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모 비룡소 걸작선 13
미하엘 엔데 지음, 한미희 옮김 / 비룡소 / 1999년 2월
구판절판


세상에는 아주 중요하지만 너무나 일상적인 비밀이 있다. 모든 사람이 이 비밀에 관여하고, 모든 사람이 그것을 알고 있지만, 그것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사람들은 대개 이 비밀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조금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 비밀은 바로 시간이다.
시간을 재기 위해서 달력과 시계가 있지만, 그것은 그다지 의미가 없다. 사실 누구나 잘 알고 있듯이 한 시간은 한없이 계속되는 영겁과 같을 수도 있고, 한 순간의 찰나와 같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 한 시간 동안 우리가 무슨 일을 겪는가에 달려 있다. 시간은 삶이며, 삶은 우리 마음 속에 있는 것이니까. -77쪽

하지만 시간을 아끼는 사이에 실제로는 전혀 다른 것을 아끼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챈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아무도 자신의 삶이 점점 빈곤해지고, 획일화되고, 차가워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 점을 절실하게 느끼는 것, 그것은 아이들 몫이었다. 사람들은 이제 아이들을 위해서도 시간을 낼 수 없게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시간은 삶이며, 삶은 가슴 속에 깃들여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시간을 아끼면 아낄수록 가진 것이 점점 줄어들었다. -97-98쪽

"죽은 것으로 목숨을 이어 가기 때문이지. 너도 알다시피 그들은 인간의 일생을 먹고 살아 간단다. 허나 진짜 주인으로부터 떨어져 나온 시간은 말 그대로 죽은 시간이 되는 게야. 모든 사람은 저마다 자신의 시간을 갖고 있거든. 시간은 진짜 주인의 시간일 때만 살아있지."-20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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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륜과 남미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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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은 많은 사람을 만나니까, 연애를 하지 않기가 오히려 더 어렵다. 특히 쌍방이 일 때문에 바쁜 경우에는 불륜도 쉬 오래간다. 환경 탓으로 돌리고 있는데, 바로 그 환경이 이런 연애를 가능하게 하는 한, 환경에도 책임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어쩔 수 없는 일이 벌어져서...... 예를 들어 나 또는 부인이 임신을 하거나 부인의 부모가 죽거나 내가 다니는 회사가 망하거나, 그런 외적인 힘이 가해지면 사태가 변하겠지, 하고 생각했다. 아직은 젊고 어린 마음이 어떤 외적인 힘에, 진짜 인생의 무게에 다소 변하지 않을 수 없는 순간이 오겠지 하고 생각했다. 어린애 같다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것이 아니라, 성장의 순간을 놓치고 싶지 않을 뿐이었다. 그때의 자신을 생각하고, 어떤 식으로 받아들일지를 믿고, 맡기려 했다. 특히 현대에는 연애나 결혼이나 영원히 지속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마찬가지다. -23쪽

나는 전혀 불륜 체질이 아니었다. 자기 체질이 아니라는 것은 해보지 않고서는 잘 모른다고 하는데, 정말 그랬다. 토요일 아침에 그 사람이 돌가가면 늘, 아침 햇살 속에 떠다니는 빛나는 먼지의 입자를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생각했다. 방금 전까지 똑같은 맛의 커피를 마셨고, 같은 접시에 담긴 계란 프라이의 맛을 놓고 얘기를 나눴는데, 지금은 없다. 아까 틀어놓은 CD도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 이미 연락을 취할 수도 없다. 이런 상태는 죽음과 거의 다르지 않다. 그렇게 생각했다. 그 외로움의 껄끄러운 질감이 나는 그저 거북할 뿐이었다. -51쪽

나는 젊은 사람과도 몇번 사귄 적이 있지만 그 활기를 견딜 수가 없었다. 아무리 즐겁게 시간을 보내도 내 관심은 유리창에 비친 어둠과 날아가는 새가 하늘에 녹아드는 모습과 나방이 날개를 퍼덕거리며 바람을 견디는 모습에 옮아가고 말았다. 처음에는 그런 나의 마음을 따스하게 감싸주던 사람들도 끝내는 "당신과 있으면 쓸쓸하고 따분해져."라면서, 또는 말하지는 않아도 말하고 싶어 하며 떠나갔다. -95-96쪽

슬픔이란 결코 치유되지 않는다. 단지 엷어지는 듯한 인상을 주어 그것으로 위로 삼을 뿐이다. -123쪽

혼자가 아닌 여행의 가장 좋은 점은 이렇게 고독을 까맣게 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책임질 것은 자신의 목숨뿐, 늘 지니고 있는 것을 하나도 갖고 있지 않은데 혼자가 아니다. 이렇다 할 것 없는 가장 평범한 시간을 이렇게 공유할 수 있다. -15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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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그네 오늘의 일본문학 2
오쿠다 히데오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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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삶에는 가벼운 것과 무거운 것이 서로 경계를 알 수 없게 버무려져 있다. 그리고 사람마다 가벼움과 무거움의 정도는 다르다. 한마디로 상대적이다. 인간의 삶은 또한 겉과 속이 다르게 되어 있다. 완벽주의자는 있지만 완벽한 사람은 없듯이, 겉으로는 그렇게 보여도 속까지 그런 사람은 없을지도 모른다. 아 역시 상대적이다.

더러는 가벼워 보이던 것, 하찮던 것, 사소한 성격적 결함이 정신적 결함으로 이어지는 수가 있다. 그렇게 되는 계기는 아무도 알 수 없다. 다만 대다수의 사람은 그렇지 않닫는 것만을 알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것 역시 알 수 없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누구나 만들어 쓰고 있는 가면이 어떤 방패 노릇을 하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옮긴이의 말 中)-30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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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밤, 불꺼진 거실에서 쇼파에 누워 홀로 이 슬픈 영화를 보고 있던 나는, 2003년 이후 또 눈물을 흘려야했다. 슬픈영화라는 걸 알면서도, 그때 눈물 와락 쏟아냈다는 걸 알면서도, 또 영화를 봤다. 슬프디 슬픈 뻔한 멜로라는걸 알면서도 말이다. 영화 속에서 사랑하는 사람이 죽는 건 흔해빠진 슬픈 멜로의 방식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멜로 영화 감독들은 여전히 사랑하는 이를 하나씩 죽인다. 관객은 다 예상했으면서, 다 알고 있으면서도, 슬퍼하고 감동하고 눈물 흘린다.

  "나를 슬프게 하는 것은 세상 마지막 순간이 아니라 나로 인해 눈물지을 당신입니다."

  학교 동아리 신입생과 동아리 회장으로 만난, 인하(박해일)와 희재(정진영). 우리의 만남은 처음이 아닙니다. 지하철에서 나는 당신의 모습을 봤습니다. 당신의 뒤에 서 있었습니다. 무서워하지도 않고 바득바득 할 말 다 하는 당신의 모습을 봤습니다. 그리고 지하철 자판기에서 동전이 떨어져 굴렀을 때 난 그 동전을 주워 당신에게 건네줬습니다. 기억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때 바람이 불며 당신의 머리결이 흩날렸고 당신에게서 국화꽃 향기가 났습니다. 사랑합니다.



* 헌책방에서 책꽂이 사이로 사랑하는 그녀를 바라보는 인하의 모습, 그리고 책을 읽으며, 음악을 들으며, 감상에 빠져있는 희재.

  동아리 엠티날 물에 빠진 희재를 건져넨 인하는 그녀의 곁을 지키고 있다. 그리고 깨어난 그녀를 향해 사랑고백을 한다. 사랑합니다. 아니다 그것은 열정일 뿐이다. 시간이 지나면 깨닫게 될 거다 라며 거절하던 희재. 인하는 희재의 입술에 키스를 하고, 희재는 털털 털어버린다. 시간이 흘러 희재는 동아리 선배와 결혼을, 인하는 군입대를. 하지만 곧 교통사고로 희재는 부모님과 남편을 잃고, 자신 또한 세번의 수술을 통해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겨우 살아남았다. 인하는 라디오피디가 되었고, 매주 목요일 자신의 사연을 가명으로 내보낸다.



* 인하의 오랜 기다림과 희재의 외면이 끝나고 두 사람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결혼한다. 이제 불행 끝 행복 시작이면 좋으련만...



* 암을 숨기는 그녀, 사실을 알지만 모른척 하는 그. 희재는 아이 낳으면 귀찮은 일은 다 인하씨보고 하라한다. 빨래도 하고, 기저귀 갈고, 분유 만들고, 글자  숫자 가르치고. 하지만 인하는 안다. 그녀가 할 수 없기에 그에게 시키는 것이란 걸. 나무야 사랑해. 바다야 사랑해. 하늘아 사랑해. 엄마 사랑해. 아빠 사랑해.  

  그때의 사랑은 시간이 지나서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열정이 아니었습니다. 세월이 한참 흐른 지금도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이제 선배가 아닌 아내로 불러봤으면 좋겠습니다. 결혼을 했지만 희재는 임신한 상태에서 암을 앓고 있었다. 아이를 살리자. 그리고 내가 죽자. 나는 어차피 죽을 몸.

  오랜 기다림 끝내 찾아온 사랑의 결말은 너무나 슬프다. 그토록 이 사람만을 바라봤고 이제서야 우리에게 행복이 오려하는데, 세상은 너무나 무심하다. 어떻게 그런 시련을 겪고 일어선 그녀에게 이제는 목숨마저 앗아갈 수 있단 말이냐. 희재는 인하에게 병을 숨기고, 인하는 알고 있으면서 모른 척 하고. 정말이지 못봐줄 두 사람이다. 서로의 사랑이 다칠까봐 조심스러워하는 두 사람의 모습은, 너무나 슬프다.

  나, 머잖아 당신을 떠나, 나 머잖아 죽는대, 하는 말을 어떻게 할 수 있겠습니까. 자존심이 상해서 도저히 못하겠습니다. 그의 슬픔이 무서워서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나는 그를 떠날 수 없는데, 내 사랑이 그렇게 약해 보이는 건 너무나 싫기 때문입니다. 그가 나 때문에 절망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습니다.

- 1999. 11. 9 희재의 일기장 중에서 -

  희재는 인하가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에 사연을 보내지만 한동안 인하는 알아채지 못했다. 그 우울하고 슬픈 편지의 주인공이 자신의 아내, 희재라는 사실을. 그걸 알고 절망하던 그의 모습, 차 옆에 쭈그리고 앉아 두 손 얼굴 감싸며 울고 있는 그의 모습은...

  저렇게 슬픈 사랑은 말고, 저렇게 아름다운 사랑은 하고 싶다 라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영화다. 인하와 희재의 사랑이 슬프기에 아름다운 것은 아니므로. 만약 슬프기에 아름답다면 그것은 너무나 가혹하다. 차라리 그렇다면 아름다운 사랑을 하지 않으련다. 그러나 두 사람의 사랑은 슬프기에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너무나 간절하고 진실되기에 아름다운 것이다.  한 사람의 오랜 기다림 끝에, 그리고 만신창이가 된 자신을 보살펴준 그 사람에 대한 보답으로서 맺어진 사랑, 애써 그의 사랑을 외면해왔지만 이제는 안다. 그가 나를 너무나 사랑한다는 것을. 이만큼 나를 사랑해줄 사람은 없다는 것을. 두 사람의 사랑은 '슬프기에'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진실되기에' 아름다운 것이다. 진실된 사랑을 하고 싶다.

  나는 몇년전에 비해 진실되지 못한 듯 하다. 불과 5년전까지만 해도 난 한 사람만을 사랑했고 그녀가 아니면 안될 것 같았다. 한 곳만 바라보는 사랑, 내 모든 마음을 다 줄 수 있는 사랑이었다. 하지만 지금 난 그렇지 못한 듯 하다. 왜 그럴까. 그래서 그런 내 자신이 싫을 때도 있다. 내가 나 자신이 이해되지 않을 때도 있다. 괴롭고 슬프다. 진실되고 솔직하고 순수하지 못한 나를 발견할 때.

  "나를 슬프게 하는 것은 세상 마지막 순간이 아니라 나로 인해 눈물지을 당신입니다."

  사랑하는 상대에 대한 배려가 무엇인지, 상대를 사랑하는 것이 어떤것인지 제대로 보여준 영화였다. 간밤에 홀로 청승맞게 눈물 뚝뚝 흘리며 내가 지금 뭐하는거야 나 싸이코 같아, 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뭐 어때. 감동적인 영화를 보고 눈물을 흘리는 건 당연한거 아니야? 오히려 그러지 못하는게 더 이상한거지. 나중에 시간이 또 한참 흐른 뒤에 다시 보고 싶은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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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 게바라 자서전
체 게바라 지음, 박지민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4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처음 그를 접한 것은, 혁명가로서의 그가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한 외국 록밴드의 우상으로서였다. 지금은 해체한 Rage against the machine 이라는 유명한 뉴메틀 밴드가 있었다. 이 밴드의 보컬 잭 드라 로차 와 기타리스트 탐 모렐로는 체 게바라를 사랑했고, 공연 때면 그의 커다란 사진을 배경으로 삼곤 했다. 그들은 '기계에 대한 분노'라는 그들의 밴드명과도 같이 자본주의가 낳은 병폐들에 대해 음악으로서 분노를 표출했다. 미 제국주의에 대해, 자본주의에 대해, 그들은 분노했다. 그리고 전 세계 젊은이들은 그들의 음악을 듣고 열광했다. 심지어 미국의 젊은이들까지도. 현재 활동하고 있는 미국을 가장 심하게 비판하는 미국인으로 '노엄 촘스키'를 꼽곤 한다. 그의 미 제국주의에 대한 분석과 경멸, 분노는 정말이지 '췩오'다. 미국을 비판하는 지성인으로 촘스키가 있었다면 불과 몇년전만 해도, 미국을 비판하는 뮤지션으로는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이 있었다. 탐 모렐로, 하버드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국회의원 보좌관으로도 일했던 그가 때려치고 자신의 분노를 표출하고자 밴드를 조직했다.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을 통해 접하게 된 '체 게바라' 라는 이름. 아니 그가 누군데 이렇게 많은 이들이 숭배하고 열광을 하는거지?! 라는 의문이 생기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 그래서 그를 뒷조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가 쿠바의 유명한 혁명가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리고 2000년 3월, <체 게바라 평전>이 출간되었다. 이 책은 체에 대한 나의 의문을 충분히 해소해주었다. 이후 체 게바라 열풍이 불면서 젊은이들은 너나 나나 그의 사진이 인쇄된 티셔츠를 입고 다녔고, 평전은 베스트셀러에 안착했다. 아니 도대체 왜 이런 열풍이 부는거지? 솔직히 이해가 안됐다. 그를 알게 되고 그를 좋아하게 되었지만 이와 같은 과잉 숭배 현상은 당황스러웠다. 나 같은 이들이 많아진건가? 그 뒤로 그에 관한 책이 물밀듯 쏟아진 것은 당연지사. 왜냐면 흥행코드였으므로. 내면 왠만큼 수익은 보장된다. 그러니 일단 내고보자.

  <먼 저편>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카스트로의 쿠바> <체 게바라, 인간의 존엄을 묻다> <체 게바라와 쿠바혁명> <체의 마지막 일기> <체 게바라 핸드북> <체 게바라가 살아 한국에 온다면> <체 - 한 혁명가의 초상> 심지어 <소설 체 게바라>까지. 엄청나다. 한 사람에 대해 이렇게나 많은 책들이 나올 수 있다는 건, 마르크스 이후 처음이 아닐까 싶다.

 지금 소개하는  <체 게바라 자서전>은 체 게바라 흥행시기에 맞춰 나온 기획상품은 아니다. 출판일이 2005년 겨울이니 적어도 시기에 맞춰 팔아먹기 위해 나온 책은 아니다. 내가 그에 관한 책을 접하는 건 2000년에 읽은 <체 게바라 평전> 과 더불어 이 책이 두번째다. 앞서 읽은 책은 평전이었고, 이 책은 자서전이란 이름으로 나왔다. 평전과 자서전은 어떻게 다른가?

  '평전'이라는 것은 비평을 겸한 전기를 말한다. '자서전'은 자기가 쓴 자기의 전기를 말한다. 어떤 한 인물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공통적이지만 이야기의 화자가 다른 것이다. 평전은 남이 그 사람의 이야기를, 자서전은 내가 나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체 게바라는 살아생전 자서전을 남기지 않았다. 그가 남긴 수많은 편지글과 칼럼, 시는 존재하지만 자서전은 존재하지 않는다. 아니 그런데 어떻게 자서전이 출간될 수가 있는가. 말이 자서전이지 후대의 사람들이 그가 남긴 이런저런 글들을 모아 만들어 짜깁기해 낸 책이 자서전이다. 비폭력 불복종 운동으로 유명한 간디의 경우도 자서전을 쓰지 않았지만 <간디 자서전>이라는 책이 있듯이 말이다.  '20세기 가장 완전한 인간의 삶'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있는 체 게바라의 자서전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1928년 6월 14일에 태어나 1967년 10월 9일의 날짜로 생을 마감한 이 젊은 혁명가 체 게바라. 그가 죽음을 맞이했을 때의 그의 나이는 39살이었다. 요즘으로 치면 한창 사회생활을 할 나이다. 돈 좀 모아 인생을 즐길 나이다. 하지만 그 나이에 그는 일찌감치 생을 마감했다. 아르헨티나 인이면서 쿠바 혁명가로 이름을 날린 체 게바라. 그는 아르헨티나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의대를 다니던 대학생이었다. 친구와 함께 떠난 여행길에 삶의 전환기를 맞이한다. 본래 계획은 쿠바, 콜롬비아, 베네수엘라를 거쳐 다시 아르헨티나로 돌아오는 것이었다. 그러나. 여행길에 보게 된 부조리한 사건들. 그는 과테말라 혁명에 참가했다 멕시코로 망명, 그곳에서 현재의 쿠바 국가 평의회 의장 피델 카스트로를 만나게 된다. 그를 만난 뒤, 그의 제안으로 쿠바의 혁명 선두주자로 나선다. 쿠바혁명은 성공했고, 그는 그곳에서 젊은 나이에 중앙은행 총재와 산업부 장관을 역임했다. 고생한 만큼 명예도 누렸다. 하지만 그에게 그것은 명예가 아니었다. 혁명을 완성시키기 위한 뒷작업일 뿐. 그는 혁명이 자리잡았다고 생각할 즈음 주위의 만류를 뿌리치고 다시 혁명길에 오른다. 쿠바의 혁명이 목표가 아니라, 그는 라틴 아메리카의 혁명, 나아가 세계의 혁명을 꿈꾸었다.

"우리 모두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가슴 속에 불가능한 꿈을 지니자." 그는 가슴 속에 불가능한 세계 혁명의 꿈을 지닌 채, 리얼리스트가 되어 혁명길에 오른다. 세계혁명의 꿈은 정말 꿈에 불과했다. 볼리비아에서 그는 미국의 지원을 받은 볼리비아 정부군에 사살당한다. 포로는 사살할 수 없다는 제네바 협정을 깨면서 그는 볼리비아 정부에 의해 죽었다. 그의 유해는 불과 10년도 안된 시기, 1997년에 비로소 쿠바로 오게 된다.

  <체 게바라 자서전>은 그가 남겨놓은 수많은 글들을 정리해서 묶어놓은 책이다. 어떻게 보면 그의 편지글과 칼럼과 인터뷰와 시들을 짜깁기해 낸 자료집에 불과하지만 이렇게라도 그를 접할 수 있는건 다행인지도 모른다. 자서전은 애초 없었다. 그가 남긴 글 묶음이 자서전을 대신할 뿐이다. 친구에게 쓴 편지, 어머니에게 쓴 편지, 이모에게, 죽어간 동료에게 쓴 편지, 그리고 혁명을 역설한 글, 기자와의 인터뷰가 실려있다. 생생한 그의 친필 편지 사진도 실려있다. 사진도 있다. 그는 혁명가이기 전에 사진작가이기도 했다. 사진작가로 먹고 살았고, 사진찍기를 좋아했다.  자서전의 제 역할을 해주지는 못하지만 그의 수많은 자료를 한데 묶어놨다는 것으로 만족해야 하는 책이다.

  어쩌면 체 게바라는 실제에 비해 지나치게 숭배받는지도 모른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왜 미국의 젊은이들 조차도 체 게바라에 열광하는가. 그것은 마르크스가 죽은지 오래된 지금에서도 마르크스가 주목받는 이유에서 공통점을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맑시즘을 토대로한 舊 소련의 혁명은 실패했다. 그리고 체 게바라의 쿠바의 혁명은 성공했지만 라틴 아메리카의 혁명, 세계의 혁명은 실패했다. 혁명은 모두 실패했지만 마르크스와 체 게바라, 두 사람은 현실에서 직접 행동하며 자신이 꿈꾸는 혁명을 이뤄보려 노력했다. 실천하는 지식인으로서의 삶을 보여주었다. 혁명의 성공여부를 떠나, 그들이 옳고 그름을 떠나, 그들은 생각하는 바를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열정과 이상을 보여주었다. 그것이 그들이 주목받는 이유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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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06-01-27 2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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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06-01-27 2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를 본받는 건 어렵겠지요. 그를 좋아하는 것만으로 소임을 다했다고 생각하면 안될까요.......................

마늘빵 2006-01-27 2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정답 : 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