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따위를 삶의 보람으로 삼지 마라 - 나답게 살기 위해 일과 거리두기
이즈미야 간지 지음, 김윤경 옮김 / 북라이프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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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근로’가 미덕이라는 믿음이 현대 사회에 막대한 해를 끼치고 있다.(버트런드 러셀)

12
극단적인 표현을 빌리자면 헝그리 모티베이션에 의해 움직이던 인간은 벌레와 같은 행동원리로 움직였다고 할 수 있다. 즉, 배고픔에서 벗어나고자 식량을 찾아 이동하고 위험할 때는 안전한 곳으로 몸을 피한다. 이는 모든 생물의 근본을 이루는 행동원리이므로 결코 잘못되었다고 할 수 없다. 하지만 절대적인 결핍에서 해방된 현대인이 헝그리 정신의 악순환에 더욱더 빠져들어 탐욕스럽게 부와 성공을 좇으며 정보수집에 홀린 오늘날의 모습은 어리석기 짝이 없다. 최근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실존적인 물음을 고민하는 상담자가 늘어나는 현상은 어느 사이엔가 물질적이고 경제적인 만족이 포화점에 달해 이것만으로 더는 우리에게 ‘살아가는 의미’를 부여할 수 없다는 사실을 나타낸다.

22
사람은 자신의 내면에 자리 잡은 공허감을 쫓아내기 위해서 물건을 채워 넣는다. 이러한 사람이 바로 수동적인 인간이다. 수동적 인간은 자신이 보잘것없는 존재라는 불안한 마음에 그 불안을 잊으려 소비하고, 소비인이 된다.(에리히 프롬, "인생과 사랑")

87-88
노동이 가장 경멸받는 최하의 지위에서 인간의 모든 활동 중에서도 가장 높은 평가를 받는 최고의 지위로 급격하고도 눈부시게 상승한 것은 존 로크가 ‘노동은 모든 재산의 원천’이라고 내세운 것이 발단이었다. 그 후 애덤 스미스가 ‘노동이 모든 부의 원천’이라고 주장하면서 노동에 대한 평가 상승은 지속되었고 카를 마르크스의 ‘노동체계’에 이르러 정점에 달했다. 이에 노동은 모든 생산성의 원천으로 인식되고 인간만이 지닐 수 있는 인간성 자체의 표현이 된 것이다. (한나 아렌트, "인간의 조건")

133
개인주의의 출현으로 각 개인에게는 자신에 대한 새로운 책임, 곧 자신다운 자신이 되어야 한다는 의무가 부과되었다. 우리는 모두 낭만주의자이며 따라서 자기실현이라는 관념을 확고하게 믿는다. 이미 주어진 자신을 돌아보지 않고 새로운 자아의 형성만을 목표로 한다. 진정한 자아는 스스로 만들어내야 한다. 이제 노동은 스스로 자아를 창출하는 과정에서의 도구다.(라르스 스벤젠, "노동이란 무엇인가")

182
인생을 음미하는 일이 어딘가 패덕(도덕이나 의리 또는 올바른 도리에 어긋나는 행동)인 듯 비쳐지고, 간신히 노동이라는 고역을 다한 후에 겨우 ‘포상’으로 조금 허락되는 사치쯤으로 인식되는 실정이 아직도 지속되고 있다. 가령 회사원이 업무를 끝마치고 나서도 혼자만 퇴근하기가 꺼려진다거나 유급휴가를 신청하는 것이 눈치 보이는 일 등은 틀림없이 이와 같은 사회 분위기가 빚어낸 전형적인 결과다.

210-211
개미 신앙은 금욕적으로 노동하며 미래에 대비하는 삶을 과도하게 찬양하고, 그 반작용으로서 ‘현재를 위해 살아가는’ 또는 ‘삶을 즐기는’ 일을 옳지 못하다고 인식하는 왜곡된 가치관을 만들어냈다. 괴로운 일을 참고 견디는 것이야말로 정당한 일이고 즐기거나 마음 편한 일은 타락으로 여겨 죄책감을 느낀다. 그러한 심리 상태로 답답한 인생을 살고 있는 사람이 오늘날에도 많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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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줄라 - 몬태나 대학교 성폭행 사건과 사법 시스템에 관한 르포르타주
존 크라카우어 지음, 전미영 옮김 / 원더박스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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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오랜 시간에 걸쳐 읽었다. 실제 미국에서 발생한 몬태나 대학교 내의 성폭력 사건을 다룬 르포르타주이다. 사건을 소설화하여 재현한 이 책 속에는 피해자가 어떤 일을 겪는지, 가해자가 어떻게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는지, 가해자의 주변 사람들이 어떻게 피해자를 고립시키고 낙인찍는지, 주변 방관자들에 의해 가해자가 편안하게 살아가고, 피해자가 2차 가해를 받으면서 고통스럽게 살아가는 현실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수위 높은 강간 범죄뿐만 아니라 우리는 성희롱, 성추행 등을 포함한 성폭력에 대해 관대해서는 안 된다. 피해자는 바로 당신 또는 나일 수 있으며, 나의 아내나 여자친구, 여동생, 어머니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지해야 한다. 가해자의 행위가 아무런 제재나 비난을 받지 않고 시간이 흘러 주변 사람들에 의해 그가 ‘우리’의 범주로 돌아오게 될 때, 피해자는 더 고통스러운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그것은 2차 가해이다. 방관자는 2차 가해자이다. 

때문에 우리는 공감 능력을 키워야 한다. 내가, 나와 가까운 사람이 피해자가 아니라고 해서 남의 일처럼 언급하거나 별 거 아닌 사건처럼 취급하는 순간, 그 일이 내 일이 될 때,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의 일이 될 때, 나는 똑같이 주변 사람에게서 외면 받게 될 것이다.

조민기, 이윤택, 조재현 등 미투에 언급되는 많은 유명인들이 다정다감하고 선한 이미지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실제로 그들은 연기한 것이 아닌, 주변 사람들에게 다정다감하고 선한 사람일 것이다. 그러나 누군가에게 다정다감하고 선한 사람이라도 누군가에게는 나쁜 사람이고 가해자가 될 수 있음을 인지해야 한다. 그리고 그가 선한 사람이고, 다정다감한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면, 그가 누군가에게 나쁜 사람이 된 그 행동과 말을 멈추도록 해야 한다. 

미투의 대상자들은 악인이 아니다. 주변 사람들이 그를 방관하거나 감쌀 때 그의 행위는 더 나빠진다. 때문에 지금, 당장, 그에게 그것은 나쁜 행동이니 멈추라고 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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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줄라 - 몬태나 대학교 성폭행 사건과 사법 시스템에 관한 르포르타주
존 크라카우어 지음, 전미영 옮김 / 원더박스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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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여성을 자신의 행동을 책임질 수 있는 자주적인 존재로 봐야 할까? 당연히 그렇다. 하지만 책임을 지는 것과 강간을 당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여성들은 술이나 약물에 취해 강간을 당하는 게 아니다. 조심하지 않았기 때문에 강간을 당하는 게 아니다. 여성들이 강간을 당하는 건 누군가 그들을 강간하기 때문이다.

51
"단순히 나는 보가 내게 한 짓을 인정하기 싫었던 거예요. 지금은 알겠어요. 사실을 인정하면 거기에 대처해야 하고, 그러면 그게 현실이 되어버리니까요. 충격적인 경험을 마음의 구석방에 넣어두고 빗장을 지른 채 아예 생각을 하지 않으면 마음이 편안하죠. 뭔가가 그 빗장을 열기 전까지는 말이에요."

167
지원자들(미국 해군신병)은 거리낌 없이 연구에 참가했다. "왜냐면 그들은 공통적으로 이런 생각을 갖고 있거든요. 복면을 하고 칼을 휘두르면서 여성을 덤불로 끌고 들어가는 게 강간범이라고 말입니다. 하지만 들키지 않았던 이 강간범들은 마스크를 쓰지도, 칼을 휘두르지도, 여성을 덤불로 끌고 가지도 않았어요. 그래서 그들은 자신이 강간범이라고는 손톱만큼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자기들의 성적 행동에 대해 얘기하는 걸 즐겼습니다." 리삭이 인터뷰한 대학생들 대다수는 또래들로부터 강간 따위를 저지를 리 없는 괜찮은 남자라는 평판을 받았고, 그들 자신도 스스로를 같은 식으로 인식했다.

252
가해자 쪽에 서면 만사 편하다. 모든 가해자와 방관자들에게 요구하는 건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가해자는 악을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않으려는 보편적 욕구에 호소한다. 반대로 피해자는 방관자들에게 고통 분담을 요구한다. 피해자는 행동, 개입, 그리고 기억을 요구한다. ...
죄의 책임에서 벗어나려는 가해자는 망각을 위해 전력을 다한다. 비밀과 침묵은 가해자의 첫 번째 방어벽이다. 비밀의 벽이 무너지면 이제 가해자는 피해자의 신뢰성을 공격한다. 피해자를 침묵시키는 데 실패하면 누구도 그 말에 귀 기울이지 않게 만들려고 한다. 그래서 가해자는 일련의 논쟁거리를 만들어낸다. 노골적 부인에서 정교하고 고상한 합리화에 이르기까지 모든 수단을 동원한다. 극악무도한 행위를 저지른 가해자들은 뻔한 사과를 한다. 그런 일은 없었다, 피해자가 거짓말을 한다, 피해자가 부풀린 것이다, 피해자가 자초한 것이다, 라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과거를 잊고 앞으로 나아가자고 한다. 가해자의 힘과 특권이 클수록 그런 주장은 더 확실히 먹힌다. (주디스 루이스 허먼, "트라우마")

317
노(no)는 분명히 노를 의미합니다. 마찬가지로 예스(yes) 또한 예스를 의미합니다.

336
"실제로 성적인 공격을 받은 여성 대다수는 저항하지 않습니다. 공포에 압도당합니다. 무력감을 느끼는 경우도 많습니다. 저항하면 더 심하게 다칠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의식적으로 저항하지 않는 쪽을 선택하기도 합니다."

336
"솔직히 말해 강간에 관해 우리 대부분이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이겁니다. 머리에 총을 겨눈 것도 아니고, 칼을 들이댄 것도 아니고, 말로 위협을 가한 것도 아니거든요. 하지만 그건 그 행위 자체가 엄청난 공포와 위협을 주기 때문입니다. ... 성폭력과 여타 폭력 사이에는 다른 점이 한 가지 있습니다. 성폭력은 매우 은밀하고 사적인 폭력이라는 점입니다."

454
강간범들은 피해자의 침묵을 이용해 책임에서 벗어난다. 자기 이야기를 밝히면서 그런 침묵을 깨는 것만으로도 피해자들은 강간범에게 강한 일격을 날릴 수 있다. 전면에 나선 많은 피해자들이 불신을 경험한다. 법정에서 정의가 실현되지 않는 일도 부지기수다. 하지만 드러내어 말함으로써 그들은 다른 피해자들에게 자기 이야기를 하라고 격려하는 역할을 하며, 그 과정에서 스스로가 치유됨을 느끼기도 한다. 그림자 속에서 벗어나 성폭행이 얼마나 만연해 있는지를 밝히는 피해자들이 늘어날수록 그들의 힘도 커진다. 이 집단적 강인함이 모든 피해자에게, 너무 두려워 자기 이야기를 하지 못하는 피해자에게도 힘을 준다. 그들이 느끼지 않아도 될 수치심은 대개 고립 속에서 자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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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어 프로젝트 - 남자들만 모르는 성폭력과 새로운 페미니즘 푸른지식 그래픽로직 5
토마 마티외 지음, 맹슬기 옮김, 권김현영 외 / 푸른지식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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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
공감 능력을 키우는 것은 중요하며 근본적인 일이다. 만약 ‘악어’들이 잠깐만 멈춰서 2분 정도만 자신이 성희롱 또는 성폭력을 가하려는 여성의 입장이 되어본다면 절대 악어들이 되지 않을 것이다. (...) 여기서 말하는 현실은 모든 남성이 실제로 성적 포식자라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여성의 관점에서는 남성이 좋은 남자와 공격자, 이렇게 두 가지 범주로 명확하게 나뉘지 않는다는 현실이다. 이 두 범주는 종종 서로 만나고, 섞이고, 혼동된다. 모든 남성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 범주에서 저 범주로 순식간에 옮겨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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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애덤 스미스 씨, 저녁은 누가 차려줬어요? - 유쾌한 페미니스트의 경제학 뒤집어 보기
카트리네 마르살 지음, 김희정 옮김 / 부키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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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경제학은 돈에 관한 것이 아니었다. 애초부터 경제학은 사람을 어떻게 볼 것인가를 살피는 학문이었다. 본질적으로, 경제학은 주어진 상황에서 사람들이 이익을 보기 위해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기술하는 역사였다. 모든 상황에서, 결과가 무엇이든 상관없이.

31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을 집필할 당시 푸줏간 주인, 빵집 주인, 양조장 주인이 일하러 가기 위해서는 그들의 부인, 어머니, 혹은 누이들이 하루 종일 아이들을 돌보고, 청소하고, 음식을 만들고, 빨래하고, 눈물을 훔치고, 이웃과 실랑이를 해야 했다. 어떤 식으로 시장을 바라봐도 그것은 또 하나의 경제에 기초하고 있다. 우리가 거의 이야기하지 않는 경제 말이다.

31
보이지 않는 손이 닿지 않는 곳에 보이지 않는 성이 있다.

52
‘경제’를 뜻하는 단어 ‘이코노미’는 그리스 어로 가정이라는 의미의 ‘오이코스’에서 유래됐지만, 경제학자들은 집에서 일어나는 일에 흥미를 잃은 지 오래였다. 여성들은 내재된 ‘자기희생적 특성’ 때문에 사적 영역에 묶이게 되었고, 이에 따라 여성은 경제적인 존재로 간주되지 않았다.
자녀 양육, 청소, 빨래, 다림질 등의 가족을 위한 활동은 사고팔거나 교환할 수 있는 유형의 재화를 생산하지 않는다.

59
직장에서 일하는 여성은 여가 시간을 집안일에 많이 쓰고, 그래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 더 피곤해진다. 베커는 바로 이 점 때문에 여성에게 더 낮은 보수를 주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주장했다.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 주고 부엌을 치우느라 여성은 남성보다 더 피곤하다. 따라서 근무 시간에 남성과 동일한 노력을 기울일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것이 베커의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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