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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일, 카리브 해에 누워 데낄라를 마시다
이우일 지음 / 예담 / 2006년 7월
평점 :
이쯤되면 삽화계에 있어서 하나의 권력이라 칭할 수도 있을만 하다. 홍익대 시각디자인학과를 졸업한 69년생의 이 남자는 아직 젊은 나이에 많은 저서를 가지고 있다. 그 수많은 책들을 다 직접 글까지 쓴 건 아니지만 글과 그림을 함께 한 순수한 저서도 꽤 있고, 본업인 그림만 그려 본 책에 삽입한 '순수하지 않은' 저서로 치면 셀 수도 없을 지경이다. 일단 그가 그림을 그린 수많은 노빈손 시리즈부터 시작해 만화가들이 모여 인권문제를 그린 <십시일반>, 또 한창 잘 나가는 소설가 김영하의 <오빠가 돌아왔다>, 또 글과 그림을 함께 한 순수한 저서 <신혼여행일기> 시리즈, 여행담 <이우일, 카리브해에 누워 데낄라를 마시다>, <김영하 이우일의 영화이야기>, 철학 대중서 <도덕을 위한 철학 통조림>, <도날드 닭>, <호메로스가 간다>, <삼인삼색 미학오딧세이> 등등 일일히 다 제목을 대기 힘들다.
정말 다양한 분야에 걸쳐서 다양한 작업을 하는 만화가다. 순수한 연재만화에서, 아동용 서적, 여행기, 인권만화, 철학대중서에 이르기까지 여기저기 분야를 넘나든다. 몇몇 저서들의 제목에 그의 이름 '이우일'이 들어간 것은 그가 그만큼 이름만 대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유명해졌음을 증명하고 있다. 대개 책 제목에 이름을 집어넣는 경우는 책의 내용과 상태를 점검하지 않더라도 이름만으로도 충분히 상업적인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판단된 경우이기 때문.
<이우일, 카리브 해에 누워 데낄라를 마시다>는 그가 다니던 직장을 때려치고 아내와 딸과 함께 멕시코의 메시코시티와 칸쿤, 쿠바의 아바나를 여행한 일종의 여행일기다. 요즘 여행일기가 붐이다. 너도 나도 여행을 다녀와 여행기를 쓰고 책으로 낸다. 여행기가 많이 나오는 이유는 누가 써도 재밌게만 쓰면 되기 때문. 여행기를 쓰는데 있어서는 특별한 전공지식이나 대단한 사유와 성찰이 필요하지 않다. 그저 자신이 보고 즐긴 것을 재밌게, 독자가 이 곳에 가보고 싶게끔 쓰면 되는 것이다. 그러니 여행기에는 전문가란 없다. 또 그렇기에 각계의 다양한 사람들이 여행기를 쓸 수 있고, 각 분야에 종사하는 그들 나름의 독특한 냄새가 짙게 풍겨나오는 것이다.
이우일의 여행기 또한 그렇다. 본업이 만화가인 점을 특징으로 삼아 책을 구성했다. 실제로 보고 만지고 체험한 것들을 자신이 직접 찍은 사진과 함께 중간중간 귀엽고 깜찍한 만화와 풍선글귀로 읽는 재미를 더하고 있다. 아내와 딸 과의 황당하지만 재미난 대화도 하나의 에피소드 삼아 집어넣고, 그곳에서 보고 느낀 것 뿐 아니라 여행을 하며 경험한 크고 작은 실수까지도 넣어줌으로써 이야기를 풍성하게 만들어준다. 그의 책은 만화와 사진이 많아 그 누가 읽어도 쉽고 재밌게 읽을 수 있는 것이 또한 장점이라 할 수 있다. 다 큰 어른이 읽어도, 청소년이 읽어도, 또 그의 딸 나이의 조그마한 아이가 읽어도 재밌게 볼 수 있는 책이라는 점에서 모든 연령대의 독자층에 닿아있다.
이 책은 자기자신에게는 일기가 될 것이요, 함께 여행한 아내와 딸에게는 오래도록 남을 지난날의 추억이 될 것이고, 독자에게는 여행에 앞서 살펴볼만한 괜찮은 책이 될 것이다. 자신의 본업을 살려 여행도 하고 추억거리도 만들고 돈도 버는, 일석삼조의 제대로 된 작업의 결과물이다. 이우일이 그림을 그린 다른 책들도 모두 보고싶어졌으니 이를 어쩌랴. 특히나 그의 303일간의 신혼여행기가 보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