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학교 중간고사가 끝났다. 시험도 끝났고 첫시간부터 공부하는 것은 너무 가혹하지 않나 하는 판단하에 시험 끝난 첫시간은 영화감상 시간을 갖기로 마음을 먹었다. 뭔가 의미가 있고 감동이 있는 영화를 보여주고픈데 뭐가 있을까 고민과 고민을 거듭한 끝에 <홀랜드 오퍼스>라는 영화를 골랐다. 음악선생과 학생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영화다. 좀 오래되긴 했지만 내가 일전에 이 영화를 보며 받았던 감동을 나눠주고 싶어서 택했다. 그런데! 이런. 반응이 영 별로다. 반은 자고 반은 본다. 뭐냐... 이걸 기대한게 아닌데. 다른 교실에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보여주고 계시던 사회샘. 애들 반응 좋다. 허 이런.
그래서! 나도 사회시간과 연계해서 이걸 보여주기로 결정. 수업시간 45분 동안 봐야 얼마 보지도 못하고, 다음 시간까지 연결해서 보면 아이들도 다 보고 좋지 않은가. 므흣. 역시나 아이들은 이런 애니메이션을 보여주는걸 더 좋아한다. 감동은 무슨 감동. 감동이 있지만 따분하고 지루한 영화는 아이들에게 안먹힌다. 덕분에 나도 이 영화를 처음 봤는데 일주일 동안 돌아댕기며 15개 학급을 틀어주니 허 지겹다. 나중엔 너무 지겨워서 난 안봤다. 내용을 줄줄 머리 속에 다 꿰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애니메이션의 대가,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이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천공의 성 라퓨타> <이웃집 토토로> <붉은돼지> 등일 비롯해 내는 애니메이션마다 크게 성공했다. 그러고보니 난 그의 애니중에 본거라곤 <이웃집 토토로>밖에 없다. 사실 애니메이션이 극장상영되면 난 애니보다 영화를 택하는 편이다. 애니는 왠지 돈이 아깝다는 말도 안되는 편견에 사로잡혀서.

* 치히로를 도와주는 하쿠. 힘을 주는 찐빵(?) 하나를 치히로에게 건넨다. 이 자상함.
이사가는 날, 왠 터널하나를 발견하고 들어가게 되는데 그곳에서 주인없는 음식점에서 맛난 먹거리를 꾸역꾸역 먹던 엄마, 아빠가 돼지로 변하고, 어스름 달빛이 드리우며 인적없는 테마파크는 요괴들의 공간으로 바뀐다. 대뜸 어서 도망가라는 왠 녀석. 넌 머야?! 그러나 이미 늦었다. 인간이 들어서서는 안될 곳, 그곳에서 하쿠는 치히로를 도와준다. 일단은 일을 해야한다. 일을 하지 않으면 유바바가 돼지로 변신시킨다. 우여곡절 끝에 목욕탕 청소 일을 받아들고 그곳에서의 생활은 시작된다.

* 센을 좋아라하는 얼굴없는 요괴 가오나시. 그는 말을 못한다. 우어우어 이런 소리만 내지만 그의 진심을 센은 알고 있다. 내내 센을 쫓아다닌다.
이곳 세계에서 치히로의 이름은 '센'. 이름을 잃어버리면 영영 이곳을 떠나지 못한다. 유바바의 심복 하쿠는 본래의 이름을 잃어버렸고 이곳에 남게 되었다. 자신의 이름을 꼭 기억하라는 하쿠의 충고. 센은 치히로라는 본명이 적힌 쪽지를 품에 간직한다. 목욕탕에서 얼굴없는 요괴는 금괴를 손에서 만들어내고 오직 센에게만 선물하겠노라 하지만, 센은 금괴가 필요없다. 그리곤 자기를 구해준 하쿠를 구하기 위해 모험을 떠난다. 유바바 언니에게 도착하여 유바바가 하쿠를 통해 훔친 마법도장을 돌려주고, 그들의 도움을 받아 결국 엄마, 아빠를 되찾게 된다.

* 하쿠의 지시대로 찾아간 가마할아범의 일터. 이곳에서 이 깜찍하고 귀여운 숯검뎅이들을 만나게 된다. 치히로의 신발을 날라다주는 귀여운 녀석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숨가쁜 줄거리 진행을 통해 긴장을 놓지 않게 하면서도 감동을 준다. 그저 볼거리로만 만족하는 것이 아니다. 센을 도와준 하쿠, 그리고 다시 하쿠를 도와주는 센. 사랑을 이야기한다. 가장 소중한 것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금괴나 안락함이 아니다. 사랑하는 엄마, 아빠를 구하기 위해, 하쿠를 구하기 위해 센은 힘든 길을 택했고, 그들을 구해냈다. 감동의 눈물 한 방울.
그림자 하나하나의 섬세한 손길, 그리고 다양하고 독특한 캐릭터들, 흥미진진한 스토리 구성, 그리고 감동의 눈물 한 방울. 미야자키 하야오는 모든 것을 너무도 완벽하게 구성해냈다. 그의 다른 작품들도 보고싶다.