠다. '정체성' 담론은 종종 특정인의 주관적 가치관을 사회의 객관적 규범으로 제시하는 형식을 취한다. 하지만 여기서 나는 "한국인이라면 모름지기 이래야 한다"라고 주장하고 싶지 않다."  

  '한국의 정체성'에 관해서라면 철학자 탁석산이 <한국의 정체성>이라는 책을 통해서 작업 한 바 있다. 그는 정체성과 주체성은 분명히 다르며, 정체성이라 할지라도 '한국'의 정체성과 '한국인'의 정체성은 구별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한국의 정체성을 알기는 매우 어려운데, 한국인이 만든 작품을 통해서 분석이 가능하다고 했다. 그러나 이때도 한국인 개인이 만든 것이 아니라 한국이란 집단이 역사를 통해 공동으로 만들고 지금도 가지고 있는 것으로 한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첫째가 언어요, 둘째가 한국과 관련된 각 분야의 공통 속성을 찾는 것이다.

  진중권이 <호모 코레아니쿠스>를 통해서 하는 한국인에 대한 작업은 탁석산이 내세우는 것만큼이나 거창하지는 않지만, 이 역시 한국사회와 한국인을 설명해줄 수 있다는 차원에서 의미가 깊다고 하겠다. 그는 이 책이 정체성의 문제가 아니라 '하비투스'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적합하다고 서문에서 밝히는데, 하비투스란 "우리말로 흔히 '습속'이라 번역되는데, 거칠게 말하면 특정 사회 성원들의 사고방식, 감정구조, 행동양식의 총합이라 할 수 있다."

  진중권이 살피고 있는 우리 사회는 생활 곳곳에서 볼 수 있는 한국인의 습속이다. 지하철 문화, 식탁에서의 식사문화, 예절, 황우석 사건을 대하는 태도, 국가대표, 월드컵, 취미와 여가생활 등등 우리 생활의 일면을 재료로 삼아 이를  해석하는 작업을 시도한다. 단 이것을 근대화와 전근대성, 미래주의로 나누어 해당 범주안에 묶어놓아 단순히 일면만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근대성과 전근대성을 살펴본다는 차원에서 의미있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진중권의 글은 매우 재밌다. 일단 우리의 모습이 담겨있다는 측면에서 매우 친근하고, 글 자체가 어렵지 않으며, 그의 분석은 날카로우나 즐겁다. 때로는 그의 글은 심한 경우 '비꼬기'로 변질되는 경우도 있으나 적절한 선에서 마무리 지음으로써 읽는 이에게 웃음을 선사한다. 다음과 같은 대목들로 진중권의 일상의 한국인에 대한 분석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 볼 수 있다. (참고로 비꼬기가 적나라하게 표출된 것으로 그의 저서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가 있다. 이 책은 읽는 내내 공감하면서도 불편했다.)  

  "수직적 위계를 위한 예법이 매우 복잡하게 발달된 한국 사회, 수평적 교제를 위한 예법에는 이렇게 구멍이 나 있다. 원래 전통 예법 자체가 신분제에 뿌리를 두고 있는 데다가, 근대화마저 군대를 모델로 하여 이루어지다 보니, 예법이 주로 수직적 위계를 세우는데에 소용된 것이다. 그 결과 개인과 개인의 평등한 교제를 규제하는 품위있고, 격조 있는 시민적 예법은 발달할 기회가 없었던 모양이다. 낯선 사람과 마주칠 때 한국인이 느끼는 어색함은 거기서 비롯된다."

  "한마디로 한국인은 근거리 지각에 따르는 쾌, 불쾌에 그다지 민감하지 않다. 일단 내가 불쾌해야 남도 불쾌할 것이라는 데에 생각이 미치지 않겠는가. 자신이 불쾌하게 느끼지 않는 행동은 당연히 남에게도 별 생각 없이 하게 된다. 한마디로 이것은 '배려'의 문제이기 이전에 먼저 '감각'의 문제다. 이른바 에티켓의 전제가 되는 것은 바로 불쾌를 불쾌로 느끼는 미적 취미다."

 진중권의 글을 통해 독자들은 한국인으로서의 자신과 주변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될 것이다. 아무렇지 않게 느끼고 행동하고 살았던 부분들이 이런 의미가 있다는 것을 생활 곳곳에서 떠올리게 될 것이다. 지금도 내 머리 속엔 그의 시각,후각,미각,촉각 등에 대한 지적이 맴돌고 있다. 쥐포를 구웠더니 난 구수했는데 내 동생은 대뜸 화난채로 나와서 창문을 활짝 열고는 들어간다. 어찌 볼 것인가. 내 동생의 근대화된 후각을. (다른 차원에서 보면 동일 냄새에 대한 개개인의 취향 문제로 들어갈 수도 있다)  

  진중권의 한국인의 하비투스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에는 동의하고, 웃음의 미학에는 즐거움을 느꼈으면서도, 한 가지 지적하고자 한다면, 그의 한국과 한국인의 습속을 바라보는 시각은 다소 그가 독일에서 유학하던 시절에 그곳에서 접했던 것들을 기준으로 삼고 있다는 점이다. 홍세화와 고종석이 프랑스를 기준으로 삼고 한국을 바라보듯, 진중권은 독일을 기준으로 삼아 한국을 바라본다. 도식화의 위험성을 감수하면서, 굳이 연결지어본다면, 옳은 독일의 모습으로 그른 한국의 모습을 바라본달까. 재밌게 읽으면서 불편했던 것은 이 때문이었다. 물론 진중권은 독일이 무조건 옳다는 것이 아니라 독일의 모습 중 옳다고 생각하는 부분을 가지고 한국의 동일한 부분에 대해 지적했겠지만, 글 전체에서 풍겨지는 인상만큼은 지울 수 없다.

 p.s. 이 책과 함께 탁석산의 <한국의 정체성>과 강준만의 <인간사색> <한국인코드>를 비교하며 읽는다면 한국인의 정체성이든 습속이든, 다양한 관점에서 한국과 한국인을 바라볼 수 있으리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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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클 2007-02-05 2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점점 리뷰쓰시는 실력이 느신다는 느낌. ^^

마늘빵 2007-02-06 06: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감사합니다. ^^

파란여우 2007-02-15 17: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드팀전님과 아프락사스님때문에 진중권 책을 그만 사야겠다던 각오(??)가 무너집니다. 자꾸 이런식으로 강력 뽐뿌를 하면!(하면? 할수 없죠 뭐. *.*)^^
보관함으로!

마늘빵 2007-02-15 18: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여우님 저는 아무 짓도 안했는데요 =3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