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티새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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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읽어도 읽어도 실망시키지 않는 요시모토 바나나의 작품은 모든 작품이 다 비슷비슷한 감성을 전달해주고 비슷비슷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아직 읽지 않은 새로운 작품에서는 무슨 이야기가 펼쳐져있을까 궁금하게 만든다. 요시모토 바나나의 작품에는 중독성이 있다. 파울로 코엘료의 작품을 읽기 위해서는 '어거지'와 '인내'가 필요했지만, 요시모토 바나나의 작품은 자연스럽게 한권을 읽고 나면 다른 한권에 또 손이 간다. 아주 자연스럽게도. 그것이 요시모토 바나나를 지금의 위치에 있게 하지 않았나 싶다.

  이번엔 <티티새>다. 소설 속에서 '티티새'는 '츠구미'를 의미한다. 개똥지빠귀라고 하며 또 백개의 혀를 가지고 수다를 떤다하여 백설조(百舌鳥)라고도 한다. 개똥지빠귀는 참새목 딱새과의 한 종류로서 시베리아 북부지역의 평지나 산지 숲에서 서식하는 새이다. 한국에서는 10월에 찾아와 겨울을 난다. 먹이로서는 식물의 열매를 따다먹으며 벌레도 먹는다. 티티새의 특징으로 봤을 때 사람에 비유하자면 수다스러운 사람을 말할 듯 한데, 소설 속의 츠구미와 어떻게 연관시켜할지는 잘 모르겠다. 츠구미는 말이 많은 아이도 아니도 단지 좀 삐딱하고 엉뚱하고 자기중심적인 사고를 하는 아이였으니까.



  <티티새>는 요시모토 바나나의 초기작이다. 89년도 작품으로 처음으로 쓴 장편소설이라고 한다. 그녀의 책을접할 때면 제일 먼저 생각하는 것이 목록을 보며 각각 다른 이야기일까, 아니면 이어진 한편의 이야기지만 제목을 나눠놓을 것일까 하는 부분이다. 이번에도 다른 이야기이겠지 하고 읽어나갔지만 앞의 이야기와 뒤의 이야기는 같은 선에 연결되어 있었다. 줄거리가 하나인 것과 별도로 하나건 두개건 상관없이 그녀의 소설은 책으로 엮여진 작품 하나에서 하나의 주제를 뽑아낼 수 있다. 대개는 상처받은 사람들에 대한 관심과 보듬음을 담고 있다. 이 책도 마찬가지다.

  츠구미라는 조금은 유별나고 자기밖에 모르는 또 때로는 엉뚱한 아이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녀의 삶에 관한. 또 사랑에 관한. 그녀는 자기 밖에 모르는 병든 아이다. 타인을 사랑하는 법을 모르며, 관심도 없다. 하지만 어쩌면 그녀의 그런 까칠한 행동들은 타인을 사랑하기 위한 자기 자신만의 방법인지도 모른다. 억울한 것에 분노하고 처절하게(?) 복수하는 그녀를 통해 섬뜩함을 느끼기도 하지만 그것은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방법이다. 나 여기있어. 나 아직 죽지 않았다고. 그녀는 확실하게 주변인들에게 자신을 인지시킨다. 나의 존재를. 그런 츠구미가 한 남자를 만나게 되고, 그를 사랑하게 되는 과정들, 그리고 그녀가 남긴 편지들. 그녀는 분명 그들을 사랑했다.

  '도깨비 우편함'에서부터 '츠구미에게서 온 편지'에 이르기까지 소설은 매우 잘 짜여져있다. 각각의 장들이 각각의 주제를 가지고 있으면서 또 하나의 일관된 주제로 연결되는 잘 쓰여진 작품이다. 읽는 내내 요시모토 바나나의 치유를 받으며, 감성을 울리고, 푸근함과 편안함을 느끼게 된다. 그녀의 소설은 늘 편안하다. 부담없고 담담하다. 특별히 무엇을 기대하지도 않는다. 그냥 책을 집어들고 읽고 덮는다. 다시 또 그녀의 책을 들게 될 것이다. 자연스럽게. 처음과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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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져 2006-05-31 2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사진속의 새가 티티새?
친절하셔라~ ㅊㅊ!

마늘빵 2006-05-31 2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네. 쟤가 티티새래요. 표지에 드러난 얼굴이랑 똑같아요.
 
티티새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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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사람들에게서, 서로에게 끌린 나름의 확실한 이유를 느낄 수 있었다. 외모가 비슷하다든가, 생활태도나 옷을 입는 취향 등이 비슷하다든가, 겉 보기에는 조화롭지 못한 커플이라도 오래 함께 하다보면 '음, 사귈 만해.' 하고 수긍이 가는 부분이 생기는 법이다. 그러나 내가 그날, 츠구미와 쿄이치에게서 순간적으로 감지한 것은 보다 한결 강한 것이었다. 그렇다. 아까 그 츠구미란 이름을 말했을 때, 내 안에서 그와 츠구미가 완전히 하나로 포개져서 빛났다.-97쪽

"사랑이란, 깨달았을 때는 이미 빠져있는 거야. 나이가 몇이든. 그러나. 끝이 보이는 사랑하고 끝이 안보이는 사랑은 전혀 다르지. 그건 자기 자신이 제일 잘 알 수 있어. 끝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즉 더 발전할 수 있다는 뜻이야. 지금 우리 마누라를 처음 알았을 때, 갑자기 내 미래가 무한해지는 듯한 느낌이었어. 그러니까, 꼭 합치지 않아도 상관없었을지도 모르지."-121-122쪽

"음......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저 말이죠. 지금까지는, 뭐가 어떻게 되든, 그러니까 상대바에 눈앞에서 울고불고 난리를 피워도, 아무리 좋아하는 남자가 손을 잡게 해달라느니 만지게 해달라느니 해도,뭐랄까...... 강 건너 불구경하는 느낌이었어요. 강 건너에 불이 났는데, 이쪽 어두운 강가에서 구경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에요. 언제 불이 꺼질지 뻔히 보이니까, 졸리고 따분했거든요. 그런건 언젠가는 반드시 끝나니까요. 사람들은 연애에서 뭘 추구할까 하고 생각했어요. 이 나이에."

"그야 그렇지. 사람이란, 자기가 준 만큼 돌려주지 않으면 언젠가는 반드시 떠나는 법이니까."-1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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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누의 집 이야기
이지누 지음, 류충렬 그림 / 삼인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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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집이란 목수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철학이 만드는 것이 아닌가. 그 탓인지 집은 주인의 생각을 빼다 박은 닮은 꼴일 수 밖에 없다. 그래야만 서로 서걱대지 않고 물 흐르듯이 집과 사람이 어울려 살아갈 수 있으니까 말이다. -7쪽

어느날부터 우리들은 집주인의 생각으로 지어진 것이 아니라 규격화, 표준화되어 만들어진 집에 들어가 살게 되었다. 집주인의 생각은 사라지고 오히려 집에 생각을 맞추면서 살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은 아파트나 빌라 혹은 연립주택이라는 공동주택이 만들어지고 나서부터이다. 그때부터 참 많은 것들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편리함이나 합리적이라는 것을 얻기는 했지만 그만큼 잃은 것도 많았다. 그곳에 살면서부터 우리들의 할머니나 할아버지, 어머니나 아버지에게 은근히 혹은 넌지시 배울 수 있었떤 것은 깡그리 사라지고 말았다. 또 바뀌어 버린 집 구조 덕에 마당을 가지지 못했으니 사람 살아가는 데 중요한 의례인 관혼상제가 모두 집 밖으로 치러지고 만다. 그것은 몹시 슬픈 일 가운데 하나이다. 사람살이에서 그것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보다 많았기에 그것이 집 밖으로 나가자 사람도 덩달아 따라 나가서는 아직껏 돌아오지 않고 있는 듯 보여진다. -11쪽

그러나 요즈음 만들어지는 공동주택의 대문은 대개 밖을 향해 열린다. 이는 서구적 건축양식의 결과이며 사고의 차이에서 나오는 결과이기도 하다. 우리에게 문은 무엇을 맞아들인다는 개념이 강한 반면 서구는 문을 통해 밖으로 나간다는 생각이 강하다. 또 우리는 문을 통해 들어오는 사람들을 맞이하거나 배려하는 편에서 안으로 당겨서 열었지만, 서양 사람들은 자기중심적인 사고에서 밖으로 밀어서 문을 열었던 것이다. 그것은 소극과 적극의 개념을 낳고, 다시 보수적이거나 진취적 혹은 폐쇄적이거나 개방적인 사고를 만들어주며, 그것이 곧 민족성으로 나타나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의 모든 문이 안으로 열렸던 것은 아니다. 대문만 그랬을 뿐 광이나 부엌과 같은 곳의 문은 바깥으로 열렸다. 그것은 좁은 공간을 조금이라도 더 넓게 활용하려는 지혜였던 셈이다.-49쪽

요즈음에는 공동주택 중에서도 원룸이라는 주거형태가 인기를 얻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그곳에 들어가 사는 사람들이 외로움을 많이 탄다고 한다. 이는 공간을 지배하지 못하고 공간에 지배당하기 때문이다. 우리네 살림살이에서 주어지지 않던 혼자만의 공간을 다스릴 힘이 없으니 상대적으로 외로워지는 것이다. 그 외로움을 견디지 못해 다시 집으로 들어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꿋꿋하게 견디는 사람도 있는데, 그들은 과거에 자신이 지니고 있던 사고방식과 조금씩 달라졌음을 고백하곤 한다. 사는 공간이 달라진다는 것은 사고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집이라는 것은 단순히 건축학적 구조물로만 보는 것은 무리이다. 적어도 집은 그 자체로 다분히 철학적이기 때문이다. 집에 관한 한 모든 것이 그렇다. 문짝 하나 다르게 다는 것이 무슨 문제일까 싶기도 하지만 그것은 매우 많은 고민을 하고 결정을 해야 하는 것이다.-49-5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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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말 감동적인 영화였다. 진실이 담긴 영화였다. 어떻게 이런 영화가 고작 상영관 몇 군데에 걸려있을 뿐인지 의심스러웠다. 작품성 못지 않게 상업성도 적절히 갖추었다 생각되는 이 영화가 왜 시장에서 외면을 받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극장계의 거대 자본 롯데씨네마와 씨지비는 <콘스탄트 가드너>를 외면했다. 씨지비는 고작 강변과 인천 두 곳에 걸어놨을 뿐이다. 그것도 야간에만. 종로 3인방 역시 이 영화를 외면했다. 지금 극장가엔  <미션임파서블3>와 <다빈치코드>만이 존재할 뿐이다. 한 극장에 상영관 서너곳을 점령하고서.

  언젠가 그리 오래되지 않은 과거, 아마도 한달전쯤, 신문에서 미국과 유럽의 거대 제약회사가 아프리카를 대상으로 에이즈 약 값을 높게 책정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그리고 근래 같은 회사인지 모르겠으나 거대 제약회사 하나가 아프리카 아이들을 대상으로 약을 실험하고 있다는 기사를 보았다. 매일 아침 밥먹으며 간단간단하게 보는 신문인지라, 또 워낙 큰 사건들이 많이 등장하는지라 대수롭지 않게 봤다. 그러나 이 영화를 보고 그 기사 하나가 신문에 실리기까지 얼마나 많은 이들의 희생이 따랐을까 싶어 그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콘스탄트 가드너>는 다행히도 실화는 아니다. 하지만 등장 인물들이 실존하는 인물이 아니라고 하여 실화가 아니라고 할 수는 없다. 앞서 말했듯 실제로 신문엔 영화에서 보여주는 모습이 실제하고 있으니깐. 영화 내용이 백퍼센트 오롯이 실화는 아닐지라도 적어도 아프리카의 모습만큼은, 제약회사들이 그들을 상대로 실험을 하고 있다는 것만큼은, 실화이다. 그러므로 <콘스탄트 가드너>는 실화다.

  콘스탄트 가드너(한결같은 정원사)는 극중 인물 영국 대사관 직원 저스틴 퀘일을 지칭한다. 그의 아내에 대한 한결같은 사랑, 그리고 아내의 죽음에 대한 음모를 파헤치겠다는, 아내가 못다이룬 일을 자신이 이뤄내고 말겠다는 한결같은 굳은 의지. 그는 한결같은 정원사였다.



* 테사와 저스틴. 두 사람은 진실로 사랑하였다. 테사의 죽음 앞에 무너져버린 저스틴의 평화로운 정원.
   저스틴에게 있어서 테사는 집이었다. 테사는 그의 모든 것이었다.




* 고통받는 케냐인들을 위해 임신한 몸으로 밤낮으로 일하다 결국 그녀는 유산했고, 또 싸늘한 시체로 돌아왔다.

  정원가꾸기를 즐기는 조용하고 온화한 영국 외교관 저스틴과 그 누구보다 열정적이고 적극적인 인권운동가 테사의 만남은 곧바로 사랑으로 연결되었고, 결혼했다. 케냐 주재 영국 대사관으로 발령받은 저스틴은 케냐에서의 테사의 변화된 모습이 이해되지 않는다. 자신이 모르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고, 함께 일하는 아돌드 역시 나의 친구이긴 하지만 의심스럽다. 근거를 알 수 없는 테사에 대한 안좋은 소문들이 돌고 저스틴은 드러내놓고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지는 않지만 사랑하는 테사에 대해 의심을 갖게 된다. 어느날 테사가 싸늘한 시신이 되어 돌아오고 저스틴의 아름답고 평화로운 정원은 무너졌다.

  로맨틱 스릴러라고 불리우는 <콘스탄트 가드너>는 로맨스와 스릴러 이전에 잘못된 것에 대한 심판이 앞서있다. 세계적으로 가장 큰 제약회사는 겉으로는 인류에게 희망과 꿈을  심어주는 듯 하지만, 그것은 그네들의 국민들에게 해당할 뿐이다. 유럽인의 행복 이면에는 아프리카의 고통이 있나니, 이면에 숨겨진 부패와 비리를 까발리는 영화가 <콘스탄트 가드너>이다. 영화는 본래 2000년 존 르 까레 라는 작가에 의해 쓰여진 동명 소설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소설은 허구로 이루어져있지만 사실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미 우리에겐 기사화 되어 다 알려진 내용이지만 사실이 기사화되기까지 그 이면에서 고생했을 이들이 아니었다면 여전히 우리는 아프리카의 현실에 대해 알 수 없었다.

  제작자 사이먼 채닝 윌리엄스는 영화를 만들게 된 이유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잘못된 것은 그것이 존재하는 한 세상에 알려져야 한다" 라고. <콘스탄트 가드너>는 숨겨진 진실에 대한 고발이다. 에이즈를 완벽히 치료해 낼 수 있는 약은 없다고 들었다. 하지만 고통을 줄이고 생명을 조금 연장시킬 수 있는 약은 있다. 헌데 제약회사는 약에 높은 가격을 책정하고는 이것을 구입해서 치료하라고 한다. 돈 많은 미국, 유럽인들은 치료할 수 있다. 하지만 에이즈 환자는 가장 많은데 돈은 한푼도 없는 아프리카 인들은 어쩌란 말이냐. 그러면 에이즈에 걸리지나 말았어야지, 라는 그네들의 대답은 인류를 위한다는 제약회사의 모토와 모순된다. 약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돈이 없어 치료하지 못해 죽어가는 수많은 아프리카 인들이 그들 눈엔 보이지 않던가.

  하지만 그들은 이정도로 그치지 않는다. 새로운 약의 실험을 위해 3년의 시간과 수백만 달러 대신 아프리카 어린아이의 희생을 선택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 인류를 치료하기 위한 약을 만든다는 제약회사가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 아프리카 어린아이들을 대상으로 신약을 실험하고, 테스트하고, 결국 실험대상이 된 아이들은 석회와 함께 땅에 버려진다. 약은 사람을 치료하라고 있는 것이지 죽이라고 있는 것이 아니다. 누구를 위한 약이란 말이더냐. 영화를 보며 분노하지 않는다면 그는 사람이 아니다.

 브라질 출신의  감독 페르난도 메이렐레스는 이 영화를 만들기 위해 촬영장소로 좀더 여건이 나은 남아프리카를 선택하려고 했으나 케냐에 도착한 후 그럴 수 없었다고 고백한다. 케냐의 모습을 그대로 영상에 담아내고 싶었던 것이다.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다행히 감독의 생각은 나에게도 전해졌다. 감독의 마음은 나에게도 전해졌다. <콘스탄트 가드너>는 그런 영화다. 진실에 관한 영화다. 영화 속 저스틴의 말마따나 진실은 언제든 밝혀지게 되어있다. 은폐하고 조작한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두 사람의 희생은 사람들에게 진실이 무엇인가를 말해주는 힘이 되었고, 우리는 그것을 안다. 영화 속 결말처럼 현실에서도 기사에 등장한 제약회사가 심판을 받게 되길 바란다. 아침 신문에서 제약회사가 고발당했고, 사람들로부터 비난받았으며, 에이즈 약을 아프리카에 무상제공하기로 했다는 기사를 보게 되길 바란다.

 

* 하나 더

극중 저스틴 역을 맡은 랄프 라인즈와 테사 역을 맡은 레이첼 와이즈에 주목한다. 랄프는 <해리포터와 불의 잔><러브 인 맨하탄> <선샤인> <어벤져><잉글리시 페이션트><퀴즈쇼><쉰들러 리스트><폭풍의 언덕>과 같은 굵직한 영화들에 출연하여 그의 섬세함을 드러내주었다. 레이첼은 캠브리지 영문학 전공자로 <미이라> <콘스탄틴><런어웨이><컨피던스><아바웃 어 보이><에너미 에 더 게이트><선샤인> <체인 리액션><스틸링 뷰티>에서 강하고 개성있는 연기를 보여주었다. 출연작을 알게 되니 그녀가 영화에서 어떤 역할로 나왔는지 이제야 떠오른다.

두 사람이 호흡을 맞춘 것은 이 영화가 처음 아니며 <선샤인>이란 영화에서 이미 맞춘 바 있다고 한다. 아직 보지 않아 어떤 영화인지 모르지만 조만간 봐야겠다. 영화 내용도 내용이었지만 두 사람의 연기도 정말 멋졌다. 열정적이고 결코 물러서지 않는 레이첼은 내게도 매력있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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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06-05-29 17: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멋진 영화를 전 못 보고 넘어갔어요. 흑흑. ㅠㅠ 비됴로라도 꼭 봐야겠네요.

마늘빵 2006-05-29 2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거 아직도 하는데. -_-; 정말 감동과 분노가 한꺼번에.
 
디셉션 포인트 1
댄 브라운 지음, 이창식 옮김, 고상숙 감수 / 북스캔(대교북스캔) / 2006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댄 브라운의 <다빈치코드> 열풍은 식을 줄을 모르고 있다. 출판계의 바람이 분지 오래, 그 바람이 멈춘다 싶더니 소설을 바탕으로 한 영화 개봉으로 맥이 끊어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덕분에 그의 다른 작품 <디지털 포트리스> 와 <천사와 악마> 또한 <다빈치 코드>를 등에 업고 동반 상승하고 있는 중. <다빈치 코드> 열풍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출판사의 아주 딱 떨어지는 시기적절한 판매전략은 그의 새로운 소설 <디셉션 포인트>로까지 이어진다. 영화 개봉 시기에 조금 앞서 내놓은 <디셉션 포인트>는 <다빈치코드> 열풍이 아니라 댄브라운 열풍으로 판매량을 높이고 있다. 나 또한 그 출판계와 영화계의 상업 전략에 넘어가버렸다. 뻔히 알면서도.

 <디셉션 포인트>는 댄 브라운의 네 번째 소설. 고등학교 수학교사 였던 그가 이 같은 추리/어드벤처 소설을 내놓고 대박을 터뜨리라는 생각은 못했을 것이다. 그는 이제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소설가가 되었다. 솔직히 디센션 포인트>는 <다빈치 코드>나 <천사와 악마> 만큼 흥미진진하고 긴장감 있지는 않다. 댄 브라운의 소설 모두가 그것이 의당 누려할 가치 이상으로  평가받는 것은 말하지 않아도 아는 바, <디셉션 포인트>는 전작들보다 좀더 떨어진다. 좀더 지루하고, 좀더 긴장감 없고, 좀더 엉성하다. 댄 브라운 이라는 이름이 없이 출간되었다면 결코 주목받지 못할 책이다.

  이번에 그가 소설 속에서 다루고 있는 주제는 대통령 선거에 얽힌 나사와 보좌관들의 음모이다. 그는 항상 실제 있는 사실을 토대로 하여 상상의 허구를 가미함으로써 이야기를 만들어나간다. 그것이 그의 장점이다. 정말 실제로 있는 듯한, 진짜로 믿어야만 할 것 같은 그런 음모론을 제기한다. 초반에서 중반으로 넘어가며 긴장감있는 빠른 전개는 돋보이나, 후반으로 넘어가며 그만 끊어도 될 일을 계속해서 사건에 사건을 맞물리고 들어가고 있다. 독자는 지루하다. 그만 소설을 끝내도 좋으련만 원고수를 채우기 위해 이야기를 더 만들었던 것일까. 그다지 썩 추천하고픈 책이 아니다. 댄 브라운 이라는 사람에게 관심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이 책을 읽는 대신 그 시간에 다른 추리물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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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06-05-27 1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사람 소설은 갈수록 이런 평을 받을 줄 알았어요.

마늘빵 2006-05-27 1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명성을 등에 업고 쓴 책이죠 머. 질로서 평가받아야 하는데 이름으로 내세우려니.
파울로 코엘료도 그 같은 케이스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비로그인 2006-05-27 14: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울로코엘료꺼는 정말 갈 수록 실망한 케이스에요..
댄 브라운은 애초에 큰 기대는 안했지만 파울로 코엘료는 연금술사보고 꽤 괜찮다고 생각했었거든요..

loveyourself 2006-05-27 16: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책 볼까했는데..저 지루한거 무척싫어하는데.도움됬어요.

마늘빵 2006-05-27 2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슈슈님 / 네 저도 연금술사 때문에 기대했었는데 뒤로 갈수록 실망하게 된 케이스에요. 댄 브라운도 그러네요. 원래 과대평가 받았다는 생각은 했지만.
공주님 / 처음 뵙습니다. ^^

가넷 2006-05-28 1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코엘료...--;;; 연금술사 보고 뒤에 번역되어 나온 책들 다 질러버렸다가 후회막심...
-_-;

마늘빵 2006-05-28 18: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다 질렀어요. -_-;; 심지어 뽀뽀상자도. 이건 얼마전 벙개를 통해 다른분께 전해드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