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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체 불만족 - 완전판
오토다케 히로타다 지음, 전경빈 옮김 / 창해 / 2002년 10월
평점 :
절판
조금은 촌스러운 표지에 그다지 관심을 끌지 않는 제목. 마치 무슨 기 수련하는 책같은 이미지가 풍긴다. 저자 오토다케 히로타다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면, 그냥 지나쳐버릴 책이다. 일본에서의 유명세는 번역을 통해 한국에서도 이어졌다. 2003년인가. 잘 모르겠다. 난 군대에 있던 시절인 듯 하다. KBS 에서 그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방영한 듯 하고, 일본에서도 그랬듯, 그는 한국에서도 잡지와 신문을 온통 도배했고, 그가 낸 책들은 단숨에 베스트셀러로 올라섰나보다. 그는 외국인 장애인 최초로 중학교 도덕 교과서도 실리는 인물이 되었다. 아니 무엇이 대단하기에, 그에게 도대체 어떤 마력이 있기에 이렇게들 호들갑을 떨까.
이 책을 읽기 전 예상을 해봤다. 내가 이 책을 다 읽고 난 뒤의 느낌을. 아마도 남녀 주인공 중 하나가 죽는 슬픈 멜로 영화를 본 뒤에 닭똥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는 모습을 하고 있지 않을까. 아마도 장애인의 이야기니까, 그는 팔과 다리가 없는 사람이니까, 그의 인생은 매우 슬펐을 것이고, 따라서 슬픈 내용의 책을 읽다보면, 더구나 실화인데, 나는 나중에 눈물 흘리며 마지막 장을 덮지 않을까. 그렇게 아직 책도 읽지 않고서 책 읽은 뒤의 모습을 상상해봤다. 그러나 책을 다 읽고 난 지금, 나의 모습은 예상을 확실하게 빗나갔다. 난 즐겁다.
몸뚱이, 팔 두개, 다리 두개 중 네 개가 없는 그. 오로지 태어났을 때부터 그는 몸뚱이만을 가지고 있었고, 그 몸뚱이 하나로 지금껏 살아왔다. 76년생. 나보다 3살 많은 그가 이 책을 낸 것은 지금의 내 나이보다 어렸을 때이고, 그 나이에 수많은 일을 해낸 그는 정말이지 부럽다. 비장애인이었다 하더라도 그만큼 열심히 살기란 쉽지 않을 거란 생각이다.
그냥 상체 사진으로만 보면 정상인과 다를 바 없는, 정상인 중에서도 잘생긴 축에 속하는 오토다케 히로타다. 자신의 장애를 장애로 보지 않고, 특장(특징적인 장점)으로 여기고 살았던 그는, 결코 학창시절에도 왕따가 되지도 않았고, 장애인들이 쉽게 겪을 수 있는 우울증에 시달린 적도 없다. 재수 끝에 공부도 그다지 잘하지 않았던 그가 목표로 했던 와세다 대학에 입학하고, 정상적인 대학생활을 마치고, 미국여행도 떠났었다. 영어 웅변 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기도 했고, 환경 강연회에서 연설을 하기도 했다. 그의 특기는 운동이다. 아니 팔 다리 없는 장애인이 무슨 운동이야, 할지 모르지만, 그는 정말 운동을 잘한다. 야구도 하고, 축구도 하고, 농구도 하고, 미식축구도 한다. 만능 스포츠맨이다. 팔 다리 없지만 그는 고된 오랜 훈련 끝에 자신이 원하는 운동을 남들과 함께 즐길 수 있을 때까지, 아니 심지어 선수로 출전할 만큼 실력을 키울 때까지 노력했다. 눈물을 훔치며 이를 악물고 연습한 것은 아니다. 그저 즐겼을 뿐이다.
만일 그가 우리나라에서 태어났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이 책에 의하면 그의 부모님은 그의 장애를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고, 불쌍하게 여기지도 않았다. 그가 나온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에서도 그 누구도 그를 불쌍하게 여기지도 않았고, 자신과 다르다고 왕따를 시키거나 괴롭히지도 않았다. 그는 오히려 친구들 중에서도 리더쉽이 강하고 타인을 이끌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가 이렇게 살아올 수 있었던 배경에는 그의 긍정적이인 성격도 있지만, 그의 주변 사람들의 아무렇지 않게 여기는 시선 또한 포함시켜야 할 것이다. 그가 대한민국 사회에서 태어났다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을지도 모른다. 기초생활 보호 대상자로 지정되어 매월마다 세끼 겨우 먹고 살 정도의 보조금을 지급받으며 겨우겨우 살아갈지도. 그가 아무리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성격을 지닌 사람이었다 할지라도 우리나라에서라면 그는 심한 좌절감을 맛봐야 했을지 모른다.
책을 읽는 내내 전혀 장애인의 삶을 읽고 있는 것 같지 않았다. 무슨 성공한 비장애인의 삶을 보는 것과 같은 느낌, 사회적으로 성공한 한 기업가의 자서전을 읽는 듯한 느낌이다. 불쌍하거나 가련하기는커녕 그의 약간은 거만한 태도와 자신감 때문에 내가 주눅드는 느낌이다. 아 도대체 이 거만함과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 것인가. 무엇이 그로 하여금 이렇게 만들었을까. 그는 자기 스스로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도 하지만 내가 보는 그는, 그리고 우리가 보는 그는, 정말이지 대단한 사람이다. 자신의 장애를 이겨내고 성공적인 삶을 사는 대단한 사람이다. 2006년 지금 그는 어떤 또다른 삶을 살고 있을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