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드보일드 하드 럭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요시토모 나라 그림 / 민음사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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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울로 코엘료에 이어서 이 작가 한번 파보자, 하고 나에게 찍힌 두번째 작가, 요시모토 바나나. 코엘료 만큼이나 그녀의 저서들도 많은지라 한꺼번에 구입해서 읽기는 경제적 부담감의 압박이 다가오고, 몇몇 끌리는 책들을 선정해서 곁에 두고 하나하나 꺼내보고 있는 중이다. 처음 최근작 <불륜과 남미>를 괜찮게 봤고, 두번째로 <하드보일드 하드럭>을 집어들었다. 무엇 보다 그녀의 다른 책들보다 이 책이 내게 간택(?)받은 이유는, 표지 때문이다. 아 이 귀엽고 깜찍한 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우울해 보이는 시선과 슬픈 분위기는 너무나 매력적이다. 분명 순진하고 귀여운 아기인데 표정과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 저주와 분노도 읽힌다.

  요시모토 바나나의 소설은 모두 짧다. 짧은 여러 단편들이 모여 하나의 책을 이룬다. 이야기가 있고, 사건이 있는 긴 소설을 선호했던 나로서는 처음에 적응이 안됐지만, 오히려 지금은 짧고 간결하게 농축되어 있는 이와 같은 소설들이 좋아졌다.

  <하드보일드 하드럭>은 죽음을  소재로 하고 있다. 나의 단짝이었던 친구가 죽었다. 그녀의 기일이 되자 여러가지 묘한 일들이 발생하고, 오싹오싹한 분위기를 연출해내는 이 소설, '하드보일드'. 한 여름밤 불 다끄고 스탠드 하나 켜놓고 보면 딱이건만 때를 잘못 만났다. 또 하나의 소설은 나머지 '하드럭'. '하드럭'은 '불운'이다. 뇌출혈로 식물인간이 된 언니, 보내줘야 한다. 결국 언니는 안락사를 통해 세상을 떴다.

  두 소설 모두 쉽게 줄거리가 와닿거나 하진 않는다. 짧은 글 속에 하고픈 이야기를 농축시켜 담다보니 서사 위주로 모든 것을 담아낼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처음엔 읽는데 애를 먹었다. 아직 내가 바나나의 소설에 적응이 덜 된 듯 하다. 이 책을 읽고 난 뒤의 느낌은, 딱 처음 이 책의 표지를 접했을 때의 그 느낌과 동일하다. 어쩜 저렇게 표지 그림을 딱 떨어지게 선정했는지.

  순수하고 마냥 귀여울 것만 같은 어린아이의 눈빛 속에 담긴 분노와 저주, 두려움과 슬픔은 두 소설을 모두 담아내고 있다. 소설은 절대 슬프지만 슬프지 않다. 내용을 보면 분명 슬퍼야 하는데, 눈물도 흘려주는게 맞는 거 같은데 절대 눈물 뚝 떨어지지 않는다. 이 슬픔은 너무나 슬퍼서 눈물 조차 낼 수 없는, 가슴에 모든 슬픔을 담아낸 표현할 수 없는 슬픔과는 다르다. 정말 슬프지 않다. 소설 속 등장인물들은 모두 슬픔을 겉으로 표현하지 않는다. 가슴속에 담아두지도 않는다. 있는 그대로 자신의 슬픔을 드러낼 뿐인데, 나의 가슴 속 감정을 드러낼 뿐인데, 슬프지 않다. 너무나 건조해서 감정이 있는 사람들일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울지 않을 뿐, 눈물을 보이지 않을 뿐이다. 이렇게 절제된 슬픔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그들은 슬픔을 표현하지 않는다. 저 멀리 고요한 넓은 바다 저편에서 밀려오는 보이지 않는 파도처럼 슬픔은 보이지 않는다.

  한편으로 무섭고, 오싹하면서, 한편으로 슬프지만 슬프지 않다. 아 뭐 이런 감정이 다 있어, 하겠지만 정말이다. 이 책을 읽고 난 나는 아무렇지도 않다. 난 표지그림 속 저 아이가 된다.

 "살아있는 사람에게 누군가의 죽음이란 몸이 부서져 없어졌을 뿐, 기억으로, 추억으로, 꿈으로, 그리고 부재의 인식으로 영원히 남아 있지 않나 싶습니다. 없음이 있음으로 함께하지 않나 싶습니다." 라는 옮긴이의 말은 요시모토 바나나가 이 소설에서 그려내는 죽음에 대해 적절하게 표현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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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leinsusun 2006-03-05 1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바나나 전작주의자가 되려 하시는군요.^^
전 바나나 책들을 80% 정도 읽은것 같아요.
<키친>이랑 <몸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 가 젤로 좋았고,
개인적으로 "NP"가 젤로 싫었어요.
아프락사스님은 어떠실지 모르겠네요. <키친>은 정말 귀여워요. 읽어보시길...^^

마늘빵 2006-03-05 2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몸은... > 그거랑 이거 밖에 안봤어요. 아직. ^^; <키친>이 제일 많이 팔린걸로 알고 있는데 이거 집어들고 조금 보다가 필이 안와서 다시 놔두고 요골 집어들었어요. 표지그림은 언제봐도 넘 귀여워요.

구름의무게 2006-03-06 1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바나나 책 전 정말 다 좋았어요. 제가 너무나도 좋아하는 작가중 한명이죠. 민음사에서 나온 책은 몇해전 묶음으로 싸게팔때 구입한 뒤로 새로 나올때마다 야금야금 사모아서, 다 갖고 있어요. 정말 좋아해요! ^^ 꼭 다 읽어보세요. ^^

마늘빵 2006-03-06 1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도 전집으로는 묶어져 있는데 절판이라고 나와요. 그래서 따로 따로 야금야금 사고 있어요. 다들 바나나가 좋다고 해서 저도 코엘료의 아픔을 딛고 바나나 걸 전부 읽어보려고요.
 
책과 세계 살림지식총서 85
강유원 지음 / 살림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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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유원의 이름은 익히 들어왔다. 요새는 읽지 않고 있는, 하지만 몇년전에 빠져들었던 <한겨레21>의 뒷편에 '유토피아 디스토피아'란 꼭지에서 강유원을 처음 접한 듯 하다. 이 사람의 사유가 참 맘에 든다, 라는 느낌으로 그 이름을 기억했고, 여러 곳에서 그의 이름을 언급하는 사람들의 글을 읽었다.  

  그는 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 철학자와 다른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했고, 같은 대학원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나, 한 회사에서 웹에디터로 생계를 꾸려나가고 있다 들었다. 당시 <씨네21>에도 '철학자'가 아닌 '회사원'이라는 이름으로 소개되었던 그가 지금 회사를 그만뒀는지 어쩐지는 잘 모른다. 현재 출신 대학 강단에서 강의를 맡은 것으로 알고 있고, 회사를 겸하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현재 그가 어디에 적을 두고 있건, 그는 분명코 일반 강단 철학자들의 방식과는 다른 방식으로 철학을 했다는 점은 인정할 수 밖에 없다.   

 아무리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라 할지라도 직업이 되었을 때와 취미로 남았을 때의 그것은 분명히 다르다. 좋아하는 일을 취미로 할 땐 부담 없이 즐기면 되지만, 생계의 수단으로서 할 땐 심한 압박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러다보면 스트레스와 압박에 못이겨 좋아하는 것이 '싫어하는 것' 되어버리는 경우도 허다하다. 하나의 구체적인 행동으로 표현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철학에 적용시켜도 좋을지는 모르겠다. '철학자'라는 직업(?)은 사실상 직업이라기엔 너무나 추상적이고 막연하며 별다른 돈벌이의 수단으로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기껏 '교수'라는 직함 정도가 '철학자'와 연계지어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강유원은 누가 돈을 주지 않아도 꾸준히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철학을 해왔다. 그의 홈페이지에는 그가 철학한 흔적들이 고스란히 드러나있다. 결국 혼자만의 그 작업들은, 강단철학과 별개로 그가 철학하는 또다른 통로이고 방법이었으며, 오랜 사유를 통해 뽑아낸 흔적들은 책이란 매체를 통해 결과물로 탄생했다. <주제> <몸으로 하는 공부> <장미의 이름 읽기> <서양문명의 기반> <책> 등의 저서들은 그의 철학의 결과물이기도 하지만  '따로'에서 '같이'로 넘어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 혼자만의 철학적 작업은 처음에 '따로'였을지 모르지만 하나의 책으로 묶여 나왔다는 점에서 이제 책을 접하는 이들 모두가 '같이'하고 있다고 봐야겠다.  

  그는 <책과 세계>를 쓴 목적에 대해서 밝히기를, "하나는 고전에 대한 자극을 주면서 그것들로 직접 다가가는 길을 알려주고, 다른 하나는 그 책들을 읽기 전에 미리 그 책들이 어떻게 서로 이어져 있고 대화하고 있는지를 짐작하게 하는 것이다" 라고 말하고 있다. 결국 이 책은 고전읽기 대한 책이다. 

 책 좀 읽는다 싶은 사람들의 독서취향은, 보통 지금 당장 나온 따끈따끈한 신간 서적들을 중심으로 읽는 것이 하나요, 아주 오래된 쾌쾌묵은 먼지를 쓸어내며 끄집어낸 듯 익숙치 않은 문장들과 싸워가며 어렵게 읽어내는 것이 또 하나다. 강유원은 후자의 책 읽기에 대해 말한다. 이 얇은 책 한권으로 그는 쉽게 다가서기 어려운 몇몇 두꺼운 고전을 간략하게 소개해주고 있고, 먼저 책을 읽은 그가 풀어내는 고전의 내용과 한발 더 나아간 사색의 장은 이 책을 읽는 독자로 하여금 고전에 가까이 다가설 수 있는 계기로 작용할 것이라 생각한다. 플라톤의 <국가론>이며, <갈가메시 서사시>며, <갈리아 전기>, <논어> 그 어느 하나 쉽게 손댈 수 있는 작품들이 아니다. 본 책의 책장을 바로 넘기기는 두렵고, 하지만 한번 읽어보고는 싶은, 그런 사람들을 위해 이 책은 요약본으로서, 혹은 책을 소개하는 책으로서 가볍게 접할 수 있겠다.
 
  우리는 책을 왜 읽는가?
  우리는 고전을 왜 읽는가?

 
  저자는 에필로그에서 이런 말을 한다. 20세기는 누군가의 말처럼 '극단의 시기'였고, 그것은 "<파우스트>의 한 구절처럼 '모든 이론은 잿빛'이어서 이론은 현실에 맞닿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모든 이론적 파악을 포기해야 하는 것일까? 그리고 이론적 파악의 출발점인 읽기를 그만두어야 하는 것일까? 그것이 극단의 현실에 대한 올바른 대응일까?" 

  "이러한 물음에 대한 답은 고전이 보여주는 자아들을 자기 몸에 넣어보고, 다시 빠져나와보고, 다시 또 다른 것을 넣어보고, 또다시 빠져나와본 다음에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 역시 무의미한 일일 수 있다. 그렇게 해서 얻어진 자아가 과연 진정한 것인지 확인할 길이 막막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아예 텍스트를 손에 잡지 말아야 하는가? 알 수 없는 일이다. 사실."
 
  그의 결론에 따르면, 우리가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없다. 어려운 고전을 읽을 이유는 더더욱 없다. 알 수 없기 때문에. 진정한 자아를 얻기 위해 책을 읽지만, 그것이 불확실한 것이라면 우리는 책을 읽을 이유를 상실한다. 하나의 행동이 하나의 결과를 반드시 도출하지 않는다면, 굳이 힘든 이 길을 택할 자는 없다. 하지만 여전히 소수의 사람들은 치열하게 책을 읽고, 고전을 읽는다. 그들은 왜 책을 읽는가. 무엇을 위해 책을 읽는가. 책을 읽음으로서 진정한 자아를 찾을 수 있을지 없을지는 모른다. 하지만, 책을 읽지 않으면 '확실히' 진정한 자아를 찾을 수 없는 반면(아 이것도 단언하기 어렵지만), 책을 읽으면 '어쩌면' 진정한 자아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나의 가능성, 그것을 위해 우리는 책을 읽는다. 그리고 그 가능성은 강유원의 말처럼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나는 오늘도 책을 읽는다. 고전을 읽는다. 적어도 나를 찾기 위한 길을 탐색해 볼 순 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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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6-03-05 1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이 사람 책,<몸으로 하는 공부>를 보고 진짜 돈 아까웠는데..
다른 파트는 그냥 무난한데,(또는 잡스럽기 그지없는) 05 <책 따로, 세상 따로> 는 어찌나 웃음만 나오던지...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를 참 우습게 분석하고 그러다가 글 읽기와 삶 읽기의 괴리에 대해 이야기 하는데, 무슨 초딩 겨냥한 것도 아니고 참으로 억지스럽게도 연결시켰더라구요. 뭐 읽어보시면 알겠지만, 왜 그런 책을 냈는지 모르겠어요.

마늘빵 2006-03-05 1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전 강유원 책은 이게 처음이에요. 그것도 보관함에 있는데, 흠. 이 책도 사실 취지와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좋았는데, 본문 내용은 별반 쉽게 와닿지도 않고 그저 그래요. 서문과 에필로그가 좋아서 별 네개를 준거 랍니다.
 
보물지도 - 당신의 소중한 꿈을 이루는
모치즈키 도시타카 지음, 은영미 옮김 / 나라원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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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마도 내가 처음 돈을 주고 구입한 자기계발서 인 듯 하다. 이전에 자기계발서를 비롯한 실용서적들에 대한 나의 의견을 잠시 언급한 바가 있는데, 요즘들어 조금씩 시각이 바뀌고 있다. 자기계발서라는 것도 나름대로 의미있는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팔아 먹기 위해 마구 찍어대는 책' 정도로 인식했던 나의 시각이 바뀐 것은 최근에 만난 어떤 선생님 덕분이다. 물론 대학시절에도 해석학 선생님을 통해 조금 누그러지긴 했고, 당시 선생님의 추천에 따라 <정상에서 만납시다>라는 두꺼운 서적을 구입한 바 있다. 아 그러고 보니 지금 말하려는 <보물지도>가 처음 돈 주고 구입한 서적은 아니었군. 많은 깨달음과 교훈을 전해주시는 그 분들로 인해, 그분들이 추천하는 자기계발서에 관심이 갔고, 이런 류의 책에 대한 나의 편견은 거의 사라졌다고 봐야겠다. 누구에게는 책 한 권이 지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면 그것은 책으로서의 도리를 다 한 것이라 본다.

 <보물지도>란 이 책의 제목 앞에는 다음과 같은 수식어가 붙는다. '당신의 소중한 꿈을 이루는'. 이 책을 읽는 모든 사람들에게 각자의 보물지도를 만들 것을 주문한다. 또 어떻게 하면 보물지도를 제대로 만들 수 있는가 에 대한 방법을 알려주는 책이기도 하다. 일본인 저자는 실제로 돈도 백도 학벌도 없었고, 실패한 인생을 전전했으나, 자신의 보물지도를 만든 이후부터는 삶이 달라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그가 보물지도에 붙여놨던 그의 목표를 3년안에 모두 이루었노라 선언했다.

  목표는 구체적일수록, 자주 언급해줄수록, 그리고 이미지를 떠올릴수록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기 위해서, 첫번째 해야하는 일이 바로 보물지도를 만드는 일이다. 이것은 내가 머리속으로만 그려보는 목표를 실제로 눈으로 볼 수 있는 이미지화 시킴으로써 목표실현에 한층 더 다가가도록 한다. 별다른 수고는 들지 않는다. 준비물 몇가지와 나의 목표가 있으면 그것을 끝.

  먼저, 넓은 판자를 하나 준비한다. 다행히 우리집엔 내가 이것저것 스케줄 등을 붙여놓는 코르크판(?)이 있다. 난 여기에 있는 모든 것을 다 떼어내고 책상 전면에 전진 배치 시켰다. 내가 머리 속으로 생각하는 목표들을 이미지로 뽑아내는 것이 그 다음 할 일. 참 그 전에 제목을 달아야 한다. 내가 만든 제목은 유치하지만, '철학쟁이의 보물지도'. 내가 갖고 싶은 집, 차, 서재 등을 인터넷에서 마음에 드는 이미지를 찾아 프린트 해 붙인다. 밑엔 나의 꿈을 실현하기 위한 각각의 모토를 간단한 문장으로 써서 달아놓는다. 내 사진을 붙이고, 내가 단기적으로 또 장기적으로 목표하는 것을 추가로 붙인다. 포스트잇을 이용하는 것도 좋다고 한다. 떼었다 붙일 수 있으니깐.  그리고 목표로 한층 더 다가가기 위해 구체적인 실현 일자를 적는다.

 자 이제 다 끝났다. 이제 남은 것은 자기 암시. 나의 보물지도를 자주 바라보며 머리 속으로 나의 목표를 떠올리고, 마음을 다잡는다. 나는 할 수 있다. 내 목표를 이룰 수 있다고 자기 스스로에게 자기암시를 건다. 목표가 있지만 그저 목표만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지금까지의 나를 돌아보아도 그렇다. 그중 내가 이룬 것은 아주 극히 소수일 뿐. 목표는 언제나 존재하지만 실천으로 나아가기는 힘들다. 실천을 옮기려면 목표는 좀더 구체적이어야 한다. 추상적으로 아 나 이거 갖고 싶어, 이거 하고 싶어, 라고 말하는건 소용이 없다. 어젯밤 뚝딱뚝딱 프린트 뽑고 풀로 붙이고 압정으로 누르고 하며 책상을 어지럽혔다. 그리고 간단한 나의 보물지도가 완성되었다. 구체적인 실천방안들과 기한을 설정하는 일이 남았지만 뭔가를 계획했다는 자체로 마음이 뿌듯하다. 이 책은 충분히 내게 그만한 활용가치가 있었고, 제 할 일을 다 했다. 그러므로 나는 이 책에 별 다섯개를 부여한다.

  * 이 책을 계기로 자기 계발서와 성공학, 재테크 분야의 책에 대한 나의 시각을 거두노라. 어떤 책이든 읽는 이에게 제 값어치를 하면 책으로서의 소임을 다 한 것이다.

  * 쑥쓰러워 나의 보물지도를 사진으로 공개하진 못한다. 나중에 어느 정도 내 꿈이 실현되고 나면 그때 나의 보물지도를 공개하며 이렇게 모든 것이 여기에 들어있습니다, 라고 자랑해야겠다. 그 날이 오길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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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6-03-04 2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지네요.^^
 
...더 이상 나비들은 보지 못했다 - 테레진 수용소 아이들이 남긴 시와 그림, 1942~1944
프란타 바스 지음, 이혜리 옮김 / 다빈치 / 2005년 3월
절판


겉표지를 하나 넘기면 아름다운 그림이 펼쳐진다. 한창 여름을 지나 생동감을 잃어버렸지만 여전히 아름다운 나무와 풀, 그리고 그곳을 떠도는 나비들. 아이들은 나비를 봤고, 나비를 그렸지만, 더 이상 나비들을 볼 순 없었다.

왼쪽 운동장, 오른쪽 노동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 그림. 두 그림을 그린 각각의 아이 모두 31년에 태어났고, 1944년 아우슈비츠에서 죽었다.

수채화 물감과 잉크로 그린 그림, 그리고 오른쪽은 연필과 색연필로 그림 그림.

<테레진의 집>, <멀고 먼 집>. 매우 단순하게 그려진 그림이지만 세세하게 그려졌다. 오른쪽 그림의 길 가의 논두렁들에 그어진 파스텔 자욱들이 선명하다.

<테레진에서의 생활>. 침대마다 번호가 매겨져있다. 한나 그륀필드라는 아이가 그린 그림으로, 35년 태어났고, 41년 테레진으로 왔으며, 44년 아우슈비츠에서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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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달 2006-03-04 2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못 찍었어욤. ㅋㅋㅋㅋㅋㅋㅋ

마늘빵 2006-03-04 2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딴지녀.

비로그인 2006-03-05 08: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림이 잘 안보이네여^^;;바짝 찍으시죠~

마늘빵 2006-03-05 09: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ㅠ-ㅡ
 
...더 이상 나비들은 보지 못했다 - 테레진 수용소 아이들이 남긴 시와 그림, 1942~1944
프란타 바스 지음, 이혜리 옮김 / 다빈치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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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인문/사회과학 서적을 탐독한다고 스스로 말하는 본인이 인문/사회과학으로 분류되는 책들 중에서도 편식하며 먹지 않고 있는 것이 있다. 철학서, 철학대중서, 평전, 비평서, 미래서, 철학적 에세이, 고전 등등의 책들을 즐겨읽는 나는 이상하게도 역사서적에는 관심이 가지 않는다. 학문의 근본은 인문학이요, 인문학의 기본은 역사가 될 것일진대 참 이상하게도 역사서에는 정이 가지 않는다. 뭐랄까, 철학서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역사서적이 가지고 있는 그 딱딱함과 건조함에 싫다고 할까. 철학책도 어렵고 딱딱하고 건조하긴 마찬가진데 왜? 역사는 있는 그대로의 사실과 뒷세대들의 이전 사실에 대한 해석과 평가가 따르는데, 어떤 사색의 장을 열어주기 보다는 이것이 옳다 그르다 식의 진위판명이 주를 이룬다. 문장의 꼬투리를 잡고 또다른 장을 열어 점점 넓은 삼천포로 빠지고 싶어하는 나로서는 역사서는 그 실마리를 제공해주지 못하는, 별로 매력없는 분야의 책으로 다가올 수 밖에 없다. 나의 이러한 역사서에 대한 의견에 이견(異見)이 있는 분들도 있겠지만.

이 책 <... 더 이상 나비들은 보지 못했다> 는 역사서적은 아니다. 하지만 역사를 담고 있다. 1942년의 체코슬로바키아. 과연 무슨 일이 있었을까. 우리나라 역사를 벗어나 세계사에 관심있는 이들조차도 미국, 독일, 프랑스, 영국, 일본 등 강대국들의 역사 이외에는 관심을 갖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특별히 어떤 계기를 갖지 않고서야 다른 소외된 국가들의 역사에까지 신경 쓰진 않을 듯. 1942년의 체코슬로바이카에선 나치의 침공이 있었다. 1939년 독일의 나치가 체코슬로바키아의 프라를 침공, 독일 제국에 편입된다. 1941년엔 테레지엔슈타트 라는 곳에 유대인 거주 지역, 게토를 설치하고, 이곳에 유대인들이 모여 살도록 하는데, 이들은 이후 아우슈비츠로 보내질 운명을 맞이하게 된다. 42년에서 44년 독일이 침공한 유럽 국가의 유대인들이 이곳으로 모여들었고, 그 중엔 아이들도 많았다. 이후 독일이 전쟁에서 패배하고 이곳에 있던 15,000명의 아이들 중 단 100명만이 집으로 돌아갔다.

  이 책은 유대인 거주지, 게토에 있는 아이들이 그곳에서 2년간 교육받으며 그린 그림과 쓴 글을 담아놓았다. 아이들은 대부분 아우슈비츠로 보내져 얼마 안되는 삶을 마감했지만, 그들이 이곳에서 교육받으며 그리고 쓴 그림과 글들은 가지런히 모아져 그들이 죽은 이후에 공개되었다. 지금의 체코슬로바키아 대통령 바츨라프 하벨은 직접 이 책의 작가는 아니지만 서문을 썼다.

  "지금 나는 테레진 아이들이 쓴 시를 읽고 있다. 이 아이들은 자신들이 처한 비참한 생활에서 벗어나 다른 세상으로 가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놀이와 자유를, 온화함과 아름다움을 열망하고 있다. 아이들에게 그토록 가까이 있던 죽음은 행간에서만 나타날 뿐이다.
  나는 또한 아이들의 그림을 본다. 여기에는 아이들이 가졌던 슬픔과 근심의 그늘만 있는 것이 아니다. 봄과 꽃, 나비와 새들에 대한 꿈, 그리고 행복과 평안에 대한 간절한 바람이 더 많이 나타나 있다. 이 아이들의 영혼은 방어 수단으로서 시와 그림들을 사용했다. 때로는 자신들의 불안을 드러냄으로써, 또 때로는 자신들의 꿈을 묘사함으로써."

  이 책은 유대인 아이들이 남긴 많은 그림과 글이 실려있다. 그리고 그 그림의 밑에는 제목과 함께, 사용도구, 그리고 아이가 있던 유대인 수용소의 주소(?)명과 그 아이의 이후의 삶에 대해 언급되어 있다.

  연필 데생의 세부(문서번호 129574). 오른쪽 상단에 '요세프 폴라크, 클라세 I. ii/2 Jahre 2-V-44' 라고 서명되어 있다. 요제프폴라크는 체코슬로바키아의 파르두비체에서 1933년 1월 27일에 태어났고, 1942년 6월 9일 테레진으로 이송되었다. 1944년 5월 18일 아우슈비츠로 다시 이송되어 그곳에서 죽었다.

 아이들의 그림과 글에는 당시의 상황에 대한 억눌린 감정과 분노와 죽음에 대한 두려움 따위는 느낄 수 없다. 그것은 정말 현 체코슬로바키아 대통령 바츨라프 하벨이 서문에서 언급했듯 그림을 보고 글을 읽는 우리가 행간에서 느낄 뿐이다. 아이들은 아우슈비츠로 보내지기 전까지 열심히 그림을 그렸고, 글을 썼으며, 자신의 작품에 희망을 그려 넣었다. 수채화 물감과 잉크, 목탄, 연필과 색연필 등 갖가지 재료로 그려낸 그들의 작품은 정말 어린 아이가 그렸다고 믿어지지 않을 만큼 솜씨가 뛰어난 작품들도 있다. 그들은 자신이 직접 보고 들은 것을 담담하게 손으로 그렸냈다. 하지만 그들이 죽고, 전쟁이 끝난지 한참 지난 지금, 그들의 작품을 접하는 우리는 아무렇지 않은 듯 그린 그들의 그림에서 슬픔을 느낀다. 슬픔은 겉으로 표현하기보다 그것을 담담하게 받아들일 때 더 슬프다.  

  병원에 실려가는 유대인, 게토를 감시하는 독일군, 손잡고 춤을 추는 아이들, 식량배급을 받기 위해 길게 늘어선 줄. 그림 속엔 게토에서의 생활이 그대로 드러나있다. 하지만 절망을 이야기하진 않는다.

  유대인 게토 테레진의 작품이 책으로 나오게 된 것은, 저자의 미국에서의 우연한 방문 때문이었다. 본래 뉴욕주를 시작으로 보스턴, 맨하튼까지 미술관 순례를 계획했던 저자는 우연하게 들른 유대 박물관에서 아이들을 만났고, 그의 이후 계획은 다 틀어졌다. 그는 그곳에 오래 머물며 아이들의 그림과 글을 접했고, 유대인 파워에 되려 반감까지 가지고 있던 그는 거꾸로 유대인에 대한 동정적인 시각으로 변질되어 갔다. 글쎄. 이것도 세계를 지배하는 유대인들의 전략인지도 모르겠지만, 그것이 전략이든 아니든 간에 유대인들이 독일 나치에 의해 핍박받은 것은 사실이고, 그것만큼은 인정해야 한다. 그것은 가치판단의 문제가 아니라 진실 혹은 거짓의 문제이므로.

  빠르게 대충 그림만 보고 훑어나갈 수 있는 책이지만, 차마 그럴 수 없는 건 그림 하나하나에 담긴 죽어간 아이들의 모습 때문이다. 이 그림들은 누군가에게 보여지기 위해 그려진 것도, 팔기 위해 그려진 것도 아니다. 그들이 삶을 지탱해나가는, 희망을 노래하는 수단이었다. 15,000명의 아이들 중 100명만이 집으로 돌아갔다. 14,900명의 아이들은 모두 아우슈비츠에서 죽었다. 아이들은 그림 속에 나비를 그려넣을 순 있었으나 더 이상 나비들은 보지 못했다. 나비는 더 이상 그들에게 존재하지 않으므로. 아니 그들이 존재 하지 않으므로.

 결론적으로 이 책은 역사서는 아니지만 역사의 한 장면을 가슴으로 볼 수 있게 해준 책이었다. 그것은 딱딱한 사실 확인의 장면이 아니라 가슴으로 느끼는 삶의 경험이었다. 역사는 가슴으로 느낄 수도 있음을 알게 해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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