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일러 경고

  "사랑받지못한" 으로 해석하면 적절할까.  처음엔 취향의 문제를 다룬 영화인줄 알았다. 나의 사랑하는 방식과 당신의 사랑하는 방식은 다르다. 그런데 난 당신이 나에게 강요하는 그 방식을 받아들일 수 없다. 그래서 난 당신을 거부하겠다. 이런 서술 과정을 따르는 영화인줄 알았지만, 영화는 그것만 말하려고 한 게 아니었다. 영화의 초반을 보고 영화를 해석했던 나의 이런 생각은 뒤로 가며 여지없이 깨진다. 처음의 나의 해석에 따르면 영화 속 주인공 미츠코는 나만의 방식이 있고 당신의 방식은 나에겐 억압으로 느껴진다. 받아들이기 힘들다. 나에게 강요하지 말라, 라는 식의 메세지가 되므로 문제될 것이 없지만, 후반부로 가며 문제가 되는 것은 미츠코에게 사랑의 방식의 강요한 에이지가 아니라, 에이지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미츠코이다. 미츠코와 에이지의 관계의 양상은 고스란히 히로시와 미츠코의 관계로 전이된다.



* 이 옷은 나에겐 너무나 어색해. 비싸고 좋은 옷이란 걸 알지만 나에겐 맞지 않는 것 같아.

  장면 하나.
  - 현재의 삶에 만족을 느끼고 능력이 되지만 승진도 싫고 돈도 있지만 더 넓은 곳에서 더 풍족하게 사는 것을 거부하는 미츠코. 이런 미츠코에게 어느날 사랑이 다가왔다. 이혼 경력이 있지만 유능하고 돈 많은 벤처 기업가 에이지가 시청 말단 공무원인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두 사람은 이내 사랑에 빠지고, 잠자리를 함께 한다. 지금껏 살아왔던 방식이 달랐던 두 사람, 에이지는 자신이 누리고 있는 풍족한 삶으로 미츠코를 초대하지만 미츠코는 완강히 거부한다. 삶이 방식이 다르다. 그것이 이유다. 에이지는 자신이 잘못한게 있기 때문에 미츠코가 이러는 것이라 생각하지만 이내 깨닫는다. 그것이 미츠코의 진짜 이유란 걸. 그는 이런 미츠코를 이해할 수 없다. 도저히.

* "왜 도대체 뭐가 문젠데." "난 이런 생활이 싫어 싫다고"

  장면 둘. 
  - 에이지를 보내고 미츠코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편의점에서 동전을 빌렸던 아랫집 청년. 그는 택배회사에서 일한다. 비록 몸은 고되지만 행복해보인다. 또 그가 사는 집은 미츠코의 집과 다를 바 없다. 미츠코는 자신과 비슷한 생활을 하는 이런 히로시가 자신에게 상류생활을 강요하는 에이지보다 훨씬 좋다. 두 사람의 첫날 밤, "나 너무 행복해" 라고 말하던 미츠코의 말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미츠코는 행복했을지 모르지만 히로시는 행복하지 않았다. 히로시는 에이지를 버리고 자신에게 온 미츠코가 부담스럽다. 미츠코는 지금에 만족하지만 나는 에이지와 같은 생활을 누리고 싶다. 나도 이런 지긋지긋한 생활에서 벗어나 차고 끌고 다니고 비싼 양복도 입고, 비싼 식당에서 밥먹고, 여자에게 비싼 선물도 하며 그렇게 지내고 싶다.

 

  어느 누구도 행복하지 않다. 사랑은 쉽지 않다. 미츠코, 에이지, 히로시 세 사람은 각기 모두 다른 생활방식과 다른 사랑의 방식을 가지고 있다. 솔직하지만 내가 소중한 미츠코, 그녀는 결국 자신에게 다가온 에이지로부터도, 자신이 다가간 히로시로부터도 사랑을 받지 못했다. "사랑받지 못한"은 미츠코를 향한다. 너무나 자아가 강해 타인이 그녀의 내면으로 들어올 수 없는 커다란 벽을 만들어놓은 그녀는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누군가로부터 사랑을 받을 수 없는 존재다. 사랑하고 사랑받기 위한 조건 하나, 우선 마음을 열 것. 상대방이 내 안으로 들어올 수 있게 벽을 허물 것, 천천히 그를 받아들일 것. 사랑은 결국 관계맺음으로부터 시작한다. 한 사람과 한 사람이 만나 이루어지는 관계에 있어서의 어려움은 사랑이라는 다음 단계를 보장하지 않는다. 사랑하기 위해서, 사랑받기 위해서 먼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버릴 것.

  영화 속의 미츠코는 현실의 나였다. 자아가 강해 나만의 방에서 나오지 않는 현실의 나였다. 나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나만 소중하고 상대는 그렇지 않다고 여기는. 겉으로는 사랑한다 사랑한다 말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사실은 상대보다 나를 더 사랑했던, 현실의 내 모습이다.  어느 순간 다가온 누군가의 몸짓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관계맺음에서 혼란을 겪는 내 모습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더욱 깊게 다가왔다.

  영화는 수없이 많은 대사를 쏟아낸 것치고는 그것이 말하려고 한 메세지가 너무나 약했다. 영화를 통해 좀더 많고 다양한 사랑의 문제들에 대해 생각하고 싶었던 나로서는 그 많은 대사들이 조금은 허무하고 무의미하게 들리기도 했다. 하지만 다시 보고픈 영화이기도 하다. 나의 내면을 건드려놓은 영화이기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보물 있어! 없어! 있다니깐! 없어. 내가 20년을 찾아봤는데 없어!   
  보물이 있을가 없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있다. 있으니깐 영화가 되는거지.

  <다빈치코드>와 같은 실제하는 이야기를 바탕으로 허구를 만들어낸 '팩션' 영화들은 정말 속아넘어가기 딱이다. 지금도 그것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진실이고 거짓인지 감이 안온다. 어쩌면 진실과 거짓을 나누는 기준 또한 정해져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주장에 따라 다른지도 모른다. 그러니 논쟁거리가 되겠지.



* 오 조금만 더 가까이 가면 눈맞겠는걸? 뭘 그렇게 열심히 들여다보세요?



* 아니 이런 밀실이. 이안 일당에게 잡혀 보물찾기를 돕고 있는 벤자민 일당. 놀라운 단서의 연속.

  <내셔널 트래져>에서는 미국의 초기 대통령들이 숨겼을 것으로 추정되는 보물찾기 놀이가 한창이다. 있을까 없을까. 20년 찾아헤매다 세월 다 보낸 아버지는 없다고 하고, 그의 아들 벤자민은 미국 독립선언문 뒤의 보이지 않는 보물지도를 위해 박물관을 털기까지 한다. 오 <미션 임파서블>의 탐 크루즈도 울고갈 놀라운 기술. 탐은 어렵게 터는데 니콜라스 게이지는 쉽게 턴다. 항상 뭔가 약먹은 듯 보이는 니콜라스 케이지. 어리숙해보이지만 솜씨 좋다. 그러니깐 얘도 탐처럼 한참 연하를 꼬셨잖아. -_- 부럽니? 부럽니? 아니 머 그냥 그렇다고. 니콜라스는 이번에도 역시 영화 속에서 젊고 이쁜 박사 하나를 꼬신다. 꼬셨다기 보다 자연스럽게 넘어왔다고 해야하나? 그것이 진정한 꼬심이 기술. 
 
   여튼간 보물을 수호한다고 주장하는 벤자민 일당과 보물을 빼앗으려는 이안 일당의 싸움. 그리고 중간에 말려든 이쁜 박사 하나. 쫓고 쫓기는 추격전과 보물지도를 따라 단서를 물고 물고 들어간 지하 5층 규모의 밀실은 마치 <인디아나존스>를 보는 듯 하다. 어쩌면 그렇게도 단서를 쉽게 찾아내고 다 끝났을 것 같은 상황에서도 또 쉽게 암호를 해독할까. 보물찾기 놀이를 위한 조건. 첫번째, 머리가 똑똑할 것. 웬만큼 똑똑한걸로는 안된다. 둘째, 수영과 간단한 격투기에도 능해야한다. 셋째, 뽀뽀도 잘해야 한다. -_- 그래야 인질(?)이 안도망가지.

  이런 모험영화는 그냥 쇼파에 누워 즐겨줘야한다. 아 재밌구나. 다음에는 또 어떤 단서와 암호가 나올까. 우리를 쫓는 일당을 무슨 속임수로 또 쫓아내버릴까. 이런 재미. 타임킬링용으로 매우 적합. 니콜라스 케이지의 액션(?) 연기는 아직 볼만하다. (그는 실제로 여기저기 막 뛰는 영화에 자주 출연하지만 천하무적이어서 악당을 단번에 쓰러뜨리든가 하는 연기는 하지 않는다. 평범해보이지만 위기관리 능력이 뛰어난 역할을 자주 도맡는다고나 할까. 실제 액션을 한다면 오히려 맞는 연기가 어울릴듯)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 스포일러 경고

  <창작 뮤지컬 루나틱> 

  영화는 많이 본다 생각하지만, 연극, 뮤지컬, 오페라 이런건 정말이지 잘 안가게 된다. 왜냐면. 영화는 혼자가도 이상하지 않지만 연극이나 뮤지컬은 혼자보면 이상하니까. (뭐가 이상해. 편견을 버려. 아냐 그래도 이상해. 넘 쓸쓸해 보이잖아.)

  아마도 대학 2학년 <고도를 기다리며>를 본 이후 연극, 뮤지컬 통틀어 처음이지 않을까 싶다. 아하. 작년에 하나 봤구나. 이걸 깜빡했군. 그래도 20살때부터 지금까지 해봐야 세편이 고작. 너무하다 싶다. 나도 이런거 보는거 좋아하는데. 같이 갈 이가 없으니 그럴 밖에. 또 영화에 비해 가격도 좀 비싸기도 하고. 물론 그냥 영상 틀어놓는 영화와 달리 배우들이 직접 나서서 열연하는 연극이나 뮤지컬이 훨씬 더 값을 쳐줘야 한다는데는 동의하지만.

  매우 만족스런 공연이었다. 공연 시작과 동시에 한쪽에선 공연 배경 음악이 라이브로 보여지고, 한쪽에선 배우들이 환자복을 입고 등장, 관객맞이를 한다. 패륜범죄를 다룬 짜깁기 뉴스가 보여지고, 이는 앞으로 진행될 공연이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가를 말해준다. 미친 세상. 그렇다. 뮤지컬이 보여주려고 하는건 한 배우의 말마따나 "바로 이 미친 세상".

  하나. 여자꼬시기에 탁월한(?) 재주를 가지고 있는 한 녀석. 결혼한 친구의 아내를 꼬드기고 결국 그녀는 사랑에대한 배신감에 강으로  풍덩. 둘. 병을 해고 당한 남편의 퇴직금을 받아 내기 위해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한 여자, 결국 미쳐버렸다. 개방적인 아버지가 되고자 했던 한 남자, 아들을 어른이 되게 해주겠다며 사창가로 보내고 결국 몸에 붉은 반점이 돋아나기 시작한 아들은 저 세상으로 갔다. 그리고 아버지는 어긋한 자식사랑에 스스로 미쳐버렸다.

  정신병원에 수감된 환자들의 집단토론으로 진행되는 공연은, 매일같이 신문지상에 오르내리는 정말 어처구니 없다 생각되는 특이한 사례들을 내용으로 삼고 있다. 하지만 말 그대로 '특이'한 사건이기에, 배우가 관객을 향해 "아직도 당신들이 정상이라고 생각하세요?" 라고 질문을 던진 부분에서는 "우리는 비정상이다" "우리는 미쳤다"라고 답하기 곤란하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 모두가 조금씩은 미쳐있다고 결론내리기 위해서는, 관객으로부터 그런 대답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좀더 '특이' 하지 않은 사례를 내용으로 삼았어야 했다. 어쩌면 기획자와 배우들은 좀더 약하고 관객에 가까운 사례를 찾기보다 극단적인 사례를 찾아 공연함으로써 기획의도를 드러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주제는 강하고 선명할수록 더 쉽게 와닿으니까.

  한가지 더. 공연 막바지 '정상인'을 '비정상인'으로 둔갑시키는 반전은 정말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예기치 못한 곳에서 등장한 복병. 자연스러운 배우와 관객의 만남이라 생각했던 그것이, 연출된 상황이었다는 것에 입이 쩍 벌어진다. 재밌고, 유쾌한 공연이었다. 하지만 관객에게 뭔가 '생각거리'를 던져주지 못했다는 점에서는 치명적인 문제점을 안고 있다. 원래 기획의도는 바로 그것이었을테니까.

 




댓글(4)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2006-06-11 19: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늘빵 2006-06-11 1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님 / ㅋㅋㅋ 저건 공짜로 본건데. 뮤지컬이나 오페라는 역시 비싸서(공연에 비해 비싼건 아니지만) 망설이게 됨. 자금 사정 안좋을 땐 자제해야지.

비로그인 2006-06-12 1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 3월달엔가 보러갔었어요.
공짜는 아니구 거금투자해서 젤 좋은 자리에 앉았었는데 ^^
즐겁게 보았던 기억이 납니다.
기회되면 또 보고 싶어요

마늘빵 2006-06-12 19: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체셔고양이님/ 이거 보셨군요! 재밌죠? ^^ 메시지는 좀 약했지만 정말 많이 웃었습니다. 저도 좋은 자리에 앉아서 봤어요. 공짜였지만 어느 행사에서 주관해서 한거라. 편집증석이라고. ^^
 
허니문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마야 막스 그림,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00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녀의 언어는 참으로 아름답다. 아기자기한 맛도 있고, 귀엽기도 하고, 이쁘기도 하고, 때로는 슬프기도 하다. 소설 속 두 남녀 주인공의 상처가 슬프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녀의 언어가 슬프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녀는 슬픈 이야기를 할 때면 꽃, 하늘, 풍경, 바람 등의 이쁘고 다정한 단어들을 활용하곤 한다. 아름다운 동시에 슬픈.

  그녀의 소설에 등장하는 대개의 주인공들이 그렇듯 <허니문>에도 어린 소년과 소녀가 사랑을 나눈다. 역시나 그들은 각자 누구에게나 쉽게 꺼내어놓을 수 없는 아픔을 가지고 있고 서로에게만 상처를 내보인다. 사랑은 그렇게 시작된다. 사랑은 상대가 나와 같다고 생각할 때, 너와 내가 함께 뭔가를 공유할 수 있다고 생각할 때 살며시 다가온다. 히로시와 마나카짱은 그랬다. 두 사람은 여행을 떠나고, 그것은 나의 지난 상처를, 상대의 지난 상처를 어루만져주는 시간이었고, 우리 둘의 신혼여행이었다. 가족, 친지, 친구들의 축하를 받는 결혼이 아닌, 그저 호적등본에 이름 올려놓는 정도의, 결혼이라 할 수도 없는 결혼이지만, 우리 두 사람은 행복하다. 우리의 행복은 누군가가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 두 사람이 만드는 것이다.

  "저 말이지 결혼하지 않을래?" 
  "뭐?"
 놀라 나도 모르게 유카다로 몸을 가리고 말았따.
  "나를 데릴 사위로 삼지 않겠느냐고? 마나카짱의 가족만 좋다고 하면, 당장이라도"
  "상관은 없지만"
 
  싫다든가 좋다든가 그런게 아니고, 어쩔 수 없는 것도 아니고, 선택의 여지가 없는 인생, 이랄 만큼 비관적인 것도 아니고, 나는, 그때, 무언가가 더 넓어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공간이, 확 트이면서, 넓은 하늘 아래로 나선 것 같은 느낌...... 별이 있고, 먹거리가 있고, 촛불인지 뭔지의 아름다운 불빛이 있고, 공기가 맑고, 그런 대로 쓸 만하다는, 열린 느낌이 들었다. 그런 느낌이 들 때, 나는 앞으로 나아간다. 이것도 운명이겠지, 하고 생각하고, 나 역시, 히로시의 가족이 되리라 다짐하였다.

  나이가 어리기 때문에, 돈이 없기 때문에, 아직 준비가 안되어서 결혼하지 못한다는 말은 그 두 사람에겐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저 순수하게 좋아하고 사랑하고 아껴주고 싶고 그래서 결혼하고 싶고, 그래서 운명이겠거니 받아들이는 자연스러운 태도. 사회제도로서의 한 남자와 한 여자가 합치는 결혼이 아닌, 사랑하는 한 남자와 한 여자의 내면의 결합, 그것이 두 사람에게 있어 결혼이었다. 호적에 이름을 올리는 정도의 작업은 그저 결정에 대한 간단한 수순이었다.

  여행을 다니고 이야기를 나누고 섹스를 하고 서로를 어루만져주는 이 모든 과정들은 두 사람의 사랑을 확인하는 과정이다. 그것이 허니문이다. 결혼했다고 해서 의무적으로 4박 5일 좋은 휴양지에 놀러갔다오는 것이 허니문이 아니라 이것이 진정 허니문이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점점 더 때묻은 사람이 되어간다는 것일까. 예전의 순수했던 나는 간데 없고 맑고 순수하지 못한 내가 이곳에 있다. 요시모토 바나나의 소설은 주인공들이 서로의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을 그려지만, 나를 치유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녀의 소설이 언제나 비슷한 구조와 내용을 답습하고 있다고 하지만 지루하지 않은 것은, 자꾸만 찾게 되는 것은, 여전히 나의 내면에 상처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볼수록 새로운 상처를 발견하고, 또 치유하고, 또 다른 소설을 접하며 또 상처를 발견하고, 치유하고. 그녀의 소설이 편하게 읽혀지지만 한편으로 허한 것은 그런 나를 발견하기 때문이다.

 


댓글(3)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06-06-11 19: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늘빵 2006-06-11 1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님 / 감사. ^^

2006-06-13 15: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허니문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마야 막스 그림,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00년 4월
장바구니담기


동백꽃이 피어 있는 동안은, 개인 날이면 빨래를 넌 다음 신문지를 깔고 동백나무와 함께 지냈다. 눈을 감기도 하고, 뜨기도 하고, 맨발이 되었다가, 다시 샌들을 신기도 하고, 동백나무 아래 앉아있으면, 짙푸른 잎사귀들 사이로 파란 하늘이 보였다. 그리고, 동백나무는 마치 플라스틱 같은 색깔의 분홍색 꽃잎과, 장난감 같은 디자인의 꽃술을 미련없이 톡톡 땅으로 떨어뜨려, 새카만 흙을 물들였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해마다, 그 동백나무가 하나둘 꽃을 피웠다가 용감하게 떨어뜨리는 모습을 보아왔다. 아무 것도 변한게 없는데, 이렇게, 사람만 풍경에서 사라져버리는 일이 있다.-17-18쪽

좋은 풍경이라도 보지 않으면, 이 기분이 소금에 절여진 배추처럼 농밀하게 고정되어버리고 만다. -49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