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말 오랫만에 다시 본 영화 <타이타닉>. 점심을 먹으며 티비를 보려고 케이블 티비 27번을 시작으로 쭉쭉 돌리다가 발견. 어 아직 시작 안했네?! 괜찮은 영화가 아직 시작하지 않았을 때, 난 속으로 좋아라 한다. 영화는 보려면 첨부터 끝까지 다 봐야한다. 보다 말거나, 못보다 중간부터 보거나 하는 건 안된다. 영화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타이타닉>은 정말 길다. 이 영화가 처음 나온게, 1998년. 내가 대학 1학년이 막 되기 바로 전. 그니깐 고3 수능을 마치고 놀고 있던 때 개봉한 영화다. 그때 난 여자친구가 없는 관계로, 또 함께 볼 친구인 여자도 없는 관계로 - 난 남중에 남고를 나와서 아는 여자애 조차 없었다 - 지금의 베스트 프렌과 함께 이 영화를 보러 갔다. 그리곤 얼마나 후회를 했던지. 영화가 재미없어서가 아니라, 주변의 수많은 연인들 때문에. 흠. 역시 멜로영화 보러는 남자끼리 가면 안된다. 그때 이후 아마도 멜로를 볼 때 남자를 대동했던 적은 없는 듯. 아. <클로져>를 볼 때는 단체 관람을 했다. 이런. 이 영화는 단체 관람으로 볼 만한 영화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타이타닉>은 그때까지 나온 어떤 영화 보다도 가장 러닝타임이 긴 영화였다. 3시간 35분짜리. 지금도 이 영화보다 긴 영화가 있을까 싶다. 영화는 짧고 재밌게 만들어야 수익을 높이는데 - 왜냐면 극장에서 빨리 빨리 필름 돌려서 하루에 최대한 많이 상영해야하니깐 - <타이타닉>은 이걸 깨는 영화였다. 이득을 포기한건가? 그렇진 않은듯. 긴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당시 극장가 1위를 한참 달렸던 거 같다. 울나라에서나 해외에서나. <태극기를 휘나리며>가 개봉하고 있을 때 사람들이 이 영화도 보지 않은 사람하고는 얘기도 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 약간 과장이고, 그만큼 누구나가 다 봤다는 말, 대한민국 국민의 4분의 1이 봤다고 들은거 같다 - <타이타닉> 역시 이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은 끼어주질 않았다. 나야 물론 일찌감치 봤으니 해당사항 없었지만.

* 영화의 문제의 장면. 이 장면 따라하다 한강 유람선에서 강에 빠진 연인들에 대한 기사가 나오기도 했다. 수많은 연인들이 이 장면을 따라하느라 배를 탔다지? 난 솔로여서 그런거 못해봤지만. 흠.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케이트 윈슬렛을 유명하게 만들어준 영화이기도 하다. 두 사람의 짧지만 불같은 강한 사랑. 인간이 만들어낸 가장 거대하나 운송수단인 타이타닉호. 처녀항해를 하는 타이타닉호는 크기면에서나, 내부장식면에서나, 안정성, 속도 등 모든 면에서 최고를 자랑하고자 뉴욕으로 가는 길을 서두른다. 포커치다 타이타닉호의 표를 따내 뉴욕으로 향하는 잭은 타이타닉호의 3등실 승객. 갑판에서 친구들과 수다를 떨던 중 어여쁜 처자 로즈에게 한눈에 반해버리고. 간밤에 배 맨 뒤에서 자살하려고 하는 로즈를 구해주면서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상류사회의 가식에 이력이 난 로즈. 그녀는 자유를 꿈꾼다. 그리고 자유를 누리며 떠돌이 생활을 해온 잭은 그녀의 몸안에 꿈틀대는 자유를 끄집어내준다. 약혼녀임에도 불구하고 잭과 어울리는 로즈는 결국 잭을 사랑하게 되고, 잭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 잭은 그녀를 모델로 그림을 그리고, 둘은 칼의 집사를 피해 배의 이곳저곳 도망쳐다니는데.

* 보트는 한정되어 있고, 모두가 살고 싶어한다. 너도 나도 살겠다 아우성치지만 절반 이상이 죽을 운명이다. 이 생존의 치열한 현장. 잔혹한 현장. 고통스러운 현장. 산자도 죽은자도 슬프다.

* 실제 타이타닉호.
영화는 계속되는 빙하경고를 무시하고 전속력 항해를 하는 타이타닉호가 빙하와 충돌하면서 급격한 반전을 겪는다. 행복했던 나날들은 이제 갔다. 배는 아래칸부터 서서히 물이 차오르기 시작하고, 1-2시간 후면 침몰할거라는 설계자의 말. 우선 1등실 승객 먼저, 여자와 아이 먼저, 3등실 승객은... 미관을 아름답게 하기 위해 구명보트를 줄여 탈 자리가 없다. 배의 승객은 2천 2백명. 하지만 이곳에서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 사람은 1천 5백명. 결국 7명백만이 살아남는다.
이 영화는 멜로 영화로 분류되지만, 잭과 로즈의 사랑 말고도 전설의 타이타닉호의 침몰과정을 지켜본다는 점에도 의미가 있다. 살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만, 배의 승객들은 모두 다른 방식으로 각자의 죽음을 준비한다. 아무도 듣지 않는 상황에서도 꿋꿋이 연주를 하는 바이올리니스트, 첼리스트 아저씨들. 1등실 승객들을 위해 항상 연주를 했지만 1등실 승객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음악을 안듣긴 마찬가지다. 위험한 상황에서 사람들의 마음을 가라앉혀주고자 연주를 하고, 자신을 위해 마지막 연주를 한다. 그렇게 죽음을 맞이한다. 배의 설계자 또한 하염없이 방에서 시계만 바라본 채 그대로 죽음을, 배의 선장 또한 조타실(?)에서 죽음을, 한 할아버지 할머니 부부는 침대 위에서 꼭 껴안은채로, 엄마는 두 아이에게 자장가를 불러주며 그렇게 죽음을 맞이한다. 과연 죽음을 앞에 두고 저렇게 의연한 자세를 취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다른 한쪽에선 총을 쏘며 서로가 보트를 타겠다고 다툰다. 돈을 주기도, 몰래 혼자 울고 있는 여자아이를 끌어안고 자기가 이 아이의 마지막 혈육이라며 배에 합승한 로즈의 약혼자 칼. 같은 배의 설계자이지만 여자와 아이들이 탄 보트가 내려가는 순간, 그 앞에서 몰래 탑승하는 사람, 또 승객들의 안전을 위해 지시를 하다 한 남자를 쏴 죽여버린 자신을 비관, 그 자리에서 권총자살한 1등 항해사.
타이타닉호가 두동강 난 채 침몰하고, 잭과 로즈는 바다에 떴다. 잭은 로즈를 살리기 위해 장농문짝 위에 로즈를 올리고, 자신은 바다에 몸을 담근채 로즈와 함께 한다. 시간은 흐르고, 바다에 뜬 사람들은 모두 죽었다. 잭도 말이 없다. 홀로 남은 로즈. 그녀는 결국 잭과의 약속 - 마지막까지 살아남아 애도 낳고 손자 손녀보며 살겠다는 - 을 지켰다. 바다에 뜬 승객 중 최종 6명의 생존자에 속하게 된 것이다. 잭과 로즈. 매우 짧은 시간 동안의 강렬한 사랑을 나눈 그들. 사랑은 뜨겁고 아름다웠으나 짧았다. 로즈는 끝까지 살아남았고 이후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손녀도 보며 101살이 되도록 살아있다.
눈물 펑펑 짜내는 슬픈 멜로는 아니지만 가슴 속 살며시 적시며 마지막 눈물 한 방울에 모든 걸 담아내는 영화다. 고통의 시간을 보내며 죽어간 영혼들을 위하여, 잭과 로즈의 아름다웠던 사랑을 위하여. 건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