촘스키 하룻밤의 지식여행 1
존 마허 지음, 한학성 옮김, 주디 그로브스 그림 / 김영사 / 200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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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노엄 촘스키. 그가 어떤 사람인지는 몰라도 그의 이름을 듣지 못한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나는 그가 언어학자로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 어떤 이론을 정립했는지 알지 못한다. 많은 이들이 노암 촘스키를 알고 있다 하더라도 그의 언어학 이론을 알고 있다기보다는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을 까는 놈쯤으로 알고 있을 터. 나 역시 마찬가지다. 촘스키는 기본적으로 언어학자이자 엄청난 저술가이며, 가장 미국을 신랄하게 까는 비판적 지성인이다. 아니 왜 미국인이 자기 조국을 그렇게 까대? 애국심이 투철한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그런 의문이 들 수도 있을 터. 얼마전의 황우석 사건만 하더라도 많은 이들이 황우석의 비리(?)를 조사한 MBC를 테러하지 않았던가. 아 이 바람직한 애국심이여.  

  촘스키가 지은 책은 엄청나다. 다 세어 볼 수도 없다. 또 그가 낸 책의 다수는 베스트셀러로 자리매김했다. 대표적으로 <촘스키, 세상의 물음에 답하다>, <숙명의 트라이앵글>, <불량국가>, <실패한 교육과 거짓말>, <그들에게 국민은 없다> 등이 있다. 그는 언어학자로서의 저술활동보다는 사회비평가로서, 비판적 지성인으로서의 저술활동을 더 많이 벌여왔고, 현재도 그러하다. 또 언어학자로서 유명하기보다는 지성인으로서 더 유명하다. 되려 그의 언어학 이론은 주류 언어학계의 이론에 속하지는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물론 주류 언어학자가 아니라고 하여 그의 언어학적 업적을 무시할 순 없지만.  

  그의 이름이 유명세를 치루다보니 그는 과연 어떤 사람인가, 어떤  사람이기에 이토록 유명하고, 이처럼 대단한 활동을 벌이는가, 라는 의문을 갖게 되는 사람이 많아졌다. 김영사의 '하룻밤의 지식여행'에서 촘스키를 다룬 것은 그런 의도이지 않을까 싶다.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인물에 대해 간략하게 소개하려는 의미로서.

   나는 이 책을 산지 매우 오래되었다. 그리고 그때에는 촘스키의 저작이 아닌 촘스키에 대한 책은 거의 없었다. 아마 당시 이 책이 유일하지 않았나 싶다. 하지만 지금은 이 책이 아니더라도 촘스키라는 인물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주는 책이 여럿 있다. 솔직히 이 책을 받아보고 적잖히 실망했다. 촘스키란 인물에 대해서 소개해주기는커녕, 촘스키가 누구에요, 라는 나의 질문에 확실하게 부적절한 대답을 받은 느낌. 나의 질문이 무시된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 책은 촘스키에 대해서, 촘스키의 언어학에 대해서, 촘스키의 지식인으로서의 활동에 대해서 소개해준다. 하지만 턱 없이 부족하고, 어설프게 나열해놓은 그의 언어학적 이론이나 지식인으로서의 활동은 되려 머리 속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솔직히 이 책 정독해서 끝까지 보진 않았다. 왜냐면 배신감을 느껴서. 차라리 그의 저작인 1차 서적을 꼼꼼히 읽는 게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에 관한 나의 궁금증은 거기까지 미치진 않아서 그의 저작을 읽어본적은 한 차례도 없었다. 하지만 앞으로 읽어볼 생각.

   만화그림과 사진을 조합해 만들고, 그 옆에 간략한 해설을 덧붙인 이 책은 그 구성이 너무나 조잡하다. 또한 한권에 너무나 많은 이야기를 다루려고 한 듯 하다. 인물에 관한 이야기만 하던지, 아니면 언어학에 대한 이야기만 하던지, 지식으로서의 그의 주장에 대한 이야기만 하던지 해야하는데 - '촘스키'라는 책의 제목대로라면 '인물탐구'에 할애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 - 그에 관한 모든 것을 다루려다 보니 이것도 저것도 아닌게 되어버린 책이 되었다. 다시는 김영사의 '하룻밤의 지식여행'시리즈를 보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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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 비룡소 걸작선 13
미하엘 엔데 지음, 한미희 옮김 / 비룡소 / 199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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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둠 속에서 비쳐오는 너의 빛 
  어디서 오는지 나는 모르네.
  바로 곁에 있는 듯, 아스라이 먼 듯 
  언제나 비추건만 
  나는 네 이름을 모르네
  꺼질 듯 꺼질 듯 아련히 빛나는 작은 별아

 - 옛아일랜드 동요에서 -

 

  <모모>는 한편의 동화이고, 한편의 환타지이며, 한편의 모험담이다. 환타지 매니아라면, 미하엘 엔데를 아는 사람이라면 일찌기 이 책을 접했을 테지만, 나는 환타지 매니아도 아니고, 미하엘 엔데를 알고 있던 것도 아니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모>를 접한 방식이 그렇듯,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을 통해서였다. 드라마 삼순이 속에서 다정하게 동화책을 읽어주는 김선아의 모습이 많은 시청자들의 가슴 속에 따뜻하게 와닿았나보다. 더불어 읽어주는 동화가 어떤 책일까 궁금하던 사람들은 이 책을 선뜻 구입해보기까지. 예전에 어떤 드라마에서 '안토니오 그람시'의 책이 나온 적이 있었는데, 그때도 사람들의 궁금증을 불러일으켜 베스트셀러까진 아니어도 그람시의 책이 좀더 팔렸다고 하지 아마. 한편의 인기드라마는 많은 인기 문화상품을 만들어낸다. 주인공이 하고 있는 핀에서부터, 옷, 가방, 신발, 들고다니는 책까지도.  

  <모모>는 드라마로 인해 단숨에 베스트셀러에 링크되었다. 한 인터넷 서점에서 누적된 통계에 의하면, '청소년 주간베스트 2위'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을 정도로. <모모>가 이토록 많이 읽힐 수 있었던 것은, 이 책이 어려운 인문사회과학 서적도 아니고, '초등학교 5학년 이상'이라는 딱지를 달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초등학생부터 시작해서 청소년은 물론이요, 대학생, 나이든 아줌마, 아저씨들까지도 다 읽을 수 있는 작품이었기 때문에. 마치 생떽쥐베리의 <어린왕자>가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모든 나이대에 걸쳐서 읽혀지듯이 말이다.  

  책 속의 모모는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아이이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것은 없다. 나의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은 많다.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길 원하는 사람들은 많다. 하지만 나의 이야기를 하지 않은 채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귀기울이며 열심히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모모는 당신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싸움판에서도 두 사람이 모모에게 와서 다시 싸우고, 모모에게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할 때, 모모는 조용히 들어준다. 그러다보면 두 사람은 깨닫는다. 각자 자신들에게 문제가 있었음을.  

  또 <모모>는 시간에 관한 이야기이다. 시간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책이다. 마을에 회색신사들이 닥치면서 사람들은 싸우고, 시간에 쫓기며 마음의 여유를 잃어간다.  

   "세상에는 아주 중요하지만 너무나 일상적인 비밀이 있다. 모든 사람이 이 비밀에 관여하고, 모든 사람이 그것을 알고 있지만, 그것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사람들은 대개 이 비밀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조금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 비밀은 바로 시간이다. 

  시간을 재기 위해서 달력과 시계가 있지만, 그것은 그다지 의미가 없다. 사실 누구나 잘 알고 있듯이 한 시간은 한없이 계속되는 영겁과 같을 수도 있고, 한 순간의 찰나와 같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 한 시간 동안 우리가 무슨 일을 겪는가에 달려 있다. 시간은 삶이며, 삶은 우리 마음 속에 있는 것이니까." (p77)
 

  시간을 객관적으로 재기 위해, 우리는 어떤 일을 시간에 맞춰하기 위해 시계와 달력을 사용한다. 일초, 이초, 삼초..... 육십초. 어 일분이 갔네. 한시간이 지났군. 하루가 벌써 갔구나. 시계와 달력은 우리에게 시간을 알려준다. 객관적인 시간을. 하지만 그것은 정말 의미가 없다. 지금은 밤 11시 55분이다. 그게 무슨 의미람? 객관적인 시간은 시간을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 주관적으로 다가간다. 어떤 이에게는 한 시간은 정말 한없는 영겁과 같은 시간일 수도 있고, 어떤 이에게는 한 시간은 한 순간의 찰나와 같은 시간일 수도 있다. 그 한 시간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시간은 길수도 짧을수도 있는 것이다. "시간은 삶이며, 삶은 우리 마음 속에 있는 것이니까."  

 "죽은 것으로 목숨을 이어 가기 때문이지. 너도 알다시피 그들은 인간의 일생을 먹고 살아 간단다. 허나 진짜 주인으로부터 떨어져 나온 시간은 말 그대로 죽은 시간이 되는 게야. 모든 사람은 저마다 자신의 시간을 갖고 있거든. 시간은 진짜 주인의 시간일 때만 살아있지."(p208)  

  초등학생과 중학생에게는 조금 어려운 동화가 될지도 모르겠다. 동화와 환타지라는 형식으로 쓰여졌지만, 이 책의 내용은 지극히 철학적이다. 미하엘 엔데는 그런 철학적인 주제를 많은 이들의 마음 속에 다가가기 쉽게 동화와 환타지로 엮어낸 것이다. 얼마전에 그의 또다른 책 <자유의 감옥>을 읽게 되었는데, 이 책에서도 그의 기발한 상상력과 이야기 전개 솜씨가 빛을 발하긴 했지만 좀 어려웠다. <모모>는 그보다 더 쉽고 재미나게 사건 중심으로 쓰여졌고, 그 안에서 '듣는다는 것'에 대해서, 시간에 대해서 자연스럽게 생각해볼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다.  

  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됐을 때, 동화래, 환타지래, 하면서 에이 별로겠다, 라는 생각으로 읽지 않았다. 그리고 <모모> 열풍이 다 끝난 지금에 와서 미하엘 엔데의 <자유의 감옥>을 먼저 접하고, 그의 또다른 책을 읽어볼 요량으로 읽게 되었지만 생각보다 꽤, 많이 괜찮았던 작품이다. 미하엘 엔데, 그는 타고난 이야기꾼이었고, 이 책은 그의 풍부한 상상력을 다시한번 접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또 <모모>가 다루고 있는 주제, 들음과 시간에 대한 부분도 다시 한번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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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류시화 지음 / 푸른숲 / 199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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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을 먼저 접하고,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를 뒤에 접했다. 내가 이 책을 구입했을 때가 아마도 99년쯤 인 듯. 대학 2학년 이었을터.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들어온 나는 한동안, 꽤 오랫동안, 쑥맥이었다. 좋아하는 여자 앞에서 좋아한다 말도 못하고, 가슴 속으로 앓아야했던 바보 같은 놈이었다. 어쩌다 좋아하는 여인이 나와 함께 있을 때는, 말도 제대로 못하고 그저 마음 속으로 만족했던 그런 때, 채이기도 많이 채였지. 모든 걸 다 떠나서 그렇게 말도 제대로 못하는 넘을 어떤 여인이 좋아하겠는가. 그래서 혼자 가슴앓이 하면서 - 뭐 채인게 대단한 건 아니었다. 호감이 있어 데이트 했고 조심스럽게 소극적으로 좋아한다 말했다가 상대의 별로 인 반응, 뭐 그런거 - 나름대로 분위기 잡고 아픔을 달랜답시고 음악도 듣고 조용히 글도 쓰고 그랬던 때가 있었다. 이런 청승맞은 넘.  

  이 시집은 아마 그때 산게 아닌가 싶다. 지난 세월의 흔적으로 별로 읽지도 않았던 책이 먼지가 쌓이고 때가 묻어 약간 거멓게 변했다.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제목만으로도 참 가슴 울컥 하게 만든다. 사랑하는 이가 곁에 있다는데 왜 그대가 그리워. 이해가 안갈 법도 하지만, 이해 간다. 그 느낌 안다.

 

   
물 속에는
물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는
그 하늘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내 안에는
나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내 안에 있는 이여
내 안에서 나를 흔드는 이여
물처럼 하늘처럼 내 깊은 곳 흘러서
은밀한 내 꿈과 만나는 이여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사랑하는 이는 나의 마음 속에 들어가 있지만, 그대는 내 곁에 없다. 그대는 분명 내 곁에, 내 마음 속에 있지만, 그대는 내 곁에 없다.  

  이 시집에 담겨있는 시들은 참 우울하고 슬프다. 참고 또 참고 끝내 못참고 가슴 울컥하며 눈물 한 방울 뚝 떨어질 것만 같은 시들이다. 사랑해서, 그리워서, 보고싶어서, 하지만 그래도 참았다. 참고 참았는데 그래도 난 당신이 그립다. 사랑의 아픔을 달래기 위한 딱 좋은 시다. 사랑하는 이로부터 거절당했을 때, 사랑했던 옛 여인의 향기가 그리울 때, 어둑어둑한 방안에 달랑 스탠드만 켜놓은 채 쭈그리고 앉아 한 편 시를 낭독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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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
류시화 지음 / 열림원 / 199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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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시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건 내가 시를 즐길줄 모르기 때문이다. 내가 제도권 교육에서 받은 시 교육은 일단 시를 외운다, 그리고 시를 분석한다, 이 시는 언제 누가 어떤 의도로 지은 시이고, 어떤 시대적 배경을 안고 있으며, 따라서 그 시는 이 문장 안에서 이런 의미를 지닌다, 형식은 수미쌍관 구조를 갖추고 있다, 라는 시를 느끼는 것이 아닌 시를 분석하고 해체하는 작업만을 배우는 것이었다. 내가 시를 즐길 여유는 없었고, 대학까지 졸업한 이 마당에도 나는 시를 즐길 줄 모른다. 그래서 내 책꽂이에는 시집이 거의 없다. 딱 세 권이 있는데, 둘은 류시화 시인의 것이요, 하나는 이수영 시인 전집이다. 개인적으로 이수영 시인의 '풀'이란 시를 좋아해서 그의 전집을 사버렸다. 그러나 읽진 않았다. 그저 내가 좋아하는 유일한 시인의 책을 가지고 있다는 것만으로 나의 마음은 뿌듯하다.

   류시화 시인의 두 권,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은 워낙 유명한 시집이고, 자주 인용되기 때문에 도대체 어떤 시이길래 그럴까 하고 궁금증에 사본 책이다. 아마도 앞의 것은 내 돈주고, 뒤의 것은 선물로 받은 듯 하다. 그러나 이 두 시집 역시 다 읽진 않았다. 시라는 것은 천천히 음미해가며 읽어야 하는데, 난 시집을 마치 처음부터 끝까지 무슨 소설 읽듯이 읽어버리려고 달려든다. 그러면 안된다는 걸 알기에 처음에 그러다 말았다. 가끔씩 꺼내어 임의로 한 페이지를 펴고 읽고 다시 꽂아두는 식으로 읽어나가는데 훨씬 나을 듯 싶다. 하지만 이 또한 잘 되지 않는다. 그 '가끔씩'이라는 적당한 때가 거의 없기 때문에.  

 시는 마음의 평안을 얻기 위해 읽지 않나 싶다. 그런데 내가 어떤 상황에 처해있을 때 어떤 시가 가장 적합할지는, 시를 많이 읽어보지 않고서는 모른다. 마치 음악을 많이 들어봐야, 내가 우울할 때, 내가 기분이 좋을 때, 슬플 때 듣는 적당한 음악들을 골라낼 수 있듯이.  

  류시화 시인의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 너무나 유명하다. 이 시집 안에 들은 동명의 시 때문에 이 시집은 너무나 유명해졌다.  

 

  외눈박이 물고기처럼 살고 싶다
  외눈박이 물고기처럼
  사랑하고 싶다
  두눈박이 물고기처럼 세상을 살기 위해
  평생을 두 마리가 함께 붙어 다녔다는
  외눈박이 물고기 비목처럼
  사랑하고 싶다

  우리에게 시간은 충분했다 그러나
  우리는 그만큼 사랑하지 않았을 뿐
  외눈박이 물고기처럼
  그렇게 살고 싶다
  혼자 있으면
  그 혼자 있음이 금방 들켜 버리는
  외눈박이 물고기 비목처럼
  목숨을 다해 사랑하고 싶다

 

  류시하 시인의 시에는 그의 삶이 녹아있다. 어느 시인들 안그렇겠냐만은 정말 시를 쓰기 위해 쓴 것처럼 보이는 시들이 많다. 내가 시를 많이 읽어보진 않았지만 서점에서 들춰보고 느낀 바로는. 그는  한국일보를 통해 정식으로 등단한 시인이지만 다른 시인들처럼 문단에 붙어 살진 않았다. 대개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사람들은 시인이건 소설가건 그 패거리를 만들어 자신들만의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하지만 류시화 시인은 그러지 않았다. 문단에 거리를 두고 홀로 여행하며 사색하며 시를 쓴다고 한다. 자기 자신의 삶에서 나오는 진짜 시를  쓰는 것이다. 그래서 시는 잘 모르지만 류시화는 괜찮다. 그가 많은 대중에게 사랑받는 이유는 그의 시가 진솔하기 때문일 것이다.  

  앞으로도 나는 시를 잘 읽지 않을 것이다. 시를 즐기는 것은 누가 강요해서 된다고, 내가 그러고 싶다고 해서 되는 것은 아닌 듯 하다. 자연스럽게 저절로 언젠가 시가 좋아질 날이 있으리라 믿으면서 이대로 살아가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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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륜과 남미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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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일본 소설에 관심을 쏟고 있는 나는, 몇몇 일본 작가들의 작품을 읽어봤고, 나에게 썩 맞는다 싶은 작가를 아직 찾지 못했다. 오래전에 접했던 무라카미 하루끼가 그나마 좀 나에게 맞달까. 그의 작품을 읽은 건 <상실의 시대>와 <해변의 카프카>. 아직 그를 안다고 하기엔 좀 부족하다. 몇몇 작품을 더 읽어봐야 나의 작가목록에 올릴지 말지를 결정할 수 있을 듯 하다. 그 이외에 최근 읽은 일본 소설들이 썩 싫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아주 좋지도 않았다. 일본 소설을 좋아라하는 이들 중에 하루끼의 팬이 꽤 있고, 요시모토 바나나의 팬이 꽤 있는 듯 하다. 주변의 어떤 女의 말에 따르면, 요시모토 바나나의 작품들이 자신의 정서와 잘 맞는 것 같다고. 그래서 나도 요시모토 바나나가 궁금해졌다. <불륜과 남미>는 내가 요시모토 바나나를 접하기 위한 첫번째 소설로 고른 책이다. 또 그녀(?)의 최근 작품이기도 하다. 그런데 첫 소설을 잘못 고른 것일까. 썩 마음에 들지는 않는걸.  

  <불륜과 남미>에 대한 독자들의 평가는 극과 극으로 나뉘고 있는 듯 하다. 어떤이는 별 네개, 다섯개를 줘가며 찬사를 아끼지 않고, 어떤 이는 별 하나도 아깝다고 한다. 아 누구 말을 들어야하지. 누구 말을 듣긴, 이미 책 사놓고 다 읽어놓고는. 그럼 니 말을 들어야지. 그래. 나의 감상은 어떠한가. 험. 난 중간. 주문한 이 책이 도착했을 때, 상자를 열어보고는 내 마음이 '만.족.' 이라는 신호를 보내왔다. 아 거 참 책 이쁘게 잘 만들었네. 표지 그림에서 춤추고 있는 저 무표정한 못생긴 인간군상들 좀 봐. 어쩜 저렇게 귀엽고 이쁠 수가 있어. 색감도 참 맘에 들었다. 굵고 거친 붓터치와 검정과 빨강의 조화, 푸른색 바닥과 자줏빛 장막까지. 이런 나의 만족감은 책 장을 하나둘 넘기며 대충 살펴봤을 때 더욱 만.족. 최고야 최고. 얼른 읽고 싶다. 하지만 주문했던 몇몇 소설들 중 가장 재밌어 보여서 나중에 읽으려고 놔뒀건만 뭐야 실망감을 안겨주다니. 

  요시모토 바나나의 <불륜과 남미>는 총 7개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런건 좀 힌트를 주지. 읽다 이상해서 맨 뒤 옮긴이 말을 읽어보니 단편이었다. 아 물론 첫장 읽어보고 둘째 장 읽어보면 내용이 다르다는 걸 감지해야 마땅하겠지만, 으례 이어지는 내용이겠거니 예상하고 읽고 있는 나는 적잖히 당황할 밖에. 일본 소설엔 이렇게 여러 단편으로 구성된 책이 꽤 많은 듯. 난 이런 짧은 단편보다는 책 한권이 하나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소설이 더 좋은데.  

  바나나는 여행을 통해 소설을 쓴다고 한다. 어디서 주워들은 이야기에 따르면. 그녀가 이전에 낸 책들도 여행을 다녀 온 뒤 영감을 받아 쓴 책이었고, 그중 <키친>이라는 책이 꽤 많이 읽힌 듯 한데, 난 검증된 이 책을 선택하기보다 '그녀를 알아보는 통로로' 그녀의 최근작을 선택했던 것이다. 이 책은 부에노스 아이레스를 여행한 뒤에 썼다. 그곳에서 그녀가 보고 듣고 경험한 것들이 모두 이 책 속에 고스란히 녹아들어있다. 모든 것이 사실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픽션. 그녀가 여행에서 얻은 것들이 재료가 되어 무넣고 파넣고 감자넣고 그러다보니 어 이 맛 괘낞네, 새로운 소설로 탄생. 그녀는 이 책이 꽤 만족스러웠나보다. '작가의 말' 에서 그녀는 말한다.  

  "세번이나 여행을 하고서야 겨우 소설의 요령을 파악했습니다. 이번에는 제법 잘 쓴 것 같습니다. 아무쪼록 내던지지 마시고, 앞으로도 이 시리즈를 읽어주세요. 부탁드립니다."  

  아니 이게 뭐여. 작가가 소설을 다 쓴 다음에, 스스로 만족감이 든다고, 독자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다니. 흠. 만족스럽지 못한데 일부러 만족스럽다고 하고선 읽어달라고 부탁하는거야, 아니면 자기가 봤을 때도 너무 잘 쓴 거 같아서 많은 이들이 읽어줬음 한다는 거야. 픽션과 논픽션을 통틀어 작가가 '작가의 말'을 통해 독자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처음본다. 나쁘다는게 아니고 신기해서.  

  이 소설은 흔히 우리가 기대하는 이야기전개식의 소설구조를 갖추고 있진 않다. 소설을 읽으면서 사건이 어떻게 전개되고, 어떤 이야기들이, 어떤 주제들이 들어있구나 라는 소설에 대한 분석적 감각은 전혀 느낄 수가 없었다. 읽은지 얼마 안된 이 시점에서도 이 책의 줄거리는 나의 머리속에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나의 마음 속에 뭔가 훅 훑고 지나간 느낌만 든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저 화려한 색감과 정열, 그것이 나를 휩쓸고 지나갔다. 남은 것은 느낌뿐. 마치 조용한 바에서 화려한 색상의 열대과일이 들어간 트로피컬 뺘숑 칵테일을 마신 느낌이다. 입안에 들어갈 때의 그 감촉은 목구멍으로 들어 간 뒤 느낌만 남는다. 맛은 존재하지 않는다. 마치 소량의 한잔의 열대 칵테일을 마신 듯한 이 느낌. 새로운 느낌의 소설이군. 감상을 묘사할 순 있지만 줄거리를 이야기할 순 없는 소설. 신기하구나. 그녀의 다른 소설들도 이런 느낌일까. 내가 기대했던 소설은 아니었지만 새롭다. 그래서 그녀의 다른 소설들도 더 접해보고 싶은 느낌이다.  

  이 소설은 불륜 충동을 자극하진 않는다. 하지만 불륜이 나쁘다고 말하는 것 같지도 않다. 그보단 미화시키는거 같은데. 미화시키지만 충동질을 하지 않으니 괜찮네. 아닌가. 기왕이면 충동질도 해야 좋은건가.  

  "현대인은 많은 사람을 만나니까, 연애를 하지 않기가 오히려 더 어렵다. 특히 쌍방이 일 때문에 바쁜 경우에는 불륜도 쉬 오래간다. 환경 탓으로 돌리고 있는데, 바로 그 환경이 이런 연애를 가능하게 하는 한, 환경에도 책임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어쩔 수 없는 일이 벌어져서...... 예를 들어 나 또는 부인이 임신을 하거나 부인의 부모가 죽거나 내가 다니는 회사가 망하거나, 그런 외적인 힘이 가해지면 사태가 변하겠지, 하고 생각했다. 아직은 젊고 어린 마음이 어떤 외적인 힘에, 진짜 인생의 무게에 다소 변하지 않을 수 없는 순간이 오겠지 하고 생각했다. 어린애 같다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것이 아니라, 성장의 순간을 놓치고 싶지 않을 뿐이었다. 그때의 자신을 생각하고, 어떤 식으로 받아들일지를 믿고, 맡기려 했다. 특히 현대에는 연애나 결혼이나 영원히 지속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마찬가지다." (P21) 

  연애를 하지 않기가 더 어렵단다. 내 주위의 많은 솔로들이여 당신들은 모두 어려운 길을 걷고 있나니. 뭐 과거보단 연애의 기회가 많아진 것은 사실인 듯 하다. 우리 부모님 세대 때에 비해서는. 지금의 나를 포함한 젊은이들은 꽤나 자유롭고 개방적이며 서로간의 거리감이 없다. 연애는 쉬운데, 그럼 불륜도 쉽다? 그래 현대에는 '관계'의 무게가 많이 가벼워진 것이 사실이고, 쉽게 만나고 쉽게 헤어진다. 그래서 단 한번의 연애가 쉬 오래간다고 이야기하지도 못한다. 설렁 그것이 결혼이라는 제도적 장치에 의해 묶여있다고 할지라도. 미국인이 그러듯, 프랑스 인이 그러듯, 일본인도, 한국인도 쉽게 결혼하고, 쉽게 헤어지는 듯 하다. 내가 한 나이 마흔쯤 되었을 때 내 주위에 이혼남, 이혼녀들이 얼마나 될지 궁금하다. 가급적 그런 일은 없어야겠지만.  

  불륜은 드라마 소재로도, 영화 소재로도, 소설 소재로도 자주 써먹힌다. 왜냐. 재밌으니까. 짜릿하니까. 자극적이잖아. 내가 쉽게 선택할 수 없는 사항을 나를 대신해 드라마나 소설, 영화 속에서의 누군가를 통해 대리만족을 느낀다. 당연하지. 현실에서 섣불리 그런 선택을 했다간 내게 어떤 일이 생길지 알 수 없는 건데.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암암리에 불륜은 행해지고 있다. 지하 어두운 곳에서. 다만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을 뿐이지.  

  "나는 전혀 불륜 체질이 아니었다. 자기 체질이 아니라는 것은 해보지 않고서는 잘 모른다고 하는데, 정말 그랬다. 토요일 아침에 그 사람이 돌가가면 늘, 아침 햇살 속에 떠다니는 빛나는 먼지의 입자를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생각했다. 방금 전까지 똑같은 맛의 커피를 마셨고, 같은 접시에 담긴 계란 프라이의 맛을 놓고 얘기를 나눴는데, 지금은 없다. 아까 틀어놓은 CD도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 이미 연락을 취할 수도 없다. 이런 상태는 죽음과 거의 다르지 않다. 그렇게 생각했다. 그 외로움의 껄끄러운 질감이 나는 그저 거북할 뿐이었다."(P51)  

  아니 누군들 처음부터 불륜 체질이겠느냐. 불륜에 체질이 어딨느냐. 하지만 모든 불륜의 시작은 열정적이지만 불륜의 끝은 비극적일 터. 대개는. 비밀스레 만나 비밀스럽게 즐기고 비밀스럽게 헤어진다. 그러나 사랑을 나누고 떠난 이를 그리워하는 남은 이의 상태는 죽음이다. 다시금 그는 또 그녀는 외로움을 느낀다. 어쩌면 그런 상태를 즐기기 위해 불륜을 저지르는지도. 결론은 없다. 소설은 결론을 내리진 않는다. 단지 쫙 훑고 지나갈 뿐이다. 이야기도 없고, 결론도 없으며, 교훈도 없다. 생각은 금물이다. 단지 느낌만 남는다. 느껴라.

 

* 트로피컬 뺘쑝이 뭔지 궁금하신 분은 본인에게 문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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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tty 2006-01-30 0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락사스님 굿모닝~
요시모토 바나나는 키친 외에 몇 개 읽은 후 개인적으로 졸업;;했지요.
트로피컬 빠숑이 뭐에요? (손 번쩍들고 질문;;)

마늘빵 2006-01-30 1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나나를 벌써 다 드셨군요. 키티님. 전 이제 껍질깠는데. 앞으로 더 먹어볼래요. 트로피컬 뺘쑝은... ㅋㅋ 종로에 있는 B&B라는 바에서 사장님이 12월 말에 개발한 새로운 칵테일이래요. 알콜이 강하지 않고 과일이 일곱가지인가, 아홉가진가 들어가는데, 주로 열대과일이요, 색깔이 초록빛과 붉은빛이 층을 이루고 있다가 섞으면 자줏빛으로 바뀌는 이쁘고 맛난 칵테일이에요. ^^ 저도 얼마전에 처음 맛봤어요.

하루(春) 2006-01-30 1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칫. 혹시 그 바 단골이세요?

마늘빵 2006-01-30 1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엇 왜요? 하루님. 거기 자주 가세요? 전 사실 한번밖에 안가봤어요. 근데 자주 가고파요. ^^

하루(春) 2006-01-30 2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보다는 좀 더 많이 가봤어요. 사장님이 되게 자상하고, 분위기 조용하고, 현찰로 계산하면 꼭 천원짜리를 신권으로 거슬러 주시고. ^^

마늘빵 2006-01-30 2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하루님도 거기 가시는군요. 전 우연히 가본 곳인데 좋아서 담에도 가려고요. 사장님 넘 자상하세요. 낮게 깔린 푸근한 목소리로 친절하게 설명해주시고, 음악도 좋고. 전 하루님 얼굴 모르는데 우연히 만나도 모르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