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르니에 선집 1
장 그르니에 지음, 김화영 옮김 / 민음사 / 1993년 7월
구판절판


그 무엇인가가, 그 누군가가 나의 속에서 어렴풋하게나마 꿈틀거리면서 말을 하고 싶어하고 있었다. 이 새로운 탄생은 어떤 단순한 독서, 어떤 짤막한 대화 한마디만으로도 한 젊은이에게서는 촉발시킬 수 있는 것이다. 펼쳐놓은 책에서 한 개의 문장이 유난히 두드러져보이고 한 개의 어휘가 아직도 방 안으로 울리고 있다. 문득 적절한 말, 정확한 지적을 에워싸고 모순이 풀려 질서를 찾게 되고 무질서가 멈춰버린다. 그와 동시에 벌써 그 완벽한 언어에 대답이라도 하려는 듯 수줍고 더욱 어색한 하나의 노래가 존재의 어둠 속에서 날개를 푸득거린다.(알베르 카뮈 '섬에 부쳐서' 中)-10-11쪽

우리가 어떤 존재들을 사랑하게 될 때면 그에 대해서 하고 싶은말이 너무 많아지게 마련이어서, 그런 것은 사실 우리들 자신에게 밖에는 별 흥밋거리가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적절한 순간에 늘 상기하지 않으면 안 된다. 오직 보편적인 생각들만이 사람들에게 호소력을 가진다. 왜냐하면 그런 생각들이라랴 이른바 그들의 <지성>에 호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장 그르니에, '고양이 물루' 中)-57쪽

사람들은 여행이란 왜 하는 것이냐고 묻는다.
언제나 충만한 힘을 갖고 싶으나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 여행이란 아마도 일상적 생활 속에서 졸고 있는 감정을 일깨우는 데 필요한 활력소일 것이다. 이런 경우, 사람들은 한 달 동안에, 일 년 동안에 몇 가지의 희귀한 감각들을 체험해 보기 위하여 여행을 한다. 우리들 마음 속의 저 내면적인 노래를 충동질하는 그런 감각들 말이다. 그 감각이 없이는 우리가 느끼는 그 어느 것도 가치를 지니지 못한다.
(장 그르니에, '행운의 섬들' 中) -95쪽

그 장소, 그 순간에 우리가 바라본 어떤 고장의 풍경은, 마치 위대한 음악가가 평범함 악기를 탄주하여 그 악기의 위력을 자기 자신에게 문자 그대로 <계시하여> 보이듯이, 우리들 영혼을 뒤흔들어놓는다. 이 엉뚱한 인식이야말로 모든 인식 중에서도 가장 참된 것이다. 즉 내가 나 자신임을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즉 잊었던 친구를 만나서 깜짝 놀라듯이 어떤 낯선 도시를 앞에 두고 깜짝 놀랄 때 우리가 바라보게 되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우리들 자신의 진정한 모습이다.
(장 그르니에, '행운의 섬들' 中)-97-98쪽

우리가 삶에 그토록이나 집착하는 것은 우리의 몸이 마련하곤 하는 그 예기치 않은 놀라움 때문인지도 모른다. 병이 낫지 않을거라고 절망하고 있었는데 우리는 문득 자리에서 일어서게 된다. 우리가 잔뜩 믿고 있었는데 돌연 그 믿음이 무너진다. 끝장은 항상 똑같은 것이면서도 거기에 이르는 우여곡절은 러시아 산맥의 비탈들만큼이나 다양하다.
(장 그르니에, '부활의 섬' 中)-1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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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06-08-22 1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책이죠^^

마늘빵 2006-08-22 14: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사랑하기
장 필립 뚜생 지음, 이재룡 옮김 / 현대문학 / 2006년 3월
평점 :
절판


 

 흰색바탕에 빠알간 색감으로 확 눈에 띄는 표지에 누구나 끌릴 법한 '사랑하기'라는 제목을 지니고 있는 이 책, 내가 뭘 읽은건가 싶을 정도의 멍함만 남겨준 채 마지막 장을 덮는다. 번역서 169페이지에 달하는 그리 길지 않은 소설 한편이 읽는 내내 너무나 불편했다. 어려운 소설은 아니다. 쉽게 책장을 넘길 수 있으나 뭘 읽는지는 모른다. 내용이 없다. 하나의 간단한 줄거리를 지닌 채 묘사와 묘사로 이어지는 글은 도통 나의 시신경을 자극하지 않는다. 머리로라도 읽어보려하지만 이도 쉽지 않다. 마음으로 읽는건 더더욱 어렵다. 번역의 잘못일까, 아니면 장 필립 뚜쟁의 소설이 나의 정서를 움직이지 못하는 것일까. 아마도 후자는 아닌 듯 하다. 성급한 일반화를 오류를 범함을 인정하고서 말하자면, 나 아닌 이미 이 책을 읽은 다른 누군가도 책을 읽고 난 뒤의 느낌의 나와 비슷한 듯 하니 말이다.

  사랑에 관한 소설이다. 그렇다. 하지만 사랑에 대한 어떤 느낌도 전달되지 않는다. <욕조><무슈><사진기><망설임> 등등의 책들이 큰 상을 받았고, 대중들에게 인기를 누리고 있다고 하지만 - 일본에서는 길거리에 지나가는 그의 얼굴을 보고 사인을 부탁하는 사례도 있었다고 - 그에 대한 이러한 칭찬과 찬사는 나의 느낌과 너무나 괴리가 크다.

  원제 Faire l'amour (2002) 는 본래 어떤 의미를 지녔는지는 잘 모르겠다. 역자에 의하면 노골적인 성적인 단어라고 하는데, 불어(맞나?)를 모르는 나로서는 그저 혹시 '섹스' '애무' 뭐 이런게 아닐까 추측만 해볼뿐. 궁금증만 증폭된다. 이 글을 보는 누군가가 원뜻을 알면 좀 알려주시길. 궁금해. 원뜻을 한글로 번역시 낯뜨겁기 때문에 '사랑하기'라고 되돌려 번역했다고 하는데 아이 궁금해.

  제목만 보고 이 책을 선택하시려는 분께는 별로 추천해주고 싶지 않은 책이다. 다른 좋은 사랑에 대한 소설들이 많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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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기
장 필립 뚜생 지음, 이재룡 옮김 / 현대문학 / 2006년 3월
절판


헤어지게 위해 함께 여행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었을까? 어떤 면에서는 그랬다. 가까이 붙어 있을수록 우리 사이가 파열된다면 멀리 떨어져 있으면 가까워질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감정은 너무 연약해지고 방향 감각을 상실한 나머지, 우리를 다시 가깝게 해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오로지 상대방의 부재 밖에 없었고 곁에 붙어 있으면 진행 중인 이별을 더욱 가속시키고 결국 결별을 확인하는 짓 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22-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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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P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북스토리 / 1999년 11월
구판절판


하나가 울면, 하나가 위로하고, 하나가 마음 약한 소리를 토해내면, 하나가 기운을 북돋우고, 하나가 어리광을 피우면, 하나가 부드럽게 껴안아 주고, 하나가 화를 내면, 하나가 잘못을 고치곤 했다. -16쪽

묘한 기분이다.
사랑을 하고, 헤어지고, 사별도 하고, 그렇게 나이를 먹어 가노라면, 눈 앞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서로 엇비슷하게 여겨진다. 좋고 나쁘고 하는 우열을 가릴 수가 없다. 다만 나쁜 기억이 늘어나는게 겁날 뿐이다. 이대로 시간이 흐르지 않으면 좋으련만, 여름이 끝나지 않으면 좋으련만, 그런 생각만 한다. 마음이 약해진다. -109 쪽

"타인의 문장을 마치 자신의 생각인 양 더듬어 가는 셈이잖아. 하루에 몇 시간이나, 자기 자신이 집필하듯이. 그러면 어느 틈엔가 타인의 사고 회로에 동조하게 되거든. 참 묘한 일이지. 위화감이 없는 데까지 파고들어 가기도 하고. 어디까지나 진짜 자기의 생각인지 알 수 없게 되기도 하고, 평소 생활에까지 타인의 사고가 뒤섞여 들어오고. 영향력이 강한 사람의 책을 번역하다보면, 그냥 독서를 하는 것보다 몇 배나 영향을 받게 돼." -142쪽

해질녘이었다. 저마다의 집에 파랑이 밀려들어와 전등을 켜게 하는 시각. 요즘은 알코올 중독자처럼, 의식이 분명해졌나 싶으면 언제나 해질녘이었다. 저녁 어둠 속으로 떠오르는 거리의 불빛, 언덕길의 주택가, 맥주를 한잔 마시고 비로소 '아아, 오늘 하루, 지금까지의 인생에 참가했네' 라고 문득 깨닫듯 아아, 오늘도 벌써 해가 지는 구나, 하고 생각한다. -17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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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미남과 여전사 1 - 21세기 남과 여
이명옥 지음 / 노마드북스 / 2006년 7월
평점 :
품절


 

  남성은 여성화되어가고, 여성은 남성화 되어가는 시대적 조류에 맞게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주제를 가지고 저절한 동기와 적절한 태도로', 여성화된 남성인 꽃미남과 남성화된 여성은 여전사를 다룬 책이다. 전형적인 미술전문서적도 아니고, 그렇다고 현 세태를 딱 꼬집어 평가를 내리고자 하는 칼럼같은 책도 아닌, 그림을 소재로 하여 나름의 해석과 생각을 담아 서술한 딱 그 중간에 위치한 책이란 생각이다.

  최근 분야를 막론하고 이와 같은 작업을 하는 이들이 꽤 많아졌다. 전문철학서적은 딱딱하고 읽기 어렵고 팔리지도 않으니 더 이상 생산되지 않는 악순환을 거듭하고 있고, 그러다보니 좀더 읽기기 쉽고 재밌고 잘 팔리는 책을 만들고자 철학과 영화, 철학과 문학, 철학과 미술 등의 다양한 짬뽕식 글쓰기를 시도하는 것이다. <철학, 영화를 캐스팅하다> <매트릭스로 철학하기> <영화관 옆 철학카페> 등의 책들이 그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꽃미남과 여전사>는 그림과 그리스 신화, 철학, 미학, 역사 등등의 지식을 가지고 자잘하게 재밌게 풀어내려한 흔적이 엿보인다. 그러나 애초 이 책을 접하려 했을 때 이 책으로부터 내가 취하고자 했던 그것들은 찾아 볼 수 없었다. 일간 신문이나 주간지 등의 잡지에 연재되어 실리면 주목을 끌 수 있는 글이겠지만 하나의 책으로서의 완성도는 많이 떨어진다는 느낌이다. 그저 잡글을 모아놓은 것에 불과하다고나 할까.

  이 책은 그저 '꽃미남과 여전사'라는 카테고리를 가지고 묶어낸 그림과 그에 대한 해석 그 이상의 무엇을 선사해주지는 못한다. 그저 그 뿐이다. 뭔가 시대적 흐름에 대한 깊이 있는 고찰과 내가 생각지 못했던 다양한 해석을 접하고자 했지만 그건 존재하지 않는다. 기존에 존재하던 하나의 장르와 또하나의 장르를 통합시키고 이로부터 새로운 무엇을 생성하려는 시도는 잘되면 둘 사이에서 정반합을 이루는 탁월한 작품이 탄생하지만, 잘못하면 둘  다 잃어버리기 쉽다. 이 책은 후자에 속한다. 어쩌면 저자는 둘 사이에서 무엇인가를 끌어내려하기보다는 그저 둘을 연결해주는 것으로 만족하려 했는지도 모른다. 결국 이 책은 이도저도 아닌 것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시도는 좋았으나 내용은 별로. 
 
  어린 시절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나는 나를 아는 주변사람들로부터 여성스럽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인터넷 상에서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정체를 드러내지 않은 순간까지 다수의 사람들은 나를 여성으로 착각한다. 이제는 익숙해졌지만 처음에는 왜 그렇게 생각했을까, 하고 나도 신기해 했던 적이 있더랬다. 그리고 난 그들의 말마따나 나의 내면에 여성스러움이 보통의 남성들에 비해 더 많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다. 그것은 나쁘지 않다. 나는 대개의 남성들의 전유물인 스포츠나 레포츠에, PC 게임에, 총이나, 차에, 전자제품류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나의 관심은 좀더 감성적인 곳에 있다. 영화, 철학, 문학, 책, 음악, 악기, 만들기 등등의 것들에. 내가 일상을 통해 향유하는 것들이 후자의 것이 주가 되다보니 나를 기존에 일지 못했던 사람들은 나를 여성으로 착각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알고 있다. 남성적인 것과 여성적인 것의 이분법의 잣대를 가지고 있고, "남자답다" "여자답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닌다. 내가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며, 넌 남자니까 뭐뭐해, 넌 여자니까 이러면 안돼 식의 발언들에 매우 강한 거부감을 지니고 있다. 남자가 해야할 것과 여자가 해야 할 것, 남자가 해서는 안될 일과 여자가 해서는 안될 일은 없다. 그건 후천적으로 우리가 인위적으로 규정지어놓은 문화의 산물일 뿐이다. 아직도 특정 부분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다. 남자는 원래 공간감각능력이 더 뛰어나고 수학을 잘하며 운동을 좋아한다, 여자는 언어능력이 탁월하며 읽고 쓰는 일에 재능이 있다, 등등. 그러나 그것이 사실로서 확인된다 하더라도 그것이 '남성적인 것과 여성적인 것'을 규정지을 순 없다. 다수의 남자들이 이쪽에, 다수의 여자들이 저쪽에 있을 뿐이다. 비록 사실이라 하더라도.

   나는 남자답다는 말보다 차라리 여자답다는 말이 더 좋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커피숍에 앉아 수다떠는 일도 좋고, 맛집을 찾아다니며 음식맛을 보는 것도 좋고, 분위기 좋은 술집과 분위기 좋은 카페를 찾아다니는 것도 좋다. 한때 줄 사람도 없으면서 종이학 1000마리를 매일같이 접던 때도 있었고, 대개 종이학 1000마리는 여자들이 좋아하는 남자친구에게 주는 선물로 인식되던 그때 뭐 이런 짓을 하냐는 핀잔도 받아야 했다. 남자친구들과 어울려 당구를 치고 곤드레만드레 할 때까지 술을 마시고 피씨방에서 스타크래프트를 하며, 또 농구 한 판 뛰며 땀 흘리는 그런 것에 익숙치도 않고 별 관심도 없으니 난 남자들보다 여자들과 더 잘 어울렸고 그래서 주변에 아는 여자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그것이 선천성에서 비롯되었는지 아니면 후천적인 관심과 노력의 결과인지 모르지만, 나는 내 마음이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삶을 살아왔고, 그것이 자연스럽다 여겼으며, 고로 이 시대의 꽃미남과 여전사의 트랜드는 나에겐 반갑다. 이 책에선 오늘날의 '꽃미남과 여전사'의 트랜드가 단지 시대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고대 그리스에서부터 시간을 차곡차곡 밟아오며 증명하고 있지만 그 기원이 그리스건 어디건 남자가 여성의 면모를 지닌 것도, 여자가 남성의 면모를 지닌 것도 이상할 것은 전혀 없으며, 자연스러운 내면의 흐름에 맡기고 살아가면 그 뿐이라는 생각이다.

  분명 지금의 트랜드가 '꽃미남과 여전사'라고 하지만 아직도 전형적인 남성성의 상징을 가지고 있는 마초같은 남성들도 수두룩하며, 전형적인 전통적인 현모양처의 조신하고 얌전하고 그 자체로서 참한 여성들도 수두룩 한 것이 현실이다. 시대마다 흐름과 유행이라는 것이 있지만 여기에 흔들리지 않고 자연에 맡기고 사는 것이 가장 나 다운 삶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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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적오리 2006-08-13 1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감동감.. 나 답게 사는게 젤 좋다는데 한 표..
전 여자지만 혼자 식당에서 밥도 잘 먹고 전등도 잘 갈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