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보여주는 손가락
김치샐러드 지음 / 학고재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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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절대 사지 말 것'. 하지만 이 말은 애써 그와 같은 작업을 시도했던 저자 김치샐러드에게는 가혹한 말인지도 모르겠다. 그것은 정말 그렇다. 심심풀이로 번뜩이는 상상력으로 별다른 의도 없이 자신의 블로그에 연재하기 시작했던 명화와 이를 설명하는 '그림 보여주는 손가락'은 아무런 죄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와 같이 '절대 사지 말 것'이라는 욕을 먹어야 하는 이유는, 저자 김치샐러드가 아닌 출판사에 있다.

  학고재. 꽤나 고전틱하고 고풍스럽기도 하고 뭔가 깊이있는 냄새가 나는 이 출판사는 그간 꽤나 묵직한 책들을 펴냈다.  <완당평전>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서서>  <미술이 걸어온 길> <미의 사색가들>이란 제목을 달고 나온 책들이 이를 보란듯이 증명하고 있다. 그런데 왜? 지금까지의 출판 행보와는 전혀 동떨어져보이는 이 가벼운 책이 나온 것은 어떤 이유일까.

  <그림 보여주는 손가락>에 실려있는 내용들은 개인 블로그에 심심풀이(?) 삼아 올린 것치고는 꽤나 정성스럽고 공을 들인 흔적이 보인다. 그리고 또한 이런 시도는 매우 신선했다. 그러나. 블로그에 올라와서 인기를 끌 수 있는 콘텐츠라 하더라도 그것이 책으로 내어지는 것은 또다른 문제다. 블로그에 연재되어 주목을 받는 것이 있는가 하면 책으로 출판되어 많은 사람들의 손에서 읽혀야 하는 것이 있다. 자격의 문제라고나 할까. 누가 책으로 낼 수 있는 콘텐츠의 질을 따지고 자격을 부여하는가 하는 문제를 떠나서, '종이책'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가 있다. 이렇게 놓고 보면 이런 '자격'의 문제가 아닌 '예의'의 문제가 된다. 그래도 이 정도는 되어야 책이라 할 수 있지, 라는 엄격히 정해놓은 기준이 아닌 대략적으로 '책'이라는 것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감이 있고 최소한의 그것을 충족시켜줘야할진대, <그림 보여주는 손가락>은 결코 그렇지 못했다.

  또 다른 한편에서 반대의 긍정적인 시각으로 볼 수도 있다. 기존의 책에 대한 접근하기 어려운 이미지를 깨자는 시각이 그것이다. 책을 읽는 사람이라면 뭔가 오~ 하는 감탄사와 함께 존중의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책을 읽는다는 행위 그 자체가 내포하고 있는 뭔가 대단해보이는 이미지, 일단 이것은 책이 뭔가 아무나 쉽게 접해서는 안되는, 대해서는 안되는, 고급문화쯤으로 분류되는 시각이라고나 할까. 인터넷에 연재되던 귀여니 소설이 처음 나왔을 때 이게 무슨 소설이냐 이런 정도라면 나도 쓰겠다, 라는 비판은 "기존 소설은 적어도 어느 정도의 질이라는 것이 있었다"를 전제한다. 그러나 당시 논쟁에서 한편으로는 이건 소설의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것이다 등의 찬사 또한 반대에 위치해 있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라면 <그림 보여주는 손가락> 역시도 기존의 그림에 대한, 특히나 명화에 대한 고급스러운 이미지와 아무나 접해서는 안되는 접근불가능성의 장벽을 허물어주었다고 평가해도 될까. 또 김치샐러드가 블로그에 명화에 낙서(?)를 하며 연재했던 것도 이런 의도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 책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과 긍정적인 시각은 이런 식으로 가능할지 모르지만 개인적으로는 책읽는 행위를 티비 오락프로그램이나 드라마를 보는 것보다 상위의 문화방식으로 존중(?)하는 나로서는 이는 책에 대한 모욕이다 라고 밖에 말 할 수 없다. 위에서 밝혔듯 이와 같은 가벼운 책에 대한 두 가지 상반된 시각이 존재하고 있음을, 또 생각할 수 있음을 알고 있지만, 나는 아직 책이 어느 정도의 최소한의 독자에 대한 예의로서 질을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쪽이다. 나는 저자 김치샐러드를 욕하진 않는다. 그것은 블로거로서 꽤나 대단한 일을 했으므로. 하지만 학고재에 대해선 욕을 할 수 밖에 없겠다. 심심풀이 작업으로 책까지 쓰게 된 저자에게는 책이 나온 기쁨을 억누를 길이 없겠지만 이 책은 그다지 그다지 별로 결코 누군가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리고 다시 읽을 생각도 없다. 솔직히 읽다 말았다. 그 시간이면 다른 더 좋은 책을 한 권 더 볼 수 있겠다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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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06-09-21 2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찔려요 흑... 책으로 내선 안될 걸 몇권이나....흑.

마늘빵 2006-09-21 2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_- 헉. 아녀 마태님 책이 왜요. 이 책을 한번 보셔야 돼요. 그래야 이해가.
전 마태님 책 재밌게 봤는데. '책'으로서.

Kitty 2006-09-22 04: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블로그는 몇번 본 적이 있는데 책이 나왔다고 해서 좀 놀랐어요.
님 말씀대로 책까지 낼 만한 내용인가? 싶어서요.
그런데 출판사가 학고재라니 더욱 놀랍군요 -_-;;

stella.K 2006-09-22 1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정보를 알려주는 독자가 필요하긴 하죠. 리뷰 쓰는 사람들 아프님처럼 하기 쉽지 않거든요. 특히 저 같은 사람은 읽다가 말 확률이 농후하죠.

반딧불,, 2006-09-22 14: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감합니다. 기가 막히더이다.
 
산에서 살다 - 바보 이반의 산 생활을 적은 생명의 노래
최성현 지음, 허경민 사진 / 조화로운삶(위즈덤하우스) / 2006년 8월
구판절판


고발과 고백은 차원이 다르다. 고발은 적을 만들지만, 고백을 통해서는 친구가 되는 것이다. 고백은 자기를 열고 상대방을 연다. 우선 자기 생활을 돌아보고 혼자서 할 수 있는 일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다. 그리고 때때로 만나 그것을 고백함으로써 서로 정보를 나누고 함께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해 보면 좋을 것이다. -46쪽

인류는 어느 순간부터 수렵, 채취에서 정착 농경으로 삶의 방식을 바꾸기 시작했다. 그것은 곧 더 이상 자연이 주는 대로 먹고 살지 않고 내가 바라는 것을 손수 길러 먹겠다는 뜻이고, 그때부터 지구의 식물은 재배 작물과 잡초라는 두 가지 세계로 나뉘게 되었다. 재배작물이란 인류가 원하는 곡류, 야채류, 과일류, 그리고 원예용의 풀과 나무를 말한다. 그것을 한 곳에서 집약적으로 재배하는 방식으로 인류는 지구 위에서 크게 번성하는 데 성공한 것이 사실이지만, 그때부터 풀과 벌레와 짐승의 일부를 잡초, 해충, 해수라고 부르며 그들과 싸움을 벌여 온 것도 사실이다. 먹을 것을 주는 식용 작물과 아름다움을 선물하는 꽃을 위해 인류는 그것들과 싸우고 있는 셈인데, 그 전쟁에 사용하는 농약, 화학 비료라는 이름의 화학 병기는 풀이나 벌레에 그치지 않고 인류는 물론 그 모든 것의 바탕인 공기와 물과 땅까지 더럽히며 우리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 -50쪽

"꿈을 이야기하면 날개가 달리고, 씨앗이 생긴다고 했지요? 좀 자세히 설명해주세요."
"꿈을 이야기하면 사람들이 듣고 그 꿈에 물을 주거나 그 꿈을 다른 사람에게 전해 줍니다. 그렇게 해서 꿈에 날개가 달리고 씨앗이 생기는 것이지요. 예를 들어 봅시다. 여기 겉으로는 식당을 하지만 속으로는 아무도 없는데 가서 조용히 수행하며 살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그 사람이 그 꿈을 그대로 두면 식당 일도 제대로 안되고, 그 꿈 또한 꽃을 피우지 못하게 됩니다. 하지만 일단 꺼내 놓으면 어떻게 될까요?
그 이야기를 듣고 누군가 생활 속에서 할 수 있는 간단한 명상법을 일러 줄 수도 있습니다. 그 사람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경전을 소개해 줄 수도 있습니다. 혹은 온갖 손님의 비위를 맞춰 가며 먹고 살아야 하는 식당 자체가 사실은 가장 좋은 수행터임을, 그러므로 어디 갈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일러 줄 수도 있지요. 이렇게 씨앗에서 싹이 트는 것이지요. 물론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을 테지요.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자네에게 딸린 식구가 몇이야? 정신 차려, 이 사람아.' 여러가지 반응이 있을테지만 그 가운데 몇 개에서는 싹이 트고 날개가 달립니다."
이 이야기를 끝으로 우리는 숙소를 향해 발길을 옮기기 시작했다. 달은 여전히 바삐 뛰어가고 있었다. "꿈은 하늘에서 온다."는 말이 내 가슴에 한 송이 꽃처럼 피어 있는 것이 보였다. 그것은 모든 것은 하나로 이어져 있다는 뜻이었다. 멀리 떨어져 있더라도 달을 통해 서로를 느낄 수 있다는. -71-7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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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사건
엘리에트 아베카시스 지음, 이세진 옮김 / 예담 / 2006년 9월
절판


니콜라는 내 배에 올려진 아기를 보았다. 그제야 겨우 미소를 짓기 시작했다. 하지만 내 눈에 천사의 얼굴 따위는 보이지 않았다. 아기는 내가 기대하던 장밋빛 뺨에 미소를 띤 얼굴이기는커녕, 이게 왠 원숭이 새끼인가 싶었다. 털 많고, 지저분하며, 태지와 분비물을 뚝뚝 흘리고, 온몸이 붉은색과 보라색으로 얼룩덜룩하며, 예쁜 구석이라고는 눈을 씻고 봐도 없었다. -72쪽

떠날 때의 우리는 젊고 자유롭고 분방했는데 돌아올 때는 가족이 되었다. 우리는 결코 예전 같을 수 없으리라. 딸을 낳기 전까지의 나는 스스로를 조금씩 만들어 나가는 사람이었다. 이제 끝이다. 딸을 낳고 나는 늙어버렸따. 나는 과거였다. 나는 더 이상 그날그날을 누리며 살지 못했다. 나는 나 아닌 다른 이를 책임져야 했다. 다시는 걱정을 모르고 살 수 없으리라. 다시는 혼자 일 수 없으리라. 다시는 오토바이를 타고 다닐 수 없으리라. 저녁에 외출을 하면 나를 기다릴 딸 생각에 안절부절 못하리라. 그리고 나중에는 외출할 딸을 기다리느라 안절부절 못하리라. 아이를 낳고 난 후로는 내 정신으로 사는게 아니었다. 난 항상 그 애에게 매여 있으리라. 나는 아이를 낳았고, 그 아이는 나를 낳았다. 다름 아닌 내 딸이 나를 출산했다. 아둔하고, 매사에 의식적이며, 환멸에 찌든 나, 또 다른 나를. 생명을 낳고 난 뒤에 삶에 대해 알아야 할 것이 있을까? 나는 더 이상 개인적인 야심이 없었다. 그럴 시간도 없었다. 내 인생은 더 이상 내 것이 아니었다. 나는 그저 움푹 파인 구멍, 텅 빈 공허, 무에 지나지 않았다. 그때부터 나는 어머니였다. -83쪽

그보다도, 이 애는 누구인가?
레아. 이기주의와 무관심으로 똘똘 뭉친 괴물, 오로지 제 개인적인 목적을 이루기 위해 나를 써먹는 아이, 타인에 대한 관심은 눈곱만치도 없이 오직 자신의 생존에만 맹목적으로 매달리는 존재, 그저 먹는 것 말고는 다른 생각이 전혀 없는 식충이. 아기는 오로지 먹기 위해 살았다. 아기는 식사를 끝내자마자 어느새 소화시켜 버리고는 다시 배를 채워야만 했다. 아기에게는 먹는 것 말고는 뭐든 의미가 없었다. 그렇지만 권력은 예외일지도. 아기는 권력을 좋아했다. 아기가 권력을 휘두르는 순간에는 만사 제치고 달려가야지, 안그러면 분노를 터뜨렸다. 아기는 화가 나기 시작하면 얼굴이 새파래졌다. 그리고 히스테리, 조울증, 정신분열증 등 광기의 온갖 징후를 여실히 드러냈다. -94쪽

사랑에 빠진 연인은 정념을 불태우면서 바로 그러한 무한을 꿈꾼다. 하지만 그것은 사랑의 첫 단계, 가장 초보적이고 제멋대로이며 자기애를 벗어나지 못한 단계다. 진정한 사랑은 세월이 흐르면서 구축되어간다. 우리가 언제나 같은 판타지를 꿈꾼듯 반복적으로 동일한 모습을 취하는게 아니란 말이다. 사랑은 꺼지지 않는다. 사랑은 발전한다. 사랑은 패러다임을 바꾼다. 바로 그 때문에 우리는 사랑을 제대로 평가하지도 못하면서 사랑 따위는 없다느니 하는 신소리를 하는 것이다.
처음에 사랑은 열정으로 활활 타오른다. 그때의 사랑은 마치 아기가 그렇듯이 정신분열증과 조울증의 징후를 농후하게 드러낸다. 그리고 시간이 가면서 아기가 자라듯 사랑도 자란다. 사랑은 성숙해지고, 단단해지고, 사려 깊어지며, 자리를 잡는다. 사랑은 그렇게 자라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걸 모른다. 우리는 그저 떠들 뿐이다. 사랑은 끝났어, 라고. -145쪽

"있잖아, 니콜라. 난 사랑은 눈 같은 거라는 생각이 들어. 내렸다가 금방 녹아서 없어지는 눈."
"아냐...... 그렇지 않아, 바르바라. 사랑은 없어지는 게 아니야. 세월이 흐르는 것 뿐이지......" -169쪽

소크라테스, 칸트, 사르트르 같은 철학자들은 아기를 낳지 않았기 때문에 오류를 범할 수 밖에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따. 그들은 모두 아이가 없었기 때문에 인생을, 타자성을, 사랑을, 증오를, 광기를, 현실의 상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고 얼마나 자주, 인간의 첫째가는 감정이 동정심이 되고 마는지를 그들은 몰랐따. 루소만큼은 그 점을 잘 알고 있었다. 레아가 울면서 보챌 때, 그 애가 내게서 멀어져 가고, 내가 그 애에게서 멀어져 갈 때 나는 레아에게 동정심을 품었다. 동정심은 아름답다. 아니, 동정심이 인류의 첫번째 단계는 아니다. 본능적이기는 해도 그것은 가장 숭고한 감정이다. 발걸음을 멈추고, 바라보고, 타인이 느끼는 것을 함께 느끼는 감정이다. 타인의 기대를, 희망을, 고통을 느끼는 감정이다. 어떤 성스러운 이끌림에 따라 우리는 타인에게 몸을 숙이고 손길을 건네며 자신의 품으로 맞아들인다. 그것은 본래적이면서 심오하다. 그게 바로 인간적인 것이다. 어머니의 젖과 가슴, 그것이 바로 그러한 관대함이다. 동정심, 그것은 곧 피붙이에 대한 극진한 마음이다. -226-227쪽

미래가 어떻게 될지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다. 서로 사랑할 수도 없고, 사랑을 포기한 채 살 수도 없다. 우리가 처한 상황이 딱 그랬다. 질문들을 던져도 결코 해답을 찾지 못한다. 가능한 일인지 어떤지도 알지 못한 채 궁지에서 벗어나보겠다고 불가능에 도전하고 또 도전한다. 행복을 추구하면서 행복을 포기해 버리고, 불행의 밑바닥에서 허우적대다가 정말 바닥까지 떨어지고 나서야 다시 솟아올라 처음 순간의 비약에 대한 감각을 되찾는다.
아이를 갖고 그 아이의 행복을 위해 자신의 행복을 희생한다. 자기 인생을 포기하고 싶지 않은 데도 배턴을 넘겨주기 위해 스스로 희생한다. 그래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업이 따르는 것이다. 이 모든 방정식을 풀거나 풀지 않거나 둘 중 하나다. 아이를 낳고, 번성하며, 과거의 실수를 되풀이하고, 부모에게 꽉 매여 살고, 좀 자유로워지는가 싶으면 이제 자식들에게 더 꽉 매여 살아간다. 행복, 그래 행복이다. 하지만 한 순간이다...... 그게 인생이다. 그리고 그것이 인생에서 기대할 수 있는 전부다...... -237-23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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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6-09-18 08: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보셨군요. 남자가 보는 '행복한 사건'은 어떨지 여성과는 좀 다른 눈일 것 같아요. 리뷰도 기대해도 되죠?

마늘빵 2006-09-18 1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거 정말 좋았어요. 리뷰를 얼른 쓰고픈데 시간이... ㅠ-ㅠ
지금 밀려있는 리뷰만 영화 한 이십편에 책은 네 권.

비로그인 2006-09-18 1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 일간지에서 이 책을 추천한 이후에 저도 참 궁금했습니다. 밑줄긋기를 슬쩍 훔쳐보니, 읽어도 후회스럽지 않을 것 같군요.^^

2006-09-20 23: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지상의 양식
앙드레 지드 지음, 김봉래 옮김 / 문지사 / 2005년 3월
구판절판


<욕망은 채워지는 법이 없다 >

욕망에는 이득이 있고, 그 욕망의 만족에도 이득이 있는 법이다. 왜냐하면 욕망에는 증가되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진실로 그대에게 말하거니와, 나타나엘이여! 욕망의 대상을 가진다는 것은 언제나 허망한 소유보다도 나를 풍부하게 하여 주었노라고 고백한다.
'욕망은 채워지는 법이 없다. 목표를 달성할 수 없기 때문이다.'
-13쪽

'걷고 싶은 욕망, 거기엔 길이 열리고, 쉬고 싶은 욕망, 거기엔 응달이 있다' -32쪽

나타나엘이여! 그 모든 책을 언제 우리들은 불살라 버리게 될 것인가!
바닷가의 모래가 부드럽다는 사실을 책에서 읽은 것만으로 만족할 수 없다. 나의 맨발이 그것을 느끼고 싶은 것이다. 먼저 감각이 앞서지 않은 지식은 일체 나에게는 소용이 없다. -34쪽

너는 과거에 살고 미래에 살며 순식간에 찍혀지는 사진과도 같은 죽음에 이른다. -73쪽

떠나자! 그리하여 아무 곳에서나 발걸음을 멈추자. 거기가 바로 내 고향이 아닌가. -85쪽

"아무리 행복하다 하더라도 발전이 없는 상태는 무의미합니다. 발전이 없는 기쁨은 경멸의 대상일 뿐입니다." (자신의 저서 <좁은문>에서 인용)-188쪽

죽음은 자신의 일생을 충족시키지 못한 사람에게는 견디기 어려운 고통이다. 그러한 사람에 대해 종교는 지나치게 즐거운 모습으로 말한다.
"걱정하지 말라. 참된 생활은 저승에서 시작되는 것이니까. 그리고 그대는 보상을 받으리라."
그러나 인간이 행복을 추구하며 살아야 하는 곳은 바로 이 세상이다. -198쪽

삶과 꿈을 연결시키지 말고 현실 속에서 영혼의 시를 찾아내도록 하라. 현실 속에 시가 부재 중이라면 그대의 삶 속에서 시를 가꾸도록 하라. -20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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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 살림지식총서 237
차병직 지음 / 살림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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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간 읽어온 살림지식총서의 다른 책들이 대체로 나에게 만족감을 안겨준데 비해 이 책은 좀 아쉬웠다. 책의 내용이 부실하다기보다는 내가 원하는 방향의 인권에 대한 성찰이 아니었다고나 할까. 아마도 미리 이 책의 목차를 봤었더라면 지금과 같은 약간의 실망은 느껴지지 않았을텐데.  

  어떤 하나의 주제를 바라보는 관점은 여럿이 있을 수 있다. 사형제에 관해서도 헌법의 관점이 있고, 실정법의 관점이 있으며, 철학적 관점이 있고, 정치적 관점 등이 있을 수 있다. 이는 사형제뿐 아니라 인권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살림지식총서 <인권>은 법적인 관점에서 인권을 바라본 경우이다. 목차를 보면 인권에 관한 생각, 인권의 역사, 인권의 내용, 국제인권법, 인권의 현실과 미래 로 구성되어 있다. 딱 보면 법적인 관점에서 바라본 인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데 내가 원했던 건 좀더 인문학적인 관점에서의 인권이었다. 인권위원회가 어쩌구, 역사가 어쩌구, 제도며 학회며 이런 것들보다는 인권에 대한 좀더 깊이있는 성찰을 원했던 것이다.

  저자 차병직은 이 바닥에서 꽤 오래묵은 인물이다. 사시합격후 강사활동을 하면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의 출판홍보위원장과 참여연대 현동사무처장을 거쳐 인권운동연구소 운영위원을 지내왔고, 현재 참여연대, 상임집행위원장, 법무법인 한결 구성원 변호사, 이화여자대학교 강사로 활동중이라 한다. 인권 문제에 대해 오래 고민해왔고, 그 바닥에서 활동한 인물인데 그의 꿈은 장차 미셸린 이샤이의 <세계 인권 사상사>보다 더 나은 책을 쓰는 것이라 한다. 이 책을 보진 않았지만 저자의 자신의 꿈이라고 이야기할 정도라면 확실히 검증된 책이고, 걸작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

  인권을 주제로 하여 역사적인 사실과 관련 내용을 압축적으로 종합한 책으로 평가할 수 있다. 이미 고등학교 사회, 도덕, 세계사 교과서에서 한번씩 본 내용들도 있지만 좀더 내용이 풍부하다고나 할까. 내가 원한 방향에서 인권 문제를 바라본 책은 아니었지만 한번 쭉 훑어볼만한 참고할만한 책이다.

  살림지식총서의 이 얇은 시리즈들의 매력은 거기에 있다. 관련 주제들에 대해 이 책 한권이면 꽤나 깊이있는 상식의 수준에 도달할 수 있는, 체계적으로 깔끔하게 정리된 노트라고나 할까. 그래서 내가 살림지식총서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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