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적 병에 대한 진단과 처방 - 임상철학
김영진 지음 / 철학과현실사 / 2004년 12월
품절


우리나라의 철학적 환경이나 풍토는 나쁘다. 철학적 환경이 나빠진 데 대한 부분적인 책임이 철학을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들에게도 있음을 솔직히 인정한다. 그러나 철학이 앞으로 사회에 기여할 것이 많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필자가 철학도이기 때문에 단지 아전인수격으로 말하는 것이다. 철학은 쌀 한 톨 만들지 못하고 고무신 한 짝도 만들지 못한다. 물질적인 것을 생산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철학은 거의 무능력하다고 말해도 결코 틀린 말이 아니다. 오죽했으면 철학 공부하면 밥벌이 못하고 굶어죽는다는 말까지 나왔겠는가? 필자는 이런 점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국가, 사회 그리고 개인들에게 철학이 끼칠 수 있는 영향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정말 크다 할 수 있다.
이 책은 철학과 현실을 접목시키기 위해 쓴 것이다. 그래서 구체적인 문제를 많이 다루었다. 그리고 철학적 병을 다루면서 진단하고 처방하는 작업을 했다. 독자들은 철학적 병이 무엇인지 매우 궁금할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해 궁금증을 풀 수 있을 것이라고 필자는 믿고 또 희망한다. (서문 中)-5-6쪽

윤리적 이기주의는 심리적 이기주의와 다르다. 윤리적 이기주의가 당위적인 가치 판단이라면 심리적 이기주의는 심리적 사실을 주장하는 사실판단이다. ... 중략 ...

먼저 보편적 윤리적 이기주의는 모든 개인은 각자의 이익을 가장 많이 증진시킨다는 것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다음으로 개인적 윤리적 이기주의는 모든 개인은 나의 개인적 이익을 가장 많이 증진시키는 행위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끝으로 고립적 윤리적 이기주의는 나는 오직 개인적 이익을 가장 많이 증진시키는 행위를 해야한다고 주장한다. -68-6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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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책 일루저니스트 illusionist 세계의 작가 4
카를로스 마리아 도밍게스 지음, 조원규 옮김 / 들녘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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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험한 책. 책을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결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책 제목이다. 아니 도대체 책이 뭐가 위험하다는거지? 모든 책은 위험하다 아니면 이 책은 위험하다.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이 책의 제목은 전자와 후자 중 어떤 것을 의미하는 것일까. 전자를 의미한다면 그것은 책에 관한 책이 될 것이요, 후자를 의미한다면 금기가 되었던 책을 뜻하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해봤다.

  마치 추리 소설 한편을 보는 듯한 줄거리 진행. 예전에 읽었던 <꿈꾸는 책들의 도시>가 떠올랐다. 저자불명의 책의 주인을 찾아 떠나는 여행, 그리고 쫓고 쫓기는 추격전, 위험을 무릎쓰고 이 책을 사수할 가치가 있는가. <위험한 책>은 <꿈꾸는 책들의 도시>만큼 흥미진진하고 긴박하진 않지만 책을 좋아라하는 이들의 고충과 위험(?)을 충분히 재밌게 보여준 소설이다.

  읽고 난 뒤에 줄거리가 남는 소설이 있고, 읽고 난 뒤에 이미지가 남는 소설이 있다. 이 책은 후자이다. 또한 전에 읽었던 <꿈꾸는 책들의 도시> 또한 그러했다. 남미 특유의 냄새가 난다고 할까. 남미의 소설들 많이 접하지 않아 단정적으로 말하긴 어렵지만, 분명 남미의 냄새는 있다. 줄거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읽고 난 뒤에 줄거리보다는 책의 이미지들이 연상되는 것은 정말 신기한 일이다. 유독 남미 소설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일이다.

  이 책의 곳곳에 숨어있는 림들은 줄거리를 이미지화 시키는 하나의 작업이다.  그림이 들어있다고 해서 지금 내 머리 속에 이미지만 뚜렷히 남아있는 것은 아닐 터이다. 이 그림을 그린 자 또한 원고를 읽고서 머리 속에 떠오르는 연상물들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일진대 그것은 정말 탁월했다. 중간중간 들어있는 그림들만으로도 책을 다 읽은 것만 같은 느낌을 지니게 한다.

  이 책속엔 책을 좋아하라는 애서가의 이야기가 들어있다. 책을 본격적으로 보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는 나로서는 자그마한 내 방에 모셔둔 책이라고 해봐야 얼마 되지 않는다. 큰 책장 하나 다 채우고, 작은 책장 몇개 채우고, 읽고 바닥에  쌓아둔 책들이 전부. 그중에 내가 다 읽은 책도 있고, 아직 읽지 않고 보기만 하면서 뿌듯해 하는 책들도 있다. 대개 후자의 책들은 철학책. 칸트의 <순수이성비판>. 대학 때 분명 칸트연구 라는 과목을 수강했지만, 내게 남아있는 칸트의 이론은 없다. 중국 무협영화에서 태극권을 익힐  때처럼 무술을 터득하고 난 뒤 까먹는 것이 아니고, 정말 내 머리 속에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을 읽은 기억은, 그냥 읽었다는 기억뿐이다. 호메로스의 <일리아드>, 헤겔의 <정신현상학> <법철학>, 그리고 선배로부터 물려받은 마르크스 서적들. 이런 애들은 그냥 보는 것만으로도 뿌듯하다.

  얼마되지 않는 책이지만  방이 워낙 좁은지라 놔둘 곳이 없다. 책을 좋아하는 이들은 다들 이런 고민을 매일 같이 안고 살 것이다. 버릴 수는 없다. 왜냐면 가까운 돈 탈탈 털어가며 지른(흔히 인터넷 서점 블로그를 운영하는 이들 사이에서 책을 구입하는 것을 '책을 지른다'라고 말한다) 책들이기 때문에. 결코 버릴 수 없다. 한번 읽고 다시는 안보게 될 책들이 수도 없이 많지만 그렇더라도 버릴 수 없다. 난 책을 좋아하는 것인가, 책을 수집하길 좋아하는 것인가. 이쯤되면 이런 고민이 생길 밖에. 애서가냐 수집가냐?

  난 수집가인 동시에 애서가이다. 내가 수집가라는 것은 도서관 책을 거의 빌려보지 않는다는데서 생각해볼 수 있다. 가벼운 소설 한 권을 읽더라도 난 내 책이 아니면 읽기 힘들다. 도서관 대출 기한이 정해져있기 때문일까, 아니면 도서관 책이 더럽기 때문일까, 줄이 쳐져있고, 찢어져서? 아니다. 도서관 책은 읽으면서 마음이 편하지 않다. 때문에 난 소설 하나를 읽더라도 사서 본다. 그리고 사서 읽은 책은 반드시 소장한다. 다 읽었다고 아는 이들에게 책을 뿌리거나, 헌책방에 넘기는 일은 결.코. 없다. 그러니 난 수집가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난 애서가다. 책을 그 자체로서 좋아한다.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그 사람이 날 좋아하든 아니든 간에, 또 그 사람이 날 알든 모르든 간에 그 사람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다. 싱긋. 싱긋. 난 책을 좋아한다. 책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집에 들어와 방문을 열고 책장 가득 채우고 있는 나의 사랑스런 책들을 보고 있노라면 행~복 그 자체. 한때는 책방을 운영하고 싶기도 했다. 장사가 안될거라는 걸 뻔히 알면서. 고될 거라는 걸 알면서. 그래도 책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할 것 같아 그런 생각을 해봤다.

  "애서가로서 우리는 친구들의 서가를 심심풀이로 염탐하곤 한다. 읽고 싶지만 수중에 없는 책을 발견할까 해서, 또는 그저 지금 눈앞에 있는 저 짐승 뱃속에 뭐가 들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다. 우리의 동료들은 혼자 응접실에 있게 되면 분명 책장 앞에 서성거리며 킁킁 냄새를 맡고 있을 것이다."(P18)

  책이 많다는 누군가의 집을 방문하게 될 때면, 먼저 살펴보는 것은 그 집이 얼마나 넓은가, 어떤 가구들이 있고, 티비는 몇인치인가, 컴퓨터 환경은 어떤가가 아니라, 주인장의 책장이다. 책이 얼마나 많은가, 또 어떻게 꾸며놨는가, 분류방식은 어떠한가, 어떤 주제들을 즐겨 읽는가 등이 나의 관심사이다. 저자는 이를 "책장 앞에서 서성거리며 킁킁 냄새를 맡"는다는 표현을 썼다. 정말 그렇다. 음식 앞에 둔 강아지마냥 남의 책장 앞에서 냄새를 맡고 어떤 음식인지 살핀다.

  "서가를 만드는 사람은 인생 전체를 세우고 있다고 할 수 있거든요. 결코 아무 계획 없이 모아놓은 책들이 아니란 뜻입니다. "(p30)

  지금 나의 책장에 꽂혀있는 저놈들은 나의 인생이다. 나의 관심사의 변천에 따라 책은 하나 둘 꽂히면서 주제를 바꿔가면서 차곡차곡 쌓여 나의 지나온 인생 전체를 바라볼 수 있게 만들어준다. 저놈들은 나의 어린시절부터 함께 해왔던 나의 일기장이다. 책을 볼 줄 몰랐던 그 시절에 골랐던, 지금 보면 저걸 왜 샀는지 이해가 되지 않을 그런 책들도 있다. 책이 좋았으나 뭘 읽어야 할지 몰랐던 시절, 서점가서 아무거나 집어 사들고 걸어오는 길은 너무나 행복했다. 그러나 와서 책을 읽어보면 잘못 샀구나 하는 걸 깨닫는다. 깨달으면 다행이다. 깨닫지 못하고 그냥 내용도 모르고 읽어버릴 때가 있다. 책은 내 인생이다. 서가는 내 인생이다. 그 사람의 서가를 보면 그 사람의 인생이 보인다. 지금으로부터 한 10년 후쯤 내 서재를 보고 오늘의 날을 기억할지도 모른다. 살며시 입가에 웃음짓고서.

 오늘도 난 책을 지른다. 어서 오너라. 주문버튼을 누른지 얼마나 됐다고 또 택배배송현황을 뒤져보고 있다.

 

 

** part 2 **

  책은 위험하다. 사면 또 사고 싶고, 사놓은 책을 다 읽기도 전에 또 사고 싶고, 그러다보니 집에 책은 많은데 '읽은' 책보다 '읽을' 책이 훨씬 많아지고, 아니 이걸 언제 다 읽어, 하고 걱정하면서 눈에 띄는 신간서적이 나오면 또 지른다.

  책은 위험하다. 좁은 방을 채우고 또 채우고, 그러다 나의 편안한 잠자리를 해치고, 언제 바닥에서부터 쌓아둔 책들이 철퍽 하고 나를 덮칠지도 모른다. 책장이 쓰러져 내가 사랑했던 책들에 깔려 생을 마감한다면 난 행복할까? 아 아무리 책을 사랑한다고 하지만, 그렇더라도 책에게 죽음을 당하곤 싶지 않다. 또 책 모서리로 맞으면 얼마나 아픈데. 딱딱한 신간 양장본 책 모서리로 머리 한대 쥐어박히면 그 아픔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아픔을 느끼기 전에 이미 나의 눈에서 눈물 한 방울 톡 하고 떨어진다. 엉엉 울어버리기도 전에.

  책은 위험하다. 책을 읽느라 지하철을 타고 가다 내릴 역을 지나치는 경우가 한 두번이 아니다. 아 여기가 어딘가 일단 내려본다. 처음부터 엉뚱한 방향으로 탔다. 명동에서 삼각지 방향으로 가려는데, 명동에서 동대문까지 올라갔다. 한줄 두줄 읽다 한장 읽고 나면 벌써 몇정거장 지났다. 그런 적이 한 두번이 아니건만 난 매번 지하철에서, 버스에서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낸다.

  책은 위험하다. 책을 읽는 시간 때문에 연애를 못한다. 정말? 엄... 글쎄. 책을 읽고 반드시 글로 흔적을 남기는 나의 편집증적 습관때문에 EX 걸프렌드는 내게 뭐라 한적도 있다. 심각하다고. 음. 그래 심각한거 알아. 그런데 어떡해. 안그럼 불안한걸. 

  책은 위험하다. 정서불안을 야기한다. 하루라도 책을 보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다고 누가 그랬더라. 정말 그렇다. 어릴 땐 몰랐다. 그런데 지금은 그렇다. 하루라도 책을 보지 않으면 미칠 것만 같다. 아무리 바빠도 버스를 타고 있는 짧은 순간에라도 잠깐이라도 책을 읽는다. 그래야 마음이 편안하다. 이건 정말 병이다.

  책이 위험한 이유는 열거하자면 끝이 없다. 그러니 책을 읽지말자? 그건 아니야 그건 아니야. 그래도 책은 읽어야 해. 이유는 없어. 읽어야 할 이유는 없어. 굳이 이야기하자면 나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기 위해서.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고 결혼을 생각하면, 그 사람이 가진 것 하나 없다고 해도, 앞으로 고생문이 훤히 보인다고 해도, 위험을 무릎쓰고 결혼을 강행하는 것처럼, 책이 아무리 위험하다고 해도 난 책을 읽을래. 난 책을 사랑하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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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06-03-15 2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어제 하드커버 디따 두꺼운 책 발등에 떨어뜨려서 까졌어요. 책은 정말 위험해요.

마늘빵 2006-03-16 0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젠틀매드니스 주문했는데 그것두 디따 두꺼운거 같아요. 책값도 장난아니시구. 하이드님은 더 조심해야돼요. 책무덤을 만들어두 남을듯. ㅋ

stella.K 2006-03-16 1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엔 저도 님 같았는데요, 요즘엔 슬금 슬금 남도 주고 그래요. 가벼운 수필류나 소설 같은거. 하지만 묵직하고 소장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는 책은 남 주면 안되죠. 이 책 읽어보고 싶네요.^^

마늘빵 2006-03-16 1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마치 <꿈꾸는 책들의 도시>를 읽는거 같아요. 그거만큼 흥미진진하진 않지만 책에 대한 많은 생각을 하게 해줘요.

stella.K 2006-03-16 16: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꿈꾸는 책들...그거 괜찮은가 보죠, 전 표지가 좀 그래서 읽다가 실망하면 어쩌나 해요.

마늘빵 2006-03-16 2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그거 재밌던데요. ^^
 
위험한 책 일루저니스트 illusionist 세계의 작가 4
카를로스 마리아 도밍게스 지음, 조원규 옮김 / 들녘 / 2006년 2월
품절


책 한 권을 버리기가 얻기보다 훨씬 힘겨울 때가 많다. 우리는 궁핍과 망각 때문에 책들과 계약을 맺고, 그것들은 다시는 되돌아오지 않을 지난 삶에 대한 증인처럼 우리와 결속되어 있다. 책들이 자리를 잡고 있는 동안 우리는 축적의 환상을 가질 수 있다. 어떤 이들은 책을 읽을 때마다 정신적인 소득을 기입하듯 해와 달과 날을 기록하곤 한다. 또 어떤 이들은 첫장에 자기 이름을, 공책에 빌려갈 사람의 이름을 적고 난 연후에야 책을 빌려주곤 한다. 공공 도서관처럼 도장을 찍고 소유자의 카드를 꽂아놓은 책들도 본 적이 있다. 책을 잃어버리는걸 달가워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차라리 반지나 시계, 우산 따위를 잃는 편이, 다시는 읽지 않더라도 낯익은 제목만으로도 우리가 과거에 누렸던 감정을 일깨워주는 책 한권을 잃는 것보다 훨씬 낫다.-17쪽

애서가로서 우리는 친구들의 서가를 심심풀이로 염탐하곤 한다. 읽고 싶지만 수중에 없는 책을 발견할까 해서, 또는 그저 지금 눈앞에 있는 저 짐승 뱃속에 뭐가 들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다. 우리의 동료들은 혼자 응접실에 있게 되면 분명 책장 앞에 서성거리며 킁킁 냄새를 맡고 있을 것이다. -18쪽

서가를 만드는 사람은 인생 전체를 세우고 있다고 할 수 있거든요. 결코 아무 계획 없이 모아놓은 책들이 아니란 뜻입니다. -38쪽

"당신은 그저 책들이 서가에 모여서 저절로 불어나는 것 같겠지요. 그건 잘못된 생각이에요. 저는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군요. 그런 생각은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입니다. 사실은 서가의 주인이 특정한 주제를 선택하고 시간이 지나면 온전한 하나의 세계를 완성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 이게 더 나은 비유일 수도 있겠네요. 말하자면 우리는 흔적이 남는 하나의 여행을 마치는 셈이지요. 물론 말처럼 쉬운 건 아닙니다. 하나의 과정이 들어있어요. 가장 먼저, 가지고 있지 않은 책들의 목록을 작성합니다. 그리고 그 책을 구하게 되면 그 책에서 다음 책에 대한 지시를 얻습니다. 아참, 내가 무척 느리게 읽는 애서가라는 점을 밝혀야겠군요. 나는 인용문의 출처까지 모두 다 꼼꼼하게 읽으면서 모든 상념의 의미를 여러 관점에서 조명해본답니다. 그러니 한 권의 책을 읽을 때는 늘 스무 권의 책들을 주위에 놓아두게 되지요. 때로는 한 챕터를 읽기 위해 그러기도 한답니다. 이렇게 몰두하는 일이 나에겐 상당히 매혹적이지요."-38쪽

책읽기란 완전한 침묵에 잠기는 일이 아니지요. 우리의 목소리가 언제나 함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악기가 악보를 연주하듯이 목소리는 읽는 행들을 연주합니다. 그리고 이런 읽기는 눈으로 읽는 것만큼 중요하다고 확신합니다. 단어와 문장들에서 음과 멜로디를 이끌어내는 거지요. 그래서 낮게 음악을 깔아주면 고막 안 깊은 곳에서 자신의 목소리와 스피커에서 나온 음악의 조화로운 화성이 이루어집니다. 이때 음악이 몇 데시벨만 더 커져도 목소리를 압도해 텍스트를 침묵하게 만들거나 망가뜨리고 맙니다. 조악한 산문을 읽을 때도 좋은 음악을 곁들이면 느낌이 좀 괜찮아지지요.-60-61쪽

며칠 뒤, 나는 신간에 대해서 무관심해졌다. 또한 할인된 가격에 파는 책들의 그 모든 유혹에도 넘어가지 않았다. 심지어 나는 먼 외국에서 보내온 것까지 포함해 내게 도착한 책들을 거의 읽지도 않은 채 도서관에 기증해버렸다. 나는 내가 어떤 책 한권에라도 흥미를 느낄까봐, 그래서 그걸 집으로 가져가 점점 손쓸 겨를 없이 불어나는 책들의 거대한 식민지에 추가하고, 그 책들이 벽을 따라 쌓이고 복도로 넘쳐날까 봐 지레 겁이 났다. -95-9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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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한 철학자들 - 도서관에서 뛰쳐나온 거장들 이야기
프레데릭 파제스 지음, 최경란 옮김 / 열대림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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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관에서 뛰쳐나온 거장들 이야기'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유쾌한 철학자들>은 철학을 하지 않는 이들도 쉽게 접해본 철학의 거장들의 사생활 이야기이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라는 유명한 명언을 남긴 데카르트, "네 의지의 준칙이 보편적 입법의 원리에 맞게하라"고 가르친 칸트, 변증법 아래 철학의 체계를 굳건히 세운 헤겔, 또 저 멀리 거슬러 올라가 "너 자신을 알라"하고 광장에서 청년들에게 깨달음을 준 소크라테스, 또 그의 제자 플라톤, 그리고 또 그의 제자 칸트, 염세주의 철학의 대표주자이며 말년에 미쳐 고생했다는 니체 등등 여기에 등장하는 철학자들의 이름은 모두 익숙하다.

 
  철학강의를 통해 대학에서 접하는 그들의 난해하고 딱딱한 이론들, 도통 무슨 소리를 지껄이는지 알 수 없는, 한 학기 동안 몇장 나가지도 않았는데 학기가 끝나고 배운 거 하나 없는거 같은, 오히려 약간의 지식에서 무지로 회귀하는 이런 신기한 현상을 빚는 그런 철학과는 다르다. 엄밀히 말하자면, 이 책은 철학서가 아니다. 아마도 짐작컨대 이 책은 도서 분류목록에서 '철학서'로 분류될 것이다. 제목에 '철학'이라는 말이 들어갔고, 내용도 철학자를 다루고 있으므로. 하지만 이 책은 철학서가 아니다. 그냥 잡서다. 그 대상이 철학자일 뿐 이 책은 유명인들의 뒷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 황색저널리즘과 다른 점은 거짓 사실을 유포하지 않는다는 것일 뿐.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내가 그토록 찾던 책이었고, 매우 만족스럽다.
 
  책의 앞 부분에는 꽤 많이 각각의 철학자들과 관련된 그림과 이에 대한 해설로 장식되어 있다. 앞에 나와 있는 사진과 그림과 글들은 뒤에 언급할 철학자들의 사생활 이야기를 간략하게 맛만 보여주고 있다. 드러내지 않고 살짝살짝 호기심을 증폭시킨다고나 할까. 그럼 더 읽고 싶어지잖아.
 
   이 책이 다루고 있는 철학자의 사생활을 주제별로 분류해보자면,
  첫째, 과거로부터 시대별로 철학이 어떻게 대우를 받아왔는지, 또 철학자들은 뭘 먹고 살며 생계를 유지했는지에 대해 다루고 있다.
 
  둘째, 위대한 철학자들은 위대한 인물들의 스승이다. 그들의 제자는 과연 어떤 놈팽이였는지, 아니면 어떤 현자였는지를 언급해주며,  철학자들의 실패한 교육을 이야기한다. 꽤나 재밌다. 위대한 철학자라고 하여 위대한 스승이 될 수는 없으며, 설사 위대한 스승이라 할지라도 막무가내 놈팽이를 다룰 재주는 없었다.
 
  셋째, 그들에게 있어 철학은 어떤 의미였는가.
 
  넷째, 철학자와 여인들 그리고 연애사건. 끝까지 독신을 지키며 살아간 철학자도 있지만, 문란한 성생활을 하며 온갖 사건들을 만들며 살아간 철학자들도 있다. 사르트르와 보부아르, 아우구스티누스와 여인, 마르크스와 예니 또 헬렌, 니체와 루 살로메, 루소와 테레즈, 콩트, 알랭, 데카르트와 헬렌, 소크라테스와 그의 부인 크산티페, 키에르케고르와 레기네, 하이데거와 크라테스의 아내들, 또 특정 여인이 아닌 이런저런 매춘부들과 관련된 이야기들.
 
 다섯째, 철학강의의 스타일. 철학이 대학에 자리잡은 것은 그리 오래된 것이 아니며, 철학교수라는 직함이 생긴 것도 칸트에 있어서 처음이라 알고 있다. 각각의 철학자들의 강의 스타일과 인기도를 살펴본다.
 
  여섯째, 늦잠, 빈둥거림, 게으름의 철학자들. 시간을 꼬박꼬박 지키며 바쁘게 살아간 칸트와 같은 철학자도 있지만, 해가 중천에 떠서야 눈을 뜨고 뭉기적뭉기적 거리며 하루를 시작하고, 걸핏하면 침대에 누워 잠을 자고, 일어나 책을 읽고, 또 자고 하는 데카르트와 같은 이도 있다.
 
 일곱째, 계시받은 철학자. 니체, 데카르트, 루소, 바그너, 칸트 등 계시를 받은 철학자와 그렇지 못한 철학자에 대해 다루고 있다. 한 예로 소크라테스는 다이몬으로부터 소리를 듣고 행동의 지침을 삼았다고 하지. 그러다가 결국 법정에서 그의 죄목 중 하나로 국가가 섬기는 신이 아닌 다른 신을 섬겼다라고 하여 억울한(?) 누명을 쓰지만.
 
  여덟번째, 철학자의 마지막 순간. 누구는 미쳐죽고, 누구는 감기걸려 죽고, 누구는 시간맞춰 죽고, 누구는 거룩하게 죽으려다가 비참하게 죽고, 누구는 살려준다는데 죽음을 택하고, 누구는 쇠똥 속에 갇혀 죽고, 누구는 화형당하고, 누구는 소화불량으로, 또 바다속에서 수영하다 죽었다. 참 죽는 방식도 가지가지다. 위대한 철학자라고 하여 죽음까지 위대할 순 없나보다. 한 예로, 거룩하게 소크라테스와 같은 죽음을 시도하려다 뜻대로 안돼 여러번의 시도 끝에 죽음을 맞이한 이가 있으니 세네카. 소크라테스가 쓴 독약을 준비해뒀지만 이미 김이 다 빠져나가 쓸모가 없어지자 동맥을 끊으려는데 이런 끊어도 죽지 않자 심장마비를 일으키려고 한증막에 들어가 서서히 죽음을 맞이한다. 죽고 싶어도 함부로 죽을 수 없는게 우리네 인생이구나 싶다.
 
  이 책은 참 여러가지 다양한 주제들을 가지고 철학자의 사생활을 캐낸다. 알아먹을 수 없는 그네들만의 언어로 쓰여진 위대한 저서를 낸 이들의 삶도 일반 평민의 그것과 다를 바 없다는 생각도 들고, 또 한편으로는 참 독특한 인생을 살다간 이들이 많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 그들의 사고방식 만큼이나 그들의 삶도 달랐고, 여자관계에 있어서도, 죽음에 있어서도, 강의방식에 있어서도, 그들은 모두 각기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오래전부터 나는 이런 책을 찾아왔다. 철학자의 순수 1차서적이 아닌 그들의 뒷이야기를 담아낸 책들을. 그래서 <지식인의 두 얼굴>, <지식인의 죄와 벌> 과 같은 책을 구입했다. 이 책도 그들의 뒷이야기를 담아낸다는 점에서 다른 두 책과 다를 바는 없지만, 분명히 다른 것은, 그들 책만큼 심각하지 않고, 웃으며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가볍게. <유쾌한 철학자들>은 그래서 철학자의 사생활을 적나라하게 까발렸음에도 불구하고 유쾌하다. 남의 잘못과 실수를 보고 웃는 것은 도리가 아니지만, 그래도 웃긴걸 어쩌랴. 특히나 철학자들과 여인들의 이야기는 더더욱 재밌을 것 같아, 또 궁금해서 그 장까지 참을 수 없어, 미리 들춰보고 말았다. 니체와 루 살로메, 지식인의 전형으로 보여지는 사르트르와 보부아르의 독특한 연애관, 찢어지게 가난한 삶을 산 그러나 부유한 집안 여식과 결혼을 한 마르크스, <에밀>이라는 뛰어난 교육에 관한 저서로 이름이 오르내리는 그이지만 아이를 낳는대로 다 내다버린 루소 등등 역시 이런 뒷이야기는 너무나 재밌다.
 
  어느 장 하나 빼놓을 수 없는 재미를 선사하는 <유쾌한 철학자들>. 철학자들의 딱딱하고 지루하고 고루한 말과 글에 지친 그대여, 그들의 사생활로 풍덩 빠져들어 볼까. 그들의 사생활을 알고 그들의 철학서를 접하면 더 재밌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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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한 철학자들 - 도서관에서 뛰쳐나온 거장들 이야기
프레데릭 파제스 지음, 최경란 옮김 / 열대림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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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간에 대를 잇는 철학자는 없다. 철학자의 길을 걷는다는 것은 자신의 혈통과 절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193쪽

아벨라르는 그녀에게 접근해 보려고 시도했다. 그는 이 촉망받는 아가씨의 교육을 심화하기 위하여 얼마간의 개인지도가 필요하다며 폴베르를 설득시키기에 이르렀다. 이렇개 해서 늑대는 양의 우리로 들어갔다. 그 순간의 육체적 폭발, 너무나도 오랫동안 억눌러진 체액의 해일, 그들의 육체적 결합의 격렬함을 묘사하는 데에는 '첫눈에 반하다'라는 표현은 충분치 않다. 누가 누구를 이끄는가? 책들이 구겨지고, 성가대 악보 받침대가 엎어진다...... . 아리스토텔레스의 글귀 위에 떨어지는 정액! 참으로 대단한 주해가 아닌가! -202쪽

엘로이즈는 지상에서 가능한 모든 부드러움과 모든 육체적 쾌락을 맛보았다. 애무뿐 아니라 구타까지 당하였다. 20년이 지난 훗날까지 엘로이즈는 아직도 식지 않는 감동에 복받쳐 무릎을 떨면서 지난날의 스승이자 연인인 아벨라르에게서 당했던 짜릿한 구타와 타박상의 추억을 이야기했다. -203쪽

"본질을 수호하고, 국가 내에서 우리 국민의 내적인 힘을 증진시키기 위하여 자신을 희생시킬 수 있는 용기가 여러분 각자의 내부에서 한없이 커져나가기를 바라는 바이다! 여러분의 존재의 규칙이 하나의 독단적 교의나 사상이어서는 안될 것이다! 우리의 지도자, 그 분 한 분만이 독일의 현재와 미래의 현실이며, 독일의 법률이다. 항상 보다 깊이 깨닫는 법을 배워나가야 한다. 차후 모든 일은 결단을 요구하며, 모든 행동은 책임을 요구하게 될 것이다. 히틀러 만세!" (하이데거) -220쪽

"나는 눈물과 슬픔이 단지 여자들에게만 속한다고 생각하는 부류의 사람이 아니다" (데카르트)
"책을 읽을 때면, 그 책에 대한 경탄감이나, 적어도 몇몇 구절이 주는 감동이 번번이 눈물로 나타난다."(알랭)
"종종 나는 내 자신의 몸에서 벗어남으로써 스스로를 각성하게 된다"(알랭) -226-227쪽

사상가에게 죽음은 작업의 일부이다. 그것은 그가 남기는 마지막 저서의 마지막 자이 될 것이다. 따라서 임종의 순간을 망치거나, 그의 죽음을 관심있게 지켜보는 우리를 실망시켜서는 안된다. 죽어가는 철학자로부터 우리가 바라는 것은 어떤 스타일 또는 어떤 고귀함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마지막 순간에 철학자가 재치를 과시할 기분이 약간이나마 남아 있다면, 픽하고 쓰러지기 전에 후대에 선사해 줄 근사한 한 마디 말까지도 우리는 기대해본다. -23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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