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
우타노 쇼고 지음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5년 12월
구판절판


그건 그렇다치고. 어쨌든 내가 여자를 찾는 목적은 육체적 행위만을 위해서가 아니다. 섹스 따윈 하지 않아도 좋다. 손 한번 잡아보지 못해도 상관없다. 함께 식사하는게 즐겁고, 밤새도록 얘기를 나누어도 질리지 않고, 하루만 만나지 못해도 가슴이 답답해지고, 그냥 옆에 있기만 해도 평온해지는 그런 여자. 이를테면 평생의 반려자로 삼을 수 있을 만한 그런 여자와의 만남을 꿈꾸고 있는 것이다. 비웃어도 좋다. 내가 원하는 건 바로 그런 플라토닉한 연애다. 나는 육체를 원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육체와는 상관없는 관계도 동경한다. 너무 자기중심적인 모순된 얘기일지 모르지만, 어쨌든 내 안에는 두 개의 인격이 공존하고 있다. -17쪽

"그런거야, 꽃이 떨어진 벚나무는 세상 사람들에게 외면을 당하지.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건, 기껏해야 나뭇잎이 파란 5월까지야. 하지만 그 뒤에도 벚나무는 살아있어. 지금도 짙은 녹색의 나뭇잎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지. 그리고 이제 얼마 후엔 단풍이 들지." -506쪽

꽃을 보고 싶은 녀석은 꽃을 보며 신나게 떠들면 된다. 인생에는 그런 계절도 있다.
꽃을 보고 싶지 않다면 보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지금도 벚나무는 살아 있다는걸 나는 알고 있다. 빨간색과 노란색으로 물든 벚나무 이파리는 찬바람이 불어도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인생의 황금시대에는 흘러가버린 무지한 젊은 시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늙어가는 미래에 있다. - 린위탕 -5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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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tty 2006-06-05 1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이 책은 안 읽으신 분이 없으삼;
전 무서울 것 같아서 못 읽지만요 ㅠ_ㅠ

마늘빵 2006-06-06 18: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거 전혀 안무서운데요. ^^ 재밌어요.
 



* 스포일러 경고

  주류와 비주류라는 말 자체가 이미 개봉된 영화들에 대한 이분법적 시선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런 영화들을 지칭해야 할 좀더 마땅한 말을 찾지 못하겠다. 인디영화라고 하면 되려나. 아니면 예술영화? 인디영화와 예술영화가 의미하는 바가 뭐더냐. 그리하여 나는 '이런 영화'들을 지칭하는데 있어 좀더 적절한 단어를 찾지 못했고, 결국 짱구를 굴린 끝에 '비주류'라는 단어가 가장 적합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비주류 영화를 보는데 요새 재미들린 나는 이 영화의 감독과 시나리오에 대한 아무런 지식이 없이 오로지 '강혜정'이라는 이제는 대한민국 영화판에서 뜬 한 여배우의 이름을 보고서 골랐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고, 영화 포스터가 담고 있는 저 두장의 사진이 참 마음에 들었다. (아래 사진은 영화엔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기다렸건만)

 영화는 나쁘지 않았다. 그렇지만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도 지울 수 없었다. 그저 그것으로 보여주고 던져놓은 것이 감독의 의도였다면 받아들이겠다. 때로는 허무함도 영화의 매력이다. 하지만  "강혜정이 합류한 초특급 범 아시아 프로젝트"라는 문구는 좀 오버였다. 강혜정이라는 스타(?)를 내세워 관객몰이를 좀 해보겠다는 의도였을까. 아니면 영화를 대단하게 보이게끔 하려는 의도였을까. 되려 지나친 기대는 관객을 배신하는 법이다. 아무리 거창하고 화려한 문구라 할지라도 영화가 받쳐주지 않는다면 역효과를 부를 밖에. 나쁘진 않았지만 뭔가 이렇게 확 끌어당기는 매력도 없는 영화였다.

  펜엑 라타나루앙 감독 - 태국
  강혜정 - 한국
  아사노 타다노부 - 일본
  크리스토퍼 도일 - 호주


  정말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모여 한 영화를 만들어냈다. 호주출신의 촬영감독 크리스토퍼 도일을 제외한다면 아시아의 세 나라의 합작이라고 부를 만 하다. 각국의 유명인사 하나씩 참여했으니. 감독에 대해서는 잘 모르니 그냥 제끼자.



* 아사노 타다노부. 극중 쿄지. 허름한 차림새지만 노숙자로 보기엔 뭔가 있어보인다.



* 거칠고 짧게 친 머리와 끈나시가 참 인상적이다. 햇빛 가득한 저 푸른 하늘과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무언가를 응시하며 사색에 잠긴 이 여자의 모습이 아름답구나.

  영화에서 가장 비중이 큰 아사노 타다노부는 <자토이치>에서 핫토리 겐노스케 역을맡은 바 있다. 그 외에도 수많은 영화에 출연했지만 국내 개봉된 영화에서 알려진 것은 아마도 <자토이치>가 아닐까 생각. 전형적인 일본 사무라이의 외모를 갖춘 그는 조용하고 감성적일 듯 보이지만 어딘지 반항적인 구석이 있는 듯한 분위기를 풍긴다. 암흑가에서 활동하는 조용한 반체제인사라고 하면 딱 일듯. 내면과 외면이 따로 노는 인물로 보이기도 한다. 감성적이고 여리지만 냉혹하고 차가운 이미지. 양면을 모두 갖춘 배우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는 <보이지 않는 물결>에서 어느 한 식당의 주방장으로 일하며 보스의 아내와 놀아나다 보스의 지시로 여인을 살해한 인물이다. 하지만 그 여자만 죽인다고 모든 일이 해결됐다고 끝나진 않는다. '휴가'라고 푸켓으로 떠나지만 온갖 재수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살해당할 위험에 처해있다. 휴가길에 만난 당돌하고 황당한 애 엄마 노이를 만나게 되고 그녀의 정체를 알게 된 뒤 까무러칠뻔했다. 

  비록 불륜이었지만 사랑했던 한 여인을 살해하고 휴가를 떠나는 기분은 썩 좋진 않을 터이다. 게다가 그것으로 끝인줄 알았건만 보스는 나까지 살해하기 위해 마카오가 아닌 푸켓으로 나를 보냈고, 그곳에 또다른 심복을 깔아두었던 것이다. 아 이 밀려오는 복수심. 일상에서 벌어지는 그의 멍청하고 어리버리한 행동과 어울리지 않게 그도 복수심을 가지고 있다. 기필코 성공하리라 죽을 위험에서 벗어나 달려왔건만 - 그냥 숨어지냈으면 더 좋았을지도 모르는데 - 그를 죽이지 못했다. 애 때문에. 애 엄마 때문에.

  "너무나 행복해보여서 죽일 수 없었다. 차라리 내가 죽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아 이런 멍청한. 남의 행복을 위해 자신이 죽을 걸 알면서도 희생하는 이런 멍청한. 순진한건지 멍청한건지. 역시 그는 처음의 그 이미지 그대로 삶을 마감한다. 여행길의 애엄마 노이가 그를 향해 던졌던 "죽는게 두렵지 않아요?" 라는 질문에 대한 그의 대답이다.

   남편이 있는 여자와 연인이 되지만 그녀를 죽일 수 밖에 없는, 또 그 남편의 또다른 정부와의 행복한 모습 때문에 결국 자신의 죽음을 선택하는 운명을 갖고 태어난 남자의 이야기. <보이지 않는 물결>은 그런 영화이다. 아름답지만 기묘한 황당한 이야기가 조용히 밀려와 영혼을 적신다. 



하나. 강혜정은 생각만큼 비중이 크지 않았다. 그녀의 특유의 이미지가 영화를 더 빛나게 했다고 생각하지만 억지스럽게 정확한 발음을 내려한 그녀의 대사 때문에 장면 하나하나에 집중하기 보다 그녀의 발음을 신경써야만 했다. 그러나 들어도 그게 제대로 된 발음인지 아닌지는 난 모른다. 하지만 확실히 연기하는 그녀가 영어 대사 발음에 신경을 쓰고 있다는 생각은 지울 수 없었다.

둘.   영화 중간중간 별스럽지 않은 장면에서의 툭툭 내뱉는 유머러스한 장면들은 영화를 지나치게 밋밋하게 하거나 지루하게 하지 않기 위한 장치로 보였다. 한편으로는 또 알 수 없지만 죽음의 운명에 놓인 쿄지의 마음을 표현하기 위한 장치라는 생각도 든다.

셋.  영화의 장면은 너무나 멋있었다. 이뻤다. 재생을 멈추고 정지시켜 각각의 장면을 좀더 감상하고 싶을 만큼. 크리스토퍼 도일 이라는 촬영 감독은 이름은 익숙했지만 그다지 신경쓰지 않았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의 이력을 뒷조사해보고 아! 하는 감탄사는 아주 자연스럽게 나왔다. <퍼햅스 러브> <2046> <영웅> <해피 투게더> <타락천사> <중경삼림><동사서독> 등의 촬영일지만을 봐도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영화들 중 하나라도 봤다면 그가 창조해낸 아름다운 영상미를 기억에서 지울 수 없으리라.
(아래사진)



* 적절한 조명과 시멘트 자욱이 그대로 드러난 벽, 그리고 벽에 붙여진 삼류 포스터(?). 벽에 기대 키스를 하고 더듬는 한 남자와 한 여자. 새빨간 원피스는 애정행각의 비밀과 스릴을 나타낸다. 은밀한 곳에서 벌어지는 스릴 넘치는 사랑. 그러나 그때뿐. 불륜은 오래가지 못하는 법이다. 영상이 참으로 아름답다.

 

* 새까만 밤, 여러개의 작은 전구들이 발산하는 빛의 아름다움, 낡은 빠알간 통통배 위에 한 여자, 한 남자.
   구도도 빛도 시선도 두 사람의 헤어스타일과 차림새도 참으로 아름답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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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라 2006-06-04 2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이지 않는 물결>에 대한 댓글로 답방인사를 대신해도 되겠죠? ^^
전 아사노 타다노부라는 배우 때문에 이 영화를 선택했더랬어요. 펜엑 감독의 전작에도 출연했었는데, 무심한 얼굴 뒤에 숨겨진 수많은 사연들이 그대로 온몸으로 묻어져나오는게 참 좋더라구요,,,ㅎㅎ 영상도 정말 멋졌구요...^^

마늘빵 2006-06-04 2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저는 이 배우 처음 알게 됐지만 참 맘에 들었습니다. 얼굴 안에 참 다양한 모습이 숨어있더군요. 크리스토퍼 도일의 영상미도 참 좋았습니다. ^^ 앞으로 자주 뵈어요.
 



  * 스포일러 경고

  양동근을 믿고 봤지만 좀 어설프고 많이 부족한 영화. 자본의 힘의 부족 때문인가. 한맥영화사라는 처음 듣는 영화사와 이항배 신인 감독, CF로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영화로는 신인이라 볼 수 있는 김성수와 윤지민. 양동근 이라는 걸출한 배우를 제외하고는 뭐 하나 내세울 만한 것이 없는 영화였다. 물론 영화와 관련된 모든 프로필이 딸린다고 영화도 딸리는 건 아니지만 - 이건 <웰컴 투 동막골>을 통해 검증 - 이 영화의 어설픔을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단지 감독의 자질 문제라고 본다면 너무나 가혹하지 않은가. 모든 요인들이 복잡적으로 얽혀 지금의 어설픔을 창조(?)해냈다는 생각.

  대한민국 국민에게서 조금씩의 돈을 인출해 거대한 펀드를 조성한다는 프로젝트. 1% 비밀클럽의 짱인 존은 계획적으로 카이스트 출신의 손재주 뛰어난 컴퓨터 프로그래머 경호에게 접근해 그를 유혹하고 자신에게 매료되도록 만든다. 다 있지만 마지막 작업 각 은행의 계좌에 연결해줄 사람이 필요했던 존은 경호가 이 일의 적임자라 판단했던 것이다. 값비싼 액션 피규어를 모아 대화하며 하루를 보내는 순박하고 순진한 청년 경호는 존에 대한 믿음 하나로 그의 프로젝트에 가담하고, 결국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듯 존은 경호를 배신한다. 경호와 존을 따라다니는 여인 앨리만이 경찰에 넘겨지고... 




  영화 <모노폴리>의 존, 경호, 앨리에 적합한 캐릭터는 일단 잘 선택한 듯 하다. 김성수는 꽤나 귀티났으며 냉혹하기도 신비스럽기도 했다. 자신의 카리스마로 상대를 제압하고 매료시키는 그는 결국 자신이 계획한 프로젝트를 성공시킨다. 천재이지만 유약하고 순수한 어리버리 경호를 연기한 양동근도 제격. 시시껄렁하지만 쥐뿔 아무 것도 없고 인생 포기한 사람인양 살아가는 이미지만으로 양동근을 기억하기엔 그의 재능은 너무나 아깝다. 기존의 이미지에서 약간 벗어난 듯한, 하지만 그러면서도 기존의 이미지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경호는 그에게 딱이다. 하지만 캐릭터가 양동근의 능력을 제한시킨 듯 하다는 생각도 든다. 양동근은 그이상을 보여줄 수 있었는데. 팜프파탈적 이미지를 내뿜는 앨리. 전혀 알 수 없는 신비스러움을 간직한 여인 앨리. 존을 따르지만 경호에게 '그를 믿지 말라'는 메세지를 보내는 앨리. 그녀는 과연 누구. 이 영화에서의 수영복 씬은 영화 개봉전 그녀를 검색어 1위에 오르게 하기도 했다.

  지나치게 폼잡다가 지나치게 뭔가 있어보이려다 영화 자체가 존재의 이유를 상실해버린 영화가 아닐까 싶다. 1% 클럽의 부유함을 통해 이들의 프로젝트의 거대함을 보여주려했던 감독의 의도는 그것 말고 영화를 뒷받침해주는 뭔가를 만들어내지 못함으로써 무너져버렸다. 앨리와 경호가 존을 옹호하는 이유도, 존이 이같은 범죄를 계획한 이유도 보이지 않는다. 범죄만 있고 목적이 없다. 영화는 반전을 꿈꾸지만 반전은 그다지 설득력있지도 현실감있지도 않다. 영화는 허무감을 안겨준 채 관객을 떠난다.



* 인터넷 화제의 사진. 유감없이 착한 몸매를 보여준 윤지민. 슈퍼모델 출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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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06-06-04 2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허걱! 어째 윤지민의 몸매가 가장 눈에 띈다는...ㅜㅜ;;

마늘빵 2006-06-04 2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흐. 영화를 봐도 그래요. 윤지민 몸매에 눈이 많이 간다는. ^^

비연 2006-06-04 2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데 님, 언제 이렇게 영화를 많이 보시는 검까? 부럽슴다...흑~
(극장 가서 영화 본 지 한달도 넘은 비연...ㅠㅠ)

마늘빵 2006-06-04 2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요새 제가 미쳤나봐요. 5월달 극장에서만 본 영화만 8편입니다. 9편인가. 음.

가넷 2006-06-04 2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몸매가 너무 멋지네요... 흠.^^

마늘빵 2006-06-04 2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쵸? 좀더 크게 올릴걸 그랬나? 난 큰 사진 가지구 있는데.
 



* 스포일러 경고

  포세이돈. 삼지창을 들고 있는 그는 크로노스와 레아의 아들이며, 제우스와 하데스의 형제. 제우스, 하데스, 포에이돈이 아버지를 폐위시키고, 그는 바다의 왕이 되었다. 영화 속에서 '포세이돈'은 거대한 호화 유람선의 이름이기도 하지만, 이 유람선을 덮쳐버린 파도를 지칭할 수도 있다. 개봉 전부터 예고편을 통해 오래전 본 <타이타닉>과 너무나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가져본 나로서는 그다지 기대를 가지고 볼 만한 영화는 아니라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난 지금, 기대를 가질만한 영화는 아니지만 재난영화에 있어서는 또 하나의 작품을 건졌다는 생각이다. <타이타닉>이 장장 세시간 반에 걸쳐 역사적 사실에 기반한 재현과 로맨틱 스토리, 그리고 어마어마한 볼거리를 선사했다면, <포세이돈>은 한 시간 반에 걸쳐 깔끔하게 꼭 보여주어야 할 부분만 보여줬다고 할 수 있다. <포세이돈>엔 '재난' 그것 외에 다른 부분은 없다. 허무하고 단순해 보이기도 하지만 깔끔해서 더 좋다.  



* 화이브, 포, 쓰리, 투, 원, 제로! 해피 뉴 이어!! 폭죽과 풍선의 향연은 여기서 끝.



 * 바로 이어지는 태평양 저 편에서 밀려오는 거대한 파도. 달빛 아래 바다는 노했다.

  12월 31일에서 1월 1일로 넘어가는  새해. 그들은 거대한 호화 유람선 포세이돈 안에서 새해를 맞이하고 있었다.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하지만 어느 순간 태평양 저 멀리서 빠르게 다가오는 거대한 파도 속에 배는 기우뚱. 결국 한바퀴 회전하여 거꾸로 뒤집히는 상황을 맞이한다. 해피 뉴 이어는 행복을 가져다주는 대신 공포와 죽음을 선사했다. 이 배는 거꾸로 뒤집혔더라도 안전하다는 누군가의 말은 그의 '진심'이었을지 모르나 '사실'은 아니었다. 그의 말을 듣지 않고 뒤집힌 선체의 꼭대기로 향하는 반항아들(?)은 그들의 목숨을 보전할 기회는 갖게 되었다. 소방관 출신 전 뉴욕시장이었던 로버트, 그리고 그의 아리따운 딸 제니퍼, 그녀의 애인, 한 여자와 그녀의 아이, 프로도박사 딜런, 할아버지, 뉴욕에 가기 위해 몰래 탑승한 한 여인. 정말 다양한 연령과 이력과 성격을 가진 이들의 목표는 뒤집힌 배의 꼭대로 올라가 프로펠러 구멍을 통해 밖으로 나가는 것.



* 생존을 위한 투쟁. 나이가 많고 적고, 돈이 많고 적고, 여자고 남자고, 이기적이건 이타적이건 상관없이 지금 당장 살아야한다는 생각만이 그들의 머리와 가슴을 지배하고 있다.


  타이타닉 처럼 차라리 배가 쪼개졌다면 바다로 뛰어들기 위해 그냥 뛰어내리면 되었다. 하지만 이들은 배가 뒤집힌 탓에 어디로든 나가는 것이 생존목표가 되었다. 상황은 더 심각하다. 이들의 최고의 목표는 생존이겠지만, 이를 위해 일단 배 밖으로 나가야만 했다. 구출되고 말고는 그 다음 문제다. 쉽지 않다. 배의 꼭대기로 향한다는 것은 너무나 어려웠다. 헤엄쳐 물을 건너 불길 피해 가스 피해 낭떠러지 피해, 바다 한 가운데에서 재난을 당했다고 하나 물만이 문제는 아니다. 물은 그들이 마주쳐야 할 공포 중 한가지일 뿐이었다. 나의 생존을 위해 다른 사람을 죽여야만 했던 그들, 모두 다 살기 위해 한번 할 거 두번 해야 했던 이들, 결국 도착지에 이른 이들은 출발지에 모였던 이들보다 둘이 부족했다. 하지만 대단한 성공이었다.

  정말 대단한 볼거리를 선사해준 영화였다. 볼프강 페터슨의 전작 <트로이>나 <퍼펙트 스톰>에서 보여주었던 스펙터클함과 세밀한 묘사는 여기에서도 빛났다. 그는 이번 작품을 마지막으로 '물'에서 떠나고 싶다고 밝히기도 했다. 81년 <특전 U보트>와 2000년 <퍼펙트 스톰>에 이어 물을 다룬 영화로는 세번째 작품인 셈이다. 물이 주는 공포와 엄습감을 보여주고 싶었다는 그의 목표는 <포세이돈>을 통해 달성되었다고 봐야겠다. 또 주목해서 볼 인물은 그리 오래되지 않은 얼마전 <드리머>를 통해 본 다정다감한 아버지 커트러셀, 영화에서 스스로 소방관 출신이라고 말하는 그는 불을 다룬 또다른 재난 영화 <분노의 역류>에 출연하기도 했다. 그의 인상에서 느껴지는 푸근함과 인간미는 역시 이 영화에서도 드러났다. 마지막으로 한명 더. 에미 로섬. 그녀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다만 얼굴이 익숙했다는 것 밖에. 역시나 또다른 재난 영화 <투머로우>의 로라였다.

  원작 <포세이돈 어드벤처>를 새롭게 만든 이 영화는 원작을 보지 못한 나로서는 비교할 수 없지만, 어떤 이의 말에 따르면, '포세이돈'만 있고 '어드벤처'는 없다는 평을 내놓기도 한다. 하지만 처음에 말했듯 어쩌면 '재난영화'라는 꼬리표를 달고 다닐 <포세이돈>이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고 단순한, 지극히 '재난'에 충실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는 생각이다. 이거에 저거붙이고, 저거에 이거붙이고 하며 이도저도 아닌 영화가 되어버리는 것 보다야 지금의 선택이 훨씬 낫다. 영화의 스펙터클함을 느끼기 위해서는 비디오 출시를 기다리기보다는 지금 극장으로 향하는 편이 좋다.  

 

** 영화 보며 느낀 것 하나를 빼먹었다 싶었는데 야클님 덕에 기억났다.
    딸의 행동 하나하나에 간섭하는 아빠의 모습이 <아마게돈>의 블루스 윌리스와 넘 닮았다. 아빠도. 딸도.
    결국 <아마게돈>의 결말에 따라 아빠의 희생으로 목숨을 부지하게 되는 두 사람.
    이것이 바로 아빠의 사랑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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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06-06-04 2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포세이돈 어드벤쳐는 멋지기도 했지만, 재난 상황에서 빚어지는 인간과 인간 사이의 미세한 감정들을 잘 묘사하고 있었지요. 제가 진 해크먼 팬이라 더욱 좋아하는 영화이구요. 흠...이번 영화는 어떤가 모르겠네요. 원작도 보시라고 추천!

마늘빵 2006-06-04 2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 전작 디비디로 출시된거 같던데, 전 아직 원작을 못봐서 이 영화와 뭐라 비교하질 못하겠어요. 이 영화는 그보다는 재난에 맞서는 몸부림에 촛점을 맞춘 듯 합니다. 거기에서 보여지는 스펙터클한 장면들의 연출에.

책방마니아 2006-06-04 2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 ~ 포세이돈이 리메이크 영화였군. 어쩐지 오래 전에 비슷한 영화를 본 것 같더니마는 ...

마늘빵 2006-06-04 2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원작은 언제적 건지 모르겠네. 아직 거기까지 뒷조사는 못들어갔음.

마태우스 2006-06-05 0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늘 감사합니다. 신속하게 영화 정보를 주셔서요. 제가 님의 글은 100% 신뢰하지 않습니까.^^

마늘빵 2006-06-05 0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님 / 제가 좀 영화개봉한지 얼마 안되서 금방 보기는 하죠? ^^ 극장서 영화보기를 넘 좋아해요. 전 집에서 비디오로 보는 건 별로에요. 극장서 보자면 돈이 좀 많이 들긴 하지만요. 지난달에 영화비로 넘 많이 써서 보더라도 좀 서둘러 조조로 봐야겠어요.
 
이지누의 집 이야기
이지누 지음, 류충렬 그림 / 삼인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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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 따뜻하고 넉넉한 글이었다. 비록 내 나이 얼마 먹지 않아 이 책에 등장하는 그런 가옥들에 산 경험은 없다만 어릴 적 내가 살던 그 막다른 골목의 셋방집. 방 두칸에 부엌도 없고, 화장실은 밖에 마당에 별도로 설치되어 있는 곳을 다녀야만 했던 그 가난하고 배고팠던(?) 시절. 지금도 우리집은 극빈층이기는 하다만 그래도 화장실은 집안에 있지 않은가.

 어떤 분은 책 제목에 저자의 이름이 들어간 책은 오로지 책 하나만으로 자신이 없기 때문에 저자의 유명세를 빌려 팔아보려는 속셈이라고 하나, 또 나 역시 이에 일부 공감하나, 이 책에 저자의 이름이 들어간 것을 두고 이에 적용시키기는 어렵다. 저자는 이름 내세운다고 아무나 다 아는 그런 유명인물도 아니니 말이다. 이지누. 그는 사진 작가이자 기록문학가이다. 길 위에서 직접 사진을 찍고 돌아다니며 보고 느낀 것들을 기록하여 글로 써낸다.  <이지누의 집 이야기>는 이런 그의 오랜 노력과 작업의 성과이다. 

  그는 집을 해부하고 곳곳에 대해 경험하고 보고 느낀 바를 서술해나가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집의 개념이 아니다. 그에게 있어서 집이란 건물 그 자체만이 아닌 건물이 속해 있는 마을 입구부터 시작된다. 맨처음으로 골목이 나오는 것은 그러한 까닭이다. 집이 위치해있는, 우리가 어릴적 노닐었던 그 골목도 우리의 집이다. 그는 골목이야기, 대문이야기, 울타리이야기, 변소이야기, 마당이야기, 지붕이야기, 우물이야기, 부엌이야기, 마루이야기,  창문이야기, 구들이야기, 방이야기 순으로 집에 대해 말한다. 목차에서 볼 수 있듯 우리가 집을 떠올리고 해부할 때의 그런 개념이 아니다. 마당, 울타리, 대문, 지붕, 우물 등 집이라고 했을 때 쉽게 떠오르지 않는, 우리의 상상 속에서 소외된 부분들에 대해 다룬다. 집은 우리가 먹고 자는 그 공간만을 가르키지 않는다.

  자신의 경험을 떠올리고, 자신이 본 것을 떠올리고, 좋은 옛 글귀들과 함께 어우러지며 머리 속에서 집을 찾아간다. 그 따뜻하고 푸근했던 집을 찾아간다. 그리고 그는 비록 허름하고 불편했지만 정겨웠던 우리의 옛 집과 오늘날의 콘크리트 건물 아파트 빌라를 비교하며 이야기하기도 한다. 집은 단순히 사는 곳이 아니다. 집에는 철학이 담겨 있다.

"그러고 보니 집이란 목수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철학이 만드는 것이 아닌가. 그 탓인지 집은 주인의 생각을 빼다 박은 닮은 꼴일 수 밖에 없다. 그래야만 서로 서걱대지 않고 물 흐르듯이 집과 사람이 어울려 살아갈 수 있으니까 말이다. "(P7)

 "요즈음에는 공동주택 중에서도 원룸이라는 주거형태가 인기를 얻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그곳에 들어가 사는 사람들이 외로움을 많이 탄다고 한다. 이는 공간을 지배하지 못하고 공간에 지배당하기 때문이다. 우리네 살림살이에서 주어지지 않던 혼자만의 공간을 다스릴 힘이 없으니 상대적으로 외로워지는 것이다. 그 외로움을 견디지 못해 다시 집으로 들어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꿋꿋하게 견디는 사람도 있는데, 그들은 과거에 자신이 지니고 있던 사고방식과 조금씩 달라졌음을 고백하곤 한다. 사는 공간이 달라진다는 것은 사고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P49)

  사람이 공간을 지배하고 다스리며 살아야 하는데, 오늘날엔 집의 구조에 의해, 집의 공간에 의해 사람이 다스림을 받는다는 그의 말은 매우 가깝게 다가왔다. 사람의 사고방식이라는 것은, 생각이라는 것은, 어쩌면 우리가 태어나 자라는 그 환경에 의해 지배를 받는지도 모른다. 확실히 요즈음의 집들은 독립된 공간으로 이루어져있고, 사람들과의 왕래가 거의 없다. 그러면서도 칸칸 구획이 나누어져있지 않고 부엌과 거실, 마루가 함께, 때로는 방도 함께 있는 공간을 가지고 있다. 겉으로는 독립되어있지만, 안에서는 뭉뚱그려져있는 것이다. 이는 타인에 대한 내 마음을 닫아버리는 결과와 함께 내 안의 편리함을 추구하고자 하는 현대인들의 상을 만들어내지 않았나 싶다. 내가 사는 집은 나를 지배한다.

  <이지누의 집 이야기>는 이렇게 많은 이야기들을 풀어낸다. 옛 집의 구조에 대한 자세한 설명부터, 자신의 경험, 그리고 오늘날의 집과 옛 집의 비교, 또 집에 들어있는 철학에 이르기까지. 집 하나를 가지고 이렇게 많은 다양한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해준다. 이 글을 읽고 난 뒤에는 내가 사는 집이 그저 먹고 자는 공간으로만 보이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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