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굿바이 레닌>은 극장 상영관을 통해 개봉한 영화는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무슨 국제영화제에서 선보인 작품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는 영화는 아니다. 내가 이 영화를 처음 접한 것은 일간신문 문화면을 통해서였으며, 조금이나마 영화의 장면들을 살펴볼 수 있었던 기회는 일요일 낮에 하는 어느 영화 소개 프로그램에서였다. 그러나 충분히 그 장면들만으로도 이 영화를 나를 사로잡았고 집에 디비디도 없던 시절, 무턱대고 인터넷 주문을 통해 굿바이 레닌의 디비디를 구입했다. 그만큼 인상적이었고 감동적이었다는 말씀.


  단 한번도 거짓말을 하지 않은 사람이 정말 있을까? 사람이라면 누구나 살아가면서 한번쯤은 거짓말을 할 터. 영화 속에서 동독시민인 크리스티아네의 아들 알렉스가 베를린 장벽 철거 시위대에 들어섰다 경찰의 진압을 받는 것을 보고 알렉스의 엄마 크리스티아네는 그만 현장에서 심장마비로 쓰러지고 만다. 엄마가 코마상태로 병원에 있는 동안에 동독은 서독으로서의 흡수통일에 가까워지게 되고 동독에는 자본주의의 상징인 버거킹과 맥도날드의 로고가 건물에 걸리는 지경에까지 이른다. 엄마가 의식을 찾은 뒤, 아들 알렉스는 엄마의 심장마비를 막기 위해 열렬한 공산주의자인 엄마를 위해 통일된 사실을 숨기려 온갖 거짓말을 하게 된다. 그야말로 선의의 거짓말. 영화 <굿바이 레닌>을 통해 거짓말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거짓말의 상황>

  거짓말에는 두 가지가 존재할 수 있다. 첫 번째는 나쁜 의도를 가지고 하는 거짓말이고, 두 번째는 좋은 의도를 가지고 하는 거짓말이다. 나쁜 의도를 가지고 하는 거짓말의 경우 이는 사기다.


  첫 번째, 나쁜 의도의 거짓말


  「인건이는 혜림이와 사귀고 있는데 얼마전 영화모임에서 지선이를 알게 되었고 혜림이 몰래 지선이를 만나 데이트를 했다. 인건이와 지선이가 영화를 보는 두 시간 동안 인건이는 혜림이에게서 몇 건의 문자메세지를 받았지만 이를 무시했다. 전화도 세 차례 왔지만 모두 무시했다. 영화가 끝난 뒤에도 연락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중에 혜림이를 만났을 때 그녀가 이에 대해 추궁하자 자느라 전화 온줄 몰랐다고 거짓말을 했다.」


  이는 나쁜 거짓말의 예이다. 인건이는 분명히 혜림이 몰래 지선이와 데이트를 했으며,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말하지 않고 알리바이를 만들어내 혜림이를 속였다. 누가 봐도 인건이가 잘못한 상황이고 혜림이만 불쌍해졌다. 그렇다면 과연 나쁜 거짓말은 ‘언제나’ 용납될 수 없는가?


  위의 사례에 약간의 상황을 덧붙여보자.


  「인건이는 영화를 매우 좋아한다. 혜림이와 사귀기전에는 여러 여자친구들과 데이트하며 영화 보기를 즐겼지만 혜림이와 사귄 뒤로는 영화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혜림이 때문에 꼭 보고 싶은데 놓친 영화들이 부지기수다. 아 오늘 또 저 영화 개봉했어. <도쿄타워>. 인건이는 영화를 보고 싶어한다. 무지. 하지만 혜림이는 별로 내켜하지 않는다. 아니 도대체 그럼 내가 영화를 보기 위해서는 이 영화가 비디오로 출시될 때까지 기다려야한단 말야? 너무 억울하다. 그래서 인건이는 ‘너무나 영화가 보고 싶어서’ 혜림이 몰래 지선이를 만나 영화를 봤다. 꼭 지선이가 아니어도 되지만 기왕이면 더 마음이 가는 사람과 함께 보는 것이 낫지 않은가? 그런데 혜림이가 영화보는 중간에 전화를 했다. 마음이 찔렸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다. 혜림이에게는 거짓말을 했다. 그러나 나는 나쁜 의도로 그런 게 아니란 말이다. 남들이 보면 나보고 못됐다고 하겠지만」


  좀전의 상황에 약간의 상황을 더 추가했다. 어떤가? 분명 위에서 이 상황을 나쁜 거짓말 이라고 했지만 인건이의 변론을 듣고 보니 나쁜 의도로 그랬다고 몰아붙이기엔 인건이가 불쌍하지 않은가? 앞에서 거짓말을 나쁜 거짓말과 좋은 거짓말 두가지로 나눠봤지만 거짓말을 좀더 세분화 시킬 필요가 있다.


  나쁜 거짓말에는 남을 속여서 자신의 이득을 챙기고 타인에게 정신적, 물질적 피해를 줄 수 있는 거짓말이 있는 반면, 남을 속이고 자신의 이득을 챙기고 또 알려질 경우 타인에게 정신적, 물질적 피해를 줄 수도 있지만 드러나지 않을 경우 피해를 주지 않을 수도 있는 거짓말. 이렇게 두 가지로 나눠봐야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집을 계약했다가 중복계약으로 사기를 당해 지금껏 모은 모든 돈을 날려버린 경우는 나쁜 거짓말의 전자에 속하고, 위의 사례는 후자에 속한다. 계약사기는 드러나지 않을 수가 없는 명백히 타인에게 나쁜 결과를 초래하는 범죄이고, 후자의 경우는 드러나지 않을 수고 있는 경우이다. 나는 후자의 거짓말이 나쁘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두 번째, 좋은 의도의 거짓말


  자 이제 두 번째 좋은 의도의 거짓말을 한번 살펴보자. 흔히 말해 ‘선의의 거짓말’이라고도 부른다. 영화 속 장면에서 알렉스가 엄마를 살리기 위해 거짓말을 한다. 이제는 나오지 않는 동독제품을 만들어내고, 통일사실을 숨기기 위해 라디오 안테나를 부러뜨리고 고장났다고 하는 장면, 창문 밖 고층 빌딩에 걸린 맥도날드 간판을 보고 놀란 엄마를 위해 맥도날드는 50년대에 동독에 처음 만들어낸 것이라고 가짜 뉴스를 제작하는 장면 등 알렉스의 거짓말은 엄청나다. 이 많은 거짓말들이 모두 정당화 될 수 있는가?


  「사냥꾼이 토끼를 잡으려고 하는데 토끼가 얼른 도망쳐 어느 오두막집으로 들어가 사정을 했다. 한번만 숨겨주면 절대로 은혜를 잊지 않겠노라고. 사냥꾼이 오두막에 도달해서 물었다. “혹시 이쪽으로 지나가는 토끼 봤소?” “네. 저쪽 방향으로 재빠르게 도망치던걸요.” “아 예. 감사합니다.” 사냥꾼은 오두막 주인이 잘못 알려준 방향으로 달려갔다. 토끼는 오두막 주인에게 감사하단 인사를 전하고 다른 방향으로 도주했다.」


  전형적인 선의의 거짓말의 사례이다. 토끼를 살리기 위해 오두막 주인은 사냥꾼에게 거짓말을 했다. 만일 사실을 그대로 말했더라면 토끼는 여지 없이 잡혀 구이가 됐을 것이다. 누가 봐도 이 오두막 주인의 행동은 칭찬받을 만하다. 단 한번의 거짓말로 토끼의 목숨을 살렸으니 말이다.


  알렉스도 영화 속에서 셀 수도 없을 만치 많은 거짓말을 했지만 이는 모두 엄마를 살리기 위해서였다. 엄마는 결국 죽는 순간까지도 통일사실을 몰랐지만 그것은 엄마가 마음편히 세상을 하직할 수 있게 하기 위한 알렉스의 ‘배려’였다. 수많은 거짓말들을 애써 하지 않고 엄마가 깨어난 순간 “엄마 동독이 서독에 흡수통일됐어요.” 라고 말했다간 엄마는 그 자리에서 즉사했을 터. 알렉스의 효성이 대단하지 않은가. 그렇다면 선의의 거짓말은 언제나 정당한가?


  만일 칸트가 이 사태에 대해 코멘트를 한다면 어땠을까? 칸트는 <거짓말할 권리>라는 글에서 위의 예와 비슷한 경우를 예로 들고 있다. 한 친구가 내 집에 숨었고, 살인강도가 나타나 나에게 친구의 행방을 묻는다. 이는 위의 사례보다 더 독한 경우다. 위에서는 사냥꾼을 피해 도망온 토끼를 구해준 경우이지만, 칸트의 예는 살인범에게 친구를 내주어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칸트는 거짓말할 권리는 어떤 경우에도 허용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즉 그에게 있어서 불가피한 상황에서 진실을 말하는 것은 그로 말미암아 생겨날지 모르는 많은 불이익에도 불구하고 모든 사람에게 요구되는 형식적 의무이다. 그에 의하면, 허위 진술은 “내가, 나에게 부당하게 말하도록 강요하는, 그에게 잘못을 행한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 이것은 인류 일반에게 행해진 하나의 잘못(ein Unrecht)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어떤 구체적인 상황 하에서 행해진 거짓말의 문제가 그 상황 속에 있는 개인의 문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실은 인류 전체의 문제와 연관되어 있음을 칸트가 주장한다는 사실이다. 지금 우리가 알기 원하는 문제는 한 인간이 구체적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거짓말을 하는 것이 허용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문제에 대한 칸트의 대답은 ‘거짓말할 권리가 보편적 원칙으로 성립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이거나 ‘진실에의 의무가 예외를 가질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위의 예에서, 거짓말을 하든 하지 않든, 발생하는 결과는 우연적이라고 생각한다. 칸트는 당신이 거짓말을 함으로써 당신의 친구가 살인강도에게 희생되는 경우와 진실을 말했음에도 그 친구가 그 살인강도에게 희생되지 않을 수 있는 경우를 생각해 본다. 그리고 당신이 거짓말을 했을 경우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당신에게 있다고 말한다. 또 당신이 엄격하게 진실했다면 공적인 정의의 차원에서 예견되지 못한 결과가 있었다 할지라도 당신에게 잘못이 없다고 말한다. 요컨대, 칸트가 생각하고 있는 것은, 진실을 말하든 결과가 좋거나 나쁜 것은 우연적이라는 것이며, 그 우연적인 결과를 예상하여 원칙을 생각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다. 칸트의 입장에서 보자면, 진실하지 않을 권리란 것은 우연적인 것에 불과한 결과를 미리 예상하여야만 성립될 수 있는 것으로 원칙으로서의 자격을 가지지 못한다.”(「칸트 윤리학에 있어 거짓말 문제」, 김종식)


  선의의 거짓말은 누군가의 생명을 살리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거짓말의 대상이 되는 상대에게 결과적으로 해를 끼치지 않는, 되려 이득을 전달해주는 결과를 얻기 때문에 거짓말을 한다고 하여 비난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나 역시 이에 동감하는 바이다. 하지만 칸트의 의견에도 일리는 있다. 내가 주어진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함으로서 생기는 결과는 아무도 예측하지 못하는 일이다. 이는 순전히 우연적인 것이다. 내가 거짓말을 하는 길을 택했다고 해서 타인이 이로인해 이득을 보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 이득을 보게 되리라는 생각은 순전히 나의 머리 속에서, 아직 발생하지 않은, 사건에 대한 추측일 뿐이다. 거짓말을 했고 결과가 나빴다면 이는 나의 양심을 속인 첫 번째 잘못과 나의 잘못된 선택에 대해 타인이 입은 해까지 포함해 두 개의 잘못을 범하게 되는 꼴이 된다. 그러므로 선의의 거짓말이 언제나 정당화 되는 것은 아니며 단지 그것은 나의 의도의 문제일 뿐 ‘선의의 결과’까지 담보하는 것은 아니기에 언제나 옳다고 말할수도 없다. 따라서 칸트에 의하면 <굿바이 레닌> 속에서 알렉스의 선의의 거짓말은 순전히 그 혼자만의 자신의 거짓말에 대한 낙관에서 비롯된 행위일뿐 그렇다고 해서 - 물론 영화 속에서는 그 거짓말로 인해 엄마가 기분좋게(?) 돌아가셨지만 - ‘반드시’ 선의의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 아니므로 잘못이다.



  거짓말을 학생들을 대상으로 교육 할 때는 거짓말에 대한 다양한 상황을 주어준 뒤 각자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행동은 어떤 것인지를 말해보도록하고 서로 다르게 생각하는 부분에 대해서 토론을 진행해보는 것이 좋을 듯 싶다. 내가 생각한 행동과 남이 생각한 행동의 차이와 각각의 행동이 불러올 결과까지 이야기를 하다보면 거짓말에 대한 생각이 기존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고 나아가 생각의 넓이와 범위가 확장되고 또한 깊어지리라 생각한다.

 

 

* 이 글에 들어간 필자의 관점은 논의를 활발히 하기 위해 본래의 제 생각보다 극단으로 약간 치우친 경향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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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아이 2005-12-12 17: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 생각할 기회를 주셔서 고맙습니다. 근데 "굿바이 레닌" 개봉했더랬어요. ^^
2. 글의 요지와는 상관없지만, 전 그 영화 보면서 어머니가 정말 끝까지 눈치를 못 챘을까? 하는 생각을 했답니다. 알고도 아들의 정성에 속아준 게 아닐까 하는...
3. 그런데 칸트가 들었다는 살인강도의 예에서요, 우리는 살인강도가 물으면 꼭 대답해야 하나요? 누군가에게 질문을 받았을 때 대답해야 할 의무가 주어지나요? 침묵할 권리, 질문을 거부할 권리도 있지 않을까요? 이건 또 다른 문제가 되겠지만...

마늘빵 2005-12-12 2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숨은아이님 /
1. 굿바이 레닌 개봉했었나요?? 엇 왜 몰랐지. ㅡㅡ;;;; 전 국제영화제에서만 한줄 알았어요.
2. ^^ 전 그런 생각까진 안했는데. 다만 이런 생각은 했어요. 심장마비를 막기 위해 저렇게까지 힘들여가며 거짓행동을 할 필요가 있을까. 차라리 아무도 없는 시골 한적한 곳에 이사를 가서 거기서 살면 저런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될텐데 하고 말이에요. 영화는 일부러 코믹하고 재미난 상황을 연출하기 위해 그런 장면들을 넣었겠지만요.
3. 네 칸트에게 있어서는 거짓말은 절대 안됩니다. 물었을 때 대답해야할 의무가 아니라, 누군가 질문을 했을 때 그에 대해 '거짓말'을 할 의무는 절대로 주어지지 않습니다. 칸트는 철학을 함에 있어 언제나 인류전체에게 해당되는 보편적인 법칙을 세우려고 노력했고, 각각의 상황상황마다 달리 적용되는 거짓말 같은 것은 절대로 허용되지 않습니다. 다만 이때 칸트가 상정하고 있는, 주장하고 있는 바는 윤리학의 이론상의 원칙이고요, 우리네 삶의 영역에서 적용되는 실천윤리학의 문제에서는 따로 다뤄야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칸트가 실제 저런 상황에 처하게 된다면 어떻게 행동할지 궁금합니다. 이론상으로는 그는 거짓말을 하지 않겠지만요. ^^

플라시보 2005-12-13 08: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저도 굿바이 레닌 보고 싶었었는데. 이거랑 비슷하다는 우리나라 영화 (간큰가족이었나?) 를 보고 앓느니 죽지라는 걸 생각했었습니다. 흐... 하나의 영화로 이렇게 풍부한 생각을 하시는 님이 참으로 부럽습니다. 인간의 뇌란. 그 어떤 우주보다도 넓고 광활하다는 것을 새삼 느끼고 갑니다.

마늘빵 2005-12-13 1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플라시보님 / 전 이 영화 굉장히 좋아합니다. 넘 좋아해서 디비디까지 구입해놨는걸요. 참고로 제가 가지고 있는 디비디는 딱 두개인데, <봄날은 간다>와 <굿바이레닌>입니다. 조만간 <비포선라이즈>와 <비포선셋>을 구입할 생각이에요. ^^ 전 영화를 통해서, 책을 통해서, 생각꼬리물기 놀이 하는 것을 좋아한답니다. 드럼치는 거 빼고 다른 취미 하나 없이 여행도 안다니고 지금껏 살아오면서 심심하지 않았던 것은 바론 이런 놀이 때문이에요. 혼자 하는 놀이라 타인과 어울리지 못하는 단점이 있긴 하지만.

marine 2005-12-13 15: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 인사드려요, 아프락사스님!! 전 무슨 공산주의 혁명 이야기인 줄 알고 봤다가 다소 황당했던 기억이 납니다 ^^ 간 큰 가족이 완벽하게 패러디 한 것 같던데 굿바이 레닌과는 달리 코메디 쪽 느낌이 강합니다
비포선라이즈랑 비포선셋 너무 좋죠? 전 특히 비포선셋이 더 좋았어요 Love is a dialogue 임을 다시 한 번 확인했죠

마늘빵 2005-12-14 1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나님 / ^^ 네 전 간큰가족은 안봐서 잘 모르겠어요. 굿바이레닌은 독일통일의 과정을 축약적으로 보여주지만 진실된 모습들을 보여준다는 면에서, 또 그걸 코믹하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대단한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통일 된 이후의 동독인들의 상실감. 지금껏 10번 넘게 본거 같은데 볼 때마다 새로운 것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비포선라이즈 선셋 은 시리즈로 사려고 했는데 지금 절판으로 되어있더라구요. 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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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터 옆 작업실 - 홍대 앞 예술벼룩시장의 즐거운 작가들
조윤석.김중혁 지음, 박우진 사진 / 월간미술 / 2005년 11월
절판


"원석이 매력적인 이유는 똑같은 모양이 하나도 없다는 거에요. 가공하지 않은 거니까 모양이 전부 제각각이죠. 전 원석을 하트 모양이나 이상한 모양으로 다듬는 건 싫어요. 그냥 원석 그대로의 모습을 어떻게 잘 보여줄 수 있을까만 생각해요."-80쪽

'예쁘다'라는, 말 그대로 아주 예쁜 말이 예술과 관련된 쪽으로 넘어오게 되면 의미가 변한다. 예쁘다라는 것은 예술적이라기보다 상업적이며, 현실적이라기보다 공상적이라는, 부정의 의미로 변질된다. 우유각소녀는 부정의 의미로 변질된 '예쁘다'라는 말의 근원지를 찾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117쪽

'책은 무언의 물체가 아니다. 책 속에선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을까? 어렸을 땐 커다랗게 높은 나무를 바라보면서 저 속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를 상상했다. 나무 속에는 어떤 생명들이 자라고 있을까. 나란히 꽂힌 저 책들은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을까. 나는 책을 숨쉬는 하나의 생명이라 생각하고 책 속에서 일어나는 어떤 일에 관해 상상했다. 나무 등걸의 형상으로 향이나 촉감을 느낄 수 있는 수제 종이 작업 후 책 속에도 나이테가 자라고 있지 않을까. 나이테가 마치 태아가 자라는 것처럼 크고 넓어지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한다.'-1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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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달 2005-11-30 1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놀이터 옆에서 작업하면 시끄럽겠다.. ;

마늘빵 2005-11-30 14: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ㅡㅡ;;;

2005-12-05 22: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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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술은 논술이 아니다 - 탁석산의 글쓰기 3 탁석산의 글쓰기 3
탁석산 지음 / 김영사 / 2005년 11월
평점 :
절판


 

  철학자 탁석산의 글짓기 시리즈 5권 중 3권이다. 앞선 두 권을 통해서는 논술이라는 글쓰기가 어떤 것이고, 좋은 논증이란 어떤 것인가에 대한 큼직하고 개괄적인 부분들을 살펴봤다면, 드디어 3권에서는 실전연습에 들어간다. 당장 논술 공부가 급한 수험생이고, 시리즈 5권을 모두 읽을 시간이 없다면, 3권만 읽어도 무방할 듯 싶다. 하지만 제대로된 글쓰기 훈련을 위해서라면 - 애초에 탁석산 선생이 의도했듯이 - 1권부터 차근차근 짚어가며 글쓰기에 대한 개념부터 확립하는 것이 우선이다. 나름대로 잘쓴다고는 생각지 않지만 글쓰기를 즐기는 나 조차도 그의 첫 관문에서 빵점을 받고 시작했다.

  앞선 두 권을 통해 글이란게 뭔지 파악을 했다면, 3권부터는 실전이다. 글쓰기는 인격수양을 위해서 하는 거다?! 라는 이상적이고 대단한 명제를 깨어부수고  글쓰기에는 반드시 목적이 있다며 그 목적을 위해 글쓰는 방법을 터득해야 한다는 탁석산. 그는 기존의 글에 대한 모든 상식을 다 깨어부수고 처음부터 시작하게 만든다.

  대학논술시험에 대한 우리네 상식적인 대처방안들. 책을 많이 읽고 글을 많이 써봐라. 개뿔. 그런거 필요 없단다. 논술시험준비를 위해서 플라톤의 대화편을 읽고, 니체의 <도덕의 계보>를 읽고, 데카르트의 <방법서설>을 읽고, 카뮈를 알고, 카프카를 알고, 헤르만 헷세,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를 알아가는 모든 과정들, 다 필요없다. 그게 뭐냐. 무슨 대한민국 대학 논술시험 따위를 준비하는데 그런 거창한 것들이 필요하느냐. 우리 대학논술이 무슨 프랑스 바깔로레야인줄 아느냐?! 개뿔 아무것도 볼 거 없다는 저자의 발언. 논술의 질문이 간단하면 간단할수록 수험생이 대답하기는 더 힘들어지고, 우리네처럼 지문이 여러개 나오고 지문이 길어질수록 수험생은 더 쉽게 쓸 수가 있다고 말한다. 왜냐면 주어진 지문 안에서만 해결하면 되니깐. 굳이 저런 거창한 대문호들, 철학자들의 작품을 읽고 파악해둘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그건 그냥 그럴듯해보이려는 것일 뿐.

  읽고 파악하고, 비판하고, 쓴다. 그게 전부 다다. 어찌보면 그동안 우리가 논술을 가르치고 배워오면서 알고 있는 가장 기본적인 것들이다. 하지만 정말 저 안에 다 들어있다. 괜히 어려운 지문이 나왔다고 겁먹을 필요도 없고 벌벌떨지 말자. 이미 답을 다 지문안에 줬는데 뭘 떨고 앉아있는가 그대여.

  탁석산은 3권을 통해서 기존의 대학논술 기출문제 몇가지를 들어가며 분석하고, 실제로 문제에 대한 답을 써보며 그 방법을 세밀하게 지도해주고 있다. 이보다 더 친절할 순 없다?! 책 속의 현민이와 멘토가 나누는 대화를 따라가다보면 나도 모르게 어느새 우리네 논술시험이 껌으로 보인다. 아그작 아그작. 별거 아니네?!

  심지어 저자는 집중력있게 논술시험을 치루기 위해서는 쪼꼬렛이나 바나나와 같은 당분을 섭취하라는 조언까지도 한 장을 따로 할애해서 해주고 있다. 글쎄 별 필요없는 책 페이지 수 채우기 위한 수작(?) 같아 보이지만 그것도 탁석산에겐 귀엽게 허용된다. 이후 또 다른 장에서 그 자신이 직접 들어놓은 시험준비를 위한질문들은 매우 짧고 간단한 문장으로 이루어져있지만 쉽게 볼 만한 주제는 결코 아니다. 짤막하게 자신이 들어놓은 질문 몇가지를 골라내어 대답까지 해주고 있는 친절함을 보여준다. 또 기왕에 책을 읽을거라면 지금 읽고 있는 고전작품들이 아니라 지금의 사회문제를 다루고 있는 논쟁적인 작품들을 읽을 것을 권유한다. 이건 나도 동의하는 바 다. 민감한 사안일수록 또 격렬하게 싸움이 일어날 수 있는 작품일수록 독자의 사유는 넓고 깊어진다. 생각은 또 다른 생각을 낳고, 생각은 또 다른 생각을 낳는다.

  아직 '근간'이라 표기 되어 있는 그의 나머지 4,5권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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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NY 2005-11-29 2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봐야겠어요. 논술 준비용 도서라고 게시판에 붙여놓은 도서목록 프린트보면, 들뢰즈도 있고, 타키투스도 있고, 니체도 있고, 시오노 나나미도 있고, 이거 원...손도 대기 싫던데요.

마늘빵 2005-11-29 2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네 무슨 논술준비용 도서들이 대학에서 전공자들도 읽기 힘든 걸 읽으라고 하고 있으니 뭐가 되겠어요? 정말 저런건 프랑스 같이 바깔로레야를 치루는 국가에서나 권장할 만한 것이지 우리나라에는 필요 없는 짓 같아요. 괜히 논술문에 유식한 척 몇글자 적어봤자 오히려 문맥의 흐름이나 방해하지나 않을지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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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술은 논술이 아니다 - 탁석산의 글쓰기 3 탁석산의 글쓰기 3
탁석산 지음 / 김영사 / 2005년 11월
절판


제시문이 길게, 그것도 여러 개 주어진다는 점에 유의하자는 것이다. 장문의 제시문을 여러 개 제시하는 것은 채점의 편의를 위한 것이지만, 수험생의 입장에서 보면 논제에 대한 풍부한 내용이 제시되는 것이고, 출제자의 의도를 드러내는 실마리가 여러 개 노출된다는 것을 말한다. -42쪽

모든 글쓰기는 김밥이 아니라 비빔밥에 가깝기 때문이지. 잡다한 체험, 복잡하고 다단한 생각들, 미묘하고 깊이를 알 수 없는 감정들이 서로 섞이고 스며들고 부딪히면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 글쓰기니까.-5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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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사랑일까 - 개정판
알랭 드 보통 지음, 공경희 옮김 / 은행나무 / 2005년 11월
구판절판


유혹을 받아들이기란 매우 어렵다. 너무 빨리 넘어가면 헤퍼보일 수 있고, 너무 미적대면 상대가 흥미를 잃을 수도 있다. 엘리스는 자존심을 구길 위험을 무릎쓰고, 집에 가서 이야기나 하자는 제안을 받아들여야 할까? 아니면 다시는 못 만날 위험을 감수하면서 예의 바르게 작별 인사를 해야할까?
얌전빼는 태도와 모호한 태도에는 공통적으로 초조함이 배어있다. 머뭇거리면 상대의 관심을 잃을까봐 당장 잠자리로 가는데 동의하는 사람도 있고, 그 다음에 버려질까봐 두려워서 잠자리로 가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62쪽

타인과 사랑을 나누는 일은 어찌보면 과거에 같이 잔 사람들의 습관이나 기억과 충돌하는 것이다. 사랑을 나누는 방식에는 우리의 성생활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키스는 과거에 했던 키스들의 종합형이고, 침실에서 하는 행위에는 과거 거쳤던 침실의 흔적이 넘쳐난다. -65쪽

순전히 기술적인 관점에서는 성생활의 역사가 있는 편이 바람직하겠지만, 심리적으로 그것은 복잡 미묘한 영향을 미쳤다. 성생활 역사가 있다는 것은 여러 사람과 성행위를 했다는 의미일 뿐 아니라, 잠자리를 같이한 사람을 차거나 그 사람에게 채였다는 뜻이다. 좀 더우운 면에서 보자면 섹스 기교의 역사는 실망의 역사라고 말할 수 있다. -66쪽

그녀는 실내 장식에 대해 기능보다는 감정을 중요시했기에, 물건의 가치도 얼마나 제 기능을 하느냐가 아니라 어떤 기억이 담겨 있느냐로 판단했다. -127쪽

감정적인 벌거벗음은 남에게 자신의 약함과 모자란 부분을 드러내느 데서 시작된다. 거기에 의존하면, 우리는 존재라는 엄연한 사실 외에 다른 방법으로 어떤 인상을 심어줄 능력을 빼앗기게 된다. 더는 거짓말하거나 허세 부리지 못하고, 뽐내거나 미사여구 뒤로 숨지 못한다. -136쪽

경제의 세계에서는 빚이 나쁜 것이지만, 우정과 사랑의 세계는 괴팍하게도 잘 관리한 빚에 의지한다. 재무 정책으로는 우수한 것이 사랑의 정책으로는 나쁠 수가 있다. - 사랑이란 일부분은 빚을 지는 것이고, 누군가에게 뭔가를 빚지는 데 다른 불확실성을 견디고, 상대를 믿고 언제 어떻게 빚을 갚도록 명할 수 있는 권한을 넘겨주는 일이다.-143쪽

타인을 상대할 때, 대개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상대의 반응을 예상하고 행동한다. 상대방의 특성을 머릿속으로 그리고, 이것을 이용해서 어떤 말을 할지, 어떤 행동을 할지 선택한다. '내가 X라고 말하거나 행동하면, 이 사람은 Y라는 반응을 보이겠지' 라는 전제하에 움직이는 행동의 틀이다. 이 틀이 웬만큼 복잡한 상황까지 아우를 수 있을 만큼 풍성해지면, 우리는 누군가를 안다고 다소 가설적인 주장을 할 수 있게 된다. -146쪽

사랑의 연속성이란 무엇인가? 상대가 당장 관심의 징표나 신호를 보내지 않아도 사랑이 지속되리라는 믿음, 상대가 밀라노나 빈에서 주말을 보내더라도 다른 정인과 카푸치노를 마시거나 초콜릿 케이크를 먹지 않으리라는 믿음, 침묵은 단순한 침묵일 뿐 사랑의 종말을 암시하는게 아니라는 믿음. -164쪽

"나는 나를 사랑해" 가 부족함을 벌충하므로 "당신을 사랑해"란 말이 덜 필요하다. "당신이 왜 날 사랑하지 않겠어?"는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사랑에 빠졌을 때의 기본 태도다. "내가 나한테 느끼는 감정을 당신이라고 못 느끼겠어?" -168쪽

힘이란 단어는 사전적으로 행위 능력을 의미한다. ...중략... 사랑에서는 권력이 훨씬 수동적이고 부정적인 정의에 의존하는 것 같다. 사랑에서는 권력이 무엇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아니라, 아무것도 안 해도 되는 능력으로 간주된다.-175쪽

사랑의 권력은 아무것도 주지 않을 수 있는 능력에서 나온다. 상대가 당신과 같이 있으면 정말 편안하다고 말해도, 대꾸도 없이 TV 프로그램으로 화제를 바꿀 수 있는 쪽에 힘이 있다. 다른 영역에서와는 달리, 사랑에서는 상대에게 아무 의도도 없고, 바라는 것도 구하는 것도 없는 사람이 강자다. 사랑의 목표는 소통과 이해이기 때문에, 화제를 바꿔서 대화를 막거나 두 시간 후에나 전화를 걸어주는 사람이, 힘없고 더 의존적이고 바라는 게 많은 사람에게 힘 들일지 않고 권력을 행사한다.-176쪽

"누군가가 나를 사랑한다면야, 내가 그 이유를 물을 까닭이 있나?"-212쪽

비트겐슈타인의 주장을 빌리면, 타인들이 우리를 이해하는 폭이 우리 세계의 폭이 된다. 우리는 상대가 인식하는 범위 안에서 존재할 수 밖에 없다 - 그들이 우리의 농담을 이해하면 우리는 재미난 사람이 되고, 그들의 지성에 의해 우리는 지성 있는 사람이 된다. 그들의 너그러움이 우리를 너그럽게 하고, 그들의 모순이 우리를 모순되게 한다. 개성이란 읽는 이와 쓰는 이 양쪽이 다 필요한 언어와 같다. 일곱 살 아이에게 셰익스피어 작품은 말도 안되는 허섭스레기이며, 만약 그의 작품이 일곱 살 아이들에게만 읽힌다면 셰익스피어는 그 아이들이 이해하는 수준에서 평가받을 수 밖에 없다 - 마찬가지로 앨리스의 가능성도 애인이 공감해주는 한도에서만 뻗어나갈 수 있다. -318쪽

행복은 배타적이지만 불행은 끌어안는다. 그러므로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기를 바라는 사람이라면 행복한 표정이 아니라 불행한 표정을 짓고, 명랑함에 수반되는 독립심, 고통에 대한 무감각을 피할 일이다. 불행을 추구하는 일은, 만족한 표정에 함유된 경쟁심을 피하려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336쪽

비트겐슈타인은, 언어란 공유된 의사소통 체계라고 정의되므로 사회를 벗어난 곳에서는 상상할 수 없다며, 혼자만의 언어는 있을 수 없다고 했다. -362쪽

불평을 표현하는 행동 뒤에는 상대가 잘못을 빌 거라는 낙관적인 믿음이 깔려 있을 것이다. 불평은 대화에 대한 믿음을 암시한다. 상처를 입긴 했지만, 이쪽이 화난 것을 상대가 이해해줄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다. -364쪽

보는 것은 항상 다른 요소에 의해 보강된다. 심지어 이미 알고 있거나 바라는 것에 따라 보는 것이 달라지기도 한다. 우리는 눈앞에 있는 것을 곧이곧대로 보지 않고, 이미 인식하고 있는 영상으로 눈을 가리고 힐끗 쳐다볼 뿐이다. -372쪽

"사랑은 두 사람이 서로 다른 점을 과장하는 흥미로운 과정이다." (조지 버나드 쇼)-37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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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스 2005-11-27 0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유, 이놈의 보통씨. 이제는 정말 얄밉다니깐요! >.<

마늘빵 2005-11-27 0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왜요?

이리스 2005-11-27 1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똘똘하잖아욧.. ㅜ.ㅡ

마늘빵 2005-11-28 0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그러게요. 흠. 분석력+감수성 예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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