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칼이 될 때 - 혐오표현은 무엇이고 왜 문제인가?
홍성수 지음 / 어크로스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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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표현의 자유는 자신의 정당한 권리를 찾고자 하는 모든 이들의 문제, 특히 소수자의 문제다. 그래서 표현의 자유에 관한 논란이 ‘자유 확대’가 아니라 ‘자유 축소’로 귀결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설사 ‘아주 공평하게’ 진보와 보수, 강자와 약자, 좌파와 우파의 표현의 자유를 모두 축소하는 방향으로 흘러간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서로 하고 싶은 말을 제약받는 정도가 커질수록 이득을 보는 쪽은 강자다. 서로 할 말을 못 하는 상황은 ‘현상 유지’를 바라는 강자의 입장에서 그리 나쁘지 않다. 반면 소수자의 입장은 정확히 그 반대다. 소수자에게는 더 많은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 그래야 현재의 부당한 현실을 바꿀 수 있고 그들의 권리가 보장될 수 있기 때문이다.

31
정리해보자면, 혐오표현이란 "소수자에 대한 편견 또는 차별을 확산시키거나 조장하는 행위 또는 어떤 개인, 집단에 대해 그들이 소수자로서의 속성을 가졌다는 이유로 멸시, 모욕, 위협하거나 그들에 대한 차별, 적의, 폭력을 선동하는 표현" 정도로 그 개념을 정의해 볼 수 있다.

44
나도 남성이라서 남성을 일반화하여 비난하는 발언을 들으면 기분이 썩 좋지는 않다. 하지만 남성에 대한 차별적, 모욕적 표현이 난무한다고 해서 내가 차별과 성폭력의 피해자가 될 것을 걱정하지는 않는다. 그저 좀 언짢을 뿐이다. 하지만 여성 혐오는 여성을 열등한 존재로서 차별하는 것을 넘어 일상적인 공포를 야기하기도 한다. 열등한 존재인 여성을 대상화하고 종속화하는 남성 지배 문화에서의 여성을 폭력의 대상으로 삼기도 한다.

80-81
월드론은 혐오표현이 어떤 사회적 환경이나 상황을 창출한다는 점에 주목한다. 혐오표현이 만연한 환경에서는 소수자들이 ‘이 사회에서 평등한 대우를 받으며 살 수 없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적대, 폭력, 배제의 위협을 받지 않는다는 ‘확신’을 가질 수도 없다. 또한 월드론은 존 롤스의 정치철학에 바탕해 질서정연한 공정한 사회에서 각 개인들은 서로가 서로를 어떻게 대우하고 대우받을지에 관한 확신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모든 이들은 평등한 인간이고, 인간성의 존엄을 가지며, 모든 이들은 정의에 관한 기초적인 권한을 가지며, 모든 이들은 폭력, 배제, 모욕, 종속의 가장 지독한 형태로부터 보호받을 자격이 있음에 관한 확신"하는 것이 정의의 중요한 기초인데, 혐오표현은 이 기초를 붕괴시킨다는 것이다. (...) 만약 혐오표현이 소수자를 사회에서 실질적으로 배제하고 청중들을 차별과 배제에 동참하도록 유도하는 등의 현실적 해악을 가지고 있다면 평등과 인간 존엄 등 다른 헌법적 가치의 수호를 위해 혐오표현을 규제해야 할 것이다.

82
머릿속을 들여다볼 수 없기 때문에 편견 자체가 규제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편견을 해소해야겠지만 이것은 편견에 대한 직접적인 규제가 아니라 편견이 싹틀 수 없도록 사회문화적, 정치경제적 배경을 조성하는 것으로 접근해야 할 문제다. 편견을 밖으로 드러내면 그것이 바로 혐오표현이다.


150-151
표현의 자유는 원래 ‘소수자’의 권리로서 의미가 있는 것이다. 다수자나 강자는 자유자재로 표현의 자유를 누릴 수 있지만 소수자에게 표현의 자유는 자신의 인권을 실현하기 위한 핵심적 가치다. 생존권, 평등권, 참정권, 노동권 등 모든 권리의 실현을 위해 소수자는 자신의 권리를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표현의 자유는 다른 권리의 실현을 위한 전제조건인 것이다. 그래서 소수자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하여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은 최대한 신중해야 한다. 표현의 자유에 대한 규제 총량이 증가하는 것은 언제든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음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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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라는 문제 - 교양 있는 남자들의 우아한 여성 혐오의 역사
재키 플레밍 지음, 노지양 옮김 / 책세상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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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44-45
다윈의 사촌 같은 천재들은 모든 천재가 어떻게 탄생했는지를 연구하기 시작했다네. 그리고 혼란에 빠졌어.
그들은 일단 남자 위인 목록을 만들었고 그것으로 여자의 지적 능력은 별 볼 일 없다는 사실을 증명했다더군. 물론 좋은 쪽으로 별 볼 일이 없다는 뜻이지.

74
위대한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예술 분야에서, 아니 분야를 막론하고 여자는 위대하거나 독창적인 업적을 성취할 수 없다고 했다네. 일단 여자들은 머리 모양부터 전혀 천재답지 않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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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를 위한 페미니즘
벨 훅스 지음, 이경아 옮김, 권김현영 해제 / 문학동네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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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2
여성으로서 우리가 누구를 사랑할지, 누구와 몸을 나누고 함께 살지 선택할 자유는 동성애자 인권과 여성의 권리를 위해 투쟁했던 급진주의 레즈비언들 덕분에 크게 향상됐다. 페미니즘 운동에서 예나 지금이나 레즈비언들은 모든 유색인종 여성들이 성적 취향이나 정체성에 상관없이 인종차별주의에 맞서고 저항해야 했던 것처럼 동성애 혐오에 맞서고 대항해야 했다. 동성애 혐오를 영속화하면서 자신이 페미니스트라 주장하는 여성들은 백인우월주의적 사고를 고수하면서 자매애를 원하는 여성들만큼 착각에 빠져 있으며 위선적이다.

225
동성애 혐오에 대한 싸움은 언제나 페미니즘 운동의 한축을 차지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성애자 여성들이 레즈비언을 계속 경멸하며 부차적인 존재로 보는 한, 여성들이 자매애를 키워나가기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선구적인 페미니즘 운동에서는 레즈비언 활동가들의 노고를 충분히 인정해야 한다. 급진적 레즈비언들의 투쟁이 없었다면, 페미니즘의 이론과 실천은 이성애중심주의의 경계를 밀어버리고 그 자리에 자신의 성정체성이나 취향 혹은 그 모두를 막론하고 모든 여성들이 원하는 모습대로 자유롭게 살아갈 공간을 만들겠다고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251
한쪽에서는 캐럴 길리건 같은 페미니즘 사상가들이 질리지도 않고 여성이 더 다정하고 더 윤리적이라고 말했지만, 여성들이 자신보다 더 힘없는 다른 여성들에게 하는 행동을 보면 도무지 그 말에 동의할 수 없다. 여성들이 자신이 속한 정체성이라 생각하는 같은 민족이나 인종 집단에 보이는 보살핌의 윤리는, 그들이 공감할 수 없고 동질성이나 연대감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미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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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선 - 나의 섹슈얼리티 기록
홍승희 지음 / 글항아리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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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이브 세즈윅은 성적인, 성적이지 않은 남성 간의 유대를 호모소셜이라고 표현했다. 이는 ‘동성’을 의미하는 homo와 ‘사회적인’ 이라는 뜻의 social을 합친 개념이다. 단어로만 보면 동성 간의 사회관계이지만, 개념상으로는 ‘남성 간의 유대’를 의미한다. 즉 호모 소셜은 남성들이 지배하는 사회 문화에서 성원으로 인정되는 그들끼리의 인정과 유대를 뜻한다. 이 유대관계에 포함되려면 "넌 남자로 인정한다."라는 남자의 인정이 필요하다. 남성 연대에 인정받기 위해서는 동성인 남자를 욕망하지 않고 여성을 욕망할 것이 조건이 된다. 여성을 자기 밑에 두고 욕망의 대상으로 밀어내야 남성 연대는 유지된다.

109-110
페미니즘을 만나면서 글 쓰는 방식도 변했다. 예전처럼 선험적이고 추상적인 단어들을 쓰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나를 메시아적 위치에 과도한 진정성은 폭력의 경중을 따지며 구체적인 타인의 자리를 상상하기 어렵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런 저항에서 남는 건, 사업의 수완과 쿨한 예능감뿐이다. ‘섹시한 진보!’ 그런 식의 저항이 많은 깃발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는 몰라도 구체적인 일상과 삶을 움직이진 못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누군가를 대변할 유능한 영웅이 아니다. 모든 사람이 자기 삶을 직접 말할 수 있는 환경과 관계다.

132
권력이 있는 그들은 강압적이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은근하다. 거부하면 "왜 내가 이렇게 부드럽게 말했는데 정색을 해?"라는 표정을 지으며 상대를 분위기 파악 못하는 사람으로 만든다. 성적 접근에 불쾌함을 표현하면 "어린애도 아니고 다 큰 성인들끼리 이럴 수도 있는 거지"라며 상대가 자신의 섹스어필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쿨하지 않고 딱딱하고 미숙한 인간인 듯 취급한다.

276
온전한 만남이 가능할까. 여러 마주침을 겪으면서 이성을 만날 경우 적어도 마음을 열 만한 사람인가에 대한 리트머스지가 생겼다. 페미니즘, 페미니스트에 대한 편견이 있는가. 가부장제의 부조리를 인지하고 있는가. 엄마에 대한 무거운 죄책감이나 숭배 감정이 있는가. 상대방이 하는 말에 진심으로 (입을 다물고) 경청하고 공감할 줄 아는가. 대화의 맥락을 잘 파악하는가. 자신이 폭력을 저지를 수 있다는 걸 자각하는가. 폭력을 저질렀다면 그것을 인정하고 성찰하고 반성할 수 있는가. (앎과 삶의 일치를 위한) 공부를 부지런히 하는가.

285
우리 관계와 삶을 해명하길 요구하는 무수한 사람들을 마주치면서 느낀다. 사랑은 수많은 관습의 폭격으로부터 지금 우리 서사를 지켜내는 저항이라는 걸. 지켜내는 걸 넘어 계속 확장해가는 정치적 행위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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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계속 불편하면 좋겠습니다
홍승은 지음 / 동녘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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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행복이 의무가 된 세상에서 불편함은 낯설고 배척해야 할 감각이 된다. 그래서 불편은 곧 불행으로 여겨진다. 공기 같은 차별과 일상 속 권력관계를 감지하는 페미니스트가 사랑받지 못한 히스테릭한 존재라고 비하되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불행한 여자이기 때문에 불평이 많다는 것이다. 하지만 불편과 불행은 같은 말이 아니다. 무언가에 불편함을 느낄 수 있는 힘은 ‘왜’라는 인간 본연의 질문과 섬세한 감각, ‘자연스러운 것은 없다’는 부지런한 지성에서 나온다. 그런 점에서 오히려 불편과 가까운 말은 정의이고, 나아가 자유다. 여성학자이자 평화학 연구자인 정희진의 말처럼, 상식에 도전하는 모든 새로운 언어는 우리를 행복하게 하지 않는다. 그러나 자유롭게 한다.

15
질문이 부족한 사회는 아니지만 질문하는 사람은 한정적이다.

15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존재는 불편함을 주지 않는다. 우리가 무언가에 불편할 수 있는 건, 어떤 존재가 눈에 걸리적거릴 때이다. 여성을 비롯한 소수자의 몸에서 일어나는 일은 침묵됨으로써 존재하지 않게 된다. 그래서 그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존재가 스스로 목소리를 낼 때, 세상은 딸꾹질한다.

47
사랑의 다른 모습을 상상해보았다. 우리가 서로에게 친절한 타인으로 남을 수 없는 걸까. 각자의 삶을 존중하면서도 때로는 날 선 말로 서로의 굳은살을 해체하며 예민하게 성장할 수 있는 관계로, 여전히 나도 사랑한다는 이유로 상대를 통제하고 싶은 마음을 누르기 힘들 때가 많지만, 많은 부분 이 욕망이 상대를 위하는 게 아니라 내가 편해지기 위해서란 걸 떠올리며 정말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이 아니라면 말을 줄이려고 노력한다.
누구도 한 사람의 인생을 책임질 수 없으며, 어떤 사람도 누군가의 구원이 되지는 못하니까. 상대의 삶에 깊숙이 들어가서 영향을 주는 것보다, 서로의 경계를 존중하며 친절한 타인으로 남는 게 더 어렵다. 관계 맺음의 상상력 갖기. 존재 앞에서 겸손해지기. 그것이 관심이 아니라 침범이었다는 걸 인정하기.

212
나의 편리함은 누군가의 불편함을 수반한다. 나의 게으름은 누군가의 노동에 기대어 누리는 권력이다. 나는 오늘 얼마나 많은 노동에 기대어 편리함을 누렸을까. 얼마나 많은 차별 속에서 모른 척 편리함을 누렸을까.

296
동정과 공감은 달라요. 누군가를 불쌍하게 여기는 동정은 타인보다 내가 더 낫다는 생각을 기반으로 내 위치를 더욱 견고하게 만들어요. 공감적 상상력은 상대의 자리에 나를 세우는 일이에요. 내 세계가 깨지며 확장되는 일이죠. 모든 공부, 만남, 애도는 그래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 이전의 나로 돌아갈 수 없는 일이어야 해요. 타인의 세계가 나를 바꿔놓고, 나를 죽이는 것. 우리는 더 불편해져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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