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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적 병에 대한 진단과 처방 - 임상철학
김영진 지음 / 철학과현실사 / 2004년 12월
평점 :
품절
2004년 겨울에 펴낸 한 철학자의 철학에 대한 애정이 느껴지는 책이다. 저자 김영진의 말마따나 우리나라는 철학을 하기 매우 안좋은 풍토를 가지고 있다. 철학하기 나쁜 환경은 일전에 인문학의 위기를 논하던 어떤 인문학자의 의견에서도 볼 수 있듯이, 일부는 인문학, 철학을 하는 이들의 책임이다. 과학의 위기를 논하고 과학의 위기를 극복하자는 말들이 신문과 방송, 책을 통해 수도 없이 쏟아져 나오지만, 인문학의 위기에 대한 이야기는 없다. 얼마전 신문기사를 보면, 인문학부 중에서도 철학과 독문학과 같은 학문은 더더욱 인기가 없다. 전공을 하려는 자가 없고, 성적이 낮은 학생들이 마지못해 커트라인에 잘려 철학과 소속이 된다. 교수입장에서 선배입장에서 철학에 대한 열의가 없는 이들을 학생으로, 후배로 받았으니 기분이 썩 좋을리 없다. 마지못해 그렇게 철학과에 적을 둔 이들은 마음이 없는 철학과를 떠나기 위해 다시 전과를 시도한다.
99년의 봄, 나는 경제학과에서 철학과로 전과를 했고, 철학과의 누군가는 경제학과와 경영학과로 전과를 했으며, 어떤이는 철학에 적을 두었지만, 철학에 대한 불안 때문인지 경영학이나 경제, 컴퓨터를 복수전공하는 이들도 매우 많았다. 막연하게 철학이 좋아서 철학과로 적을 옮기고 이곳에서 학사모를 쓴 나는 이와 같은 철학에 대한 좋지 않은 풍토 속에서 특이한 아이로 찍힐 수 밖에 없다.
서문에서의 저자의 말에 따라, 철학은 "쌀 한 톨도 고무신 한 짝도 만들지 못한다."
"물질적인 것을 생산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철학은 거의 무능력하다고 말해도 결코 틀린 말이 아니다. 오죽했으면 철학 공부하면 밥벌이 못하고 굶어죽는다는 말까지 나왔겠는가? 필자는 이런 점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국가, 사회 그리고 개인들에게 철학이 끼칠 수 있는 영향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정말 크다 할 수 있다. 이 책은 철학과 현실을 접목시키기 위해 쓴 것이다. 그래서 구체적인 문제를 많이 다루었다. 그리고 철학적 병을 다루면서 진단하고 처방하는 작업을 했다. 독자들은 철학적 병이 무엇인지 매우 궁금할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해 궁금증을 풀 수 있을 것이라고 필자는 믿고 또 희망한다. "
저자의 철학에 대한 열정이 느껴져 기쁜 동시에, 철학을 하는 이가 철학이 필요해요, 제발 철학에 관심 좀 가져주세요, 라고 외치는 것 같아 슬프기도 하다. 이 책은 지금까지의 철학의 분류방식에서 나타나는 형이상학, 논리학, 윤리학, 분석철학, 심리철학, 인식론, 존재론 등과는 다르다. 저자는 '임상철학'이라는 또 하나의 새로운 철학을 가지고 나온다. 하지만 그 토대는 지금까지의 철학에 바탕을 두고 있다.
우리사회에는 많은 문제점들이 있고, 그것을 치유하는데 있어서 여러가지 분야에서 처방전이 나오지만, 어떤 문제에 대해서는 철학이 그 처방전을 써야 한다고 이야기를 한다. 병에는 육체적 병과 정신적인 병이 있고, 또 하나 철학적인 병이 있다. 이 철학적인 병을 치유하는데 있어서는 당연 철학이 그 치유제가 되어야 한다. 철학적 병을 진단하고 진단에 따라 적절한 치료와 처방을 하는 철학의 새로운 분야를 '임상철학'이라 칭한다.
철학적 병은 육체적 병과 달리 주사나 약이 필요하지 않다. 객관적으로 드러나는 육체적 병과 달리 철학적 병은 객관적인 기준이 없기 때문에 많은 논란이 있을 수 있다. 철학적 병은 매우 가치 지향적이다. 또한 육체적 병과 정신적 병이 주로 본인에게만 해당하는데 비해, 철학적 병은 나를 넘어 가족, 사회, 국가 등의 타인에게 영향을 행사한다. 그래서 더 위험하고, 치유가 시급하다. 저자는 철학적 병의 예로서 몇가지 구체적인 예를 들고 있다. 광신주의, 애국주의, 파시즘이 그것이다. 어떤 잘못된 믿음으로부터 시작된 전통적인 고정관념 역시 이에 해당한다.
철학자 김영진은 철학적 병을 진단하고 이를 처방하기 위한 방법으로, 윤리와 가치관적 차원에서 본 철학적 병과 잘못된 논리로부터 생기는 철학적 병, 또 인식론의 차원에서 살펴본 철학적 병으로 나누고, 이에 대한 처방을 시도한다. 그 시도는 매우 신선해 난 그의 주장에 푹 빠지고 말았다. 하지만 그의 주장을 따라 책을 읽어나가며 아 뭔가 부족하다, 아직 정리가 안되어있다, 아직 미숙하다, 라는 생각을 떠나보낼 수 없었다.
우리사회의 병폐와 문제점에 대해 철학이 치유의 역할을 해야한다는 저자의 주장에는 적극 동감하고, 그 시도도 매우 훌륭하다 생각하지만, '임상철학'이란 새로운 분야에 대한 체계적 정립은 좀더 시간을 가지고 연구해 나가야 할 사항이라 생각한다. 저자의 열정은 내 마음에 전해졌지만, 저자의 이론은 내 머리에 완전히 와닿지는 않았다. 철학을 좋아라하고, 철학을 사랑하는 나로서는 저자의 연구가 좀더 진행되고, 그의 주장에 동감하는 사람들이 많이 늘어나길 바란다. 저자 혼자만의 노력으로 해결 될 일은 아니다. 그의 주장은 좀더 다듬고 보충한다면 충분히 설득력이 있으며, 철학이 외면받은 현실에서 해야할 '현실적인 과제'를 찾을 수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어쩌면 이 책은 새로운 '임상철학'을 소개하는 책이 아니라, 철학이 이 땅에서 할 수 있는, 현실에 도움을 줄수 있는, 제 역할을 찾기 위한 책인지도 모른다.
추가하며.
이 책을 좀더 자세히 뜯어본 결과, 이런 결론에 도달했다.
임상철학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려고 한 시도와 우리 사회의 문제점들을 철학적 병으로 규정하고, 철학의 제 역할을 찾아주기 위한 노력은 좋았으나, 실패했다. 저자 자신은 주장을 함에 있어 구체적이고 튼튼한 근거를 대지 못했고, 논란의 소지가 많은 부분을 저자 자신이 철학적 병으로 규정함으로써 저자 또한 철학적 병을 앓고 있지는 않는가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전쟁에는 정당한 전쟁과 정당하지 못한 전쟁이 따로 있다는 말, 이것은 아마도 부시의 이라크 전쟁과 뒤이어지는 우리의 파병을 지지하기 위한 우회적인 발언이 아닐까 싶다. 모든 전쟁은 잘못이다라는 주장을 하는 이들을 철학적 병을 앓고 있는 이들로, 또한 광신주의에는 좋은 광신주의와 나쁜 광신주의가 있다는 발언 등등 매우 민감하고 예민한 부분들, 또 어떤게 잘못이고 잘못이지 않은지 검증되지 않은 부분을 건드림으로써 저자는 자신이 의사로서 환자를 처방하는 절대 권력을 지닌 자로 올라선다.
시도면에서 참신했기에 긍정적인 평가를 하려했으나, 재차 읽어본 지금, 그다지 좋은 점수를 주지 못하겠다. 철학 교수로서 논리적이지 못한 글을 쓴 죄도 숨길 수 없는 부분이다. 주장이 있으면 그에 걸맞는 튼튼한 타당한 근거가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는 주장만 있고 근거가 없는 이야기들을 풀어내고 있다. 논리적으로 매우 문제가 많은 글이며, 철학교수라는 직함이 어울리지 않는다.
다시말하거니와 시도는 좋았으되 내용은 실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