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터 옆 작업실 - 홍대 앞 예술벼룩시장의 즐거운 작가들
조윤석.김중혁 지음, 박우진 사진 / 월간미술 / 2005년 11월
평점 :
절판


 

 우리는 중학교, 고등학교 도덕시간에 '진로적성' 단원에서 그렇게 배웠다. 직업을 선택할 때는 돈, 명예, 사회적 지위를 떠나 자아실현이 가장 우선시 되어야 한다고. 배우기는 그렇게 배웠으되, 사회로 내던져진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 살지 않는다. 또, 지금 나에게 배우고 있는 나의 사랑스런 제자들도 책에선 그렇게 말하지만 그들에게 "너의 직업 선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뭐냐?" "그 직업을 택하는데 있어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한 것이 무엇이냐?" 물어보면 그들은 여지 없이, 절대 다수가, '돈'이라고 대답한다.

  모든 것이 돈에 의해서 움직이는 세상이다. 돈은 곧 신이다. 얼마전 신문에 이런 기사가 나기도 했다. 아무리 밤을 새고 일이 고되도 좋으니깐 연봉이 높았으면 좋겠다고. 자기는 직장을 선택하는데 있어서 연봉을 최고로 고려 할 것이라고. 현재의 자신의 직장에 불만을 가지고 있는 대다수의 현 직장인들이 그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중학생이 생각하는 직업의 최고 가치나 현재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그들에게 있어서나 최고 가치는 돈으로 수렴된다.

  그런데 <놀이터 옆 작업실>에 나오는 여러 사람들의 삶은 이와 다르다. 그들은 마치 인생을 달관한 듯 하다. 돈은 있다가도 없는 것이요, 계속 없더라도 그게 뭐 그리 중요하냐는 등 그들은 위에 언급한 저들과 달리 너무나도 지나치게 돈을 천시하는 듯하기까지 보인다. 돈 니가 뭔데?! 난 그런거 필요 엄떠! 

  그들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그들은 정말 교과서에서 말하고 있는 자아실현을 위해 일을 하고 있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이것이고, 이 일을 함으로써 나는 나의 존재감을 맛보므로 내가 해야할 일은 이것이다. 벽에 그림을 그리고, 점토를 가지고 이쁘장한 장식품을 만들고, 남들이 필요 없다고 버린 천조가리로 쌔끈한 가방을 만들어내질 않나, 이들이 하는 짓(?)을 보자면 마술사가 따로 없다. 그들이 즐기는 그들이 자신의 존재감을 느끼는 그 일은 대부분 이렇게 손에서 시작된다.

  그들은 같은 돌맹이를 봐도, 같은 나무를 봐도, 같은 벽을 봐도, 같은 흙을 봐도 남들과 다르게 본다. 남들이 거들떠 보지도 않는 그것들을 통해 생각을 하고, 머릿속으로 이미 작업을 시작한다. 아 저것은 무엇이 되겠구나, 저걸 가지고 이렇게 하면 이런 이쁜 예술작품이 탄생하겠구나. 처음부터 예술작품을 만들으려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다보니 저절로 끝에가선 예술작품이 되었다.

  "원석이 매력적인 이유는 똑같은 모양이 하나도 없다는 거에요. 가공하지 않은 거니까 모양이 전부 제각각이죠. 전 원석을 하트 모양이나 이상한 모양으로 다듬는 건 싫어요. 그냥 원석 그대로의 모습을 어떻게 잘 보여줄 수 있을까만 생각해요."

 '책은 무언의 물체가 아니다. 책 속에선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을까? 어렸을 땐 커다랗게 높은 나무를 바라보면서 저 속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를 상상했다. 나무 속에는 어떤 생명들이 자라고 있을까. 나란히 꽂힌 저 책들은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을까. 나는 책을 숨쉬는 하나의 생명이라 생각하고 책 속에서 일어나는 어떤 일에 관해 상상했다. 나무 등걸의 형상으로 향이나 촉감을 느낄 수 있는 수제 종이 작업 후 책 속에도 나이테가 자라고 있지 않을까. 나이테가 마치 태아가 자라는 것처럼 크고 넓어지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한다.'

  이들이 삶을 달관해있는 것 처럼 보이는 이유는, 그들이 돈을 벗어나 자아실현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그들이 하는 일을 통해 - 대부분 손으로 하는 작업임에도 불구하고 - 넓은 생각의 장을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 손으로는 작업을 하고 있지만 머리 속으로는 생각을 하고 사유를 하고 있다. 그들은 철학자다. 플라톤이나 칸트, 데카르트, 라깡 아마 이름도 못들어봤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은 철학자의 이름과 그들의 이론을 한톨도 모르더라도 그들 각각은 이미 철학자다. 철학자는 철학의 역사를 알고 있고, 자신의 독특한 이론을 가진 사람만이 철학자가 아니다. 자유로운 영혼을 가지고 사유의 나래를 펼치고 있는 그들 자신이 이미 자신의 철학을 가지고 있는 '철학자'이다.

  이 각박한 세상에 어떻게 그런 사람들이 있을까 싶다. 도대체 그들은 어떤 교육을 받았고, 어떤 환경에서 자랐으며, 누구로부터 그런 영향을 받았던 것일까. 법정스님에게 '무소유'라고 배웠던 것일까. 도에 이른 스님처럼 삶을 달관한 그들의 삶에 대한 가치관은 그저 부럽기만 하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저들이 나중에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쓸데없는(?) 현실적인 걱정도 든다.

  그러나 그들이 하고 있는 작업 자체는 그 자체로서 자신에게 의미가 있는 작업이며, 나중에 그들이 무엇을 하든, 무엇이 되든 간에 그들의 삶의 토양을 가꾸는데 일조하게 되리라 생각한다. 마음껏 즐겨라.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이들이여. 그리고 이곳 놀이터로 모여라. 함께 즐기자.

 


댓글(5)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늘빵 2005-12-20 1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귀차니즘 때문에 계속 미루고 있다가 이제서야 올렸어요. 읽은지는 오래됐는데

BRINY 2005-12-20 1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여러분들께서 계속 리뷰를 올려대시면 사고 싶어지잖아요~

마늘빵 2005-12-21 2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부추기는건지도 몰라요. 짜고서.

히피드림~ 2005-12-21 2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장 좋기로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며 그 일이 어느 정도의 수준에 올랐을때 돈도 함께 따라오는 건데... 그렇게 사는 사람들은 몇 안되는 거 같죠? 그래두 전 책 속의 등장인물들이 왠지 부럽네요.^^

마늘빵 2005-12-22 07: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그러게요. 좋아하는 일 하다가 어느 정도 수준에서 돈 버는 거(박지성, 이영표) 그게 제일 좋은거 같아요. 너무 젊었을 때부터 돈돈 하다가는 평생 돈의 노예로 살기 딱.
 
늦어도 11월에는
한스 에리히 노삭 지음, 김창활 옮김 / 문학동네 / 2002년 11월
장바구니담기


"한참 후에야 나는 알았다. 그가 얼마나 소심하고 부끄러워 했는지를. 그때 나는 알지 못했다. 남자들은 모두 충동적이고 저돌적이며 막무가내인 줄로만 알았다. 나는 그와 같은 남자들이 있는 줄은 알지 못했다. 그는 내가 아는 어떤 남자들보다도 섬세하고 부드러웠다. 지금에서야 나는 그것을 깨달았다. 내가 얼마나 그를 사랑하고 있었는지를. 그가 나를 얼마나 사랑하고 있었는지를..."-147쪽

"행복했던 기억은 없었다. 행복했다고 느껴지는 기억의 빈 공간이 있긴 했지만. 정작 그 공간을 채우려 들면 어느 하나 거기에 맞는 게 없었다. 그것이 정말로 내가 체험한 사실인지조차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그러면서도 그 빈 공간은 여전히 행복한 기억으로 남아 있었다. -259쪽


댓글(3)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미미달 2005-12-20 09: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늦어도 한참 늦었삼. 1월이 다 되어가는 이 마당에 끙 -_ -

마늘빵 2005-12-20 09: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ㅡㅡ; 왜 아침부터 시비삼. 내 마음은 11월이라오. ㅋㅋㅋ 머해? 심심하지? 나랑 놀자.

진/우맘 2006-08-31 1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259p 밑줄긋기를 하고 내려와보니, 역시나, 미리 밑줄이 그어져 있네요.
 

  일본 애니메이션 매니아들은 <이웃집 토토로>가 극장에 걸리던 2001년 여름, 아무도 극장에서 보지 않았을 것이다. 사실 우리나라에서나 2001년에 개봉된 것이지 일본에선 그보다 한참 전에 개봉됐었기 때문에 해적판으로 나돌아 다니는 씨디를 구워다가 아니면 재주껏 인터넷에서 다운받아다가 봤을 터. 나 같이 인터넷 어디서 영화를 다운받는지도 모르고, 어디로 가야 구할 수 있는지 모르는 작자들이나 <토토로>를 극장에서 봤을 것이다.

  내가 엠피쓰리를 안듣고, 영화를 다운받아 보지 않는 것은, 음악과 영화 저작권에 대한 존중 때문이기도 하지만 귀차니즘과 무지에서 비롯되기도 한다. 난 그 흔한 엠피쓰리도 가지고 있지 않으며 - 사실 지하철 홍대역 화장실에서 엠피쓰리 하나를 올해 여름에 줍긴 했으나 아직까지 써먹지 않고 있다 - 좋아하는 노래가 있으면 그 노래가 들어있는 음반 전체가 흡족한 경우에 한해서 음반을 구입해서 듣는다. 내 컴퓨터에는 엠피쓰리 파일이 몇개 있긴 하지만 그것은 모두 일요일에 나가는 밴드에서 하는 합주곡인 경우로 한정된다. 엠피쓰리가 없는 대신 엠디를 소장하고 있기에 그걸 실시간 녹음해서 가지고 다닌다. 흠. 그럼 뭐야. 저작권 침해는 마찬가지잖아?! 그래서 내가 말했잖은가. 귀차니즘과 무지에서 비롯된 이유도 있다고.

  사설이 길었고,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 중 하나인 <토토로>. 자연에 대한 존경과 존중을 노래하고 있다고 흔히 말해진다. 어머니가 병으로 고생하고 있고, 아버지는 대학 연구원인데 어머니의 퇴원이 가까워지자 자연의 숲을 배경으로 한 시골 한적한 곳으로 이사를 온다. 도토리 나무가 우거진 숲. 다 쓰러질 듯한 집을 구경하는 사츠키와 메이. 동그리! 동그리! 이건 우리말로 도토리다. 집안 저 위 계단에서 뭔가 떨어졌는데 보아하니 도토리다.

 언니 사츠키가 학교에 가고, 아빠는 서재에서 일하고, 메이는 혼자 소풍 나왔다. 어 근데 자그마하고 귀엽게 생긴 넘이 뭔가를 흘리고 간다. 뒤따라갔더니 웬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와 같은 동굴이?! 그 안엔 커다란 곰탱이가 입을 벌리고 자고 있다. 이힛. 툭툭. 건드린다. 아~~~~움. 하품한다. 말똥말똥 눈을 뜨고 바라보는 곰탱이. 넌 이름이 뭐니? 토~~~토~~~로. 아 니가 토토로구나?! 이렇게 메이와 토토로의 만남은 이루어진다.



* 토토로와 메이의 첫 만남. 자고 있는 토토로의 콧등을 어루만지어라. 에취~!

  비가 엄청나게 오던 날 아빠에게 우산을 가져다드리러 가는데 메이의 말을 믿지 않던 사츠키의 눈 앞에 나타난 것은 엄청 큰 곰탱이. 토토로. 비 맞는 토토로에게 우산을 건네 주니 토토로는 도토리 씨앗을 준다. 그리고는 고양이 버스를 타고 휑하니 사라졌다.



* 엄청 빠른 고양이 버스. 근데 고양이 다리가 몇 개냐? 너 고양이 맞냐? 사람들 눈엔 절대 안보인다. 그저 거센 바람만 느낄 수 있을 뿐.



* 버스정거장에서 비 맞는 사츠키와 메이, 토토로. 우산을 줬지만 토토로의 몸뚱이를 가리기엔 역부족이지?

 영화 <이웃집 토토로>는 자연의 아름다움 풍경과 순수하고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모습을 우리의 눈 앞에 선사한다. 마냥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하고 깨끗해질 것만 같다. 하이얀 백지상태로 돌아가는 것 같달까? 미야자키 하야오가 대단한 것은 이렇게 아름답고 깔끔한 영상미와 함께 자연에 대한 존경심을 표하는 내용까지 어우러지기 때문일 터이다. 보통 에니메이션을 극장에서 돈 주고 보기는 왠지 아깝다. 하지만 그의 에니메이션은 결코 돈이 아깝지 않다. 그만큼 감동적인 영화를 본 것 만큼이나, 오히려 더 큰 만족감과 감동을 우리에게 전달해주기 때문이다. 지금도 영화 속 토토로를 생각하고 있노라면 메이처럼 토토로의 뱃살을 콕콕 찔러보고 싶은 충동이 든다. 커다란 토토로 인형을 사다가 잘 때 껴안고 자면 참 푸근하고 좋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므흣.

 

 


댓글(6)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하이드 2005-12-16 2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토토로~ 토토로! 토토로~ 토토로!
이 영화가 얼마나 오래전 영화이던지요.

마늘빵 2005-12-16 2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자요. 일본에선 엄청 오래됐고, 우리나라에서도 정식 개봉이 2001년 여름.
토토로 라는 말 넘 이뻐요. 동그리도 그렇고. 동그리~ 동그리~ (메이 말투)
근데 안자고 머하삼?

하이드 2005-12-16 2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야, 원래 활동시간이지만, 아프락사스님이야 말로.
이거 80년대 영화였던걸로 기억나네요.
메가박스에서 개봉했을때 보러갔다가, 와글와글 애들 너무 많아서 당황스러웠던 기억이 나네요. 막 착해지고 싶은 영화음악이에요. ^^

마늘빵 2005-12-16 2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하 그러게요. 전 잘 시간인데 뭐하고 있는건지. 흠. 이제 오늘은 그만 쓸래요. 영화는 아직 네 개 더 남았고, 책도 다섯개 써야되는데. 이번 달 안으로만 써야지. 그때그때 보고 읽을 때 마다 쓰려고 하는데 자꾸 미루다가 감동의 여운이 한풀 꺾이고 쓰려니 힘들어요. 하이드님 원래 착해서 이런거 안봐도 되지 않아요? ㅋㅋ

panda78 2005-12-17 0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중학교 때 일본 살다온 애가 비디오(당연 일어.. 내용은 몰랐음) 빌려줘서 그때 처음 보고, 그 뒤로 자막판 구해 보고 하여튼 십수번 봤는데
그래도 개봉했을 때 보러갔어요. 큰 화면으로 보고 싶어서.. ^^
DVD도 사려구요. 미야자키 하야오 애니는 대충 다 좋아하지만, 아무래도 토토로만큼 정이 가는 건 없는 듯 해요. ^^ 넘 좋아요, 토토로.
먼지벌레들도 넘 귀엽구.. ㅎㅎ

마늘빵 2005-12-17 08: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판다님 / ^^ 저도 이거 몇번 더 봤어요. 비됴로도. 볼때마다 마음이 참 깨끗해져요. 제가 원래 마음이 때가 많아서 그런지. ㅡㅡ; 먼지벌레도 귀엽죠. ㅋㅋ 이 먼지 벌레가 나중에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가마솥 벌레로 둔갑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ㅋㅋ
 



 

 

 

우리는 어떤 분노로 한껏 누군가를 후려패고  싶을 때, 그런데 그러지 못할 때 그렇게 말한다.

 "주먹이 운다 울어!"

 아마도 이 영화 제목 <주먹이 운다>는 그렇게해서 만들어진 게 아닐까 싶다. 내 인생 좆됐다. 세상이 원망스럽고 더 이상 추락할 바닥도 보이지 않는다. 땅 바닥까지 다 내려와서 이제 올라갈 길 밖에 없다. 이런 씨X. 내 주먹이 운다 울어! 뭐 이런게 아닐까?



* 만원 한장에 웃는다. 날 때려다오. 내가 맞아야 내 자식 먹여살린다.

  왕년엔 복싱스타였지만 지금은 길거리에서 매맞는 알바(?)를 하고 있는 태식이. 나 한때 잘 나가는 복싱선수였고, 아시안 게임 은메달리스트였다. 그런데! 에이 씨X. 도박, 화재로 돈 다 날리고 먹고 살자니 할 짓이 없어 유일하게 할 줄 아는 짓인 복싱으로 어캐 좀 해볼란다. 이런 이제 늙어서 시합같은것도 못나가고 돈 받고 매 맞으며 살아야지. 길거리에서 애인한테 차인 분, 직장상사한테 갈굼당한 분, 사기당한 분 등등 불러내어 그 원한을 자기한테 풀어달라 한다. 돈 내고. 완젼 무슨 오락실 밖에 나와 있는 두더지도 아니고. 화풀이를 멀쩡이 살아있는 생사람한테 풀으라니. 그런데 그걸 또 돈 주고 하는 년넘들이 있네 그려. "아저씨 오늘은 장사안해요?" 라고 대놓고 물어보는 넘들. "안해 이씨"



* 뭘 야려?! 사람 상판때기 처음봐?! 눈에 독기를 품고 다시 시작하자. 내 인생은 여기서부터다.

  동네 양아치. 애들한테 삥뜯기, 패싸움에 일가견이 있는 나. 어쩌다가 강도사건에 엮여서 교도소 들어왔는데 이런 니미 오자마자 맞짱떠서 독감 들어갔네. 체육관 주임이 날 보고 권투를 해보란다. 어 함 해볼까. 했더니 좋네. 잘 할 수 있을 거 같다. 맨날 싸움박질이나 하며 왜 사나 싶었는데 이제 뭔가 좀 의욕이 생길라 한다. 그런데, 공사장에서 막노동하던 아버지, 위에서 내려온 벽돌덩이(?)에 맞아 죽었다. 할머니가 면회를 오더니 계속 울기만 한다. 그리고 할머니도 쓰러졌다. 아 씨X. 뭐 이러냐. 인생 좆같네.



* 맞짱.

  태식이와 상환이 둘 다 모두 더 이상 물러설 곳도 내려갈 곳도 없다. 인생 막판까지 다 왔고 이제 좀 일어서보자며 마음 먹고 권투한다. 권투 이거 아니면 안된다. 나이 잔뜩 처먹고 먹고 살자고, 처자식 먹여살리자고 다시 뛰어들었다. 아버지 죽고, 할머니 쓰러지고, 집안 좆됐고, 내 인생도 좆됐다. 나도 더 이상 갈 데 없다. 처음이지만 해보련다. 이렇게 태식이와 상환이는 맞짱뜬다.

  아니 그럼 누굴 응원하나 그래?! 이기는 편 우리편? 그것도 아닌거 같다. 둘다 불쌍하다. 인생을 걸고 싸운다. 누가 이기든 상관없다. 중요한건 누가 이기느냐가 아니라 그 둘 모두 각자의 인생을 걸고 싸운다는 것이 중요할 뿐. 그들에게 권투는 인생이요, 지금 현재 나의 삶의 모든 것이다. 그렇게 뭔가 내가 할 수 있다는 의지를 불어넣어주는 것이 있다는 그 자체만으로 나는 행복하다. 가장 불행한 사람은 자신이 뭘 해야할지 모르고, 아무것도 하지도 않는 사람이다. 가장 행복한 사람은 뭔가를 함으로써 나의 삶의 의미를 발견하는 사람이다. 당신은 어느쪽?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하이드 2005-12-16 2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 주먹으로 괴롭히기보단, 더 집요하고, 잔인하게 괴롭혀주고 싶어요.

마늘빵 2005-12-16 2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캐요? 말로 막 갈구나? ㅋㅋ 근데 누구를???

하이드 2005-12-16 2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날 차고간 남자친구... 라고 하고 싶지만, 그냥, 미운 인간들요.
아, 내일 나오는거 맞아요?

마늘빵 2005-12-16 2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무슨 야기를 들었나보네요? 내일 아직 잘 모르겠눈데... 확실하게 말하기 어려움.
 



 

 

 

 

  생각보다 이 영화를 상영하는 극장이 적어서 보는데 애 먹었다. 왜 극장들이 이 영화를 기피(?)하는지는 영화를 다 본 뒤에야 대강 짐작할 수 있었다. <도쿄타워>가 다루고 있는 사랑이야기는 우리네 한국 정서의 그것과는 거리가 먼 비현실적인 이야기였으며, 영화 속에서 그들이 나누고 있는 사랑의 만남, 진행, 이별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과정들, 그리고 사랑의 방식이 '보통의 사랑'과는 남달랐기 때문이리라.

  <냉정과 열정 사이>로 유명해진 에쿠니 가오리의 또다른 작품을 토대로 하고 있는 이 영화는 소설의 결말과는 다른 결말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나는 소설을 읽어보지 않아 소설의 결말과 영화의 결말이 어떻게 다르고 같은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소설을 읽은 누군가에 의하면 그렇다고 한다. 소설에서는 결말이 좋지 않았다고. 하지만 영화에서는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적어도 주인공들에게는.

  "여자, 마흔 - 사랑을 배우다" 라는 카피문구를 가지고 있는 포스터. 사랑에 빠진 결과는 - 헤어지거나, 미리 헤어지기를 결심하거나 둘 중 하나다. 이건 결혼을 하고 마흔이 된 유부녀에게만 해당되는 결과? 아마도. 영화에서 다루고 있는 사랑의 주연은, 21살의 남자 대학생 토오루와 40살의 유부녀 시후미.

  결혼한지 꽤 세월이 흐르고 권태기가 찾아온다. 삶의 별다른 재미와 의미를 느끼지 못하고, 나는 남편에게 밥해주고 빨래해주고 밤에는 섹스파트너로서의 역할을 하는 사람일 뿐이다. 삶의 의미를 찾고 싶다. 어느날 20살 어린 대학생이 내게 접근했고, 필 꽂혔다. 만났다. 그와 함께 있으면 좋다. 그러나 불안하다. 이 만남은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을까?



* 토오루와 코지. 토오루는 시후미와 코지는 키미코와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두 사랑은 조금 다르다. 토오루의 그것이 좀더 진지하고 깊은 반면, 코지의 그것은 가볍고 장난스럽다.



* 시후미와 토오루. 그들은 정말 서로를 사랑한다.

  "언젠가 헤어지려고 마음먹고 있다. 단 그 언젠가가 오늘은 아니다. 이 관계는 아직 잃을 수 없다."

  그 언젠가가 아직 도래하지 않았기에, 아니 어쩌면 계속해서 거부하고 싶은건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 '언젠가'는 지금은 아니다. 지금 현재 우리는 사랑할 뿐이다. 사랑을 나눌 뿐이다. "사랑은 하는 것이 아니라 빠져드는 것이다." 우리는 사랑에 빠졌고 여기서 나오고 싶지 않다. 그 언젠가가 오기전까지는. 하지만 언제나 우리의 사랑은 위험하고 불안하다. 허락받을 수 없는 사랑이며 영원할 수 없는 사랑이다. 그렇다면 애초 빠져들지 말을 것을. 그러나 사랑은 그렇게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사랑은 '하는 것'이 아니라 '빠져드는 것'이므로.  

  엄마의 친구를 사랑한 토오루, 친구의 아들을 사랑한 시후미. 설정 자체가 파격적이고 이해하기 힘들지만 '사랑'에 어디 나이와 국경과 사회적 지위, 관계가 중요한가. 이런 파격적인 설정 자체가 '사랑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인지도 모른다.

  자세한 내용을 모른 채 보게 된 이 영화. 솔직히 조금 뻥찐 기분이다. 멜로영화는 그저 그 영화 속 주인공이 되어 감정이입된 채로 봐야 제맛인데 난 솔직히 영화 속 토오루가 되고 싶진 않았다. 그렇게 영화를 보는 시선과 나의 감정이 따로 놀았기에 이 영화는 내게는 썩 좋은 느낌을 전달해주지는 않았다. 에쿠니 가오리의 전작 <냉정과 열정 사이>를 보면서 나는 눈물을 흘리며 영화 속 주인공이 되어 그들의 사랑의 감정을 느꼈다. 하지만 <도쿄 타워>는 아니다. 내가 수용할 수 있는 선을 넘어섰다. 일본 멜로는 가끔 이렇게 사람을 당황스럽게 만들 때가 있다.

 


댓글(5)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하이드 2005-12-16 2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건, 혹시, 아프락사스님이 연하녀만 사랑하기 때문에 그런거 아닌가요? ㅎㅎ
근데, 나도 뻥찌긴 했어요.

blowup 2005-12-16 2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저도 하이드 님 생각과 비슷한 데요.

마늘빵 2005-12-16 2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이드님 / 하핫. 그런가요? ^^ 근데 저건 너무 너무 연상이라. 저도 연상녀 괜찮은데. 연상인데다 유부녀고.
나무님 / ^^

하이드 2005-12-16 2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통 연상이던가요. 완전 멋진 캐릭터이더만.

마늘빵 2005-12-16 2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흠. 맞다. 그건 인정. 40살 먹은 유부녀이긴 했지만 너무나 멋있었어요. 흠. 저런 유부녀라면 그럼 나도? (무슨소릴 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