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이레 / 2005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는 누구나 불안을 안고 산다.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부터 모든 것이 불안하다. 아기 때는 엄마와 떨어지는 것이 불안했고, 조금 커서는 잘못해서 선생님과 엄마 아빠께 혼날까봐 불안했으며, 시험공부를 다 못해서, 나의 말실수로 친구들과 사이가 안좋아질까봐, 여자친구와 헤어질까봐, 취직할 수 없을까봐, 돈을 못벌까봐, 승진을 못할까봐, 퇴직당할까봐, 아내가 이혼하자고 할까봐, 불안해 한다. 그것은 두려움이기도 하다. 두려움은 불안과 연결된다.

  삶 속에서 우리가 겪는 아주 일상적인 이야기들을 재미나게 풀어내는 이 작가, 알랭 드 보통이 이번에는 '불안'에 대해 사색해봤다. 그리고 자신의 사색의 결과물들을 우리에게 글로 풀어줬다. 그의 글은 언제나 어려운 듯 하면서 쉽다. 어려운 철학자들의 이름과 이론을 끄집어내면서 굳이 그들을 알지 못해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이해'라는 것이 필요 없을 정도로 쉽게 풀어준다. 그리고 생각하게 만든다. 그런 점에서 그의 모든 책은 철학책이다.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책을 쓴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죽음에 대해서, 삶에 대해서, 자살에 대해서, 사랑에 대해서, 섹스에 대해서, 마약에 대해서, 어떤 주제든간에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책을 쓴다는 것은, 그리고 거기에 자신이 생각한 바를 체계적으로 엮어낸다는 것은 매우 어렵다.

  알랭 드 보통은 '불안'에 대해서 건드렸다. 모든 인간은 살면서 항상 불안해한다. 각자가 여러가지 이유로 불안해한다. 지금도 이 글을 쓰고 있는 나 자신도 불안해한다. 가까이는 내일 아침 일찍 일어나지 못할까봐, 그래서 하루가 너무나 짧아질까봐, 내 할일을 다 하지 못할까봐, 내일도 빈둥거릴까봐 불안해한다. 또 조금 더 멀리는 방학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할까봐, 3월에 준비하는 시험에서 떨어질까봐, 돈을 헤프게 써 저축을 하지 못할까봐, 이별을 빨리 지워버리지 못할까봐 불안해한다. 여기 나를 포함한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 조차도 예외일 수 없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여러가지 이유로 동시다발적으로 불안해한다. 또 우리는 사랑을 갈망한다. 사랑받고 싶어한다. 어쩌면 우리의 모든 불안은 다 사랑받기 위함인지도 모른다. 보통은 여기에 주목한다.

  알랭 드 보통은 우리가 불안해 하는 원인으로 '사랑결핍', '속물근성' , '기대' , '능력주의', '불확실성' 을 뽑는다. 그리고 여기에 대한 해법으로서 '철학' 과 '예술' 과 '정치' 와 '기독교' 와 '보헤미아'라는 처방전을 내놓는다. 이 막연하고 추상적으로 보이는 원인과 처방전들이 과연 우리에게 얼마나 도움을 줄 수 있는가. 그래 지금 네가 여자친구와의 문제로 불안해하고 있지? 그렇다면 이렇게 이렇게 해봐 라고 일대일 상담 서비스를 해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읽어도 그저 그만인 헛소리를 하지도 않는다. 읽었을 때 추상적인 문제지적과 해답을 내놓는 책들이 있는 반면, 읽었을 때 이건 내 문제야 하고 무릎을 치게 되는 구체적인 언급을 하는 책들이 있다. 보통의 이 책은 후자에 가깝다. 마냥 추상적인 이야기만 할것 같지만 그는 지금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들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하지만 모두에게 같은 처방전을 주기 위해서 조금 일반화시켰을 뿐이다.

  그는 개개인의 작은 일상에 관심을 갖는다. 내가 처해있는 지금의 이 상황에서 어찌할 것인가에 대해서, 그는 대답한다. 불안이라는 것도 개인에게 찾아오는 것이고, 개인의 일상을 논하지 않고는 치유될 수 없는 부분이다. 어쩌면 불안을 논하는데 있어 개인의 일상이 언급되는 것은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개인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은 당연한 시작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불안'이라는 추상적인 단어, 아니 이게 왜 추상적이야, 하고 딴지 걸진 마시라, 를 구체적인 단어로 탈바꿈해준다. 각자의 개인이 아닌 우리를 지칭하는 개인에 초점을 맞추면서. 우리의 머리 속을 떠돌고, 가슴 속에서 마음 아파하는 일상적인 문제들, 어쩌면 진부하고 더이상 뭐 말할거나 있나 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런 문제들을 보통은 지적하고, 어루만져준다. 그때의 불안이라는 것은 어쩜 알랭 드 보통 그 자신에게 해당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쩜 그의 '불안'에 대한 사유의 시작은 그 자신일지도 모른다. 아니 이렇게 뛰어난 머리와 지식, 탁월한 글쓰기 실력을 지닌 그가 뭐가 아쉬워서 불안해해? 하지만 그 자신에게도 또다른 남모르는 고민이 있을 수 있다. 그것이 그의 불안의 시작이다. 알랭 드 보통은 이 세상을 살고 있는 하나의 '개인'으로서 우리와 마주한다.

  거기 당신, 불안한가? 그럼 일단 읽어봐. 그리고 생각해보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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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06-01-13 0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이 도발적인데요?

마늘빵 2006-01-13 1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H 2006-12-13 15: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불안하니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마늘빵 2006-12-14 0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핫 네. ^^
 

 

 

 

 

  정말 오랫만에 다시 본 영화 <타이타닉>. 점심을 먹으며 티비를 보려고 케이블 티비 27번을 시작으로 쭉쭉 돌리다가 발견. 어 아직 시작 안했네?! 괜찮은 영화가 아직 시작하지 않았을 때, 난 속으로 좋아라 한다. 영화는 보려면 첨부터 끝까지 다 봐야한다. 보다 말거나, 못보다 중간부터 보거나 하는 건 안된다. 영화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타이타닉>은 정말 길다. 이 영화가 처음 나온게, 1998년. 내가 대학 1학년이 막 되기 바로 전. 그니깐 고3 수능을 마치고 놀고 있던 때 개봉한 영화다. 그때 난 여자친구가 없는 관계로, 또 함께 볼 친구인 여자도 없는 관계로 - 난 남중에 남고를 나와서 아는 여자애 조차 없었다 - 지금의 베스트 프렌과 함께 이 영화를 보러 갔다. 그리곤 얼마나 후회를 했던지. 영화가 재미없어서가 아니라, 주변의 수많은 연인들 때문에. 흠. 역시 멜로영화 보러는 남자끼리 가면 안된다. 그때 이후 아마도 멜로를 볼 때 남자를 대동했던 적은 없는 듯. 아. <클로져>를 볼 때는 단체 관람을 했다. 이런. 이 영화는 단체 관람으로 볼 만한 영화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타이타닉>은 그때까지 나온 어떤 영화 보다도 가장 러닝타임이 긴 영화였다. 3시간 35분짜리. 지금도 이 영화보다 긴 영화가 있을까 싶다. 영화는 짧고 재밌게 만들어야 수익을 높이는데 - 왜냐면 극장에서 빨리 빨리 필름 돌려서 하루에 최대한 많이 상영해야하니깐 - <타이타닉>은 이걸 깨는 영화였다. 이득을 포기한건가? 그렇진 않은듯. 긴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당시 극장가 1위를 한참 달렸던 거 같다. 울나라에서나 해외에서나.  <태극기를 휘나리며>가 개봉하고 있을 때 사람들이 이 영화도 보지 않은 사람하고는 얘기도 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 약간 과장이고, 그만큼 누구나가 다 봤다는 말, 대한민국 국민의 4분의 1이 봤다고 들은거 같다 - <타이타닉> 역시 이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은 끼어주질 않았다. 나야 물론 일찌감치 봤으니 해당사항 없었지만.



* 영화의 문제의 장면. 이 장면 따라하다 한강 유람선에서 강에 빠진 연인들에 대한 기사가 나오기도 했다. 수많은 연인들이 이 장면을 따라하느라 배를 탔다지? 난 솔로여서 그런거 못해봤지만. 흠.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케이트 윈슬렛을 유명하게 만들어준 영화이기도 하다. 두 사람의 짧지만 불같은 강한 사랑. 인간이 만들어낸 가장 거대하나 운송수단인 타이타닉호. 처녀항해를 하는 타이타닉호는 크기면에서나, 내부장식면에서나, 안정성, 속도 등 모든 면에서 최고를 자랑하고자 뉴욕으로 가는 길을 서두른다.  포커치다 타이타닉호의 표를 따내 뉴욕으로 향하는 잭은 타이타닉호의 3등실 승객. 갑판에서 친구들과 수다를 떨던 중 어여쁜 처자 로즈에게 한눈에 반해버리고. 간밤에 배 맨 뒤에서 자살하려고 하는 로즈를 구해주면서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상류사회의 가식에 이력이 난 로즈. 그녀는 자유를 꿈꾼다. 그리고 자유를 누리며 떠돌이 생활을 해온 잭은 그녀의 몸안에 꿈틀대는 자유를 끄집어내준다. 약혼녀임에도 불구하고 잭과 어울리는 로즈는 결국 잭을 사랑하게 되고, 잭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 잭은 그녀를 모델로 그림을 그리고, 둘은 칼의 집사를 피해 배의 이곳저곳 도망쳐다니는데.



* 보트는 한정되어 있고, 모두가 살고 싶어한다. 너도 나도 살겠다 아우성치지만 절반 이상이 죽을 운명이다. 이 생존의 치열한 현장. 잔혹한 현장. 고통스러운 현장. 산자도 죽은자도 슬프다.



* 실제 타이타닉호.

  영화는 계속되는 빙하경고를 무시하고 전속력 항해를 하는 타이타닉호가 빙하와 충돌하면서 급격한 반전을 겪는다. 행복했던 나날들은 이제 갔다. 배는 아래칸부터 서서히 물이 차오르기 시작하고, 1-2시간 후면 침몰할거라는 설계자의 말. 우선 1등실 승객 먼저, 여자와 아이 먼저, 3등실 승객은... 미관을 아름답게 하기 위해 구명보트를 줄여 탈 자리가 없다. 배의 승객은 2천 2백명. 하지만 이곳에서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 사람은 1천 5백명. 결국 7명백만이  살아남는다.

  이 영화는 멜로 영화로 분류되지만, 잭과 로즈의 사랑 말고도 전설의 타이타닉호의 침몰과정을 지켜본다는 점에도 의미가 있다. 살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만, 배의 승객들은 모두 다른 방식으로 각자의 죽음을 준비한다. 아무도 듣지 않는 상황에서도 꿋꿋이 연주를 하는 바이올리니스트, 첼리스트 아저씨들. 1등실 승객들을 위해 항상 연주를 했지만 1등실 승객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음악을 안듣긴 마찬가지다. 위험한 상황에서 사람들의 마음을 가라앉혀주고자 연주를 하고, 자신을 위해 마지막 연주를 한다. 그렇게 죽음을 맞이한다. 배의 설계자 또한 하염없이 방에서 시계만 바라본 채 그대로 죽음을, 배의 선장 또한 조타실(?)에서 죽음을, 한 할아버지 할머니 부부는 침대 위에서 꼭 껴안은채로, 엄마는 두 아이에게 자장가를 불러주며 그렇게 죽음을 맞이한다. 과연 죽음을 앞에 두고 저렇게 의연한 자세를 취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다른 한쪽에선 총을 쏘며 서로가 보트를 타겠다고 다툰다. 돈을 주기도, 몰래 혼자 울고 있는 여자아이를 끌어안고 자기가 이 아이의 마지막 혈육이라며 배에 합승한 로즈의 약혼자 칼. 같은 배의 설계자이지만 여자와 아이들이 탄 보트가 내려가는 순간, 그 앞에서 몰래 탑승하는 사람, 또 승객들의 안전을 위해 지시를 하다 한 남자를 쏴 죽여버린 자신을 비관, 그 자리에서 권총자살한 1등 항해사.

  타이타닉호가 두동강 난 채 침몰하고, 잭과 로즈는 바다에 떴다. 잭은 로즈를 살리기 위해 장농문짝 위에 로즈를 올리고, 자신은 바다에 몸을 담근채 로즈와 함께 한다. 시간은 흐르고, 바다에 뜬 사람들은 모두 죽었다. 잭도 말이 없다. 홀로 남은 로즈. 그녀는 결국 잭과의 약속 - 마지막까지 살아남아 애도 낳고 손자 손녀보며 살겠다는 - 을 지켰다. 바다에 뜬 승객 중 최종 6명의 생존자에 속하게 된 것이다.   잭과 로즈. 매우 짧은 시간 동안의 강렬한 사랑을 나눈 그들. 사랑은 뜨겁고 아름다웠으나 짧았다. 로즈는 끝까지 살아남았고 이후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손녀도 보며 101살이 되도록 살아있다.

  눈물 펑펑 짜내는 슬픈 멜로는 아니지만 가슴 속 살며시 적시며 마지막 눈물 한 방울에 모든 걸 담아내는 영화다. 고통의 시간을 보내며 죽어간 영혼들을 위하여, 잭과 로즈의 아름다웠던 사랑을 위하여. 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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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스 2006-01-12 2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에게 이영화는, 할머니가 된 로즈로 남아 있는데. 아주 강렬하게. 그 약속을 지켜서 오래도록 살아남고.. 손주도 보았지. 그때 난 그 나이든 로즈의 남편을 생각했어. 로즈와 남편. 그 남편은 이 모든 사실을 알런지에 대해... 근 십년이 다되가는데 딱 한 번 본 대작 영화에서 나에게 남은 기억은 영화에는 나오지도 못한 그 나이든 로즈..아니 어쩌면 그녀의 남편.. 이야..

마늘빵 2006-01-12 2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응. 할머니. 맞아. 오래도록 살면서 그때 잭과의 약속을 지켰던 할머니. 마지막에 할머니가 누워있고, 옆에 있는 할머니의 사진들에 카메라의 시선이 멈추었을 때 또한번 감동. 그녀는 그때 말한대로 두 다리를 벌리고 말을 탔고, 비행기를 탔고, 자유를누리며 살았지. ^^

이매지 2006-01-12 2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음. 전 이 영화가 극장에 가서 처음 본 영화였어요. 그 때 초등학교 6학년 겨울방학때였죠 -_ -;;;;;;;;;;;;;;;

마늘빵 2006-01-12 2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죄송. ^^ 매지님 초등학교 6학년? 헉 나랑 몇살 차이인거에요? 흠. 아 별로 차이 안나는구나. 근데 초딩이랑 대딩이라고 하니깐 되게 차이 많이 나는거 같아요. 근데 초등학생이 보면 안되는 장면들이 있는데. 흠. ㅡㅡ;;;

mannerist 2006-01-12 2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케이트 윈슬렛을 유명하게 만들어준 영화이기도 하다.

-_-;;;;;;;;;;;;;;;;;;;;;;;;;;;;;;;;;;;;;;;;;;;;;;;;;;;;;;;;;;;;;;;;;;;;;;;;;;;;;;;;;;;;;


mannerist 2006-01-12 2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방 놔두고 바람피니까 천벌받는겨!"

로즈가 바람피는거 전망대 파수꾼이 훔쳐보다가 빙산 못 피한게 파국의 발단이 되었담서, 그당시 기숙사 방장님의 일갈. ㅎㅎㅎ

마늘빵 2006-01-12 2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내가 다빈치라고 했나?? 헉 이런 실수를. 뭔 생각한거지. 고치러감.
ㅋㅋ 근데 매너. 별걸 다 기억하네. 파수꾼이 애정행각 지켜보던거. ㅋㅋ

이리스 2006-01-12 2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매지양과 아프군은 여섯살 차이로구먼. 그게 많이 차이나는거 아니야? ㅎㅎ

마늘빵 2006-01-12 2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별로 안나는거야. 나한테 나이 차이가 많이 나려면, 적어도 12살은 되야지. 그럼 나랑 구두씨도 나이 차이 많이 나는건데?? ^^ ㅋㅋㅋㅋㅋ

이리스 2006-01-13 0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가 머래니, 너하고 나 차이 많이 난당. ㅋ
그려, 띠동갑 연하녀 만나라~

마늘빵 2006-01-13 1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 ^^v

sweetrain 2006-01-13 1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헤헤, 저 중학교 다닐 때.^^;;(아마 저보다 네살 많으실 걸요. 아프락사스님이..전 꽃다운 24세 처자랍니다. /먼산 .)

마늘빵 2006-01-13 1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단비님 네살 차인가요? 그렇담 저와 같은 20대 중반이시군요. ㅋㅋ 저 만으로 26살인데.

이리스 2006-01-13 2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헛, 아프군.. 이제 나이가 들긴 들어가는구나. 만나이로 이야기하며 나이 깎는걸 보니. ^^; 넌 이십대 후반인겨. 한국 사람인 이상. ㅎㅎ

마늘빵 2006-01-13 2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ㅡㅡ; 아니 이 살암이. 난 아직 20대 중반이야. 흥.

sweetrain 2006-01-13 2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ㅡ.ㅡ 전 만으로는 20대 초반이에요. ㅡ.ㅡ 만 22세.ㅡ.ㅡ

마늘빵 2006-01-13 2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ㅠ_ㅠ 쳇.

하루(春) 2006-01-14 0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나라 외환위기 때 금모으기 했던 거 다 허탕 만든 게 이 영화죠. 대대적인 흥행했잖아요.

마늘빵 2006-01-14 08: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루님 ... ㅋㅋㅋ
 



  난생 처음(?) 오페라 관람이란걸 해봤다. 알고 지내는 누님으로부터 온 전화. 오페라 표 생겼다 가자. 그럼 당연히 가야지. 집에서 빈둥거리고 있는 난데 가야지 그럼. 나의 기억을 떠올려보건데 아마도 오페라를 관람한 것은 처음이지 싶다. 클래식 계열에 무지한 나로서는 이쪽 분야에서 어떤 공연이 열리고 있는지, 어떤 유망주들이 있는지 별로 알지 못한다. 기껏해야 아주 유명한 피아니스트 동혁, 동민 형제나 장한나, 조수미 이런 사람들 밖엔 모른다.

  오페라가 아닌 성악공연을 본적은 있다. 둘째 큰아버지가 OO대 성악과 교수로 있는지라 큰 아버지의 단독 공연 때 - 그때가 내가 초등학교 저학년 혹은 입학전이었던 거 같은데 - 봤고, 이런 공연은 이번이 두번째다. 큰아버지가 성악을 해서, 막내 아들이었던 우리 아버지도 성악에 관심이 있었고, 어머니 말에 따르면 아버지도 성악을 하고 싶어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껏 아버지에게 그런 질문을 한 적은 없었다. 그러니 어머니 설에 따르면 그랬다는 것. 실제 아버지는 내가 어렸을 때 차에서 나비부인이나 기타 등등 - 난 잘 모르므로 - 의 음악을 틀어놓곤 했다. 내가 집에 없던 날은 내 방에 오디오에 파바로티와 쓰리 테너스 등의 음반을 꽂아놓고 두꺼운 귀마개 헤드폰을 끼고 어두운 방안에서 음악감상을 하는 모습도 두세차례 목격했다. 그리고 내가 들어가면 바로 나오셨다.

  둘째 큰 아버지의 공연을 보러 갔을 때 난 아무 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랜드 피아노 옆에서 멋진 이태리 양복 차림으로 노래부르던 큰아버지의 모습이 머리 속에 사진 한장 찍어놓은 듯 그 장면만이 남아있다. 그리고 공연전 나와 동생이 너무 어려서 들어갈 수 없다며 통제하던 어떤 누나의 모습도 떠오른다. 우리가 너무 어려서 공연에 들어가면 방해될까봐 그랬나보다. 하지만 난 너무나 조용한 아이였다. 쑥쓰러움 많고 부끄러워하고 누가 말시키면 엄마 치마 뒤로 숨어있던. 어찌하여 들어가게되었지만 뭐 그게 무슨 노래인지 내가 어캐 알어. 그리고 감상이나 할 줄 아나. 그냥 지겹다는 표정으로 끝나기를 기다렸던 것 같다. 그래도 꿋꿋이 얌전히 앉아있기는 했던 듯.

  한번은 둘째 큰아버지의 집에 머물때가 있었는데, 아마 이때가 엄마와 아빠가 싸웠을 때였는데, 난 그 당시에는 몰랐다. 그냥  나, 동생이 큰 아버지 집에 며칠 머물렀다. 엄마는 가고. 그때 그 집에서 불고기도 많이 먹고, 큰아버지가 고딩, 대딩 누나들 레슨하고 있으면, 문 앞에서 "아아아아아~" 따라 했던 기억이.

  내가 지금 이렇게 공연과 관련없는 나의 경험들을 늘어놓는 이유는 공연에 대해서 할 말이 없기 때문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아는 바 없는 건 역시 마찬가지고, 그냥 잘 들었다. 건대 입구에서 내려 촉박한 시간에 밥을 후딱 먹고는 빠른 걸음으로 갔더니 약간 늦었다. 그래서 맨 앞에 한 곡은 못듣고 그 다음에 입장. 나는 누님의 도움으로 공짜로 공연을 봤지만 이 공연의 관람료는 신문기상에 따르면 3만원에서 5만원 가량 한다고 한다.

 

  공연 순서는 이와 같다.

라보엠

-내 이름은 미미

-오 사랑스런 그대

-무젯타 왈츠

-안녕, 사랑하는 이여

 

토스카

-마리오, 어딨죠?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며

 

제비

-도레타의 아름다운 눈

 

나비부인

-어느 맑게 개인 날

 

잔니스키키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

 

투란도트

-들어보세요, 왕자님!

-이 궁전 안에서

-얼음장 같은 공주의 마음도

-아무도 잠 못 이루고

 

  이중에서 내가 아는 곡은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 와 '아무도 잠 못 이루고' 뿐. 이 두곡은 워낙에 유명한 곡이라 누가 들어도 다 알 터. 씨에프에도 많이 나왔고 라디오 프로그램 같은데서도 쉽게 들을 수 있는 곡이다. 역시 내가 어린 시절에 아버지 차안에서 들었던 노래도 이 곡들이다. 그외의 곡들은 잘 모르지만 공연은 즐거웠다. 1시간 30분 정도의 길지 않은 시간 동안의 공연이라 지루하지도 않았고, 무엇보다 성악가가 피아노 옆에서 똑같은 자세로 계속 노래만 부르는게 아닌, 오페라였기 때문에, 더욱 재밌었다.

  중간중간 곡이 끝날 때마다 나와서 푸치니가 되어 자신의 삶과 생각을 풀어놓는 턴도 좋았다. 푸치니가 사랑한 여인들과의 관계, 푸치니가 이 바닥에서 유명하게 된 사연, 그리고 다른 오페라 작곡가들의 푸치니에 대한 생각 등등 해설자는 비록 컨닝페이퍼를 가지고 나와 보면서 연기하긴 했지만 공연을 이해하고 즐기는데 윤활유 역할을 해주었다. 푸치니 역을 맡은 사람은 테너 장신권이라고 하는데, 흠 목소리 멋있다. 하긴 성악하는 사람들 치고 목소리 안 멋진 사람이 어딨겠냐만.

  극중 '푸치니'에 따르면, 한국인들이 세계에서 열리는 콩쿨에서 단연 압도적이라고 한다. 또한 현재 한국 오페라에 있어서도 푸치니 오페라는 전 세계 어느나라에서보다도, 심지어 푸치니의 고장에서보다도, 한국에서 가장 사랑받고 있으며, 푸치니 오페라가 한국의 오페라 문화에 기여한 바가 많다고 한다. 아름다운 선율과 드라마틱한 음악의 극적인 구조. 잘 모르는 장르이고, 잘 모르는 작곡가이긴 하지만, 또 앞으로도 잘 모를 듯 하지만, 무엇보다 공연에 가서 즐겁게 봤으면 그것으로 만족. 간만에 영화 아닌 다른 공연문화도 섭취해본 좋은 계기였다.

* 이걸 '팝콘&콜라'란에 넣은 것은, 달리 집어넣을 구석이 없기 때문. 오페라나 클래식 등을 자주 즐길 수 있는 처지도, 매니아도 아닌 나는 이걸 위해 새로 메뉴를 만들기는 어렵다. 흠. 비록 오페라 극장에 팝콘과 콜라를 들고 갈 수는 없지만 가장 근접한 메뉴가 여기이므로 이곳에 살짝 끼워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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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주미힌 2006-01-12 1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어... 문화생활도 하시고...

마늘빵 2006-01-12 1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이리스 2006-01-12 2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참 좋은 누님이시네 --;;

마늘빵 2006-01-12 2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ㅎㅎ

책방마니아 2006-01-17 1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가 지금 이렇게 공연과 관련없는 나의 경험들을 늘어놓는 이유는 공연에 대해서 할 말이 없기 때문이다."란 표현 넘 웃기다. 나도 마땅히 할 말이 없으면 장황한 서론을 쓰곤 하는데 ㅋ 나도 뮤지컬, 오페라 안좋아하다가 최근 몇 년 사이에 관심이 생겼단당
 

 



 

 

 

 

  <비포 선라이즈> 10년이 넘은 영화이지만 이 영화의 디비디를 구입하고 다시 본 이유는, 매번 사랑을 하고 이별을 겪을 때마다 볼수록 의미가 있는 영화라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 의미를 되새기기 위해 사랑과 이별을 수없이 반복해서는 안되겠지만. 2004년의 10월, <비포 선셋>이 개봉했을 당시 난 대학 마지막 학기를 보내고 있는 취업준비생이었다. 그러나 나에겐 취업준비생의 그 각박한 심정  따위는 찾아 볼 수 없었다. 난 여전히 책을 읽었고, 여전히 영화를 보며 돌아다녔고, 예전과 똑같은 생활을 했다. 무슨 배짱으로. 하여튼 그런 분위기에서 편안하게 극장 좌석에 앉아 봤던 영화가 <비포 선셋>이었다.

  <비포 선라이즈>는 이보다 9년전 1995년에 개봉한 영화다. 그러니 난 그 영화의 존재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다.<비포 선셋>을 봤을 때 포스터를 통해서 알게 되었다. 아 전편이 있었구나. 언젠간 봐야지. 1995년에 나의 신분은, 고 1. 아 이런 파릇파릇한 넘 같으니. 그때 난 열심히 공부했을 때였다. 영화나 책은 나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록음악에 입문했을 시기, 마냥 넥스트의 음악을 들으며 그것으로 만족했던 시기가 바로 나의 고 1이다. 고 1 때 <비포 선라이즈>의 존재를 알았다 하더라도 당시 나의 취향으로 봐서  저 영화를 봤을리도 없다. 봐야 느끼는 것도 없을테니. <비포 선라이즈>와 <선셋>은 사랑을 경험하고 가슴아픈 이별을 경험한 이들이 봐야 의미 있는 영화다. 영화를 보며 나의 아픈 기억들을 떠올리고 상처를 치유하게 된다.

  비록 이렇게 <비포선셋>을 먼저 보고, <비포선라이즈>를 뒤에 보게 되었지만, 그래도 좋다. 혹자는 <선라이즈>를 먼저 보고 <선셋>을 9년 이란 시간이 흐른 뒤에 봐야한다고 하지만, 흠. 나의 상황이 그리 허락치 않은 것을.

  프랑스 여대생 셀린과 미국 청년 제시가 만난 것은 기차에서 였다. 셀린은 할머니를 뵙고 가을학기 개강에 맞춰서 파리로 돌아가는 길이었고, 제시는 마드리드에 유학 온 여자친구를 보러 왔다가 실연 당하고 미국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가는 길이었다. 서로 읽고 있는 책 이야기를 하다가 - 여기서 중요한 교훈은 기차에서 책을 읽어줘야 한다는 사실이다. 가급적이면 고급스러운 연애소설이 좋겠다. 알랭 드 보통 같은. 연애소설을 저급과 고급으로 나누는 것은 좀 뭣하지만, 그래도 그냥 웃고 우는 연애소설이 있고, 생각하게 하는 연애소설이 있다  - 식당칸으로 자리를 이동 본격적인 이야기 꽃을 피운다. 그 짧은 시간 동안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가 통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두 사람, 제시의 엉뚱한 제안을 받아들인 셀린은 제시와 함께 내려 비엔나에서의 하룻밤을 보내게 된다.

  영화는 <비포선셋>과 마찬가지로 장면의 전환이나 별다른 사건 없이 밋밋하게 진행된다. 그러니 영화를 통해 재미를 찾으려는 사랑에 무관심한 이들이 보면 에이 지루해 라는 반응이 나올 수 밖에 없는 영화다. 그러나 난 이런 영화들을 좋아한다. 움직임 없는 정적인 배경과 화면, 장면의 전환보다는 카메라가 주인공을 따라가며 장면을 이어나가는 그런 영화. 주인공의 대사와 작은 손짓 하나에 의미를 부여하는 영화. <비포선셋>은 그런 영화다.



  제시는 오락실(?)에서 셀린과 핀볼을 하며 이야기한다.

 "누군가에게 차였을 때 제일 못 견디겠는게 뭔지 알아?"

 "내가 예전에 찬 여자들을 거의 생각안하듯, 날 찬 여자도 날 거의 생각 안할거란 걸 깨닫는 순간이야. 날 찬 여자도 슬플거라 생각하고 싶지.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아. 차고 나니 속 시원한데!, 그 뿐이야"

  내가 지금 가장 못견디겠는건 어쩌면 이별의 슬픔 때문도 아니고, 그녀가 보고 싶기 때문도 아닐지 모른다. 가장 못견디겠는건 내가 예전에 찬 여자들을 생각안하듯, 날 찬 그녀가 날 거의 생각 안할거란 걸 안다는 것이다. 날 차는  순간 눈물을 보였지만 그것은 이별의 수순일지도 모른다. 이별하게 되면 눈물이 나올 수 있다. 물론 그보다 더 매멸차게 차버릴 수도 있지만. 그것은 너무 가혹하고 차고 있는 나 자신도 너무 나쁜 놈이 되지 않는가. 내가 좋은 놈이 되고, 상대에게 가혹하게 하지 않는 방식으로서 눈물을 보여주는 것. 이별을 순조롭게 진행시킬 수 있는 좋은 도구다. 그녀는 눈물을 보였다. 나도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그것 또한 어쩌면 그녀와 헤어지는 것이 슬퍼서가 아닐지도 모른다. 차였기 때문이다.

  예전에 난 연애를 하고 찬 적이 없었다. 초창기에는. 왜냐면 차인다는 사실 자체가 여자들에게 견딜 수 없는 아픔으로 다가갈 거란 생각에서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난 감히 여자를 찬다. 예전엔 사귀었던 여자가 싫어져도 상대가 날 차게끔 만들었지만 - 아픔을 덜 받게 하기 위해서 - 지금은 그냥 찬다. 가혹하다면 가혹한 것이지만 그렇게 착한 남자가 되지 않기로 마음 먹었다. 착한 남자로서의 삶은 너무 힘들다. 난 예전보다 점점 못되어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고, 이런 내 자신에 만족한다. 아직 멀었다. 아직도 난 착한 남자다. 너무나도. 더더욱 못된 놈이 되어야 한다. 이번에도 시간이 좀더 흐른 뒤에 내가 화나는 상황이 벌어졌다면 내가 찼을지도 모른다. 너무나 삐걱대고 있었으므로.

 



* 두 사람은 비엔나의 이곳저곳을 함께 돌아다니며 계속해서 서로에 대해 이야기 한다. 혼자 되는 법을 모르는 두 사람은 사랑을 원하고 있다.

     셀린과 제시에게 있어 단지 기차에서 내려 비엔나를 돌아다닌다는 사실 이외에는 변화된 것이 없다. 두 사람은 여전히 함께 걸으며 이야기를 나눈다. 나의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한 이야기들, 인생, 사랑, 결혼, 죽음, 실연 등 그들이 나누는 소재는 각자의 삶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갑작스레 다가온 사랑에 당황하고 어쩔 줄 몰라하는 셀린과 제시. 그들은 공원에서 누워 하룻밤을 함께 보내게 된다. 그리고 하룻밤의 사랑을 나눈다.  다시 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이것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원나잇 과는 다른 개념이다. 겉으로 볼 땐 원나잇 맞다. 하지만 그들이 나눈 사랑은 원나잇과는 다르다. 보통의 원나잇이 그저 섹스를 위해 이성을 찾아나서 눈맞으면 함께 섹스하고 끝내는 그런 관계인 반면, 셀린과 제시의 사랑은 비록 하루였고, 우연적이고, 갑작스럽긴 했지만, 서로의 마음에서 피어나는 진실한 사랑의 감정을 표현한 것이었다. 두 사람이 만나고 헤어진 기간은 비록 하루였지만 두 사람의 마음 속에는 이미 상대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차있었다. 볼 수 없다고, 만날 수 없다고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언제 볼 수 있을지, 언제 만날 수 있을지를 알 수 없는 두 사람은 각자의 마음에서 피어난 감정의 싹을 스스로 잘라야하는지도 모른다.

  너무 멀리 떨어져있어 다시 볼 수 없다고 생각한 두 사람. 오늘 하루만 이렇게 함께 있기로 약속했지만, 헤어질 때는 이미 서로를 너무 사랑하고 있다는 걸 안다. 기차가 떠나갈 무렵, 일년 뒤 바로 여기서 만나기로 약속하지만 약속은 지켜질 수 있을까? 대답은 <비포선셋>에.

 

  하나 더. 제시는 셀린과 핀볼을 하며 이런 이야기도 한다. 사랑은 혼자 되는 법을 모르는 사람들이 하는 것이라고. 흠. 그런가? 난 혼자 생활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혼자 일하고, 혼자 책보고, 혼자 영화보고 하는 행위들을 난 즐긴다. 나의 취미는 누군가와 함께 할 수 있는 것들이 없다. 당구도 못치고, 볼링도 몇번 쳐본게 다고, 축구, 농구, 야구 이런거 하나도 못하고, 스케이트, 스키도 타본적 없다. 내가 관심갖고 있는 분야는 그림그리기, 글쓰기, 책읽기, 악기 연주하기, 영화보기  등 순 혼자하는 것 뿐이다. 그렇담 나는 혼자되는 법을 아는 사람인가? 하지만 불행히도 대답은 '노'다. 난 혼자하는 일을 좋아하지만 그것은 내가 동적인 것보다는 정적인 것에 관심을 갖고 있기 때문이고 이것은 순전히 '취향'의 문제다. 혼자 되는 법을 아는 것과는 별개다. 난 혼자 되는 법을 모른다. 난 항상 외롭고, 타인과의 소통을 원하고, 함께 이야기하길 원한다. 그러므로 제시의 말에 따라 결론을 내리면, 난 사랑을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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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06-01-09 1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혹자는 1995년 고3이였지만, 극장에서 보고, 2004년 비포선셋을 보며, 젠장, 했더라지요. 비포선셋의 마지막 장면 영화보고 나온 오랫동안 머리에 맴돌았는데, 사랑이라는게, 헤어짐이라는게, 다시 만남이라는게, 그런거겠지. 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영화

마늘빵 2006-01-09 1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고3 이셨군요. 흠. 사랑의 진한 경험이 없는 고3 이 봤을 때 뭔가 느낄 수 있을까요? 흠. 전 짝사랑의 추억만 있었던지라 그때 봤어도 그닥 와닿는게 없었을거 같은데. 하이드님은 아니었나요?

하이드 2006-01-09 1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워낙에 비포 선라이즈는 아마, 영화속에서 스무살, 그니깐 고3이였던 제 나이와 비슷한 애들이 우연히 기차에서 만나서 사랑에 빠지는거죠? 풋사랑에 가깝고, 그래서 와닿고, 2004년에 비포선셋을 봤을때는 또 나름 사랑에 회의와 허무를 깨달아버린 ( 물론 난 결혼은 안 했지만;) 후의 주인공들이 또 와닿았더랬어요.

mannerist 2006-01-09 1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포 선라이즈 보고 빌고 또 빌었는데. 제발 두 사람, 여섯달 후 만나지 말아 달라고. 그리고. 일년 후가 아니라 여섯달 후에 만나기로 했다죠. 일년, 너무 길다고. 제 기억이 정확하다면. 집에가서 다시 한 번 볼까요? ㅋㅋㅋ

마늘빵 2006-01-09 1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랬군요. 흠. 나이를 먹을수록 이 '사랑'이란 것에 대한 낭만과 이상이 사라져버려요. '나이를 먹을수록'이라기보다는 '사랑을 겪을수록'이라고 하는게 더 맞겠군요. 사랑의 경험이 없는 30대 순수청년들은 처음 만난 사랑에 어린아이같은 순수함을 보이니.

마늘빵 2006-01-09 1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매너/ 흠. 일년이 아니고 여섯달이었나? 그랬던거 같기도 해. 왜 기억이 안나지. 이런 까마귀. 여섯달 뒤에 너무 춥다고 일년으로 다시 바꾼거 같기도 한데. 흠.

하이드 2006-01-09 1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도 여섯달로 기억하는데, 음 '여섯달 뒤에 너무 춥다고 일년으로 다시 바꾼거 같기도' 라는 얘기를 들으니, 다시 일년이었나 싶은 것이 ( '')

깐따삐야 2006-01-09 1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드디어 올리셨네요. 잘 봤습니다. 어디서든 이 영화 포스터만 보면 설레여요. 흐흐.

하루(春) 2006-01-09 1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섯달 후 추운 겨울에 만나기로 한 거 맞아요.
원나잇 스탠드 맞죠. 문제가 된 건 그 둘이 너무 어리고, 멍청했다(young and stupid)는 거죠. 경험이 좀 있었다면 주소나 전화번호라도 나누고 헤어졌을 텐데 말이죠.
저는 이 시리즈 두 편이 좋은 이유가 주인공들과 나이가 같다는 것도 한몫 작용했어요. 나이 얘기하는데 괜히 더 솔깃해지고 뭐 그런 거 있잖아요. ^^;

마늘빵 2006-01-09 1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이드님 / 여섯달 후가 맞나봐요. ^^
깐따삐야님 / 네 저도 이 영화 두 편 너무 좋습니다. 두고두고 보렵니다.
하루님 / ^^ 여섯달 후가 대세네요. 제가 잘못 기억했나봐요. 주소, 전화번호 얘기도 마지막에 하는데, 그게 뭐 필요있겠냐 이런 대화를 나누죠. 그냥 연락하지 말고 그 자리에서 보자고. 영화 넘 좋아요.

마태우스 2006-01-09 1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 평이었습니다. 케이블에서 이 영화 하기에 보려다가 비포 선라이즈 먼저 보고 봐야겠다며 안본 적이 있어요. 멜러영화 저 참 좋아합니다. 글구 아프님, 혹시 남자를 차신 적은 있습니까?^^

이리스 2006-01-09 15: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니까 고등학생이었군, 이 영화 개봉당시. 나는 대학교 2학년이었지 -.- 착한척 하는 남자들은 대부분 여자가 차게끔 만들어놓고 자기는 면죄부라도 받은듯 굴지. 착하다, 나쁘다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다르지만 굳이 나빠질 것도, 또 착해질것도 없을거 같아. 그냥 있는 그대로, 자연스럽게..
흠, 마태님.. 남자라면 발로 뻥 차는걸 말하는 것이겠죠? ㅎㅎㅎ


Kitty 2006-01-09 16: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영화 너무 좋아해요.
영화보고 필 받아서 비엔나에서 자체 비포 선라이즈 투어까지 했다는 -_-;;
비포선셋은 다 좋았지만 줄리델피와 에탄호크의 나이가 느껴져서 약간 슬펐어요.
너무나 리얼해서 오히려 슬펐달까..

마늘빵 2006-01-09 2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 / ㅡㅡ; 남자를 찬 적은 없구요. 마태님이 아니길 바래요. ^^; 근데 저 영화 <비포 선라이즈>인데요. 저도 멜로 영화 좋아해요. 가슴아픈 이야기도,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도.
구두씨 / 대학 2학년이셨군. 흠. 나랑 꽤 차이나네? ^^ 흠. 근데 구두누나 말대로라면 난 계속 나쁜 남자였는데. 차게 만들거나 찼으니까. 흠. 아니다. 난 그런 생각 없었는데 차인 경우는... 없구나. 걍 데트만 하고 연락 안한적은 있지만.
키티님 / 헉. 비엔나까지 가셨어요? 대단한 열정이세요. 두 주인공들이 그대로 늙어가는 걸 보여주는 것도 좋던데요. 주인공을 바꾸지 않고 그 사람 그대로 시간만 9년 흐른 뒤의 그 모습 그대로.
 
연애 소설
가네시로 카즈키 지음, 김난주 옮김 / 북폴리오 / 2006년 2월
평점 :
절판


 

  일본 소설가의 작품은 아마도 기억컨대 무라카미 하루끼의 몇몇 소설 밖에 읽지 않은 것 같다. 그러므로 나의 기억이 사실이라면 이번에 본 <연애소설>이라는 책을 쓴 가네시로 카즈키는 내가 접한 두번째 일본인 소설가이다. 그런데 겉표지를 한장 넘겨보니 이 사람은 순수 일본인이 아니다. 68년생으로 일본에서 태어났으며 마르크스주의자인 아버지로 인해, 조총련계의 학교를 다니고, 이후에도 재일교포로서 방황의 나날을 보내며 책과 영화와 음악에 빠져 살았다고 쓰여져있다. 그는 자신을 일본인으로도, 한국인으로도 생각하지 않는다고 한다. "내 또래 재일 한국인에게 중요한 것은 국적도, 민족도 아닌 연애"라고. 그럼 나도 라고 할란다.

   <연애소설>은 '연애소설'이다. 제목이 연애소설인 경우는 처음봤지만 검색해보면 몇 권 더 나온다. 우리나라 작가가 쓴 <연애소설>도 있다. 가네시로 카즈키의 연애소설은 세 가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연애소설>이라는 책이 하나의 사랑이야기를 담아낸 것이 아닌, 세 개의 짤막한 이야기들을 묶어서 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읽는 내내 각각의 이야기에서 깊은 감동이 느껴지거나 눈물을 뚝뚝 흘리거나 하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분량이 짧고 이야기가 간단하다보니 감정이입할 단계를 가지고 있지 않은 셈이다. 물론 이야기는 매우 슬프다. 그러나 한편으로 황당하기도 하다. 다소 좀 비현실적이라 생각되는 설정을 함으로써 '황당'으로 시작하여 '슬픔'으로 끝맺는다.

   세개의 작품은 '연애소설' 과 '영원의 환' , '꽃' 이다. 개인적으로는 노년의 사랑이지만 '꽃'이라는 작품이 가장 감동적이었다. 감동이랄건 없고 가장 나았다. '연애소설'은 남녀 두 대학생의 사랑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설정이 조금 황당하다. 주변에 사귀기만 하면 죽음을 맞이한다는 것이.

 "운명같은 거 잘 모르겠지만, 늘 생각하는게 있긴 해. 있지. 제대로 전달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리 친한 사람이 있어도, 안 만나면 그 사람은 죽어버려. 사람은 다 죽잖아. 그러니까 안 만나는 사람은 죽은거나 다름없는거야. 가령 추억 속에 살아 있다고 해도, 언젠가는 죽어 버려. 이 세상에는 무슨 일이든 생길 수 있잖아. 지금은 너하고 이렇게 손잡고 있지만, 손을 놓고 헤어지면, 두 번 다시 못 만날 가능성도 있는거잖아?" 
(연애소설 中)

   '연애소설'의 한 대목이다. 설정은 황당했지만 두 남녀가 나누는 이 대화는 꽤 감동적이었다. 서로 어긋나는 대화를 나누고 있지만 그안에 담겨있는 의미들이. "안만나는 사람은 죽은거나 다름없는거야" "추억 속에 살아있다고 해도 언젠가는 죽어버려" 

  가뿐하게 읽어나갈 수 있는 짤막한 소설들이다. 그렇게 되새기고 나중에 다시 보며 느껴야 할 소설은 아니지만 가볍게 사랑이야기를 접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선 적.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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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06-01-09 0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 만나는 사람은 죽은 거나 다름없다. 아프락사스님 우린 이렇게 라도 만나서 다행이에요

마늘빵 2006-01-09 09: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릴케 현상 2006-01-09 1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 만나는 사람은 죽은 거나 다름없다...
근데 일본소설 빙점은 어릴 때 다들 보지 않았으려나^^

마늘빵 2006-01-09 1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빙점이 뭐래요. 전 모르는데.

깐따삐야 2006-01-09 1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매일 만나지만 사무적인 대화에 겉도는 감정만 주고받는 사람도 저한텐 죽은 사람, 죽은 관계나 다름없이 느껴지던걸요.

마늘빵 2006-01-09 1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깐따삐야님 말씀도 맞네요. 흠. 근데 이상하게 일할 때는 제 자신도 그렇게 되어버리더라구요. 너무 가까워지지 않으려고. 저도 지나치게 사무적인 태도를 가질 때가 많아요. 흠. 고쳐야되는데.

히피드림~ 2006-01-09 2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가네시로 카즈키의 [레볼루션 No.3]를 재밌게 읽어서 이 책도 샀어요. 온다 리쿠의 [밤의 피크닉]을 사면 이 책도 준다길래 순간 이성을 읽고 '덥썩' 장바구니에 넣었지요.^^;; 아직 읽지는 않았지만 님의 리뷰가 많은 참고가 되었습니다.^^

마늘빵 2006-01-10 07: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펑크님 저랑 같은 케이스에요. 저도 <밤의 피크닉>사고 이거 덤으로 받았어요.

kleinsusun 2006-01-15 1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꽃>이 참 마음에 와닿았어요.
정말...."사랑해서" 그런건데 살다 보면 상대방이 진짜 원하는 것을 놓쳐 버리는 경우가 많쟎아요. 참 공감하면서 읽었던 소설이예요.

마늘빵 2006-01-15 1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맞아요. "사랑해서" 그런건데. 정말. 싸우고 틀어지고 헤어졌지만 서로의 마음 속에 간직한 두 사람의 사랑이 너무나 안타깝고 아름답게 느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