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영화가 나왔다는 말에 난 퍼뜩 극장으로 달려가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고, 나온지 한참이 지난 지금에서야 보게 되었다. 이 영화가 상영된게 올해 2월이었으니깐 10개월이나 흐른 셈이다. 그 동안 뭐했나 몰라. 상영이 종료된 이후에도 난 비됴 혹은 디비디를 빌려다가 언능 보고 싶었으나 이상하게도 항상 마음 뿐이었다. 왜 그랬나 몰라. 이제서야 이 영화를 보게 되었다. 아마도 이렇게 뒤늦게 내가 보고싶어하던 영화를 보게 된 것은 내 발길이 비디오 대여점으로 향하기 힘들었기 때문이었을 터. 그것은 '귀차니즘'에 기인할 터.
이 영화는 재즈뮤지션 레이 찰스에 대한 영화이다. 하지만 나는 레이 찰스를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보고 싶었다. 왜? 아니 레이 찰스를 모르면서 왜 이 영화가 보고 싶었는데?! 아마도 수많은 재즈 매니아들이 이 영화의 상영을 오랜시간 기다렸을 것이나 나는 어 이런 영화도 나왔네?! 뭐야? 재즈 뮤지션 레이 찰스? 음. 어디서 들어봤더라. 이런 정도의 감각만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레이>가 보고 싶었단 말이다. 첫째, 그것이 실화이기에, 둘째, 그것이 뮤지션의 삶을 그렸기에. 내가 이 영화를 보고 싶은 이유는 그게 다다. 정말이다.
난 실화를 그린 영화들을 좋아하고, 또한 음악을 소재로 한 영화를 매우 좋아라 한다. 바이올린, 피아노, 색소폰 등등 악기를 불문하고, 록, 재즈, 컨츄리 장르를 불문하고, 그저 음악가를 소재로 한 영화라면 환영이다. 예전에 에미넴을 잘 모르던 시절 보게 된 영화 <8 mile>은 대단한 감동을 선사해주었다. 맨날 신문기사에 지 애미 욕하다 애미한테 고소당했네, 누구랑 섹스를 했네 하는 따위의 막말을 해대는 놈이라 그닥 가까이 하고 싶지 않았는데, 그의 삶을 그려낸 영화 <8 mile>은 나로 하여금 그의 팬이 되지 않을 수 없게끔 했다. 난 영화가 끝난 즉시 바로 레코드점으로 달려가 그의 음반 1,2,3집을 모두 샀다. 그리고 최근 그의 베스트음반이 나왔다길래 인터넷 주문 장바구니에 넣고는 다시 생각을 고쳐먹고 지우기까지 했다. 라이브 음반이라면 당장에 결재까지 눌렀겠지만 이미 있는 음반의 곡들이 모아진 것이라 삭제.
<백야> <데블스 어드버킷> 으로 유명한 테일퍼 핵포드 감독은 영화 <레이>를 위해서 15년간을 레이 찰스와 교류했다고 한다. 한편의 잘만든 영화를 위해서 그만큼 오랫시간의 노력을 한 것이다. 물론 처음엔 영화를 목적으로 만났을지라도 - 그것도 확실치는 않겠지만 -, 그간의 세월들은 그 둘을 친구가 되게 했을테고 - 왜냐면 핵포드 감독도 나이가 만만치 않으니깐 - 그 솔직한 교재가 재즈뮤지션 레이 찰스의 모든 것을 이 영화에 솔직히 담아대는데 이바지했을 것이다. 레이 찰스가 죽은 것이 2004년, 그리고 2005년 2월 영화 <레이>가 개봉했다. 시기상으로 딱 들어맞는 것이다. 그 어느 때보다 레이 찰스를 위한, 그를 기리기 위한 아주 적절한 때에, 모든 그의 팬들이, 재즈 팬들이 그를 그리워하고, 그의 죽음을 슬퍼할 그 시기에 영화는 개봉한 것이다.
가난했던 조지아주 어린 시절, 동생을 사고로 잃고, 이후 자신은 7세에 시력을 잃었다. 어머니는 그를 맹아학교에 보냈고, 그는 그곳에서 학교생활을 보냈다. 어린 시절부터 피아노를 좋아해 몰래 보러가고, 그곳에서 보고 들으며 음악을 배웠다. 컨츄리. 지금 그는 재즈의 왕으로 알려져있지만 본래 그가 보고 듣고 자란 음악은 컨츄리였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공연중 블루스, 재즈, 컨츄리를 넘나들며 자신의 재능을 선보일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맹인이자 흑인이어서 자그마한 공연을 뛰어도 다른 뮤지션들보다 못한 대우를 받았으며, 사기를 당하기도 했다. 그러다 애틀란틱 음반사로부터 제의를 받고 본격적으로 음반을 낸 뒤 성공에 성공을 거듭하여 결국 그래미 상까지 휩쓰는 쾌거를 이루고 돈도 펑펑 써도 남을 만치 벌었다. 음악에 빠져 지내며 많은 여자들과 염문을 뿌렸고, 마약에 손대기도 해 재판장에 서기도 했다. 또 조지아주의 공연에서 백인과 흑인의 좌절 차별로 흑인들이 시위를 하자 이에 공감하며 최초의 공연거부를 하기도 했고, 이것이 발판이 되어 흑인차별철폐는 물론이고 평생 공연 금지 판정을 받은 조지아주로부터 초청공연을 받아내기에 이르렀다.
영화 <레이>는 이런 그의 모든 삶의 희노애락을 다 보여준다. 일부러 미화시키기를 바라지 않았다. 그는 감독인 헥포드가 그의 삶을 솔직하게 있는 그대로 그려주기를 원했다. 그래서 가난했던 어린 시절과 수많은 여자들과의 사건들, 그리고 마약사건 등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 것이다.

* 레이 찰스를 연기한 제이미 폭스. 대단했다. 와. 그를 다시 보게 된다. 정말 실제 뮤지션이 연기를 하는 것 같았다.

* 레이 찰스의 아내 델라와 그의 아들. 돈이 많으면 뭐해. 남편이 밖으로 나도는데. 불쌍.
어머니는 그를 보내며 절대 마음만은 장애인이 되지 말라고 하셨다. 그는 마음을 굳게 먹고 세상에 당당히 맞섰다. 절대 맹인이라고 동정을 받거나 굴복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우뚝 섰고, 결혼도 했으며, 아이도 낳았고, 음악인으로 대성공을 했다. 장애가 있는 그가 정상인이 이루기도 힘든 일을 해낸 것이다. 그에게 있어 음악은 그의 전부였고, 그 음악은 결국 그를 만들어냈다. 마약에 빠져, 음악에 빠져, 가정을 소홀히 하고 외도하고, 큰 성공을 이루기는 했지만 그는 가정에 있어서 만큼은 좋은 남편, 좋은 아빠가 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아내 델라는 그의 곁을 지켜주었으며, 결국 그가 약을 스스로 끊도록 만들었다. 그는 큰 성공을 했지만 어릴 적 어머니가 말씀하신 "마음만은 장애인이 되지 말아라"라는 말에 어긋나게 살고 있음을 스스로 깨닫고 다시 태어났다.

* 가운데가 레이의 애인 마지. 레이 찰스 밴드의 코러스 세 명 중 한명으로, 훗날 레이의 아들까지 낳는다.
레이 찰스. 난 재즈 음악에 관심이 있지만 사실 재즈 음악을 잘 모른다. 하지만 내가 에미넴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다가 그의 팬이 되었듯 레이 찰스를 모른 채 이 영화를 봤지만 지금 그의 팬이 되지 않을 수 없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조만간 내 지갑이 더 얇아지게 되리라는 예감이 든다. 레이 찰스.
p.s.
1. 그가 집을 나가 밖에서 수많은 여자들과 관계를 맺고, 밖에서 낳은 자식까지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의 곁을 떠나지 않고 지켜준, 되려 그를 보살펴준 헌신적인(?) 그의 아내 델라에게 존경을. 이게 존경할 만한 일인지 아니면 바보라고 욕을 해줘야 할 일인지 모르겠지만 어쨌건 레이 찰스는 여자복은 타고난 듯 하며, 그중에도 그의 아내 델라는 최고다.
2. 이런식으로 인종차별반대에 앞장 설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자신이 인종차별의 희생자였으면서도 그는 크게 성공한 뒤에도 인종차별에 관해 별 관심이 없었다. 나는 그저 연예인이에요. 그래 너 연예인 맞다. 그런데 너도 흑인이다. 레이는 나중에 조지아주에서 사람들이 시위를 하고 그에게 직접 말을 건네며 도와줄 것을 요청한 뒤에 비로서 이에 대해 인식한 듯 하며, 수많은 이들이 인종차별 반대에 오랜동안 힘써왔음에도 그들의 이름은 뒤에 묻히고, 오직 그가 인종차별철폐에 대단한 공을 세운 것 마냥 되어버렸다. 난 이게 좀 못마땅하다.
3. 우리나라에서라면 이게 가능할까 싶다. 저때가 1940년대부터의 미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지금 2005년 현재 우리나라에서 저런 뛰어난 재능을 가진 장애인이 저만한 성공을 할 수 있을까 의심스럽다. 아마도 봉제공장에서 박음질을 하거나 집에서 구슬을 꿰거나 길에서 도장을 파고 있지 않을까. 흑인이면서 장애인인 그가 그 차별을 극복하고 그만한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대단한 의지와 노력도 한몫했겠지만 사회적인 분위기도 뒷받침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비록 그 때가 흑인차별과 장애인 차별이 있던 시대였음에도 불구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