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전에 봤는데 오래전에 봤는지 리뷰가 없어서 이번에 다시 본 김에 쓴다. 2003년 5월에 개봉했으니 3년 좀 못되는 시간이다. 경찰이야기를 다루는 영화들은 많다. 하지만 경찰 이야기를 실감나게 다루는 영화는 많지 않다. 가장 최근에 개봉한 경찰영화가 <강력 3반>인데 이건 정말 영 아니었다. 정말 아니었다. 나름대로 뭐 경찰의 고충 이런 점들을 강조하면서 눈물 좀 짜내고 싶었나본데, 눈물은커녕 짜증만 났다. 진정한 경찰영화라면 <와일드 카드>쯤은 되어야한다. 아니면 <공공의 적>이나. <공공의 적>이 적의 싸가지없음에 촛점을 맞췄다면, <와일드 카드>는 적의 싸가지와 경찰의 정의감 두 가지 모두 조화롭게 다루었다고 볼 수 있다.
주연. 정진영, 양동근, 한채영. 셋 다 내가 좋아하는 인물이다. 감독은 김유진이라는 감독인데 잘 모른다. 예전에 <금홍아 금홍아>를 만들었다고 한다.
정진영의 경우, 난 이 사람의 진득함과 진지함이 마음에 든다. 이 사람의 연기에는 눈빛이 살아있고, 진심이 들어있다. 연기를 하면서 가식적인 사람도 있다. 이것은 연기를 잘하냐 못하냐의 차이가 아니다. 연기에 임하는 자세의 차이인데 정진영의 연기는 하다못해 비중없는 단역이라 할지라도 진지하다.

* 한달 내내 양동근의 관심에도 말 한마디 않던 그녀가 엘리베이터 안에서 그를 습격했다.
양동근, 그는 나와 동갑내기이다. 영화를 하는 아는 후배가 양동근, 그리고 배두나와 친하다고 하는데, 두 사람과 찍은 사진도 있는 것으로 봐서 정말 친한 듯 하다. 서로 연락도 주고 받는 사이라고. 그의 이야기를 듣기전에도 난 양동근을 좋아했다. 정진영과 같은 이유에서인데 그는 영화배우로서의 뽀대가 없다. 가오를 잡지 않는다. 영화배우라는 직업에 종사하는 평범한 시민으로서 행동한다. 직접 본건 아니다. 하지만 그가 영화 이외에서 보여주는, 그리고 또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여주는, 그와 함께 작업을 한 다른 배우들의 이야기를 들어봐도, 공통점은 그는 말이 없고 항상 진지하며 무게를 잡지 않는다는 말. 그래서 난 그가 좋다.
마지막 한채영의 경우, 연기를 잘하진 않는다. 사실. 그리고 그녀가 출연한 영화나 드라마는 별로 본 것도 없고, 보고싶은 마음도 안든다. 하지만 그녀 또한 진실되어 보이며-아닐 수도 있지만- 무엇보다 이쁘다. 하지만 김희선과 손예진은 이쁘지만 인간으로서 별로 좋아하진 않는다. 그러니 이쁘다는 이유만으로 그녀가 좋다는 말은 아님.
내가 좋아하는 세 배우가 출연했다. 양동근은 역시 어느 영화에서나 참 빈곤하고 가진 것 없고 밑바닥 인생을 사는 역할로 나온다. 영화가 배우들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 예 故 이은주 씨 - 양동근의 인생이 밑바닥이 될까 우려된다. 그 또한 그런 생활을 즐기는 듯도 하다. 그의 경우 배우의 실제 삶이 영화에 반영되는건지 아니면 영화의 삶이 그의 실제 삶으로 반영되는 것인지 알쏭달쏭하기도 하다.
영화에선 세 사람 말고 주연급에 해당되는 이가 있는데 4인조 뻑치기 - 명칭이 이게 맞나 모르겠다. 4인조 뻑치기의 대장급인 배우가 있는데 이름은 모르겠다. 흠. 훤칠한 키에 잘생긴 얼굴, 약간 사악하고 인정머리 없어보이는 이미지. 좀 매력있다. 그의 사악함은 영화내내 볼 수 있다. 선량한 시민들을 쇠구슬로 습격해서 죽이고 금품 강탈하고, 노래 잘해서 90점 넘으면 살려준대놓고 돌아와서 맥주병으로 수차례 가격해서 죽이고, 경찰 찌르고, 마지막 순간에조차도 끝까지 반항하며 방제수(양동근 분)의 허벅지를 찌른다.
영화는 분노가 치밀만큼 잔인한 뻑치기단과 역시나 영화를 보는 관객들의 분노만큼이나 분노하는 경찰의 모습을 보여주며, 정의가 살아있음을 보여달라고 마음 속으로 외치게 만든다. 마치 <공공의 적 1> 을 볼 때으 마음가짐이랄까. 저런 싸가지없는. 저런 건 그냥 잡아가두는 정도론 안돼. 이런 마음. 영화 속 뻑치기들이 난리를 치고 다닐 때마다 내심 어여 잡아서 족쳐라 라고 속으로 되뇌이는 나를 발견한다. 정의감이 너무 앞서나간걸까. 어쨌든 결론은 정의의 승리. 당연하게도.

* 분노에 찬 방제수가 범인이 갇혀있는 승용차를 부수는 장면. 영화 속 장면에선 그 뿐 아니라 다른 동료 경찰들도 쇠파이프나 야구방망이를 들고서 이 차를 때려부순다. 마치 오락실 스트리트 파이터 처럼. 너도 한번 당해봐라. 이거다. 네 인생에서 가장 괴로운 시간을 보내게 해주마.

영화 속에서 한가지 인상 깊었던 말이 있다. 수사반장이 서로 다투는 경찰들을 모아놓고 이야기한다. "칼은 나눠 먹으면 산다!" 정말 결전의 날, 과거의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해 칼을 두려워하는 선배 경찰이 양동근을 살리기 위해 칼을 나눠먹는다. 그리고 쓰러진다. 다행히 죽진 않았지만. 일전의 두 사람의 다툼은 이렇게 화해된다. 오른쪽 제일 작은 아저씨가 수사반장. 왼쪽 두번째가 칼을 나눠먹은 아저씨.
요즘 경찰들이 억울함을 호소한다. 요즘뿐만 아니라 언제나 경찰들은 신세한탄을 해왔다. 검찰과 대립하며 미약한 힘을 어떻게든 좀 키워보려고. 대등하게 맞먹어보려고 했고. 지금와서 수사권(?)이 경찰에게 넘어가며 지위향상이 좀 됐지만 그래도 여전히 검찰에 비해선 턱없이 힘이 약하다. 또 최근엔 시위농민들과 한바탕하면서 생긴 불행한 사건으로 경찰청장이 퇴임을 했고, 경찰이 주눅들었다. 농민들의 주장도 맞고, 경찰의 주장도 일리가 있다. 박봉에 밤낮없이 뛰어다니고 강도와 일대일 상황이라도 될라면 잘못하면 칼맞고, 음주운전 측정하다 차에 끌려가 죽고 이래저래 좋을거 하나 없는 직업이다. 그럼에도 경찰에 몸담은 분들. 존경합니다. 비리경찰도 많고, 부도덕한 경찰도 많지만 성실하고 불만없이 꿋꿋이 일하는 경찰들 존경합니다. 정의실현을 위해. (이때의 정의는 박정희, 전두환 때의 정의와는 분명 다른 정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