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 뉴욕에 가다 - 역사 모노드라마
하워드 진 지음, 윤길순 옮김 / 당대 / 2005년 8월
품절


"생산의 끊임없는 변혁, 모든 사회적 조건의 부단한 교란, 항구적인 불안과 동요는 부르주아 시대를 그 이전의 모든 시대와 뚜렷하게 구분 짓는 특징이다. 모든 고정된 견고한 관계가 낡고 고색창연한 편견 및 의견과 함께 한 순간에 날아가 버리고, 새롭게 형성된 관계 역시 미처 뿌리를 내리기도 전에 모두 낡은 것이 되어 버린다. 모든 견고한 것이 공기 속으로 사라져 버린다." (마르크스, <선언> 中) -22쪽

"자신의 생산물을 팔 시장을 끊임없이 확장시켜야 할 필요성은 부르주아지를 전지구상으로 내몬다. 그래서 부르주아지는 모든 곳에 둥지를 틀고, 모든 곳에 뿌리를 내리고, 모든 곳에서 연고를 맺어야 한다. ... 예전에 한 지역이나 한 나라에 틀어박혀 자급자족하던 때와 달리, 이제는 사방에서 왕래가 이루어지고 국가들 사이에 보편적인 상호의존이 나타난다." (마르크스, <선언> 中) -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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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의 공중부양
이외수 지음 / 동방미디어 / 2006년 3월
구판절판


그대가 비록 타고난 재능이 없더라도 공중부양이 불가능하다고는 생각지 말라. 그대가 만약 이 책을 충분히 숙지하고, 노력하고나 미치거나 즐길 수만 있다면, 그대에게도 '떴어요'라고 표현될 수 있는 공중부양의 날이 오고야 말 것이다. -6쪽

대부분의 한자어들은 사어다. 특히 문학적 문장에서는 한자어들을 잘못 남발하면 문장으로서의 전달력 설득력 현장감 생동감이 떨어질 가능성이 짙다. -13쪽

글은 쓰는 자의 인격을 그대로 반영한다. 사물의 속성을 파악하는 일은 사물과의 소통을 시도하는 일이며 사물과의 소통을 시도하는 일은 사물과의 사랑을 시도하는 일이다. -49쪽

그대는 어떤가. 비록 고수는 못 될지언정 한평생 하수로 머물러 있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고 싶다면 일단 달라질 각오부터 다져야 한다. 지금까지 자신이 간직하고 있던 자나 저울부터 과감하게 내던져 버려야 한다.
내가 달라지기 이전에 세상이 달라지는 법은 없다. 내가 달라지면 반드시 세상도 달라진다. 그대는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대는 아직 달라져 본 적이 없는 하수다.
인격과 문장은 합일성을 가지고 있다. 문장이 달라지면 인격도 달라진다. 인격이 달라지면 문장도 달라진다. 그대가 조금이라도 격조 높은 인생을 살고 싶다면 현재의 자신에게 탈피하라.
-90쪽

지성은 뇌안의 범주에 속하고 인간을 아는 경지에 이르게 만들고 감성은 심안의 경지에 속하며 인간을 깨닫는 경지에 이르게 만든다.
감정은 오로지 마음에 의해서만 생성되고 마음에 의해서만 감지되고 마음에 의해서만 표출된다. 그러나 감성은 마음 바깥에 있는 것들에 의해서 척박해지기도 하고 무성해지기도 한다. 마음 바깥에 있는 것들과의 교감이 없으면 감성의 생성이나 감지나 표출은 불가능해진다. -95쪽

그대가 진정한 화가가 되고 싶다면 아이 같은 마음으로 그림을 그려라. (고흐)-104쪽

시는 감정의 표출이 아니라 감정으로부터의 탈출이고, 인격의 표현이 아니라 인격으로부터의 탈출이다. (엘리엇)-186쪽

어려워보이나. 그렇지 않다. 몸소 실천해 보면 엄청나게 신나고 재미있는 작업이다. 펜과 노트만 있으면 된다. 물론 약간의 용기도 필요하다. 실지로 나는 글쓰기 공중부양에 소개된 습작 과정을 모조리 실천해보았다. 어렵고 힘들기도 하지만 신나고 재미나기도 하다. 그것을 실천하는 과정 중에는 글쓰기의 실력이 쥐뿔도 달라지지 않는 것처럼 여겨지기도 했지만 어느새 나는 주요 일간지 신춘문예 당선작가로 변모해 있었다. 어쩌면 이 책의 모든 것을 실천하는 과정 중에 당신도 어느새 당신이 원하는 그 무언가가 되어 있을 수 있겠다. 시인이 될 수도 있고 소설가가 될 수도 있고 극작가가 될 수도 있겠다. 기자가 될 수도 있고 카피라이터가 될 수도 있고 논술 만점을 받는 합격생이 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나는 이 책을 통해 당신이 기술만을 배울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당신의 소망이 몸을 만드는 일. 당신의 진실이 몸을 만드는 일. 당신의 생각이 몸을 만드는 일을 배울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그 모든 것보다 우선해서, 삼십 년 동안 글쓰는 일만을 업으로 삼아온 한 늙은 작가의 진실이 당신이 간직한 진실과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서 발견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기노, '체험의 글'中--27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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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 몽드 살림지식총서 48
최연구 지음 / 살림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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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 나와있는 모든 책들 중에서 가장 싸다고 여겨지는 살림지식총서 시리즈의 48권 <르 몽드>. 정식 책값 3,300원. 인터넷 서점 할인가 2,970원. 정말 싸다. 주간지 값도 안된다. 그리하여 난 값싸고 얇은 살림지식총서 시리즈 중에서 관심가는 주제를 찾아 읽기를 즐긴다. 책세상문고 시리즈도 마찬가지. 이런 작고 깜찍한 책들을 좋아한다. 

  <르 몽드>는 프랑스의 대표적인 신문인 '르 몽드'를 다루고 있다. 독일에는 슈피겔이 있다면, 프랑스에는 르 몽드가 있다. 한국에는 한겨레?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신문 10위 안에(당당 6위) 들어있는 진보적인 언론 '르 몽드'는 유럽에서의 짧은 언론사 역사를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단기간에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언론으로 발돋움했다.  

  르 몽드는 중도적이고 진보적인 신문이지만, 선거 시기와 같은 민감한 국면에서는 좌파적 성향을 띠므로 보통은 중도 좌파 신문으로 분류된다. 프랑스의 두 신문, 르 몽드와 르 피가로가 각각 진보와 보수를 대표하는 신문으로 발행 부수면에서 1,2위를 다투고 있으나, 열독율과 영향력면에서는 르 몽드가 압도적이라고 한다. 르몽드가 1999년 기준 39만부 정도를 기록할 때, 르 피가로는 36만부 정도로 두 신문의 발행부수는 크게 차이나지는 않는다. 발행부수면에서는 우리나라의 조중동을 따라갈 수 없다. 각각 2백만부를 넘는다고 하니. 하지만 발행부수가 지나치게 높다는 것은 그만큼 다양성이 상실된 사회라고 볼 수 있을 터. 우리나라가 대표적으로 그러하다고 볼 수 있다. 그것도 보수지 세 신문이 각각 2백만부를 넘어서고 있으니.  

  1944년에 창간한 이래 르 몽드는 몇번의 경영상의 어려움을 이겨내고 프랑스 최고의, 세계 최고의 언론으로 자리매김했다. 우리나라 신문의 판형이 대판인데 비해, 프랑스에서는 타블로이드판을 선호한다. 르 몽드도 그렇고, 좌파신문 리베라시옹, 또 뤼마니테가 그렇다. 유일하게 우리나라와 같은 판형을 가지고 있는 신문은 보수지 르 피가로 뿐. 이는 유럽사회의, 프랑스의 개인주의에 기인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보기 편하고 휴대하기 좋고, 지하철이나 버스에서도 크게 펼쳐 주위 사람에게 피해주지 않을 정도의 크기를 지닌 타블로이드판. 우리나라에서는 최근 지하철 무가지 신문들이 생겨나면서 타블로이드판형이 널리 보급되었다. 물론 그 이전에도 있긴했지만. 아직까지는 우리나라에서는 타블로이드판은 대판보다 뭔가 천박하고 가볍고 중후하지 못하다는 인식이 강한 듯 하다.  

  르 몽드의 현 회장 장 마리 콜롱바니는 르 몽드의 언론관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콜롱바니가 이야기하는 르 몽드의 첫번째 적은 다름 아닌 '돈'이다. 그는 "신문의 '재정적 독립'이 없다면 기자들의 독립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에 신문의 재정적 독립성이야 말로 언론의 자유를 보장한다고 강조한다.콜롱바니가 말하는 언론의 두 번째 적은 '시간'이다. 즉, '리얼 타임의 독재성'이다. 오늘날 언론은 "권력이 생산-제어-통제하는 정보로 위협받고"있고, "궁극적으로 독점을 갈망하는 일부 대기업들이 언론 영역에 발을 들여놓음으로써 상업주의 정보마저 횡행"하고 있다. 여기에 정보통신의 발달은 사건과 보도 사이의 즉각성을 강요함으로써 "한발 물러서서 성찰하고 분석할 수 있는 거리를 지워버리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1944년 창간 이래 뵈브-메리의 다음과 같은 신문관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고 한다.  

  "진실을, 모든 진실을, 오직 진실만을 말하라. 바보 같은 진실은 바보같이 말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진실은 마음에 들지 않게 말하고, 슬픈 진실은 슬프게 말하라."  

  유의해야 할 점은, 사실보도와 진실보도는 다르다는 점이다. 사실은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것이고, 진실은 사실의 내면에 숨어있는 권력구조와 전체적인 흐름, 진상을 보도하는 것을 말한다. 르 몽드는 무엇보다 '사실'이 아닌 '진실'보도에 주목하고 있다.
  
  또한 르 몽드 신문의 특징으로 뽑을 수 있는 것은, 첫째, 사진을 거의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진은 진실을 왜곡시킬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에 르 몽드는 아주 예외적인 몇몇 경우를 제외하고는 거의 사진을 사용하지 않는다. 아니 그러면 그 많은 공간을 뭐로 채워?  르 몽드는 그 많은 공간을 저명한 필진들의 칼럼으로 대신하고 있다. 르 몽드에는 프랑스 사회의 진보적 지식인들이 필진으로 자리하고 있다. 피에르 부르디외가 대표적. 둘째, 르 몽드는 석간신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문화일보를 제외하고는 전국지 중 석간신문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프랑스는 대부분이 석간신문이며, 이것은 프랑스 언론에서는 특별한 점으로 뽑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셋째, 르 몽드의 수입은 70%이상이 신문판매를 통해 얻어진다. 우리나라의 조선 중앙 동아 신문들이 엄청난 광고로 도배를 하고 수입을 챙기고 있는 반면, 프랑스의 르 몽드는 이를 일부러 멀리하고 있다. 광고는 르 몽드가 독립하는데 있어 방해가 될 뿐이다. 최근 광고 수입이 30%에서 38%로 올라갔다고는 하지만 이도 우리나라에 비하면 아주 미미한 수준이다. 우리나라의 조선, 중앙, 동아일보의 경우는 광고수입만해도 70%가 훨씬 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넷째, 르 몽드의 주식은 기자와 사원들에게 나눠져있다. 조선일보가 86%, 동아일보가 66%, 한국일보가 98%의 지분을 회장일가가 소유한데 비해, 르 몽드의 사장은 2000분의 1만을 소유하고 있을 뿐이다.  

  르 몽드는 '세계'라는 의미로, 자유를 소중히 여기고, 인종주의와 파시즘을 배척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지금껏 대개 국제적인 사건에 있어서, 또 국내의 큼직한 사건에 있어서 이와 같은 르 몽드의 철학을 지켜왔다. 이 책은 르 몽드를 일방적으로 찬양하고 있다. 물론 르 몽드는 마땅히 찬양받을 만하다. 하지만 최근의 덴마크 신문의 이슬람 만평 사태에서 보여지는 르 몽드의 입장에서 지금까지 르 몽드가 지켜왔던 정신을 찾아보기 힘들다.  

  (2005년 9월 30일을 시작으로, 2006년 2월까지 있었던 이슬람 마호메트 풍자 사건에 대한 일지이다. 덴마크가 마호메트 풍자 만평을 실어 그 시작을 알렸고, 이슬람국이 이에 반말하고 사과를 요구했으며, 노르웨이,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등의 주요 신문들이 이를 다시 다룸으로써 유럽 대 이슬람의 싸움으로 번져나갔다. 언론이 불을 지핀 것이나 다름이 없다. )

  지금 이야기하고 있는 세계적인 르 몽드 역시 여기에 한 몫 했으니 말 다하지 않았는가. 진보적인 신문이다, 보편주의를 표방하고, 인종주의와 파시즘을 배척한다던 르 몽드가 여기에 끼어들었다 

 ( 덴마크 만평에 대한 한국일보 기사에는 분명히 '르몽드'를 비롯해 프랑스 독일 스페인 이탈리아 등의 신문들이 표현의 자유를 주장하며 일제히 문제의 만평을 다시 실었다고 되어있다. 표현의 자유 좋다. 하지만 타 문화에 대한 존중도 필요하지 않겠는가. 르 몽드의 철학이라면 오히려 표현의 자유보다 타 문화에 대한 존중의 정신을 강조했어야 하지 않았나 싶다. 결국 이들 유럽의 주요 일간지들의 만평 추가 게재로 유럽 대 이슬람의 폭력사태로까지 사건은 번져나갔다. )

  르 몽드는 짧은 언론 역사에 비해 엄청난 영향력을 지니게 되었다. 르 몽드 신문을 인용한 국제 학술 논문도 부지기수다. 그만큼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일종의 권력으로 볼 수도 있다. 힘이 있는 만큼 르 몽드는 더욱 조심해야 한다. 르 몽드의 발언 하나가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흔히 진보적인 신문으로서 독일의 슈피겔과 프랑스의 르몽드를 손꼽는다. 언젠가 독일어로 슈피겔을 읽는 것이, 프랑스어로 르 몽드를 읽는 것이 꿈이다. 인정받는 진보적인 언론답게 처신을 조심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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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06-03-27 1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거 살림총서였군요. 재밌겠다!

마늘빵 2006-03-27 1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굉장히 얇아요. 출퇴근 시간에 다 읽어요. 이건 무린가. 흠. 이틀 동안 출퇴근하면서는 다 읽을 수 있어요.

릴케 현상 2006-03-27 14: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944년 창간이군요. 예전에 조선일보가 역사가 오래된 것을 자랑하자, 고종석씨 왈 신문의 역사가 가장 긴 프랑스의 르몽드보다 조선일보가 더 오래됐다고 주장하는 것이 조선일보의 뻔뻔함의 증표라고 하더군요. 르몽드는 2차세계대전 때 비시정부하에서 잠깐 독일에 협력한 일이 있어서 그 전까지의 역사를 삭제하고 44년을 창간한 해로 하고 있는데, 조선일보는 일제시대를 거치고 특히 친일기사를 많이 쓰던 때 '조광'(맞나?)신문으로 내다가 나중에 다시 조선일보로 바꿨는데, 조선일보는 조광시절에 쓴 친일기사는 책임지지 않으려고 하면서도 오랜 역사를 자랑할 때는 그 기간도 포함해서 년도를 쓴다고...몇년 전에 읽은 거라 정확하려나=3=3=3

마늘빵 2006-03-27 14: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르몽드의 역사가 원래 더 길었군요. 44년 이전을 잘라먹다니. 이 책엔 그런 이야기는 안나오더라구요. 44년 창간이라고만 하던데.
 
르 몽드 살림지식총서 48
최연구 지음 / 살림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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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컨대, 진실은 땅속에 묻더라도 그대로 보존되고, 그 속에서 무서운 폭발력을 간직한다. 이것이 폭발하는 날, 진실은 주위의 모든 것을 휩쓸어버릴 것이다...... 누가 감히 나를 법정으로 끌고 갈 것인가. (에밀 졸라, "나는 고발한다" 中)-15쪽

콜롱바니가 이야기하는 르 몽드의 첫번째 적은 다름 아닌 '돈'이다. 그는 "신문의 '재정적 독립'이 없다면 기자들의 독립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에 신문의 재정적 독립성이야 말로 언론의 자유를 보장한다고 강조한다.
콜롱바니가 말하는 언론의 두 번째 적은 '시간'이다. 즉, '리얼 타임의 독재성'이다. 오늘날 언론은 "권력이 생산-제어-통제하는 정보로 위협받고"있고, "궁극적으로 독점을 갈망하는 일부 대기업들이 언론 영역에 발을 들여놓음으로써 상업주의 정보마저 횡행"하고 있다. 여기에 정보통신의 발달은 사건과 보도 사이의 즉각성을 강요함으로써 "한발 물러서서 성찰하고 분석할 수 있는 거리를 지워버리고 있다"는 것이다. -36쪽

진실을, 모든 진실을, 오직 진실만을 말하라. 바보 같은 진실은 바보같이 말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진실은 마음에 들지 않게 말하고, 슬픈 진실은 슬프게 말하라.
(창간자 뵈브-메리) -38쪽

르 몽드는 '모든 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을 지향한다. 하지만 독립성과 중립성은 다른 개념이다. 르 몽드는 양비론처럼 모호한 입장을 표방하거나, 중립성을 내세우는 회색 언론은 결코 아니다. 르 몽드의 입장은 오히려 분명하고 명확하다. 특히 인종주의나 극우 이데올로기에 대한 르 몽드의 입장은 비타협적이기까지 하다. -70쪽

르 몽드는 중립적이지 않습니다. 종종 명확하고 단호한 입장을 표명합니다. 유럽통합과 국제사법의 당위성, 프랑스 정부의 부패와의 전쟁 등에 대해서는 명백하게 찬성하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반대로 극단적인 자유주의와 운동 선수들의 약물 복용 문제 등은 분명히 반대합니다. 르 몽드는 휴머니즘과 보편주의를 추구합니다. 우리 신문의 제호는 르 몽드(Le Monde, 세계)이지 라 나시옹(La Nation, 국가 또는 민족)이 아닙니다. 르 몽드는 프랑스라는 한 국가의 관점보다는 우리가 굳게 믿는 휴머니즘과 보편적 관점을 견지합니다. 하지만 정보를 취급하는 것과 신문의 가치 판단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신문의 첫 번째 책무는 독자들에게 다양하고 복잡하며, 다원적이고 상호 모순되기도 하는 모든 정보를 전하는 것입니다. 독자들이 자기 의견을 갖도록 돕는 것이지요. 르 몽드는 자체 노선에 따라 정보를 왜곡하지 않습니다. 신념은 사설로만 표현합니다.
(2000년, 경향신문의 르몽드 플레넬 편집국장과의 이메일 인터뷰 내용)-7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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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06-03-26 2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 책 재밌겠다.

마늘빵 2006-03-26 2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밌어요. 서평은 내일 올릴게욤.
 
이 땅에서 우리말로 철학하기 살림지식총서 24
이기상 지음 / 살림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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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땅에서 철학이 어떤 역할을 해야하는가, 어떤 일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한 철학의 자기성찰적인 책들은 꾸준히 나왔다. 많은 철학자들이, 인문학자들이 이에 대해 고민하고, 자기의 밥그릇 문제 때문이 아니라 정말 순수하게 철학이 없는 사람들, 철학이 없는 국가의 현재 상태에 대해 고민하고 나름대로 그 해결책을 내놓으려 시도하고 있다. 한국외대 철학과 교수 이기상의 <이땅에서 우리말로 철학하기> 역시 이와 같은 고민에서 비롯되어 나온 하나의 작은 결실이다. 그는 "우리가 몸으로 부대끼며 사는 삶의 세계에 바탕한 우리의 고유한 철학이론을 세워보고자 시도해본다. 죽을 수 밖에 없는 유한한 인간의 '철학하기'는 구체적인 생활세계와 그 언어인 일상 언어를 떠나서 행해질 수 없다. 우리는 이 땅에서 우리말로 철학여 우리의 역사와 문화, 현재의 삶의 세계에서 무늬와 결로 아로새겨져 있는 삶의 문법을 우리의 철학으로 체계화 시켜서 제시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 책에서 그 첫걸음을 내딛어 본다." 라고 책을 쓴 이유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지은이는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철학, 대다수의 철학자들이, 철학을 공부한다는 이들이 하고 있는 철학이라는 것은, 서양의 것이고,  우리만의, 이땅에서 필요한 철학이 부재중이라고 진단한다. 세계화 시대를 맞이하여 외국의 이런저런 석학들을 모셔와 이야기를 듣고, 우리의 문제를 그들에게 진단내려달라 한다. 1996년에 리처드 로티와 위르겐 하버마스가 내한했을 때, 한국에 대한 진단과 처방을 내려달라는 우리 학자들의 요구에 그들은 당사자인 한국의 학자들이 더 잘 알 것이라고 말했다. 정답이다. 우리의 문제를 이제 한 번 내한한 그들에게 물어보는 것은 정말 멍청한 짓이었다. 우리의 문제는 지금 이 땅에 발붙여 살고 있는 우리가 더 잘 알고 있으며, 그에 대한 진단과 처방 역시 우리 스스로가 내려야 한다. 나의 문제를 내 고민 없이 타인에게 맡겨버린다는 것은 정말 바보같은 짓이다.

  저저는 이와 같은 한국 철학의 문제를 지적하고서 우리 생활 세계에 바탕한 철학이론 세우기를 시도한다. '사이이론'이라고나 할까. 자연과 사람 사이, 사람과 사람 사이, 문명과 사람 사이가 극도로 파괴되는 혼돈의 시대 속에서 사이의 철학을 강조한다.

  "다만 남의 말이나 자기가 들은 것에만 의지하는 사람은 더불어 학문을 말할 것이 못된다. 하물며 평생토록 마음의 작용과 자연의 현상에 생각이 미치지 못한 사람이랴." (연암 박지원 <열하일기> 中)

  이땅은 외국철학이론의 전쟁터가 되었으며, 우리의 생활에 바탕한 철학이론을 세워야 한다는 지은이는 열하일기의 한 대목을 통해 이를 강조하고 있다.

  세계화 시대에 흔들리지 않는 우리만의 토대가 있어야 하며, 이를 우리 스스로 중심을 잡고 굳건하게 서있을 수 있기 위해서 우리만의 터전이 필요하다(공간성, 영토성), 중심을 잡기 위해 이 땅에 사는 사람들 사이에 공동체 의식이 형성되어야 한다(정체성, 동질성), 우리의 생활 세계와 문화, 역사에 대해 주인이 되어야 한다(주체성), 또 잊지말아야 할 것이 세계상황이다(세계성, 보편성) 라고 하며 몇 가지를 이야기한다.

  이어 그는 서양과 동양의 문화적 차이를 지적하며 서양은 있는 것(존재)에 대한 놀라움으로 철학을 시작했고, 우리는 없는 것에 대한 경외심에서 철학을 시작했다고 하며, 철학의 시작이 다르다고 말한다. 우리는 지금 서양철학의 이성중심, 인간중심적 사고관에서 벗어나 감성과 자연중심적 사고를 해야한다. 이성중심적 세계관은 히로시마의 원폭, 아우슈비츠의 유대인 대량학살이라는 끔찍한 결과로 이어졌고, 우리는 이성중심의 하나의 세계가 아닌 문화, 종교, 언어의 고유성과 특수성을 인정하는 다양성의 세계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인간이란 결국 '사이'의 존재이며, 첫째, 빔-사이(공간). 노동이 도구, 기술, 예술, 생산, 거주라는 방식으로 이어지며 인간은 사이에 있음으로써 빔-사이를 채워나가며 사이를 나름대로 인간적인 과정으로 만들어 나간다. 공간이라는 빔-사이를 없애는 것은 기술로 이루어지는데, 교통과 통신이 그것이다, 라고 이야기한다. 둘째로, 인간, 즉 사람 사이에 있음을 이야기하며, 이에 해당하는 전형적인 행위는 '말'이며, 말의 실천에서 관습, 윤리, 도덕, 사회, 국가가 생겨난다, 사람 사이의 간격을 없애는 것이 평등이며 인권이다. 사람 사아에 있음이 무너지게 되면 도덕,윤리가 무너지게 된다고 말한다. 셋째는, 때 사이에 있음, 즉 시간이다. 이는 역사, 학문, 지평이 생겨나는 공간이며, 인간은 시간적인 존재로 과거를 돌아봄으로써 과거의 전통을 세우고, 현재가 과거에 의해 새롭게 의미를 부여받도록 하며, 더 나아가 미래에 대한 시각을 마련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넷째, 천지간, 하늘과 땅 사이를 말한다. 기도, 감사, 초월, 성스러움, 신, 종교 등으로 이야기되는 차원이며, 인간은 우주적 인 사이에 있음을 책임져야 할 뿐 아니라 하느님과 인간의 사이에서도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한다.   이렇게 그는 때- 사이에 있음(주체성), 빔-사이에 있음(공간성,영토성), 사람-사이에 있음(역사성), 하늘과 땅-사이에 있음(보편성)을 논한다.

  또한 그는 이땅에서 철학하기 위한 조건으로 우리말을 이야기한다. 언어는 세계를 보는 시각이며, 영어공용화나 한자병용과 같은 논의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취한다. 지은이는 철학함을 이끌고 있는 언어에 대한 다음과 같은 열 가지 명제를 소개한다.

  첫째, 언어는 세계를 보는 눈이다. 둘째, 언어는 민족을 묶는 끈이다. 셋째, 언어는 사고방식을 형성해주는 틀이다. 넷째, 언어는 의식의 밑바탕을 이루는 무의식이다. 다섯째, 언어는 정서의 공감대이다. 여섯째, 언어는 자주와 자율의 바탕이다. 일곱째, 언어는 자유와 평등의 조건이다. 여덟째, 언어는 학문을 위한 필수불가결한 전제이다. 아홉째, 언어는 사람 사이의 다리이다. 열번째,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

  우선 그의 한국 철학의 현 세태에 대한 진단과 처방의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 이땅에서 학문하기 위한, 이땅에서 철학하기 위한 나름대로의 고민이 묻어나는 짧은 글이었다. 이땅의 철학이 중심을 잃고 이성중심적인 서구적 세계관을 바탕으로한 서양철학의 전쟁터가 되었다는 그의 말에 동의한다. 하지만, 이를 대체하기 위해, 우리말로 철학하기 위해 그가 제시하고 있는 그만의 처방엔 언뜻 동의하기 힘들다. 아니 동의는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동감은 하기 힘들다. 그의 처방은 적절해보이면서도 어딘가 허전하다. 그것은 그가 제시하고 있는 우리철학이라는 것이 이땅에 발붙여 사는 우리의 구체적인 생활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너무나 추상적이고 뜬 구름 잡는 이야기만 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차라리 그럴 바에야 이미 들어온 서양의 문화, 서양의 철학도 결국 우리의 것이다라는 탁석산의 진단이 더 적절하고 현실성 있어 보인다. 탁석산은 <한국의 주체성>과 <한국의 정체성>에서 우리 것이란 과거에 우리 선조들이 누렸던, 선조들이 말하고 글로 남겨왔던 그것과는 다르다고 말하며, 외국의 것이라도 일단 우리에게 접수된 이상 그리고 우리식으로 변질된 이상 그것은 더이상 외국의 것이 아니고 우리의 것이라고 했다. 헐리우드 액션영화를 본 딴 영화 <쉬리>를 서양의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의 고민과 시도는 좋았으나 너무나 구체적이지 못하다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독일에서 하이데거를 전공한, 서양의 철학을 한 철학자가 서양철학의 지배를 받고 있는 우리네 현실을 지적한다는 점이 참 아이러니하기도 하지만, 그것으로 그의 한국철학에 대한 고민에 꼬투리를 잡을 수는 없을 터. 그는 이를 의식한 탓인지 책의 중간에 이런 말을 하기도 한다.

 "처음부터 일본어의 영향 아래 놓여 있는 우리말 번역어를 전혀 모르면서 독일에서 독일어로 독일식으로 사유하며 철학 공부를 시작한 나에게는 한국에서 철학 공부를 시작한 다른 사람에게 없는 장점이 하나 있음을 조금씩 깨닫게 되었다. 논의가 되고 있는 철학적 사태를 일본어적인 안경을 끼고 보는 것이 아니라 순수하게 우리말의 언어적인 상황에로 옮겨 놓고 우리의 일상세계적 맥락에서 이해해 보려고 시도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그것이었다. "

  우리네 철학에 대한 고민은 끝나지 않았다. 철학과에 개설된 '한국철학'이라는 수업에서는, 지눌과 불교, 권수정혜결사문, 성학십도, 동몽선습, 격몽요결, 사소절, 우주문답, 서유견문, 동경대전과 같은 우리네 선조들의 서적을 읽으며 한국철학을 논하지만, 그것이 한국철학이라는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단지 편의상 철학의 과목을 나누고 이름붙이기 위해 '한국철학'으로 분류했다면 동의하겠지만 말이다. 많은 철학자들이 이땅에서 철학하는 문제를 고민하고 책을 내기도 하지만 아직까지 그들의 책을 읽고 이것이 정답이다 라고 무릎을 칠만한 적절한 진단과 처방을 보진 못했다. 기존의 학자들의 주장과 철학자 이기상의 주장이 별반 다를 것이 없는데 비해, 철학자 탁석산의 주장은 그나마 신선하기라도 했다.

  이 책과 더불어 조동일의 <이땅에서 학문하기>, 최종욱의 <이땅에서 철학하는 자의 변명>, 탁석산의 <한국의 주체성> <한국의 정체성> 을 읽는다면, 더 많은 고민을 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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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10-03-14 2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살림 지식 총서를 모으고 있는 저로서, 관심이 가는 책입니다..사서 봐야 할거 같아요^^

마늘빵 2010-03-15 09:39   좋아요 0 | URL
개인적으로 이기상 교수에 근거없는 호감을 갖고 있습니다. ^^ 그걸 떠나서 이 책은 학문하는 자세, 철학하는 자세에 대해서 생각해볼 만한 꺼리를 제공합니다. 얇은 책이라 출퇴근길에 금방 읽을 수 있을 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