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밤, 불꺼진 거실에서 쇼파에 누워 홀로 이 슬픈 영화를 보고 있던 나는, 2003년 이후 또 눈물을 흘려야했다. 슬픈영화라는 걸 알면서도, 그때 눈물 와락 쏟아냈다는 걸 알면서도, 또 영화를 봤다. 슬프디 슬픈 뻔한 멜로라는걸 알면서도 말이다. 영화 속에서 사랑하는 사람이 죽는 건 흔해빠진 슬픈 멜로의 방식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멜로 영화 감독들은 여전히 사랑하는 이를 하나씩 죽인다. 관객은 다 예상했으면서, 다 알고 있으면서도, 슬퍼하고 감동하고 눈물 흘린다.
"나를 슬프게 하는 것은 세상 마지막 순간이 아니라 나로 인해 눈물지을 당신입니다."
학교 동아리 신입생과 동아리 회장으로 만난, 인하(박해일)와 희재(정진영). 우리의 만남은 처음이 아닙니다. 지하철에서 나는 당신의 모습을 봤습니다. 당신의 뒤에 서 있었습니다. 무서워하지도 않고 바득바득 할 말 다 하는 당신의 모습을 봤습니다. 그리고 지하철 자판기에서 동전이 떨어져 굴렀을 때 난 그 동전을 주워 당신에게 건네줬습니다. 기억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때 바람이 불며 당신의 머리결이 흩날렸고 당신에게서 국화꽃 향기가 났습니다. 사랑합니다.

* 헌책방에서 책꽂이 사이로 사랑하는 그녀를 바라보는 인하의 모습, 그리고 책을 읽으며, 음악을 들으며, 감상에 빠져있는 희재.
동아리 엠티날 물에 빠진 희재를 건져넨 인하는 그녀의 곁을 지키고 있다. 그리고 깨어난 그녀를 향해 사랑고백을 한다. 사랑합니다. 아니다 그것은 열정일 뿐이다. 시간이 지나면 깨닫게 될 거다 라며 거절하던 희재. 인하는 희재의 입술에 키스를 하고, 희재는 털털 털어버린다. 시간이 흘러 희재는 동아리 선배와 결혼을, 인하는 군입대를. 하지만 곧 교통사고로 희재는 부모님과 남편을 잃고, 자신 또한 세번의 수술을 통해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겨우 살아남았다. 인하는 라디오피디가 되었고, 매주 목요일 자신의 사연을 가명으로 내보낸다.

* 인하의 오랜 기다림과 희재의 외면이 끝나고 두 사람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결혼한다. 이제 불행 끝 행복 시작이면 좋으련만...

* 암을 숨기는 그녀, 사실을 알지만 모른척 하는 그. 희재는 아이 낳으면 귀찮은 일은 다 인하씨보고 하라한다. 빨래도 하고, 기저귀 갈고, 분유 만들고, 글자 숫자 가르치고. 하지만 인하는 안다. 그녀가 할 수 없기에 그에게 시키는 것이란 걸. 나무야 사랑해. 바다야 사랑해. 하늘아 사랑해. 엄마 사랑해. 아빠 사랑해.
그때의 사랑은 시간이 지나서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열정이 아니었습니다. 세월이 한참 흐른 지금도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이제 선배가 아닌 아내로 불러봤으면 좋겠습니다. 결혼을 했지만 희재는 임신한 상태에서 암을 앓고 있었다. 아이를 살리자. 그리고 내가 죽자. 나는 어차피 죽을 몸.
오랜 기다림 끝내 찾아온 사랑의 결말은 너무나 슬프다. 그토록 이 사람만을 바라봤고 이제서야 우리에게 행복이 오려하는데, 세상은 너무나 무심하다. 어떻게 그런 시련을 겪고 일어선 그녀에게 이제는 목숨마저 앗아갈 수 있단 말이냐. 희재는 인하에게 병을 숨기고, 인하는 알고 있으면서 모른 척 하고. 정말이지 못봐줄 두 사람이다. 서로의 사랑이 다칠까봐 조심스러워하는 두 사람의 모습은, 너무나 슬프다.
나, 머잖아 당신을 떠나, 나 머잖아 죽는대, 하는 말을 어떻게 할 수 있겠습니까. 자존심이 상해서 도저히 못하겠습니다. 그의 슬픔이 무서워서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나는 그를 떠날 수 없는데, 내 사랑이 그렇게 약해 보이는 건 너무나 싫기 때문입니다. 그가 나 때문에 절망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습니다.
- 1999. 11. 9 희재의 일기장 중에서 -
희재는 인하가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에 사연을 보내지만 한동안 인하는 알아채지 못했다. 그 우울하고 슬픈 편지의 주인공이 자신의 아내, 희재라는 사실을. 그걸 알고 절망하던 그의 모습, 차 옆에 쭈그리고 앉아 두 손 얼굴 감싸며 울고 있는 그의 모습은...
저렇게 슬픈 사랑은 말고, 저렇게 아름다운 사랑은 하고 싶다 라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영화다. 인하와 희재의 사랑이 슬프기에 아름다운 것은 아니므로. 만약 슬프기에 아름답다면 그것은 너무나 가혹하다. 차라리 그렇다면 아름다운 사랑을 하지 않으련다. 그러나 두 사람의 사랑은 슬프기에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너무나 간절하고 진실되기에 아름다운 것이다. 한 사람의 오랜 기다림 끝에, 그리고 만신창이가 된 자신을 보살펴준 그 사람에 대한 보답으로서 맺어진 사랑, 애써 그의 사랑을 외면해왔지만 이제는 안다. 그가 나를 너무나 사랑한다는 것을. 이만큼 나를 사랑해줄 사람은 없다는 것을. 두 사람의 사랑은 '슬프기에'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진실되기에' 아름다운 것이다. 진실된 사랑을 하고 싶다.
나는 몇년전에 비해 진실되지 못한 듯 하다. 불과 5년전까지만 해도 난 한 사람만을 사랑했고 그녀가 아니면 안될 것 같았다. 한 곳만 바라보는 사랑, 내 모든 마음을 다 줄 수 있는 사랑이었다. 하지만 지금 난 그렇지 못한 듯 하다. 왜 그럴까. 그래서 그런 내 자신이 싫을 때도 있다. 내가 나 자신이 이해되지 않을 때도 있다. 괴롭고 슬프다. 진실되고 솔직하고 순수하지 못한 나를 발견할 때.
"나를 슬프게 하는 것은 세상 마지막 순간이 아니라 나로 인해 눈물지을 당신입니다."
사랑하는 상대에 대한 배려가 무엇인지, 상대를 사랑하는 것이 어떤것인지 제대로 보여준 영화였다. 간밤에 홀로 청승맞게 눈물 뚝뚝 흘리며 내가 지금 뭐하는거야 나 싸이코 같아, 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뭐 어때. 감동적인 영화를 보고 눈물을 흘리는 건 당연한거 아니야? 오히려 그러지 못하는게 더 이상한거지. 나중에 시간이 또 한참 흐른 뒤에 다시 보고 싶은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