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수, 화가에게 말 걸다
최병수.김진송 지음 / 현실문화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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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는 자유로운가.
그렇다면 그대는 행복한 것이다.
그대는 행복한가.
그렇다 해도 나는 그대가 자유로운지 아닌지 모르겠다.

- 김용석, 두 글자의 철학 中 -

 

  영혼의 자유를 꿈꾼다며 어디서 주워들은건 있어가지고 이런 글귀 하나 옮겨다가 내 홈페이지에 걸어놓은지도 꽤 시간이 흘렀다. 그러나 난 안다. 내가 영혼의 자유를 꿈꿀 수는 있어도, 영혼이 자유로운 사람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그러기엔 난 너무나 세속적이고 계산적이며 사회의 때가 묻었다. 그래서 난 영혼의 자유를 꿈꾸지만, 언제나, 영혼이 자유로운 사람이 될 수는 없다. 영혼의 자유로움은 마음의 자유로움을 전제로 하고, 마음의 자유로움은 관계로부터의 벗어남에서 시작한다. 난 너무나 많은 곳에 얽매여있고, 그곳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어하지 않는다.

  최병수는 진정 영혼이 자유로운 자이다. 그는 어느 곳에 정착하지도 않으며, 자신이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일지를 신경쓰지도 않으며, 돈이나 기타의 물질에도 연연하지 않으며, 그저 한 몸뚱이 건강하게 살 수 있다면, 동시에 자신이 원하는, 또한 자신이 해야 할 일이 있다면, 세계 어디든 가리지 않고 발벗고 나선다.

  그는 알고 있다. 자신이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이유를. 나는 내가 누군인가를 찾기 위해 철학에 발을 들여놨다. 하지만 그것은 내가 죽을 때까지 알 수 없는, 끊임없이 추구해야 하는 문제라 생각했다. 허나, 이 책을 읽고, 최병수를 접하고, 생각이 바뀌었다. 내가 내 자신이 누구인가를 안다는 것은 가능하다. 내가 살아있는 동안에. 최병수는 안다. 그가 누구인지를. 그리고 그가 무엇을 해야하는지를. 그는 목수이다. 그는 화가이다. 그는 철학자다.

  <목수, 화가에게 말걸다>는 목수의 인생으로 시작해 화가의 인생을 맞이한 최병수라는 사람에 대한 탐색이다. 화가의 인생으로 시작해 목수의 인생을 맞이한 김진송은 묻는다. 그와 반대의 인생을 살아온 한 살 어린 최병수라는 사람에게. 김진송은 풍요로운 가정에서 우리나라 최고 학벌이라는 서울대를 나왔고, 전형적인 엘리트 코스의 삶을 살아온 사람이다. 하지만 그는 언제부턴가 그것을 버리고 그저 한명의 목수로서의 삶을 살기 시작했다. 그런 김진송이 처음부터 가난했고, 학교를 다닐 수 없었으며, 생계를 위해 안해본 직업이 없을만큼 치열하게 삶을 살아온, 그러나 언젠가부터 환경운동가, 행동주의 화가로 변신한 최병수를 만나 대화를 나눈다.   하지만 두 사람이 만나 대화를 나누는 대담집 형식으로 기획되었던 이 책은, 목수 최병수가 화가가 된 김진송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의 형식으로 바뀌었다.

  "처음 이 글을 시작할 때는 대담으로 꾸릴 생각이었다. 그러나 대담은 불가능했다. 아니 그런 형식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는 할 이야기가 많았고 나는 그에게 던져줄 이야기가 많지 않았다. 결국 이 책의 꼴은 그가 그 자신을 말하는 방향으로 선회하게 되었다. 책의 제목도 그렇게 정해졌다. 노동자였던 목수 최병수가 화가가 된 최병수 자신에게 들려주는 이야기 말이다. '목수, 화가에게 말을 걸다'는 그런 뜻이다. 그를 만나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되도록 내 목소리를 내지 않으려 했다. 그의 이야기를 끌어내기 위해 짐짓 침묵하고 때로 화를 돋우며 때로 맞장구를 치며 거든 게 내 일이었다."

  '목수, 화가에게 말걸다'는 그렇게 탄생했다. 제목은 두 가지를 의미한다. 하나는 앞서 이야기한 목수 김진송이 화가 최병수에게 말을 거는 것이요, 하나는 방금 김진송이 밝혔듯 애초 목수였던 최병수가 화가가 된 최병수 자신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다. 김진송은 그런 두 최병수를 매개해주는 역할을 해준다.

  최병수는 매우 할 말이 많은 남자다. 그는 한때 여자친구가 있긴 했지만 - 그 여자친구는 어떤 사람일지 궁금하다 - 결혼하지도 않았고, 부인도 없으며, 아이도 없다. 그는 언제나 혼자였다. 어린시절 부모님과 형제가 있긴 했지만, 그는 언제나 혼자였다. 홀로 공부하고 홀로 돈을 벌며 삶을 배웠다. 어린나이에 학교를 그만두고 생계전선에 나선 것은 그로하여금 더 많은 삶의 공부를 하도록 했는지도 모른다. 공부란 모름지기 책상 앞에 앉아하는 것이 아니라 몸을 움직임으로써 하는 것이다.

   군부독재시절 어느 날 번쩍 목수에서 화가로 탈바꿈한, 그것도 정부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화가로 탈바꿈한 그는 어느날 자신을 돌아보니 환경운동가가 되어있었다.

  "목수보다는 화가라고 말하는게 더 그럴듯하고 기분 좋은거 아니냐고? 그런건 없었어. 나도 세상 물 먹은 사람인데 그런 게 별거 아니라는 건 알지. 그래서 둘이서 30분을 버티고 앉아있었어. 그 형사도 이상한 고집을 피우대. 나를 화가로 적지 못하면 자기도 못나가고 나도 못 나간다는 거지. 그렇게 서로 버티다가 우스운 생각이 들었어. 저쪽에서 친구들이 담배를 피우며 기다리고 있기도 했고, 그래서 어차피 별 것 아니니까 "그럼 마음대로 하시오" 그랬더니 형사가 조서에 '화가' 이렇게 찍었지. 그래서 사람들이 농담을 섞어서 나보고 관제화가라고들 했지. 나를 화가로 만든 건 경찰서야. 난 정부가 인증한 공식화가라고."

  최병수는 어쩌면 그 형사에게 고마워해야 할런지도 모른다. 목수에서 화가로 강제로 직업이 바뀌어버린 그는 사다리 짜주고 못질만 하다가 "그거 개나리요? 아니 왜 진달래는 없소?" 라는 딴지 하나로 진달래 한 송이 그림으로써 화가로 데뷔하여 <한열이를 살려내라><노동해방도><장산곶매><펭귄이 녹고 있다><떠도는 대륙><야만의 둥지> 등의 그림을 그리며 점차 자신의 영역을 넓혀나갔다. 그러나 그것은 그가 자신의 출세를 염두에 둔 계획된 행동이 아닌 그저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을 찾아 떠돌다 얻게 된 결과일 뿐이다. 미술대학은커녕 중학교로 제대로 졸업하지 못한 그는 어엿한 화가가 되었고, 제 5회 교보 생명 환경문화상 환경문화예술 부문 대상을, 2004년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민족예술상 개인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이런 감투들이 그에게 무슨 쓸모가 있으랴. 욕심 하나 없는 그는 그저 자기가 할 일을 열심히 했을 뿐인 것을.

  1960년생인 그의 나이 이제 서른 일곱. 아직 젊디 젊은 나이다. 하지만 그는 정말 치열하게 삶을 산 덕 분에 그의 나이에 걸맞지 않은 일들을 해냈다. 평균 수명의 반도  살지 않은 그가 앞으로 또 어떤 일들을 벌여나갈지 세계 어느 곳에서 활약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아마도 그 자신도 자신의 앞으로의 삶에 대해서 알 수 없으리라. 그는 언제나 계획되지 않은 삶을 살았고, 정처없이 떠돌았다. 유목민은 나에겐 꿈이지만, 그에겐 현실이다. 그런 그가 이제는 정착하고 싶다 한다. 주민등록도, 의료보험도 없는 그가 이제 주소지를 정해놓고 정착하고 싶다 한다. 순박하고 깨끗한 아이들을 가르치며 살고 싶다 한다. 화가가 되기 전까지 19개의 직업을 전전한 그는 이제 화가에서 교육자로 옮겨가고 있다. 또 모른다. 교육자에서 언제 무엇으로 옮겨갈지는. 그의 삶에 박수를, 그의 자유에 박수를 보낸다.

  "이 책을 마무리하면서 그는 그가 내뱉은 말들 중에서 거두어들이고 싶어 하는 이야기들이 적지 않았다. 혹시 자신의 말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상처받거나 함께 일해 왔던 사람들에게 누가 될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런 부분에 대해서도 짐짓 모른 척 했다. 나는 그의 말을 다듬고 내 글을 덧붙이면서 하나의 원칙을 적용하려고 했다. 그건 솔직함이다. 때로 사실과 감정과 논리가 거칠게 드러나고 논리적 모순과 감정의 충돌이 그대로 표출 될 수 있다. 또한 솔직함은 객관적이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객관을 앞세워 논리의 균형을 맞추고 시각의 틈을 조정하며 주변의 정황이 고려되는 타협은 이 글의 원칙을 벗어난다. 그러니 너무 많은 분노를 드러내고 험악스러운 말이 많았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 글에 허물이 있다면 그가 아니라 그를 바라보는 원칙을 허물고 싶지 않았던 나의 탓이다. 하지만 적어도 최병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이로 인해 그에 대한 신뢰를 벗어버리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믿는다. 왜냐하면 최병수의 투명하고 솔직한 행동거지가 그를 미워하고 동시에 사랑하게 되는 이유라는 것을 우리 모두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김진송의 말마따나 최병수의 솔직함은 그의 삶의 바탕이 되었고, 행동의 실천으로 옮겨졌으며, 사람들로부터 미움과 사랑을 동시에 받는 근본이었다.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다고 해서 그의 말이 잘못되었다, 틀렸다 라고 말 할 수는 없다. 그가 거침없이 내뱉는 말들은 논리를 벗어나 삶에 천착하고 있고, 그것은 그 어떤 논리보다 현실적이고, 옳음을 지향한다. 마음을 비우고 그를 접하자. 이 책을 읽기전 난 최병수가 누구인지 몰랐다. 소개글을 보고 아 화가구나 싶었다. 그러나 난 지금 인간 최병수를 만났다. 그리고 그가 너무나 존경스럽다. 그리고 내가 너무나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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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시옷 - 만화가들이 꿈꾸는 차별 없는 세상 창비 인권만화 시리즈
손문상.오영진.유승하.이애림.장차현실.정훈이.최규석.홍윤표 지음 / 창비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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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이시옷>은 <십시일反>의 후속작이다. 2003년 국가인권위원회의 기획으로 10명의  내노라하는 만화가들이 모여 고민을 거듭한 끝에 선을 보인 <십시일反>은 기대치 않은 엄청난 반응과 과분한(?) 평가를 받으며 특별한 언론홍보의 수단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대박을 터뜨렸다. 영화 <왕의 남자>가 이미 본 관객들을 중심으로 한 찬사가 이어지며 주변인들에게 바이러스를 퍼뜨리고 가파른 상승곡선을 이어간 것과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 만화책이 그것도 국가가 기획한 만화책이 그렇게 많이 팔리고 많이 읽고 대단한 평가를 받은 것은 분명 희귀한 현상이다.

  <십시일反>에 이어 2006년 1월, <사이시옷>이 나왔다. 첫번째의 흥행에 이어 국가인권위원회와 10명의 만화가들은 한껏 고무되었고 그들의 열정과 독자에 대한 보답으로 두번째 작품을 내놓았다. 이번에는 8명의 만화가가 참여했다. 전작에 참여했던 손문상, 유승하, 홍윤표 세 사람과 새로 탑승한 오영진, 이애림, 장차현실, 정훈이, 최규석이 가세했다. 새로 탑승한 이들 역시 전작에 참여한 이들 못지 않은 만화가들이고, 이들의 만화 또한 또다른 현실과 감동을 안겨준다.

  이번에도 역시 차별과 편견없는 세상을 위한 만화를 그렸음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될 일. 우리 사회의 편견과 차별의 현장은 차고 넘쳐났다. 이번에는 비정규직 노동자와 동성애자, 장애인, 빈부차별, 비혼모와 군인의 모습을 담아냈다.

  사이시옷이란,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어주기 위한 '시옷'이라는 의미와 사람 人자의 시옷을 의미한다. 제목 한번 잘 지었다.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기 위해서는 편견과 차별이 없는 세상이 와야 한다. 모두가 다 평등하고 정중하게 존중받는 사회가 와야한다. 전작 <십시일反> 과  후속작 <사이시옷>은 충분히 그 역할을 해주고 있다.

  하지만, 전작과 분명 다른 주제를 가지고 차별 철폐와 편견 극복을 노래하지만, 전작의 그 신선함과 위대함(?)을 넘어서지는 못한 듯 하다. 전작에 드러난 풍자를 통한 웃음과 현실의 삶에 밀착해 그려낸 실제같은 이야기와 그림들(일부는 실제사건을 소재로 했다)은 우리가 주변에서 쉽게 관찰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담아냈음에도 불구하고 독자들에겐 매우 충격이었다. <사이시옷>은 전작의 흥행에 힙입어 계속해서 편견과 차별 극복에 대한 관심을 불러오려하지만 전작을 넘어서지는 못한 듯 하다. 그것은 <사이시옷>이 갖는 어떤 단점 때문이 아니라 <십시일反>이 획득한 충격과 찬사 때문이다.

  실력이 뛰어난 뮤지션이 첫 음반을 통해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신선함과 강한 충격을 전해줬을 때, 그는 단번에 대중을 사로잡을 것이나 두번째 작품에서도 그러하리란 보장은 없다. 되려 두번째 작품에서는 첫번째 작품으로 그나 그녀에게 홀딱 반해버린 대중들의 더 큰 기대로 인해 뛰어난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전작만큼의 관심과 평가를 받지는 못한다. <사이시옷> 역시 1집의 충격이 되풀이 되고 있기에 새로운 하나의 작품집으로서 평가받기보다는 1집의 후속작 쯤으로 여겨지는 것은 아닐까.

  단지 현실을 알려주는 정도로 그쳐서는 안된다. 단지 독자가 눈물 한 방울 떨궈내는 정도로는 부족하다. 편견과 차별 없는 세상을 위한 발걸음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현실을 드러내고 보여주는 것에서 독자가 차별 극복을 위해 행동에 나서고, 실천할 수 있도록 자극해줘야 한다. 만화가들에게만 이런 일을 맡기려하는 것은 아니다. 당신들의 노력과 수고가 헛되지 않기 위해서는 그저 그림만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메세지와 강한 호소가 들어있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기왕에 나선 바 여기서 그치지 말자. 알려주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깨달음을 줘야한다. 깨달음을 받고 각자가 실천에 나서 정말 하나의 밥그릇을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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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ni 2006-04-19 2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두 책이 국가인권위원회 기획이라는 건 몰랐네요. 십시일반부터 읽어봐야겠어요.^^

마늘빵 2006-04-19 2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저도 두 권 사서 <십시일반> 먼저 읽고, 바로 이어서 <사이시옷> 읽었어요. ^^ 두 책 모두 후회하지 않을 선택입니다.

비로그인 2006-05-06 2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잘봤어요.. 꼭 읽고 싶은 책이었는데 확신이 드네요..^^ 요번달은 좀 오바를 해서 담달에 꼭 사야겠군요.. ^^

마늘빵 2006-05-06 2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네. ^^ 이거랑 <십시일반>이랑 셋트로 보시면 더 좋을거 같아요.

가넷 2006-10-22 17: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몰랐네요. 교보에 가끔 들리면서 표지만 보고 지나치고는 했었는데. 봐야겠네요.
 
십시일反 - 10인의 만화가가 꿈꾸는 차별 없는 세상 창비 인권만화 시리즈
박재동 외 지음 / 창비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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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十匙一飯. 
 학교에서 가르치길 열 사람이 한 숟가락씩 퍼다가 한 그릇의 밥을 만들어주는 것이라 해석해주었다. 그러면서 이야기하길 우리의 작은 도움의 손길이 사회의 약자들에게 큰 도움이 된다고 말해주었다. 십시일반은 본래 그런 뜻이다. 하지만 이 만화책(?)의 제목은 '십시일反 ' 이다. 되돌릴 반 자를 쓰는 것은, 차별의 의미한다. 또한 차별 없는 세상으로 되돌아가자는 메세지이다.

 언제부턴가 '국가인권위원회'라는 곳이 생겼고, 사람들은 너도 나도 목소리 높여 인권을 이야기한다. 초등학생들 일기장 검사하는 것도 인권침해요, 직장에서 신체검사 내용을 본인이 아닌 다른 이들이 알고 있는 것 또한 인권침해요, 이력서에 학력과 부모님 직업을 적는 것도 인권침해요, 학교에서 아이들이 매맞는 것도 인권침해다. 17-8세기의 시민혁명 이후의 유럽사회, 그리고 미국사회에서 자유와 평등의 실현을 맞이했다면, 그 자유와 평등은 이제 '인권'으로 나아가고 있다. 유럽과 미국과 같은 선진사회에서 먼저, 그리고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인권은 매우 중요한 키워드가 되고 있다.

  어디까지를 인권으로 볼 것인가. 어디까지를 인권침해로 볼 것인가. 인권이 이야기되던 어느 시점부터 끊임없이 들려오는 인권에 대한 다양한 목소리를 들으며 때로는 인권침해라고 이야기되는 그것들이 '관용'을 넘어서 '무조건적인 수용'으로 받아들여지는 듯 해 씁쓸하기도 하다.

  국가인권위원회는 10명의 만화가를 모아다 '십시일반'이라는 책을 지어냈다. 박재동, 손문상, 유승하, 이우일, 이희재, 장경섭, 조만준, 최호철, 홍승우, 홍윤표. 만화를 즐겨 보지 않는 나로서는 대략 들어본 이라고는 박재동과 홍승우, 홍윤표 뿐이다. 하지만 책장을 넘기며 그들이 정성스럽게 그려낸 만화를 보며 이들의 그림이 익숙함을 깨닫는다.

  각기 다른 주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고, 다른 스타일로 그림을 그려내는 이들이 모였다. 인권문제를 가지고 만화로 그려내겠다는 그 시도는 그 자체만으로 매우 어렵게 느껴진다. 하지만 이들은 사회 곳곳의 차별을 찾아 발품을 팔고 자료를 수집하고 고민과 고민 끝에 여기 실린 만화를 창조해냈다. 10명의 만화가가 모여 한 작품씩 내놓음으로써  十匙一飯. 을, 그리고 편견과 차별의 없앰을 주장함으로써 십시일反 을 만들었다.

  외국인 노동자 차별, 학력 차별, 지역 차별, 남녀 차별, 장애인 차별 등등 사회 곳곳에 숨어있는 여러가지 차별의 현장을 하얀 종이 위에 펼쳐놨다. 하나하나 만화를 보고 생각하며 지하철에서 때로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옆에 아주머니가 힐끔힐끔 쳐다보며 아마도 그렇게 생각했을테다. 아니 무슨 만화를 보면서 눈물을 다 흘려. 애도 아니고 다 큰 청년이 만화를 보고 있담.

  리뷰를 쓰며 한장 한장 만화를 다시 읽어보는 지금도, 가슴이 울컥 할 때가 있다. 재밌고 유쾌하게 풍자한 만화도 있는 반면, 너무나 구체적이고 삶에 밀착하여 있는 그대로 드러낸 만화도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실화이기도 했다. 티비 어느 프로그램에서 보면서 흘렸던 그 눈물은 만화를 보는 지금의 그것과 다를 바 없다. 정말 잘 만든 책이다. 이것을 그저 만화책이라고 부르고 싶진 않다. 하나의 책으로서 간직하며 가끔씩 꺼내보며 처음의 눈물을 간직하고 싶다.

  한 가지 이 책에 대해 지적할 것이 있다면, 몇몇 분들도 지적했듯 차별에 대한 차별, 편견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 그려진 만화의 내용들은 우리 사회의 차별과 편견의 한 단면이다. 같은 상황에서 그렇지 않은 분들도 많다만 이 만화에서는 차별과 편견의 현장을 그려내느라, 인권침해를 그려내느라, 사회의 어두운 면만을 부각시킨 점도 없잖아 있다. 그것이 불가피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한편으로는 찜찜하다. 어두운 사회 이면의 밝은 사회를 지워버린 것만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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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천 2006-04-19 2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들에게 읽고 생각하게 만들어야 할 책입니다.

마늘빵 2006-04-20 1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사마천님 저도 그리 생각하여 기말고사 수행평가에 넣었습니다. 만화라 짧은 시간에 부담없이 읽을 수 있고, 생각할 거리들도 많고 해서요. 수행평가로 너무 힘들어 해서 글자책을 읽으란 소리는 못하겠더군요.
 
십시일反 - 10인의 만화가가 꿈꾸는 차별 없는 세상 창비 인권만화 시리즈
박재동 외 지음 / 창비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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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참 이상한 동물이다. 이 세상에 자기와 아주 똑같은 사람이 존재하는 것도 끔찍 스럽게 여기지만, 자기와 다른 사람을 반기지도 않는다. 자기아 비슷한 사람을 만나면 차이를 찾으려 애쓰고, 자기와 다른 사람을 만나면 자기와 같지 않다고 문제를 제기한다. 이와 같은 인간의 이중성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그것은 한마디로, 남에 비해 자기가 우월하다는 점을 확인하면서 스스로 만족해하는 인간의 저급한 속성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겠는가. 인간의 이런 속성은 필연적으로 차이를 차별의 근거로 삼는다.
(홍세화, <이상한 동물> 中)-2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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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6-04-19 2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부분 언어영역 문제집 지문에서 봤어요 ㅡ,.ㅡa

마늘빵 2006-04-19 2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렇군요. 십시일반 책 뒤에 수록된 홍세화 씨의 짧은 글에 있는 부분이에요.
 
목수, 화가에게 말 걸다
최병수.김진송 지음 / 현실문화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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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달라진 것이 없었다. 그런 그를 생각하면 내 머리가 복잡해지곤 했다. 그는 늘 단호하고 투명하고 거침없이 말하고, 민첩하고 정확하게 행동했지만, 내가 보기에, 그를 둘러싸고 있는 세상은 늘 미심쩍고 모호하고 불안했다. 그는 거칠고 고집스럽고 직전적으로 말하고 안하무인에다 우격다짐으로 행동했지만, 내가 보기에, 세상은 그가 감당할 수 있는 것보다 조금 더 절묘하고 신중하고 합리적으로 돌아갔다. 때로는 그가 매우 어리석고 무지한 운동가처럼 보였으며 때로는 그가 매우 현명하고 영악스럽게 자신의 의지를 실현해 가는 투사처럼 보였다.
-14쪽

화가가 되기 전 그의 직업은 무려 열아홉 가지다. 중국집 배달원을 시작으로 전기공, 웨이터, 막노동꾼, 배관공, 목수 등등. 그가 그렇게 많은 직업을 전전했던 이유는 '탓'이 많았기 때문이다. 사장이 돈을 떼어먹거나 부당한 일을 시키거나 손님이 마음에 안 들거나 몸을 다치거나 하는 그런 탓이다. 그만큼 그가 먹고살기 위해 선택한 직업의 세계도 녹녹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한번도 자신이 잘못했기 때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싸우고 대들고 말썽을 일으켰다. 그리고 그것을 그가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이었다.-32쪽

언제부터인가 누군가의 투쟁은 누군가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 묻혀 버렸다. 생각하고 싶지 않을 만큼 끔찍한 무관심이 일상화되어 있다는 사실조차 아무도 알지 못한다. -81쪽

그런데 이제 와서 자꾸만 나는 최병수를 그가 서 있는 자리에서 끌어내리고 싶었다. 어느 누구보다 실천적 삶에 충실한 그의 손과 발을 꼼짝 못하게 묶어놓고 싶었다. 그에게 신념보다는 갈등을, 확신보다는 의문을, 실천보다는 사색을, 단호함보다는 주저함을 말하고 싶었다. 그것은 솔직하게 말하자면 그의 언어를 다듬어낼 수 있는 내면적 깊이를 그가 가져주기를 바라는 심정이었다. 물론 이건 나의 오만일 것이며 주제넘은 생각이라는 걸 모르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늘 그의 생각과 말과 행동이 이 사회에서 정당하게 요구할 수 있는 가치들과 정확히 일치하는 것이 불안했다. 그는 절대적으로 옳은 쪽으로 생각하고 사회적으로 올바른 방향으로 행동한다. 물론 그는 스스로를 '정당한' 이데올로그의 실천무기일 수 있지만 그 스스로 이데올로그가 될 수는 없다고 규정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럴수록 나는 그가 가지고 있는 생각들이 사회적으로, 정치적으로 '올바른' 가치들과 완벽히 일치하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그의 생각의 여지가 많지 않다는 것을 말하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왔다. 제발 너의 생각을 말해줘. 아니다. 그는 자신의 생각을 알아주지 않는 나를 답답해 하고 있을 것이다. -143-144쪽

신화적인 세계 속에서는 사물 혹은 동물은 인간과 항상 동등한 위치에 놓인다. 인간과 자연의 대화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세계다. 우리들이 흔히 오해하듯이, 신화 속에서 곰이나 호랑이가 나타나는 것은 그 영물들이 오래전에 살았던 어느 부족이나 세력을 상징하기 때문이 아니다. 신화적 세계에서는 자연이나 동물들이 인간과 다름없이 말을 주고받거나 인간과 유사한 생각과 행동을 지니고 있거나 혹은 인간이 신과 엇비슷하게 변신하거나 신이 인간의 곁에서 더불어 살아간다. 그러나 그 세계가 인간 세계의 은유와 상징으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인간과 곰이 동등한 입장에 있지 않는 세계 속에서는 신화가 창조되지 않는다. 다시 말하면 신화적 상상력은 사물과 현상에 대한 인간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지적편견'이 가득한 곳에서는 자라지 않는다. 오늘날 신화가 창조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24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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